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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내비게이션

LNCK 2025. 1. 1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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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네비게이션 - YouTube

크리스천 내비게이션          시119:105~112          2025.01.05.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첫 기적>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반칠환

이렇게 우리가 다 다르지만, 다 다른 속도로, 다른 에너지로 살아왔지만, 
모두가 이 자리에 있는 건, 하나님 은혜인 줄 믿습니다. 

다 오기는 왔는데요. 누구도 쉽게 온 사람은 없습니다. 
나느라 수고했고, 뛰느라 힘들었습니다. 
거북이는 걷느라 땀흘렸고, 달팽이와 굼벵이도 기느라 구르느라 애썼습니다.
천천히 온 것 같지만, 각자 최선을 다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바위는 아무것도 안 했잖아요. 
여러분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비바람 다 견뎌내고, 천둥번개 다 버티고, 어두운 밤의 두려움, 
또 뙤약볕 내려쬐는 한 낮에 열기를 다 견디고, 그 자리에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중에 그런 분들 만나실 겁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거야' 
근데 그 자리를 버티는 게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난 한 해 동안에, 엄마의 자리, 아빠의 자리, 사장의 자리, 직원의 자리 
지키시느라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쩌면 오랜 기간 병석에 누워 계신 분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시간 맞추어 약 먹는 것 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바위 처럼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참 귀하고 소중한 일입니다. 

'나는 거북이 일까, 달팽이 일까? 열심히 일을 하는데 
왜 이렇게 제대로 전진하지 못할까?' 싶은 분도 많을 겁니다. 

▲나라를 보아도 참 어려운 해일 것 같습니다. 
올해는 뱀의 해라 그러잖아요. 육십 간지로 을사년 입니다. 
을사년 하면, 뭐가 생각나죠.? 어릴때 학교 역사책에서 배웠던 을사조약이 떠오릅니다. 

이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해, 혹은 친일파 간신 몇 명이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해, 
여러분 '을씨년스럽다' 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 말의 어원이 뭘까요? 
몇 가지 추정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게 '을사년스럽다'가 바뀐거랍니다.

그 근거가, 한국 여러 문헌에 그 말이 한 번도 안 나오다가, 
1908 년에 맨 먼저 등장합니다. 꽤 근거가 있는 얘기죠. 

그 을사년, 1905년은 포항제일교회가 시작한 해입니다. 
민족이 가장 아픔을 겪었던 그 해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선각자' 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길을 모르겠다는 거예요. 어디로 가야 될지, 어떻게 살아야 될지, 
무슨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될지 모르겠다... 하며 모두가 답답해 하던 시대에, 

누가 좀 갈 길을 보여주면 좋겠다. 방향을 말해주면 좋겠다... 하는 그 소망을, 
'선각자' 라는 말에 담아서, 그 선각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했습니다. 

어디에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모를겠다 하던 시절이었죠.
청나라인가? 러시아인가? 미국인가? 일본인가?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길 임을 선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우리 교회를 세운 거예요. 

우리가 작년 2024 한 해 동안 보았던 사도행전, 
사도행전의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길을 전하는 분들' 이었잖아요. 

1905년에 포항의 그리스도 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사의 어둠이 짙었을 때, 사람들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를 때에 
이 땅에 복음이 들어왔고, 민족의 운명이 가장 밑바닥에 처해 있을 때, 
우리 포항제일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후 지난 120년 동안, 육십갑자가 두 번 도는 동안, 
하나님이 우리 한국 사회에 베푸신 은혜와 역사가 참 놀랍습니다. 

그동안에 한국은 세계의 경제 대국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고 
문화적 역량에 있어서도 세계를 이끌어가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성장, 복음 전파의 역사도 세계인이 주목할 만 합니다. 
그러나 금년 2025 에 다시, 이 을사년에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 달에 했던 여론 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 중에 
'대한민국이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무려 93.7% 입니다. 

