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일 "‘삼십 년의준비 끝에 - YouTube
◈삼십 년의 준비 끝에 마3:13~17 2025.01.02.
◑도입 / 담임 목회를 통해 배운 교훈
저는 요즘 가끔 추천서를 쓰게 됩니다.
우리 교회 부목사님들이, 또 다른 교회에 담임 목사님으로 부임하는 과정에서,
그 청빙하는 교회들이, 저에게, 떠나는 부목사님에 대한 추천서를 써달라고 하는 거예요.
'추천한다'는 것은 좀 부담이 되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 보증을 잘못 서면 큰일 나는데,
이게 보증 서는 거랑 비슷해요. 그래서 제가 누구를 추천할 때, 기도를 많이 하게 돼요.
'우리 A목사님이 잘 준비된 목사님이 되셔서,
그 교회 가서 목회 잘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면서
제가 추천서를 쓸 때 거기에다 뭘 쓸까요?
'이 목사님은 이런 것도 잘 하시고, 저런 것도 잘 하십니다' 이렇게 쓰죠.
제가 우리 부목사님들의 추천서 쓸 때
'이 목사님은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합니다' 그런 것을 써서 추천서 보내면 되겠어요?
그래서 '이 목사님은 이런 것도 잘하고, 저런 것도 잘하고,
천사에 준하는 성품을 가졌고 아주 훌륭하다' 이렇게 써가지고 이제 보내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추천서를 씁니다.
그런데 이런 걸 가만히 보면서, '이게 성경적인가?' 이런 생각을 해보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 저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마다, '이건 성경적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건 성경과는 반대다...'
성경적으로 신앙 원리에 따라서 추천서를 쓰려면, 사실은 이렇게 써야 되는 거예요.
'이 목사님은 참 부족합니다. 이 목사님은 실수도 많고, 잘하는 게 별로 없고,
그다지 탁월하지도 못하고, 연약한 게 많습니다.
몸도 건강하지 못하고...' 그렇게 쓰는 게 성경적인 거예요.
여러분 이제 우리가 돌아오는 주일날에
우리 교회 올해 표어를 같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
모세가 언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습니까?
모세가 하나님께 쓰임 받은 것은, 애굽의 궁궐에서 많은 걸 배워가지고
할 줄 아는 게 많아졌을 때 쓰임 받은 게 아니잖아요.
오히려 정반대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있으면서, 그 모든 걸 다 던져버리고
텅 빈 상태가 됐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못해. 이제 의욕도 없고,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그러면서 모든 걸 내려놓았을 때, 오히려 쓰임을 받았잖아요. 그게 성경의 원리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현실 속에서, 성경의 원리를 무시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영적 갈등이 많아요.
성경은 맨날 읽으면서, 성경의 원리가 그거라고 하는 것을 알기도 하고,
또 때로는 설교까지도 그렇게 하면서도, '현실은 성경의 원리와 반대로 하는구나'
이게 참 마음이 불편한 겁니다.
그러면 추천서를 정확히 쓰려면 어떻게 써야 되겠어요?
아까처럼 '이분은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연약하기도 하고, 실수도 많고,
탁월하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쭉 써야 돼요. 그리고 맨 끝에 한 줄만 잘 쓰면 돼요.
그 한 줄이 뭘까요?
'그래서 그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그게 마지막 한 줄이에요.
▲제가 32세 때부터 부산에 내려가서 담임 목회를 했는데 *땅끝교회
저는 너무 일찍 담임 목회를 시작해가지고, 배운 게 없이 시작했어요.
사실은 한 40대 중반까지는 좀 배워야 되는데, 배울 게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아무것도 배운 것도 없이, 목사된 지 2년 만에 담임 목사가 되니까,
제가 할 줄 아는 게 없는 거예요.
당회를 모였는데, 제 아버지 같은 분들하고 앉아 있으니까
뭔 말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제직회 할 때도, 참 회의하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회의를 어떻게 진행하는지 책을 사서 막 읽어보고 그랬어요.
