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주 위해 서라 - YouTube
◈일어나 주를 위해 서라 행27:9~22 2024.12.22.
◑줄 끊어진 마리오네트 인형과 같은 현대인들
여러분, 마리오네트를 아십니까? 줄로 매달아서 위에서 사람이 조정하는 '줄인형'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입을 모아 감탄하는 멋진 마리오네트 인형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외모, 날렵하면서도 품격있는 몸 놀림과 춤 솜씨로 박수를 많이 받는
스타 인형이었습니다. 이 마리오네트가 하루는 생각합니다.
'나는 참 훌륭해.. 못 하는 게 없어... 그런데 이 줄은 뭐지?
나를 얽어매는, 나를 부자연스럽게 하는 이 줄만 없으면,
내가 훨씬 더 폼나게 자유롭게 살 수 있을 텐데...'
그러면서 자유를 얻기 위해서, 자기 몸에 연결된 줄을 하나 둘씩 끊기 시작합니다.
줄이 끊겨 나갈 때마다,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이제 곧 완벽한 자유를 얻게 될 거야' 하는 기대로 흥분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줄을 끊는 순간, 이 인형의 몸에서는 힘이 쭉 빠져나가고,
바닥에 털썩 주저 앉습니다. 마침내 앉아 있을 힘도 없는지, 바닥에 완전히 엎드려집니다.
장내에 조명이 꺼지고, 구슬픈 음악이 흐르면서 막이 내립니다.
이 이야기는 현대 사회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현대인에게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을 내몰아 버렸습니다.
하나님 없이 내 힘으로, 내 지식으로, 과학으로... 그것들을 의지해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상황이, 오늘 본문 행27장 배 위에 있는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아시아를 떠나 로마로 가는 이 배 위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바울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큰 위험을 당할 것이다. 항해를 하지 마라' 그랬지만,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음으로 인해서, 그들은 하나님이 계실 여지를 없애 버렸습니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행27:11
◑과학적 마인드만 가지고, '신비'의 영역을 무시하면 낭패를 당합니다!
항해를 감행한 이유는 의외로 사소했습니다.
지금 겨울을 지냈어야 했을 항구는 '미항 fair havens' 이라는 이름과 달리 불편했습니다.
'여기는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함으로, (큰 항구도시) 뵈닉스에 가자'고 그랬습니다. 27:12
상식적이고 가능한 판단입니다.
우리가 가진 경험과 정보, 데이터를 모아서
구성원들의 바램을 잘 모아서 결정하는 것... 괜찮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판단을 과신한다는 것입니다.
'괜찮다. 틀림없다' 그래서 결정하고 시작한 일이
의외의 상황, 우리가 염두에 두지 못한 상황을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현대인들은 '인간의 인식'이라는 바운더리를 너무 신봉하고,
그 밖에 있는 세계, '신비' 라고 할 수 있죠. ☞ <신비>
그 영역을 점점 축소시켜 버리고,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의 이성적 판단을 '과학적 사고'라 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것을 '비 과학적 사고'라고 레이블링(라벨 붙이기) 하는 데 익숙합니다.
▲성경은 과학적 연구, 합리적 추론 과정을 배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열린 자세가 있습니다.
'아직 우리가 모르는 것이, 그 바운더리 밖에 있을 수 있다'라고 하는 거죠.
놀랍게도 많은 과학자들, 톱 클래스 과학자들이 비슷한 견해를 취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크리스찬은 아니지만, 그 분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가령 우리가 어린 아이고, 각가지 다른 언어들로 쓰인 책들이 가득찬
거대한 도서관에 들어섰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이는 분명히 누군가가 그 책들을 썼으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죠.
하지만 책들이 어떻게 쓰여졌는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그 책들에 쓰인 언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또한 아이는 어떤 신비한 질서에 의해, (내가 모릅니까 신비한 거죠.
내가 헤아리기 힘든 수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책들이 질서있게 배열되어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책을 막 갖다 꽂아놓은 게 아니고, 주제별 분류라든지,
제목 알파벳 순서라든지 뭔가 배열에 질서가 있죠)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죠.
아무리 지적으로 뛰어난 인간이라 해도,
신을 대하는 태도는 이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열린 태도, '내가 아는 지식의 총량을 다 더해도, 그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
그 영역 밖에 또 무엇인가 있다...' 라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거죠.
