◈꿈을 안고 장애물을 넘으라 느4:1~14 2012.11.23.
◑도입 / 변화에는 반대가 따른다
존 맥스웰은 리더십에 대한 좋은 책을 많이 지었는데
이분은 미국의 샌디에이고에서 교인이 3천 명이나 되는 큰 교회에서 목회를 잘하던 분입니다.
그런데 목회를 그만두고 리더십 인스티튜트를 만들었습니다.
3천 명이 모이는 교회를 목회하는 것보다, 지도자 한 사람의 리더십을 개발해주면
그보다 더 많이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리더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리더십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꿈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리더도 그렇지만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갖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꿈을 가졌다는 것은 뭔가 본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봤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에 빛을 보고 눈이 뜨였다는 것입니다.
변화한다는 것은, 꿈을 본 사람들이 꿈을 향해 가다 보니,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또 변화를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계속 무엇인가를 향해서 자신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꿈, 비전이라는 말은 더 나은 것을 위해 계속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삶입니다.
나는 현실 안주형인가 아니면 변화를 추구하는 형인가
여러분이 자신을 스스로 한 번 점검해 보십시오.
변하지 않으려는 현실 안주형의 사람은 늘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에 급급합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작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닙니다.
또 다른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의외로 현실 안주형이 많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변화하고 싶지만, 변화보다는 안정을 더 추구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은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시시각각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변하지 않고 현실 안주형으로 가만히 있으면 내 인생은 도태되고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고 나도 모르게 내 인생이 죽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은 변화를 추구하셨던 분입니다. 예수님은 꿈을 꾸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을 정도로 꿈이 대단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보면 계속적으로 변화를 추구하신 분입니다.
당시 유대종교에 대해서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하십니다.
기존의 율법체제를 흔들어 놓고 낡은 가죽부대로 있는 유대종교에
새로운 부대를 요구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리게 되자
결국은 기득권을 공격하는 변화추구자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곳마다 변화를 일으키셨습니다.
현실 안주형이 아니라 꿈을 꾸시는 분이시고 비전을 향해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셨던 분이십니다.
▲우리가 변화하려고 할 때 변화를 싫어하고 현실 안주하려고 하는 이유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반대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일은 반대를 각오해야 합니다. 비전을 움직여갈 때
방해하는 방해꾼들이 반드시 일어나게 됩니다.
가능하게만 보였던 일들이 어느 순간 실제적으로 변화를 추구하게 되면 불가능한 상황이 밀려옵니다.
그때 많은 사람이 백기를 들고 멈춥니다. 변화할 때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백기를 들고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계속 진군할 것인가가
우리의 일평생에 큰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젊은이들도 인생에 뭔가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면 항상 저항과 방해물이 있게 됩니다.
변화를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개인의 삶도 변화를 하려고 하면 많은 장애물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작은 단위의 사업을 하든지 아니면 건강을 위해서 삶을 바꾸려고 한다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국, 오늘 우리의 삶은 현실에 안주할 것인가, 변화를 추구할 것인가?
이 결정이 늘 당면해 오는 도전입니다.
내 인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고 하면 그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현실의 삶에 도전하고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세워야 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본문 설명 /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방의 땅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출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실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훼파된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올인하게 됩니다.
그러나 쉽지 않았습니다. 장애물들이 계속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생각지도 않은 장애물들이 항상 있다는 것입니다.
순풍에 돛단 듯한 일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 느4장의 전반부를 읽어보면
성벽재건을 기뻐하지 않는 자들의 조롱소리가 가득합니다.
성벽 재건하고 있는 유다나라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방해꾼이 산발랏입니다. 또 7절에는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연대해서 공격합니다.
장애물이 없는 역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체가 움직이면 바람의 저항을 받는 것은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입니다.
항상 가만히 있으면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움직이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평탄하게 달려온 것처럼 보여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질곡의 인생을 살아오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특별히 인생을 좀 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살아가려고 작정하면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숨어있으면 괜찮은데 뭔가 봉사하려고 하고
좀 더 나서서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하면 어려움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 대가는 장애물들을 통과해야하는 것입니다.
