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에서 시간의 끝을 만난다 - YouTube
◈땅끝에서 시간의 끝을 만난다 행28:16~31 2024.12.29.
올 한해 (2024년) '사도행전공동설교'를 진행했는데,
많은 교회들이 초교파적으로 참여해 주셨고, 해외에서도 함께 참여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이 준비할 때부터 기도해 주시고
말씀의 여정에 함께 은혜 나누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함께 하셨던 교회들과 강단에,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해서 부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위대한 사역자는 사라져도, 주의 일은 연이어 계속된다
우리는 사도행전 시작하면서, 아래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땅끝', 이것은 열두 사도들에게
'너희들 모두 여기까지 가라' 라고 하는 구체적인 지점을 말씀하시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삶의 태도'를 말한 것이고요.
그런 점에서 각각 자기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주신 목적을 위해서 달려가는 삶을 주문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이 사도들 중에서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순교했습니다.
사도행진에 보면, 사마리아 전도가 이루어졌는데
거기는 사도가 아닌 빌립이라는 분에 의해서 처음 시작되었죠.
전승에 따르면 사도 도마는 동쪽으로 인도까지 갔습니다.
바울의 멘토였던 바나바는 이집트로 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로 갔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던 지점에서, 사도행전은 끝이 납니다.
본래 바울은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과연 바울은 스페인에 갔을까요, 못 갔을까요? 아무도 정확히 모릅니다.
'바울은 스페인에 갔었다. 그리고 나서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지금 스페인에 가면 '바울이 여기에 도착했다'라는 그런 기념 지점도 있고,
기념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관광지 외의 사료로서의 가치는 크지 않습니다.
역사학자들 중에 다수는 바울이 스페인으로 가지 못했고, 순교했다는 쪽이 더 많습니다.
만약 스페인에 갔었다면, 갔다 왔다면, 사도행전에 왜 그 사실을
살짝이라도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이게 의문이죠.
못 갔다면 너무 안타까워요. 그렇게 스페인 가고 싶어 했는데
가서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선교하고 싶어 했는데...
그런데 신약에 바울만 그런 게 아니라, 구약에 모세도 그랬습니다.
출애굽에서 광야 생활 40년 동안이나 그렇게 고생하고요.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하나님은 거기서 스톱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세의 생은 끝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는 거죠.
모세는 여기까지.. 하는 지점이 있지만
약속의 땅을 향한 행진은 계속됩니다.
바울도 여기까지..
어느 시점의 지점이든, 스페인이든, 로마든, 여기까지 한계가 있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교는 계속 되는 줄 믿습니다. 주1)
사도행전의 결론이 그런 말씀을 하고 있어요.
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지금까지 우리는 바울을 따라왔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가이사 앞에 서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궁금한데
여기서 그냥 사도행전은 마쳐버립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없어도 이 자리에서 누군가가 외칠 것이다. 더 크게 외칠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담대하게 거침없이' 이 복음을 증거할 것이다.
그런 결론을 제시하고 있는 거예요.
사도행전 자체가 어떤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처음 부분을 기억하십니까?
베드로가 완전히 주인공처럼 활보했죠.
얼마나 강력하게 복음을 선포했고요. 놀라운 기적들을 많이 행했습니까?
그랬는데 어느 날 스르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은퇴식도 없이, 안녕이라는 인사도 없이, 언론 인터뷰도 하나 없이,
그냥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무대의 중앙에 바울이 섭니다.
그리고 행28장에서, 바울 마저도 스르르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에 '바울이라는 개인이 어떻게 되었다'라는 말이 없는 것은,
바울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복음은 그래서 릴레이, 이어달리기 경주와 비슷합니다.
주자가 바턴을 다음 사람에게 넘기고, 자기는 들어가는 거예요.
중계 카메라는, '그 선수가 들어가서 라크룸에서 뭐 하는가?'가 아니라,
그 다음 주자가 어떻게 하는가에 초점 맞추어 비추게 되어있습니다.