저는 부산의 땅끝교회로 갈 때, 그 흔한 운전도 할 줄 몰랐어요.
그 전에 제가 부목사로 있던 교회는 '심방갑니다' 그러면,
교회 봉고차에 기사 집사님이 저를 태워줬어요.
제가 직접 운전도 할 줄 모르는 상태로 그 교회에 갔는데
가보니까, 제가 운전 못하는 담임목사가 오는 줄 알았는지,
그 교회는 차가 한 대도 없더라고요.
교회가 조그맣기도 하고, 그 흔한 봉고차도 아직 한 대 없고,
거기서 제가 어디 심방간다고 하면,
교회 권사님이나 장로님이, 자기 차를 가지고 와서 저를 태워주는 거예요.
대심방 할 때는, 차 있는 성도가 몇 명 있었는데,
그 성도들의 개인 승용차에 제가 얻어 타고,
하루 종일 심방을 다녔는데, 그분들은 심방대원이 되는 셈이죠.
그러다가 '이렇게 해가지고는 안 되겠다'
그래서 몇 달 지난 다음에 저도 운전면허를 땄어요...
운전만 배워서 되겠습니까? 목회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배워야 되잖아요.
그래서 당시에 제가 목회 세미나를 많이 다녔어요.
▲당시에는, 전국의 목사님들을 모아 놓고 <목회 세미나>가 한창 유행하던 때였어요.
구역 운영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교회 학교는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이런 거 가르쳐 주는 세미나가 많이 있었거든요.
제가 그런 세미나에 많이 갔다 왔어요.
그럼 이제 교회에서 목사가 3~4일 교회를 비우고 뭘 배우러 갔으니까,
이제 갔다 오면 뭘 하길 기대할 거 아니겠어요?
그럼 이제 거기 가서 배워가지고 왔으니까, 뭘 새로 하나 하는 거예요.
'우리 교회도 이제 이렇게 합시다' 하면서, 안 하던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했지요.
나중에는 성도들이 굉장히 혼란에 빠졌어요.
목사님이 세미나에 갔다 올 때마다, 뭐 하나씩 새로운 걸 하자고 그러니까,
근데 하기도 힘들었지만... 해봤자 되는 것도 없었어요...
조금 변죽만 울리다가 그것도 안 하고...
또 조금 하다가 안 하고... 이런 식으로 형편없는 목회를 계속 한 거예요.
그러다가 제가 알게 된 것이 돌아가신 이중표 목사님이 하시는
한신목회개발원에서 매년 6월 첫 주간에
전국의 목사님들 한 2천여 명 모셔놓고 하는 <목회자 세미나>를 알게 됐어요.
거기는 양수리 수양관에서 막 한 방에 100명, 150명씩 매트리스 깔고 자면서
아침 5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종일 말씀 듣고 훈련받는 강행군을 했어요.
그걸 처음에는 몇 번 저 혼자 가다가, 나중에는 파트타임 전도사님들까지 다 같이 갔어요.
거기 가서 참 많은 은혜를 받았어요.
어떻게 보면 제 목회의 기둥 같은 은혜들을 거기서 다 받았어요.
저는 이중표 목사님을 참 존경합니다. *2005년 소천 ☞이중표 목사님 설교모음 click
그분이 예수님을 닮길 원했던 그 마음, 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것처럼,
그래서 우리를 살게 한 것처럼 우리가 별세해야 된다... 자기를 죽여야 산다...
가장이 죽으면 가정이 살고,
목사가 죽으면 교회가 살고,
나라의 지도자가 자기를 죽이면 나라가 산다...
그런 원리를 그분이 가르치셨거든요.
그래서 이제 거기를 가서 이렇게 보니까,
우리나라의 대단한 목사님들, 우리나라의 완전 탑 클라스에 있는 목사님들이
강사로 한 열 대여섯 분 와서 강의하시는 거예요. 하루에 몇 분씩 3박 4일 하니까요.