편안하게 살려고 하면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을 업그레이드하려고 하고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살아가려고 하고
또 리더십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비켜갈 수 없는 것이 장애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성적으로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마음이 찾아옵니다. 노후에 편안하게 사는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편안하게 살려고 하면 편안하게 살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려고 하면
변화를 추구해야 하고, 변화를 추구하면 장애물은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70세가 많은 나이였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고령화가 되어 100세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60대에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분이 있다면 남은 50년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마지막까지 건강을 주시면 나는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살겠다는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편하게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은 계획한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는 꿈을 꿉니다. 그러나 장애물이 있습니다.
장애물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다 보면 장애물은 예상치 않은 곳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곳곳에서 브레이크를 걸고 함정을 파두고 비난을 하고 실패를 바라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인생의 위기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꿈이 크면 장애물을 더 큽니다.
꿈이 작으면 장애물도 작습니다.
꿈의 사이즈는 장애물의 사이즈와 비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비난이란 장애물
본문에 느헤미야가 맞은 장애물은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어서 만든 음해성 공격들입니다.
2절을 보면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며 비난들을 합니다. 3절에도 암몬 사람 도비야가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고 야유를 겁니다.
첫 번째의 장애물은 비난입니다. 변화가 있는 곳에는 비난이 있습니다.
비난하는 사람들은 평소에는 숨을 죽이고 숨어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일이 시작되면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것이 비난하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마치 아프리카의 하이에나와 같습니다. 하이에나는 자기들이 동물을 절대 잡지 않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잡아놓은 것을 적당한 시간이 되면 낚아채는 아비한 동물입니다.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비난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싸움을 걸어오는 의도는 사람들의 마음을 교란시켜 성벽재건을 중단시키는 것입니다.
일종의 심리전입니다. 악성루머, 비난, 조롱은 유다사람들의 정신을 산란하게 하였습니다.
비난은 생각보다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존감을 흔듭니다.
“너희들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가.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 해봤자 무너진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반대자들의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둡니다.
10절을 보면 백성 안에 낙심하는 분위기가 찾아듭니다.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은데 감당하기 역부족이라는 불평 섞인 말들이
내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내부적으로 절망의 분위기가 감돌고 비판이 먹혀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비판은 인간의 죄성 때문에 전염성이 강하고 파괴력이 있습니다.
유다백성이 몇 사람이 던지는 비난과 조롱에 영향을 받아 마음이 흔들리고
내부적으로 불평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룰 수 없는 일을 괜히 시작하지 않았는가 하는 낙심이 찾아온 것입니다.
비난은 처음에는 무시할 수 있어도 나중에는 영향을 주어 회의적인 생각을 갖게 합니다.
비난은 의욕을 잃게 만들고 공동체를 부정적으로 몰고 갑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그런 경험을 한 분이 계십니까?
남들의 비난과 험담, 혹은 음해성 루머들로 주저 앉은 적이 있습니까?
열심히 하다가도 갑자기 힘이 빠지고 의욕을 상실하고 뒤고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2. 낙심
비난으로 인해 우리에게 찾아오는 무서운 손님은 낙심입니다.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좀 하려고 하는데 이상한 말들을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낙심하게 만듭니다. 사탄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무기 중의 하나는
낙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정탐꾼의 보고는 이스라엘 사람들 전체에게 낙심을 불어넣고 말았습니다.
이 부정적인 보고가 이스라엘 진영을 꽁꽁 얼어붙게 한 것입니다.
백성은 한순간 염병처럼 감염당하고 낙심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풍요로운 가나안의 놓치게 만든 부정적인 파워는 다른 것이 아니라 낙심이었습니다.
낙심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병기에 패배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낙심은 나는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지는 것입니다.
비난은 낙심을 가져오고 낙심은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합니다.
많은 사람은 목표에 도달해 보기도 전에 비난의 화살에 맞고 쓰러져 버립니다.
비난의 화살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력적으로 파괴적입니다.
비난은 자존감을 무너뜨립니다. 자존감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자신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낙심하는 것입니다.
일이 진전이 안 되고 초상집 같은 분위기가 되고 맙니다.
오늘도 마귀는 비난을 사용해서 사람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립니다.
자존감이 무너지면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의욕이 없어지게 됩니다.
▲3. 대적의 질투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흔한 이유는 시기와 질투입니다.
항상 다른 사람의 성공을 배 아파하는 반대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산발랏이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사마리아의 총독입니다. 그동안 그의 영향력 속에 있던
유다가 견고하게 다시 세워진다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왕의 조서를 들고 와서 공식적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느헤미야야말로 산발랏에게는 눈엣가시였습니다.
내가 실패한 것보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받아들이기가 더 어렵습니다.
