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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인가, 방전인가

LNCK 2024. 12. 23. 17:31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영적성장

충전인가 방전인가? | 눅 10:38-42 |  24.12.20 - YouTube

 

충전인가, 방전인가        눅10:38~42, 요15:4~5             

▲도입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온 것 자체가 승리인 줄로 믿습니다. 
이 은혜 자리에 온 게 이게 은혜입니다.

이 자리를 여러분들이 지키시고, 기도에 승부를 거시면 이깁니다. 
기도는 어마어마한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게 주신 엄청난 선물이기 때문에 
기도의 줄을 붙잡고 있으면 삽니다. 죽어도 이 줄을 붙잡아야 돼요. 

힘들어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시고 
또 여러분들이 혼자로는 잘 안 되면, 삼겹줄을 엮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삼삼오오 엮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마음이 좀 힘들어서 주저 앉아 있으면 
삼삼오오 같이 기도회로 나오시고, 
기도하실 때도, 같이 옆에서 서로 손을 잡고 기도해 주시고... 그렇게 하면 이기게 됩니다. 

 

내가 항상 이렇게 뜨겁지 않거든요. 어떤 때는 내 마음이 약해질 때 
옆에 있는 분이 매우 중요해요. 그래서 옆에서 기도해주고 그러면 
또 다시 일어나고... 이렇게 서로 도우는 거죠.

주님 오실 때까지 이제 기도의 동지들이 있으면, 기도의 동역자가 있으면 
이거는 뭐 무적 입니다. 무적!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기도의 짝을 꼭 구하시고, 
이 자리를 고수하시고, 
나라를 위해서도 많이 기도해주시고... 나라가 요즘 많이 어렵잖아요. 

하나님이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특별히 간섭하셔서 
어려움을 또 축복으로 바꿔주신 경험들이 많기 때문에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또 역사를 어떻게 운행하실지 우리가 기대하고 
하나님을 바라고... 너무 부정적인 얘기 많이 하지 말고...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런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위대한 일을 우리가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선포하시고, 

우리나라에 좀 좋은 지도자들이 좀 많이 일어나면 좋겠어요. 
오늘 이 철야 자리에 나와 기도하는
우리 교회 청소년들 가운데서도, 앞으로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혜를 갖고 분별력을 가지고서 
백성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목자 같은.. 권력 욕구가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 누가 봐도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다' 이런 마음이 드는 사람,
이런 지도자가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줄 서지 않고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일으키시고 세우신 지도자들을 우리가 구해야 되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너무 이념적인 것에 치우쳐서 
그 이념으로만 모든 걸 판단하는 이 구조에서 벗어나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판단하는... 지도자들이 눈을 갖게 되기 바랍니다. 

성경적 선명한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바라보면서 판단하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될 줄로 있습니다. 

▲결과, 성과 중심의 사회 
여러분, 우리는 성과 중심의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성과! 
어떤 결과를 내야 되는 거죠. 업적을 만들어 내야 되는 거죠. 

여러분 직장에 가면 당장 그런 게 있죠. 
분명한 결과물을 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거죠. 
직장에서도 성과를 내야 되고, 사업을 하는 사람도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되잖아요. 
우리가 사람을 평가할 때도 '자신의 분야에서 성과를 얼마나 냈느냐?' 
그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이 되었죠. 

그래서 이런 사회는 무엇이 강조 됩니까? 생산성이 강조하는 시대입니다.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 내라고 하는, 생산에 대한 압박이 굉장히 심합니다. 

마치 애굽에서 바로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히브리 민족들이 벽돌을 찍어내라'고 하는... 
끊임없이 채찍질 하면서 압박을 했던... 
그 압박을 받았던 히브리 민족의 운명과도 같은 그런 모습들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가능한 실적을, 눈에 보이도록 만들어 내라! 
말로는 안 된다, 수치로 입증을 해야 된다'는 거죠. 

세상 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압박감이 굉장히 심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게 있어요. 담임 목사님의 목회 철학이 참 중요합니다. 
교인들을 막 휘몰아치는... 

막 어떤 행사에 동원시키고, 막 뺑뺑이를 돌리듯이
교역자들이나 교인들을 막 드라이브 해서 몰고가는 담임목사님이 간혹 있어요. 