물론 무엇 때문에 위기다, 누구 때문에 위기다, 어떻게 이 위기를 타개해야 될 것이다...에
대한 판단과 생각은 국민 각자가 다 다를 거예요. 
그러나 '위기'라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삶에서 위기를 경험하고, 또 앞으로 위기를 예상하고 계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작년도 쉽지 않았는데, 올해는 더 힘들 것 같아요..' 하고 말하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어떤 길로 가야 할까요?' 
그래서 올해 1월 한 달 동안은 <크리스찬 내비게이션> 이런 주제로 말씀을 전합니다. 

제대로 된 내비게이션, 제대로 된 지도를 따라가야 되겠죠. 
또 우리가 그 사용법을 익혀야 됩니다. 
어떻게 만져야 되고, 무엇을 눌러야 되고, 어떻게 길을 따라가야 되는지 하나 하나 익혀야 됩니다. 

▲오늘 본문 시119:105절 말씀을 우리 다 같이 읽습니다. 
'추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이 시119편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장 긴 장입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에서 딱 중간에 있는 아주 유명한 장 인데, 
그 중에서도 105절은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이죠. 

'내 발의 등'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발 앞을 비추는 등(랜턴)과 같다는 거죠.

낮에 해가 밝아서 전부 다 보이는... 혹은 뭐 야구장의 조명 처럼 쫙 비치는 
그런 조명이 아니고요. 
여러분, 전기가 없던 시절을 생각해 보세요.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온 세상이 깜깜합니다.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등불 하나 들고, 길을 조심조심 찾아가야 되는 거예요. 

우리 인생 전체의 그림을, 우리는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인생을, 성경말씀으로, 한 걸음씩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에게, 또는 오늘의 교회에 가장 필요한 분별력은, 
행동해야 할 때와, 기도하고 기다려야 될 일을, 구별 할 줄 아는 분별력 입니다. 

행동해야 할 때에 그냥 머물러 기도만 하거나, 
혹은 기도해야 할 때에 과잉 행동을 일삼는 우둔함...

또한 침묵 해야할 일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고, 
또 담대하게 거침 없이 말해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달에 우리가 사도바울을 배울 때 기억나시죠?
풍랑 만난 배 위에서 그는 처음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올 때, 비로소 담대하게 말했잖아요. 
그 말에 하나님이 권위를 실어 주셨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을 보면, 가장 소중한 지혜가 뭔가 하면,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가야 할 때를 분별하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관직의 자리에서, 자기가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 가야 할 때를 아는 거예요. 
관직이 월급도 나오고 뭐 대우도 받는 자리를 하더라도 
'아니다' 그러면 그냥 물러가는 거예요. 그 지혜를 아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옛날 사극을 보시면 '상소'를 많이 했습니다.
정말 중요한 일이 있으면, 사직서를 써놓고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그거를 '사직 상소' 라고 그랬습니다. 그러한 말이 있을 정도로 굉장히 중요한 정신이었습니다. 

(공직자가) 같이 가지 못할 길은, 같이 안 가는 거죠. 
'아 내가 이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서 공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사욕을 넘어서는...'  
이런 공직자의 정신이 사라진 것이, 오늘 한국의 위기의 원인일 것입니다. *사직상소

반대로 나는 그만두고 싶어도, 개인적으로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도, 
그 자리를 계속 지켜야 될 때가 있습니다. 
물러 갈 때와 나아갈 때를 아는 지혜, 그 분별력! 

우리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별력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대단히 불안한 상태입니다. 

만약 지금 있는 정치적 혼란이 좀 장기화 된다면,
사실은 이게 국가 신인도에, 신용 등급 이런 거 있잖아요.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지금 사실은 하루 하루가 피가 마르는 시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거 아니어도 두 가지 도전이 있죠. 
하나는 미국의 대통령이 바뀌면, 그 바뀌는 경제 정책 때문에 
우리 산업계가 받을 타격이 어마어마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좀 더 장기적으로 AI 나 로봇 시대, 
혹은 생태계, 탄소 중립 경제, 이런 장기적인 부분에 대한 대책이 잘 돼야 되는데... 
(이런 국정 혼란 장기화로 지금 그런 게 지체화 되고 있는 거죠)

