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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LNCK 2025. 1. 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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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요11:36-44             2005.08.14.

 

※진정한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절제이며, 

내가 먼저 자유케 된 후에, 남들을 자유케 하는 사람이 되자는 주제.

 

1945년 점심때 쯤, 제가 어렸을 때 나가던 교회에 박칠순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당시는 전도사님이었습니다. 그 분이 급하게 저희 집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할아버지가 그 교회 설립 장로님이셨는데,

저희 할아버지 장로님을 붙들고 목을 놓고 웁니다. 엉엉 울면서 ‘해방됐습니다. 해방.. 해방..!'

 

나는 그 당시 13살입니다. 해방이 뭔지 알 수 없어요.

어쨌든 해방됐다고 두 분이 그렇게 울며 기뻐하고 또 같이 기도하고 그런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에 예배당 종까지도 녹여서 뭐 군함을 만든다나 그래가지고

다 공출해가서 예배당에 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공출을 해서 갖다가 한데 다 모아놓고, 아직 녹여 쓰지를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종을 도로 찾아왔어요. 딱 매달아 놓고 하루 종일 종을 쳤습니다.

땡그랑 땡그랑 종을 치고, 한 달 동안 온마을 온동네가 축제로 그렇게 지냈던

8.15해방의 기쁨을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저 언덕 위에 있던 신사, 일본사람들의 귀신을 섬기는 신사가 있는데,

그걸 불 질렀습니다. 그 신사가 벌겋게 불이 타오르는걸 보며 그건 참 기분이 좋았는데

그다음에 보니까요,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가보니까

초등학교에 있는 모든 기물까지 다 때려 부쉈어요.

 

그 제가 좋아하던 실험실에 있는 그 여러 가지 참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는데 다 때려 부쉈어요.

저는 여기서 생각하게 됩니다. 자 자유, 자유로 인하여 만세를 불렀습니다만

자유가 방종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자유의 뜻을 모르면 자유인이 아닙니다.

 

▲미국 워싱턴 DC에 가면 한국전쟁 기념관이 있습니다.

거기를 방문할 때마다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그 앨링턴 국립묘지에 “Freedom is not free” 라고 크게 돌에 새겨 놓았어요.

참 명언입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여러분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공짜로 주어지는 자유는, 자유가 아닙니다.

그건 다 망가지니까요.

 

여러분 자유의 소중함도 알아야 하지만, 자유의 대가를 지불해야 됩니다.

그리고 얻어야 진정한 자유됨을 지켜갈 수 있는 거지,

우리가 공짜로 얻은 자유였기 때문에 6.25전쟁이 터집니다.

많은 혼란 속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예요. 그걸 자초한 것이지요.

 

▲한경직 목사님께서 왜정 말년에 고생 많이 하셨어요.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순교당할 뻔하기도 하고, 아무튼 해방이 됐어요.

해방이 된 첫 주일 날 교회에 모였어요.

예배하고 교인들 앞에 광고시간에 너무 좋아서 웃음이 만연해서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 우리 해방됐는데 다시는 이제부터는 일본말 앗싸리(아예의 일본어) 하지 맙시다.” 그랬어요.

그래서 온 교인을 웃겼다고 그래요.  (앗사리 : ’시원스럽게, 깨끗하게‘ 라는 뜻의 일본어)

 

정말 우리가 물리적으로는 정치적으로는 자유가 된 것 같으나,

이 생각 의식 문화, 거기에 진정한 자유가 아직도 멀었어요.

 

데이빗 A. 시멘즈라고 하는 유명한 작가의 <상한 감정의 치유>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 속에 나오는 얘깁니다. 어느 인디언 부락에서 바자회가 있었어요.

어느 인디언이 메추라기를 수 십 마리를 잡아왔어요.

그리고 발을 요렇게 실로 묶어서 고다음 고다음 고다음 이렇게 쭉 연결해서 묶어 놓았어요.

