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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상승기류를 타라

LNCK 2025. 1. 4.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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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상승기류를 타라     이사야 40:27~31        2016.01.01.설교문 스크랩

 

◑피곤하고 지친 현대인

 

말세가 되면 피곤합니다. 이것이 말세의 특징입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빨라지기 때문입니다.

교통이 발달하면, 편리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곤합니다.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예언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피곤’, ‘곤비’, ‘무능’, ‘넘어짐’, ‘쓰러짐’이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개역한글성경에 보면, ‘쓰러지다’라는 단어 대신, ‘자빠지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자빠진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본문 30절에 보면,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소년은 쉽게 피곤해지지 않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지칠 줄 모릅니다. 힘이 넘칩니다.

아침이 되면 벌떡 일어납니다. 청년도 마찬가지입니다. 밤을 새도 끄떡없습니다.

 

그런데 소년과 장정이 지쳤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지치고 피곤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를 의미합니다. 인간이 가진 힘의 한계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대단해보여도 한계를 넘어서면 무너진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외적인 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사회적으로,

모든 면에 있어서 한계에 도달하면, 모두 무너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늘 경험합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고 난 후,

전반기가 지나가기 전에 무너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나면 무너지기 시작하여 12월이 되면 만신창이가 되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희생자가 많습니다. 부상자가 늘어납니다. 가정적으로, 영적으로 무너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1월에는 마치 천국에 도달할 것 같습니다. 영적으로 충만합니다.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나면, 뭐든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몇 개월 지나고 나면, 삶이 힘들다고 구시렁거립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신다는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본문 31절에 보면, ‘새 힘’이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왜 ‘새 힘’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지금의 상황은 다른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지쳐버린 이스라엘 민족을 새롭게 회복시켜줄 수 있는 힘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를 쉽게 지치게 만듭니다.

‘피곤하다’는 말은 이 시대의 유행어입니다.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무너져버립니다.

지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는 것이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이전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는 것은 피곤의 연장일 뿐입니다.

 

오늘 하루를 힘 있게 산 사람은 내일에 대한 기대감을 갖습니다.

그러나 오늘 피곤하고 지쳐있는 사람에게 내일은 절망적입니다.

 

삶이 피곤한 이유는 떠밀려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삶의 주도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삶을 자기 스스로 이끌어나갈 에너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두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들은 떠밀려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식이 없고, 자유가 없고,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 있으면, 침체 recession 를 경험하게 됩니다.

침체는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우울 depression 도 일종의 침체입니다.

 

침체의 덫에 걸리면 무섭습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보내며 고통스러워합니다.

낙심과 절망,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울증이 되고, 심해지면 자살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습니다.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위험한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본문 이사야 40:27절에 보면,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다.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돌봄을 받지 못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모르신다. 내 삶은 하나님의 눈에서 벗어났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침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돌봄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일들이 많이 보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갑자기 바닥을 쳤습니다.

 

엘리야는 굉장히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천후였습니다.

갈멜 산에서 850대 1의 싸움을 치를 정도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굉장히 강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힘이 빠져버렸습니다.

심각하게 지쳐버렸습니다.

 

엘리야만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시편 42편에 보면, 다윗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낙심하여 매우 불안한 상태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울증의 증세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와 요나 선지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적으로 굉장한 침체 상태에 빠졌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무너져버렸습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무너졌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모델로 삼았던 사람이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칩니다. 인간은 다 무너집니다.

 

▲본문에 보면, 소년과 장정이 그런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이런 상태에 빠지면, 영적으로 침체되지만, 의심과 절망, 분노와 적대감이 생깁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삶이 추락합니다.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매우 위험해집니다. 앞으로 치고 나아가는 힘이 없습니다. 삶에서 공회전을 반복합니다.

 

어느 순간 우리의 삶이 주저앉아버릴 수 있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고, 정체(停滯)에 빠질 때, 사람들은 의욕을 상실합니다.

 

오늘날 사회에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인생이 쉬웠던 적이 있습니까?

굉장히 어렵습니다. 다양한 사건과 일들이 일어납니다.

 

30대까지는 무엇인가 시도해봅니다. 그래도 30대는 희망적입니다.