오늘 이 배에 탄 사람들은,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자신들의 판단을 과신했습니다.
'여기 미항에서 겨울을 지나기는 불편하다.'
결국 그들이 어디서 겨울을 지나는지 아십니까?
풍랑을 만나 배는 부서지고, 물에 완전히 빠져서 전부 다 버리고,
겨우 간신히 자기 목숨만 건져서, 이름도 모를 섬에서, 나그네로 겨울을 지나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것, '이거 꼭 해야 되겠다' 하는 것,
그들이 목숨 걸고 하는 것을... 지나고 나서 보면 '정말 그럴 가치가 있었나?' 하는 것들이 많잖아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27: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하나님 말 안 듣고 출발했는데, 처음에는 괜찮아요. 잘 나가요.
여러분,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가면 안 되는 길인 것 같아요.
이런 사람하고 이런 식으로 사업하는 것이 깨름칙해요.
'하나님이 벌 주시지 않을까? 막지 않으실까?'
근데 막상 해보니까 처음에는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거 괜찮아? 어, 하나님 뜻인가?'
백부장과 선장과 선주는, 자기들의 뜻을 이룬 줄 알고
'그봐 뭐라고 그랬어? 하나님이 뭐? 그런 거 신경쓰지 마!'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큰 소리 치는 사람들이 세상이 많습니다.
시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이 없다'라고 단언하는 사람, 자신 하는 사람, 큰 소리 치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고,
세상의 역사에 이런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그걸 허용(내버려둠)하시는 것 같기도 해요.
만약에 우리가 한 발짝 어긋난 길로 벗어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당장 벼락을 내리치고, 벌을 주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을 사람 없겠죠?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살아갈 수수 있는 여지가, 세상 역사에는 있습니다.
악인이 잘 되고, 하나님의 뜻... 뭐 그까지 것,
정의니 양심이니 그런 거 다 그냥 접어 두고요. 그런 일정한 시기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 그게 얼마나 갈까요?
27:14 '얼마 못 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 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엄청난 폭풍을 만납니다. 그 결과,
27: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내 판단대로, 내 의지대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위기의 징후가 있어도, 당분간은 무시하고 그냥 살 수 있습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냥 괜찮은 척하고 한 동안 갈 수 있습니다.
체면, 자존심, 이런 것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풍랑을 만나면, 내가 의지하던 모든 것들을 다 내버리게 됩니다
근데 여러분, 그게 얼마 못 가는 거 아십니까?
'내 인생이 위기다' 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는 거죠.
27: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배의 짐을 다 내버리고, 배의 기구까지 그들의 손으로 스스로 내어 버렸습니다.
당시 무역선에서 어떤 짐을 싣고 다녔을까요?
지난 수십 년 동안에, 고고학계에 아주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어요.
배 위에서나 땅 위에서 초음파를 아래로 쏘면,
바다 밑바닥이나, 땅 속에 파묻힌 유물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난파선 찾는 기술이 굉장히 많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로마 시대때 무역이 굉장히 성행했기 때문에,
난파선을 발견해서 조사해 보면, 그 안에 당시 어떤 물품들이 거래 되었는지,
세세한 리스트를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계18장에 나오는 굉장한 사치와 향락의 물품들이 그대로 증명이 됩니다.
최근에 제가 한 번 전자제품 상점에 들어갔더니, 어휴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TV가 수천만 원 해요. 여러분, 수천만 원 짜리 TV가 있는 거 아십니까? 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찾아 보니까, 한국 TV가 요즘 세계에서 가장 비싸거든요.
올해 여름에 1억 8천만 원짜리 TV가 나왔다는 겁니다.
고대 사회에서 경제가 가장 좋을 때가, 로마 제국 초기 때였습니다.
그런 고가의, 포장도 안 뜯은 것, 그걸 다 바다에 버렸다는 거죠. 본문에서.
그것들은 명품이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뭡니까? 짐이예요.
한 때는 그게 자랑이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배를 무겁게 하는,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짐일 뿐입니다.
한때는 '내가 이런 것 가졌어!' 라는 자부심의 근거이기도 했고요.
'나 이 정도 있으니까...' 안정감의 근거이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 가졌으면, 내 인생 아무 문제 없다. 끄떡 없다' 맞습니까?
