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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9. 마13:1 - 9 왕을 모시고 사는 사람 - YouTube
◈왕을 모시고 사는 사람 마13:1~9 2024.12.19.
◑예수님은 나의 왕, 나의 주님이 되십니다
한 번은 제가 주님을 묵상 하는데,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은
제 생각 속에 예수님을 초청하는 것이다'... 하는 것에 대해서 갑자기 깨달아졌어요.
그 전에는 그냥 '예수님을 생각한다'고만 말했는데
갑자기 저에게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이 너무나 놀라운, 임재하시는 분'으로 확 깨닫는 마음이 생긴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예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제 생각 속에 모셔드리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임재
그러니까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 너무 새롭게 눈이 띄어졌어요.
여러분들도 그냥 예수님을 계속 생각해 보는 일이
너무나 놀랍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셔야 돼요.
여러분의 생각 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냥 단순히 '예수님을 생각한다'고 할 게 아니고,
'내 생각 속에 예수님이 오셨다' 라고 여러분이 믿으십시오.
이 관점만 바꾸면, 그러면 예수님이 나에게 너무나 분명한 실제가 되어져요.
▲그런데 단순히 예수님을 생각만 한다고 그래서
예수님이 나에게, 내 생각 속에 임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에 '예수님이 너무 귀한 분이다'
'예수님의 온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 달려 죽으셨다' 이 생각은 너무 귀하죠.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이시다' .. 이렇게만 생각하시는 분들인 경우에는
예수님의 존재가, 그 임재가 내 속에 들어 오셨다고 느끼기가 쉽지 않겠죠.
그런데 '예수님이 나의 왕이시다. 그 분은 내 생명이시고,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다'
라고 내가 생각하는 경우에는 왕이 내 안에 들어오시고,
왕이 내 안에 들어오시는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거든요.
'예수님께서 나의 왕'이시라고 믿는 이 믿음은
우리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냥 내가 막연하게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실 거야,
내가 뭘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주님은 나와 함께 동행해 주실 거야'
라고 생각하는 거 하고,
'예수님은 나의 왕이시다' ... '왕으로 모신다'는 말은,
주님이 나에게 명령 하시고, 나는 철저히 복종하는 분으로 믿는 거거든요.
그때부터 예수님의 존재가 나에게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산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에요.
-우리가 그냥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거하고
-예수님이 나의 왕이 되셨다는 거하고는... 신앙 생활에 차원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로마 제국의 핍박을 받은 이유는 하나예요.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할 때, 이 표현은, 주님을 황제로 섬긴다는 겁니다.
나의 왕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주님' 이라고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로마 제국 안에서는 반역 과도 같은 의미가 있는 겁니다.
로마에 황제가 있는데, 그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그런 나라 안에서
로마 황제 말고, 또 다른 주님이 있다니...
그게 로마 제국의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게 한 요인이 되었거든요.
그런데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 하면서 순교 하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일을, 오히려 당연히 받아들인 이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나의 왕'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엄청난 일인 겁니다.
여러분들이 그냥 귀로 들어서 아는 정도가 아니고
'진짜 내게는 왕이 계시다. 내 안에 계시다. 나는 왕을 모시고 산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여러분의 예수 믿는 삶과, 여러분의 인생 전체를 바꾸는 거예요.
◑말씀을 듣고, 잠시 그때 받은 은혜로 끝내는 사람은.. 소용 없습니다
마13장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유명한 천국 비유 입니다.
천국에 대해서 7가지 비유를 쭉 말씀하고 있어요.
근데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말씀을, 비유로 말씀을 하신 이유는
이 말씀에 모든 사람이 다 은혜를 받고
그리고 이 말씀으로 힘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을 왕으로 정말 믿고, 그렇게 예수님께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말할 수 없는 은혜가 되고, 힘이 되고, 위로가 돼요.
그런데 예수님이 왕이 아니신 사람에게는,
이 천국에 대한 말씀이,
그들의 마음을 너무 부담스럽게 하고, 화가 나게 하고, 그리고 이해가 안 돼요.
은혜가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도대체 이 천국 백성이 누구냐? 예수님이 자기의 왕인 사람이에요.
그게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은, 예수님이 왕인 사람이에요.