그게 성경이고, 그게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오늘날 은퇴자들도 마찬가지죠)
이 경주는, 구약에서부터 이어지던 경주입니다. 오늘까지도 계속 그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 이스라엘의 소망'
행1: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제자들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그런 거 아니야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잊어버려!' 그게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어야 되는 것은 맞는데,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 맡기고,
너희들은 내 증인, 부활의 증인이 되라' 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란 말이 무슨 말입니까?
성경은 전체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 즉 온 우주를 회복하시고 만물을 구원하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큰 구원계획에 초첨맞춰져 있는 겁니다.
그 계획 안에서 이스라엘이 먼저 선택받은 거예요.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 자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나머지 열방을 구원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육신적 자손들이 그 사명을 잘 감당 못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나요?
하나님이 '만물의 회복'이라는 본래의 계획을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이루시기로 하셨다'라는 게 복음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 육체적 이스라엘이 큰소리치고 떵떵거리고 살자.. 그게 아니고,
이스라엘만을 위한 구원이 아니고,
이스라엘을 통해서 만물을 회복하시는,
즉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겁니다.
그 사역이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시작되었다... 라고 하는 게 복음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세계가 사망의 권세에 눌려 있는 것 같지만,
그리스도께서 부활로 이미 승리를 거두셨고, 그 회복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게 복음의 승리예요.
그리고 그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자기의 이기적인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서
서로 사랑하며 살잖아요. 나누며 살잖아요. 가족보다 더 가깝게 유무상통하며 살아가는
그 천국의 모습이 이 땅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복음의 승리인 줄 믿습니다.
이제 사도들이 세계를 다니면서, 그 그리스도의 승리, 복음의 승리를 말합니다.
복음의 행진은, 그래서 승리의 행진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사도행진에서 보았던 바가 그겁니다.
사도들은 고생합니다. 가서 쫓겨다니고요. 옥에 갇히고, 매를 맞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흥황하여 더하더라.' 12:24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승리에 가고 있고, 행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행진이 이제 바울을 통해서 로마에 도착합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을 때,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은
당시 한 3만, 5만 정도의 아주 많은 유대인들이 수도 로마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대표들이 바울에게 찾아왔어요. 그때 바울이 자신에 대해서 하는 말이 19~20절입니다.
행28:19~20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여러분들이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이 기독교의 복음은 유대인들을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이스라엘의 그 본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참 이스라엘 되게 하기 위한 복음입니다'
라고 바울은 말하는 거예요.
자 보세요. 행1장에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있때니이까?' 라고 말했잖아요.
28장에 바로 그 '이스라엘의 회복의 소망'을 똑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라엘 나라의 소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회복되고요.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해서 온 세상과 만물이 회복되는 복음을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육체적 이스라엘이, 그 일을 잘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이스라엘, 참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세우셨는데, 그것이 교회인 겁니다.
다시 정리하면, 그리스도의 부활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시키시고
새로 창조하시고, 그 백성들이 복음을 증거하고 살아냄으로써
'만물의 회복'이라는 큰 구원을 향해서 나아간다...
그게 이미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로 통해 새 창조가 시작되었다... 라는 게 복음입니다.
그리고 선교는 뭔가 하면, 이 하나님의 큰 구원의 계획 안에
오늘 우리 교회가 있고, 우리의 삶이 있다... 그것이 선교입니다.
구약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긴 이어달리기, 릴레이 경기에,
이제 우리가 바턴을 받은 거예요. 이 시대에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래서 땅 끝까지 가라고 하는 것은, 이 땅이 어떤 지점, 어디가 땅 끝입니까?
스페인입니까? 인도입니까?
그것보다는 내가 맡은 이 시기에, 이 자리에서
나의 달려갈 길을 최선을 다해서, 내 능력의 끝 지점까지 가는 것,
그것이 나의 '땅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땅 끝'은 어디인가?, '땅 끝'으로 나아가는 정신
여러분 오늘 올해 마지막 주일입니다. 올 한 해 여러분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며칠 후면 다시 새해가 시작되고, 다시 일상이 돌아가겠지만
여러분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만난 이 시점은, 내 인생의 끝을 한번 생각해 보는
참으로 유익한 시기입니다.
