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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사람 이원상 목사

LNCK 2024. 12. 7. 19:35

▣ 잊혀지지 않는 사람 이원상 목사

 

이원상 목사님은 목회일념의 전형이라 할만큼 와싱톤중앙장로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을 떠나서는 달리 표현할 길 없는 충성된 종이었다.

 

그의 설교는 주해를 중심한 강해로 일관되어 혹 비평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예화없는 말씀중심의 고집스런 강론은 은퇴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이목사님과 함께 신앙의 연륜을 쌓아간 성도들은

그의 설교에 푹빠져서 신세대 후임목사가 한동안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가 1977년부터 2003년까지 26년간 와싱톤중앙장로교회를 담임하며

미주를 대표하는 대형교회이자 건강한 교회로 성장시킨 이면에는

이러한 목양설교적 태도를 변함없이 유지한데 있었다.

 

그는 만주출생으로 경북 경산과 대구에서 청년기를 보내면서

대학(계명대)과 대학원(경북대)에서 철학을 전공하였고

한때 경산의 메노나이트계통의 미션스쿨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미국에 오기전 총신(합동)에 시험을 치뤄 합격했으나

달라스 신학교에 유학오게 되어 늘 한국신학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고

총신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분이다.

 

그래서인지 총신대학 합창단의 미주공연 때는 늘 앞장서 도움을 주었다.

그의 평소 취미라면 시를 쓰는 것으로 한권의 시집 “ 내 양을 먹이라”를 발간하였다.

 

시집출판 기념예배에 백순 장로가 이 목사님은 이제 “이 시인”이라고 해서

만장의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를 추억하는 워싱턴 교계의 원로들은 한결같이 인내의 종이었다고 평한다.

 

그가 목회하는 동안에는 별다른 잡음 없이, 평안하게 교회가 성장했던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회성장에 몰두하다보니 교계에 대한 돌봄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어서

특히 내가 많이 불편함을 토로했다.

 

그러던 중 워싱턴 교협이 워싱턴 청소년재단을 설립하게 되면서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게 되어서 목사님에 대한 편견이 많이 수정되었고

재단의 초대 이사장까지 역임하게 되었다.

 

그 이후 많은 만남이 이루어져 그 인격의 고매함과 진실됨에 감탄하였다.

지금은 없어진 123도로 변에 “마르코 폴로”에서 늘 야채중심의 뷔페를 권하셨다.

그분의 사모님은 약사로서, 내 처 숙부 김상열 장로의 제자이다.

 

평생 목회일념의 목사님곁에서 그림자처럼 내조하시므로

오늘날의 중앙장로교회로 성장시키는데 큰 공을 세우신 분이다.

목사님은 은퇴후에도 영국 웨일스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할만큼 학구파였으며

시드SEED 선교회를 설립 세계선교회 꿈을 펼쳐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모범적 선교회가 되고 있다.

 

한편 프레션 기도운동에도 앞장서 워싱턴의 기도운동의 불씨를 살렸다.

2016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벌써 5년이나 지났다.

그는 평생 교회외는 다른 일에 매달리지 않는 교회인이었다.

 

글쓴이 : 정인량 목사,

출처 https://www.manna24.com/single-post/2024/05/06/column-pastor-inyangchung-unforgettable-people-kcpc-pastor-wonsang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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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상 와싱톤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79세)가 *1937~2016

2015년 12월 5일 새벽 5시 27분 소천했다.

 

고 이원상 목사는 암세포 전이로 항암치료를 받아오던 중 지난 11월 28일 호흡곤란으로

워싱턴 DC 소재 조지타운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은 이후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와 신장 투석 치료 등을 받아왔다.

 

고 이원상 목사는 2015년 8월 식도암 3기 판정을 받고 뉴욕의 슬론 케더링 암센터에서

방사선 치료와 키모테라피를 받아오다 올해 1월 암세포가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는 판명을 받았었다.

 

그러나 지난 8월 13일 올네이션스교회에서 열린 ‘회개와 회복’을 주제로 한 ‘Arise 2016’

기도성회에서 이 목사는 암세포가 전이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는 하나님이 더 기도하라는 것이라고 직접 밝혔었다.

 

 

이후 암 투병과 함께 SEED선교회, 프레션 등 각종 기도모임과 행사에 참여해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앞장 설 것을 설파했다.

 

고 이원상 목사는 설교와 삶이 일치하는 기도하는 종으로 불리며

워싱턴 교계는 물론 한인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아온 목회자로

그의 소천 소식에 한인사회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와싱톤중앙장로교회는 자세한 장례일정은 유가족과 상의해 추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 이원상 목사는 1937년 만주에서 출생해

1962년 계명대학교 철학과 졸업,

1965년 경북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학위 취득,

1972년 달라스 신학교 졸업(Th M. Old Testament),

1981년, 펜실베니아대학교 구약석사 학위 취득,

2009년 영국 웨일스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성시집 ‘내 양을 먹이라’가 있다.

 

고 이원상 목사는 1977년부터 2003년 26년간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역임,

1990년부터 현재 SEED 선교회 국제대표,

2015년 6월 프레션 기도센터 창립 등의 사역을 해왔다.

 

출처 :

https://www.manna24.com/single-post/2016/12/05/%EC%9D%B4%EC%9B%90%EC%83%81-%EC%99%80%EC%8B%B1%ED%86%A4%EC%A4%91%EC%95%99%EC%9E%A5%EB%A1%9C%EA%B5%90%ED%9A%8C-%EC%9B%90%EB%A1%9C%EB%AA%A9%EC%82%AC-%EC%86%8C%EC%B2%9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