▲본문 마13:1~9은 그 7가지 천국 비유 중에, 첫 번째 나오는 비유죠.
'네 가지 마음밭의 비유' 입니다.
사람이 마음이 네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겁니다. 길가, 돌밭, 가시밭, 좋은 밭!
근데 이 비유의 말씀은,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절대로 적당히 믿으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고, 이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도,
실제로 천국 백성이 아닌 사람은,
그 말씀이 그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만들어 줄 수가 없다는 거예요.
'길가' 같은 사람은 뭐 말할 것도 없죠.
아주 말씀 자체가 자기 심령에 안 들어가는 사람이죠.
'돌밭, 가시밭'은 은혜는 받는다는 겁니다. 말씀을 들으면 은혜가 돼요. 감동도 되고...
그런데 실제로 그 말씀대로 도무지 살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받아도 소용이 없는 거죠.
'좋은밭'은, 말씀을 들으면 삶이 확 바뀐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치 씨가 떨어져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 것처럼
말씀으로 인해서 역사가 일어난다는 거죠.
그러니까 말씀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마음밭 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안타까운 것은, 마음이 돌밭, 가시밭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아니 너무 너무 많아요.
'돌밭' 같은 사람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어려우면, 힘들면, 겁이 나서 그 말씀대로 못 살아요.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되어도, 그 말씀대로 못 삽니다. 너무 두려움이 많아서!
사람도 두렵고, 그것 때문에 고생할까 봐 두렵고, 핍박 받을까봐 두렵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에요.
'가시밭'은, 생활의 염려로 가득 한 사람입니다.
먹고 입고 사는 걱정이 너무 많아서, 항상 돈돈 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의 은혜는 받는데, 걱정과 염려가 너무 많기 때문에
도무지 말씀대로 살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걸 비유로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그냥 안심할 문제가 아닌 겁니다.
말씀이 은혜가 된다고..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내 마음에 정말 돌밭도 다 갈아엎히고
가시밭도 다 갈아 엎힌... 나는 좋은밭을 가진 사람인가요?
근데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 거죠?
내 마음이 좋은 마음 밭을 가지고 있는 건,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요?
그 답은, 예수님이 나의 왕인 사람, '예수님은 나의 왕이시지...'
'그 분은 나에게 명령하시는 분이고, 나는 무조건 순종하는...
나는 왕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야...' 이 점이 분명한 사람은
말씀의 역사가 엄청나게 일어나는 거예요.
이게 주님이 말씀하신 천국 비유의 첫 번째입니다. 7개 비유 중에서!
▲예수님께서 이 천국의 비유를 비유로 꼭 말씀하신 이유는,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점점점 은혜가 되고, 삶이 점점점 바뀌고,
더 경건해지고, 더 신앙 생활에 능력이 있고, 더 충만해지고...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혼돈스럽고, 더 갈등만 생기고,
더 짜증만 나고, 더 힘이 빠지고... 그렇게 갈라지기 때문입니다.
천국 백성에게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왕인 사람은,
이제 예수님을 믿어도 예수님이 나의 왕이 분명한 사람은
천국 말씀이 그 사람의 생명을 살립니다.
근데 아직까지 '예수님이 나의 왕'이라고 고백을 못 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는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해요.
그러므로 주님이 이렇게 말씀 하셨어요.
마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앞으로 이런 시대가 점점 되어갑니다.
은혜 받는 사람은, 더 은혜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고
은혜 없는 사람은, 더 메마르고 심령이 황폐해져 버려요.
그러니까 같은 예수를 믿어도, 사람이 쫙 갈라진다는 거죠. 점점점 갈라진다는 겁니다.
예수동행운동을 하면서 정말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 같아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더 깊어지는 사람들이 있고,
도대체 주님과 동행 한다는 게 뭔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이해 못 하는 사람으로 점점 더 갈라지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말씀으로 제대로 깨달아지는 사람,
복음이 복음으로 들리는 사람이.. 복이 있는 거예요.
▲오늘 이 시간에도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나,
또는 영상으로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에게, 제가 한 번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복음이 나에게 진짜 복음으로 들리나?'
'예수를 믿으면, 나는 죽고 예수를 산다'고 합니다.
