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5 주일 3부 제자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다 - YouTube 정리
◈제자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다 눅24:25~35
▲본문의 배경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오후 입니다.
즉 주일 오후에 글로바 라는 한 제자를 포함해서 두 명의 제자가
엠마오, 예루살렘에서 약 10킬로 정도 떨어진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자들의 상태는, 두 가지로 대표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낙심에 빠져 있었고 그들은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셔서, 그들과 같이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두 제자가 내려간 엠마오는, 그들의 고향집이 있던 곳으로 추정합니다.
본문에 '고향'이란 말이 안 나오지만, 보통 사람이 낙심하고 실패하면
고향으로 내려가지요. 고향밖에는 달리 갈 곳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두 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하셨고,
제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예수님께 털어 놓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면, 우리와 같이 걸어 가시고,
또 우리들의 이야기를 정말 듣고 싶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낙심과 혼란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또 한 가지, 예수님이 그들과 같이 걸어 가시고 대화를 나누는 데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 보지를 못했습니다.
▲문제 제기
오늘 우리가 다루게 되는 눅24:25~35절은 어떻게 끝이 나는가 하면
낙심과 혼란에 빠졌던 제자들은, 불타는 마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제자들은 눈이 열려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슬픔과 낙심과 혼란에 빠졌던 제자들은, 불타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눈이 가려져서 예수님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눈이 열려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지는 질문은 '도대체 이 중간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런 극적인 변화가 제자들의 삶 속에 일어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책망'입니다.
24:25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런데 뒤에 나오는 내용에 비추어 보면
예수님이 책망하신 것은, 제자들의 그릇된 이해입니다.
성경에 대한 그릇된 이해!
이 그릇된 이해가,
하나는 미련함으로 나타나고,
하나는 더디 믿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지금 제자들은, 그리고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에 대해서 그릇된 이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구원 방법'과 관련해서, 그들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오해를 바로 잡아 주시게 되는데,
26절에 예수님께서 수사 의문문으로 표현하십니다.
첫 번째 표현이 '그리스도' 입니다.
24:26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수사의문문을 통해 강조를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표현입니다.
누가복음을 쭉 살펴보면, 이전에 예수님이 직접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제사장과 선지자들을 손에 넘겨지고
또 능욕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3일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주어는 '인자' 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스스로 말씀하신 적이, 이때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처음으로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사용하시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지금 예수님이 연결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된다' :26
그런데 개역성경 번역에 빠져 있는 단어가, 머스트 must 입니다. *ἔδει
즉 '그리스도는 반드시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만 한다' 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제자들이 왜 지금 혼란과 낙심에 빠졌는가 하면,
특별히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하나님의 구원 방법에 대해 그릇된 이해 때문에
그들은 슬픔과 혼란에 지금 빠져 있습니다.
즉, 당시 유대 랍비들이 썼던 문헌에 보면,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메시아)에 대해 어떤 기대를 했느냐?
한 마디로 하면, 거룩한 승리자입니다. (구약 성경에 이런 면도 나오죠)
당시는 로마 압제 하에 있습니다. 또 부패한 지도자들에게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오시면, 이런 모습일 것이라.. 라고 오해한 거예요.
-그리스도(메시아)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다.
-모든 대적들을 짓밟고 패배시킬 것이다.
-바로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온 세상을 의로 통치하실 것입니다.
이게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그리스도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거룩한 승리자'의 모습으로 그들은 기대를 했습니다.
바로 그런 관점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바로 낙심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또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데, 이건 또 뭔가?
그래서 지금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그들에게 도전 하십니다.
'성경이 예언한 그리스도의 모습, 성경에 예언한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다!' 라고 지금 예수님은 설명을 하고 계십니다.
◑그 다음으로 예수님은, 성경을 풀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특별히 자신과 관련해서 어떤 것입니까?
'고난을 받고 영광에 들어가는...' 이것을 예수님이 자세히 설명을 해 주셨다는 거죠.
성경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을 때,
제자들은 혼란, 또 낙심에 빠졌던 제자들의 마음이
불타는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을 가지게 되는데,
'아니, 예수님께서 지금 두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을 가르쳤다고 기록을 했는데,
아니 성경의 어느 말씀이 그리스도가 이와 같은 분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가장 대표적인 구절이 사53:5~6절이죠.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본문 눅24장에, 위 이사야 53장의 구절들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수많은 신학자들이 동의하기를, 위 구절을 설명하셨을 것이라고 봅니다.
(*아직도 메시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현대의 유대인들은
이사야53장을 구약에서 빼 버리거나, 이사야53장은 읽지 않고 건너뛴다고 합니다.
메시아가 그럴 리가 없다는 거죠.)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허물 때문에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세우신 종에게
채찍 맞게 하고, 징계를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을 하나님이 계획하셨는가요? 중략 주1)
▲적용/ 선고난 후영광 *하이라이트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예를 들어 아브라함 한 번 보시죠.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이 조상이 되는 영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영광에 들어가게 되었죠?
