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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난자의 기쁨

LNCK 2024. 11. 3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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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난자의 기쁨          빌1:12~18, 요19:5            2005.08.07.

 

▲심리학자 M. 스콧 팩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의 유명한 The Road less Traveled 라고 하는 아주 베스트셀러가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길' 그런 번역이 됩니다.

 

그는 삶에 있어서 오는 다가오는 많은 고통에 대해서

우리가 어떡한 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서, 생의 운명은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그래서 그는 네가지를 우리에게 지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삶에는 고통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즐거움도 있으니

고로 언제나 낙관적인 자세로, 또는 긍정적으로 사건에 임할 필요가 있다..

라고 말합니다. 삶을 비관적이거나 부정적으로만 해석하지 말라는 거죠.

 

“삶속에는 고통과 즐거움이 있고, 둘은 공존하는 것이다.

고통만 있는 것 같으나 그 속에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고 해서 즐거움만 있는건 아니다.

그 속에 또다른 고통이 있는 것이다. 공존한다는 걸 잊지마라

 

그는 고로 언제나 낙관적인 자세로, 또는 긍정적으로 사건에 임할 필요가 있다.

 

2) 두 번째는 일에 가치와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목적입니다. 바른 목적을 세워야 바른 가치관이 옵니다.

이건 질적인 것입니다.

 

얼마나 벌었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이익을 남겼느냐에 있는게 아닙니다.

내가 세운 궁국목적에 얼마나 부합한 생을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3) 셋째는 그는 고로 진실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을 보는 일에 진실해야 하고, 자기 자신을 보는 일에 정직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걸 잊어버리면 실패하는 겁니다.

 

4) 넷째는 얻기 위해서는, 버리는 것이 있다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생의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포기할 것과, 선택할 것을 둘 다 가지려고 하지 마세요.

다가질 필요도 없으니깐, 그저 몇가지 가지고 몇가진 버릴 생각을 하세요.

버리지 않고 얻지 못합니다. 다가질려고 하는 생각이 얼마나 바보스런 생각합니까.

 

그게 필요한겁니다. 또 할 수 있는 겁니까?

그러니까 균형을 잡아서 얻을 것은 얻고 버릴 것은 버리되

그 버리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아쉬워할 필요가 없어요.

얻기위해 버리는 것이니까 말이에요.

 

그래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이 있지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너무 기뻐서 ‘저거 하나만 가지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래서 말입니다. 집에 있는 것을 다 팔아버려요. 아주 싸구려로 다 팔아버려요.

왜요? 저것만 가지면 되니깐! 절대 가치가 저기에 있으니깐!

내 생애 목적이 저기에 있으니까!

 

여러분 바로 이러한 의미의 생, 이것만 가지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머지는 아주 쉽게 버릴 줄 아는 위대한 용기가 있어야

생을 바로 살아갈 수 있다는 얘깁니다.

 

◑본문 설명/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있습니다.

 

황제에게 상소해서, 재판을 받기 위해서, 지금 가택연금 상태에 있습니다.

비교적 자유롭지만 그래도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엡6:20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그 속에서 편지를 썻기에 본문 빌립보서를 ‘옥중서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감옥안에도 기쁨은 있었어요.

위 서론에, 고통 가운데도 기쁨이 있고, 기쁨 가운데도 고통이 있다고 했죠.

 

사도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찬송을 불렀어요.

로마 감옥에서 다시 찬송을 부르고 있어요.

 

감옥안이라고 꼭 슬픔이 있고 탄식이 있는게 아니에요.

감옥안에만 있는 남다른 희안한 기쁨이 있고.. 그런 깨달음도 있고..

그런 느낌도 있고.. 그런 즐거움도 있고.. 그런 찬송도 있는 겁니다. 여러분 이걸 잊지마세요.

 

그리스도인의 삶에 본질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감옥에 있으면 슬프고, 감옥 밖에 나오면 행복하고 그런겁니까?

병들면 슬프고, 건강하면 행복한 것입니까?

가난하면 슬프고, 그래 부유하니까 행복합디까? 바로 이것을 알아야 되요.

 

그는 감옥에서 수난자의 찬송을 부릅니다.

감옥안에서 자기만이 아는 기쁨을 향유하고 있어요. 그뿐입니까?

 

빌립보서에 총 주체가 기쁨 아닙니까.

기뻐하고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자기만 기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하여 기뻐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기쁨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생깁니다.

 

▲사도바울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God's Dispensation 하나님의 경륜(경영)의 깊은 뜻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저는 이 요절을 너무너무 소중하게 여깁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복음의 진보가 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바라노라’ 빌1:12

 

‘나의 당한일이 복음의 진보가 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바라노라’

너무너무 귀한 말씀이에요.

 

나의 당한 일이 뭡니까?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와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거에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런 고생을 하고 있어요.

 

나의 당한 현실, 나의 당한 모순, 나의 당한 이 엄청난 말도 안되는 고생,

자 그런데 이런 억울한 고생을 하지만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나의 당한 일이. 나는 고생을 하지만, 이 일이 복음의 진보가 되어...”

