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삼상8:1~9, 에1장 2024.12.08.설교녹취
*원제목 : 권력 의지를 가진 자에게
◑경청하십시오!
본문은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신정이 아니라, 왕정을 요구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삼상8:1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저희가 내년 2025 1월 말에 성지 순례를 갑니다.
당연히 이스라엘은 못 가고, 튀르키예, 그리스, 로마를 가는데
39명이 매주 토요일날 모여서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어요.
이번에 중동 역사를 다시 보면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북아프리카 지역, 중동 지역에 장기 집권하고 있는 독재자들이
다 한때는 민족 영웅들 이었더라고요.
그 이전 시대의 독재자들을 끌어내리고, 군사 독재를 종식시킨 영웅들이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도 권력의 자리, 권좌에 딱 올라서는 순간
권력의 맛에 중독이 되니까, 이전의 지도자와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거예요.
여러분 리더들이 언제부터 문제가 심각해 지는가요?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할 때입니다.
에스더서를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등장을 하죠.
페르시아 제국 내에 127개 도를 통치하는 대 제국이었죠.
근데 에스더서 1장에 보면, 이 왕이 엄청 호화로운 궁중 술 파티를 벌였어요.
그것도 180일 동안 연속해서! 계속 부어라 마셔라 했습니다.
제국이 워낙 커서, 일찍 도착해서 중간에 떠난 사람도 있었고,
뒤늦게 중간 쯤에 와서, 파티 끝 시즌에 떠난 사람도 있었겠죠.
그러나 세상에 공짜 밥이 있나요? 없어요.
밥값이 비쌀 수록 없어요.
'그리스 원정 가서 목숨 내놓고 싸우라!'는 주문이었거든요.
그런데 에1장에 보면, 왕비 와스디가 왕의 말을 안 듣는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근데 상황은 거꾸로 였습니다.
사실은 와스디가 그리스 원정을 반대했던 거죠.
근데 왕이 그 왕비의 말을 듣지 않았어요. 혼자서 밀어 붙였어요.
그리고는 그리스 원정에서 크게 대패하여, 깨지게 됩니다.
제국의 모든 힘과 에너지와 인력을 다 낭비하고 허비하고 돌아왔어요.
그러자 실패한 왕 곁에서, 사람들이 흩어지고 시작합니다.
그래서 에1장에 등장하는 매데-바사 두 나라가 합쳐져서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을 했던 것이거든요.
그런데 메데-바사의 중진들이 다 사라지고,
그리고 왕궁에 있던 일곱 내시, 즉 7명의 최고 고위직들이 다 사라지고,
그리고 왕에게 충언을 해주던 현자들이 다 사라집니다.
그래서 에2장부터 보면, 여러분 왕 옆에 딱 한 사람이 남게 돼요.
누구에요? 악인 하만 딱 한 사람 남게 돼요.
여러분, 여러분이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면,
여러분 주변에서 좋은 사람들이 사라지게 돼 있어요.
'내가 왕을 이용해 먹어야지' 하는 의도가 있는 사람을 빼고는,
결국에는 다 왕을(나를) 떠나게 되어 있어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충언을 해 줘야되겠다'
이런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은.. 다 떠나게 돼 있어요.
계시록 2장과 3장에 가장 많이 나오는 표현인데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계2:7
여러분 이 시대가 아무리 속도전이 되었고
또 한국 문화가 빨리 빨리 문화일지라도,
경청하시라는 거예요.
첫번째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셔야 되고,
두 번째는 여러분 내면의 소리를 들으실 수 있어야 돼요.
자기가 말을 하고 있으면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런 분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게 정말 해야 할 말인지, 아니면 이거를 내려놔야 될 말인지'
이거부터 분별하고 이야기를 하셔야죠.
세 번째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셔야 돼요.
▲삼상8: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들으라'
'샤마'라는 히브리어죠.
8: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9절에도 '듣되'
'사무엘'이란 이름도 ..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뜻이죠.