그게 십자가의 놀라운 복음이에요.
근데 이 복음이 복음으로 들리는 사람이 있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이 복음이라고 들립니까?
아니면 '왜 죽어야 돼? 꼭 죽어야 돼?'
자꾸 이렇게 말꼬리를 물고서
'죽었다는 게 뭐야? 난 아직 안 죽었는데...' 자꾸 이렇게 되어지는 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빨리 영적으로 더 깊은 은혜로 나아가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계시다' 그 말씀(문장)이 그렇게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진짜 믿어지고... '그래 맞아, 내 안에 계시지!'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찬양을 부르면 그렇게 좋고... 그런 분이 있으세요.
근데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말이, 오히려 자기를 계속 혼란스럽게 만드는 분이 있습니다.
'내 안에 계신 걸, 뭘 어떻게 알지?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이게 뭐야?'
'나는 왕을 모시고 산다. 내 안에는 왕이 계시다. 나는 언제나 주님만 따라간다!'
이런 고백이 자연스럽게 나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왕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당연히 그래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그 분이 나의 왕이시니까...
근데 한 번도 그런 고백을 해 본 적이 없는 분!
여기도 계실 거예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데, 그 분이 나의 왕이다. 나는 왕을 모시고 살아!
나는 지금 내 안에 왕이 계셔!' 이런 생각을 전혀 안 해 보신 분이 있을 거예요.
여러분 지금의 영적인 상태에서 안주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가셔야 돼요.
예수님이 천국에 대한 말씀을, 비유로 밖에는 하실 수 없었던 이유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왕이신 사람에게는, 이 말씀은 그를 더 깊은 은혜로,
말씀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으로 이끄세요.
그러나 예수님이 왕이 아닌 사람에게는,
이 말씀은 그를 더 혼란스럽게 하고, 더 낙심하게 하고, 더 좌절하게 만들 뿐이에요.
▲예수님께서는 마13장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일곱 가지 비유를 쭉 말씀하십니다.
1) 첫 번째가 지금 우리가 읽었던 '네 가지 마음 밭'의 비유,
2) 두 번째가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천국 백성들도 있고, 멸망당할 자도 있는데
누가 진짜 곡식(알곡)인지, 그리고 가라지인지.. 지금 당장은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거죠.
어떤 사람은 가라지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곡식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안에 진짜 생명의 복음의 씨앗이 떨어졌는데,
지금 현재로서는 그 사람 안에 그런 생명이 있는지를,
다른 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거죠.
마지막 때에 가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겁니다.
3) 세 번째 비유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예요.
생명의 복음, 또 천국의 말씀을 받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그런 결단을 한 성도들이
처음에는 아주 미약해 보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처음엔 너무 초라해 보인다는 거예요.
존재 자체가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누룩 처럼...
그렇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가면,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된 것처럼,
누룩이 온 빵을 부풀지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역사를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게 되면,
그 사람의 삶 자체가 일 년, 삼 년, 오 년 뒤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거예요.
4) 네 번째가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입니다.
진짜 보화가 있지만, 지금은 눈에 드러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치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다는 거죠.
그러나 '예수님이 왕이시며 그 예수님이 내 마음 심령에 오셨다!'
이것이 귀한 것을 깨달은 사람,
그래서 자기 모든 것을 다 주어도(매매해서 사도) 아깝지가 않는...
'나는 이 예수님을 붙잡고 살 거야' 이건 정말 너무 너무 놀라운 은혜예요.
오늘 밤이 그런 역사가 되기를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5) 다섯 번째가 '진주의 비유' 예요.
좋은 진주를 발견한 상인이, 자기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산 것과 같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 하려고 그렇게 하셨어요.
그러니까 저나 여러분들이 다 진주, 귀한 진주 인 겁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든 것을 팔아서 샀어요.
그게 십자가의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의 죽으심 입니다.
나를 구원 하려고... 하나님은 마치 좋은 진주를 발견한 상인처럼, 그렇게 하셨어요.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6) 여섯 번째가 '물고기를 구분해서 갈라내는 어부'의 비유 입니다.
어부가 그물로 고기를 잡고, 좋은 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쁜 고기는 버리는 것처럼, 이제 마지막 때에 천사들이
의인과 악인을 그렇게 가를 때가 올 것이다...