심지어 가까운 사람들 안에서도 시기와 질투가 기승을 부리게 됩니다.
우리 안에도 그런 기질들이 있습니다. 우리고 종종 그런 반대자들의 대열에 설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훌륭하게 일을 이루었을 때 박수보다는 질투 어린 비아냥을 보내기 쉽습니다.
질투의 영이 찾아들면 무섭습니다. 여자들도 질투가 많지만, 남자들도 질투가 많습니다.
가인을 보면 질투가 있어서 동생을 죽였습니다.
또 사울왕도 다윗을 질투해서 자신의 사위임에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이 자신에게는 위협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그것이 나의 자리와 명성을 위협하게 될 때는 더욱 심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잘 안 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잘 된 것이 싫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웃는 자와 함께 웃어주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가까이 지내던 집사님이 최근에 넓은 집으로 이사해서 집들이를 갔는데
점심을 먹는 동안에 간증한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남편이 최근에 진급한 이야기, 자녀가 장학금을 받은 이야기 자랑을 늘어놓으면 듣기 싫습니다.
목사도 질투합니다. 다른 목사님의 설교가 너무 좋다고 하는 교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질투하게 됩니다.
좋은 공동체는 다른 사람의 형통이나 성공에 아낌없는 박수를 쳐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기꺼이 축복해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옆 교회가 정말 잘 되면 아낌없이 박수를 쳐 줄 수 있는 목사님이 많아야 합니다.
저는 시드니에서 목회할 때 세미나를 하면 우리 교회보다 더 크고 더 부흥하는 교회가
시드니 땅에 오기를 기도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수영로 교회보다 더 큰 교회가 이 땅에 일어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누가 다른 사람의 형통을 기뻐해 줄 수 있습니까?
자신 안에 내적인 안정감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내적 안정감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내적인 안정감은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습니다.
나와 비교하기 때문에 질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미 하나님 안에서 충만함을 누리고 있다면 상대에 대해 질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형통을 마음껏 축복해 줄 수 있다면 곧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인간의 죄성을 극복한 인격, 인간의 죄성을 극복한 공동체는 아름답습니다.
질투를 이기는 적극적인 비결을 하나 알려드리자면
질투가 나는 상대를 위해 축복하는 것입니다.
내 감정을 극복하는 비결은 그를 위해서 더 잘되도록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유능한 인물들은 반대에 부딪혔을 때 빛이 납니다.
문제를 만나면 평소보다 눈이 더 반짝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가 일어나면 긴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거꾸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큰소리치다가 난관에 부딪히면 꼬리를 감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그만 충격이 일어나도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라 과입니다.
자라는 조그만 충격이 와도 목을 쏙 집어넣습니다.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믿음에서 나오는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승리를 이끄는 리더십들의 다른 점은 수없는 장벽과 장애물들을 통과한 전사적 기질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과 끈기가 있다는 말입니다. 루즈벨트는
“만약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두려움 그 자체뿐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수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1. 첫 번째로 기도하면서 극복했습니다.
그는 비난이 오자 즉시 기도합니다. 느헤미야는 문제를 만날 때
문제를 푸는 방식을 알고 있었습니다.
비난이 올 때 첫 번째 반응은 기도였습니다. 문제를 풀 줄 아는 사람들이 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기도입니다.
본문 느4:4절과 9절을 보면 기도가 나옵니다.
느헤미야서에서 자주 나오는 느헤미야의 리더십은 기도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대적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대적자에 대한 승리의 비결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실수는 대적자와 싸우는 일로 우리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힘의 분산이 목표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결국 싸움에서 지게 되는 것입니다.
적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벽재건이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쏟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오늘도 우리로 하여금 목표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우리 인생의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교회도 본질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산란하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목표를 이루려고 하면 힘의 집중력이 있어야 합니다.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됩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감정에 빠지면 핵심적인 목표를 놓쳐버립니다. 그러면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고 목표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주는 유익은 집중력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집중력을 의미합니다.
기도보다 좋은 집중력은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뜻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기도할수록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일어납니다.
기도는 내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내가 무엇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확인시켜줍니다.
목표에 집중하고 있으면 방해물을 극복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비난이 올 때 대게는 비난을 묵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난을 묵상하기보다 기도에 집중해야 합니다. 비난으로 들끓는 감정을 하나님과 해결해야 합니다.