하나님은 사무엘보고도 '백성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고, :7, 9
하나님 자신도 '백성들의 말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요구하는 '왕 제도'를, 하나님은 수용하시고,
그들에게 '왕 제도'를, 사무엘을 통해 가르치셨습니다. :9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이여, 경청하십시오!
사회의 지도자들이여, 경청하십시오!
가정의 부모님들, '내 말 좀 들어라' 이 얘기만 하지 마시고
여러분도 자녀들의 얘기를 경청해 주십시오.
그렇게 경청하기를 잘 하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어요.
◑사무엘의 아들들
삼상8:2~3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요엘' ..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아비야' .. '여호와는 아버지시다' 라는 뜻이죠.
두 아들의 이름이 멋지다고 해서, 내용이 충실하는 보장은 아니잖아요.
이스라엘 중부 지역 라마에 있는 사무엘이,
젊을 때는 이스라엘 전국을 순회 통치하면서, 열심히 돌아 다녔지만,
이제 나이가 들었잖아요. 그래서 먼 곳을 못 다닙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최남단 지역에, 즉 가장 가기 힘든 먼 곳에,
자기 두 아들을 사사로 세워서, 백성들을 섬기도록 했던 거예요.
일종의 지도자 훈련 차원이었죠.
그런데 그가 계획했던 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두 아들이 '이익을 따랐고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습니다.' :3
여러분 사무엘의 두 아들들의 실정을 보니까,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생각이 납니다.
뭔가 잘못된 역사가 또 반복되는 듯한 패턴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사무엘의 아들들이 만약 사사가 안 됐다면, *2절에 그들이 사사가 되었음
이런 잘못을 저질렀을까요? (아닐 거예요)
우리가 보통 세상에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면도 있죠.
'자리가 그 사람의 자질(약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자리에 오른다고 해서, 리더십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질이 없는 사람이 그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자기도 망하고, 시대도 망하는 경우들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자리가 아닌, 자질이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영어로 포지션이 아니고, 포텐셜이 그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내면 세계가 결국에는 밖으로 드러나게 돼 있어요.
그런데 우리의 내적 형상을 온전하게 다듬으실 수 있는 분은
선하시고 의로우시고 완전하신 하나님 밖에는 없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거예요.
◑백성들의 요구가 잘못된 이유
삼상8:4~5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모든 장로가 사무엘에게 나아왔다'는 것은
이미 장로들 본인들끼리는 내용에 대해서 만장일치 합의를 보고 온 것이죠.
그리고 이제 제안을 한 거예요.
'신정 제도가 아니라, 왕정 제도를 허락해 달라!'
그들이 제시한 표면적인 두 가지 이유는
-당신은 이제 은퇴할 나이가 됐고
-당신의 자녀들은 후계자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니까 사사의 통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는 왕의 통치를 받고 싶다...는 것이죠.
여러분 겉으로 볼 때는, 그들의 요구가 특별히 문제가 없는 주장이었어요.
근데 이들의 합리적인 주장에 치명적인 문제들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리더가 팔로워들의 말을 경청해야 된다'고 이야기 했는데,
팔로워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고, 리더의 말을 경청하고,
본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에 대해서
좀 묵상하고 경청을 해 볼 필요가 있어요.
▲1. 첫 번째 '이것은 전적으로 당신이 책임져야 될 문제다' 라고 주장했지만, 과연 그런가요?
'당신은 늙었고 당신의 아들들은 부적합하다...'
아니 뭐 사무엘의 아들들이 뇌물까지 받았으니, 할 말은 없었겠죠.
하지만 여러분, 세상 만사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잖아요.
뇌물을 받은 사람만 있나요? 뇌물을 준 사람들(백성들)이 있는 거잖아요.
여러분 당시 사사시대의 마지막 시대는, 도덕성과 영성이 완전히 바닥을 치던 때입니다.
그래서 부당한 요구나 청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겠고,
물질로 리더(사사)를 흔들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한 해를 살아가면서, 일터에서 '내가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든 이뤄야지..' 그러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막 열심히 일할 때가 있잖아요.
그러나 연말이 되면 항상 정산할 때가 오죠.