복음이 널리 전해지는 일에 플러스가 되었다는 겁니다.

 

다시말하면 바울은 하나님의 선교적 시나리오를 깨닫게 되었어요.

그 놀라운 시나리오 속에서 자기를 봐요. 보니까 내가 여기 감옥에 있어야 되는 거에요.

 

하나님의 위대한 시나리오 속에 내가 여기에 있어요.

그래서 그는 기뻐합니다. 그래서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뻐하라고 권면니다.

 

◑적용

 

나는 북한에 갈때마다 종종 그분들로부터 인사를 받는데요.

거기에 프로파일이 있기 때문에, 관계자는 바꿔어도 내게 대한 기록이 있어서

그걸보고 내게 인사를 하니까. 언제든지 똑같은 이야기를 여러번 여러번 들었습니다.

 

‘목사 동무, 동무의 아버지가 우리 공산당의 손에 의해서 총살당했는데

총살 당했을 때 바로 옆에 있었다면서요?

그럼에도불구하고 조국에 오셨기에, 조국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하고 손을 내밉니다.

 

저희 아버지가 제 목전에서 총살 당할 때에 참으로 괴로웠습니다.

그 시체에 엎드려 울 때, 세상이 다 끝나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이상하게 귀로 들리지 않는 음성이 있더만요.

 

그 시체, 아직도 식지 아니한 그 시체를 붙들고 있을 때에

내 귀 고막이 터지는 거 같이 들려요.

 

‘이 놈아 살아야 효자다. 이 놈아 너 여기서 죽으면 불효자야. 살아야 효자다.’

그래서 제가 벌떡 일어나서 도망을 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오늘까지 살았는데

제 아버지가 제 앞에서 총살당한 이 사건이

오늘 와서 북한 선교를 위해서 이렇게 소중한 계기가 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바꿔놓고 생각해보세요.

만일 제 아버지가, 공산당을 죽였다면 저는 북한에 못갑니다.

그런데 공산당원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단 말이에요.

 

저들은 나를 맞이할 때마다 나를 성자라고 말합니다. 남한에서는 못 들어 봤어요.

북한 가면 성자라 그래요.

 

아버지를 죽인 그걸 다 잊어버리고 우리를 돕기 위해서 이렇게 오셨다고

이렇게 환영하는 이렇게 환영하는 것을 볼때마다 참 놀라운 섭리입니다. 이해할수 없었어요.

 

그러나 이제 뭔가 이해할 것 같아요. 여러분 이걸 잊지 말아야 해요.

‘나의 당한 일이 복음의 진보가 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바라노라’ 빌1:12

 

‘내가 감옥에 있다고 선교 끝난 거 아니야.

하나님의 나라 차원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역사가 여기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는 그 위대한 시나리오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이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자기 사명이 있고, 자기 삶의 목적과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뿐아니라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내가 감옥에 있으므로 해서 여러가지 후속 효과가 있다는 것이지요.

 

빌1: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겁없이 증거하는 사람이 생겼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으니까 많은 바울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제 용기를 냈어요. 겁없이 복음을 전하더라.

 

1950년 6.25전쟁 바로 직전에 북한에는 아주 그런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목사님들 장로님들 감옥에 끌려갔습니다.

교회에는 가서 보면, 목사님도 안계시고 장로님도 안계십니다.

그저 교인들끼리 모였다 헤어지는 거에요.

 

제가 참 어렸습니다만, 제가 17살 때 설교했다면 사람들이 믿겠어요?

그런데 했어요. 왜요? 할사람이 없으니까.

 

설교 할사람도 없고, 교회를 리더하는 분도 없는데, 교회는 터지게 모였습니다.

새벽에도 꽉 찹니다. 발 디딜 데가 없어요. 인도하는 사람도 없어 불도 안켜요.

그래도 그 어두운 곳에 엎드려서 기도하는 모습...

 

예배시간에 이거 마땅한 설교자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터지게 모였어요. 왜요? 교역자들이 감옥에 갇혀있잖아요.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혀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용기를 냈어요.

감옥에 가는 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겁 없이 복음 전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거에요.

 

바울은 이것을 보고 있어요.

‘나 하나 감옥에 있으므로 해서, 많은 사람이 불같은 열심을 내는 걸 보고

겁없이 복음을 전하는 걸 보고 참 잘됬다... 참으로 좋은 일이다...’

 

▲또 한가지는 참 선한일에도 질투는 있거든요.

서두에, 좋은 일에도 안 좋은 일이 함께 한다고..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빌1:17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이 질투와 시기라고 하는 것은 참 무서운 무서운 악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복음전할때 경쟁적으로 복음전한 사람들이 있어요.

 

사도바울이 교회세우면 우리도 세우고,

바울이 열심히 하면 우리도 열심을 내고,

이렇게 경쟁적으로 하던 사람들이

 

바울이 감옥에 갇히니까 ‘사도바울이 얼마나 지금 속이 상할까?’

그래서 괴로움을 더하게 할려고, 바울을 더 속상하게 할려고

밖에서 더 열심을 냈대요.

