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축의 균형이 미래다 행6:1~7 2016.01.03. 설교문 스크랩
※새해에는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는 삶을 살자는 주제의 설교문!
신앙과 삶은 분리되어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삶을 이끄는 것은 신앙이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는데, 신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활도 중요합니다.
신앙이 삶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을 제대로 하면 삶이 이끌려 가게 되고 신앙은 삶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이 자라면 삶이 자랍니다. 미래를 보고 싶다면
오늘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지 보면 틀림없이 내일의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신앙의 중심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성경에서 늘 확인하는 것 중 하나는 기도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기도와 말씀은 두 축, 양 날개입니다. 하나의 날개로는 날 수 없습니다.
날개가 없으면 날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이 벼랑 끝에 몰려도 날개가 있으면 날아오르게 됩니다.
날개가 없으면 벼랑에서 떨어집니다. 날개가 있으면 날아오릅니다.
우리의 날개는 말씀과 기도입니다.
이 두 축이 우리의 삶을 받쳐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본문 행6:4절에 나오는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라는 말씀은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면서 구제문제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니
사도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내린 지혜롭고 영적인 결론입니다.
하나는 일곱 집사를 세워 재정관리를 합리적으로 하는 것과
다음은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사역에 힘쓰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핵심적인 사역이 기도와 말씀에 힘쓰는 것인데
이것은 사도들만의 사역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기준이 되는 말씀입니다.
◑1. 기도
기도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에 친히 보여주신 아주 중요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기도가 우선순위였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늘 기도의 자리를 찾으셨고 기도는 그 분의 삶의 우선순위에 있었습니다.
기도를 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많이 보여줍니다.
인간이신 예수는 아들로서 아버지를 의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기도는 내가 인간됨을 인정하는 숭고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기도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이유는 기도가 인간의 본성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의 속성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가 어려운 이유는 우리 안에 죄성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죄인 된 인간은 자신의 힘을 믿고 삽니다.
기도는 신자와 불신자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기준입니다.
‘기도하고 있느냐, 기도하고 있지 않느냐’는 신앙과 불신앙을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하나님을 아무나 아버지라 부르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을 보면 양자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아들의 영을 받아야 기도합니다.
교회를 출석하는데, 평소에 기도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인간의 삶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면 하나는 인본주의고, 또 다른 하나는 신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는 말 그대로 인간이 주체가 되어 인간 스스로 결정하고 이끌어 갑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방법만으로 열심을 다하지만, 기도는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존도가 없습니다. 불신앙입니다.
세상은 기도를 무시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조롱합니다.
기도하는 것을 굉장히 무기력한 것으로 봅니다.
신본주의는 자신의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자기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방법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가를 드러내게 됩니다.
인간의 한계,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할 때 기도는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유능해도 유한합니다. 자급자족이 안 됩니다.
우리는 늘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고 인생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모든 일을 친히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가 그냥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 둘 사이의 차이는 엄청나게 큽니다.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성경은 기도에 관한 말씀이 많습니다. 기도를 뺀다면 성경이 아닐 수 있습니다.
기도에 관한 내용을 생략하면 성경의 많은 내용을 빼야 합니다.
기도를 강조하는 만큼 기도 응답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기도는 그냥 넋두리가 아니고 인격적 수양을 위한 자기 독백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곧 기도의 경험이 쌓여져 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기도입니다.
신앙이 깊어졌다는 말은 기도가 깊어져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경험합니까? 기도를 통해 경험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졌다는 말은 기도가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모호한 개념으로 남아있는 경우는 구체적 기도생활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바로 기도생활입니다.
우리는 한없이 유한하고 하나님은 무한 능력자이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흐르게 하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삶이 무너지는 것은 우리가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열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을 교리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면 우리의 신앙은 전혀 달라집니다.
신약의 교회는 기도를 통해 태어났습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120명의 문도가 전혀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성령이 임하시고
신약의 교회는 출발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기도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결사적으로 기도했고 기도 외에는 다른 것을 다 내려놓고 전혀 기도에 힘쓸 때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 위에 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교회 중심은 언제나 기도입니다. 그들은 공동체적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기도가 중심에 놓여야 합니다. 자칫하면 기도를 게을리하고 등한시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기도를 멀리합니다.
인간은 어릴 때부터 자기가 신뢰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며 자라갑니다.
자기 신뢰, 자기 확신, 자기 스스로 노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바쁘게 산다는 말은 나를 의지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분주한 삶은 배교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힘으로 자기 인생을 개척해 나가려는 의도가 강하기 때문에
분주한 삶을 살게 되고 그 분주한 삶에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열심이 강조되는 곳은 자연히 기도가 소홀히 다루어집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들 합니다. 마치 기도는 한가한 노인들이나 하는 것처럼 오해합니다.
마틴 루터는 “만약에 내가 매일 아침에 두 시간을 기도하지 않으면
그 날은 사탄이 나의 하루를 지배해 버린다.