기라성 같은 목사님들이 자기 목회와 신앙 노하우를 전수해 주시는 거예요. *1990년대
그래서 제가 거기 가서, 그 목사님들의 말씀에 완전히 감동받고 빠져들어갔어요.
그래서 처음에 한 몇 해는, 굉장히 그 강사 목사님들이 부럽더라고요.
'어떻게 저 목사님은 저렇게 말이 술술 나올까? 어떻게 저렇게 설교를 잘할까?'
'저 목사님이 가진 성경이나 내 성경이나 똑같이 대한성서공에서 만든 건데,
어떻게 저 목사님은 저 성경을 읽으면서 큰 은혜와 진리를 깨달았고,
도대체 나는 그런 깨달음을 아직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면서 그 목사님들을 부러워했어요. 그때 제 부러움이 참 컸었어요.
그 다음에 또 뭐냐 하면 '나도 좀 목회를 잘해봐야 되겠다'
그래서 제가 자극을 받은 거죠. 좀 잘해봐야 되겠다고 하는 자극.
그럼 그 자극을 받으면 어떻게 나타날까요? 노력을 많이 하게 되겠죠.
근데 노력하는 건 좋은데, 그 노력이 조금 이렇게 초점이 빗나가는 거예요.
진짜 해야 될 노력은 안 하고, 안 해도 될 노력만 많이 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일단 그런 세미나에 갔다 오면, 그 목사님들처럼 목회를 잘 하고 싶은 욕망에
책을 많이 삽니다. 책을 잔뜩 사다 놓고, 그 책을 다 독파하면 잘 하게 될 줄 알았거든요.
그 다음에, '30분 설교하는 걸, 뭘 원고를 보고 하겠나?
원고를 다 통달해가지고 머릿속으로 다 집어넣어서, 원고 없이 그냥 쫙 해야지...'
그런 식으로 해보기도 하고... 별거 다 해봤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몇 해 지났어요. 그 즈음에 처음으로 '전엔 못 느꼈던 감동'이 제게 왔어요.
그게 뭐냐 하면 '우리 교회 성도들이 정말 불쌍하다' 그건 전에는 몰랐던 감정입니다.
전에는 그런 감정을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막 눈물이 펑펑 쏟아질 만큼 성도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 성도들은, 매주일 저런 말씀을 들을 텐데...
내가 목회하는 교회 성도들은 맨날 형편없는 말씀이나 듣고...
우리 교회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고, 십일조 헌금 드리고, 봉사하고,
우리 교회 성도들도 하느라고 다 하는데, 목사를 잘못 만나서 너무나 고생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그냥 주체를 못 하겠는 거예요.
부모 잘못 만난 자식이 고생한다고, 부모님이 자녀를 쳐다보며 우는 것 같이,
우리 교인들이 너무너무 불쌍한 거예요.
그래서 세미나 3박 4일 내내, 그런 감당하기 어려운 마음 속의 고통이라고 할까요?
그런 거를 안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거기 있었어요. 그러다가 이제 목회지로 돌아왔잖아요.
그리고 이틀 있다가 주일이 오니까, 주일날 강단에 올라가서 이렇게 성도들을 바라보니까,
예배당이 아담해가지고, 2층이기는 한데, 약간 과장하면
제가 손을 쭉 뻗으면 2층 맨 앞줄에 있는 분하고 악수도 할 만큼, 미니 예배당이었어요.
그렇게 자그마한 교회당에 성도들이 옹기종기 앉아 계시는데
이렇게 보니까 눈물이 나서 설교를 못하겠더라고요.
다 불쌍한 사람만 앉아 있는 것 같아요.
'저 분들이 참 불쌍하다. 목사를 잘못 만나서 불쌍하다...'
그래서 참 그날 제 마음에,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격동을 느꼈습니다.
그날 설교 제목이 뭐냐 하면 이거였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 그게 설교 제목이에요.