그날이 언제일지... 나에게 몇 년이나 남았는지 우리 다 모르잖아요.
그날에 내 인생의 끝날에, 나는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마음으로 그 끝날을 맞이하게 될까요?
'땅 끝에서 시간의 끝을 맞는다' 이 말은, *제목
하나님이 주신 내 사명을 향해서, 내가 가야 할 곳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갈 수 있는 만큼, 끝까지 최대한 가는 거예요.
물론 여러분 세상의 모든 끝에 다 갈 수는 없어요. 내 인생에 끝이 있습니다. 맥시멈이 있다는 거죠.
내 인생에 시간이 허락하는 한, 내 체력이 허락하는 한, 내 실력이 허락하는 한,
나의 사회적인 배경이 허락하는 한, 거기까지 갈 수 있습니다.
바울은 헬라어를 잘 했잖아요. 더 멀리 갈 수 있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졌잖아요. 시민권이 아니었으면 꿈도 못 꾸었을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로마의 죄수가 되어서 로마로 갔잖아요.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 나의 지식, 나의 네트워크...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향해서, 최대한 달려가는 거예요. (땅)끝까지 가는 거예요.
이것은 시대 배경도 관계가 있습니다. 당시의 교통 상황, 당시의 도로 상황, 당시의 문화적인 상황,
당시 세계가 헬라어로 통일되어 있었던 것이, 얼마나 선교에 좋은 기회를 주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세계 역사의 발전이 전부 다 그렇게 됐습니다. 건축사를 공부해 보면요.
여러분 새로운 소재가, 철강이든지, 콘크리트든지 등장할 때마다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대부분은 '이런 건물을 짓고 싶어' 하는 꿈을 꾼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런 걸 짓고 싶은데, 소재가 못 받쳐 주는 거예요.
그래서 고민하고 있을 때, 콘크리트 같은 소재가 딱 발견되면
이게 비학적으로 발전하는 겁니다.
컴퓨터 게임도 마찬가지예요. 컴퓨터 게임 만드는 거 보면,
'이런 식으로 게임 만들면 좋겠다' 하고 막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프로그래머한테 물어보면 '그건 안 돼, 그건 프로그램이 못 받쳐 줘'
그런데 막 고민하는 가운데에, 뭐가 딱 트이면서 해결책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한 단계 발전하는 거예요.
우리가 그런 말을 하잖아요. 벽, 인생을 살다 보면 벽이 있습니다.
'넘사벽' 이런 말도 하는데, 도저히 내가 넘지 못할 벽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역사 속에 가끔씩 이 벽이, (변하여) 문이 될 때가 있습니다. 열릴 때가 있습니다.
그게 기술의 발전이든, 정치적 변화든... 문이 열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이 열릴 때, 벽이 문이 될 때, 누가 들어가겠습니까?
그 벽 근처에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들어가는 거예요.
저기서 멀리서 '저건 안 돼!' 라며 그냥 누워있던 사람들이 아니고,
그 근처에서 고민하며 머리도 벽에 쳐박아 보고... 이걸 어떻게 넘을까? 너무 높네...
그러면서 안타까워하던 사람들 중에, 갑자기 문이 열릴 때 들어가는 사람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창조적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창조성은 늘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에 서 있어요. 그게 바로 땅 끝인 거예요.
성경의 정신을 '땅 끝 정신'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즉 한계에 도전하는 정신!
'이건 안 될 거야'하고 미리 선을 긋지 아니하고,
그 한계를 넘어 도전하는 정신, 실험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땅끝으로 나아가는 정신'입니다.
여러분, 그냥 남들 다 하는 안전한 선택도 아니고요.
그냥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저 너머의 공상만도 아니고요.