40대가 되면, 불안이 가중됩니다. 30대일 때는 희망이 남아있습니다. 젊음도 있습니다.

기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40대가 되면, 불안이 커집니다. 그 고비를 넘지 못하면 삶이 힘들어집니다.

 

50대가 되면,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모든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쪼그라듭니다.

50대가 되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여 성공할 가능성이 점점 줄어듭니다.

 

청년들에게는 취업과 결혼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결혼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쪼그라듭니다.

마음이 위축됩니다. 피곤해지고 자신감이 사라집니다.

 

영적으로든 육체적, 사회적으로든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다 보면, 영적으로 새로움과 감동이 줄어듭니다.

 

관록이 늘수록 주변의 기대도 늘어납니다. 책임이 많아졌습니다. 직분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갈망할 만한 영적 에너지가 풍성하게 없으면, 모든 것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에너지가 계속 나오고 흘러 넘쳐 파도쳐야 합니다.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변화가 전혀 없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면, 처음 1년 동안은 희망을 갖습니다.

무엇이든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 아무 변화가 없다면, 절망에 빠집니다.

목회자로서의 정체성 identity 이 무너집니다.

목사가 맞는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 맞는지 의심합니다.

 

5년이 지나도 아무 변화가 없으면, 소명감마저 의심합니다. 소명감이 흔들립니다.

그렇게 되면, 가정도 흔들립니다. 그렇게 되면 침체됩니다. 우울해지고 바닥을 치게 됩니다.

 

◑피곤한 인생에, 하나님은 나의 힘의 원천이 되신다

 

본문 이사야 40:28절에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고,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느끼는 피곤, 곤비와 대조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힘이 고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은 고갈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힘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현재이십니다.

 

하나님은 한때 우리를 너무 열심히 돌보셨기 때문에 이제 기력이 쇠해지셔서

우리를 도우실 수 없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를 도우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에너지원(源)이십니다. 원자는 아주 작은 것인데,

분열이 일어나면 엄청난 파워(power)가 나옵니다. 그것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힘의 원천이십니다.

 

왜 소년이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 넘어지며 쓰러집니까?

힘의 공급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하나님의 공급은 마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우리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원래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실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배터리와 같습니다. 계속 충전해야 합니다. 에너지를 계속 채워야 합니다.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힘이 계속 공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내버려두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힘을 우리에게 공급해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난 후에 우리를 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계속 돌보십니다. 계속 우리에게 공급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유지하게 하십니다.

 

▲1. 첫째, 본문 이사야 40:29절에 보면,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여기서 주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피곤해지신다면, 그것은 큰일입니다. 우리는 갈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곤을 모르시고, 지칠 줄 모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무시지도 않으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께서

우리의 길을 모르시겠습니까. 아무도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매우 잘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태를 잘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명철이 한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이 무엇입니까?

 

본문 이사야 40:31절에 보면, “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독수리는 유일하게 수직상승하는 새입니다.

바람을 이용하지 않고, 스스로 날갯짓하여 상공으로 상승하는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여느 새들과 다릅니다. 다른 새들은 수직상승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날개’는 힘을 상징합니다. 강력하고 용맹스러운 이미지와 연관이 있습니다.

공군, 비행기라는 단어도 히브리어 날개와 어근이 같습니다.

 

전투기의 모습은 대단합니다. 순간적으로 날아오릅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독수리가 언제 수직상승합니까? 위기의 상황에 수직상승합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면,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는 수직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위기의 상황이 닥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독수리같이 날아올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삶의 위기 속에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삶의 곤란 속에서 우리의 날개에 힘을 실어주십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상공을 날아오르는 것 같이 날아오르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뒤에 애굽의 군사들이 따라오고,

앞에 홍해가 놓여있는 답답한 상황 속에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신 사건은, 마치 독수리가 날개 치며 하늘을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위기로부터 벗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삶의 위기 순간을 내 힘으로 극복하려 하면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수직상승하게 하시면, 의외로 쉽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위기의 순간에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독수리같이 날아오르는, 수직상승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면,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위기의 상황입니다.

그때는 솟아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의 신앙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2. 둘째, 본문 이사야 40:31절에 보면,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여기서 ‘달음박질’은 최선을 다하는 삶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열심히 삽니다. 다른 어느 민족보다 열심히 사는 민족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순발력은 있는데, 뒷심이 부족합니다.