◑여러분 본문에 마르다와 마리아는  참 대조적이죠. 

많이 들어왔던 본문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를 통해서 신자의 두 유형을 이제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는지 잘 한번 확인해 보세요. 

마르다는 소위 말하면 '방전형'입니다. 계속 방전이 되는 거예요. 
마리아는 '충전형'입니다.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마르다는 계속 소진되어 가는 거예요. 근데 마리아는 채워져 가는 유형입니다. 
나는 어느 유형인가요? 
또 오늘날 어느 유형이 더 많은가요? 

오늘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죠. 
여러분 세상적으로 보면, 마르다가 처신을 더 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 안으로 들어가면 '마르다 형'을 찾죠. 일을 잘 하는 사람이잖아요.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초대한 것으로 보여요. 
그 마르다의 행동이 굉장히 두각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녀의 행동들이 눈에 띄죠. 

마르다는 매우 분주해 졌습니다. 예수님을 잘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겠죠. 
그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이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셨는데, 이런 기회가 어디 있느냐?' 
그래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예수님에게 아주 좋은 칭찬을 듣고 싶었던 거예요. 
아이들 말로는 백점을 받고 싶었던 거예요. 
이번에 온 김에 '정말 내가 예수님에게 확실하게 한 번 눈도장 찍고 인정받고 싶다'

▲여러분, 이게 사실 우리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이런 훈련에 익숙해져 있어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열심히 하면 상을 주는 문화'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잖아요. 
상을 주는 대회들... 그래서 받은 상장들을 막 집에 붙여놓고 그러잖아요. 

어떻게 보면 세상은 여러분, 이런 "상 받기 대회"와 같아요. 
연말이 되면 곳곳에 상을 주는 시상식들이 열립니다. 
연예인들도 '누가 대상을 받느냐?' 는 거죠. 이게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상을 받으려고 하면, 그냥 되지 않죠. 무진장 애를 써야 돼요. 
죽도록 해도 상을 받을까 말까 한다는 거죠. 치열한 싸움이 벌어집니다. 
세상은 이런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 생산을 해내라는 것을 강조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성경에서 비슷하게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요15장의 포도나무 비유를 보세요. 
요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많은 결과물을 내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될 것이다...' 라는 뜻이죠.

자 여러분, 이 포도나무의 비유에 관한 설교를 우리가 많이 들었어요. 
이런 설교를 들을 때, 우리가 '열심히 충성을 하자. 열심히 전도해서 열매 맺자. 
열심히 봉사해서 선한 일에 열매를 많이 맺자' 하게 되죠.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 된다. 더 열심히 충성해야 된다. 
더 열심히 전도하자' 

그러니까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들면서 
충성과 열심을 더 다짐하는 뜻으로 인용을 했고, 
이 구절은 헌신예배의 단골 본문 구절이었어요. 

근데 여러분, 이 비율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열심히 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예요. 
'우리가 열심히 하면 열매가 많이 맺힌다' .. 본문에서는 그런 게 없어요. 

▲요15:4 '내 안에 거하라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리 하리라'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열심히 하면 열매가 많이 맺힌다'고 말하지 않는 거죠. 
그 반대에요. 가지가 할 일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거라는 거죠. 

우리는 누구예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가지가 막 '열매를 맺어야지' 다짐해 가지고, 열매가 맺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가지는 그냥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되는 거예요. 

포도 나무에 연결되어 있으면 돼요. '연결되어 있는' 그게 핵심이에요. 
이게 연결이 안 되어 있으면,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별 짓을 다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가지'는 뭐예요? 철저히 의존적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철저히 의존적이다!

그러므로 가지는 포도나무에 집중해야 합니다. 
포도나무와 떨어지면 안 됩니다. 포도 나무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연결되어 있으면.. 어느 순간인가 열매가 맺힙니다. 
근데 연결도 여러분 계속 연결돼 있어야 돼요. 
붙었다, 떨어졌다..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여기에 계속적인 의미가 있어요. 

또한 내가 열매는 맺는 게 아니고, 열매가 맺혀지는 거예요. 
여러분 가끔 황당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내가 열심히 해요. 그런데 남들보기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했어요. 
게으름 피운 적 없어요. 나의 모든 역량을 끌어모아서 애써 앞만 보고 달려 왔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면 결과가 너무 초라해요.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요. 
애는 썼는데... 어떤 결과물이 없어요. 결국 어떻게 된 거죠? 
붙어 있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가지가 말라 없어진다'는 거죠.
말라서 그 가지가 소진되는 거죠. 
  

