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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권능을 구하라 P1

LNCK 2024. 12. 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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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권능을 구하라 | 눅 24:49 | 금요철야 | 23.8.25 - YouTube

*위 동영상 00:00~34:30초까지 녹취

영적 권능을 구하라 P1           눅24:49, 행1:4           2023.08.25.       

▲우리 나라 교인들을 네 종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종교 생활을 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종교로 시작해서 종교로 끝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종교 생활을 하는 분들이 계세요. 
하나님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정말 이렇게 진실된 신앙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교회 활동을 하는 거예요. 재밌잖아요. 교회 봉사가 재밌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종교 생활을 하다가, 그냥 종교로 끝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 종교로 출발했어요. 마치 절에 다니듯이 이렇게 정성을 다하고, 
종교로 시작했다가 신앙으로 전환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타종교 시설(절)에 다니는 것처럼, 
그렇게 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진실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3) 근데 어떤 사람은 신앙으로 출발했는데, 종교로 끝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앙을 제대로 가지게 되었는데, 
이게 계속 하다 보니까 바리새인처럼 된 거죠. 종교로 빠지는 겁니다. 

처음에 예수를 믿을 때는, 굉장히 뜨겁고, 기쁘고, 감사하고, 감동이 있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냥 재미가 없는 거예요. 루틴한 그런 주일을 지키고, 
또 십일조도 내고, 봉사도 하고 그랬는데... 그게 무슨 큰 감동이 없어요.
영적 침체를 거듭하다가.. 결국 종교로 빠지는 거예요. 

4) 근데 신앙으로 시작해서 신앙으로 끝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를 잘 믿고, 또 끝까지 믿음 생활,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 

▲여러분 신앙과 종교는 엄격히 구분된다는 거예요. 
'종교'의 특성은, 인간적인 추구와 열심이 강조됩니다. 
인간적 추구예요. 인간적 열심, 자기 의지적인 노력, 열심입니다. 
그래서 인간에서 시작해서 인간으로 끝나는 겁니다. 

그러나 신앙은 달라요. 인간의 열심이 아니고 '하나님의 열심'이 더 중요해요. 
초점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것들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성경을 읽어도 '나 중심적으로' 읽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읽는 것입니다. 
우리가 '리딩 지저스' 하잖아요.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성경을 읽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뭘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어떻게 열심히 일하시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제 그걸 알아가는 게 중요해요. 

자 그런데 우리가 자칫하면, 종교 생활로 전환 되기가 쉽습니다. 
예수님의 시대도, 그 바리새인들, 율법주의자들은 열심이었잖아요. 
하나님을 나름 열심히 섬긴다고 했지만, 사실은 하나님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거든요. 

오히려 남을 판단하고, 비교하고, 경쟁하고... 
예수님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단계까지 가는 거잖아요. 
하나님을 잘 생긴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보내신 뜻을 모르고 
오히려 하나님의 그 뜻과 전혀 반대되는 길을 걸었다는 거죠. 이게 종교에요. 

이게 '인간 중심의 신앙'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없고, 우리의 열심만 남으면... 우리도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죠. 
나 자신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요. 

▲그래서 신앙 생활을 잘못하면, 
신앙 생활도 굳어 지게 되고, 
또 나도 모르게 종교 생활로 이제 바뀌게 됩니다. 

종교는, 특징이 뭐냐면 생명력이 없어요. 죽은 나무와 똑같습니다. 
죽은 나무는 아무리 물을 주어도 자라지 않아요. 

그 말은 뭐냐하면, 성경 공부하러 교회에 많이 다녀도, 그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변화가 안 돼요. 오히려 변화되기 보다는 변질이 되죠. 더 나빠진다는 거죠. 

여러분, 종교는 내용보다, 형식을 더 정교하게 얘기합니다. 
이런 종교적인 기도 생활에는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금요기도회 등 기도회에 참여하는 것도 
열심히 참여하지만, 
이 참여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그런 경험이 되기 보다는, 
이것도 하나의 활동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철야기도회에 열심히 참여한 것이 자기의 커리어가 되고, 자랑이 되고, 
자기 의가 될 수 있는 거죠. '나 철야기도회에 열심히 다녔거든!' 

