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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수를 헤아릴 줄 알게 하소서 시90:1~12 2011.12.25.
◑날 수를 계수하는 지혜
오늘은 금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시90:12절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편 90편의 이 기도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기도는 모세가 말년에 이르러서 드린 기도의 내용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날 수를 제대로 헤아리게 해달라’는 말은, 달력을 제대로 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지혜를 얻게 하소서 하는 것은
현대적인 언어로 말하면 ‘달력을 볼 때 그 의미를 깨닫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달력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2011년 12월 25일 주일입니다.
또 이제 금년도 며칠 남지 않은 것을 보며 모든 사람들이
"세월이 참으로 빠르구나. 벌써 한 해가 다 갔구나?" 하는 감회를 가질 것입니다.
우리가 다 숫자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어도,
기도하지 않아도 달력을 보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1. 인생은 ‘꿈’과 같습니다
시90:5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그런데 시편 기자 모세는 하나님 앞에 달력을 잘 보며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가 많은 기도 제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이면 달력을 제대로 보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일까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사람마다 자기 나이를 바로 세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몇 살인지 알고 있는데
셰익스피어는 세상에 자기 나이를 바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달력을 보면서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도 붙잡을 수 없이 물같이 흐르는 시간은, 우리에게 참으로 난해한 실체입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해보면, 날마다 살아가면서 시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이 같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아온 우리는
오늘 2011년 12월 25일 한해의 끝에 서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2월 25일이 무슨 의미인지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12월 25일 마지막 주일입니다. 금년도 이제 6일이 남았습니다.
12월 25일은 한 해의 끝이 있으며 그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불행은 끝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모든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시편 90편 5절에 보면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라고 했습니다.
한바탕의 꿈이라는 것입니다.
지나간 일년을 되돌아보면 우리가 웃고 울고 화낸 것이
한 바탕 꿈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그동안 슬퍼하고 미워하고 속생했던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부질없는 꿈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한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 기적의 역사 한 복판에 서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인생은 한 바탕 꿈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한다고 해도 역사에 기록될 놀라운 일을 했다고 해도
죽음을 앞둔 삶의 끝에서 되돌아보니 그것이 한바탕 꿈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일에 속상할 까닭이 없습니다. 꿈 속에서 속상한 것입니다.
깨고 나면 꿈입니다. 그렇다면 속상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인생이 꿈인데 꿈 때문에 속상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화를 내고 발을 동동 구를 필요도 없고 무슨 일이 잘 된다고
교만하고 잘난척 할 일도 없습니다. 큰일을 한다고 뽐내고 자랑할 일도 없습니다.
아무리 해도 백년을 살 수 없는 우리들,
아무리 해도 그 모든 것들이 한바탕 꿈이라는 것이 모세의 결론 입니다.
◑2. 우리 인생은 아침에 돋는 풀과 같습니다
곧 마르고, 곧 시든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자신의 120년간의 인생에서 깨달은
또 하나의 분명한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은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되돌아서 보니 내 뜻 대로 내 마음대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살아온 삶이었다고 모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다시 보면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우리 인생은, 아침에 돋는 풀잎과 같다는 것입니다.
곧 시들며,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운명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지난 일 년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우리 스스로 살아온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이끌린 삶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족을 은혜로 채워주셨고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셨고 용납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총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셨습니다.
넘어질 때 일으켜 주셨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도와주셨고 눈물을 흘릴 때 위로해주셨습니다.
지난 일년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득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인생은 짧다고들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자기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십니다.’
최초로 점자를 만든 루이 브라유 이야기 주1)
▲언젠가 중단하는 날이 있다!
하루에 천금같은 24시간 중에, 우리가 오랜 시간 잠을 자며 허비하는 것은
<언젠가 인생에 영원한 잠(죽음)이 있다>는 것을 매일 일깨워 주심이요,
매일 천금같은 소중한 날들 중에서, 우리가 안식일로 하루 쉰다는 것은
<언젠가 그 소중한 너의 직업도 중단할 날이 온다>는 것을
미리 미리 평소에 연습하고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은 짧고, 언젠가 중단하는 날이 온다는 것을,
우리는 매일 잠을 통해서,
또한 매 주일 안식일(주일)을 통해서,
또한 매년 연말연시를 통해서, 깊이 깨닫고, 연습하고, 대비하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3. 또한 12월 25일은 세월의 끝이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알려주는 숫자입니다.