▲여러분, 오늘 우리 사회를 '피로 사회'라고 그래요. 
만성 피로 증후군이 꽉 차 있어요. 
이 '성과 사회'는 어디로 가느냐 하면, 반드시 '피로 사회'로 가게 돼 있다는 거예요.

마르다를 자세히 보세요. 그녀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칭찬을 받고 싶습니다. 
근데 일은 늘어나고 상황은 자기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동생 마리아가 자기를 도와 주기를 바랬는데, 
주님 앞에 앉아 있는 마리아가 매우 못 마땅합니다. 

결국 여러분, 일 중심의 삶을 살면, 주변의 사람들이 내 경쟁자가 됩니다. 
다른 사람을 나 중심적으로 통제하려고 합니다. 
결과물에 집중하는 삶을 살면 어떻게 돼요? 시간에 쫓겨요. 
빠른 시간 안에 많은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분주해 지죠. 

그러면 분주해 질수록 압력이 세지는 거죠. 그러면 스트레스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의 평안이 깨지죠. 

마르다는 지금 책임감이 아주 강한 사람이에요. 
언니로서 그가 맡은 일에 대한 부담감이 높았어요. 

예수님으로 부터 받은 사랑이 너무 큰데, 그 받은 사랑을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거죠. 
예수님과 또 다른 일행들도 같이 왔다면, 
아마 예수님이 오신 게 아니고, 예수님과 함께 일행들이 왔다면 
이제 굉장히 접대해야 될 양도 많고, 청소도 해야 되고... 할 일이 상당했을 거예요. 

여러분 '일 중심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늘 시달려요. 
그리고 일을 하면, 잘 하고 싶은 거죠. 대충하고 싶지는 않은 거예요. 
완벽하게 하고 싶은 거예요. 

여러분, 일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주로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요. 
물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은 거예요. 
그냥 대충 라면 끓여 드리고 싶지 않은 거예요. 
제대로 된 음식을 대접하고 싶고,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은 거죠. 

여러분 우리 주변에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을 할 때 최선을 다해요. 
맡은 일은 끝내줍니다. '와, 어떻게 이런 일을 혼자서 다 하셨어요?' 
대단하다는 말을 들으면 뿌듯해 합니다. 

여러분 누구나 '칭찬 (받고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인정 (받고싶은) 욕구'죠.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 이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는지' 사람들이 알아 주기를 원하는 거죠. 
내 이름이 불려 지고, 무대 위에 올라가서 트로피를 받고 박수를 받는 거..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꿈이죠. 그걸 '성공'이라고 말하잖아요. 

근데 이런 삶을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성공의 자리는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상(1등)은 한 사람 밖에 없잖아요.

나의 노력의 결과물로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런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나를 만들어 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니까 불안한 거죠. 
계속 노력을 해야 되는 거죠. 

 

◑충전하는 마리아와 방전되는 마르다

 

자 그러니까 마르다가 이제 어떻게 변하는지 한번 보세요. 
그는 약간씩 거칠어지기 시작해요. 숨겨진 감정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눅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여러분 이거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누구에게 지금 명령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를 명하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예수님마저도 자기 중심적으로 움직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접대하기 위해서 시작이 됐는데, 
예수님 마저도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고 하고 있죠. 

'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거지?'하고 시비를 걸고 있어요. 
일이 자기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냅니다. 
자기는 열심인데, 주변 사람들은 시간 낭비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못마땅한 거죠.
 
여러분, 열심히 할수록 무슨 현상이 생기느냐면 
'한계 지점'에 도달하는 거예요. 
왜 그렇죠? 여러분 우리는 무한 에너자이즈가 아니에요. 
우리는 무한 자원이 계속 충족되는 존재가 아네요. 계속 채워야 돼요. (핸드폰 충전하듯이)
우리는 의존적이에요. 

그러니까 결과주의자들은 언젠가는 바닥을 드러낸다는 거예요. 
에너지가 떨어지면 문제가 발생해요. 
감정이 돌출하고, 분노가 터지는 거예요. 