7) 일곱 번째는 '서기관의 비유' 입니다.
서기관이 창고에서 옛 것과 새 것을 내오는데,
구약과 신약의 모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끊임없이 가르치는
그런 이(서기관)들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말씀을 듣고, 그걸로 만족하고 끝내버리는 사람들
이렇게 일곱 가지 비유로, 예수님께서 쭉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 난 다음에 반응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천국 비유를 쭉 말씀하시니까 사람들이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이런 말씀을 하는 사람이 누가 있었냐?'
그동안 '와~ 이 분이 정말 대단하시구나' 다 그렇게 반응을 했는데,
문제는 그렇다고 그래서 예수님을 진짜 그리스도로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지는 않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예수님이 어릴 때부터 그들과 같이 지냈어요.
예수님의 가족들, 형제들은 예수님을 다 알고 있어요.
'예수가 무슨 그리스도가 되겠어?'
'말하는 거 보면 정말 놀라운 말씀을 하고 있는데, 내가 다 잘 아는 사람인데...
우리 동네에서 같이 사는 우리 친척들이고, 그 사람은 우리 이웃 사람인데...'
그래서 예수님을 끝까지 (그리스도로) 믿지를 않더라는 거죠.
예수님이 왜 천국에 대한 말씀을 비유로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는지...
받아들이는 자와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이 극명하게 갈리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지역에서는 더 이상 능력을 행 하실 수 없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3:58
▲여러분 이 일은 마13장에만 나오는 게 아니고, 지금 우리에게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어요.
지금도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이 십자가의 복음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왕이시다' 라고
이 말씀을 그렇게 선포하고 전하여도
'참 은혜가 되네 정말 놀라운 말씀이네요...' 그런 정도의 반응으로만 대부분 그치고 많아요.
교회를 찾아가서 집회를 하고, 또 어떤 큰 연합 집회 때 가서 말씀을 전할 때
제가 느끼는 안타까움 이에요.
말씀의 은혜는 받는데, 그 말씀으로 결론 삼지 않는...
지금 우리들의 시대가 그런 시대에요.
너무 익숙한 게 오히려 문제 같이 여겨져요.
'아휴 나도 다 알아요. 나도 다 그렇게 믿고 있어요...' 이런 반응을 받을 때가 참 많습니다.
'예수를 나도 믿고 있고, 아휴 나도 뭐 그런 말씀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말씀이고,
저도 은혜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신선한 충격으로, 자기 심령에 안 와닿는 것 같아요.
마치 예수님 당시 때, 예수님의 그 어린 시절과 그 가족들이 다 함께 살았던 것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그 말씀 그대로 못 받아들이는 것과 똑같은 현상입니다.
▲지난 주간에 '원 미니스트리 컨퍼런스'가 열렸는데
그때 박보영 목사님께서 어떤 한 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어릴 때 같이 공동체에서 살던 형제가, 그 공동체를 떠났다가
시간이 좀 지나서 다시 공동체로 돌아왔는데, 몰라보게 사람이 바뀌었어요.
완전히 조직폭력배로 살다가... 주님 은혜로 다시 돌아온 거예요.
그래서 그 도시에 그 폭력조직의 중간 보스가 되어서 살다가,
회개하고 다시 돌아온 거죠.
근데 참 놀랍게도 그 형제가, 다시 그 박보영 목사님과 함께 하는 공동체 안에 들어와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났어요. 그래서 사람이 완전히 거듭났습니다.
그래서 지나간 자신의 모든 조폭의 삶을 청산하고
이제는 노숙인들을 섬기는, 그들을 섬기는 정말 진정한 봉사자가 됐어요.
근데 그가 조직 폭력배로 살던 그 시절에 지었던 죄 때문에,
공동체에 들어왔지만... 감옥에 가게 됐다는 거죠.
그래서 목사님은 감옥에 간 그 형제를 면회를 갔습니다.
근데 면회를 갔다가 나오는데, 아주 고급 검은 승용차가 옆에 와 서더래요.
보니까 딱 봐도 조직 폭력배 같은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더래요.
그러더니 박보영 목사님을 알아 보고는, 그 감옥에 있는 형제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목사님께 물어볼 게 있다는 거예요.