우리 시대의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가 어딘가를 알고
그 한계, 그것을 넓히고 도전하는 정신에 의해서.. 창조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남들이 다 하는 방식으로 하면서
남다른 성공을 꿈꾸는 어리석음... 많은 사람들이 이 어리석음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 '성공'이라는 게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땅 끝에서 시간의 끝을 만난다' *제목
정말 우리가 인생 마지막 날에, 내가 갈 수 있는 만큼 달려갈 길을
최선을 다해서 달렸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즉 죽을 때까지 땅끝을 향해 달리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땅끝에서 내 시간의 끝을 만난다, 내 인생의 끝을 만난다'.. 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지금 연말, 이 한 해 시간의 끝에서.. 이 연말에 땅 끝을 생각하는 거예요.
'내 인생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저는 포항제일교회에 와서 목회하면서, 늘 이런 스피릿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야 될 방향이 저만치 멀리 있고요.
아직 우리 교회의 역량이, 문화적인 한계가 저 뒤에 머물러 있습니다.
최대한 스트레치 하는 거예요. *팔을 뻗음
최대한 달려갈 길을 우리가 가보는 겁니다.
올 한 해 우리 <사도행전 말씀 네트워크> 하는 것도,
이제까지 한 번도,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대단히 실험적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했었고요. 하나님이 이 과정을 통해 일하신 줄 믿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한국교회가 또 한 단계 성장하게 되었다.. 라고 많은 분들이 평가하십니다.
내년 이후 우리 교회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120년 우리 교회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 그 모든 역량을
우리가 잘 점검해서, 그 역량을 최대치로 활용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향해서 나아가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과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게 바로 사도행전의 '땅 끝 정신'입니다.
한 번도 안 가본 땅을 가잖아요. 밟잖아요.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의 역사를, 오늘날에 계속 이어가는 교회인 줄 믿습니다.
▲이제 지금 시대에는, 땅끝으로 가는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어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하늘만 쳐다봤습니다. 천사들이 뭐라 그랬습니까?
'어찌하여 하늘만 쳐다보느냐?'
무슨 말인가 하면, 이 땅에 할 일이 있다는 거예요.
이 땅에 여러분들이 가야 될 도시들이 있고, 밟아야 될 땅이 있고, 두드려야 될 문이 있고,
극복해야 될 한계가 있고, 해결해야 될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즉 복음을 듣고 치유받아야 할 백성들, 가정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을 향해서 나아가는 거예요.
그게 행1장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마지막에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도행전 후반부는 계속 바울을 따라왔어요.
그런데 28장에서 바울이 갑자기 없어졌어요. 어떻게 됐죠?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사도행전을 제대로 읽었다면, 제대로 따라왔다면,
이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면, 바울이 없어진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아쉬워하지 않을 겁니다. 왜요?
이제는 바울이 아니라, 우리가 역사의 무대에 오를 차례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사명 잘 감당하는 교회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땅끝은.. 그래서 본질적으로 실험적입니다.
◑자신의 땅끝을 개척해 나갔던 요리사
지난 추수감사절 때 '흑백요리사' 프로그램을 우리 함께 소개했었는데요.
제가 그 프로그램을 반쯤 봤습니다. 보는데 아주 눈에 띄는 요리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리, 그가 요리를 잘한다, 못 한다를 떠나서
대부분 요리사들은 이런 대회에 나오면, 자기가 잘하는 거 합니다.
많이 해본 거, 익숙한 거, 소위 자기 '필살기'를 요리해서 내놓습니다.
근데 에드워드 리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그냥 그때 '이런 거 해볼까?' 해서, 그때 즉흥적으로 생각한 걸 요리하더라고요.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많은 어려움이 있죠. 생각하지 못한 장애가 있습니다.
실험정신이 재미는 있지만, 망할 확률이 높은 거예요.
이분의 인생 자체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요리에 입문해서 뉴욕에서 꽤 잘 나가던 셰프였는데,
그때 9-11이 터졌어요. 현장을 직접 목격했고,
자신의 단골 손님 중에서도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는 충격을 받고 가게를 그대로 접습니다. 그리고 방랑합니다.