그러면서 제가 할 줄 모르는 것을 쭉 말했어요. 할 줄 모르는 게 너무나 많더라고요.
그 날 설교내용은 이랬습니다.
「여러분, 목사가 부실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요.
어떤 사람은 금식기도도 40일씩 한다는데.. 나는 40일 금식기도를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 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어떤 분은 또 종종 환상도 본다는데, 나는 환상을 볼 줄도 모르고...
어떤 사람은 뭐 신유의 능력도 있어가지고, 막 이렇게 병자들을 일으킨다는데,
나는 그런 것도 못하고... 부산역 앞에 있는 앉은뱅이 장애인을 보면
'일어나 걸으라!' 그래야 되는데, 얼른 천 원 주고 도망가기 바쁘고... 못하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신학교를 졸업했지만 성경을 깊이 아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보니까 제가 할 줄 모르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바울사도는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 왔다 그러는데,
나는 셋째 하늘은커녕 둘째 하늘도 잘 모르고... 그러고 보니까 모르는 것 투성이고...
할 줄 모르는 것들, 지식적으로도 모르고, 경험적으로도 모르고, 영적으로 무지하기 짝이 없는... 」
그런 제 '못 하는 모습'을 쭉 얘기했어요.
그렇게 저를 중심으로 쭉 얘기하고, 설교 끝에 가서 성도들에게 물어봤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할 줄 아세요?' 이렇게 물어봤더니 잠잠한 거예요.
다 모르는 거예요. 그분들도 모르고, 목사도 모르고...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세계가 있는데, 우리는 몇십 년 교회 다녔다고 하는데,
진짜 장님이구나... 은혜의 세계를 보지도 못하고 눈과 귀가 닫혔구나...
주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하고... 주님의 그 어마어마한 능력을 알지도 못하고...
그래서 그날 참 예배가 좀 이상한 예배가 됐어요.
눈물도 많이 나고.. 할 줄 모르는 것만 나열하다가...
'여러분은 할 줄 아세요? 우리가 다 같이 모르네요'
그래서 그날 설교의 결론이 뭐였겠어요.
「여러분 우리 다 모르니까, 좀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도 좀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좀 알려 달라고 몸부림을 쳐봅시다.
그래서 내일 새벽부터 무기한 특별 새벽 기도회를 하려고 그러는데,
알기를 원하는 분들은 나오세요. 새벽에 나와서 '하나님 나도 좀 알게 해주세요'
이렇게 우리 부르짖어 봅시다」
근데 여러분 보세요. 목사도 영적으로 무지하지.. 성도들도 다 모른다고 그러지...
그런 성도들과 그런 목사예요. 그러면 그 교회는 아무것도 못했겠나요?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목사와 성도들이 모였는데도,
모여서 '하나님, 우리도 좀 알게 해주세요' 이렇게 눈물로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조금씩 알게 해주셨어요.
그래서 그 교회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교회 성도가 100 명이라고 하면, 그 중에 98명은 부산 영도 섬 사람들이었어요.
당시 제가 목회하던 땅끝교회는, 부산 영도에 있었는데, *부산항 앞에 섬, 영도구
'영도 바깥으로 한번 (이사) 나가면, 영도에 다시 안 들어온다'는 당시 떠돌던 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시 저희 교회도, 육지에 나가 사는 사람은,
절대 영도대교를 건너서 있는 저희 교회에 안 나왔습니다.
그런 교회였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니까,
이제는 저 육지(부산)에 사는 시민들,
저 해운대 살고, 저 서면에 부자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그 보잘것없는 영도에 있는 우리 교회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교회가 체질 개선이 되면서,
기존의 교인들보다 새로운 교인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나중에 제가 서울 영락교회에 올 무렵에는, 먼 데서 오는 사람이 훨씬 많았어요.
이제는 그 지역(영도)을 탈피해가지고, 가고 싶은 교회같이 되었어요.
그래서 먼 데서들도 사람들이 모여왔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저는 배웠습니다.