'그 친구가 진짜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그렇게 묻더래요.
그래서 목사님은 '분명히 만났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조직 폭력배인 그 사람이 머리를 막 감싸쥐면서
'아~ 정말 미치겠네' 그러더라는 거죠.
그래서 목사님은 '야~ 폭력배도 진짜 예수를 만나면 사람이 완전히 바뀐다는 걸 아는구나.
예수님을 진짜 만난 사람은 더 이상 이제 돌이킬 수가 없다.
정말 사람은 완전히 달라질 수 밖에 없다고... 폭력배들도 인정하는구나.'
그런데 문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걸 인정을 안 하는 거예요.
예수 믿는 우리들끼리
'예수 진짜 믿으면 사람 완전히 달라져, 인생 완전히 바뀌는 거야!
예수님을 직접 만나기만 하면 안 변할 사람이 없는 거야!'
이런 믿음이, 오히려 교회 다니는 교인들에게는 없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예수를 믿으면, 사람이 바뀝니까? 안 그런 사람도 많잖아요.
주변에 예수 믿어도 안 변한 사람들 천지 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그 사실을 못 믿는 거죠.
너무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왜 예수 믿어도 사람이 안 바뀌는 거죠?
예수님을 왕으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 믿지를 않는 거예요.
예수를 믿는다고 해요.
그러나 예수님이 나의 왕은 아니세요. 이게 결정적인 차이예요.
그러니까 말씀을 들어도, 은혜를 받아도, 사람은 전혀 안 바뀌는 겁니다.
여러분 이렇게 예수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좋은밭'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우리는 천국 백성이 아닌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알곡과 가라지를 가를 때,
우리는 결코 알곡을 추수 하는 자리에 들어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길 문제가 아닌 겁니다.
'좋은밭' 인가요? 여러분의 지금 마음은 '좋은밭' 인가요?
그 말은 '예수님은 당신의 왕이십니까?
그리고 그 왕을 지금 모시고 사십니까?' 라고 하는 질문인 거예요.
▲제가 오늘 말씀을 준비하다가, 그게 너무 안타까우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이 주시는 큰 위로가 있었어요.
다니면서 그렇게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계시고, 그 분은 우리의 왕이시다' 라고...
그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삶을 살라고 전해도, 반응이 별로 없는...
결실이 너무 적은 것에 대한 제 안타까움이
성경에 예수님께서 설교하셔도 안 듣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고
제가 위로를 받았어요.
예수님을 직접 보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직접 듣고도
안 믿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죠.
그러니 저 같은 경우는, 안 믿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 너무 당연한 거죠.
예수님이 전해도 안 믿는데... 저 같은 사람이 전한다고 다 믿겠어요?
너무 감사한 것은, 제가 말씀을 전했는데도 은혜도 받고,
그 말씀에 반응하시는 사람이 있는 게 기적인 거죠.
글쎄, 여러분이 너무 감사한 거예요. 이렇게 예수동행집회에 오시는 여러분들이 너무 착한 거예요.
정말 성령님이 아니면 하실 수가 없는 일이죠.
그 복음이 복음으로 믿어지는 저도 그렇고,
그리고 그 말씀이 은혜가 되는 여러분도 그렇고
이건 전적으로 성령님께서 하신 거예요.
'아, 우리 안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가 놀랍게 일어나고 있는 거구나'
모든 사람이 그런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직전에
당시 사람들이 했던 말이 사실 굉장히 충격이에요.
눅19:14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예수님 당시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이 했던 말이예요.
지금도 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우리의 왕 되는 것을 우리는 원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그래요.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건 당신들이나 그렇게 하세요.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반응하지요.
문제는 예수를 믿는다는 우리들의 문제예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나의 왕이신가?'
당당하게 그렇게 고백하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가운데 너무 많은 거예요.
◑적용
오늘 이 시간, 2024년 예수동행집회 마지막 날,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진짜 나의 왕이 되시는지?
여러분에게 결단을 요구하는 겁니다.
실제로 왕을 모시고 사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예수님이 나의 왕이 되시는 것에 대해서...
'그러면 이제는 내 인생은 끝났잖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세요.
예수님이 나의 왕이라고 고백을 못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더라고요.