새벽기도도 마찬가지죠. 새벽기도 열심히 다니면서, 그게 자기 의가 될 수 있어요. 
그게 자기 자랑이 되는 거예요. 자기의 성취, 자기의 만족이 되고 
하나님과 관계 없는 종교 활동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예배 참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 안에서 정말 하나님을 경험하는가?' 하는 거죠. 

정말 하나님을 예배해서, 정말 하나님의 그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 당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이 정말 가슴 깊이 느껴지고... 

그러면서 내 안에 있는 염려와 관심이, 그 예배 안에서 이렇게 다 사라지고 
기쁨이 넘치고, 활력이 넘치고, 
뭔가 세상이 알 수 없는 평안이 내 마음을 지배하는 걸 느끼고... 
원래 예배에는 이게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근데 예배에 참석하는 그런 활동만 있는 거예요. 기계적인 습관,
교회에 오래 다니면, 주일예배도 그냥 기계적인 루틴이 되기 쉬워요. 
그렇게 되면 교회에 올 때 감동이 별로 없어요. 

여러분 주일 날 교회 올 때, 막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요?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 살아있는 나무는, 변화가 일어나는 거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변화가 일어나잖아요. 

여러분 제가 이번 주간에도 경주 수양관에 있었는데, 
나무들이 막 자라고... 잎사귀가 막 푸르고, 신록을 뽐내며... 이게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꽃이 막 피기도 하고, 또 꽃이 지면서 열매가 맺히기도 하고...
살아있는 나무에는 생명 활동이 있는 거죠. 생명! 

여러분, 살아있는 신앙은 생명력이 있는 거예요. 
그 안에 생명이 부여되는 거예요. 

여러분, 뭐 아무리 커도, 생명이 없는 것과, 생명이 있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예요. 
전봇대.. 크지만 생명이 없어요. 물을 아무리 줘도 안 돼요. 
아무런 변화가 없어요.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썩어요. 

근데 아주 작은 조그만한 풀이라도, 생명이 있으면 그게 굉장한 거예요. 
여러분, 수십 년 교회를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진짜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심겨지는 것, 예수님을 진짜 만나는 것!
그건 달라요.

저는 목회를 해보니까, 그게 분명히 보여요. 
신앙생활 시작한지 1년 밖에 안 됐는데,
진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들어가고, 말씀이 들어가니까, 
영이 본 어겐 했잖아요. 

니고데모는 그걸 몰랐어요. '다시 태어난다'는 개념이 뭔지를 몰라요.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어머니 배에 다시 들어가겠나?'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영의 눈이 안 뜨이니까 그런 거잖아요. 그러니까 본 어겐이 안 된 거예요. 
생명이 출발이 안 된 거예요. 예수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거죠. 

그 생명에 들어간 사람, 본 어겐한 사람은 달라요.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거죠. 

근데 아무리 겉모습은 잘 갖추고 있어도,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은 희망이 없어요. 
생명을 가진 사람은, 예배를 드리면 그 안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이 귀에 들리게 되고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되고요, 
영안이 열려지는 경험을 하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강을 경험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생명을 가진 사람은, 말씀이 들어가면, 변화가 일어나요. 
말씀이 뭡니까? 생명 이거든요. 
이 말씀이 생명의 에너지예요.
그래서 말씀을 받으면 살아나는 겁니다. 

교회 올 때는 풀이 팍 주고 있는데, 말씀을 받으면 활력이 생겨요. 
여러분, 설교자의 기쁨이 뭐냐면, 여러분 그런 거 있잖아요. 

화초에도 물뿌리개로 물을 주고 있으면, 
풀이 죽어 있던 나무들이 확 살아나는 것을 보잖아요. 

주일 날에 제가 말씀을 전할 때, 그건 물뿌리개로 물을 뿌리는 것과 똑같아요.
그러면 어떤 교인이 처음에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다가,  *반쯤 감은 눈
설교를 들으면서, 막 눈빛이 점점 살아나는 거예요. 생동감이 있는 거예요. 
막 살아나는 거예요. 