 

그리고 갖다가 마당에 놓고 그놈들을 돌리니까

가운데가 막대기를 놓고 빙빙 돌게 만들었더니

아 발에 이렇게 끈이 매인채로 이 메추라기가 북소리에 맞추어가지고 뱅뱅뱅뱅 돌거든요.

아 그거 재밌잖아요? 사람들이 그걸 즐기고 있었는데

 

어느 귀인이 나타나서 ‘저 메추라기 불쌍하게 저렇게 고생시켜선 안 되지’ 싶어서

“이 전체가 얼마요? 그러니까 얼마라고 하니까 그러면 그걸 내가 다 사겠소.”

그리고 많은 돈을 주고 메추라기 수 십 마리를 샀어요. 그리고 다 풀어줬어요.

 

풀어줬는데 이 메추라기들이 날아갈줄 알았는데, 여전히 뱅뱅 돌고 있는 거예요.

끈은 풀었는데 그냥 돌더라는 거예요.

자 여러분 이제 자유가 무엇입니까? 정말로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 중에 가장 큰 이적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이적을 내가 깊이 연구해서

이것만 가지고 제가 책을 한 권 쓴 일이 있어요.

그 예수님의 모든 이적을 차례차례 다 연구해 봤습니다마는

 

역시 예수님의 이적중의 클라이막스가 죽은 나사로를 살린 거예요.
어쨌든 병 고치는 것보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게 더 큰 기적이지요.

 

그것도 죽은지 나흘만에 썩은 냄새가 나는 걸 무덤에서 살렸다...
그야말로 굉장한 사건이죠. 이런 큰 기적이 나타나는데

문제는 이것은 십자가 지시기 몇일전에 된일이예요.

 

여기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건 계시적 의미가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거죠.

 

이렇게 연결할 때 이 사건은 말씀적이고 계시적인 엄청난 의미가 있는거예요.

죽은지 나흘이나 된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그런 놀라운 능력을 가지신 예수께서

아무말없이 십자가에 죽으셨어요. 여기서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를 해석하게 되는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몇가지 한번더 생각해볼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는 바와 같이 사람들이 얘기합니다.

 

‘장님의 눈을 뜨게 하는 분께서 많은 이적을 나타내신 그분께서

이 사람 죽지 않게 할 수 없더냐?’ 하는 겁니다.

 

여러분 죽지 않고 부활이 있습니까?

그런데 어쨌든 ‘죽지 않게 할 수 없더냐?’하고 모두가 다 한마디씩 합니다.

 

그래요. 저도 생각해요. 아 그거 죽지 않게 해달라고 사람을 보낸 일까지 있거든요.

‘예수님, 빨리 와서 고쳐주세요’ 라고 했거든요.

 

예수님이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하면 좋지, 뭐 죽은 다음에 무덤 찾아갈 것 없잖아요.
어쨌든 이게 좀 하나의 수수께끼예요.

 

그러나 그속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문제는 죽었어요. 장례를 지냈습니다.

무덤 속에 있는 저 나사로는, 스스로 살아날 수도 없습니다.

죽음의 사망의 노예가 된 이 사람, 스스로 무덤을 박차고 나올 수 없다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누구나 스스로 자유할수 없다...

이렇게 우리는 사망 권세, 죄의 권세, 많은 능력속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유할수 없다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리요

 

▲그러면 이제 문제는, 저 사람을 살리는 것은 죽은자를 살리는 것,

사망에 매인 자를 푸는 것은

그것은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이예요.

 

그래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난 좀 좀 미련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봐요.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너라 했다가 만일에 안나오면 어떡하나?

 

난 그게 걱정이 되요. 어떻게 그걸 그렇게 믿고 확실하게 나사로야 나오라고

무덤을 향해 소리를 질렀을까?

 

아 난 그 믿음 그 위대한 믿음에 대해서 일단 깜짝 놀랍니다.

이제 나사로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전부 수건으로 얼굴을 싸고 그야말로 수의를 입혔으니까요.

이렇게 걸어 나왔다는 걸 상상해 보세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 풀어 다니게 하라.’