한 때는 그것이 삶의 목표이기도 했고, 자나깨나 그거 벌고, 모으고,
자랑하고, 비교하고, 못 가지면 실망하고... 가지면 행복하다 그러고...
그렇게 살았는데 지금은 짐일 뿐입니다. 다 버리는 거예요.
인맥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여러분, 한 때는 자랑이 된 인맥이, 상황이 조금 바뀌면
'나 그 사람 몰라! 나 그 사람 본래 싫어했어' 그러잖아요. *요즘 계엄사태로 그러죠.
누가 버렸습니까? 자신들의 손으로 내다 버렸습니다.
왜 버렸어요? 풍랑이 오니까요!
여러분, 이 풍랑은, 질문하는 풍랑입니다. 본래 인생의 모든 풍랑은..
여러분 인생의 어떤 영역에서, 내 건강이든, 사업이든, 가족 관계든,
풍랑을 만나면 대답을 해야 됩니다. 인생의 풍랑은 질문합니다.
인생에 풍랑이 막 몰려올 때에, 숨도 못 쉬게 몰아치면서
'당신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 그래서 못 버리는 것, 그게 뭔가?'
'그게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가?' ... 그것을 질문해 오는 거예요.
여러분, 풍랑이 이렇게 질문해 올 때, 대답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여러분, 그 전에는 대답을 미루고 살아왔습니다.
근데 어떤 풍랑이든, 인생의 본질적인 위기가 닥치면, 고민해야 돼요. 대답해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그 중요한 질문들을 미루어 놓았어요.
'조금만 더 돈 벌고 나서'
'이 고개만 넘고 나서'
'이것만 해결하고 나서'
'그 다음에 뭐 인생의 의미든 뭐든.. 제대로 고민해 봐야지..'
근데 인생의 풍랑은, 더 이상 근본적 질문에 대한 대답을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온다 라는 거죠.
이 질문 앞에서, 오늘 이 배를 탄 사람들은 대답해야 했습니다.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스스로 버리는 거예요. :19
▲처음에는 짐을 버렸고, 사흘 후에는 배의 기구까지 다 버렸습니다.
'배의 기구를 버린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 배를 우리가 컨트롤해서 어떤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된다는 거예요.
그걸 버린다는 겁니다. 삶의 통제권을 포기하는 거예요.
아니, 내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거예요.
여러분, 자녀를 낳아서 기를 때에, 처음에는 아이들이 말 잘 듣잖아요.
어느 순간에, 말을 안 듣는 순간이 오잖아요.
'내 통제가.. 이게 안 되는구나' 알게 됐어요.
얼마나 그 순간이 부모들에게 힘든 순간입니까!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이 너무 힘들어서,
퇴근 하다가 집에 못 들어가고, 중간에 차 세워 놓고,
남자분이 차에서 울다가, 눈물 닦고 집으로 들어갔다.. 하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회사 경영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사장님들, 직원들이 통제가 됩니까?
우리 교회에 총장님들도 많으신데, 총장님들, 교수님들이 통제가 됩니까?
이 통제의 환상, Illusion of control 여기서 벗어나야 행복합니다.
우리가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게, 정말 적습니다.
늘 말 안 듣다가, 가끔씩 말을 들으면 그게 다행인 거예요.
그때 뭐 조금 전진하는 겁니다.
여러분, 내가 가진 것 중에, 내가 확보해 놓은 것,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개런티 (보장) 하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결국에는 다 떠날 것입니다. 내 건강도 재산도... 내 것이 아닙니다.
잠시 이때 맡기신 것 뿐이에요.
이 사람들이 배의 모든 물건들을 버리잖아요.
근데 문제는, 버렸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면 좋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버릴 때 버려야 되는 거예요.
버리는 게 의미가 있을 때, 제 때 버려야 되는 거예요.
▲내려놓는 것도 그렇습니다.
'언제 내려놓는가?' 그게 아주 중요한 결정입니다. 타이밍이 늦으면 낭패납니다.
'편하게 겨울 나고 싶은 마음', 그거 조금 일찍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요.
'내 자존심 세우는 그 마음',
그거 조금만 일찍 버렸으면 우리 가정이 이렇게 해는 안 됐을 텐데... 이런 후회를 하잖아요.
