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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만 되었다 막14:32-42, 사55:6 2013.03.24.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막14:41
◑기도에도 타이밍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끔 길을 가다가 장사꾼들이 물건을 마지막 떨이, ‘땡처리’를 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이때 장사꾼들이 “날이면 날마다 있는 일이 아닙니다.” 라고 말합니다.
날이면 날마다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은, 장사꾼들이 손님을 끌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이 철학적인 심오한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지만
세상을 살면서 한번 쯤은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말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기회가 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은 기회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뜻은 깊이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4
그러나 이제는 기도할 때가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시간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 본문에 예수님이
기도하는 기회도.. 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고, 그걸 놓치면 후회합니다
또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이지만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에도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베풀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고 선한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 잘 해주라는 것입니다.
늘 그런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도와줄 만한 것을 가지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베풀라는 것입니다.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때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돈도 그렇습니다. 내가 가진 돈 영원히 내 것이다,
언제든지 내가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돈도 없어질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손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경험을 하기도 하고 주위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예전에는 돈을 많이 가졌지만, 지금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재벌들도 영원한 재벌이 아닙니다.
우리 생전에 대우, 기아가 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주어야지,
그것을 잃고 나면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지 못합니다.
▲또 내가 영원히 그 사람 옆에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면 안 됩니다.
보고 싶어도 못 보고,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하늘이 정한 이치입니다. 늘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매일 만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또 봐야 하는 것이 싫을 수도 있지만
아예 보지 못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나지 못할 때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내 곁에 있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잘 대해 주어야 합니다.
지금의 만남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우는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수없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지난 날 우리 삶속에 찾아왔던 좋은 일을 할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기회,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만날 수 있었던 기회...
그런데 우리들에게 찾아왔던 수많은 기회들을 놓침으로 말미암아
지금 후회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때 그 일을 꼭 했어야 하는데.. 기회를 놓쳐서 그 기회를 놓침으로
인생의 삶이 전혀 달라져 후회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이렇게 크고 작은 후회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기회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늘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훌쩍 떠나는 것입니다.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이 기회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기회를 놓치고 나서야
‘내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하며 자책하며 후회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기회는 융통성이 없습니다. 비정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 번 우리에게 주어졌던 기회는 지나면 끝입니다. 절대로 되돌아서 오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런 기회를 놓쳤으니, 다시 기회를 주겠다고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한번 지나간 기회는 하나님도 되돌리지 못하십니다.
내가 한번 기회를 놓치고 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그 기회를 다시 되돌려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기회를 놓치면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젊었을 때 지나간 기회를 다시 되돌려주지 못하십니다.
◑본문 설명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14장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실 때
예수님께서는 혼자 가지 않으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생각해보면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철부지 제자들을 데리고 가신 것일까요?
데리고 가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을 제자들을 왜 데리고 가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도 죽음을 앞에 두고 너무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33절 말씀에 보면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라고 했습니다.
쉬운 성경에는 ‘매우 근심하며 괴로워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셨지만 매우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절박한 심정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철없는 제자들이라도 의지해볼까 해서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데려간 것입니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고난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이 고난의 때에 너희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며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간절한 부탁을 하시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심각하게 기도하셨던지 눅22:44절을 보면
‘머리에서 땀이 떨어지는데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심각한 기도를 하신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제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이 깨어있으라고 하신 부탁도 아랑곳없이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제자들을 세 번이나 깨우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답답하고 절박하셨으면
잠자는 제자들을 세 번이나 깨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잠에 곯아떨어지고, 그 소중한 시간을 흘러서
예수님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겟세마네 동산에 들이닥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 앞에 죽음의 고난이 다가온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막14:41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아니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지나가고 만 것입니다.
이제 이것으로 아무리 기도한다고 해도, 결과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기도는 아무 때나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고 내일 못하면 모레 하고,
금년에 못하면 내년에 하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하지 못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필요가 없는 때, 기도를 해보아야 소용이 없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기도해야 필요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기도도 필요한 때에 해야지 아무 때나 생각나는 때에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해야 소용이 없고 하나마나 한 상황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라고 말할 때가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귀찮게 기도하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끝이다, 이제는 그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막14:41참조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저는 지난 주에 이 말씀으로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그만 되었다’는 이 말씀이 제 마음속에 깊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예배 시간에 이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처음 듣는 말처럼 쇠망치로 뒷동수를 얻어맞는 충격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되었다. 기도 안 해도 된다,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 기회는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를 하는 내내 ‘(이제) 그만 되었다는’ 말씀이 머릿속에 빙빙 돌았습니다. 막14:41
‘It is enough. 그만 하면 넉넉하다’
“인목사 이제는 그만 되었다.”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니다,
봉사가 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도도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흔들어 깨우시고 재촉하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제는 되었다, 이제는 해도 소용이 없다,
기회는 지나가고 해도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마무리하고 끝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만 되었다.’