여러분, 기도를 해도 마찬가지요. 
기도하기 전에는 다 죽어가던 사람이, 기도하는 가운데 살아나는 거예요. 

여러분, 철야할 때 그런 경험을 하잖아요.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내 영이 힘을 얻는 겁니다. 
세상을 살아갈 힘이 생기는 거죠. 

여러분, 예수님 믿는 사람이 무슨 힘으로 삽니까? 
세상에 뭐 돈으로 삽니까? 돈이나 이런 것들은,
곗돈 탄 날은 좀 힘이 있겠지만, 곗돈은 늘 타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분, 이 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루가 달라요. 깊어지는 겁니다. 
절대 그냥 이렇게 지루하지 않아요. 계속 변화가 일어나는데, 
진리가 우리를 생명 가운데로 이끌기 때문에,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새 힘을 주신다는 거죠.

이 새 힘은,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힘이에요. 
새 힘을 주신다는 거예요. 

소년이라도 자빠지고, 장정이라도 넘어지는데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주십니다. 
독수리가 하늘을 솟아오르는 것 같은 새 힘을 주십니다. 
 
말씀은 우리 영혼에 만족을 주십니다. 그 말씀은 능력이 되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을 그냥 그저 이론적으로, 학문적으로, 신학적으로만 자꾸 익히면서 
생명력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신학 교수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맨날 연구하는데, 그냥 연구의 대상이요 학문의 대상이지, 
그게 내 삶에 실제적으로 내 영혼을 살리는 말씀으로 경험 되지 않는 거에요.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건 분류를 하면 종교인이죠.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열왕기서에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 정상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팔백오십 명과 대결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 대결 장면을 보면,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굉장히 요란한 거죠.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 그들의 입은 옷도 얼마나 휘황찬란하겠습니까? 
무당을 보면 옷이 요란하죠. 그들도 비슷했을 거예요. 종교니까요.

그리고 형형색색의 깃발들을 막 나부끼게 했을 거예요.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깃발을 펄럭이면서
갈멜산 위에 도열해 있습니다. 

그리고 의식이 또 얼마나 화려했을런지요.
제단에서 치르는 의식들이 상당히 복잡했을 거예요. 
그들이 막 소리를 지르면서 펄쩍펄쩍 뛰고, 막 요란했을 거예요. 
하늘에서 곧 뭔가 떨어질 것 같아요. 

근데 시간이 흐르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잖아요. 
그러자 마침내 그들은 막 자기 가슴을 쥐어 뜯기 시작합니다. 
심지어는 칼과 창으로 자신들의 몸을 상하게 하고, 피를 흘리는 거예요.
 
왕상18: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이게 여러분, 이방 종교의 실상이에요. 
화려해요. 열정적이에요. 근데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엘리야가 그들에게 외치잖아요. '너희들의 신이 묵상하고 있는지, 
어디 외출했는지, 아니면 잠을 자고 있어서 깨워야 되나 보다'  왕상18:27

'도대체 너희들의 신들은 어디 갔기에, 너희들이 그렇게 난리를 피워도 응답이 없냐?'

뭘 의미합니까? 그 실상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하늘에 닿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종교의 허상을 보여주는 거예요. 종교의 허상!  

엘리야의 시간이 왔습니다. 엘리야는 간단해요., 의식, 격식 이런 게 없어요. 
그냥 간단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겁니다. '불을 내려 주소서!' 

그러니까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고, 제단의 제물들을 완전히 다 불로 태우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초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에게 모든 게 달려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곳에는 복잡하지 않아요.  

갈멜산에서의 싸움은 850 대 1이잖아요. 
숫자적으로는 싸움이 안 되는 겁니다. 

근데 여러분 숫자가 아무리 많으면 뭐 하겠습니까? 
여기에서 싸움은, '진짜냐 가짜냐?' 
'신앙이냐, 종교냐?' 이 싸움이죠.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뭐 규모나, 예산이나, 건물이나, 뭐 사람 숫자나... 
그게 다 의미 없는 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열심인가?' 그게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우리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느냐? 하는 거죠.