버려야 될 거면, 적기에 버려야 된다면... 그게 지혜이고 결단인 거예요. 용기인 거예요.
▲27: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여러분 지금 이 세계가, 사람들이 많이 스마트해 진 것 같은데, 어떤 세계가 되었습니까?
경제 규모는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한국이 살기 좋아졌습니다.
우울증은 역대 최고고요, 자살률도 세계 최고고요,
청소년들은 불행하다 그러고요, 출산율 하나만 보더라도
몇 십 년 내에 소멸한 나라 리스트에 한국이 1번으로 올라 있습니다.
전 지구적으로 생태계의 위기,
그 눈부신 과학과 문명과 기술이, 우리 전체를 소멸하는 위기로 몰고 가고 있잖아요.
인간의 자부심이, 그 자신감이, 하나님을 몰아낸 세계가 다다른 막다른 골목입니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20
◑풍랑과 위기가 닥치지만, 성도는 '안심시키는'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행히 하나님이 연출하시는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바로 이때 저 구석에 있던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바울에게 조명이 비췹니다.
27: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이 말합니다.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25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누가 '안심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허세로 '괜찮을 거예요. 안심하세요' 한다고 말한들, 안심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자신 있게, 담대하게, 확신 있게 말합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사람들이 듣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속한 바 내가 섬기는 하나님!' 이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을 말합니다. :23
바울이 누구에게 속해 있습니까? 하나님께 속했어요.
여러분, 바울은 지금 이 배 위에 있지만,
이 배가 로마제국의 통제를 받는 이 배가, 그의 1차 소속이 아니에요.
그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약에 이 배가 그가 의지하는 전부였다면,
이 배가 그의 존재의 근거였다면,
배가 침몰하면.. 바울도 침몰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배를 타고 있기 이전에,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권세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여러분, 로마 제국의 지도를 보면,
BC 146년에 카르타고를 정복 하면서,
지중해 전체가 로마의 품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사람들은 지중해를 '마레 노스트룸' 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바다' 라는 뜻입니다. 지중해를 우리가 다 평정했다는 거죠.
옛날에는 해적도 있고, 적선도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항해하는데 위험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로마인들은 지중해를 제국의 연못으로 만들었다' 라고 하는
정말 뭐 엄청난 말을 했습니다.
그럼 진짜 연못 입니까? 아니잖아요.
로마군이 탄 배가, 지금 막 그냥 부서져서 침몰될 뻔 하잖아요.
로마 황제가 지중해로 배를 타고 나가면, 파도가 순종하겠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이곳이 우리의 연못이다. 우리 바다, Mare Nostrum' 이라고 하는 건
그냥 환상에 불과한 거예요. 인간의 허세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바램이 투영된 허세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태평양이 영어로 퍼시픽 오션이죠.
16세기 초에 마젤란이 태평양을 항해하면서... 굉장히 그때 잔잔했대요.
그래서 Pacefic Ocean (잔잔한 대양) 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물론 태평양이 물결 치는 대서양에 비교하면 잔잔한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태풍이나 사이클론이 와 보십시오.
태평양에 얼마나 무서운 파도와 해일과 폭풍이 많은지... 여러분이 아시잖아요.
Pacific (잔잔한) 이 아닙니다.
정말 웃긴 말은, 2차세계대전 끝에 태평양 전쟁이 있었잖아요.
그 '태평양 전쟁'을 영어로 뭐라고 그러는지 아십니까? Pacific War 라고 그래요.
그대로 번역하면 '평화로운 전쟁'이란 말입니다.
'평화로운 전쟁'이라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모순이죠.
로마 황제, 최고의 권력이었지만
그 큰 바다와 폭풍 앞에서는 전혀 무력했습니다. *그 배가 '로마제국'을 상징한다고 볼 때
▲또 하나 무력한 대목이 있어요. 크나큰 바다 안에서 뿐만 아니라,
작고 작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세상의 권력이,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할 수는 있지만, 지배하지는 못합니다.
세상의 재물이,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 훔칠 수는 있지만, 그 마음에 평안을 주지는 못합니다.
여러분 걱정이 많습니까? 조금 더 가지면.. 조금 더 확보하면..