'아~ 우리는 할 줄 모르고 우리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그런 걸 알게 됐어요.
저희가 IMF때 예배당 건축하면서 고생한 얘기도 여러 번 말씀드렸는데
진짜 교회가 파국에 이르렀죠. 수십억의 빚에, 시공회사 부도에,
장로님들은 멱살 잡고 싸우시고, 성도들은 다 실직하고...
헌금이 얼마 되지도 않는 예산에, 1억씩 마이너스가 생기고,
매달 이자를 3~4천만 원 내야 되는데, 은행 잔고가 몇백만 원밖에 없을 때도 있었고,
'이러다가 부도나겠다. 교회가 공중분해 되겠다' 그런 막판에 몰렸을 때도 있었어요.
진짜 여기서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위기... 그런 것들도 참 오랫동안 경험했어요.
우리가 능력이 없더라고요. 우리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나오는 얘기가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밖에 없더라고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요. 뭐 돈이 있어요? 이걸 어떻게 벗어날 방법이 있어요?
그냥 아무 것도 없고 '왜 나는 이렇게 무능하지?' 그런 것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바닥까지 내려간 그 무능함과 처절함,
더 내려갈 수도 없을 만큼 내려간 그 밑바닥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는 거예요.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어요.
그래서 제가 배웠어요. '가장 밑바닥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장소는 깊고 낮은 곳이로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게 원리예요. 영적 원리!
▲아까 서두 얘기로 돌아가 보면, 교회에서 목사님들을 모셔올 때
'자기가 잘하는 거, 할 줄 아는 거'를 자기 소개서에도 쓰고, 추천서에도 쓴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방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게 영적 원리인데, 사실은 제대로 성경대로 소개하려면
'나는 이것도 할 줄 모르고, 저것도 할 줄 모르고, 하나님 앞에 어리석기 짝이 없고...'
이렇게 쓰는 게 맞는 거예요.
그렇게 쓰고 맨 마지막에 한 줄만 잘 쓰면 된다고 그랬잖아요.
그 마지막 한 줄은 뭐여야 되느냐 하면
'그래서 저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그게 마지막 한 줄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저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이 한 줄이 2025년을 출발하는 우리 영락교의 성도들의 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 앞에 거(자기 장점)는 다 없어져야 되는 거예요.
그동안 우리가 살면서 '내가 이래도 교육을 얼만큼 많이 받았고..
내가 얼마나 교회 봉사를 많이 했느냐...' 이렇게 내가 할 줄 아는 걸 내세우고 살았잖아요.
우리 교회 항존직 선거 할 때도,
'나는 교회학교 봉사 몇 년' 이런 거를 쭉 써서 내잖아요. 이것도 사실은 영적 원리는 아니에요.
맨 마지막 한 줄 '그래서 나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이 한 줄을 얼마나 진실하게,
얼마나 고백적으로, 체험적으로 쓸 수 있느냐?' 그게 중요한 거죠.
딴 거는 사실은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어떤 대장정을 할 때, 새로운 일을 출발하고자 할 때,
수십 년을 준비하는데... 목회 나가는 목사님은 몇십 년을 준비하듯이 우리가 다 준비하는데,
맨 마지막 준비가 뭘까요?
99% 다 준비하고, 최후의 1% 마지막 준비가 뭘까요?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그게 마지막 한 줄이에요.
◑본문 설명
우리 예수님 나사렛에서 서른 살 되실 때까지 오랫동안 준비하셨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나중에도 보면, 새벽마다 산에 가서 기도하시고 이렇게 하셨잖아요.
그 기도습관도 그 전에 나사렛에서 다 준비하신 걸 거예요.
예수님은 어렸을 때부터 기도 생활이 준비가 되었고, 말씀의 훈련이 준비가 되셨고,
그분은 하나님이시니까 모든 걸 다 통달하신 분인데도, 다 준비하셨을 거예요.