쉽게 표현하면 고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광 앞에 고난이 있었죠.
또 야곱 같은 사람, 그 자기애에 사로 잡혔던 야곱이
그렇게 영광스러운 사람이 됐습니다. 어떻게요?
그 앞에 고난이 있었습니다.
또 요셉, 모세, 다윗... 하나님께서 이 세상 가운데 부르셔서
영광스럽게 사용하신 사람들의 삶의 공통점이 무엇이냐?
그 앞에 깊은 고난의 터널을 지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출애굽도, 출바벨론 도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그 영광 앞에는 무엇이 있는가?
바로 깊은 고난의 터널이 있습니다. 이건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악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부르셔서 영광스럽게 하실 때,
하나님이 사용하셨던 방법이 무엇이냐? 그들에게 발견되는 것이 무엇이냐?
영광 앞에 고난이 있었다는 거죠.
내일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부터, 아마 우리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1대 김성덕 목사님 통해 들었던 말씀이 뭐죠? '선고난 후영광'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부르셔서 영광스럽게 하실 때
언제나 하나의 진리가 무엇이었는가? 선고난 후영광 이었어요.
근데 하나님께서 저한테 하나 또 가르켜 주셨던 게
'야, 그러면 아브라함, 요셉, 다윗, 모세...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을 성경에 기록했을 때,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사람의 위대함을 알리는 게 목적이 아니고,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선지자들을 쭉 거치면서
하나님이 이 말씀을 기록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들은 바로 한 공통된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세상 가운데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 이끄실 영광스러운 분이 살아가실 삶을
우리들에게 지금 예고(예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완성시키신 분이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저는 이제야 구약 성경이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좀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모세. 다윗, 요셉, 다니엘...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시고, 그들이 고난의 삶을 살아내게 하셨던 목적이 무엇이냐?
그분들은 누구냐?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다듬어 가실 때
그 분이 사용했던 원칙이 뭔가 하면, '선 고난 후 영광'입니다.
바로 이것(선고난 후영광)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느냐? 완성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무엇이냐?
고난을 받고 영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걸 (고난 후에 영광) 몰라서, 두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서도, 낙심하여 고향으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될까요?
성도님들은 어떻게 영광에 들어가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을 통해 보여 주셨고,
예수님의 삶을 통해 보여 주셨던 것처럼,
고난을 통해 영광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거는 꼭 기억하셔야 돼요.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방법은 무엇이냐?
고난을 통해 우리도 영광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이것을 우리들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죠.
우리들의 삶에,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 치지만,
여전히 우리들의 삶을 가로막고 있는 고난은 무엇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바로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준비하는 기간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한 주 동안, 안식 주(리트릿)를 가졌는데, 제가 안식을 잘 할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뉴스가 시끄러워 가지고... 안식 주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 밤까지
계속 뉴스가 바쁘게 보도되었습니다.
'도대체 이 상황 (12.3 계엄, 탄핵) 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나? 어떻게 해석을 해야 되나?'
저도 진짜 한 주간 동안 몸살을 했습니다.
몸은, 제가 떠나 있었지만, 정말 제가 몸살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 상황을 해석해야 되나?'
오늘 나눈 이 말씀 과도 연관해서,
과연 이 말씀이, 지금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이 될 수 있을까?
진짜 제가 한 주 동안 씨름했습니다.
근데 제가 이제는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들의 각자 정치적 입장은 다를 수 있지만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거는, 앞으로 약 육 개월 정도의 시간들은
정말 우리들에게 고난의 시간입니다.
어떤 쪽이든, 고난과 혼란의 시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배후에,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에게 달려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고난의 시간이 무엇이 될 수가 있느냐?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을 때부터, 저걸 어떻게 하면 세상을 좋은 모습으로 바꿀 수 있을까,
저도 고민하면서 살아왔어요.
그래서 저도 지난 한 주간 동안
지금 한 사십 년 동안 대학 들어가서 부터 지금까지 보내 왔던 시간들을
쭉 한번 되새김 하면서 과연 이 말(선고난 후영광)이 맞는 말인가?'
여러분 지금까지 탄핵을 세 번 겪었고,
80년대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역사의 혼란 속에서
여러분들도 그렇고 저도 살아왔습니다.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들을 저도 많이 관찰을 했고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이 맞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가 하면,
개인 뿐만 아니라, 때로는 민족적 고난의 시간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에게 달려가면 무엇이 될 수 있느냐?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준비하는... 그런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고난을 담은 사람들만이, 어떤 고난을 담은 인생 만이,
바로 영광을 담은 인생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선고난 후영광'의 말씀을 통해
제자들의 그릇된 이해를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떡을 떼사 나눠주신 예수님
24:28~29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두 제자들이 예수님께 강하게 요청합니다. '우리와 함께 머무릅시다.
