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XUMqt7nXt5o
*위 동영상 13:05초부터 녹취
◈우리의 앞날을 인도하소서 마2:9~11 2024.12.22.
◑예수님은, 하늘나라 천국에서 이 땅에 오신 인도자이십니다
마2: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겨울에는 화재가 잘 나잖아요. 여러분 화재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한 겨울에 정말 대규모 화재가 나면, 자기 힘으로 그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빠져 나올 수가 없잖아요. 구조대원(구원자)들이 와주는 것 자체가 너무 너무 감사한 일이죠.
그래서 주님이 오셨다는 이 소식을 알게 되고,
동방박사들이 별이 멈춘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다' 이렇게 돼 있어요. 마2:10
그 별이 인도한 곳이 어디라고요? 아기가 있는 곳이었어요.
별이 여기까지는 인도 했지만, 그러나 딱 여기까지의 역할이죠.
사실 이제부터는 이 아기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역사를 이끌어 가실
인도자가 되실 분이죠.
학문도, 예술도, 문명의 여러 가지 기술도,
우리의 인생의, 우리의 미래의 길을 제시합니다.
그 길이 때로는 틀리기도 하고, 때로는 희미하기도 하지만
또 실용적인 역할을 일정 기간 할 때도 있어요.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 인생의 마지막 지점까지, 역사의 마지막 지점까지
우리를 온전하게 인도 하실 수 있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마15:14b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여러분, 같은 소경의 입장에서 어떻게 이 사람이 나를 건져 주겠냐는 거예요.
(부다, 마호메트 등) 인간은 절대자가 아니죠. 상대성의 한계 속에 제한 받는 존재인데,
그 상대적 존재가 어떻게 다른 상대적 존재를 건져 주느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는, 둘 다 같이 구덩이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시대가 붙잡고 있는 다원주의 사조가 인간을 구원해 줄 수 있나요?
여러분 다원 주의는, 상대주의가 극대화 된 것이잖아요?
결국 상대적인 존재가 우리를 건져 줄 수 없어요.
즉, 인간이 만든 종교가, 인간을 구원해 줄 수 있나요?
아니 그 종교를 만든 인간들이, 유한한 상대적 존재이잖아요?
고타마 싯다르타 (부처)는 그 자신도, 신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부처가, 정말 중요한 그런 여러 가지 교훈을 깨우치고, 가르쳤던 사람이지만,
그러나 그 자신도, 시간 세계 안에서 자신의 그런 깨우침을 단계가
서서히 진행됐던 사람이죠. 그는 영원의 세계로부터 온 존재가 아니잖아요.
그도 상대적인 존재라고요.
마호메트도 이슬람 교에서는 마지막 선지자로 추앙을 받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절대시 하는 경전 꾸란에 분명히 써 있어요.
'마호메트가 낙원을 (우리로 얘기하자면 천국을) 잠시 엿보았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바로 천국에서 오신 분이라는 거예요.
이건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요3:14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여러분, 인류 역사에서 그 어떤 선각자도, 그 어떤 종교 창시자도
자신의 영원한 본적이 하늘나라 천국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없어요.
아니, 그런 상상조차 했던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단 한 분이 계신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길을 인도 하실 분이 누구신가요?
우리 인생을 과연 누구에게 맡기겠는가요?
◑인생 여정에는 하늘에서 가이드하는 네비게이션이 꼭 필요합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운전을 할 때나,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갈 때
네비게이션을 거의 안 쓰는 사람이 없잖아요.
근데 네비게이션의 원리는 여러분이 잘 아실 겁니다.
GPS 라는 위성에서부터 위치 확인을 해주는 시스템을 활용해서 길을 안내해 주는 거예요.
그래서 내비게이션을 갖고 있으면, 내가 서 있는 현재의 위치, 현재의 좌표를
정확하게 알려주는데, 위도와, 경도와, 세 번째 고도까지 알려 준대요.
내가 지금 지하에 있는지, 지상에 있는지... 이런 것까지 다 알려주는 거예요.
여러분 네비게이션이 너무나 편리하죠.
근데 이런 내비게이션 장치를, 그 디바이스(기기)를 내가 지금 갖고 있단 말이에요.
그 기기를 내가 갖고 있으면, 여기 지상에서 길을 알려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저 높은 하늘 위해서 (위성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죠. *천국에 비유
여러분 숲 안에 있으면, 나무는 보이지만, 숲 전체는 보이지 않잖아요.
숲 위에서 내려다봐야만, 숲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관점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주술사들이 여러분의 인생을 어떻게 운전하게 인도하겠는가요?
나무는 볼 수 있지만, 숲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존재들이에요.