여러분, 지금 한국이 인터넷 강국으로, 디지털 세계에서 나름대로 
이렇게 잘 선전 善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지금이 잘 해서가 아니고, 한 이십 여년 전에    *1999년~
전국에 인터넷 인프라를 잘 깔아서, 지금까지 잘 나가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장기적으로 AI 나 탄소 중립, ESG 경영, 이런 부분들에 대한 준비가 잘 못 되면 
앞으로 굉장히 힘들어질 건데, 지금 한국이 허송세월 하고 있는 면이 굉장히 많습니다. 

*ESG란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 Environment, 사회 Social, 지배구조 Governance
를 뜻하며, 'ESG 경영'이란 장기적 관점에서 친환경 및 사회적 책임경영과 투명경영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

그래서 미래를 전망 하면, 어쩌면 '지금 어둠 속을 걷는 것 같다' 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장기적 국정 혼란은) 위험한 거죠. 

▲제가 대학 다닐 때는, 방학이면 금요일마다 대학부 친구들하고 산 기도를 갔었습니다. 
부산 금정산에 있는 기도원에 가서, 그 기도원 건물에서 예배드리고, 
예배가 마치면 다 산에 올라가서, 이제 밤 새도록 기도하고, 뭐 잠자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하루는 기도하다가, 밤 중에 한 두 명이 손전등 들고 어두운 산 길로 올라가서 
편평한 곳을 찾아서 기도하다가, 피곤해서 이렇게 잠시 누웠어요. 

바닥에 누웠는데, 여름 밤에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게 부는 지...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막 하늘에 별들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래서 별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기도하러 올라갔다가 잘 잤습니다. 그리고 새벽 녁에 이제 막 동이 틀 무렵에 일어나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누워 있던 바로 그 옆이 낭떠러지 였어요. 
조금만 몸부림을 쳤다면, 큰 일 날 뻔 했습니다. 
오늘 시편 저자가 '내 발에 등'이라고 할 때, 세상이 어둡다는 말이에요. 

▲사람이 올무에 잡히는 이유
뿐만 아닙니다. 110절을 함께 읽을게요.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올무', 나를 해하려고 덫을 놓았다는 말이죠. 
짐승들이 덫에 잡히잖아요.  우리들에게 좀 더 실감나는 표현은, 

'오늘날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지뢰밭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 폭발하는 거예요. 
2025년이, 올무, 덫, 혹은 지뢰밭 같은 세상일 수 있습니다. 

1) 자신이 제 발로 올무로 걸어들어 갑니다.
이 상황의 특징을 잘 보면, 대부분 지뢰밭은, 겉으로는 자신의 발로 걸어 들어갑니다. 

내가 가만히 앉아 있는데, 폭탄이 날라와서 터지는 그런 상황이 아니에요. 
내 발로, 지뢰밭으로 걸어 들어가는 거예요. 언제 그렇습니까

여러분, 짐승들이 덫에 걸릴 때가 언제죠? 맛있는 먹이, 미끼, 그거 지나치지 못하고,
즉 욕망을 다스리지 못할 때에 위험합니다. 

2) 자기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면 올무에 걸립니다
사람도 사기를 당하죠. (쉽게 돈 벌려는) 자기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서... 
그리고 조급할 때입니다. 지름길로 가려고 하다가, 남들보다 빨리 가려고 하다가... 

저도 군생활을 최전방에서 해서, 지뢰 사고를 종종 들어 보았는데, 
신병들이 오잖아요. 그러면 이 지역에 익숙하지 못하니까, 긴장을 바짝 하는데, 
신병들이 지뢰 사고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고참병이나 하사관들.. '이 지역을 내가 잘 알아'하고 교만할 때, 지뢰사고가 나는 겁니다.