걱정이 다 사라지고, 안심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옛날에 그런 말이 있었잖아요. '천석군은 천 가지 걱정, 만석군은 만 가지 걱정'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25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한, 하나님이 바울을 붙잡고 놓지 않는 한, 바울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침몰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한, 우리는 침몰하지 않을 줄 믿습니다.
'나의 속한 바 나의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그랬습니다.
여기서 '섬긴다'는 말은 serve, 예배한다는 말입니다.
예배는, 내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음을, 내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확인하는 길입니다.
바울은 예배했습니다.
'어젯 밤에 내가 예배 하던 그 하나님이, 바로 내 곁에 서서 말씀해 주셨다' :23
라고 말하는 거예요.
우리가 교회 와서, 봉사도 하고 선교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섬기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서도 정말 열심히 섬기던 분들이
아파서 집에서 그냥 누워 계신 분도 계십니다.
바울도 그랬을 거예요. 선교할 틈이 없어요.
그냥 풍랑이 일어나고, 막 사람들이 말을 안 듣고요... 죄수의 말을 누가 듣겠습니까?
근데 바울의 예배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내가 속한 바 나의 예배하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그는 예배하고 또 예배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신앙생활 하면서,
때로 우리의 섬김이, 우리의 선교의 발걸음이,
더딜 때도 있고, 때로는 스톱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배는 결코 스톱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할렐루야!
더욱 의지하는 거예요. 여러분 배가 흔들릴 수록, 차가 흔들릴 수록,
더 빨리 뭘 붙잡잖아요. 그게 여러분 예배입니다. 그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겁니다.
밤이나 낮이나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혹 어려움을 당해도, 풍랑을 만나도, 실직을 해도, 사업이 어려워도,
내가 지금 병석에 누워 있어도, 하나님 의지하는 것, 예배하는 것을,
멈추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람에게 붙으면 '삽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은 선교의 문서 잖아요. 로마에 선교하러 가는 거잖아요.
근데 지금 바울은 묶여 있어요. 말해도 사람들이 듣지 않아요. 어떻게 선교해요?
그런데 주님을 의지 하다 보니까, 예배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인가 사람들이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잖아요.
로마에 가기 전에, 이미 이 배에서 선교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사역, 선교의 문을 열어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바울이 말합니다.
27: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여러분, 안심 하십시오. 여러분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왜요?'
'내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바울은 말하는 거예요.
주님이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너에게 주셨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붙어 있으면, 여러분은 살 겁니다'
왜요?
'내가 가이사 앞에 서야 되기 때문입니다!' 라고 바울은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바울,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다!'
그 미래를 정해 놓고, 현실을 바꾸어 가며, 우리를 이끌어 가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 미래를 알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1장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 시몬이었죠.
누가 주목할 만한, 무슨 싹수가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근데 처음 만나면서 예수님은 그러셨죠.
'너는 시몬이라. 장차 너를 게바라 하리라. 너를 반석으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영광스러운 교회의 반석 되는 자리로 이끌어 가시는 거예요.
그 이후에도 베드로는 많이 실수하고, 넘어지고, 배반했지만
하나님은 마침내 베드로를 통해서, 그의 미래를 이루어 가시는 거예요.
그리고 바울에게 '이 배에 탄 모두를 너에게 주겠다' :24
여러분, 얼마나 대단합니까?
바울한테 맡기는 거예요.
여러분, 3개월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동안 너의 교인이 되게 하겠다' 라고 봐도 좋습니다.
바울이 이들을 목회하는 거예요. 겨울을 지나는 3개월 동안에요.
▲이제 우리가 사흘 후에 성탄절을 맞습니다.
우리 곁에 아기로 오신 예수님, 무력한 모습으로 연약하게 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이 결국에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마침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줄 믿습니다. 마28:18~20
그러면 그 다음에 뭘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그 주권, 이 모든 역사의 주권을 가졌으면, 뭘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로마 제국을 뒤집어 엎어요? 세계 경제를 좀 살려요?
뭘 하시는 게 맞겠습니까?
예수님은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그 권세를 갖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빚어가시는데 쓰신 줄 믿습니다.
그 모든 권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이 가지셨기 때문에,
그 주권의 일부를 바울에게 나눠주신 거예요.
이 겨울을 지나는 세 달 동안!
바울은, 이 사람들을 하나님 사람으로 만드는 거예요.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 복음을 증거하는 겁니다.
