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karamos/220202325402
◈무엇을 하여야 행복할까 눅18:18-23 2013.08.18.
제가 27년 동안의 갈릴리교회에서의 목회를 마치려는 요즈음
제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27년 동안 내가 한 것이 무엇인가, 이 교회에서 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며,
그 결과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27년 동안의 제 목회에 대한 결론에 대한 것입니다.
대개 어느 교회의 목회자에 대한 평가는
그가 그 교회를 얼마나 크게 성장시키고, 얼마나 큰 교회당을 지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교회를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설교입니다.
그러나 설교에 대한 평가도,
얼마나 신학적으로 바르고 성경적으로 설교를 했는가 하는 것보다는
얼마나 많은 교인들을 모으는 인기 있는 설교를 했는가 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보통 듣고 보는 일입니다.
▲저의 첫 번째 설교집이 1990년에 출간된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지금은 누렇게 색이 바랜 설교집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제가 신학교 교수에게
“당시에 어떻게 그런 설교를 하셨습니까, 제가 읽은 설교집 중에 가장 신학적으로 뛰어난
설교집입니다.” 하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교수는
“당시 그런 설교를 했을 때 교인들이 큰 감동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그 설교를 들으러 왔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그 설교를 했을 때 50~60명의 교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설교를 들은 사람 중에 그 어떤 사람도
‘우리 목사님 설교가 정말 좋으니 함께 들으러 가자.’고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온 일도 없습니다.
그때 설교집을 3천 권쯤 찍었는데, 아직도 창고에 많은 양이 남아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교수님이
“목사님,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 설교집을 찾게 될 것입니다.”
라고 저를 위로 했습니다.
제가 27년 동안 수없는 설교를 했습니다만
교인들을 500명도 모으지 못하는 인기 없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보통 기준으로 말하면 저는 목회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27년 동안 갈릴리교회에서 지낸 것입니까?
사실 저는 여러분들이 짐작하시는 대로
그런 외형적 성장보다는, 다른 곳에 목표를 두고 목회를 해왔습니다.
제 목회에 한 가지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고 하면
그것은 얼마나 이 교회에 많은 교인들을 모으는가 하는 것보다,
이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이 어떻게 복음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늘 강조했습니다.
제가 확실히 믿는 것은 그 길만이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은 절대적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예수님 이외에 그가 가르쳐준 말씀 이외에 다른 길로는
우리 인생이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제게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갈릴리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정말로 행복한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 생겼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간 27년 동안 그렇게 늘 되풀이 되풀이 강조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 그것이 제 목회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에 대해 세 가지로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1. 지난 27년을 되돌아보면 행복은 그만 두고 우리 교회에 와서 불행을 경험한 사람들,
그래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때때로 여러분에게 우리 교회가 행복하지 못하면
주저하지 말고 다른 교회로 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말을 오해하거나 섭섭해하지 말 것은
제가 하는 목회의 목표가 ‘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를 막론하고 이 교회에서 행복하지 못하다면
정말로 행복하게 하는 교회로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사치고 교인 욕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때때로 우리 교회를 떠날 때 저는 며칠 밤을 뒤척이며 고통스러워합니다.
이것이 목사의 심정입니다.
▲2. 두 번째 부류는, 저의 이 말씀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는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도무지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습관과 가치관과 생각을 바꾸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말은 맞는데 결단을 못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우상을 섬기는 것이고
돈에 집착하면 불행해진다는 것을 알면서
그것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벗어나지 못합니다.
설교는 설교고, 생활은 생활입니다.
자식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알지만
실제로는 불안해서 여전히 자식에게 매여 쩔쩔매며 불행한 인생을 삽니다.
그러니까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는 머리를 끄덕이지만 밖에 나가서는 옛날의 생활을 끊지 못하고
계속해서 되풀이함으로 말미암아 고달픈 인생을 여전히 살아갑니다.
때때로 이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들이 저희 교회에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저에게 하는 말이
“목사님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힘들게 사는데 교회 와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교회에 오면 오히려 더 갈등이 생깁니다.” 라는 것입니다.
말은 옳은데 실천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우리 교회를 떠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부류는,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 그대로 받아들여서
자신의 삶의 가치관이 변화되어 다른 가치관과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감으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적지 않게 있습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 사람들이 제 목회의 결론이고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들로 말미암아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들이 이끌어갈 미래의 교회에 대해서 가슴 설레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성도님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인생의 성공은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가, 무엇을 얼마나 이뤘느냐,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닙니다. 인생의 성공은 절대로 그런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성공은 그가 얼마나 행복한 인생을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행복은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착각합니다.
지금은 불행하지만 언젠가는 행복이 천사처럼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그렇게 한꺼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삶 속에 조금씩 쌓여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행복은 내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매일매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먼 훗날이 아니라 매일매일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꼭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잘 믿으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가난하더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병들었어도 예수님을 잘 믿으면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실패했다 해도 예수님을 잘 믿으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젊거나 늙거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아주 재미있는 책을 읽었습니다.
다니엘 튜더의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입니다.
원문은 Korea the Impossible Country 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옥스퍼드 대학 출신으로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서울 특파원으로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우리나라에 대해 쓴 책입니다.
지난 해 11월에 미국에서 영문으로 출간되었는데 6개월이 되지 않아
2만 권이 팔린 인기 있는 책이고, 얼마 전에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출간되었습니다.
흔히 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서 세 번 깜짝 놀란다고 합니다.