3) 교만할 때, 조급할 때 올무에 걸립니다
여러분! 조선 시대에 호랑이 사냥할 때, 보면 그 올무가 별로 크지 않습니다. 
호랑이 발 하나 딱 들어갈 만한 작은 쇠올무로, 호랑이의 발을 묶어서 잡았습니다.
거기에 황소 만한 호랑이가 걸리는 거예요. 
교만할 때, 그리고 조급할 때 올무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4) 덫은 마음을 위축시키고, 기회를 놓치게 만듭니다.
여러분, 이 덫은 또 다른 굉장히 큰 효과가 있습니다. 사람을 위축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할 일도 못하게 하고, 기회를 놓치게 만듭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는 말씀은,
그냥 조심하라, 신중하라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에 의지해서, 그 빛의 도움을 받아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위축되지 말고 전진하라는 뜻도 함께 들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주에 나누었잖아요. '거침 없이 담대하게'  행28:31
그게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중요한 삶의 방식입니다.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됩니다. 
'덫'이라는 게 조심해야 되지만, 덫이 우리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등불이 우리에게 필요한 거죠. 

▲<작은 것이 아름답다> 라는 슈마허 라는 분이 쓴 책이 있습니다. 
굉장히 유명한 책인데, 이 슈마허가 옛 소련 시절에 레닌그라드를 방문했습니다. 

지나다니다 보니까, 엄청 큰 건물이 있는 거예요. 
들어가 보니까, 자기가 책으로만 알았던 굉장히 역사적으로 유명한 교회 건물이었어요. 

보기만 봐도 감동이 되는... '야, 여기 레닌그라드까지 와가지고 이 건물도 못 볼 뻔 했네' 
우연히 길을 걷다가 그 건물을 발견한 겁니다. 

'내가 여기를 왜 몰랐지?' 하고, 자기가 들고 다니던 지도를 다시 펴서 보니까,
지도에 그 교회 건물 표시가 없는 거예요. 
'왜 없을까? 이 교회 건물이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인데...' 

여러분, 그 도시는 원래 상트 페테르부르크 라고 불렀거든요. 성 베드로의 도시입니다.
지금 다시 그 옛날 이름 그대로 부르고 있죠.
 
그런데 공산주의 시절에, 레닌그라드, 즉 '레닌의 도시'로 바꾼 거예요. 
뿐만 아니라 그 시절에 공산주의자들이 만든 지도에는, 교회가 표시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탄압했으니까요.

여러분, 이 건물은 종교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건물이었는데, 
지도에 아예 표시를 해 놓지 않은 거예요. 대단한 의리석음, 만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모든 지도는, 그 시대 사람들의 그 사회의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잘못된 지도를 보고 있으면, 잘못된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다 인생의 꿈이 있잖아요. 여러분 자녀들도 꿈이 있잖아요. 
그게 어떻게 형성이 되었습니까? 

이 시대가 좋아 보이게 하는 어떤 머리 속의 지도, 
이런 혹은 가정마다 나름 '지도'가 있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들이 '아들아, 너는 꼭 이런 직업을 가져라!' 
'돈이 생기면 이렇게 투자해라' 
'딸아, 너는 이런 남자를 만나고, 저런 남자를 조심해라' 뭐 그런 말들을 하잖아요. 
그런 많은 충고, 그 문화들이 모여 가지고... 자녀들의 머리에 지도를 그려주는 겁니다. 

그리고 이 사회가 추천하는 지도가 있습니다. 
그 사회마다 인기 있는 직종, 사는 방식이 달라지잖아요. 

혹은 어떤 특정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지도가 있어요. 
의사들의 머리에는 좀 다른 지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검사들의 머리에도 다른 지도, 교수들의 머리에도 조금 다른 지도가 있어요. 

그것이 그 집단 안에서는 통용되지만, 밖에서 볼 때는 비상식적으로 보일 때가 있고요. 
특정한 상황과 조건에서 형성된 지도는, 세상이 조금만 바뀌어도 
완전히 그 그룹이 바보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더 심각한 것은, 그 (특정 그룹에서 형성된) 지도가 
잘못된 가치를 반영할 때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직장에 들어가서, 그 직장 선배들이 하는 대로 (지도대로) 그냥 따라 했습니다. 
'아, 이렇게 하는 건가 보다... 다 이렇게 하네?' 
그래서 관례를 따라갔는데... 가다가 보니까 덫에 걸려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 지도를 따라가야 됩니다.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예요. '다들 이렇게 하는구나' 
그래서 경쟁하면서 가다 보니까, 나중에 아이들이 이상하게 돼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부실한 지도를 보고 따라가고 있으면 위험합니다. 