그들 뿐이 아닙니다. 세상의 물질, 세상의 성공, 세상의 권력...
요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AI에 축적되어 있는 정보의 알고리즘...
이것이 우리의 인생의 길을 정말 온전하게 인도해 줄 수 있는가요? No
우리의 인생을 온전하게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은,
우리의 인생과 역사 전체를 저 하늘을 위해서 조망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우리 인도자로 오셨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한 거예요.
그 분이 우리의 인생에 가이드가 되어 주신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한 거예요. 할렐루야!
◑인도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여행의 질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제가 지난 번에 '찬양 A팀' 하고 같이 상해에 집회를 갔다 온 적이 있어요.
제가 어디 해외 집회를 가면, 거기 현지 목사님이
'언제 여기 또 오시겠느냐?' 그러면서 여기저기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하세요.
그러면 저는 다 사양하고, 그냥 가만히 도서관에 앉아 있거든요.
상해에서도 집회 일정들을 빡빡하게 잡아 놓으셨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사역이 끝날 때까지는 사역에만 집중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역이 끝나고 나서, 이제 주일 오후 반나절을
교인 중에 한 분이 꼭 안내를 해주시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 분은 중국에 오래 계셨던 분이고, 굉장히 많은 귀빈들을 의전하셨던 분이더라고요.
저희는 찬양팀 정도인데, 그 분이 미니버스를 렌트해 오셔갖고,
우리가 버스에 딱 타는 순간, 마이크를 잡고 뭐 안내를 하시는데
와, 정말 청산유수처럼 그렇게 해박하게 안내를 해 주셨어요.
그래서 주일 오후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가이드가 이래서 중요하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내년 1월 말에서 ~ 2월 초까지 2주간 동안, 저희 교회 39명이
튀르키예, 그리스, 로마까지 성지순례를 다녀 옵니다.
저희가 이번에 모시고 가는 박사님이 있어요.
이 박사님은 정말 한국 사람으로서, 유럽이든 이스라엘이든
성지 순례를 인도해 주실 수 있는 최고의 분이시거든요.
이 분을 보면, 약간 터프해 보이시긴 하지만,
성지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 같은 복장을 하고 계세요.
왜냐하면 KBS, EBS 에서 성지에 관련된 영상을 제일 많이 찍으신 분이거든요.
▲제가 장신대 신대원에 다닐 때, 저희 동기생들이 2년 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장신대 신대원 역사상 한 기수에 최고 많은 인원이 참여해서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했어요.
그래서 대형버스 4대로 이동을 했는데, 가이드가 여러 분 계셨거든요.
그래서 저희 버스 가이드를 이 박사님이 해주셨는데
때로는 상황 때문에 가이드가 바뀌기도 했어요. 근데 정말 비교할 수 없더라고요.
여러분, 제가 절감한 것은
그 짧은 상해에서 반나절의 여정도,
또한 이스라엘에서 2주간의 여정도,
누가 가이드를 해 주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체험이 되는 거잖아요.
누구에게 내 인생의 가이드를 맡기겠는가요?
여러분의 인생의 인도자로 누구를 따라 가겠는가요?
2025년에 우리 자녀들이,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고,
좋은 영적 지도자들을 만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2025년에 좋은 교회를 만나고, 좋은 공동체를 만나고,
좋은 영적 지도자들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우리를 평생토록 천국문 앞까지 온전하게 인도해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인격적으로 만나는 새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대의'로 이끌어 갈 지도자가 요구됩니다
대한민국 사회를 보면, 정말 이 사회를 바르게 가이드 해 줄 수 있는 지도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우리나라는 유독 붕당정치가 심각할까요? *벗 붕, 朋黨
붕당이란, 혈연, 지연, 학연 등과 같은 인연을 매개로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거죠.
국가의 공식적인 조직과 별개로 사사롭게 결성한 모임을 뜻합니다.
어느 나라든지, 정치는 그 특성상 이해타산이 많게 되어 있어요.
하지만 특별히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당리당락에 빠져 있는가요?
여러분 '대의' 라는 것을 상실하게 되면,
본질적으로 지켜야 될, 목숨 걸고 지켜야 될 가치 자체가 무너지는 거예요.
이 절대성(대의)을 포기하면, 결국에는 그것을 기준으로 하는
옳고 그름의 판단력과 분별력은 존재할 수 없게 돼 있어요.
이것이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21세기를 압도하는 사상 중에 하나가 실용주의 pragmatism 예요.
이것은 '옳으냐, 그르냐' 는 그 다음 문제이고,
유용성, 효용성을 가장 먼저 따지는 사조이죠. 현대 미국 사회를 이끌어온 힘이었죠.
실용주의는, '내게 이익이 될 것이냐?'를 먼저 따집니다.