유럽, 미국, 시골... 막 다니면서
그 도중에 켄터키 루이빌에 들렀는데, 어쩌다가 그냥 어느 식당에 가서
일주일 정도 일해줬대요.
근데 그 사장이 계속 연락해 와가지고, 켄터키 루이빌은 진짜 시골이거든요.
말똥 냄새 밖에 안 납니다.
근데 가서 그 식당을 인수하게 됐어요. 그렇게 하다가 아주 재미있는 일이 많습니다.
린지라는 여성이 임신을 했는데, 식당 일을 그만둬야 된다는 거예요.
'너무 전도 유망한 셰프인데 지금 그만두면 어떻게 하느냐?'
그래서 이거 심각하다. 여성들을 돕는 The LEE Initiative라고 하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LEE는 자신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Let's Empower Employment (고용을 강화합시다)
라고 하는 구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분이, 여성들, 유색인종들, 장애인들 같은 분들이
식당에서 일하고 대우를 잘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에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고, 서로 가르쳐 주기도 하고...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워싱턴 DC에 '시아' 한국말로 씨앗인데
'시아'라는 새로운 컨셉의 한식점을 오픈했다고 해요.
그 식당이 지향하는 바가 이렇습니다. Zero waste 친환경
그러니까 일회용 플라스틱과 일회용 장갑 쓰지 않는다.
또 식재료 낭비하지 않고, 유기물 쓰레기로 전환해서 퇴비 작업을 식당에서 같이 합니다.
그리고 비영리 사업으로, 남은 이익은 이러한 실험적인, 사회를 밝게 하는 일에 쓰겠다..
Small relationship 손님들, 지역사회, 직원들하고 좋은 관계를 맺는 게 아주 중요한 목표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익스프리멘털, 실험적이라는 거죠.
이분이 셰프로서 요리하는 요리에만 실험적인 게 아니라,
기업하는 모델도, 완전히 다른 모델을 계속해서 실험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되면 이게 하나의 모델이 되어서,
좀 우리 기업을 본받는...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식당들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요식 사업을 한다고 합니다.
◑황제가 쓴 편지 vs 바울이 쓴 편지
여러분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했던 이 셋집도
사실은 하나님 선교의 실험실이었습니다. 그렇죠.
로마로 가는데 '나는 해방이 안 됐으니까 못 가'가 아니라, '내가 죄수라도 가겠습니다'
가서 어떡하지요?
'나는 감옥에 갇혀서라도 선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선교한 겁니다.
물론 옥중서신을 거기서 쓰기도 했고요.
바울이 선교하는 데는, 한계가 많았지만
그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땅 끝'까지 가는 스피릿을 발휘한 겁니다.
여러분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설교가가 누군가 꼽으라면,
4세기에 활동하셨던 요한 크리소스톰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아주 탁월한 설교자였습니다.
이분이 빌립보서 강해를 쓰면서, 감옥에 있는 바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관정에 나아가 앉자마자 전 세계에서 도달하는 수천의 편지를 받는 황제와 똑같이
바울은 황제의 관정이 위치한 감옥에 앉아, 그보다 더 많은 편지를 정기적으로 받고 보내곤 했다.
열국이 바울의 지혜로운 조언을 얻기 위하여,
그들의 지역적 관심사를 그에게 전달해 왔기 때문이다."
여러분, 당시에 황제들은 대부분 다 편지로 정치를 했거든요.
총독들에게 편지 써서 보내면서 제국을 다스렸습니다.
그런 황제와 똑같이,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편지들이,
바울이 갇힌 그 셋방에서 쓰여지고 있었다.. 라는 겁니다.
크리스토스톰이 나름의 과장이 있을 수 있어요. 여러분 수 천 통의 편지는 아닐 수 있습니다.
바울 같은 한 죄수에 불과한 사람이 쓴 편지가,
황제의 편지에 비길 수가 없죠. 당시에는 그랬죠.