여러분들 요즘 어때요? 짜증이 좀 잦아졌습니까?  
화가 자꾸 벌컥 벌컥 납니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요즘 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원망과 불평이 일어납니까? 
주변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게 곱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일은 열심히 해서 외적인 결과물은 좋아 보이는데 
내 마음은 불편한 거예요. 

성공은 했지만, 성질이 나빠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을 하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되죠? 감정의 소모가 많아집니다. 감정의 소모가 굉장히 많아집니다. 
항상 입에 붙은 말이 '피곤하다'는 말인 거죠. 

여러분, '피곤' 이라는 말은, 일종의 폭력의 시초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그 피곤한 삶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감정을 표출하게 되고, 
결국 그렇게 될 때 어때요? 관계가 깨어집니다. 

피로하면 누군가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피로가 누적되면 우울함으로 발전됩니다. 
근데 이게 모두 누가 만든 것입니까? 
마르다 자신이 스스로 만든 거예요. 

누가 그렇게 만든 게 아닙니다. 원인은 내 안에 있다는 거죠. 
내가 나를 착취하고 내모는 거예요. 

그래서 유명한 한병철 씨라는 제독 철학자인 이분이 
<피로 회복>이라는 책에서 '피로 사회는 자기 착취 사회다'  
'피로 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그는 이렇게 얘기를 해요.

너무 열심히 일해요. 근데 '나'라는 존재가 없어요. 
그 일과 '나'라는 존재를 바꿔 버린 거죠. 

근데 일을 너무 많이 하니까, 나중에 즐거움이 없어져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는데... 기쁨이 없어져요. 

자 여러분 예수님의 판정이 뭡니까? 
눅10: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마르다야 마르다야'
예수님이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마르다의 이름을 두 번이라 불렀겠어요?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마르다는 계속 일, 일, 일, ... 일 중독이라는 뜻이죠.
그 일 때문에 염려하고 근심한다는 거예요. 

왜 염려가 많아요? 
추구하는 게 많기 때문에 그래요.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나' 
너가 추구하는 게 많다는 거예요. 이루고 싶은 게 많아요. 꿈이 많아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여기서도 인정받고 싶고, 저기서도 인정받고 싶어해요. 
어디에서나 나는 칭찬을 받고 싶어해요. 
어디에서나 나는 실적을 내고 싶어해요. 

그러니까 여러분, 너무 많은 걸 좇는 거예요. 
그러니까 초점이 분산되어 있어요. 
그러면 염려와 근심이 떠나지 않는 거죠. 

▲자, 주님이 처방을 하십니다. 
눅10: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주님의 처방은 단순해요. '일을 줄여!' 
다른 말로 표현하면 뭔지 아세요? '일로 승부를 걸지 마!' 

'업적, 성과, 결과 중심의 삶을 살지 마! 
'삶의 패턴을 바꿔!'

'한 가지만 해도 충분해! 일을 많이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네가 분주한 이유는, 네가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분주해졌어! 
네가 많은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네가 꼭 해야 될 일이 뭔지를 네가 모르기 때문이야!' 

지금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시선을 마리아에게로 돌리게 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거죠.
 
'마르다야, 마리아를 한 번 봐라.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다. 
마리아가 지금 잘 하고 있다.' 하고 마리아의 손을 들어주시는 거예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마르다는 오히려 책망을 받고, 
마르다가 칭찬을 받고 있는 거예요. 

의외죠 의외! 
죽도록 수고하는 편은 마르다 였어요. 

칭찬을 하려고 하면, 마르다에게 해야 돼요. 
번지수가 틀린 것 같아요. 

마르다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평가가 주어졌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비슷한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요? 

마르다 보기에는, 이건 말이 안 돼요. 억울하죠. 
예수님이 무엇인가 착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자, 그러면 왜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시선을 옮기고 있습니까? 
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합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님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멈추라'는 말은 아닙니다. 
주님이 강조하는 것은 우선순위죠. 

좋은 결과는 우리가 내는 게 아니에요. 
'주님과 관계 안에 머물러 있어라, 주님과 관계가 끊겨 있으면 우리의 결실은 의미가 없다'는 거죠. 

어디에 연결돼 있어야 됩니까? 마리아는 그걸 알고 있다는 거죠. 
마리아는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그건 무슨 의미냐? 
마리아는 핵심적인 원리를 붙잡고 있다는 거예요. 
변하지 않는 핵심, 본질! 
마리아는 이 본질을 붙잡았다는 거죠. 

