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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질문과 세 번의 대답 요21:15-17 2012.10.07.
※주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세 번 물으신 것은,
미심쩍어서가 아니라, 그를 신뢰하기에 그의 사랑과 충성을 거듭 확인시켜 주시는 것이며,
우리 역시 이런 '주님이 감동 받으실만한 고백'을 드려야 한다는 주제.
여러분 모두 때때로 특별한 하나님의 말씀이 늘 머릿속에 맴도는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늘 우리의 마음속에 맴돌고
‘이 뜻이 무엇일까?’ 골똘하게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제목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늘 떠나지 않고 맴도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늘 떠나지 않고 맴돌아야 합니다.
무엇인가 한 가지 생각에 매몰되어서
그 생각에 매여서, 그 생각을 골똘하게 생각하는.. 그런 생각, 그런 말씀이 있어야 한다,
불가(佛家)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화두(話頭)라고 합니다.
최근에 이르러서 저는 요21장의 말씀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빙빙 맴도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저의 생각의 화두는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베드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되풀이해서 기록된 말씀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똑같은 질문을 세 번씩이나 한 적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똑같은 질문을 왜 세 번이나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이나 질문하셨는데, 시차를 두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루걸러 한 번씩 하신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물어보면 대답했고,
대답하면 다시 물어보셨습니다.
물어본 내용도 다른 것이 아니라, 똑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장소에서 다른 상황에서 질문하신 것도 아니고
똑같은 자리,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질문을 연속해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도대체 왜 그러신 것일까요?
베드로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일까요?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시종일관 똑같은 대답을 세 번 했습니다.
그것도 예수님께서 꼭 듣고 싶어하셨던 대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똑같은 대답을 할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왜 똑같은 질문을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왜 그러셨는지, 성경에는 그 이유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는지 천국에 가서 예수님께 물어보아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베드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하셨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기 위해서
먼저 어떤 상황 속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오늘 본문의 상황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본문에서 보는 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베드로는 그의 고향 갈릴리로 돌아가 옛날처럼
동료들과 고기를 잡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 먼 길을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마치신 그 자리에서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세 번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왜 갈릴리 (디베랴) 바다에 가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을까요?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것 때문에, 자괴감에 빠져서
스스로 사도직을 포기하고 낙향해서 옛날 직업으로 돌아갔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래 말씀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서둘러 갈릴리로 내려간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러 내려간 것입니다.
마26: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막14: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약속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3년 공생애의 주된 무대는.. 항상 갈릴리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절기 때 한 번씩 올라가셨다가, 금방 또 갈릴리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나 베드로나.. 예루살렘은 낯선 곳입니다.
그러나 갈릴리는.. 친근한 고향 땅입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 것입니다.
늘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하시던 곳입니다. 마26:32, 막14:28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해서, 부끄러워서 사도직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도망가서 옛 직업인 물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갔다...는 억측일 수 있습니다.
그 전에 예수님이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오래 머무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볼 일을 다 보면, 고향으로 내려오는 게 당연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지금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은, 유월절 절기로 인해서, 예수님을 따라 간 것입니다.
이제 유월절 절기도 끝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마26:32
말씀하셨으므로,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시겠다는데,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남아있을 필요가 전혀 없지요.
나중에 행1장에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남아있다가 오순절 성령을 체험합니다.
그 때는 ‘이 성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셔서, 행1:4
예루살렘에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앞서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을 보기 위해서, 또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던 터였죠.
◑1. 식사를 같이 하심은, 베드로를 이미 용서하셨다는 표시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예수님께서 그런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 고 하셨는데
여러분 같으면 베드로에게 그런 중요한 일을 또다시 맡길 수 있겠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들 같으면 도저히 그렇게 못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갈릴리로 베드로를 찾아가서 같이 음식을 드셨습니다.
음식은 마음 편한 사람과 같이 먹습니다.
원수와 마음이 불편한 사람과 같이 음식을 먹는 것은, 참으로 거북스러운 일입니다.
음식은 마음 편한 사람과 같이 먹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편했던 사람에게 밥이나 같이 먹자는 것은 화해를 하자는 것입니다.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은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가 예배가 끝난 후에 음식을 같이 나누어먹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식구가 된 사람으로 마음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한 번도 식사를 안 하고 가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나는 당신들과는 마음을 주고받을 일이 없다고
오해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데도 주일 오후에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은
우리는 같은 믿음의 식구이기 때문에 마음을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음식을 같이 드셨다는 것은
이미 베드로와 예수님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어보실 처지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그동안 한 일을 보면 모릅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합니까?
생각해보면 베드로는 그런 질문을 받을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습니까?
물어보나 마나한 질문입니다.
질문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지
아무나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누군지 몰라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예수님이 어려움을 당하셨을 때,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베드로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아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새삼스럽게 베드로를 만나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양심이 있다면 예수님이 자신이 한 일을 모르시는 것도 아니고
다 알고 물어보시는 말인데
무슨 염치로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라는 대답을 뻔뻔하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세 번씩이니 말입니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말을 하기 전에 ‘죄송합니다. 부끄러워서 뵐 낯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해야 인간적인 도리이고 순서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기록에 보면 베드로는 그런 말 한 마디 없이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라는 똑같은 말을 줄기차게 세 번씩이나 대답했습니다.