그런데 여러분 오늘날 보세요. 그 로마 황제들의 편지들, 누가 관심 가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바울 사도가 쓴 이 편지는,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오늘까지도 읽히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 바울이 쓴 편지가 내 삶을 바꾸었습니다'라는 고백이 이어졌습니다.
역사 속 유명한 사람만 하더라도, 어거스틴, 마르틴 루터, 존 웨슬리 전부 다
바울의 편지를 읽고 인생이 바뀐 사람들입니다. *특히 로마서
여러분 이게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거침없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 그 바울의 자부심! 행28:31
요한 크리소스톰이 바울의 편지를 묵상하고 연구하면서, 공부하면서,
그 편지 안에 있는, 바울의 글 안에 있는 그 자부심을 발견한 겁니다.
거기에 감화받은 겁니다. 그래서 확신이 생긴 겁니다.
황제의 편지와 바울의 편지를 비교해 보세요.
역사 속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더 영광스러웠는지...
바울의 편지는, 바울이 쓴지 불과 몇십 년도 되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인생은
세상이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방식의 영광으로, 그렇게 쓰임 받을 줄 믿습니다.
◑자신의 땅 끝을 개척해 나갔던 악동 뮤지션
여러분 요즘 아주 갑자기 유행하게 된 노래 중에 "장례희망"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글씨를 잘못 쓴 거 아닙니다. 장래 희망이 아니라, 장례 희망이 맞습니다.
「아는 얼굴 다 모였네 여기에
한 공간에 다 있는 게 신기해
모르는 사람이 계속 우는데
누군지 기억이 안 나 미안해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왜냐면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천국에) 오자마자 내 몸집에 서너 배
커다란 사자와 친구를 먹었네 (친구가 되었네)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땅 위에 단어들로는 표현 못 해
사진을 못 보내는 게 아쉽네
모두 여기서 (천국에서)
다시 볼 거라는 확신이 있네
내 맘을 다 전하지 못한 게 아쉽네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뛰며 찬양해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 치며 외치세
나와 그닥 뭐가 없던 여자의
슬픔이 좀 과하게 보이길래
놀랐네 돌이켜보니 그러게
우리도 미묘한 신호가 있긴 했네
머리를 쾅 한 대 맞은 듯하네
이제 머리는 없지만 알기 쉽게
모든 걸 알지 못했기 때문에
뭣 같고 즐거웠어 삶이란 게
한쪽엔 내가 생전 좋아했던
음식들이 놓였네 마치 뷔페
꾸준히 당부해 두길 잘했네
좋은 기억으로 남겨주길 바라
모두 여기서 다시 볼 거라는 확신이 있네
내 맘을 다 전하지 못한 게 아쉽네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뛰며 찬양해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 치며 외치세」
할렐루야, 우리의 '장례 희망'이 이렇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불꽃이 터지고요. 이루 감당할 수 없는 그 기쁨으로 춤추는 날이 될 줄 믿습니다.
이 소망으로 하루하루 우리가 살아가는 거예요.
그럴 때에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하나님만이 주시는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삶에 있을 줄 믿습니다.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참 감동적인 게,
이 세상의 유행가, 대중가요, 케이팝 세상이
얼마나 경쟁이 치열하고, 그냥 세속적인 문화가 뺨치는 세상입니까?
그런데 거기서 자기가 믿는 바를 담대하게 노래로 만들어서
이렇게 당당하게 세상 속에 내어 놓을 수 있다는 (그 땅끝으로 나아가는 정신!)
사도바울처럼 '거침없이 담대하게' 살아가는 멋진 예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 노래하는 가수는, 동생하고 들이서 음악하는 '악동뮤지션' 여러분 들어보셨습니까?
악동뮤지션이라는 굉장히 매력적인 팀입니다. 부모님들이 몽골 선교사님이십니다.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우려고 이분들이 다니면서 자녀양육 간증도 꽤 하고 그러시는데,
믿음으로 키우려고 하다보니 참 힘들었대요.