이 실용주의가 현대 사람들의 사상과 삶과 공동체를 다 장악하고 있어요.
실용주의가 단기 간에는 좋아 보이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이뤄야 될 비전이 사라지고
내가 삶의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될 가치 체계가 사라지면,
여러분 그러한 공동체와 그런 시대는 반드시 무너지게 돼 있어요.
'생존을 위한 경영을 할 것이냐, 아니면 승리와 부흥을 위한 경영을 할 것이냐?'
이거는 대한민국 사회의 정치계 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 개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이고, 기업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목회자들을 보면서 어떤 때 안타까움을 느끼시나요?
저는 같은 동료 목회자들을 보면서
때로는 한국의 목회 현장이 굉장히 어려운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오래 버틸 수 있나?' 이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있거든요.
만약 그런 생각으로 목회를 한다면, 즉 '대의'를 상실하면,
정치적 타협, 신앙적 타협을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가 그런 방향으로 갈 순 없는 것이죠.
정말 하나님 나라의 꿈을 이루는 교회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주에 제가, 저희 성도님으로부터 이메일을 한 통 받았어요. 내용이 뭐냐면,
「제가 봉사자로 교회를 섬기기에 앞서서, 두 목사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저하고, 그 분의 담당부서 박목사님을 얘기합니다.)
저는 이 교회를 통해서 회복과 영적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작년 가을 부흥 집회 중에 방언을 선물로 주셨고,
1년 반 동안 새벽기도와 순예배를 통해서 영적인 성장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분이 강조한 것은,
저희 교회 사역자 모두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목회'를
진정성 있게 하는 것에 큰 울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구호가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성도들이 뭘 간절히 원할까요?
교회가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 가는 것... 그건 아니잖아요.
부흥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위해... 이 길을 가기를 원하잖아요.
여러분의 인생도, 일터에서 육아와 살림을 하는 과정에서도,
그냥 단순히 버티는 수준이 아니라,
꿈을 이루고, 대의를, 즉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치 있는 삶이 되기를 원하시잖아요.
그럼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우리의 인도자 (내비게이터) 로 오신 그 분을 맞이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이런 비전의 경지에 다다를 능력이 없어요.
그러나 그분을 맞이 하면, 그분이 이끌어 가실 줄로 믿습니다. 요1:12
◑주님은 나를 찾아오셔서, 나와 인격적 관계를 원하십니다
집나간 자녀가 돌아오지 않으니까, 부모는 자녀를 찾아 나섭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땅에 찾아오신 거잖아요.
근데 이거는 어떻게 보면, 상황이 정반대로 됐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안아 주시고자 오신 것인데, 그런데 상황을 보면 정 반대예요.
우리가 그분을 안아드려야 될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낳는 아기는 짐승들과 다르잖아요.
짐승 새끼와 다르기 때문에, 자기 발로 일어나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립니다.
얼마나 케어가 많이 필요하고, 얼마나 많이 안아주고,
24시간을 돌봐줘야 되는지 몰라요.
왜 하나님의 아들이, 완성된 성인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어린 아기로 오셨는가요?
우리를을 안아주러 오신 그 분이,
그러나 우리가 그 분을 안아드리는 선택을 하기를 기다리시는 거예요.
그 분을 품기를 기다리시는 거예요.
▲요21장 마지막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베드로가 '나는 자신 없습니다' 그러고 물고기 잡으러 가잖아요.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그냥 놔 주실 분이 아니죠.
그래서 베드로를 찾아 가시잖아요.
그러면 베드로를 찾아가서, 다시 물고기를 어마어마하게 잡는 기적을 베푸시면서
'야 너는 그러지 말고 나를 따라와!' 이렇게 얘기하시면 끝나잖아요.
근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제가 이 사람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다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계면쩍게 이 얘기를 꼭 해야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하시고, 같은 대답을 세 번이나 받으셨잖아요.
뭡니까?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지만.. 나는 너를 선택했지만..
너도 나를 선택했으면 좋겠다.. 너도 나를 품고 갔으면 좋겠다...' 이거죠.
나도 너를 안아주겠지만, 너도 나를 안아달라는 거죠.
주님은 이런 인격적 관계를 원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인격적인 분이세요.
여러분, 한국인은 3가지 종교를 갖고 산대요.
사회에서는 기독교, 집에서는 유교, 정신적으로는 샤머니즘!
여러분, 그렇게 여러 종교를 갖고 사는 사람은,
아직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에요.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우리와 교제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좋으신 하나님을 만났는데, 왜 우리가 다른 신을 또 택하겠습니까?
이 성탄절에, 인격적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시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 시간 우리 가슴의 손을 얹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