여러분, 신앙의 대상이 누구신가요? 우리의 싸움은 언제나 여기에 있습니다. 
초점은 언제나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그 분은 지금 이곳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고,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한 거예요. 

변화산상에서의 예수님이 산 아래로 내려 오셨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아홉 명의 제자들은 그 귀신 들린 아이를 두고, 쩔쩔 매고 있는 거예요. 
한 마디로 무기력한 모습입니다. 

여러분 신자에게는 뭐가 있어야 돼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영권이라는 거예요. 하늘의 권세!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권세! 

직분을 가져도 영권 Spiritual power and authority 이 없으면 안 돼요.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라고 존중하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여러분 중요한 것은 영적 권세, 성령의 기름부으심 입니다. 

여러분, 주일학교 아이들도 
'우리 선생님이 영적인 권세를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를 다 알아요. 
'우리 선생님이 기도 생활 많이 하시는 분인지, 아닌지를' 다 알아요.

선생님이 기도생활 잘 안 하는 게, 뭘로 나타나느냐? 
애들이 떠들어요. 선생님의 가르침을 떠들면서 안 들어요. 

여러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딱 보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요. 

무당도 잘 안다고 그래요. 점쟁이가
'너는 예수 믿는데 왜 여기 왔느냐?' 
깜짝 놀라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귀신들도 알아요. 
내가 예수를 잘 믿고, 능력 있는 신자인지... 귀신들도 안다는 거예요. 

귀신들도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떤다' 그랬어요. 약2:19
귀신도 아무에게나 덤비지 않습니다. 

눅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부활 후에,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에요.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입니다. 

'위로부터 나오는 이 능력'을 우리가 받아야, 
이 땅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로부터' 예요. 위로부터! 
이 말은 뭘까요? 하나님이 주신다는 거예요. 

이 능력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라는 거예요. 
이 능력이 입혀질 때까지 어떻게 하라고요? 
'이 성에 머물라!' 

행1장에서는 뭐라고 표현하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받기 전에는 
꼼짝도 하지 말고 여기에 머물러 있으라' 

행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러면 여러분, 누가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요? 
자신의 한계를 철저히 인정하는 사람, 
자기의 힘을 부정하는 사람,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포기한 사람, 
자기 자신에게는 철저히 실망한 사람, 
인간의 한계를 철저하게 경험한 사람, 
그런 사람이 거기에 머물러 있는 거예요. 
괜히 분주히 돌아다니려고 하지 말고, 이 성에 머물러 있으라는 거죠. 

▲근데 여러분, 제자들이 금방 알아들었어요. 왜 이걸 알아 들었죠? 
이전 같으면 펄떡 뛰어다녔을 겁니다. 

이제는 그 말 뜻을 금방 알았어요. 그들이 숱한 실패를 통해서 얻은 레슨이 
자기들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던 거죠. 

자기들이 얼마나 무기력 하다는 걸 깨달았잖아요. 
얼마나 많이 깨졌어요? 

여러분, 믿음 생활을 해 오면서, 내 힘으로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하다가 
실패해 본 분들이 많을 거예요. 내 힘으로 안 되잖아요.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이 뭐에요? 
슥4:6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력으로도 되지 않고... 
아주 선명해요.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여러분, 우리 눈에 보이는 힘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힘으로 되지 않는다' 
여러분, 이걸 내가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려요.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으로 나가보면 
얼마나 우리를 유혹하는 힘들이 많이 있어요? 
돈이 파워 잖아요. 엄청난 파워 잖아요. 

또 세상의 연줄들, 권력들... 
쌓아놨던 커리어들, 경력들...
그것으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력으로도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아는 게 자꾸 늘어나요. 
근데 아는 게 늘어나면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아는 게 자기 진짜 실력인 줄 아는 거예요.         

그래서 말과 행동이 따로 나을 때가 많아요. 
이론과 실제가 다른데, 말을 하는 걸 들어보면... 대단해요.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 무엇인가 대단한 일을 벌일 것 같아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 말만 요란했지, 무위로 끝나고 말아요.