첫째, 그 짧은 기간에 어떻게 그런 놀라운 경제 기적과, 민주주의의
두 가지의 기적을 이루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역사뿐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세계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랄 일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온 세계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의 이러한 위대함에 깜짝 놀라는데
정작 당사자인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모른다는 것에
깜짝 놀란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이룬 한국 사람들인데, 만족하지 못하고
세계에서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에 또 깜짝 놀란다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예가 자살률이 8년 연속 세계 1등입니다.
하루에 43명, 일 년에 만오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매년 자살로 지난 3년 코로나보다 더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예가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에서 2011년에 OECD 10대 국가 학생들에게 조사했는데
OECD 국가 중에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178개 국가를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102번째라고 합니다.
이혼율은 계속해서 1위를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튜더는 이러한 것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우리나라를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는 했지만
기쁨과 행복을 잃어버린 불행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왜 경제개발을 하고 민주주의를 이루었습니까?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행복하기 위해 이룬 기적이, 오히려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가고 불행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인들의 무한 경쟁심, 무한 욕심, 끝없는 욕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 사람들을 불행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돈도 이제 그만 가져도 될 것 같은데 끝없이 가지려고 합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끝까지 책임지려합니다.
대학만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유학까지 보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기러기 아빠’라는 말이 세계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아이들과 아내는 외국에 나가 있고
혼자 살고 있는 남자들이 십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2013년 설교
다른 나라 사람은 도저히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외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형외과, 성형 수술이 전 세계의 1위 국입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형수술의 1/4이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남에서는 ‘어머니 날 낳으시고 원장님 날 만드셨네’ 라는 현수막을 걸기도 한다고 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놀라운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
세계적인 화장품회사의 사장님이 남성 화장품을 개발했는데
한국에서 성공해야 다른 나라에서도 성공한다고 합니다.
전 세계 화장품의 18%가 한국에서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든지 외모로서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한경쟁, 끝없는 욕심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외국 사람들이 보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제는 살만한데 행복해도 되는데, 왜 불행한가, 왜 자살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끝없는 욕심 때문입니다.
약1:15절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딤전6:10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한국 사회의 불행하고 비참한 현상에 대해, 외국 사람들은 크게 염려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로버트 스키델키스와 에드워드 스키델키스 부자가 쓴
<얼마나 있어야 충분하가> 책을 읽었습니다.
돼지는 위장의 80%가 차면 더 이상 안 먹는다고 합니다.
우리 사람은 100% 차도 더 먹습니다.
그래서 돼지는 위장병이 없는 반면, 우리는 위장병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도대체 얼마나 있어야 만족하고, 더 가지지 않으려고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1928년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세계적 경제학자 케인즈가 케임브리지 학교 학생들을
모아놓고 이런 연설를 했다고 합니다.
‘2028년이 되면, (지금이 2013년이니까 앞으로 15년 후에는) 우리 인류가 어떻게 될까,
경제가 발전하고 또 발전해서 우리 인류 모두가 충분하게 가질만큼
가지게 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하면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인류가 힘든 노동에서 해방되어서 어떻게 하면 더 즐겁고 행복하게 지낼까 하는 생각만 하는
인류의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케인즈가 말한 100년 후가 이제는 15년이 남았습니다. *2013년 설교
그런데 스키델키스 부자는 케인즈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경제가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인간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한 엉터리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되지만, 인간은 끝없는 욕심으로 인해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돼지에게는 충분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아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결국 끝없는 욕심과 걱정이 인간을 불행하게 하고
인간을 파멸 시킨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이 그런 불행과 파멸에 이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두 가지 장치를 하셨습니다.
하나는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라는 것은 주일에 교회에 나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은 그만하라, 스톱하라는 것입니다. 더 먹을 수 있지만
그만 두고, 더 할 수 있지만 그만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의 뜻입니다.
내가 가질 수 있다고 다 가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돼지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가질 수 있지만 나는 이만큼만 가진다고 스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명예나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가질 수 있지만 그만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화내고 더 기뻐할 수 있지만 얼마만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집착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내에 대해, 남편이나 자식에 대한 집착을 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돈도 벌 수 있다고 끝까지 버는 것이 아닙니다. 더 벌 수 있지만 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안식일의 의미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 것만이 안식일이 아닙니다.
스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쟁을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안식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년이 되면 자신의 땅을 원래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려드렸습니다. 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돌려드린다는 것이 안식년입니다.
우리에게 안식년의 신앙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식들 때문에 속상하십니까?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니까 자식 때문에 속상한 것입니다.
돈이나 사업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속이 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돈이나 사업 때문에 속상한 사람은
근본적으로 내 것이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욕심을 버릴 수 있습니다.
해에 대해서 산에 대해서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버려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습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까워서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쉽게 내어놓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주지 못하고 나누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고 나눔의 삶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게 필요한 만큼만 갖고 나머지는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나눔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인생에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이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나간 27년 동안 거듭해서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가진 그 어떤 것도 내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욕심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여러분을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것으로 생각해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시면 감사하고 가져가셔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어떤 관리가 예수님을 찾아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질문합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가진 것을 나누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부자 청년은 심히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욕심을 버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피눈물 나는 기도로서만 욕심을 버리고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한없는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삶이 찾아올 것입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세상을 떠날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슬프고 근심과 걱정에 싸인 불행한 인생을 살 것입니까?
여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미련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행복한 인생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삶이 여러분의 인생을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이런 귀한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