또한 대단히 중요한 곳인데,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지도
거기서 유익을 얻지 못하고, 거기서 배우지 못하고... 
'야, 그 도시까지 가가지고, 그 건물도 못 보고 왔어?' 
'나는 있는 지도 몰랐어' 
'헛 짓 했네!'
여러분, 지도가 부실하면, 헛 짓 할 수 있습니다. 

인생 전체도 그래요. 우리가 인생에 대해서 잘못된 지도를 가지고 있으면,
인생 전체를 살아 놓고 '나는 헛 살았네'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 되신, 성경의 지도를 따라 가다 보면, 
후회가 없고, 감사와 보람이 가득한 내 삶이 되고, 자녀 양육이 될 것입니다.

▲ <작은 것이 아름답다> 이 책은, 굉장히 중요한 책입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끼친 1백 권의 책에 꼽힌다 할 정도입니다.

이게 1973년에 나온 책인데, '작은 것이 아름답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때까지 이 자본주의 초기에, 대량 생산, 대량 소비가 미덕인 사회였죠.

돈 많이 벌려면 무조건 커야 돼요. 무조건 큰 게 좋아요. 
그런 엄청난 세태 속에서, 그 책은 외로운 목소리를 냈습니다. 
'아니야,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알아야,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어' 

이 책에서 말했던 것 중에 아주 중요한 게, 
사회 약자들 뿐 아니라, 환경 문제입니다. 

'자꾸 덩치만 키우고, 많이 소비 하려고만 하면, 우리 사회는 망할 거야...' 
여러분, 1973년에 이미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뭡니까? 

여러분, 이런 말을 잘 들으면요. 우리 속에 지도가 바뀌는 거예요.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가야 될지, 뭐가 발전 인지, 뭐가 좋은 건지...' 지도가 바뀌는 겁니다. 

이 책이 굉장히 많은 영향을 끼쳐서, 많은 아류, 패러디, 오마쥬.. 이런 것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한 예로 <검은 것이 아름답다> 라는 책이 있어요. 
우리 교회가 동역하는 케냐의 이동관 선교사님 이라고 계십니다. 아주 잘 쓴 책입니다. 
케냐에 가서 아프리카 아이들하고 사역했던 그런 경험을 잘 담았습니다. 

'검은 것이 아름답다' 무슨 말이에요? 
흑인 아이들이 자라면서 열등감이 있잖아요. 

'백인은 훌륭하고 우리는 열등하다. 하얀 것이 좋은 거고, 검은 것은 부끄러운 거야'
여러분, 그 머릿 속에 지도가 바뀌어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지도, 어떤 네비게이션을 갖고 사는 가에 따라서, 우리 인생이 결정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인생길을 헤치며 나가는 데, 
내가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 
우리 가정의 앞 날, 우리 자녀의 장래를 계획하는 데, 어떤 지도를 갖고 있습니까? 
어떤 네비게이션을 들여다보고, 따라가고 있습니까? 

▲예수님 말씀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며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 마7:13~14

네, 넓은 길, 좋아 보이는 평탄한 길, 많은 사람이 찾는 길은, 
그러나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그렇죠, 잘못된 지도라는 거예요. 
잘못된 내비 라는 거예요. 

이 세상의 삶의 방식이 전하는 많은 지도가, 당장은 좋아 보이나, 
그것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일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좁은 문, 좁은 길은 뭡니까? 좋아 보이지 않는 거죠. 
미련해 보일 때가 있는 거죠.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 손해 보는 것이 있을 때가 있는 거죠. 
그래서 119:106 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라' 

'굳센 마음으로 굳게 정했다' 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맹세가 필요하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유혹이 있다'는 말이에요. 