그래서 나는 일이 너무 많아서 하루에 세 시간을 기도하지 않고는 다른 일을
하나도 할 수 없다. 나는 너무 바빠서 기도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더욱 기도에 힘썼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삶의 핵심이고 최상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대개는 어떤 어려움이 생겼을 때 기도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최후의 방책이 아니라 최초의 선택이어야 합니다.
문제가 터져야 기도하는 것은 소극적인 신앙입니다.
문제가 터지지 않아도 일상에서 꾸준히 규칙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은
문제를 사전에 방지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일상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대부분의 문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아갈 때 찾아옵니다.
평소에 형식적인 기도로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3분 이상 기도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통계가 있습니다.
이 3분마저도 세 끼 식사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사업을 시작하고, 기도하지 않고 결혼을 하고, 기도하지 않고 이사를 하고,
기도하지 않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는 것은 신자에게 있어서 타락과 같습니다.
삶의 일상 속에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삶은 빗나간 삶입니다.
그런 삶 속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가 없고
결국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타락의 삶입니다.
평소에 모든 영역에서 기도를 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전 영역에 하나님은 언제나 필요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도하기 시작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기도의 위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기도의 불을 밝히면 삶은 강력해지고 위기를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한 국가보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더 낫다.”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영국의 메리여왕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수십만의 군대보다 존 낙스의 기도가 더 두렵다.”
또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다.”라는 말은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한 해 동안 붙들어야 하는 것은 더 많은 열심과 노력 이전에 기도입니다.
하나님 없는 열심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기도에 더욱 힘쓰는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신년설교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은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는 우리 삶의 길을 엽니다.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기도한 만큼 우리의 미래는 열리게 될 줄 믿습니다.
◑2. 말씀
또 하나의 축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공생애 시작 전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신 이후 마귀가 시험을 걸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이 되게 하라.” 대단한 유혹입니다.
40일을 금식하고 나면 어떤 상태일까요? 우리는 경험해보지 않아서 모릅니다.
저는 일주일 금식을 몇 번 해보았는데 일단 3일째까지가 무척 힘이 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먹을 것처럼 보입니다. 인간의 식욕이 얼마나 강력한지 느낍니다.
예수님은 40일을 굶으셨고 돌을 떡으로 만들 능력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유혹하는 마귀에게 마4:4절의 말씀을 하십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주님은 40일 굶으셨고 죽을 수도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큰 울림의 지혜를 주시고 계십니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떡이 아닌 진리를 선택하겠다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집착을 보여 주십니다.
주님은 지독하게 굶주린 상태에서 육체의 가장 깊은 밑바닥으로부터 솟구치고 있는
인간의 욕구와 절실한 필요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40일 굶으셨지만 단순한 40일이 아닙니다.
인류 최초로 하와가 느꼈던 탐욕까지 닿는 원초적 본능, 욕망은 깊고 강하지만
주님은 굶어 죽을 지경이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것은 진리이지 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장 배를 불려주는 떡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절실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숨을 고르고 깊이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그냥 ‘말씀이 중요하다, 좋다, 은혜롭다’ 정도로는 인간의 욕구를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떡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먹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이전에 진리의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는 항상 밀고 들어오는 이슈입니다.
진리냐 빵이냐의 문제는 일상에서 늘 첨예하게 겨루는 싸움입니다.
2016년에도 이 문제 앞에 늘 고민하고 갈등하게 될 것입니다.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이 빵의 문제는 우리 목을 조여 옵니다.
언제든지 에서처럼 팥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 위험이 있습니다.
진리는 멀어 보이고 빵 문제는 코앞에서 우리를 흔들어 댑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이해하고 붙들고 있는가에 따라, 우리의 신앙은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보 정도가 아닙니다. 철학이나 이념과도 다릅니다.
주일에 한 번 아니면 가끔 성경책을 겨우 여는 정도로는 결코 세상의 빵의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없습니다.
육체적 본능을 건드리는 유혹을 쉽게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추상적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는 수없는 착시 현상이 일어납니다. 진리보다 떡이 더 크게 보일 때,
그 떡을 선택하기 위해 진리를 차 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외면하고 떡이 생명을 주는 것처럼 착각하고 먹는 순간 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시체가 되었던 이유가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포기하고 먹는 탐욕에 빠졌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힘들어진다면 이유가 무엇일까요?
환경이 어려워가기 때문일까요?
경제적 여건의 악화 등 우리를 둘러싼 요인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우리 삶을 풀어가는 주된 방식과 관심이 아닙니다.
세상은 주로 돈 문제. 생존의 문제로 모든 것을 풀어가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삶의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우리 삶이 힘들어져 가는 이유는 빵의 문제가 아닌 진리가 약화되어져 가기 때문입니다.
빵의 문제에 매달려 있는 동안 우리의 삶은 길을 잃어버리고 신앙은 약화됩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말씀을 무시하는 경향이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무시합니까?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바로 무시하는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기갈 중의 기갈은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이 끊겨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재앙입니다. 육신의 양식이 채워졌다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먹을 것을 쌓아 놓았다고 행복할 수 있는 간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돈이 없거나 가정에 문제가 생기거나 직장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삶에 위기가 찾아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첫 번째 작업은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것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당한 문제의 해답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처세술, 인문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모든 인생의 정확한 답은 어디로부터 나올까요?