그렇게 완벽하게 서른 살까지 준비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메시아로 등장하시기 전에, 무대 위에 올라가시기 전에,
맨 마지막으로 준비한 게 하나 있어요.
예수님의 마지막 준비 한 가지, 최후의 1% 그게 뭘까요?
그게 오늘 본문인 마3:13~17절인 거예요.
잠시 세례 요한의 얘기가 3:1~12절까지 나온 다음에,
이제 예수님 얘기가 다시 나오는 게 오늘 본문이에요.
예수님 얘기로만 하면, 마2장 끝에서 오늘 본문으로 바로 연결되는 거예요. 마3:13~
그럼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마지막 1% 준비하신 게 뭡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죽음>이었어요. 죽음!
예수님은 요단강에 오셔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어요.
세례 요한이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왜 저에게 오시느냐?' 이렇게 말하잖아요. :14
여러분 세례 요한이 왜 예수님의 수세를 말렸나요?
이건 상식적으로 보나 뭐로 보나, 이건 말이 안 된다는 거예요.
'아니 주님이 제게 세례를 주시는 게 맞는 거지,
어떻게 나같이 보잘것없는 인생이, 우리 주님이신 당신께 세례를 준단 말이에요?
이건 말도 안 되는 겁니다' 하고 말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역설, 말도 안 되는 역설,
그 역설이 우리가 배워야 될 원리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역설을 불편해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내가 이것도 있고, 저것도 할 줄 알고' 그러면
'내가 할 줄 안다'고 말해요.
그런데 역설을 적용하면 뭐라고 말해야 됩니까?
'아유, 저는 그거 잘 할 줄 모릅니다' 이렇게 말해야 역설인 거예요.
그런데 영적 원리는 그 역설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예수님이 강건하셔서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게 하시고,
당신은 세례를 받으신 거예요. 그 의미는, 나는 무능하고 나는 죽어야 된다는 거죠.
마3:15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그랬잖아요.
여기서 '의'란, 하나님의 원리를 말하는 거예요.
세상의 원리는 '내가 너에게 세례를 주는 거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 속에, 하나님의 원리대로 하면
이런 역설도 있게 되는데, 바로 '가장 완벽한 분이, 연약한 인간 앞에 머리를 숙이고,
세례를 받으시는 극도의 겸손!' 이자, 자기 죽음입니다.
이게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99%를 준비하시고,
마지막 1% 준비를 '수세로' 보여주신 거에요. 극도의 겸손이죠. 보통 겸손이 아니에요.
그 겸손은 결국 무엇으로 이어지느냐 하면, 십자가에서 죽음입니다.
세례를 받으셨잖아요
요단강 물이 넘실대는데, 예수님의 몸이 물속으로 쑥 들어갔어요.
이거는 죽음을 의미하는 겁니다.
여러분 '세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의미가 있어요.
물속에 들어간다는 건 '과거에 죄인으로 살았던 나는 이제 죽었다' 그런 뜻이고,
물 밖으로 다시 나온다는 것은 '이제 나는 하나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 그런 뜻이거든요.
죽었다가 사는 거잖아요.
그러면 누가 세례를 받습니까? 죄인들이 받는 거예요.
죄인이 죄로 인해서 죽은 거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잖아요.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죠.
그런데 왜 세례를 받으셨냐 하면,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으니까,
그래서 물속에 들어가서 죽는... 그걸 보여주신 거예요.
여러분 이거 굉장히 의미심장한 겁니다.
이제 이 마지막 준비가 딱 끝나면, 예수님은 100% 준비가 끝나요.
이제 무대 위에 올라가시는 거예요. 메시아로서 무대 위로 등장하시는 거예요.
그럼 메시아로서, 무대 위에서 병든 사람도 고치고, 말씀도 가르치시고,
여러 가지 일을 하실 건데... 예수님의 모든 사역의 하이라이트가 뭡니까?
절정 중에 절정의 사역이 뭡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거예요.
