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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34장 종들을 학대했다가 종이 되다

LNCK 2024. 12. 9. 19:39

https://100church.org/home/board.php?board=cast&config=6&category=6&body_only=y&button_view=n&command=body&no=10703 정리

 

종들을 학대했다가 종이 되다           렘34:1-22

 

※남유다가 바벨론에 함락되기 1년 전 쯤에, 예루살렘 거민들은 데리고 있던 종들을

해방시키고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벨론이 예루살렘의 포위를 풀고 물러나자,

해방시켰던 종들을 다시 잡아들여 종으로 삼았습니다.

 

이를 두고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엄중하게 남유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이 언약을 지키지 않은 것은 (노예를 풀어주었다가 다시 노예 삼은 것은)

사람에 대한 언약 파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언약 파기라는 거죠.

 

그래서 남유다는, 그 죄로 인해서, 바벨론에게 혹독한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안 그래도 바벨론에 망했겠지만, 그 언약을 지키지 않은 죄로, 더 큰 환난을 당한 거죠.

그들은 ‘동족 종들을 학대했다가, 바벨론의 종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언약, 사람들과의 약속을 잘 지켜야 되겠습니다.

언약이나 약속을 파기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습니다. (아래 설교 요약)

 

◑시드기야왕에 대한 예언      렘34:1-7절

 

예레미야 34-45장은 주전 586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함락 전후의 사건과

그 사건을 앞두고 선포된 예레미야의 예언입니다.

 

오늘 본문 1-7절도 예루살렘 함락 직전에 시드기야왕에게 들려진

예루살렘의 운명과 시드기야 개인의 운명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34: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통치하에 있는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과 그 모든 성읍을 칠 때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은 함락당하기 2년 전인 B.C. 588년부터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포위가 되어 있었죠.

거짓 선지자들은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헛된 위로를 전했지만,

그것은 문자 그대로 ‘헛소리’에 불과했고,

예루살렘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대로 함락되기 직전에 있었습니다.

 

1절에는 ‘모든’이라는 말이 4번이나 나옵니다.

‘그의 모든 군대와’,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은 모두 바벨론 제국에 관한 내용입니다.

 

당시 초강대국인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과 모든 도시들은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러시아와 중국이 힘을 합해서 우리나라를 쳐들어오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런 국난의 위기 때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이 성을 불사를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 말씀을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내용인즉,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불이날 것:초토화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곧 나라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아무리 강심장이어도, 이런 내용을 얼굴을 맞대고 전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 최고 권력자에게, 그것도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모두 쥐고 있는 왕에게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고 있는 한 부분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망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목을 내놓아야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수도 예루살렘이 함락당하고 나라가 망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시드기왕 개인에 대한 말씀도 있었습니다.

 

:3-5 네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손에 넘겨져서

네 눈은 바벨론 왕의 눈을 볼 것이며 그의 입은 네 입을 마주 대하여 말할 것이요

너는 바벨론으로 가리라

그러나 유다의 시드기야 왕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평안히 죽을 것이며 사람이 너보다 먼저 있은 네 조상들

곧 선왕들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네게 분향하며 너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슬프다 주여 하리니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나라가 망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시드기야왕도 붙잡혀서 바벨론의 왕 앞으로 끌려가서

직접 대면을 통해 항복을 요구받게 될 것이고,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고대에 중동에서 피지배국이 지배국(봉신국)에 대해서 의무를 다하지 않고 어기거나,

충성맹세를 배반하게 되면, 지배국의 왕은 피지배국의 왕을 자기 나라로 붙잡아 가서

징계를 하던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었습니다.

 

시드기야왕은 당시 중동지역의 패권을 잡은 바벨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에게 어쩔 수 없이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재위 8년 즈음에 애굽의 군대가 유다 방면으로 진격해 오자,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에 붙었습니다.

 

이에 화가 난 느부갓네살왕은 유다를 다시 침입해 와서 1년 이상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마침내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을 완전히 함락하였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야왕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될 것이지만, 칼에 죽지 않고 평안히 죽을 것이고,

사람들은 조가를 부르며 조가:애가를 부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드기야왕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비가 아닙니다.

 

시드기야는 자기 눈앞에서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신하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서 자신도 두 눈이 뽑혔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눈으로 마지막으로 본 것이 아들들의 죽음과 신하들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쇠사슬에 매여서 바벨론까지 끌려갔습니다. 죽는 날까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면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빨리 죽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칼에 죽지 아니하고 평안히 죽을 것이며’는 2절에서 말씀하셨던,

바벨론의 왕에게 항복을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시드기야왕에게 기회를 주셨지만,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이 시드기야왕에게 전해 질 때에 유다의 상황이 어떠하였는지 이렇게 증거합니다.