'나는 진리를 따라, 주님 말씀을 따라, 바른 가치관을 따라 살려고 해도 
유혹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단단한 마음 굳은 결심이 없으면, 흔들린다는 말입니다. 

벧전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마음의 갑옷이 필요하다, 단단해 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단단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일단 주님 앞에 나올 때, 서로를 향해서 부드러운 마음이 필요해요. 
말랑말랑한... 하나님이 만지실 수 있는 마음, 

그러나 말씀 안에서 진리로 무장해서, 세상을 향해서 
결코 세상이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마음의 갑옷, 당당함이 필요하다는 거죠. 

예수님도 여러분 '맹세하지 말라' 그랬잖아요. 
근데 여기서는 '맹세 했다' 그랬잖아요.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  '맹세하지 말라'는 말은, 나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주님 앞에 부드러운 마음으로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결심 한다고 해서, 내가 다 지킬 수 없음을 고백하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단단한 마음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새해 들어서,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작심 삼일'이 있습니다. 
오늘이 벌써 1월5일이니까, 새해에 결심했던 것을 빠이빠이 하신 분들도 계실 거예요. 

여러분, 인간이 결심 한다고 다 지킬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래서 119:10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아멘!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이 기도와 간증이 필요한 겁니다. 
우리가 맹세하고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하고 결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고 '주님, 나를 살려 주시옵소서. 내가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한 간청이 함께 있어야 되는 겁니다. 

나 자신의 결단과 나의 노력으로 안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이 기도가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를 살아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릴 것입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 자녀를 살릴 것입니다. 
그 말씀이, 듣는 모든 자들에게 새 생명을 줄줄 믿습니다. 

금년 한 해, 우리가 여기서 말씀을 들을 때마다, 선포 되는 말씀이 
우리 영혼을, 우리의 삶을 살리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낙심한 사람들이 일어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게으른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새롭게 발견하고 
열정적으로 신나게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아주 중요한 방법으로는 11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주의 율례를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위 구절에서 '기울었다' .. 참 재밌는 말입니다. '기울였다' 어떤 느낌이에요? 
여러분, 요즘 사람들이 모여서, 이렇게 사진 찍잖아요. 
그 사진들 가만히 보면요. 누군가 자기가 친한 사람에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아이들도 엄마한테 기울어져 있는 아이들이 있고, 아빠한테 기울어지는 아이들도 있고, 
할머니한테 기울어져 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렇죠? 저는 '만약 하나님께서 제 영혼의 상태를 사진으로 딱 찍으신다면 
나는 어디로 기울어져 있나? 하나님께로, 하나님 말씀으로 기울어져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 두 사람이 길을 간다고 생각하십시다. 같이 출발해요. 
그런데 처음에는 가는 각도가, 1도 차이밖에 안 나요.  
그러면 한참 가도 별로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차이 안 나잖아요. 

근데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가면...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불과 1도의 기울기 차이가, 엄청난 차이가 날 거예요. 

1년, 2년 가면, 완전히 딴 세계에 가 있을 겁니다. 
그게 여러분 '기울기의 차이' 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는 게 그래요. 
뭐 내가 열심히 예배 드려요. 근데 금방 안 바뀌어요. 
열심히 뭐 해도, 금방 표시가 안 나는 것 같아요. 

여러분, 사람의 삶의 모든 측면이 다 그렇습니다. 
건강도... 누가 병원에 가서 당뇨 진단을 받았어요. 
'이렇게 생활 습관을 바꾸세요.' 
한 몇 주 열심히 했는데, 별로 당뇨 수치가 나아진 게 없어요. 

실망해서 의사 선생님께 가서 물어보면 의사들이 뭐라고 그럽니까? 
'환자님, 당뇨는 적어도 5년, 10년 전부터 진행된 겁니다.'  
어느새 오늘 생긴 게 아니고, 한 두 달 잘못해서 당뇨가 생긴게 아니고요. 
5~10년 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왔다는 거죠. 