여러분,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사람들이 싫어 하는가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뭐 특별히 나쁜 짓을 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도덕적으로 비교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불신자들보다 훨씬 낫죠. 

근데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자꾸 그렇게 싫어하죠? 그 이유가 뭔가요? 
여러분, 우리는 좋은 소리를 골라서 다 해요. 

근데 사는 걸 보면, 자기들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거든요. 
믿음의 실체를 보여주지 못 하는 거죠. 

말은 잘하는데 '실력'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고전4:20절에 이런 말씀이 나오죠.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이게 오늘 우리의 신앙에 굉장히 우리가 붙잡아 될 메시지입니다. 
'힘으로 되지 않고, 능력으로 되지 않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무슨 능력? 
하늘의 능력,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이 없으면, 우리의 말은 다 공허한 거예요. 

▲바울은, 말을 좀 어눌하게 했던 것 같아요. 
말에 능하지 못했다고 그래요. 달변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중 앞에 서서 말하는 걸, 잘 못 했어요. 
근데 그에게는 능력이 있었죠. 

여러분, 좋은 설교를 듣고, 좋은 말을 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요. 
말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오늘 시대에 말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근데 하나님의 나라는 언변이 아니라는 거죠.

하늘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세상을 흔들어 놓는 능력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능력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가지는 능력은 다른 능력이에요. 하늘의 능력이라는 거죠.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거예요. 
습득해서 얻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에요. 

여러분, 세상의 능력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능력과 경쟁하지도 마세요. 
오늘 우리는, 하늘의 능력이 필요한 거예요. 

여러분, 오늘 날 패배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실패를 당연하게 여기고, 
또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만, 그게 잘 안 됩니다' 라면서, 스스로 포기해 버립니다. 

'말씀은 말씀이고, 내 삶은 내 삶이고...'
'말씀 그대로 사는 것은 안 된다'라고 하는... 그런 결론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예요. 
성경 공부 할 때, 제가 자주 자주 그런 경험을 했어요.
성경 공부 할 때는 너무 은혜로웠어요. 아멘 하고, 메모도 하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2부 간식 타임에
'근데 목사님, 아까 말씀은 참 맞는 말인데, 
직장 생활 해 보니까 그대로 살면, 목사님... 우리는 굶어 죽습니다'
'목사님은 사회 생활을 안 해 보셨죠?' 막 그럽니다. 

'세상이 만만치 않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교회 안에만 계시니까 우리 사정을 모르시잖아요...' 

그렇지만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타협하면 안 되는 거예요. 
힘들기 때문에 이 말씀을 우리가 
우리 식으로 그냥 재해석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그게 진리예요. 
힘들지만 그것을 붙들어 내는 게, 거기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에 힘든 게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에게 능력이 부족한 게 문제예요.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하늘의 능력입니다. 
힘들기 때문에, 여러분 능력이 필요한 거예요. 

위로부터 임하는 그 능력을, 기다리라는 거예요. 
약속하신 능력을 기다리라는 거예요. 왜 약속하셨죠?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하늘의 능력이 필요한 거예요.

현실 상황에 우리가 타협하지 않고, 
이 말씀을 그대로 진리로 믿고, 
이 말씀이 승리할 거를 믿고 살아가게 만드는 내적인 힘이 
위로부터 나오는 능력인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말씀을 깨우치는 게 중요해요. 
성령이 임하실 때, 우리에게 능력을 부어주시고 
그 능력이 부어질 때, 
하나님의 말씀이 단순히 머리로만 깨쳐지는 게 아니고,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역사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믿고 살아갈 때, 
현장은 녹록하지 않지만, 내가 주눅 들지 않는 이유는 
성령이 그 말씀을 통하여, 나에게 계속적으로 용기를 주시고, 
담대하게 하시고, 물러서지 않게 하시고,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주눅 들지 않게 하시는 그 능력이 많은 거예요.         

여러분, 말씀이 그냥 지식으로만 있는 게 아니라 
그 말씀이 내 안에서는 역사하는 거예요. 

'너희는 이 말씀에 생명을 걸어라'하며 용기를 주시는 거예요. 