12월 25일 달력을 보면서 우리는 2011년이 끝나고
2012년 새해가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새해는 우리의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됩니다.
지난 일년은 어둡고 슬프고 괴로운 것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떨쳐버리고 새로운 희망의 새해가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2월 25일은 세월의 끝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후회와 절망이지만
새날의 시작을 알리는 표시라는 점에서 희망과 기쁨의 숫자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달력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달력을 보며 그 의미를 깨닫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여러분, 2011년 12월 25일 이 날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우리 모두 기도해야 합니다.
날수를 제대로 세고 그 뜻을 깨달으며 사는 사람은, 성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달력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며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생을 사는 날들 동안 달력을 잘 볼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달력의 숫자가 주는 의미를 잘 깨닫고 헤아리는 지혜와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새해
그리스도를 만나면 새로운 삶이 됩니다. 이전 삶의 연장이 아니라 새 것이 됩니다.
이 땅의 삶에는 새 것이 없습니다. 새해가 되어도 새롭지 않습니다.
달력만, 연도만 바뀐 것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도다”라고 말합니다(전1:9).
하늘 아래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은 거기서 거기라는 뜻입니다.
예수를 진짜 만나면, 예수가 내 안에 찾아오시면 새로워지게 됩니다.
새롭게 되었다는 말은 존재론적인 변화, 근본적인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은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물과 포도주는 전혀 다른 물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를 진실로 믿으면, 우리의 생각이 달라지고 삶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일어난 사건에 대한 반응이 달라지며, 돈을 버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모든 게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약간의 개조가 아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찾아오실 때 이런 변화가 일어나야 정상인 것입니다.
내가 변화면 모든 게 바뀝니다. 가족도 새로워 보이고 교회도 새롭습니다.
예배의 포맷을 바꾼다고 예배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변하면, 내가 새로워지면 달라집니다.
새해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더 가까이, 더 뜨겁게 만나는 한 해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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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인생은 짧다고들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자기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인생은,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적당히 충분한 길이’의 인생입니다.
아래에 적당히 충분한 인생을 살았지만, 의미있게 살았던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점자를 만든 루이 브라유
19세기 초 루이 브라유는 프랑스 파리에서 동쪽으로 58km 떨어진
쿠브레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마구와 안장을 제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루이 브라유가 3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송곳으로 가죽에 구멍을 뚫다가,
송곳이 미끄러지면서 왼쪽 눈을 다쳤습니다.
이 사고로 왼쪽 눈이 멀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 눈도 감염으로 인해 시력을 잃었습니다. (한 쪽이 가면, 다른 쪽도 간다고 하죠)
흐리던 눈이 4살이 되었을 때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루이 브라유가 살던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었으며,
어른이 된 후에도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미국의 동화작가 마가렛 데이비슨에 따르면,
시각 장애인들의 노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이나 소처럼 무거운 짐을 끌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공장에서 석탄을 담는 일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거지가 되었다”
그래서 부모는 루이에게 직업교육과 학교교육을 받도록 했습니다.
덕분에 루이는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갔으며,
소리를 듣는 감각 덕분에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은 열네 권 밖에 없어서
루이 브라유는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있는 책도 글자 한 개가 손바닥만 해서
한 권도 커다란 돌덩이처럼 무거웠습니다.
루이 브라유는 16세에 오늘 날 사용하는 점자 체계를 창안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모교에서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창안한 점자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학교에서 가르치는 데 채택되지 않았는데,
루이가 점자를 너무 잘 만들어서, 학교 교장이 그를 시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늘 건강 문제로 시달렸으며, 1852년 파리에서 결핵으로 43세의 나이로 숨졌습니다.
100년 후 그의 유해는 1952년 파리의 팡테옹으로 옮겨져 안장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을 불태워 가치 있는 인생을 산 청년 루이 브라유를 두고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영혼을 살리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맹인이어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고 해서
그가 불행한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