 

전 그런 생각을 해요. 기왕에 이적을 나타낼 바에야 나사로야 나오라 하자마자

꽝하고 무덤이 폭발하면서 수건도 다 없어지고

환한 얼굴로 쫙 나오면 그게 더 희한하잖아요?

왜 이걸 축소해가지고 사람은 살아났는데, 아직도 수건으로 쌓인 채로 나왔단 말예요.

 

그래 그거 그건 왜 사람보고 풀어주라고 그러죠?

고것까지 예수님께서 능력으로 했더라면 더 좋을 건데... 아 희한해요.

그런데 이상하게 나사로를 살리는 일은 예수님이 하시고

그리고 풀어주는 일은 사람보고 하라고 그랬어요.

 

그전에도 또 보면 돌을 옮겨놓으라 그랬어요. 그럴 거 뭐 있어요?

그냥 나오라고 그래가지고 꽝하고 나와야 근사하지... 돌 옮겨 놓을 건 또 뭐 있어요?

그건 사람보고 옮겨놓으라고 그랬어요.

 

돌을 옮겨 놓는 일도 사람에게 부탁을 했고

저사람 풀어주라 그것도 사람에게 부탁했어요.

 

여기서 우리가 이 사건을 놓고 사람이 할 일과,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어요.

생명에 관한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거고.. 그렇죠?

 

우리가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잖아요? 우리가 자유케 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일단 살아난 사람 풀어주는 거, 고건 우리가 할 일이예요.


우리에게 맡기시고 우리에게 부탁한 일이더라 그말이예요.

아주 중요한 상징적이고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보십시오. 오늘날에도 여러 가지 중독에 묶여있는 심령들,
우리가 자유케 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능력만이 이것을 가능케하는 신비로운 역사예요.

 

그러나 일단 풀어놓은 다음에 그를 자유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예요.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옵니다.

애굽에서 나오는 일, 홍해를 건너오는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요

누가 감히 그걸 상상이나 하겠어요?

 

400년동안이나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어요.

이건 하나님이 하신 일이예요.

 

그러나 그 다음부터 율법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백성으로 살도록

모세에게 부탁합니다. 네가 가르쳐라. 이건 네몫이다.

이걸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의식의 변화가 와야되고 요샛말로 벨류 이노베이션,

가치변화혁신이 와야한단 말예요. 가치혁신이 오지 않으면 안되는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유인 만이 남을 자유케 할 수 있어요.

내가 먼저 자유하고야 남을 자유케할 수 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정도 자유하십니까?

 

어느날 처칠경이 정치적으로 실수를 했대요. 사실로 실수를 했대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비방을 하는데 너무 지나치게 처칠경을 향해서

감당할수 없는 욕설을 했어요. 사실은 처칠이 기분이 나쁘겠죠.

 

그러나 처칠은 그 시간에 뭐라고 했냐하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내가 비난받고 있는 이 사건 외에

더 많은 실수를 한게 있는데 아마 그건 모르실겁니다.” 그리고 말았어요.

 

뭡니까? 나를 비방하는 사람을 비방하지 않았어요.

나 비방하는데 있어서 불평하지 않았어요.

왜? 이보다 더 많은 실수가 더 있거든요.

그러므로 그는 조용히 그대로 받아들일수가 있었어요.

 

그러기 때문에 자유인이요 자유인이기에 남을 자유케할수 있었던 것이예요.

어느 순간에도 속에 교만이 있고 욕심이있고 돈과 권세 명예 지식 경험

이런것에 집착되면서 내가 자유를 잃어버릴 때

내 의식에 내 이성에 내 양심에 내 신앙에 자유를 잃어버리는 순간

나도 부자유할뿐더러 누구에게도 자유를 베풀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것이예요.

 

▲오늘도 자유가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걸어다니는 것 같으나 자유가 없어요.

잘사는 것 같으나 자유가 없어요. 높은 자리에 있는 것 같으나 비참해요.

살아있는 것 같으나 죽은것만도 못해요.

 

저는 가끔 그런생각을 해요.