성령이 임하시니까, 그냥 머리로 이론적으로만 이해하고 그친 게 아니라 
실제 삶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그래서 포탄처럼 그냥 뚫고 나가게 하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철야에 우리가 와서 은혜를 받을 때 
그런 능력이 나타나는 거예요. 
위로부터 능력이 임하고... 

세상에 살 때는 내가 쪼그라 들고, 내가 그냥 토끼 간 같이 작아졌는데, 
오늘 여기 와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니까, 
위로부터 능력이 임하셔서, 
내 내적인 믿음이 강화되고, 사자 같은 심장을 가지게 되고, 
두려워했던 모든 것들이 떠나가고, 
다시 한번 말씀의 확신을 가지고, 내적인 충만함을 경험하는 거예요. 

여러분, 사역을 할 때도, 성령이 위로부터 임하셔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면, 
그때 열매가 맺히는 거예요. 

모든 하는 게 어렵지만, 능력을 받으면, 그걸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데, 
그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가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결과를 얻게 하시는 것이죠. 

여러분, 이 능력을 오늘 이 밤에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의 영이 임하시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받기까지는 '유해라, 머물러라' 기도해라는 것이죠. 
'너가 나가 봤자 다 깨진다. 안 된다'

여러분, 이 금요철야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이렇게 다같이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이러는 가운데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내 한 사람이 열 사람의 몫을 감당하고, 
백 명의 몫을 감당하고, 천 명의 몫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숫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능력이 임하면, 큰 일도 쉽게 해요. 
큰 일이, 큰 일 같이 보이지가 않아요. 

반대로 능력이 임하지 않으면, 조그만한 일도 크게 보여요. 
힘겹게 여겨져서 도저히 내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요.    

여러분 자동차도 배기량이 높은 그런 자동차들은 
오르막 길도, 엔진 소리도 안 내고 그냥 올라가 버려요. 

그러나 배기량이 작은 거는, 그냥 낑낑낑 하는 거죠. 가다가 막 엔진 꺼지거나,
엔진에서 굉음이 나죠.

여러분 오늘날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예요. 
하늘의 권능이 임한 사람, 성령의 불이 붙은 사람 몇 사람이 있으면 돼요.

불이 없으면, 사람들이 많이 모일수록 시끄러워요. 
내가 불을 받고 권능이 임하면, 별 말이 없어요. (엔진 소리가 요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를 일으키는 일도 간단합니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안 돼요. 

조직을 뭐 잘 짜야 되고, 체계를 갖춰야 되고, 
뭐 건물과 주차장이 완비 돼야 되고, 뭐 교통이 좋아야 되고... 
게다가 돈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되고.. 전문가들이 각 영역에 포진돼 있어야 되고...
다 쓸데 없는 얘기예요. 

주의 영이 임하셔야 돼요
사도행전의 교회를 보세요. 아무것도 없어요. 
건물이 있어요, 어디 주차장에 있어요? 
근데 하루에 삼천 명이 주께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 
5천명이 돌아오는 역사... 

그건 누가 하신 거예요? 
주의 영이 임하셨기 때문인 거예요. 

사도행전의 오순절 사건이 딴 게 아니에요. 
그 백이십 명에게 불이 임한 거예요. 하늘의 영권이, 권능이 임한 것입니다. 
영적 권세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매년 8월에는, 우리가 '영권 회복 집회'을 하잖아요. 
그래서 새벽에 4시 반부터 오는 거잖아요.
그러면 집에서 3시에 나와야 되고, 더 일찍 나오시는 분도 있어요.

뭘 얻기 위해서 오는 거예요? 영권입니다!

초대교회 마가의 다락방에 백이십 명입니다. 소수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별 볼일 없는 사람들, 아무도 그들에게 주목할 만한 것들이 없었습니다. 

그냥 쫓기는 인생들이고, 낭패를 당한 사람들이고, 
실패했던 사람들이고, 세상적으로 보면 자랑할 게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정말 그냥 밑바닥에 살던 그런 사람들이에요. 
능력이 있어 보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어요....  P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