이어령 박사는 “한국 사람들은 머리도 좋고, 순발력도 탁월하고, 능력이 많은 반면,

스태미나(stamina)가 부족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뒷심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지구력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단거리 경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순발력만 있어서는 안 되고, 지구력이 있어야 합니다.

 

한때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한때 열심히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멈추어버립니다.

지속적으로 변함없이 달려가야 승산(勝算)이 있습니다.

 

나중에는 지구력의 싸움입니다. 힘을 언제까지 지속적으로 꾸준히 낼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한 해의 시작부터 끝까지 동일한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멋진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기준과 목표를 정확하게 세우고, 꾸준히 달려간다면, 엄청난 인생이 됩니다. 그

리고 그런 생활이 유지되면, 인생이 날아오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지구력이 없습니다. 하다가 그만둬버립니다.

용두사미가 이런 때를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대단한 일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뱀 꼬리처럼

의지가 스르르 식어버립니다. 에너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10년, 20년 변함없이 나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에너지를 유지해서 동일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도중하차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에 돌발적인 문제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삶이 변칙적입니다. 가족이 아플 수도 있고, 사고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나는 잘하고 싶은데, 인생을 피곤하게 하고, 힘들게 하고, 곁길로 빠지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내 힘으로 버틸 수 없는 일이 닥칩니다. 많은 변수가 발생합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도록 우리를 잡아당기는 듯한 상황이 발생할 때가 많습니다.

사건과 일들이 불가피하게 계속해서 발생하면, 한계를 느끼고, 삶을 포기해버립니다.

 

우리의 힘만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수많은 변수 앞에 주저앉아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내 힘만으로 버티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우리의 삶에 수없이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전 같으면, 벌써 끝났을 텐데, 하나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용기를 주셔서 다시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고비, 고비를 넘어가게 하십니다. 이겨내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삶에 별별 일이 일어나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면,

고비와 위기와 여러 가지 사건 속에서도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3. 셋째, 본문 이사야 40:31절에 보면,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일상에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를 지치게 만듭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반복해서 일어나면 힘들어집니다.

아무 감동 없이 살다 보면 피곤해집니다.

피곤이 쌓이고 쌓이면, 인생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일상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상의 무게가 만만치 않습니다.

매일 우리에게 밀려오는 일을 처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듭니까. 남자 아이 둘을 키운다면, 전사가 됩니다.

집은 전쟁터가 됩니다.

 

직장인들은 얼마나 힘듭니까. 이제 막 취직한 사람들은 얼마나 힘듭니까. 정신없습니다.

말단직원으로 코피가 터집니다.

간부가 되면 힘들지 않습니까. 간부가 되어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다루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일상의 삶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감당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일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일상에서 승리하면, 모든 일에 승리합니다.

 

일상을 사랑하고, 매 순간 찾아오는 압박감을 이겨내는 것도 힘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저의 일상은 거의 똑같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냅니다.

이전에는 사무실에서 가끔씩 바다를 내다보기도 했는데,

요즘은 사무실 블라인드를 내려놓았습니다.

 

사무실에서 책 읽고 설교를 준비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시간을 들여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설교 한 편을 준비하는 데 30시간을 투자한다면, 좋은 설교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사무실에 있는 것이 즐겁습니다. 사무실에서 책을 읽고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것도 즐겁지만, 설교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강단에 서는 것도 즐겁습니다.

 

일상은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지만, 오늘이라는 평범한 일상을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매일 일상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일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즐겁게 생활한다는 것은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일상에서 지치지 않는 사람은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일상의 삶 속에서 피곤해하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여러분의 일상 속에 궂은 일, 힘든 일이 있어도,

그것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위로부터 부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자녀들을 공부시킨 것을 감사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해야 합니다.

죽지 못해 할 수 없이 지겹게 살아가는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본문에서 우리에게 와 닿는 최고의 명 문장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입니다(사 40:31).

 

여기서 힘의 근원, 파워의 출처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어디에 플러그 인(plug in) 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집에 가면,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습니다. 배터리를 오래 사용하면 방전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집에 가면,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힘이 빠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해질 때,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노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수렁에 빠집니다.