본질은 변하는 게 아니에요. 이건 놓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다른 건 다 놓쳐도, 이건 붙잡고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마르다의 사역적 열매는 반짝하고 사라지고 맙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없는 마르다의 사역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고 결과가 대단해 보였지만, 
조금만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러분! 나중에 그런 후회를 하지 말아야 돼요. 
'내가 뭐 때문에 그렇게 열을 내고, 그렇게 목숨을 걸고, 내가 피땀을 흘리면서 수고했지?'

자기 모든 걸 다 걸고 살았는데,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아요. 
너무 많은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결과물 인데, 너무 초라한 거예요.

여러분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을 것을 붙들어야 돼요. 
기본기 중의 기본기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여러분, 그 관계가 끊어져 있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갈수록 우리가 주님을 더 사랑하고, 우리의 시신을 주님께 집중하고 
주님과 나만이 아는 비밀의 시간이 점점점 많아져 가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뭘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연말이잖아요. 여러분, 열심히 연말마다 우리가 한 해를 평가해 보면서 
연말이 오면 답답해지는 게 없습니까? 

여러분, 열심히 안 살아서 답답한 게 아네요. 
열심히 살았는데... 뭐 손에 남는 게 없어요. 손에 잡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우리의 신앙도 뭔가 공허해요. 
작년과 올해가 내 신앙이 똑같은 거 같아요. 

여러분, 여기에 나오는 마르다의 이 모습을, 
혹시 내가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이 연말에, 우리가 다시 우리의 시선을 
주님의 발치에 앉아 있는 마리아에게로 옮겨가야 해요. 

여러분, 마리아는 왜 그 예수님의 발치(발 앞)에 앉아 있었을까요? 
마리아가 그 주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그곳이, 
하나님의 생명이 흐르고 있는 곳이란 말이에요.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게 하는 힘이, 그 주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주목해야 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거죠. 가지치기를 하라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위해, 가지치기를 해야 돼요.

여러분, 마리아가 주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그 선택이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어려워요! 
주님과 나와의 관계 안에, 그 분에게만 내 시선을 집중하고, 
그 분의 발치에 계속 앉아서, 말씀을 듣도록 세상이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아요. 

저는 목사인데도요. 그리고 꽤 열심히 목회와 말씀에 집중하려고 하는 목사인데도 불구하고 
세상 환경이 저를 가만히 안 둬요. 

내가 주님의 발치에 앉아 있지 못하도록 하는, 수많은 일들이 매일 벌어져요. 
전쟁이 일어나는 거예요. 

제가 거기 발치에 앉아 있지 못하도록, 그 주님께 시선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자리에 있지 못하도록,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지 못하도록 만드는 거예요. 
지긋하게 앉아서 말씀을 묵상 할 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세상이에요. 

여러분,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생명의 진액을 빨아당기잖아요. 
붙어 있어야 진액을 빨아당기고, 
진액을 빨아당겨야, 가지에 열매가 맺히죠. 

가지가 그 진액을 빨아 당기지 못하면, 시들시들해져 버려요. 가지가 말라 버려요. 
열매를 맺을 수 없어요. 시들어 죽어 버려요. 
그 영혼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가지치기를 한다는 거죠. 
그 가지치기를 고난으로 주로 비유를 하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스스로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니까 
제대로 열매를 맺으려고 하면, 가지치기를 해줘야 되는데, 
그 가지치기를 스스로 안 하니까, 
고난이라고 하는 강제 수단이 동원되지요.

여러분, 가지치기는 아픈 거거든요. 상처가 나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그런 과정을 통하여, 주님에게만 집중하고, 주님에게만 붙어있도록 하는... 
그렇게 붙어 있지 않으면, 공급이 끊겨 버리면, 끝이라는 거죠!

▲여러분, 오늘 이 물량주의적인 세상은 
경쟁하느라 혈압이 오르고, 스피드 게임을 하고, 막 비교하고, 
뭐 그냥 우리를 얼마나 몰아갑니까? 

전부 다 열심히 하다가, 지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시대의 이슈가 뭡니까? 더 많이, 더 빨리 뭔가를 만들어 내고, 
뭔가를 돋보이게 하고, 뭔가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내라고 막 부추기잖아요. 