‘우리나라의 누구누구 하는 사람도 제때 죽었으면 참 좋았겠다’ 생각을 해요.

 

그 짧은생을 살면서 그래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부끄러움을 사는걸 볼 때

참 인생이건 참 답답하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풀어주라.

 

중국에 <십팔사략>이란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얘긴데 진나라의 왕실에서 경영하는 목장에서

몇 마리의 말이 고만 도망을 쳤습니다. 말이 도망을 쳐서 이웃마을로 갔어요.

이웃사람들이 그 말을 잡아가지고 너무 배고프고 어려우니까 말을 다 잡아먹었어요.

 

이 사실을 알고 관련된 사람을 다 붙들어와라 하니까 무려 300명이나 관련이 되요.

300명이나 먹었어요. 이사람들을 다 처형하라 지금 이렇게 됐는데

왕이 나와서 아고 오랜만에 고기를 먹었으면 포도주까지 먹어야지

고기만 먹으면 안되는데... 이사람들에게 포도주 주라고...

 

그리고 얼마나 배가 고프면 그랬겠냐고... 말이 도망간게 잘못이지

잡아먹은 당신들에게는 뭐 그저 그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다 용서해주고 오히려 포도주까지 한그릇씩 다 주어서 보냈어요.

 

전세가 바뀌어가지고 진나라가 어려워졌어요. 진나라가 아주 전멸위기에 왔을 때

300명의 결사대가 나와서 왕을 보호해주어서 살았어요.

그 300명이 말고기 먹은사람들이예요.

여러분 자유하게 했을 때, 그것이 다시 자유로 돌아온다는 걸 잊지말아야 돼요.

 

▲한평생 오직 자유를 위해서 산 사람이 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 여러분 잘 아십니다.

그는 늘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나에게 고귀한 사랑의 믿음을 주옵소서.

이것이 나의 기도입니다.

죽음으로서 산다는 믿음을 주옵소서. 짐으로써 이긴다는 믿음을 주옵소서.

 

연약해보이나 그 아름다움속에 강한 힘이있다는 믿음을 주옵소서.

해를 입고 원수를 갚지 않고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을 주옵소서.

그 고통을 존엄한 가치로 인정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참 자유함이 어디있습니까? 모든사람을 사랑하고 모든사람을 용서하고

내 심령이 자유할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너도 저 사람을 자유케 하라. 저사람을 풀어주라. 풀어주어서 다니게 하라.

 

여러분 몇일전에 신문에 난거 보셨지요? 76세 난 할머니가 자살을 했대요.

그냥 있어도 얼마 안살텐데... 왜요? 그 수중에 60억이란 돈이 있었대요.

이 돈이 말썽이예요. 이 돈으로 인해서 불화가 이루어졌어요.

견디지 못해서 자살을 했더랍니다. 이 얼마나 불쌍한 할머니입니까?

 

차라리 돈 하나도 없이 딸네집에 얹혀 살았더라면 좋았을걸...

돈 몇푼 때문에 여기에 노예가 되어서 그 인생 완전히 끝에 망가지고 말았어요.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세요. 요새도 불쌍한 심령이 얼마나 많습니까?

잘못된 습관에 잘못된 문화에 잘못된 이데올로기에 잘못된 철학에 불쌍한 심령이 많습니다.

걸어다니것 같으나 마치 무덤에서 나온 나사로처럼 수의를 걸치고 수건을 쓰고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세요.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풀어 다니게 하라. 풀어주라. 너희가 풀어주라.’

 

여러분 참 자유 다시 생각해야 겠습니다. 이제 스스로 물어보십시다.

내게 참 자유가 있느냐고...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 불쌍한 모습을 보면서

주의 음성 들어야 겠습니다. 너희가 풀어주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엄청난 능력을 베푸사 자유케 하셨습니다마는

아직도 우리는 수족이 묶인 채로, 우리도 아직도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고

노예된 형편에서 자신의 노예됨도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참으로 자유하게 하시고 또 자유케 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은혜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