그분은 죽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거든요.
예수님이 무대 위에서 펼쳐 보여줘야 될 모든 것 중에
가장 난해하고 가장 어려운 절정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거예요.
그런데 골고다 언덕에서, 그 골고다 라는 무대 위에서 죽으실 건데,
그걸 위해서 요단강에서 죽음을 미리 연습하신 거예요.
요단강 물속에 들어가심으로써, 예수님은 죽음을 미리 연습하셨어요.
장차 죽음을 위한 리허설을 하신 거예요. 물속에 들어가면 죽는 거니까.
그거 해보시고 나니까, 이제 완벽하게 준비가 끝난 거예요.
왜냐하면 무대 위에서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죽음인데,
이제 죽음까지 할 수 있는 준비가 끝난 거예요.
실제로 죽을 준비가 끝난 거예요. 이제 준비가 100%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은 공생애 무대 위에 올라가셨고,
십자가를 치기까지 자신의 사명을 완벽하게 해내신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서른 살 될 때까지 준비하셨는데,
최후의 마지막 준비는 죽으신 거예요.
◑적용
여러분 이 내용을 아까 서두에 말씀드렸던, 목회자가 교회 부임하는 거에
적용해서 말하면, 목사님들이 어느 교회에 부임하기 전에, 마지막 준비는 뭐가 돼야 될까요?
자기 자아의 죽음이어야 되는 거예요.
그 교회에 부임하면서 '주님, 저는 죽은 시체와 같습니다.
저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공부 좀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고
제가 목회 경험을 좀 했지만.. 아무 의미가 없고,
저는 손가락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시체처럼 무능합니다.
그러니 저를 도와주세요. 이제 저는 하나님 당신의 은혜만 의지하겠습니다.
내가 이 교회 부임해가지고 이제 목회를 해야 될 텐데
나는 철저히 죽고, 이제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하겠습니다.'
그걸 진심으로 통과하면.. 이제 준비가 된 거예요.
반대로 자기가 할 줄 아는 게 많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아직 준비가 안 된 사람이에요.
그러면 가서 사탄에게 패하는 것만 남아있는 거예요. 자기를 믿고 나아가면!
그런데 하나님만 믿고 나아가고,
자기 자신은 다 죽은 자처럼 되면
비로소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고,
그때 준비가 다 된 거예요.
▲여러분, 이게 얼마나 역설적인 얘기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의 출정식과 같아요.
그래서 수세 때 삼위일제 하나님이 다 등장하십니다.
-성자 예수님이 요단강 가에 계시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잖아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삼위일체 하나님이 다 그 현장에 계시면서
이제 오래오래 준비한 하나님의 구원의 마스터 플랜을 이루어 나가시는 과정 중에
드디어 메시아로 등장하시는.. 역사적인 정말 우주적인 순간이 온 거예요.
그래서 그 출정식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다. 나타나셨는데
그 마지막 준비가 죽으시는(수세) 것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영락교의 성도들이 2025년을 출발하면서
우리도 거룩한 세례를 받길 원합니다.
그 거룩한 세례는, 하나님 앞에서 내 자아가 죽는 겁니다.
'하나님, 제가 할 줄 아는 거는 아무것도 없어요. 저는 능력도 없어요.'
그래서 교만도 다 죽이고, 우리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도 다 죽이고,
완전히 죽어서 엎드리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할 겁니다.
그때가 비로소 '하나님의 종으로' 준비가 된 거예요. 이걸 넘어설 수 있어야 되는 거죠.
영적 원리가 바로 이거예요.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어떻게 위대한 삶을 살았나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을 때, 자기 자신은 다 내려놓고, 비우고, 죽은 자처럼 됐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한 것이에요.
에스겔의 환상 속에 나타난 그 마른 뼈, 백골 같은 마른 뼈가
하나님의 군대가 돼서 나타나는데... 우리는 백골 같은 존재예요.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면
백골 같은, 마른뼈 같은 우리도.. 하나님의 군대가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저희 교회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게 참 어렵죠. 왜냐하면 자랑거리가 많은 교회니까!