왜냐면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습니다' 이때 다니시면 위험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유하시게 됩니다.
자기 집으로 초대를 했고, 예수님이 그 제자의 집에서 머무시게 됩니다.
(엠마오가 그들의 집이라고 가정할 경우)
24: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떡을 떼서 나눠주는 것, 이 행동은 손님이 하는 행동입니까? 주인이 하는 행동 입니까?
집주인이 하는 행동이죠.
만약에 제가 성도님 집에 심방을 가서, 정말 정성껏 식사를 차려 놨어요.
그런데 그 식탁 앞에서, 제가 막 음식을 나누어 줘요. 마치 주인인 것처럼...
그러면 그 자리가 어색하고 불편하게 되겠지요...
지금 '떡을 떼어주는' 행동은, 집주인이 하는 행동입니다.
근데 예수님이 손님인데, 지금 주인 행세를 하고 있어요.
왜 갑자기 이런 행동 하시나? 그런데 더 헷갈리는 것은 31절 말씀입니다.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주님이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실 때,
그들의 눈이 열려져 가지고
곧바로 '아 부활하신 주님이시다!' 그들이 알아보게 됐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사라지셨습니다.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1절의 '눈이 밝아져'와 opened
32절의 '풀어주시다'는 헬라어로 같은 단어입니다. opened
'뜨겁지 아니하더냐'
성경 밑에 관주를 보면 '불 타지 아니하더냐' 했습니다.
'길에서우리에게 성경을 열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속에서 불타지 아니하더냐'
그것을 깨닫고는, 두 제자가 즉시 엠마오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24: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곧장 예루살렘으로 달려간 이유는,
자기들 두 제자가,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소식을 전하고 싶었겠죠.
그런데 두 제자가, 그 놀라운 소식을 전하기도 전에,
먼저 새로운 소식을 듣습니다.
그 다음에, 두 제자는 자기들이 겪은 일을 전합니다.
24: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이렇게 두 명의 제자는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불타는 마음을 가진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은 '도대체 떡을 가지고 축사 하시고 떼어 나누어 주시는 일이
무슨 일이길래,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서 보게 되었을까요?'
힌트는 성찬을 암시하는 패턴이 성경에 똑같이 네 번 반복됩니다.
☞뗄 때 역사가 나타난다 https://rfcdrfcd.tistory.com/15973160
즉 두 제쟈는, 떡을 받는 순간
이것이 곧 성찬임을 깨달았던 것이죠. 그냥 보통의 저녁 식사가 아니라요.
그리고 이 성찬은, 곧 주님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것임을
그들은 금방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르칠 때, 마음은 뜨거워 졌지만 눈은 열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떡을 가지시고 축사 하시고 때 나누어 주실 때 눈이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두 제자가 성찬을 받는 자리에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바로 저에게 떡을 가지시고 축사 하시고 떼어서 나누어 주셨어요.
그때 제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주님은 내 인생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구나... 주님은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주셨구나...'
그때 바로 기적이 펼쳐졌습니다. 내 작은 인생을 주님의 손에 맡겨 드리고
그 받은 감동으로, 나도 주님처럼 자기 몸을 나누는 삶을 살게 되는 거죠...
............................................
주1)
이거는 정말 복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건데,
이사야 후반부의 상황은,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범죄해서 바벨론 포로로 끌려 갑니다.
그 상황을 먼저 전제하고, 선지자들이 말씀을 전하는데, 두 가지의 긴장이 있어요.
첫 번째는 무엇이냐? 이런 엄청난 징계를 받았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에서 떠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온전한 회개를, 그들은 하지 않습니다.
근데 또 한 쪽은, 무슨 말씀이 계속 반복적으로 나오느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놀라운 구원을 베푸실 것이다.'
계속 반복해서 하나님이 약속을 하십니다.
그럼, 이 두 가지가 어떻게 같이 갈 수 있나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징계를 통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회개할 때
그때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이 주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이 지금 주어질 수가 있나요?
이 질문에 대한 절정의 답이, 바로 이사야 53장의 말씀입니다.
어떻게 그런 징계를 받아도 회개하지 않는, 죄를 끊어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구원 하시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에게 죄를 담당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독생자를 보내시고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바로 그에게, 우리가 받아야 될 모든 죄를, 그에게 쏟아 부시는 걸 통해서
바로 그분을 믿는 우리들에게, 참된 구원과 영광의 삶이 주어질 것을
하나님께서는 선지서를 통해서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죠.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상을 구원 하시기 위해서
그 분은 고난을 받고 영광에 들어갈 것'
이것이 바로 성경에 예언된 말씀이다... 라고 예수님은 교훈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제자들이 믿지 못했기 때문에,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고난 받을 때, 그들은 낙심했고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그들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