저는 지난 주일만이 아니라 지난 주 내내 주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정말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두려운 말씀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몇 년 전부터 이 교회에서 조기은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정년으로는 4년쯤 남았지만 목사를 오래했고 너무 지쳤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제가 너무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또 뿐만 아니라 제가 갈릴리교회를 세운지 27년이 되어
이제 제가 갈릴리교회에서 할 일은 거의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더 해야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3년 전부터 당회에서 장로님들에게 제 은퇴를 준비하라고 말씀드렸고
지난 해 후임자를 공모했습니다. 40여 명이 공모하여
그동안 저와 장로님들이 이 분들의 심사를 해서 두 사람으로 압축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장로님들만이 아니라 교인 대표의 청빙위원회를 조직해서
이 두 분 중에 어떤 분을 우리 교회의 담임목사로 모실 것인가
선택을 하려는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4, 5, 6월 석 달 동안 기도하면서 저를 대신해서 이 교회를 맡을 담임 목사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적어도 7월쯤에는 이 교회의 담임목사가 부임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온 교회가 우리 교회에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좋은 후임담임목사를 보내주시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제는 예배시간에도 공개적으로 기도하시고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에도 기도하시고,
중보적기도사역모임에서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7월쯤 새로운 후임목사가 오시면 저는 이 후임목사와 함께 일년반 동안
금년과 내년에 걸쳐 동역하면서 우리 교회의 여러 가지 일을 하나씩 하나씩
차곡차곡 물려주려고 합니다.
지금 계획으로는 내년 2014년 말쯤에 법적으로 은퇴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할 일입니다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 3개월 후에는 저를 이어서 이 교회를 담임할 담임목사가 부임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제가 여러분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교회에서 설교할 수 있는 기회도 얼마 남지 않았고,
여러분들이 제 설교를 듣는 일도, 성경 말씀을 배우는 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마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제는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을 때
제자들은 정신이 번쩍 났을 것입니다.
설마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하지 못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도할 때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기도하지 않아도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정신을 놓고 잠을 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제는 되었다,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도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이럴 때가 아니었구나.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하는 때였구나.
이제는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할 수 없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하였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만 되었다는 것은 절망의 선언입니다. 사람이 사람들에게 욕도 하고
흔들어 깨우는 것은 희망이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그 시기가 지나면 포기합니다.
그만 되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가서 진찰도 하고 여러 가지 검사도 받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는 말이 수술해 보자는 말입니다.
그러나 집에 가서 편히 쉬고 먹고 싶은 것 먹으라고 하면,
이제는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만 되었다’고 하시면, 우리에게 포기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기도하는 것 그만 되었다, 봉사하는 것 그만 되었다는 말은
정말 무섭고 두렵고 절망적인 말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제자들에게 그만 되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 더 이상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시기가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학교 다닐 때는 공부하지 않다가
나중에 세월이 다 지난 후에 공부해보겠다고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3년 동안이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 깨어 있으라고 했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절망적인 말씀을 예수님에게 듣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그 옛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이제는 그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아직도 희망이 있다, 기도하기를 기대한다, 봉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씀하실지,
아니면 ‘이제는 그만 되었다. 나는 너에게 다시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실지 생각해 보십시다.
혹시 예수님께서 그 옛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것과 같은 말을 나에게 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교회에서 봉사하라고 권면하고 깨어 기도하라고 할 때가 좋은 때입니다.
이제는 그만 되었으니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봉사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는 말이 무서운 말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있는 것이 아니고
장이면 장마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언제든지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 이사야 55장 6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는 말은
찾아도 만날 수 없을 때가 있고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을 때가 있을 것이란 말입니다.
예레미야 14:12절을 보면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금식하면서 발버둥치면서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듣지 않을 때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기회를 놓친 제자들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을 배반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당하실 때 그 고난에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운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기도할 수 있었던 기회를 포기한 결과입니다.
기회는 포기하면, 꼭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이제는 그만 되었다’ 이 말씀을 되뇌기 바랍니다.
‘이제 그만 되었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이런 두려운 말씀을 듣지 않도록 늘 깨어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