비난의 말을 신뢰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기도는 장애물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꾸준함, 인내
느헤미야는 대적자들이 나타나도 하던 일을 계속합니다.
비난은 사람의 감정을 건드립니다. 자칫하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흔들입니다.
비난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게 되면 반대자들에게 승리가 돌아가게 됩니다.
비난은 비전을 흐리게 만듭니다. 우리가 항상 경계해야 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삶의 중심을 놓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반대자나 장애물은 늘 나타났다가 없어졌다가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때도 있습니다. 비난에도 유익한 것이 있지만,
거기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내 인생은 실종됩니다.
적당하게 듣게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나의 길을 가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비난에 6절과 14절에 보면 백성을 격려하고 성벽재건의 작업을 늦추지 않습니다.
이런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결코, 가볍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만약 느헤미야가 하던 일을 중단해버린다면 반대자들이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하던 일을 그만둔다면 적의 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누구나 어려움이 오면 포기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게 됩니다. 온갖 유혹이 찾아옵니다.
우회하는 길을 찾고 싶고 뭔가 그만두고 싶고 무릎 꿇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공적으로 사역하고 있는 사역자들에게 사역하는 동안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이 없었는가를 물어보면
놀랍게도 예외 없이 그런 순간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포기하고 싶은 감정을 극복했을 때
그들은 리더십의 자리에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시카고의 윌로크릭 교회의 빌하이 벨스 목사님은 미국에 알려진 대표적인 성공적인 목회자입니다.
그는 한때 남들이 보기에는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짧은 기간 동안 미국에 탑클레스의 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사역하는 동안 그만두고 싶었던 유혹을 받은 적이 없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자서전적인 책에서 사역을 그만두고 싶었던 유혹을 경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만두고 싶었던 엄청난 압박과 유혹 앞에 시달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사표를 던져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함량부족입니다.
인내가 부족한 것입니다.
특별히 리더십들의 경우 배를 목적지까지 끌고 가는 것이 리더십입니다.
풍랑을 헤쳐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력과 믿음을 갖춘 리더십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시작한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만두라고 하시기 전에는 포기하면 안 됩니다.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연설이 있습니다. “Never, never, never give up.”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최고의 능력은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끝까지 완수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쓸데없는 에너지를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비난하는 사람은 비난을 사명으로 여기고 삽니다.
그 사명 감당하게 내버려두고 나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가야 합니다.
사역하다 보면 괜히 화나게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화난다고 그 감정을 쏟아붓고 엉뚱한데 에너지를 쏟으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우리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아무것에나 목숨을 걸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죽을 힘을 낼 일도 아닌데 힘을 쓰다가 안타깝게 죽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너무도 짧습니다. 에너지도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쓸 데 써야 합니다. 불필요한 일에 쏟으면 안 됩니다.
뉴스를 보면 엉뚱한데 에너지를 쏟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표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시비를 건다고 다 받아주지 마십시오.
누군가가 비난한다고 감정을 쏟고 춤추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음해나 비난도 한 달을 못 갑니다.
느헤미야는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배짱이 있었습니다.
일을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3. 세 번째는 느헤미야의 균형감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9절을 보면 파수꾼을 세우고 13절에 무장시킵니다.
대적들의 공격에 대비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적을 무시해버리는 것으로만 끝내지 않고 백성의 절반은 일하게 하고
절반은 성을 지키게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백성에게 한 손에는 무기를 들게 하면서, 건축 작업을 늦추지 않았는데
이것이 균형의 원리입니다.
기도한 것으로 우리가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인간적인 노력만으로 내가 할 일을 다 했다고 결론 내리지 말고,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쪽 편으로만 기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는데 자신은 전혀 책임을 지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면서 일하는 사람을 도우십니다.
반대로 인간적은 노력은 하는데, 기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철저한 인본주의입니다.
그런 면에서 느헤미야의 기도는 눈뜬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거대한 꿈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현실적 감각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기도도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탁월한 전략도 가져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시대가 그런 시대입니다. 영성을 충분히 갖추고 하나님 앞에서
무서울 정도로 기도도 해야 하지만,
현실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전략을 세우는 전략가가 되어야 합니다.
칼 바르트는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엇을 분명히 구하고 기도해야 할 것인지,
어떤 일들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씨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뱀처럼 지혜로워야 합니다.