바로 여호와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붙들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이기게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지혜와 우리 삶의 빛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다 보면 힘이 납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고난을 이기게 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미래를 보여 줍니다.
말씀을 가까이하면 혼란했던 모든 문제들이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가까이하다 보면 내 삶의 염려가 사라지고 변화가 찾아오고 새로운 질서가 생깁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은 너무 가벼워졌습니다. 말씀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엉뚱한 곳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육욕은 점점 강해져 가고 진리에 대한 영적 열망은 점점 작아져 가고 있습니다.
말씀 앞에 서서 고민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방법으로 해결하기에 급급합니다.
바쁘면 유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바쁘면 무능한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은 더 꼬이고 문제를 자기가 풀려고 할수록 더욱 꼬입니다.
성경의 마리아와 마르다를 보면 마르다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한곳에 꽂혀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입입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향한 앙칼진 언니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비밀을 이미 안 사람입니다. 주님의 입을 주목하는 사람은
주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의 위력을 알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전적으로 그분의 발치에 앉아 있습니다. 그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말씀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고 생명이고 능력이고 구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고 길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려지면 길이 보이고 그 길에 빛이 비치어집니다.
시편 119:105절에서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등은 매일의 일상에 길을 비춰주는 말씀이고 내 삶 전체가 되는 길에 빛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매일의 삶에 빛이 되고 내 인생 전체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다면 흑암 가운데 더듬고 있는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마귀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오다”입니다.
이것의 본래 뜻은 “~에서부터 계속적으로 흘러나오는”입니다.
한 번 나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끊임없이 계속적으로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히4:1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고 합니다.
살아있고 생명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흘러들어 올 때
우리의 영혼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들어오면
모든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도 진리 안에서 우리 영혼이 회복되고 위로를 얻고,
소망과 기쁨을 가지고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귀에 들려지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내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들려지면 빛이 임합니다. 소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인격적인 분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우리와의 관계 안에서 당신의 말씀을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우리와 인격적으로 교제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주일 설교를 듣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역사, 깨달아지는 은혜,
성령의 조명이 일어나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려질 때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부지런히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들을 줄 아는 귀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우리의 삶에 능력이 됩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에 깊이 빠져 말씀의 즐거움을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때 우리의 삶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하는 일이 형통할 것이라고 시편 1편에서는 말씀합니다.
여호수아서와 시편 1편에서는 말씀 묵상과 형통은 함께 있습니다.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말씀을 들어야 살아납니다. 신자는 빵의 힘이 아닌 진리의 힘으로 삽니다.
마치는 말
기도와 말씀의 두 축이 우리의 삶을 비춰주고 이끌어 줍니다.
기도와 말씀을 제쳐놓고 신앙생활이 자랄 수 없습니다. 삶의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두 가지가 빠지면 삶은 연약한 지반에 세워져 있는 집과 같습니다.
겉으로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말씀과 기도, 이 두 축 위에 세워있지 않는 인생은
모래 위의 집과 같습니다. 기도와 말씀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둘 중 하나를 약화시키면 안 됩니다. 기도와 말씀은 함께 가야 합니다.
우리 두 발이 똑같이 건강해야 하는 것처럼 말씀과 기도가 똑같이 건강해야 합니다.
둘 중 하나만 건강하다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기울여지기 쉽습니다.
말씀을 보는 만큼 기도하고 기도하는 만큼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기도는 말씀 안에서 깊어집니다. 기도가 깊어지려면 말씀을 봐야 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이 풍성하면 기도가 풍성해집니다.
말씀을 보는 사람은 기도해야 하고 기도하다 보면 말씀이 강화되고 깨달음이 깊어집니다.
둘의 균형을 가지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허약해집니다.
“오로지 기도와 말씀 사역에 힘쓰니라”라고 하는데
“오로지”와 “힘쓰니라”라는 단어를 눈여겨봐야 합니다.
우리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믿음직스러워 보여도 그것은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진짜보다 가짜가 더 진짜같이 판을 치는 세상에는 고도의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자칫하면 가짜를 따를 가능성이 많습니다. 거짓된 속임수에 우리의 삶을 맡길 수 있습니다.
진짜를 붙잡아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의 긴장감을 높여야 합니다.
느슨하게 붙드는 애매한 신앙생활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나도 확신하지 못하는 진리로 어떻게 세상과 승부를 걸겠습니까?
기도와 말씀의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밖에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세상이 혼란해질수록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에 매진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균형 있게 붙잡고 이 두 축을 가지고 살아가면 전천후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미래를 알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살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고 그것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인생은 책임져 주십니다.
신년에 이 말씀을 붙드시길 권면합니다. 성경을 끼고 사십시오. 말씀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진리이고 영원하며, 성경만이 우리 삶의 빛이고 능력입니다.
기도에 힘쓰십시오. 바쁠수록 기도하십시오. 우리 삶의 해답은 말씀과 기도에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에 생명을 걸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과 말씀이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미래라는 것을 아시고
말씀과 기도로 승리하시는 한 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