그래서 치료 역시, 하루 아침에 뭐 바뀌는 법이 없고요. 
내 생활을 바꾼다면, 아주 조금씩 조금씩 좋아질 수 있다는 거죠. 
그게 여러분 '기울어진다'는 겁니다. 각도가 차이가 난다는 겁니다. 

여러분 조그만 습관이라도 지속적으로 (오래) 바꾸면, 드디어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바뀌었구나...'   

여러분, 사람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나의 자세가 바뀌면, 삶의 모든 부분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참 조급했는데, 참 교만했는데... 
여러분 사람이 덫에 걸리는 이유가, 조급하기 때문에, 교만하기 때문에 그렇잖아요. 

이제 좀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조그만 일에도 짜증이 많이 났는데, 
지금은 꽤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줄 믿습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얼마나 걸리나요? 뭐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신앙의 훈련을 잘 받으면, 3년 정도면 확연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정말 그가 변화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 가운데 은혜의 공동체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면..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말 옛날부터 많이 했잖아요.
어디 가서 부흥회 참석하고, 눈물 콧물 다 쏟고, 은혜 많이 받았는데... 
이제 많이 바뀐 줄 알았는데, 보면 또 옛날 모습 그대로입니다.

학생들이 수련회에 가 가지고 뭐 굉장히 뜨겁게 기도한 것 같은데, 
집에 돌아와서 얼마 못 가서 보면.. 옛 모습 그대로예요. 왜 그렇습니까? 
삶의 변화는... 시간이 걸린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은혜 받는 순간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때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약간씩 바뀌어, 변화되 가는 데요. 
그게 '하나님께로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 말씀에 기울어져 있으려면, 
첫째로, 매일 따로 시간을 떼서, 성경을 읽으며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능하면 30분, 적어도 15분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둘째로,. 나의 생각과 행동을 말씀에 비추어 봐야 됩니다. 
말씀은 거울이거든요. 말씀을 통해서 나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말하기 전에,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말씀을 생각하고 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그게 처음에는 잘 안 돼요. 

그렇게 말씀을 잊어버리고 살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하루에 한 번, 아침이나 저녁시간에, 
한 10분이라도 시간을 내어서 내 삶을 돌아보고, 말씀에 나를 비추어 보는 거예요. 

여러분, 하루 저녁에 조용한 시간을 가지면, 
반드시 거기 하루 오랜 시간을 살았어도, 특별히 내 마음에 남는 사건이 있습니다. 

내가 들은 말이든지, 한 말이든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거 붙잡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비춰주시기를 기도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 
나중에는 삶의 순간 순간에,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세 번째,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여러분, 계속해서 이렇게 살다 보면, 얼마 못 가서 우리가 예수님 닮은 사람,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119:111절을 함께 읽습니다.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고, 내 마음의 즐거움의 되었다...고 하죠. 

여러분, '기업'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몫입니다. 하나님의 상급 입니다. 
'주님의 증거(성경말씀)가 내 미래 기업의 약속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정하신 자리를 주실 줄 믿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그리고 그 사실이 그 믿음이, 오늘 현재의 내 즐거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편 말씀도 대단히 신비한 시편 입니다. 
시작할 때는 긴장된 분위기였어요. 어둠 가운데 있었어요. 
긴장이 있고, 올무가 있었고, 악인이 있었고, 그래서 위축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니까 
'즐거움 가운데, 기쁨 가운데 오늘 길을 간다' 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많이 사는 말 중에 '아보하'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아주 보통의 하루' 
행복한 사람은 보통의 하루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이죠. 일상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근데 여러분, 이 '아보하' 라는 말도 참 쉽지 않습니다. 
그냥 평범하고 보통만 살아도 좋을 텐데, 힘든 날이 많잖아요. 
이 어려운 경제에, 사업하시느라고 여러분, 얼마나 힘 드십니까? 