 

질투하는 마음으로...

바울의 마음을 괴롭히기 위해서 더 열심을 내서 전도하게 했대요.

 

그런데 바울은 감옥에서 빙그레 웃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1:18

 

‘질투라도 좋으니 열심히만 전해라!

까짓꺼 나의 명애를 추락시킬려고 하지만

내 명애는 바닥에 깔려도 좋다만, 단 예수님만 열심히 전해다오!’

얼마나 귀한 마음입니까?

 

▲저는 얼마전에 워싱턴 DC에 갔다가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부흥회 인도하기 설교하기 직전에

목사님 사무실에 않아 있는데,

이렇게 이상하게 서재에 내 눈에 딱 들어오는 책 한 권이 있어요.

 

본훼퍼의 <윤리학>이라는 책입니다.

그것을 딱 빼서 들고 중간을 이렇게 딱 폈는데

아주 놀랍게 ‘에케 호모’ 라는 Chapter가 나옵니다.

 

이거 옛날에 다 보았던 책인데 ‘ECCE HOMO’ 너무너무 감격했어요.

마치 지시해 주는 것 같이...

그래 그날 이걸 가지고 올라가서 설교를 했어요.

 

‘에케 호모’는  '이 사람을 보라'라는 라틴어 어구로,  요19:5

빌라도가 예수를 채찍질하고 머리에 가시관을 씌운 뒤

성난 무리 앞에서 예수를 가리키면서 말한 말입니다. '이 사람을 보라!' 이죠.

 

여러분 예수님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재판을 받으시는데

빌라도가 예수를 보니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이 사람은 왜 죽을려고 그럴까?’

‘아 그 많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 뭐 죄지은 것도 없는것 같은데..’

 

그래서 ‘이 사람을 보라’ Behold this man, 에케 호모!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을 본훼퍼는 이렇게 3가지로 해석을 합니다.

 

1) 예수는 자기자신을 초월했다.

자기라고 하는 우상을 초월했어요. 살고 죽는건 상관없어요.

생명을 깨끗이 잊어버렸어요.

‘그것이 예수님이다. 그것이 십자가다!’ 라고 해석했어요.

 

2) 두번째는 업적을 초월했다.

‘내가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나.

내가 그동안에 해온 사역은 어떻게 무너지나?

내가 떠난 다음에 어떻게 될것인가?

제자들은 어떻고,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이고...’ 그런 생각 일절 안 했어요.

업적에 대한 우상을 잊어버려요. 이것이 십자가에요.

 

3) 세번째는 명예에 대한 우상을 초월해요.

여러분 선한 일을 하는데서도 명예가 따라가요. 시기 질투가 따라가요.

제발 명예.. 잊어버립시다.

 

우스운 얘기지만, 제가 은퇴하기 얼마 전에

나보고 총회장 하라고 뭐 목사님들이 찾아와서 막 협박도 해요.

 

그렇게 하지만 ‘제발 나좀 놓아주라...’

나는 총회장 흥미가 없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안 하기를 썩 잘했어요.

얼마나 잘했는지...

 

여러분 자그마한 명예라도, 명예에 대한 욕심을 잊어버리세요.

명예라고 생각되는 순간,

질투가 따르고, 질투와 시기에 빠지면, 사람이 형편 없이 됩니다.

정말 형편없는 인간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명예, 그까짓것 내버리세요.

대수롭지 않은 명예... 안 그렇습니까? 잊어버리세요.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신 거에요.

 

▲사도바울은 감옥에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됩니다.

감옥에 있으므로 해서 바깥에서 복음이 전파됩니다.

안에 매여져 있으므로 해서 밖에서 전파됩니다.

 

‘그래서 외모로 하나 참으로하나 상관없다.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나는 기뻐하리라.’ 1:18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가서 수고하던 리빙스턴이 잠시 영국에 돌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 초라한 모습에 아... 그 사자에게 물린 그 상처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얼마나 희생을 했습니까?’

 

리빙스턴은 웃으면서 ‘나는 아프리카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다시는 내 앞에서 희생이라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희생이라는 단어를 쓰지 마십시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즐기고 있었을 뿐입니다.’

 

여러분 희생이라는 말 하지마세요. 쉽게 십자가 진다고 망언하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님의 유일한 기쁨이올시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복음을 전했는데 보세요.

불과 200년도 안 가서 대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로 선포가 됩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바울이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마치는 말

가장 어려운 현실에도 가장 큰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만이 아는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십자가란 그래서 영광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나의 당한일이 복음의 진보가 된것을 너희가 알기를 바라노라"

이렇게 되나 저렇게 되나 복음이 전파되기에 나는 기뻐하노라.

기뻐하고 실로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는 감옥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도 저희들이 주님앞에 나왔습니다.

뜻대로 안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일은 답답하고 현실은 아물하기만 합디다만

바울이 감옥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영광 본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러한 영적 지각을 주어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우리 앞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고 느끼고 체험하며

현실 속에서 감사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을 향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할 수 있는

그러한 벅찬 기쁨에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