재정 감사가 들어오고, 조직 감사를 받게 되고,
인력 관리, 조직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다 감사 받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 절세 와 편법은 다른 것입니다.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했습니다.
여러분, 그래도 편법은 편법이잖아요. 선물과 뇌물은 다른 것입니다.
'선물은 테이블 위로 주고, 뇌물은 테이블 아래로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받는 순간 알게 돼 있어요.
그리고 정당한 요청과, 부당한 청탁은 분명히 다른 것이에요.
나랑 친한 사람이든 아니든 간에...
'아닙니다. 목사님 저도 나름 세상 기준에 맞춰서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세상 기준에 맞춰서 하시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의의 기준대로 사시라는 거예요.
하나님 기뻐하시는 않는 거 하지 마세요.
'아, 그럼 도대체 사업을 어떻게 하라는 얘기인가요?
도대체 세상 일을 어떻게 하라는 얘기인가요?'
더 성실하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하세요.
성실함과 은혜로 세상을 돌파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두 번째는 본문 5절에 보면, '모든 나라와 같이' 이렇게 얘기했어요.
'모든 나라와 같이' 근데 영어로는 all other nations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이방 나라, 이방 민족과 같이 되겠다'는 얘기를 한 거예요.
이거는 정체성에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여러분 그들 주변에 있던 에돔, 모압, 암몬.. 이런 민족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왕정을 시작했어요.
창세기를 보면 에서의 후손들은, 이미 왕들의 명단이 족보에 줄줄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강력한 왕권을 수립을 하고, 전쟁을 치르게 되면
왕이 일사불란하게 백성들을 이끌고 나가는 거예요.
근데 이스라엘은 12지파 연합 체제 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하나 되게 만드는게 너무 너무 힘든 거예요.
그리고 상비군도 없고, 막상 전쟁 터지면 그제야 농기구 들고 있는 사람들 모여서
싸우자고 얘기를 하는데, 그것도 전령을 12명을 보내서, 이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돼요.
'그러니까 얼마나 불편 하냐? 우리도 강력한 왕이 필요하다...'
그러면 생각해 보세요.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강력한 왕이 없어서 힘들었는가요?
지난 360년 동안 하나님이 이런 놀라운 축복의 땅을 주셨는데
우상 숭배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아서 어려워졌던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요?
좀 더 나은 사회 시스템을 만들고, 좀 더 좋은 지도자를 세우면... 이거 다 해결 될까요?
과연 거기에 우리의 모든 희망을 걸 수 있는가요?
여러분 서구 역사를 잠시 생각해보면, '봉건 영주제' 라는 표현을 쓰죠.
봉건 제도는, 1차 산업, 즉 농업, 어업 등의 1차 산업에 기초해서
지방의 세력들, 호족들, 영주들이 힘을 발휘하던 그런 시대죠.
그러나 이런 시대가 한계점에 다다르면서,
그리고 유럽에서는 절대 왕정이 등장을 하게 됩니다.
이 절대 왕정은, 강력한 왕권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죠.
근데 왕권이 너무 강해지니까, 서민들의 목숨이 이제 너무나 소중하지 않게 다뤄지는 거죠.
결국에 그 한계점에 도달해서, 많은 나라, 많은 지역, 많은 민족들 가운데서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그 결과 자유민주주의가 시작이 됩니다.
그러면 자유로운 경쟁 시스템을 도입한 이 시장경제는 완벽 했는가요?
시장 경제가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상당히 많이 해줬고,
예전에 뭐 모르던 걸 많이 채워 줬지만
그러나 극단적인 부의 양극화 현상, 부익부 빈익빈이 심각해지고,
그래서 산업혁명이 한참 진행될 때는
유럽의 웬만한 나라들에, 어린 아이들까지 다 공장에 동원이 됐잖아요.
정말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야 되었던 시대 였죠.
그러다 보니까 이번에는 평등한 공산 공동체를 건설하겠다고 하면서
사회주의의 운동이 일어나게 됐어요.
그러면 공산주의 국가들이 유토피아를 건설 했나요?
천만의 말씀! 정반대의 결과가 온 것이죠. 왜 였을까요?