정말 간사하고 간교하고 음해하고 모략을 꾸미는 세상의 한가운데에 들어가서
그냥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깨어있는 자로 하늘의 지혜를 구하고 세상의 모략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능력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정확한 현실을 이해하고 어떤 부분을 도와주셔야 하는지를 알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치는 말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무엇인가 우리를 통해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가정에, 우리 공동체에 그런 비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분명하게 가슴 속에 불타는 무엇인가를 주셨습니다.
오늘 밤에도 기도하는 가운데 그런 비전이 구체화되기 바랍니다.
나의 욕망이나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꿈을 이루고자 할 때
수많은 난관에 부딪힌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기 원한다고 기도해야 합니다.
난관과 어려움, 수많은 반대자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수많은 변수가 일어나도 낙심하고 절망하지 않고
14절에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장애물들, 반대자들이 아닙니다. 비난도 조롱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비전에 귀를 기울이고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게 될 때 놀라운 일을 행하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던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나아가게 될 때
우리 인생에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줄로 믿습니다.
장애물을 오히려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난관은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일에 필수품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꿈이 계속 살아나기 바라고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더 아름답게 커지고 손에 잡히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편하게 사는 것을 꿈꾸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가 일어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기 바랍니다.
어려움이 온다면 내가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는 증거요,
힘든 일이 있다는 것은 내가 주를 위해서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장애물이 있다는 것은 내가 비전을 향해, 목적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편안한 삶을 절대로 꿈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내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이고 내 생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을 발견하고 내 인생을 내어드릴 때 힘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역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결단하면 반드시 장애물이 생깁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내 감정에 에너지를 쏟지 말고 삶의 목적을 분명히 발견하고
인생 전부를 쏟아낼 때 그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시게 될 줄로 믿습니다.
힘든 일은 있지만,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면서 주시는 위로와 기쁨은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고 달려가기 바랍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내 일평생 도달할 수 없는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주시는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꿈이 분명하면 살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느헤미야는 편안한 삶을 초개 같이 버렸습니다.
수산 궁에서 할 수 있는 안락하고 성공할 수 있는 자리를 벗어버렸습니다.
조국이 훼파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그날부터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하고
그 부름 앞에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위기와 어려움이 있지만,
자신의 몸을 조국 예루살렘을 향해 던졌습니다.
수많은 반대와 수많은 장애물에도 기도하고 아주 뚜렷한 전략을 세우고
반대자들과 맞서면서 마침내 오랫동안 훼파되었던 성벽을 52일 만에 이루어내는
하나님의 걸출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그런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눈을 뜨면 하나님의 부르심이 곳곳에 있습니다.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한 분 한 분이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못할 만큼 부족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많은 은혜를 받았고 많은 훈련을 받았고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도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이것을 이 땅 가운데 풀어내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그 일을 행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느헤미야가 조국의 훼파된 소식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붙잡고 나의 비전으로 삼으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용하시고 역사를 움직여 가실 것입니다.
오늘 세상에 무너진 영역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안타까운 기사를 보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하고 자신의 생애를 드리는 일이 일어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가정을 위해서,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 세상의 무너진 곳곳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입니다.
나라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교회가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필요한 곳곳마다 들어가서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는 사람은 교회요,
그리스도인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시고 무엇인가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편안하게 살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주를 위해서 내 생명을 드리겠다는 결단을 하게 될 때
그것이 사는 길인 줄로 믿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길이고 가장 풍성한 길입니다.
절대로 ‘이 나이에, 이 건강에, 이런 조건에’라는 말을 하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음성에 반응하고 나의 비전으로 삼으면
그다음은 하나님이 다행하실 줄로 믿습니다. 장애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줄로 믿습니다.
저는 날마다 기도하면서 수영로 교회를 통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을 생각하며 흥분합니다.
그 일을 행하실 줄로 믿습니다. 부산의 한 지역에 있는 지역교회가 아니라
이 민족과 열방 가운데 사용하실 거룩한 교회로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그 일에 함께 동승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한가운데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먼지도 햇빛이 비치면 빛이 난다고 합니다.
어떤 인생도 무가치하게 세월만 보내는 인생은 없습니다.
한 분, 한 분을 존귀하게 만드셨고 거룩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우리가 사는 그때그때 인생의 전성기가 되도록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기도하면서 비전이 끓어오를 때 기도가 살아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비전이 크면 기도가 더 뜨겁고 강렬하게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을 더 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부르시고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장애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제는 주님이 부르신 비전을 향해 달려가겠다는 결단이 여러분 안에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