그냥 몽골학교에 보냈는데 적응하지 못해서 어떡하나 했고,
집에 데리고 있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 매일 어디를 가든, 묵상의 시간을 빼놓지 않는 아이들로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이 팀이 몇 가지 다른 독특한 점이 있어요. 노래도 굉장히 재미있고요.
가사들도 그렇습니다. 아주 창조적입니다.
그런데 또 특별한 게, 가수 이쪽 잘 아는 분들이 하는 질문이
'쟤들은 왜 성형수술 안 했지?' 그런데요.
요즘 젊은 연예인들 다 비슷하잖아요. 다 너무 많이 만지는데,
'그렇게 아주 예쁘게 생긴 것도 아닌데, 뭘 믿고 성형수술을 안 하지?'
그런데 그들의 부모님 간증을 들어보면요.
악동 뮤지션들이 어릴 때부터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가 많았답니다.
딸도 코가 너무 낮다.. 뭐 이랬는데,
아빠가 '나도 그렇다. 나도 내 외모에 만족한 적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은 줄로 믿어!'
그렇게 성경공부하면서, 아이들하고 아빠하고 무슨 약속을 했는가 하면,
'우리는 절대로 성형수술을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대요.
그래서 가수를 하는 동안에 수도 없이 '성형 좀 해라' 라는 말을 들었는데
노 노 노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모 선교사님이 하는 말이,
아이들이 방송이나 자신의 유튜브에서 당당하게
'내 모습 이대로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당당함, 성형을 거절하고
'나는 나 나름대로 자신 있게 살아!' 라고 하는 이 당당함과,
음악을 하는데, 아주 창조적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그런 노래를 만들어내는 것하고 관련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관련이 있죠. 여러분 사람이 자기 걸 숨기고, 위축되기 시작하면,
그 안에 있는 독특함이 발현되지 못하는 거예요.
그 부모 선교사님이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좀 더 믿어보자.
아이들은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사실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고, 더 힘이 있다는 것을 믿을 필요가 있다.
아이들에게는 잠재된 재능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것을 꺼내줄 필요가 있다.'
여러분 악동 뮤지션 음악 들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럽니다.
'진짜 천재적이다.'
그 결과만 보고 '천재적이다' 그러는데
그 아빠의 말은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또 다른 부분에서, 또 다른 영역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천재적인 애들이 많은데
그걸 못 끄집어낸다는 겁니다. 부모가 끄집어내줘야 될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교육'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그거를 누르고 있는지 모릅니다.
'너는 왜 이거 못해? 왜 평균 점수가 이것밖에 안 돼?'
하나님이 이렇게 아름답게 자녀를 만드셨는데, 이렇게 멋지게 자녀를 만드셨는데,
남들하고 비교해서, 이 무지막지한 교육 시스템에서
그를 전부 다 죽이고 누르고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사람이 창조적일 수 있는 그 출발은, 당당함이에요.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자녀도 지으신 줄 믿습니다.
그것을 진정으로 알 때, 그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 안에서 우리는 당당해질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바울을 보십시오. 로마에 죄수로 왔어요. 그러나 조금 더 위축되지 않습니다.
이 좁은 셋집에.. 말이 셋집이지, 자기가 돈을 내서 유지해야 되는 감옥이에요.
그런데 저 위에서 세계를 통치한다고 하고 있는 황제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는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자기가 믿는 바를 '거침없이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28:31
그 복음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린 줄 믿습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살게 하는...
자신의 발로 서서, 자신의 걸음을 걷고, 자신의 말을 하게 하는...
자신이 고백하고 믿는 대로 당당하게 노래하고, 춤추고, 그렇게 말하고 살게 하는 삶으로
세워주시는 그 복음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는 줄 믿습니다. *악동뮤지션
그 능력 안에서 당당하게 거침없이 아름답게 능력 있게 살아가는
우리와 우리 자녀들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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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영국에 찰스 웨슬리의 묘비에 이런 글귀가 적여 있다고 합니다.
God buries His workmen but carries on His work!
'하나님은 자기 종들을 장례 치르게 하시지만, 자기 일을 계속해 나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