인류 역사에서, 시스템을 바꿔서 이상 사회를 건설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어떤 시스템을 만들든, 문제의 핵심은 오퍼레이터, 운영자인 인간에게 있다는 걸
사람들이 간과하는 거예요. (백성들이 구하는 왕정 제도도 그와 같은 거죠)
좀 더 이상적인 시스템, 이상적인 지도자 상,
그러나 결국에는 그 오프레이터인 인간이,
얼마나 흠이 많고 죄가 많은 심각한 존재인지에 대해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오류가 생기는 거예요.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는가요?
약소민족으로 시작한 이 히브리들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구원으로 나라를 세워 주시고 나면,
이들이 '아, 인간의 절대 결핍과 하나님의 절대 은총을 깨닫는 사람들이 될 줄' 아셨던거죠.
그런데 여러분, 인간이 정말 하나님 앞에 고백하기를
'이게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인간은 절대적으로 결핍이 있는 존재이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것을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전방위적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도와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에요.
그런데 이들의 주장처럼 '왜 우리가 세상 사람들 같이 되겠는가요?'
여러분 자신들의 영적인 유산, 영적 헤리티지를 망각하는 것이고
자신들의 영적인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그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백성들을 이끌어내서
약속의 땅에 데리고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너희는 이런 민족이다. 이런 나라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장면이 나와요.
신4: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세상 모든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과 이렇게 친한 사람들이 있느냐?'
'없다!'
이것이 우리의 자부심인 것이죠.
세상에서 크리스천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소외당하는 소수, 왕따 당하는 소수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창조적인 소수'로 살아가는 길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세상의 정치인들도 사업가들도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점집에 들락거리는 시대가 됐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전능자 하나님과 친밀하게 살아가는 기도자요, 예배자로 사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 왜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좇아가려고 하는가요?
여러분 살다 보면 '아, 세상 사람이 부럽다' 그런 마음이 드실 때가 있어요.
'아, 나도 저 세상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
아니요! 우리는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죠.
요즘 제가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 자녀들이 초중고등학교에서 '나 교회 다녀!' 그러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대요. 교회를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예전에 저희가 어렸을 때는, 정말 교회를 크리스마스 때나
아니면 부활절이나 이럴 때, 친구 초대해서 많이 갔기 때문에,
교회를 안 나가본 애들이 없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대한민국의 차세대 대학생, 청년들이 미전도 종족이 돼가고 있어요.
미전도 종족의 기준이 복음화율 2% 미만이에요.
교회를 아예 안 가보고,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어요.
제가 프랑스에서 사역하시는 한 여성 목사님이, 그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프랑스의 청소년들, 젊은이들이 복음을 의외로 잘 받아 들인대요.
그 말을 듣고 제가 깜짝 놀랐어요.
여러분이 파리 올림픽을 보셔서 알겠지만, 프랑스는 극단적인 인본주의 사회거든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효과가 있다는 거예요. 왜요?
극단적 인본주의에 기초해서, 자기 자신 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그 청년들이
십자가의 희생적인 사랑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는 거예요.
'이게 진짜구나! 이게 내가 가야 되는 길이구나!' 이거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여러분, 복음을 알게 된 것이, 우리에게 큰 영적 자산이고,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버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길을 선택했어야 했어요.
삼상8:6~9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사무엘이 오랜 세월을 헌신적으로 봉사했기 때문에
그는 상당히 마음이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무엘보다도 더 마음이 어려워졌어요.
왜냐면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라, 나를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말을 경청하시고, 들어주셨습니다.
'왕을 세워 주어라'
그러면 하나님은 백성들의 요구가 잘못된 걸 알면서도, 왜 들어주신 거죠?
'한 번 혼나 봐라, 고생해 봐라' 하시면서 들어주신 겁니까?
이렇게 질문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여러분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구가 잘못된 것을 아실 때마다,
그 선택을 못 하게 하신다면,
아예 처음부터 자유의지를 안 주시면 되는 거예요.