금년에 저희 교회가 창립 80면을 맞이하는데,
역사가 80년이라는 게 자랑스럽게 다가오잖아요.
80년이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다가오는 건... 준비가 아직 덜 됐다는 뜻이 될 수 있어요.
이걸 자랑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게 아직 준비가 덜 된 거예요.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하나님, 우리는 마른 뼈, 백골과 같아요'
그렇게 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신이 역사하시는 거예요.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에요.
저도 그게 참 잘 안 돼요. 목회를 오래 하니까..
자꾸만 제 마음속에 어디서 설교해달라고 요청해 오면,
'내가 설교 그거 못하겠어?, 쉽게 하지'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교만하기 짝이 없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하나님께서, 큰 충격적인 말씀을 제게 주셨어요.
그게 뭐냐 하면, '지금 오늘 교회 와서 주일 예배 드리는 성도들 중에
다음 주일 못 나올 사람들도 있다. 이게 그에게는 마지막 예배인 성도도 있다.
네가 그렇게 설교를 잘 할 수 있어? 그럼 네가 그 30분 설교하는 거 가지고,
이 예배가 평생의 마지막 드리는 예배인 그 성도를 천국으로 보낼 수 있겠느냐?
그가 그 설교를 들었기 때문에, 그 주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도
주님 품에 안기도록 준비시켜 줄 만한 그런 능력이 네게 있느냐?'
제가 큰 충격을 받았어요. 능력이 있긴 뭐가 있어요?
얼마나 두려운 생각이 들었는지 몰라요.
그래서 다시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했어요. 하나님만 의지하는 거예요.
'하나님, 저는 그 성도를 주님께 보낼 자신이 없어요. 저는 능력이 없어요.
저는 어리버리해요.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그 성도에게 역사하셔서,
그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열리게 해주신다면, 그가 주님 품에 안기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야 됩니다...'
어제 (1.1) 저녁에, 우리가 신년기도회 첫날 저녁 모이고,
우리 목사님 기도 인도하는 동안에, 제가 뒤에 앉아서 같이 기도하는데
'성령을 받아야 된다.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어야 된다.
영락교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옷 입힘을 받아야 된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아야 된다'는 그런 강렬한 느낌이 막 왔어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하시면,
우리의 백 가지 천 가지 허물은 다 덮여질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면, 우리는 승리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의지하고 '아직도 내가 할 줄 아는 게 많다'
이렇게 우리 이름 석자를 내놓으면... 아무것도 안 될 것이에요.
우리 그 마지막 준비를,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돼요.
예수님의 마지막 준비는 죽으시는 거였어요. 세례가 죽음 아닙니까.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에 죽어야 되는 거예요.
우리의 못난 자아, 우리의 인간적 자신감... 이런 거 다 죽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망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역사하여 주실 것입니다.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살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게 우리가 연초에 해야 될 일이에요.
2025년을 그렇게 출발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야 하나님의 은혜가 이런 거구나.
하나님의 능력은 이런 거구나' 짜릿하게 경험하는 기쁨을 우리에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전적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우리 영락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하고요.
지금 나라도 너무나 어수선하고, 한국교회도 너무나 힘든 상황이고,
다 사분오열 되어 있는데,
영락교회가 희망이 되려면,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수밖에 없어요.
여기서부터 소망의 꽃이 피어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각자 각자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걸 볼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이런 간절한 갈망을 가지고, 우리가 기도하면서 새해를 출발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살려 주시옵소서.
내가 할 수 있는 거 늘어놓지 말고, 할 수 없는 거 늘어놓고 엎드리고 회개하고
자아를 다 죽이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한 분 만을 의지하길 원합니다. 주여 우리를 살려 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백골 같고 마른 뼈같은 저희들도 하나님의 신이 역사할 때,
하나님의 군대로 살아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 영락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