여러분, 주님의 발치에 앉아 있는 마리아의 모습은 
그렇게 휘둘리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거죠. 

오늘 날로 얘기하면, 여러분, 아날로그적인 삶이에요. 쫓기지 않는 거죠.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주님과 시선을 맞추고, 
주님과 더 친밀한 관계 속에 있을 때, 
내 존재가 하나님의 생명을 통하여 채워지게 될 때,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거죠. 

여러분, 오늘 시대의 특징이 '가벼움, 경박성' 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뭔가에 막 휘둘리며 살아가는 거예요... 

(이하 요약)

오늘날 여러분, "과잉 활동성 장애자"들이 많아요. 오늘 우리 시대의 특징입니다. 
활동이 너무 과잉이에요.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거예요. 
심심한 거를 견디지 못하는 거예요. 

어디에서나 능력자 라는 말을 듣고 싶어해요. 
그러니 여러분, 그 삶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 삶인지요! 

그것이 소진되는 삶이고, 끊임없이 방전되는 삶이고, (다 닳아버리는 거죠) 
결국 바닥을 긁고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 분의 발치 앞에, 주님의 발치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들어야 해요.
말씀을 음미하고 묵상해야 돼요. 여러분, 묵상의 힘을 길러야 돼요!

여러분, 묵상은 음식을 먹을 때, 천천히 먹는 것과 연관 있는 거예요. 
히브리어로 '하가' 라고 하죠. 

'하가'는, 여러분 강아지가 그 뼈다귀를 그냥 계속 물고, 뜯고, 핥고, 빨고...한다는 뜻이에요.
수 시간을 그렇게 계속 하는 것... 그게 하가 입니다.
천천히 먹고 빨면서 음미하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될 때, 그 말씀이 내 전 존재를 사로잡고, 
그 말씀이 내 존재를 견고하게 세움으로 인하여 
외부적 어떤 사람들의 말이나, 평가나, 인정에 휘둘리지 않는 
자기 존재감이 우뚝 세워지는 그 단계까지 가야 된다, 채워져야 된다는 거예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주위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그 단어 하나 하나를 깊이 묵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를 비난하거나 비꼰 말을 주야로 묵상하는 거예요. 
그러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인생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말씀 묵상을 통해서, 내 존재의 부요함을 누리는 것이 관건입니다. 
내 존재가 스스로 부요해지면, 
말씀도, 사역도 풍성해지는 거예요. 
여러분의 영혼이 자라면 자라는 만큼, 성숙하면 성숙한만큼 
삶의 열매가 풍성히 맺혀지게 됩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처럼요!

여러분, 직장인들이 직장에 나가서 동료들과 대화를 할 때면, 
그 동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가 주로 돈 얘기 래요.

뭐 주식, 코인, 일론 머스크...
그 얘기만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얘기 계속 들으면.. 우리 힘이 빠지는 거예요. 
세상 속에서 우리를 소진시켜 버린다는 거죠. 우리가 번아웃 되어버려요. 

여러분,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해야 될 것은 뭘까요? 
주님과의 관계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뿌리를 내려야 된다 라는 거예요. 
주님과의 보내는 시간을 확보해야 된다는 거예요. 
마르다처럼 방전되는 인생이 아니라, 마리아처럼 충전되는 인생을 살아야 된다는 거죠!

여러분, 현대는 막 스피드 시대잖아요. 
서울과 부산도 스피드로 왔다 갔다 하고, 로켓 배송하고,
드론으로, 자율운전차량으로, 
더 편리하게, 더 많은 생산을 해내고, 더 효과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더 능률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하는데... 

정작 그 결과물은 우리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지 못하고 
허망한 것에 쫓겨 버리는... 바람을 잡는 것 같다는 거죠. 

이런 시대적 환경에 우리가 휘둘리지 말고,
오늘 우리는 이 마리아의 영성을 다시 회복해야 되겠습니다! 

그게 여러분, 기도 생활이고, 묵상 생활이고, 예배 생활이고, 
주님과 내적인 영성의 시간들이에요. 

죽도록 일했는데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는 삶과 구별되는... 
주님이 우리 안에서 놀라운 열매를 맺게 하시는 그런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