:7 그 때에 바벨론의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읍들을 쳤으니

곧 라기스와 아세가라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

 

유다 중에 함락당하지 않고 남은 도시는 단 3개, 예루살렘과 라기스와 아세가이었습니다.

라기스와 아세가는 유다 남쪽에 위치한 도시,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30-4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습니다.

 

1950년 6.25전쟁 때, 전쟁발발 두 달 반 만에 남은 것은 낙동강 방어선 이남밖에 없었습니다.

대구 약간 위쪽입니다. 달성, 칠곡, 군위, 영천, 포항 이남 지역입니다.

그 때에 인천상륙작전으로 다시 전세가 역전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하나님의 역사이었습니다.

지금 유다가 그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드기야왕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종들에 대한 약속위반          :8-22절

 

8-22절은 히브리 노비 해방의 언약을 깨뜨린 유다 백성들을 향한 질책과 심판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유다 백성들이 왜 하나님께 질책을 들어야 했는지 그 배경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9-11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 이 계약에 가담한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각기 노비를 자유롭게 하고 다시는 종을 삼지 말라 함을 듣고 순복하여 놓았더니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신 종에 관한 법은 이러하였습니다.

같은 히브리인을 종으로 샀으면, 6년 동안은 일을 시키고, 7년째에는 종에서 풀어주어서

자유인이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6년째 마지막 날에 풀어주는 거죠)

 

홀로 왔으면 홀로 나가게 하고, 결혼한 상태로 왔으면 아내와 함께 나가게 했습니다.

홀로 왔다가 주인이 결혼을 시켜주어서 처자식이 생겨도, 혼자서 나가야 했습니다.

그 때에 내가 주인과 처자식을 사랑하니까 자유인이 되지 않겠다고 하면,

주인은 종의 귀를 뚫어서 평생 그의 종이 되게 했습니다.

이것이 법이었는데, 사람들의 탐욕으로 인해서 거의 지켜지지가 않았습니다.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는 것도 나쁜 것이지만, 줬다가 빼앗는 것은 더 나쁜 것이듯이,

종이 되었던 히브리 남녀를 자유인이 되게 했다가, 다시 끌고 와서 종으로 삼았다고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2년 전에 바벨론 군대에 포위가 되었을 때에,

노비 해방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드기야 왕과 관료들은, 히브리 종들을 해방시켜서, 

7년마다 종을 해방시키는 언약도 지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잘 보여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려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의 공격을 피해보고자 하는 심산이었습니다.

 

이렇게 히브리 노예들을 풀어주었던 이유는,

1) 계속되는 적군의 침공 위협으로 인해 성 밖에서 자유롭게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없게

되어, 가난한 자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노예로 전락하는 사례가 빈발하였죠.

이런 상황에서 바벨론의 공격 이전에 노예 해방을 통해 그 주인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했죠

한 마디로 자기 식구들 먹을 것도 없는데, 노예들을 먹일 양식이 없었던 거죠.

 

2) 본문의 언약은 일종의 개혁조치의 일환으로서,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자 했다는 견해. 그러니 하나님 앞에 회개의 일환이었던 거죠.

율법을 어기고 히브리 동족을 노예 삼은 것을 회개하고,

또 7년째 자유케 하지 않은 것을 회개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서

임박한 바벨론의 공격에서부터,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려 했던 거죠.

 

3) 노예를 해방시켜 그들을 전투에 참여케 하고자 했다는 견해.

지금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 보면, 러시아가 교도소에 수감된 수인들을 방면해서

전선에 내보낸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애굽의 군대가 유다를 돕기 위해서 예루살렘 쪽으로 진격해 오자,

바벨론 군대는 잠시 포위를 풀고서 외곽으로 퇴각했는데, (애굽 군대를 향해 갔다는 설도 있음)

그 때에 시드기야왕은 예루살렘이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노비 해방령을 철회하고, 다시 주인에게 매이도록 했던 것입니다.

:11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단지 정책이 바뀐 정도로 생각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깨뜨린 것으로 여기시고, 그 결과가 더욱 혹독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왕이 출애굽 때, 히브리 노예들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가,

재앙이 그치면 그 약속을 취소했던 것처럼, 당면한 곤경을 해결하기 위해서, 거짓 약속한 한 것입니다.