▲요한복음 기자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이 비상식적인 질문과 대답, 대화의 내용을
그대로 기록해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깊은 뜻과 기독교 신앙의 신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과거, 베드로의 실수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우리들 같으면 꼭 해야 했던 말
“너는 왜 나를 배신했느냐? 네가 수제자라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인간적인 도리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대제사장의 여종 앞에서까지 나를 부인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한마디 책망이라도 하시고 따지셔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르고 그러신 것이 아니라, 다 아시면서도 그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과거에 대해서 따지고 묻지 않으신 것은
베드로가 실수하고 잘못을 저질렀지만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확신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멀리서 따라가고
비겁하게 갈릴리로 도망했지만
예수님은 그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한 연약한 인간의 실수로 생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속마음을 다 아신 것입니다.
사람이 부족해서 잠시 실수한 것이지
여전히 베드로는 그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란 것을 아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기의 배와 그물과 부모와 처자를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는가,
어떻게 3년동안이나 그렇게 열심히 예수님을 따라다녔는가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사랑했던 과거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2. 세 번 질문은 베드로에 대한 신뢰의 표시
예수님은 베드로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그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실수와 잘못은 일시적이고 연약한 인간으로서 있었던 일이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고 물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야 너에게 그런 실수가 있었던 것을 내가 다 알고 있다.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말씀은 질문이 아니라
평생 동안 예수님을 사랑했던 베드로의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베드로에 대한 신뢰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베드로야 너의 잘못을 다 안다. 물론 네가 잘못한 것은 있지만
그것은 단지 잠시 너의 실수였고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는 것입니다.
1번만 해도 될 것을, 3번이나 한 것은
베드로를 무안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전폭적인 신뢰를, 3번이나 드러내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은 예수님은 베드로의 겉으로 드러난 잘못,
그것을 문제 삼지 않으시고
베드로의 속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겉으로 드러난 것을 문제 삼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을 문제 삼는다면
예수님께서도 베드로가 잘못했던 것,
그것을 문제 삼아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그의 속마음을 보셨던 것입니다.
정말로 네 마음까지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떠났는가
네 마음이 아직도 여전히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겉으로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네가 그런 잘못을 했지만 그런 실수를 했지만
네 속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3. 내 사랑의 고백으로, 주님을 감동시켜 본 적이 있는가?
내 사랑의 고백이, 지금 주님을 감동시키고 있는가?
오늘 본문 말씀에서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은 “내가 실수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인간인지라 부끄럽고 예수님께 죄송하기 그지없지만
제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 내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쉽게 베드로가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주님 앞에
당당하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내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주님 앞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다 아시는 주님 앞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대답할 수 있는 베드로는
대단한 사람이다, 위대한 신앙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예배도 드리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고 겉모습이 다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속마음을 다 아십니다.
오늘 우리의 속마음을 다 아시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실 때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자식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고, 돈보다 더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제가 인간인지라 실수도 하고 잘못도 저지르지만
속마음으로 주님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무엇보다 주님을 제일로 생각하며 사는 것을
주님이 다 아시지 않으십니까?’
‘이것이 저의 진심이며 부끄럽지 않은 사실이라는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설교하는 저는 과연 그럴 수 있는가?
여러분은 과연 그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밖에 없다,
돈도 자식도 명예도 주님과 바꿀 수 없다고
우리 속마음을 다 아시는 주님 앞에 베드로처럼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베드로처럼 그런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제가 평생 동안 예수님을 믿고 목사로서 살아가면서
주님께서 물으시면 “제가 부족한 것도 많고 주님을 부인한 때도 있고
십자가를 멀리 따라간 적도 있지만, 제 마음은 늘 주님을 제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자식이냐 주님이냐 물으시면 망설임 없이 주님을 선택할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세상의 명예와 물질과 주님을 놓고 선택하라시며 주님을 선택할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베드로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럴 수 있으면 성공입니다.
결국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정말로 주님을 제일로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 때문에 베드로처럼 배와 그물과 부모와 처자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일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아름다운 신앙의 삶으로 예수님을 감동시켜본 적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이 있다면 설사 우리의 삶에 실수가 있고 잘못이 있다고 해도
예수님은 베드로의 잘못을 묻지 않으시고 따지지 않으셨던 것처럼
우리의 잘못과 실수도 모른 척 하시고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을 알고 있다’.. 하고 위로해주시고 사랑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두 마음을 품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과 물질 사이에서 분명하게 ‘나는 예수님을 (물질보다) 더 사랑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주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돈을 더 좋아하는지, 하나님을 더 좋아하는지,
자식을 더 좋아하는지, 하나님을 더 좋아하는지...
하나님은 우리의 속마음을 아십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당당해야 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살지 못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실수하고 죄짓는 일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이지만
우리가 꼭 마음속에 다짐할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향한 일편단심,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는 진실된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 그의 양이었습니다.
어린 양떼였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이 양떼를 누구에게 맡길까?’
생각하시다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가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때로는 실수도 했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죄를 지었지만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주님께서는 가장 소중한 일, 가장 귀한 일을 그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 물어보셨습니다. 그 마음이 한결같아야 똑같은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세 번 물어보아도 세 번 다 똑같이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살면서 이렇게 저렇게 많은 실수도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러운 일을 하며 죄를 밥먹 듯이 짓고 살아가지만
“제가 한결 같이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이 제 인생에 가장 소중한 분이라는 마음만은 변치 않고 살았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정조를 지키면서 살았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세 번 물어보셔도 똑같은 대답을 할 수 있는 믿음의 삶,
베드로와 같은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