여기서 여러분, 선교가 계속 되는 거죠.
함께 말씀 듣고,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바울에게 순종하고, 함께 성찰하고, 함께 난파 되는 이 삶과 죽음을 넘나들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 합니다.
이 사람들이 로마를 가고, 이 배에 탄 276명이 세계 각지에 흩어질 텐데
여러분, 석달 동안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겠습니까?
이 정도 경험이면 당연하게 말하죠.
여러분, 선교의 씨앗이 여기서 준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예요.
'이들을 내게 주셨다'
물론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삼 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죠.
여러분 바울이 목회할 때도, 단 몇 주간만 목회한 지역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제가 목회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이 교회 성도들을 너에게 주셨다' 하나님이 말씀한다고 믿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해 될 책임이 저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품 안에 안고 있는 동안에,
이 아이들의 생명을 여러분에게 주신 줄로 믿으시고 축복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기 전까지, 아직 우리의 말을 들을 때,
아직 부모가 권위를 행사할 수 있을 때, '자녀를 나에게 주셨다!'
여러분,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세워 주시는 거예요.
우리를 목회자로 세워주시고, 사랑방 목자로 세워주시고, 부모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의 동료들, 직장의 후배들, 혹은 직원들하고 함께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이 나에게 이들을 살리라고...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라고 기회를 주셨다'
라는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 삶의 의미는 달라질 것입니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하이라이트
이게 오늘 설교말씀의 핵심입니다.
27:20 '구원의 여망 마저 다 없어졌더라' 그랬는데,
27:21 그 때에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바울은 원래 가운데 있는 사람이 아니죠. 저기 구석에 있었던 사람이죠.
왜냐면 죄수의 신분으로 지금 호송되어 가니까요.
그래서 저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죠. 아무도 귀기울여 주지 않는 죄수에 불과하잖아요.
그런데 이 배에 완전히 희망이 사라지니까, 이 사회가 어두워지니까,
이 나라가 혼란에 빠지니까,
진리를 외치는 사람이, 결국 무리들 가운데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이런 교회가 돼야 되는 줄 믿습니다.
세상의 모든 희망이 다 꺼진 후에,
그렇게 잘난척 하고 까불던 마리오네트 인형 같은 사람들은 다 쓰러지고,
슬픈 배경음악만 흐를 때...
바울에게 조명이 비추어지고, 그때 바울이 말합니다. *연극에 비유하자면
'여러분은 안심하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거예요.
▲사도행전 전체의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시는 겁니다.
행26장에서 바울이 고백 했죠.
다메섹에서 그를 부르실 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26:16
성도는 점점, 자신의 발로 서는 사람, 자신의 걸음을 걷는 사람,
자신의 말을 하는 사람으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황에 따라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눈치보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담대하게 진리를 증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설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이 땅을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사도행전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여러분, 베드로는 시골 사람이잖아요. 무학이었잖아요.
아무 존재의 근거가 없는 사람이었잖아요.
그런데 예루살렘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이 그들 앞에, 베드로를 세워주시는 거예요.
17장에 보면, 바울이 아테네로 갔습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17:22
여러분,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지금 세상에 나가서, 포항 시청 앞에 나가서
'시민들이여, 내 말을 들어보세요!' 한다고, 여러분의 말을 듣겠습니까?
서울 시내 광장에 가서, 내가 가운데 서서 말한다고, 내 말을 누가 듣겠습니까?
아니잖아요.
근데 말을 듣는 상황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21:40
이것 역시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것을 원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진리를 싫어합니다. 교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즘 자주 하는 말이 포스트 크리샌덤, 후기 기독교 사회의 사람들이
교회의 말에, 진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시대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게 영원하지 않습니다.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게 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진리의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위기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그때 하나님이 교회를 역사의 중심에,
사람들 가운데에 서서 진리를 말할 기회를 주시는 거예요.
교회가 바로 이 진리를 증언 할 수 있는 교회 되기를 소원 합니다.
우리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로서, 사랑방 목자로서, 한 그리스인으로서, 부모로서
자신의 삶에
'내가 믿는 하나님, 내가 예배하는 하나님, 오늘도 나에게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전해줄 수 있는, 영적인 권위를 가진 우리 각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안심 하라' 말해줄 수 있고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복된 그리스도 인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