'부모가 자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 이길 수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너 한 번 고생해 봐라!' 그런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녀가 인격적 결정을 내리게 해 주시는 거예요.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인격적 관계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인격적인 관계인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한 편에서는 '하나님 내가 기도하고 요구하는 걸 왜 안 들어주세요?'
이렇게 얘기하다가
또 한 편에서는 '왜 잘못 될 걸 다 아시면서, 이걸 미리 안 막아 주세요?' 합니다.
우리가 꼭 청소년 자녀들 같아요.
자기가 고집 부려서 그 길을 억지로 가 놓고
'이거 잘못될 거 알면서 왜 그때 뜯어 말리지 않았냐?' 또 이거 원망 하잖아요.
하나님께서 9절에 보면 '(왕정 제도를) 들어줘라. 그러나 경고를 해라
그리고 제도를 가르쳐라' 이거를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겁니다.
기회를 주는 동시에, 기준도 주어야 한다!
△이걸 달리 얘기하자면, 자율과 통제이죠.
여러분 거버넌스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구성 요소죠.
근데 만약에 자유롭게 해줘요. 자유 방임이에요.
그런데 아무런 기준도 없어요. 통제도 없어요.
그럼 조직이 엉망이 됩니다. 공동체가!
그런데 자율은 하나도 주지 않고, 통제만 해보세요.
그럼 사람들이 숨이 막혀 죽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와 진리, 사랑과 공의, 자율과 통제를 허락하시는
완벽한 리더십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근데 인간은 이게 불가능하거든요.
이 두 가지 상충(모순)되는 요소를 완벽하게 밸런스를 잡는다는 게, 인간은 불가능해요.
♣제가 오늘 네 가지 리더 유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마치겠는데요.
'멍게 멍부 똑게 똑부'
1) 멍게 리더
멍청하고 게으른 리더입니다.
즉 아무 생각도 없고, 실행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러나 여러분 서서히 무너져가게 돼 있습니다.
사무엘상에 이미 등장했던 엘리가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입니다.
잘못된 걸 알아요. 근데 고칠 생각도 없고, 고치려는 액션도 없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예고돼 있고, 그냥 서서히 잠식돼서 죽어가는 거예요.
2) 멍부 리더
리더십 유형에서 최악의 캐릭터입니다. 멍청한 데 부지런 해요.
잘못된 아이디어를 열심히 실행하는 거예요.
생각과 방향이 잘못됐어요. 리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서 '나를 따르라!' 이거죠.
자, 아하수에로가 그런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이고
또 한편 사울 왕도 이런 유형이죠.
하나님이 '너 그건 잘못됐어, 그 길로 가지 마!' 계속 얘기하시는데, 안 들어요.
하나님 음성도 안 들어요. 충신의 말도 안 들어요.
아들 요나단이 충언을 하는데, 그 아들 마저 죽이려고 해요.
그러니까 자기도 망하고, 시대도 망하게 돼 있어요.
3) 세 번째는 똑부 리더 입니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리더!
그러면 다 갖춘 것 같잖아요.
뭐 훌륭한 탁월한 업적을 남기게 되는 리더 입니다.
이 사람은 똑똑하고 부지런해서, 즉, 아이디어가 좋은 게 많이 있고,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다 실행해야 돼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이에요.
하는 일마다 대박이에요. 하는 일마다.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 내요.
그런데 문제가 뭘까요?
동시대 사람들이 너무 피곤해요. 이 피로도가 누적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다음 시대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후임자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만한 리더가 나올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실제로 솔로몬이, 전도서에 보면, 자기 후임자 걱정을 합니다.
그리고 역사 상으로도 르호보암이 그의 후임자로서 실패를 거듭하게 되죠.
4) 똑게 리더
게으르다 그래서 안 좋을 것 같지만, 최고의 리더십 유형으로 평가 받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뭐가 좋은지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기다려주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위임해 주고, 그 사람이 잘할 때까지 기회를 계속 주면서 기다려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에 해당되는 인물이, 다윗 왕입니다.
다윗 왕은 당대의 무장으로서의 실력은 원톱 이었어요. 따라올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 다윗이, 자기 혼자 스타로 활동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키워 냈어요.