'그럼 이제 결혼도 내 마음대로 못 하겠네?
내가 뭐 이젠 신학교 가야 되나?
선교사 가라고 그러면 어떡하지?'
맨 불길한 상상만 이런 식으로 계속 하는 거죠.
오늘은 이제 진짜 직면해야 됩니다. 더 이상 뒤로 미룰 문제가 아닌 거예요.
어떤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신데, 그것만 우리가 즐거워 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선한 양이냐? 그걸 물어야 된다.'고 하셨어요.
예수님은 선한 목자세요. 아멘이죠.
여러분은 선한 양 입니까?
'네 저는 선한 양입니다!' 하고 대답 하실 수 있어야 돼요.
그러면서 그 목사님께서 그렇게 이야기하세요.
자신에게 적용해 봤대요.
'마지막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나뉘는데, 나는 과연 착하고 충성된 종인가?'
그렇게 선뜻 대답을 못 하시겠더래요.
'그러면 나는 악하고 게으른 종인가?'
'악한 종'이라고 말을 못 하겠더래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요.
'조금 게으르기는 하지만... 나는 악하지는 않다고!'
그래서 이제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대요.
'여보, 내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는 자부심이 없지만
내가 악하지는 않잖아? 좀 게으르기는 하지만...'
그랬더니 사모님이 '게으른 게 악한 거예요!'
그래가지고 너무 회개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게으른 게 악한 걸' 이해 하십니까? 왜 게으른 게 악한 거죠?
왕이 없는 사람이에요. 게으르다는 것은.. 왕이 없는 사람의 삶을 말하는 거예요.
아니, 왕을 모시고 사는데, 어떻게 게으를 수 있어요?
왕이 없이 예수를 믿으니까, 적당하게 게을러 지는 거예요.
근데 왕이 계세요. 그분이 지금 내 안에 계세요.
그런 사람은 착하고 충성된 종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제가 담임목사 은퇴를 하고 아주 만만치 않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제 2년이 지나고 있는데, 제가 은퇴한 다음에
이 예수동행집회를 처음 열게 되었을 때,
어느 목사님이 '제가 너무 불쌍해 보이더라'는 거예요.
마치 개척교회 하는 목사처럼 그렇게 보이더래요.
저렇게 큰 교회 담임목사 였다가
갑자기 이제 은퇴하고 이렇게 예수동행집회를 여는데
그 선한목자교회에서 예배드리며 집회하던 그때와 비교하면
너무 모이는 인원수가 적어 보이고... 그래서 너무 초라해 보이는...
그리고 너무 불쌍해 보이는 느낌을 받으셨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뭐 그렇게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솔직히 뭐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제가 은퇴하고 난 다음에 '내가 너무 초라해졌다. 그래서 힘들다...' 그런 생각이 없어요.
물론 제가 은퇴하고 난 다음에 변화는 많습니다.
선한목자교회 담임목사 때하고, 지금 은퇴 후의 저의 삶하고는 변화가 많아요.
은퇴 후가 힘들다고 느껴지는 경우는, 인생을 보는 관점이,
신학교 들어가기 전,
신학교에 들어가서 전도사 시절,
목사 안수 받고 난 다음에 부산에서 목회할 때,
안산에서 목회할 때,
선한목자교회에서 담임 할 때... 이런 형태로 구분을 하게 되면
그러면 분명히 제게 있어서는, 제 삶의 가장 피크가 지나간...
선한목자교회의 단임 목사로서의 어떤 위치에 있다가,
지금 은퇴한 목사로서의 제 삶은,
분명히 예전보다 좀 쪼그라들고, 적은 규모이고,
보기에는 좀 불쌍해 보일 수도 있는 삶이죠. 그렇죠.
은퇴 전 담임 목사 때 제가 받았던 대우는, 이제 저에겐 다 사라졌습니다.
그게 허전할 수도 있는 거죠.
근데 예수님 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제 인생을 보면, 완전히 달라요.
제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했을 때,
목사의 아들 이었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했을 때..
그때는 외모, 외형.. 그런 게 중요했지요.
