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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복음, 반쪽짜리 복음

LNCK 2024. 12. 6. 11:35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믿음론 (순종)

 

은혜의 복음, 반쪽짜리 복음      고후5:21       여러 설교 정리

 

▲책이나 편지는 끝까지 읽어야 합니다!

여러분,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런 책은 아주 깁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기가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끝까지 다 읽지 않고서, 그 책 얘기를 누구에게 해 줄 수 없습니다.

결말을 모르기 때문이죠.

 

영화 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 영화 얘기를 해 주려면, 그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나서,

결말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다 보고나서... 비로소 얘기를 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종종 그랬던 것 같습니다.

로마서를 끝까지 다 읽지 않고서, 로마서 얘기를 사람들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1~8장까지는 복음의 원리가,

12~15장까지는 삶의 실천(적용)이 나오는데,

이 둘을 같이 얘기해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렇게 합니다.

로마서 앞에 나오는 ‘복음의 원리’만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뒤에 나오는 ‘삶의 적용’은 별로 강조하지 않습니다.

 

▲일례를 들면,

롬4:5~6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요3:16절, 요5:24절 당연히 포함하고요. 그 외에도 수 십~ 수 백 구절들이 나오죠.

 

이런 복음의 원리를 상세하게 잘 설명하는 설교는 아래 주1)을 보세요.

 

그런데 이런 설교는,

로마서가 한 편의 ‘편지’인데,

편지의 서두만 읽고서, 끝내버리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편지를 후반부도 읽어야, 또는 설명해야

온전히 그 편지를 읽고 설명한 게 되죠.

 

로마서 편지의 후반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롬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복음서도 마찬가지고, 복음서는 원리삶이 엉켜진 털실처럼 뒤얽혀 있습니다.

사도바울 서신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반부는 복음의 원리후반부는 삶의 적용 또는 실천이 동시에 나옵니다.

전도자는, 이 둘을 한꺼번에 가르쳐야 합니다.

동전의 앞 면만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그건 온전한 복음이 아닙니다.

 

▲그런데 설교를 너무 쪼개서, 분석적으로 하다보면,

항상 ‘복음의 원리’만 가르치다가 끝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가, 듣는 회중이나

복음이라 그러면.. ‘원리’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삶의 실천이나 적용은.. ‘복음이 아닌 줄로 알고 있습니다.

왜냐면, 맨날 ‘복음’에 대해서 배울 때, ‘원리’ 중심으로만 배우기 때문입니다.

 

서신으로 치면, 전반부만 가르치는 것입니다.

후반부는 아예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서신이 길어서 그런지, 후반부 삶의 적용 복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행15장에, 예루살렘 공의회로 모여서 결정한 내용을 보더라도,

복음의 원리와 더불어 ‘삶의 적용’도 함께 가결했습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은 (변화된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천국 복음을 전하실 때, ‘복음의 원리’만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의 원리를 믿는 사람은 이렇게 산다’ 하시면서,

삶의 실천, 적용도 많이 가르치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이 ‘행위복음’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고,

진실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살게 되어 있다’는 당위성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를 보면 안다’고 하신 거죠. 마7:20

 

에베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엡1~3장은, 복음의 원리를 설명하는 반면,

엡4~6장은, 삶의 실천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엡1~3장만 복음이 아니라

엡1~6장 전부가 다 복음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원리'만 증거하고 설교를 마쳐서는 안 됩니다.

40분 설교에 '원리'를 39분 증거했다 하더라도,

'삶의 적용'을 1분만이라도 같이 얘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온전한 복음'이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본의 아니게 '값싼 은혜'로 빠져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청중들이 속으로 설교와 말씀에, 자기 마음으로 다 동의하고 나서

'아~ 나는 구원받았구나' 하고 여깁니다.

삶은 하나도 변화된 게 없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과거의 저를 포함해서 우리는

복음을 전한다고 할 때,

항상 ‘복음의 원리’ 위주로 전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삶의 적용’은, 복음이 아니라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해서 어려서부터 듣고 배운 것이

‘원리’만 복음이라고.. 누군가에게 그렇게 배웠고,

그래서 당연히 그런 줄 알고, 그렇게 또한 가르쳤습니다.

 

물론 우리가 짧은 30분 내외의 시간 안에,

‘복음의 원리와 적용’을, 둘 다 언급하기는 시간이 촉박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설교자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온전한 복음'의 기본 전제를 깔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는 ‘원리’를 설명하더라도, 다음 주는 ‘적용’을 설명해야 하고,

이번 주는 ‘원리’를 98%의 시간을 할애해서 증거하더라도,

이게 전부가 아니고 ‘삶의 적용’이 또 남아있음을, 반드시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요!’

 

로마서 전반부에 ‘복음의 원리’가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지만,

후반부에는 ‘삶의 원리’가 나온다는 것을,

로마서를 순서대로 강해설교 할 때, 중간에 슬쩍슬쩍 끼워 넣어서, 전체 모습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땀 흘려 전하는 ‘복음의 원리’가

자칫 잘못하면 ‘온전하지 못한 반쪽짜리 복음’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이런 점을 21세기에 가장 많이 설파한 분이 미국의 폴 워셔 목사입니다.

자신의 침례교단 교회와 성도들 안에,

너무나 많은 명목상의 무리들이 있음을 그는 안타까워하면서,

진실로 복음을 믿은 사람들의 삶의 열매’를, 그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복음의 원리와 더불어, 삶의 실천까지도 함께 증거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성령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조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맹인 코끼리 만지기’식의 복음을 전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최근 로잔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되었는데,

거기서 제일 큰 화두가 ‘온전한 복음, 온전한 선교’였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복음의 원리’만 전해서는,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복음의 원리’는 놀라운 것입니다. 정말 굿뉴스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어야 하고,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하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그러나 그 복음이 처음에는 ‘원리’만 증거했다 하더라도,

설교자가 복음 전체의 그림은 '삶의 적용, 실천'까지 같이 그리고 있기 때문에, 

결국 지향점은 ‘온전한 복음’ 방향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거죠! Whole Gospel

 

...................................................