그들이 오합지졸일 때부터 그들을 계속 기다려주고, 격려해 주고...
그래서 이 사람들을 키워내요. 할렐루야!
자, 여러분은 어디에 해당되시는 것 같습니까?
♣통제 욕구, 권력 의지
하나님께서 '왕을 세워달라'는 백성들의 얘기를 다 들어 주셨어요.
리더가 모든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 번째, 나는 언제나 누구에게 들을 준비가 돼어 있다.
두 번째, 그 얘기는, 어떤 한 사람에게 1백 프로 다 몰아 주지 않는 거예요.
다르게 얘기하자면, 누구도 1백 프로 신뢰하지는 않아요.
'나도 부족하고 여러분도 다 장단점이 있으니까, 함께 모아서 큰 그림을 그리자'는 거죠.
세 번째,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좋은 쪽으로 늘 변화할 가능성을 열어 둔다.
자, 그런데 대부분의 리더들은, 권력이 고착화되어 갈수록, 듣는 귀를 막아 버립니다.
이유가 뭘까요?
왜 사람들이 그 자리에만 가면 그렇게 될까요?
인간은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강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모든 사람이 그렇게 돼 있어요.
학생은 자기의 학업과 성적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고 싶어 하고요.
사업가는 자기가 사업하는 거, 자기 직원들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고 싶어하죠.
사업 성과를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컨트롤하고 싶어하죠.
모든 사람이 이 마음이 있어요. 이것은 생존 요.구하고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이게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통제가 안 되면,
이제 내향적인 사람들은 공황 장애가 오고, 우울증에 걸리고... 그렇게 됩니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분노, 중독 증상이 나타나면서
막 욕을 하고, 고함을 치고, 사람에게 공격을 합니다.
자, 이런 내적인, 외적인 현상이 나타날 때는 뭐를 아셔야 되냐면
'아, 내 인생이 지금 under my contorl 내 통제권을 벗어 났구나, 통제가 안 되는구나'
이거 빨리 인정하셔야 돼요.
통제가 안 되니까 당황해 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해를 하든지, 가해를 하든지... 하는 거예요. 뭐든지 해로운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나서 이 상황이 되면 마지막으로 인정 하셔야 될 한 가지가 있는데,
내 인생과 이 역사의 어떠한 상황이라도
모든 상황을 다스릴 수 있는 통제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이거를 인정 하셔야 돼요.
그래야 '외상 후 장애'로 가는 게 아니라, 성장으로 가는 거예요.
풍랑 이는 바다를 다스릴 수 있는 분,
유일하게 그 바다를 통제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악이 만연해 있는 이 시대, 이 대환난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그 악을 통제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나라 상황이 지금 굉장히 복잡하잖아요.
그러나 이 어려운 상황에도,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만드실 수 있는
역사의 통제권을 가지신 분,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여러분, 인간에게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했죠?
이거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권력 의지' 예요.
'권력 의지'는 정치인이나, 사업가, 지도자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 있어요.
살아 있는 사람은 다 '권력 의지'가 있어요.
그래서 두, 세 사람만 모여도 정치가 일어나게 돼요.
'누가 결정 하냐? 누가 주도권이 있냐? 누가 통제권이 있냐?'
여러분 이게 정치인들 만의 문제가 아니라,
저도, 여러분도, 세상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학벌, 문벌, 재벌.. 이것만 추구 하잖아요?
그러면 반드시 그의 권력은 변질되게 돼 있어요.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인간도 예외가 없어요.
왜냐면 모든 권력과 권위와 권세는, 위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 하나님의 질서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내가 하나님의 컨트롤 안에 들어가지 않는데,
내가 내 인생을 내 맘대로 컨트롤 한다... 그러면 반드시 역기능적으로 가게 돼 있어요.
권력에 집착하고, 사람들을 배후 조정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시대를 어렵게 만들고, 자신을 어렵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서 참된 권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진정한 왕이신 것을 고백하세요.
그 분이 겸손하게 2천 년 전에, 우리 가운데 아기로 오셨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왜 그 분 앞에 감히 교만하게 '내가 하겠다'고 하겠습니까?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