근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게 되면서 회심을 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이후의 변화,
그리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에 대해서 눈이 뜨이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점점 더 깊어져서 친밀함을 느끼게 되는 단계까지 갔을 때,
이런 관점으로 보면, 제가 담임목사에서 은퇴하는 것은,
예수님과 친밀한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사건일 뿐이에요.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삶에 있어서는
제가 은퇴한 이후에 더 깊어지고... 더 정확해졌기 때문입니다.
담임목사로 있을 때도 '주님과 동행하자'고 하는 삶이 제게는 가장 갈망이었지만,
그래도 선한목자교회라는 울타리 때문에,
제가 더 치열하게 더 주님 만을 갈망하는 것에 있어서는...
은퇴하고 보니까, 훨씬 제가 (과거에) 전심을 다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근데 은퇴를 딱 하고 난 다음에, 이제 담임목사 자리에서 나오고 보니까
주님은 저에게 더욱 갈망의 대상이고,
정말 예수님 한 분만 붙잡게 되고,
예수님은 나의 왕 되심이 너무너무 분명해진...
그러니까 은퇴는 제게 너무나 복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관계로 보면!
▲여러분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시고, 안드레를 부르시고,
이렇게 제자를 부르실 때 예수님은 '24시간 나와 함께 지내자.
이제 나 하고만 이야기하고,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그리고 나하고 같이 일하자...'
그렇게 부르셨어요. 우리도 똑같은 거 아십니까?
베드로와 나는 달라요? No
베드로는 그렇게 부르지만, 나는 그렇지 않습니까? No
여러분 이 생각이 바뀌어야 되는 거예요.
베드로나 안드레나 또는 마태나 빌립이나 저나 여러분이나...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는, '24시간 나와 함께 지내자, 나하고 이야기하자,
나하고 같이 먹고, 내 일을 너가 같이 하자!' 똑 같은 거예요.
여러분이 베드로, 안드레, 마태입니다.
그게 주님의 우리를 향한 부르심 이에요. 그게 바로 예수님의 왕되심 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예수 믿는 것이 분명해지게 돼요.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을 살게 돼요. 그게 바로 천국 백성이에요.
예수님이 왕 되신 삶을 살려면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냥 마음에 '예수님이 나의 왕이셔!' 이래서 끝날 문제가 아니에요.
예수님이 나의 왕 되심이, 내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다시 훈련되고
또 순종하고, 실패 했다가 다시 주님이 일으키시고...
그 과정을 겪어 가면서, 예수님의 왕 되심이 분명해 져요.
제자들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길을 겪는 거예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유혹도 올 거고요. 또 두려운 순간도 올 거예요.
그때 예수님의 왕 되심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
예수님이 왕 되신 사람으로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다 무너지게 돼요.
유혹 앞에 장사가 없어요. 핍박과 두려운 일이 닥칠 때,
그 두려움에서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지금부터 주님의 왕 되심이 분명한 삶으로 계속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다른데
여러분의 생각을 꺾고, 예수님의 생각에 따라 살아본 적이 있나요?
그게 우리의 삶이에요.
지금 말을 해도, 행동을 해도, 심지어 감정과 여러분의 생각조차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일이, 우리의 매일매일의 삶이에요.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에 잘 때까지, 우리의 삶은
예수님께서, 내 생각과 내 판단과 내 감정조차도 바꾸시는... 그 분은 나의 왕이십니까?
예수님께서 이 예수동행집회를 처음 시작할 때,
정기 집회가 1년 딱 끝나고, 이제 올해 첫 해가 됩니다.
이 해는 정말 제게는 너무 오래 기억이 나는 해가 될 거예요.
근데 주님이 '절대로 인원 수가 많이 모이는 것에 연련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 예수동행집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냐? 이번에 몇 명이 모였냐?
그렇게 카운트 하지 말라는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이 예수동행집회에,
'진짜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이 정말 왕인 사람이 몇 사람이 모였냐?'
그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내 왕이 아직 아니십니다' 이런 분들은 꼭 끝나고 안수기도 받고 가세요.
오늘이 여러분의 신앙의 전적인 전환점입니다.
'나는 그동안에 예수님이 왕이라는 게 뭔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교회 다니는 게 예수님 믿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저 주님 도와주세요 기도하며... 이렇게만 하고 살았지,
예수님이 나의 왕이시다.. 라고 생각을 못 해 봤어요!' 그렇다면 오늘 바꾸셔야 돼요.