취업 준비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힘드십니까? 
오늘도 병석에 누워서 씨름하는 분들, 
어떤 가정의 문제와 분투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한 모든 하루 하루가, 주님 안에서 기쁨의 날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아무리 어두운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길을 잃지 않고, 우리에게 찾아오실 줄 믿습니다. 
그 기쁨의 힘으로, 우리는 삶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비록 올해, 을사년, 힘들 것이 예상되는 해이지만 
여러분,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등입니다. 
신중하되 위축 되지는 마십시오. 

'거침 없이 담대하게' 당당하게, 내 삶을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복된 한 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시 정리해 봅니다. 
첫 번째는 '길'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두 번째는 '진리'입니다. 
의로운 규례를 굳게 정해서 맹세할 만큼 소중한 진리, 변함 없는 진리입니다. 

셋째는 나를 사랑하게 하소서 ... '생명'입니다. 
길, 진리, 생명이라는 아주 중요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가치들이 제시 되었습니다. 

이게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보세요, 구약과 신학의 관계가 이렇습니다. 
구약 시119편에서 어려풋이 갈망하는 이 세 가지 소중한 가치가 
궁극적으로 예수님 안에 다 있는 거예요. 

구약에 아주 어렴풋했던 것이 신약에서 아주 선명하게, 
예수님이란 한 인격 안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마치 프리즘 같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가지 색깔이 다 나오잖아요. 
예수안에 이 모든 보화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과 동행 하기만 하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 하면, 진리 안에 살 수 있고, 예수 안에 풍성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 가운데 찬송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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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의사는 미국문화의 상징이다.

뉴스위크코리아 2009.05.20. 31~34쪽 스크랩, 정리

 

미국은 반대에서 태어났고 (독립전쟁, 영국 식민지 정책에 반대)

반대로 형성되었고 (남북전쟁, 노예제도에 반대)

반대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큰 반대를 치러냈다는 뜻으로 여겨짐)

노동운동, 여성선거권 운동, 민권운동 뿐 아니라, 반전시위 모두

미국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변수들이었다.

 

미국 지도자들은, 반대를 고귀하고 필수적인 덕목으로 찬양했다.

(반대 때문에 오늘날의 미국을 일군 것이죠.

Yes men들만 있었다면 공산주의와 비슷하게 되었겠지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미국인들은 진심어린 반대와, 적대적인 반대공격을 혼동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J. 윌리엄 풀브라이트 前상원의원도

<민주주의에서 반대는, 신뢰에서 비롯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4월27일밤,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난하는 인사들을 초청해서 만찬대담을 가졌는데,

그 중에는 NYT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과

콜럼비아大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만찬은, 백악관 바깥의 의견을 들으려는 노력이었다.

 

1970년 5월, 닉슨정부가 베트남 전쟁을 캄보디아로 확대하기로 결정하자

NSC 보좌관 여러 명이 (반대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1980년 카터 대통령이, 이란에서 잡힌 인질들을 무력으로 석방시키려 하자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이 (반대하며) 사표를 제출했다.

 

1990년대, 보스니아 사태 때, 세르비아가 잔학행위를 하는 것을

미국 정부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이에 반대하여) 국무부 하위직 관리가 여러 명 사임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밀어붙일 때,

뚜렷이 반대하거나 사직서를 낸 참모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몇 년 지나면 다 공직에서 물러날 것인데,

그 때 강경하게 반대하지 못하고,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도, 너무 아까우니까, 사직서도 못 내고,

그래서 이라크 전쟁은 네오콘 주도로 발발했고, .. 실패했고..

 

그 때 당시 부시 대통령 곁의 참모들은, .. 지금 후회스러운 것이다.

지금 그들의 궁색한 변명은 이것이다.

‘그 때 우리는 이라크에 대량학살무기가 진짜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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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전 총재는 "지식인은 자신의 계급 이해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다른 계급의 편에 서서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날카롭게 비판해야 한다"면서

"부도덕한 정부일수록, 정의나 성장 따위의 화려한 레토릭이 발달하는 만큼,

그 수사 뒤에 있는 허위의식을 폭로하는 게 지식인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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