 

주1) 복음의 원리를 잘 설명한 설교의 예       ↔삶의 적용

 

(과거에 제가 이런 식으로 설교했습니다. 아주 내용이 충실합니다만...)

 

예수님은 용서하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눅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예수님의 십자가는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대신 죄값을 지불해 주는 것입니다.

 

이 '죄값을 지불해 준다'는 말이, '다 이루었다'는 말이예요.

요19:30절에 '다 이루었다 - 테텔레스타이' 라고 말씀하셨죠.

 

'다 지불했다' 라는 뜻이고, 완료형입니다.

'이미 다 값을 치렀다'는 거죠.

예수님이 우리 죄의 값을, 완전히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미국에 오니까, 집을 살 때도, 차를 살 때도, 다 할부로 구입하더라고요.

그 할부금을 다 갚으면 "Paid in Full" 도장이 찍혀요.

그게 '테텔레스타이' 입니다. 한국어로 '완불'이죠.

 

우리가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값을 지불해야 되요.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렇게 말씀합니다. 롬6:23

 

자,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반드시 지불해야 됩니다.

우리가 빚을 치면 빛을 갚아야 돼요. 빚은 무서운 겁니다.

 

빚을 치는 순간, 채권자의 노예가 되는 거예요.

오늘날에도 신체포기각서도 쓰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빚을 다 갚아주신 거예요. 예수님의 보혈로!

 

그래서 사53:6절에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놀라운 것은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이게 바로 '대속'입니다. atonement

 

교회 처음 나온 분들이, 듣기에 의아해 하는 단어죠. 대속!

'대신 돈을 냈다, 대신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의미로 '속량'이란 말이 있습니다. *Ransom, Redeem

아프간 사람들이 납치한 사람들을 풀어 주려고 할 때 요구하는 게 랜섬(몸값) 이에요.

'속량'은 노예의 몸값을 대신 지불 하고, 자유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속량을 받게 되는 거죠.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골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자 보세요. 저와 여러분의 무거운 죄 목록이 다 기록된 책이 있다고 합시다.

이걸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넘기셨어요. 그 죄 값을 대신 다 치르도록 담당시키셨어요.

그러면 우린 죄가 없어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가져가신 거예요.

 

자, 죄를 지은 사람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돼요. 죄값을 치러야 돼요.

정죄를 받아야 돼요. 그런데 우리가 죄가 없는 거예요.

예수님께 나 대신 심판과 저주와 정죄를 받으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죄가 없기 때문에, 정죄도, 심판도, 저주도 없는 거예요.

이게 복음이죠.

 

왜냐면 한 가지 죄에 대해서, 두 번 정죄하거나, 두 번 심판하지 않아요.

죄는 한 번의 정죄와 심판으로 끝나는 거죠. *일사부재리의 원칙

 

그과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대신 형벌과 심판과 저주를 받으시면, 그것으로 끝나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죄가 없다' 선언하시고, 정죄 하지 않으세요.

'무죄다!' 라고 선언하시는 거예요. 이게 기독교의 복음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대신 죄값을 지불하신 거예요. 우리 빚을 대신 갚아 준 거예요.

이 말은 뭐 의미할까요? 이게 중요한 거예요.

잘 들으셔야 해요. 이건 정말 중요한 얘기인데요.

 

예수님께서 우리 죄값을 대신 지불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은,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가 할 일도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한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는 죄를 지은 거 밖에 없어요.

우리가 할 일도 없어요. 완전히 전적으로 하나님께 하신 거고,

전적으로 하나님이 값을 지불하신 겁니다.

 

이게 이제 많은 사람들이, 특별히 지성인들이 여기서 고민하는 거예요.

'아니, 나도 뭔가를 좀 해야 되지 않겠냐'는 거예요.

이게 이제 인간이 가진 가장 무서운 우상이에요. *공로주의

교회에서 이런 우상을 숭배하는 분들이, 교회 안에도 많아요.

 

내가 뭔가 하겠다는 거예요. 내가 뭔가 했다는 거죠.

그러니까 자기 의를 자랑하는 거죠. 그래서 그렇지 하지 못 하는 남을 정죄하는 거죠.

이게 정말 위험한 거예요.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철저하게 선물이에요. 선물!

그래서 엡2:8~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선물은, 주시는 분이 자원해서, 대신 값을 지불하고 그냥 주시는 거예요.

받는 사람은 감사함으로 받는 거죠. 아무 할 일이 없어요.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신부로 삼아주셨습니다!

이건 놀라운 거죠.

첫 번째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온 갈비뼈로, 신부를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옆구리에 창에 찔려서, 거기서 신부를 태어나게 하신 거죠.

 

예수님은 우리 죄악을 모두 가져가신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전수해 주신 겁니다.

우리를 신부로 삼아 주신 거예요.

 

마치 호세아가 창기 고멜을 신부로 삼은 것처럼

예수님은 종이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겁니다.

하나님의 상속자로 삼으신 겁니다. 가난한 우리를 부요케 하신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사람들이 정말 부유한 사람들이죠.

왜냐면 하나님, 모든 만물을 충만히 하신 하나님을 모셨기 때문이에요. 고후8:9

 

 

이렇게 설교를 끝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원리로서의 복음을 아주 잘 심도 있게 설명했습니다만,

아무런 삶의 적용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로마서나 다른 서신을 쓸 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