가라지 같이...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가라지 같이 믿는 그런 신앙생활에서
이제는 진짜 알곡 같은 믿음으로 바뀌어야 돼요.
그 전환점이 오늘이어야 하는 거예요.
주님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뭐 내 생명을 바치겠다...
주님은 그것을 원하시는 게 아니에요.
주님은.. 우리의 밤을 새는 기도도, 오랜 금식도,
희생과 봉사도 주님이 원하시는 게 아니더라고요.
주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하나예요.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에요.
예수님이 이미 내 안에 오셨음을 정말 믿는 거예요.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셨음을 정말 믿는 것은,
그대로 '예수님은 나의 왕이시라'는 뜻이에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걸 믿는데, 예수님은 나의 왕이 아니다'
이건 말이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
만 왕의 왕 이신 예수님 이십니다. 그 분이 내 안에 오셨어요.
이걸 정말 믿으라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주님이 하세요.
주님은 여러분을 부담스럽게 하고 싶지 않으세요.
여러분이 받은 은혜를 깨닫게 해주고 싶으실 뿐입니다.
왕이신 주님이 여러분 안에 와 계시다... 여러분은 그걸 진짜 믿기만 하면 돼요.
▲한번은 선한목자교회 직원 수련회에 갔을 때
어느 팀장이신 직원이 그런 나눔을 했습니다.
「나는 실수 없는 완벽주의자입니다.
그래서 한 건의 실수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입니다.
특히 주의 일을 할 때는 더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러다보니 동료 직원들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제 마음에 들지 않는 동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때 '잘 하려고 싸우려는 것이면, 우리 잘 하지 맙시다!' 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무리 교회 일을 완벽하게 진행해도, 그것은 금방 잊혀지지만,
관계의 깨어짐은 오래 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 될 수 있는 길은,
오직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을 주목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주님, 제게 십자가 지는 마음,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나 잡아 먹고 너 살아라' 하며 일하기를 갈망합니다.」
그 직원의 고백이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그게 그대로 우리들이 실제로 부딪히는 현실이거든요.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예수님이 왕 되시면, 주님이 나의 모든 걸 바꿔 가셔요.
그리고 기가 막힌 가정을, 기가 막힌 교회 공동체를, 그리고 일터를 만드세요.
우리는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왕이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
예수님은 내 왕이 되시기 때문에,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거는, 절대로 힘든 계명이 아닙니다.
원수도 사랑할 정도가 되면, 이 세상에 두려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넘어뜨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어떤 비난 받는 자리에 있을지라도, 그는 화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니까 원수도 사랑하게 되고,
그러니까 염려, 걱정, 불평, 원망은 다 없고, 찬양과 감사만 나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눈이 열리니까
고난도 축복이라고 얘기하죠.
예수님이 왕 되신 삶은 기가 막힌 삶이에요.
비로소 여러분 자신에게는 예수님의 임재가 완벽해지게 돼요.
간증거리가 엄청나게 생기죠.
그리고 여러분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어요.
예수님의 왕인 사람과 함께 사는 가족들,
예수님이 왕인 사랑과 함께 신앙 생활하는 교인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없어요.
여러분이 예수님이 나의 왕이 되심을 진정으로 원하십니까? 그러면 기도하면 돼요.
'예수님, 제 왕이 되어 주십시오 저는 이제부터 왕을 모시고 사는 삶을 살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돼요.
그리고 왕이신 주님이 여러분의 마음에, 무언가 싸인을 주시고 말씀 하신다고 느끼면,
그러면 그대를 순종하면 돼요. 왕이시니까!
그리고 그것을 저녁에 일기로 기록하세요.
오늘 예수님이 나의 왕 되신 삶을 산 기록을 남기세요.
그리고 함께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분들과 나누세요.
내일도 똑같이 그렇게 살기 위하여!
여러분이 그렇게 한 달을 살아보세요. 여러분이 다 경험하게 돼요.
'이게 예수 믿는 삶이구나! 주님은 정말 나와 함께 계셔! 내 인생 전체를 바꾸시는 분이야'
우리 시간의 찬양을 같이 하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