 

특히 시드기야는, 애굽이 군대를 출병시켰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래서 바벨론이 예루살렘 포위를 풀고 잠시 물러갔고.-

-시드기야는, 해방시킨 노예를 다시 노예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앞서 시드기야의 회개는 진짜 회개가 아니었던 거죠.

그가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고, 동족 노예를 해방하였으나

상황이 호전되자, 즉시로 마음을 바꾸어 다시 노예를 삼았습니다. 이건 가짜 회개죠.

그래서 그는, 후에 하나님의 심한 징계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도 그렇게 살 때가 많습니다.

병에 걸려 수술을 앞두고 있거나, 삶이 곤경에 처했을 때는, 하나님 앞에 서원합니다.

그러다가 상황이 조금만 호전되면... 금방 마음을 바꾸고, 서원을 지키지 않고,

옛 생활로 되돌아 갑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 더 호되게 깨지죠.

그러므로 우리는 가짜 회개, 가짜 서원을 하면 안 됩니다.

 

아래 구절이, 약속(언약)을 깨트린 시드기야와 남유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징계의 선포입니다.

 

:17 그러므로 나 주가 말한다. 너희는 모두 너희의 친척, 너희의 동포에게 자유를 선언하라는 나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러므로 보아라, 나도 너희에게 자유를 선언하여 너희가 전쟁과 염병과 기근으로 죽게 할 것이니, 세상의 모든 민족이 이것을 보고 무서워 떨 것이다. 나 주가 하는 말이다. (새번역)

 

이 표현은 굉장히 언어 유희적입니다. 다시 표현하면 이러합니다.

'너희는 모두 너희의 친척, 너희의 동포에게 자유를 선언하라는 나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러므로 보아라, 나도 너희에게 자유를 선언하여 너희가 전쟁과 염병과 기근으로 죽게 할 것이니'

 

너희가 '자유'를 어겼으니,

나도 너희가 '자유롭게' 전쟁과 염병과 기근을 당하게 할 것이다... 언어유희죠.

다시 동족을 노예로 붙잡아들인 남유다에게, 하나님은 엄하게 징계를 선포하셨습니다.

 

전쟁, 전염병, 굶주림은 하나만 있어도 고통스럽고,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재난입니다.

그런데 그 두려운 것들이 한꺼번에 올 뿐만 아니라,

나라 잃은 백성으로, 이방 땅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백성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표면적으로는, 또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 또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굉장한 이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지키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노비 해방 언약을 깨뜨린 것에 대한 징계를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18-21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 곧 송아지 두 조각 사이로 지난

유다 고관들과 예루살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내가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

또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그의 고관들을 그의 원수의 손과

그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넘기리라

 

언약을 체결하는 모습은 창세기 15장에도 보면 나오는데, 당시 중동에서는

엄숙한 언약을 맺을 때에는 보통 흠 없는 1년 된 수송아지를 잡아서 반으로 갈라놓았습니다.

그 사이에는 송아지 피가 흥건하였습니다. 그리고 언약을 맺는 당사자들이

그 사이를 피를 밟으며 지나갔습니다.

언약을 어길 시에는 갈라놓은 송아지처럼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비 해방 언약을 깨뜨린 유다 백성들에게 ‘내 계약을 어겼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유다 백성들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유다 백성들 사이의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넘기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된 것이

하나님이 힘이 없으셔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을 깨트린 자기 백성을 징계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22

 

: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 성읍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의 성읍들을 주민이 없어 처참한 황무지가 되게 하리라

 

예루살렘의 멸망을 재확인하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군대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것을 잠시 풀었다가

다시 예루살렘을 공격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유다의 여러 성읍들이 초토화가 되어서 황무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당하고, 유다가 패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시드기야왕을 비롯하여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언약을 파기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다운 길을 걷다가 손해를 당하고 박해를 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다운 길을 걷지 않다가 나라가 망하는 것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사실 우리도 우리의 삶을 정직하게 돌아보면 유다 백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하루가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감으로

복된 날이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지키는 것을 확인하고,

그렇게 행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시드기야왕은 자신이 통치하는 유다가 초토화되고, 수도 예루살렘이 포위당하여 함락을 당하기 직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비극적은 결말을 맞아야 했습니다.

또한 유다 백성들이 자신들의 남녀 노비를 자유하게 해 주었다가 다시 속박하는,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봅니다. 이러한 유다 백성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우리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바라옵나니 오늘 하루, 그리고 우리의 남은 생애 동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키는 것을 확인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 손해를 보게 될 때에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정녕 우리가 진리를 행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