 

우리는 살아가다가 문제를 만나면, 우리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씁니다.

우리는 힘들면, 더 좋은 방법, 더 좋은 묘수, 더 좋은 수단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힘들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라고 말했습니다(고후 12:10).

사도 바울은 왜 약한 때에 강함이라고 말했습니까?

우리에게서 힘이 빠질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서 힘이 빠질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해도 괜찮습니다. 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적당히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자기관리를 너무 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잘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려면, 자신의 힘이 다 빠진 한계상황을 경험해야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 후에 인간의 절대 한계를 느껴봐야 합니다.

절박한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만 믿고 살아가지 마세요. 한계에 도전하세요. 밀고 나아가보세요.

끝이 어딘지 경험해보셔야 합니다. 우리의 힘이 소진되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새 힘은 인간의 힘이 아닙니다.

새 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입니다. 그 힘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섭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일하면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새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체험해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힘이 없다, 나에게 능력이 부족해서 할 수 없다”라고 말하지 마세요.

우리가 연약하고, 우리에게 한계가 있다는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 자신을 믿었다가는 큰 일 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머물러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보세요.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이 흘러넘치는 사람이라도

그것을 믿고 살았다가는 한 방에 무너집니다.

누가 봐도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한 방에 무너집니다.

 

그런데 사람의 눈에는 약해 보이고, 힘든 것처럼 보이는데,

무슨 일이든 잘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겉모습이나 자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에 연결되어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에너지 공급처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우리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할수록 더 좋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접속되어있으면,

하나님의 힘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흘러옵니다.

우리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달려가려면, 항상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매일 매일 충전해야 합니다.

충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려면,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날마다 하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경건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꾸준히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갈망해야 합니다.

무엇인가 하려는 것보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마틴 루터는 “나는 바쁠수록 더 기도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이 많으면,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이 많고 바쁠수록 기도 시간을 더 늘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데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할 일이 많아지면, 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금방 방전되어버립니다.

일이 많으니 잠시 충전한 후 다시 일에 몰두합니다. 이렇게 하면, 금방 지쳐버립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지 않고, 일에 몰두하면,

하나님의 일을 자신의 힘으로 하려다 보니 힘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부어주시는데, 하나님께 접속하지 않기 때문에 힘듭니다.

우선순위(priority)가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은

절대 낭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으면, 우리의 힘으로 무엇인가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 31절에서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wait)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잠잠히, 오래, 가만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다릴 때, 기다림을 통해 채워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평안이 옵니다.

안정감이 옵니다. 염려가 사라집니다. 근심이 물러갑니다. 참된 자유가 옵니다.

 

나를 짓누르던 무겁고 어두운 생각이 떠나가고, 하나님 안에서 주어지는 평강과

자유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하늘로 오르는 것 같은 새 힘이 채워집니다.

 

우리를 누르는 잡다한 생각이 우리를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염려입니다.

내가 하려는 대로 되지 않으니까 악을 쓰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짓눌려있습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지쳐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으면, 모든 것이 사라져버립니다. 나를 끌어당기던 것이 없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끌어올리시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에게 새 힘이 생깁니다.

 

독수리가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면, 다른 것이 더 이상 방해하지 못합니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은 기막힌 표현입니다.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고 날아오릅니다. 제한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을 때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까?

내 안에서 힘이 흘러넘치기까지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새 힘을 얻는다는 동사의 실제적 의미는 더 좋은 것으로 바꾼다는 것입니다.

대체(代替)하다, 교환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대체될 때, 우리에게 새 힘이 주어집니다.

완전히 방전되었는데, 새로운 배터리로 갈아 끼운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영혼에 솟구치는 힘이 생깁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은혜 받고 나면, 새로운 힘이 생깁니다.

 

매일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생활을 꾸준히 한 사람은 에너지가 방전되는 시간이 없습니다.

언제나 충전되어있습니다. 언제나 충만함이 있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신다고 할 때, 그냥 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충만히 주십니다. 풍성하게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이라고 표현했습니다(엡 3:8).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어느 순간 솟아오릅니다.

비상(飛上)합니다. 수직상승합니다.

 

왜 염려하는 삶을 삽니까? 날아오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왜 스트레스 속에 살아갑니까? 비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눌려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숨어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외면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