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위대한 크리스천, 카터 대통령 |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소천 - Youtube
◈위대한 크리스천, 지미 카터 대통령 소천 위 방송 녹취 ☞지미카터 관련글
1024~2024
2002년 노벨 평화상 수상
40년간 해비타트 활동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수호에 기여
◑ [극동방송 특별대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소천
진행 /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현지 시각으로
2024.12.29. 오후 3:45분에 100세의 나이로 소천했습니다.
진실한 기독교인으로 많은 사람들을 돕고, 또 각국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던 대통령이었는데요.
특별히 극동방송 이사장이신 김장환 목사님과 카터 대통령은
오랫동안 아주 특별한 인연을 유지해 오셨습니다.
김장환 목사님이 직접 겪으신 카터 대통령과의 일화는,
그 하나 하나가 대한민국의 중요한 역사가 되기도 합니다.
카터 대통령 소천과 관련해서, 김장환 목사님을 모시고 긴급 대담을 마련했습니다.
김목사님은 지미 카터의 주지사 시절부터 알게 되셨다고요?
김장환 목사 / 지미 카터는 침례교인이고,
저는 침례교 세계연맹 총회장을 5년 동안 지냈기 때문에
그러한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죠.
지미 카터가 조지아 주지사 때, 제가 우연히 아틀랜타에서 제일 큰 미국 침례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제가 카터 주지사를 찾아갔어요.
국회의원도 하셨던 김익준 장로님하고 같이 방문했는데,
거기서 기도도 같이 하고, 제가 장래 계획을 물어보니까
벌써 그때 '대통령 계획이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자 김익준 장로님이 '자기가 그럼 선거 참모장을 하겠다'고 농담까지 했어요.
그런데 정말로 그분이 조지아 주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제가 반신반의를 하면서 한국에 돌아왔죠.
미국은 각 주마다 커널 Colonel
각 주에서 그걸 지사 마음대로 임명을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조지아 주에서 '커널'이라는 직을 받았어요.
(*지역사회나 주와 관련하여 이루어낸 뛰어난 업적과 공헌에 대해
현직 주지사가 수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때 그 분과 알아가지고 아주 친해졌어요.
그 후에 이제 꾸준히 알게 된 것은, 기독교 측면에서
이 분이 대통령 후보 때 기자한테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당신이 간음한 적이 있느냐?'
그러니까 카터는 '내가 간음했다' 그러니까 주위가 모두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카터는 계속 이어 말하기를 '성경을 통해서 볼 때,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이미 간음을 했다. 그러한 측면에서 나는 간음을 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을 하더라고요.
보통 솔직한 분이 아니십니다... 저하고는 참 일화가 많죠.
그 분이 대통령이 돼가지고 일본에서 7개국 정상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그때 한국을 방문한 거예요. *1979년 6월
그때 카터 측에서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을 좀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큰 교단의 총회장들,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 한경직 목사님, 강원룡 목사님,
강신명 목사님, 그 다음에 나는 침례교 대표로 참석했는데요.
그때 카터 대통령은, 우리 나라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안 자고, 미국 대사관 관저에서 잤어요.
그러니까 우리 박대통령이 조금 언잖아 했지요. *관저는 덕수궁 길에 있음
그래서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여서, 미대사관 관저에서 카터 대통령을 만났는데,
카터 대통령이 응접실로 나오면서 '빌리 킴, 마이 굿 프렌드, 얘기 좀 한번 하세요' 그러더라고요.
그때 강원룡 목사님이 얘기하고 시간이 다 간 거예요. (*아마 민주화, 독재 얘기했겠죠)
그래서 바깥 (마당)에 나가서 사진 찍고, 대표들은 다 돌아가시고,
카터 대통령이 갑자기 나더러 '여의도 침례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내 차는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었죠. 근데 자기 차를 타고 가재요.
아마 한국에서 미국 대통령 자동차를 타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진행 / 그 차 안에서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김장환 목사 / 차 안에서 제일 내가 생각한 거는, '우리 박정희 대통령한테 전도 좀 해달라'
그러자 카터 대통령은 '그래, 내가 전도하겠다' 그러더라고요. *10,26. 약 4개월 전
제가 '박대통령을 내가 전도하고 있는데, 내 힘만 가지고는 안 되더라,
당신이 전도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고, 제가 그 분과 약속을 했어요.
카터 대통령은 '내가 꼭 전도하겠다고...'
그리고 이제 자동차를 타고 가서, 한기만 목사님의 영접을 받아서
나는 대통령 바로 뒤에 앉아 있었지요.
그때 여의도침례교회에서 대표 기도를 누가 했느냐면,
그 교회에 나가는 이태섭 집사님이 기도를 하고, 예배가 생각보다 일찍 끝났어요.
그래서 이제 유치원 예배실에 들어가서, 유치원 학생들이 앉는 조그만 의자에서 (앉아있다가)
카터는 12시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가서, 우리 나라 국회의원들을 만나기로 스케줄이 돼 있는데,
11시 낮예배 보는 동안에 누가 내 등을 치길래 보니까,
'저기 비상 전화에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전화 좀 받아보세요.'
그래서 나가서 전화를 받아보니까 차지철 경호실장이
'김목사님, 예배 끝나고 바쁘시지 않으면 박정희 대통령께서 목사님을 좀 뵙잡니다.'
그래서 카터 대통령은 국회로 가고, 난 청와대로 갔지요.
차지철 실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데리고 박정희 대통령 집무실로 가더라고요.
제가 기도를 하고
'차 안에서 무슨 얘기를 했냐?' 그게 궁금는지 제게 물어보더라고요.
미대사관 관저에서 한 얘기는 다 아는 모양인지 안 물어보더라고요.
아마 미국 대통령 자동차는 도청이 안 되는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차 안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나더러 얘기하라고 그래서,
제가 거기서 이제 얘기를 쭉 했는데...
'(제가 들은 바 카터 대통령의 말로는) 일본 후쿠다 수상이 각하 칭찬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각하께서 후쿠다 수상에게 편지를 한번 보내주시지요.
그 다음에 제가 (카터 대통령에게) 각하를 전도하라고 그랬습니다.
이제 곧 오후 4시가 2차 정상회담인데, 각하께서 초청한 손님인데
두 번째 회담에서는 각하께서 긍정적으로 맞아 주시면 아마 좋은 대화가 될 겁니다.'
그러자 박대통령은 '김 목사 말도 맞다.'
그래서 2차 한미정상회담에는 원만하게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뭐 거기서 수행하던 사람들이 나한테 분위기가 좋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고 나는 이제 뭐 카터가 진짜 전도를 했는지 안 했는지 잘 몰랐는데,
두 분 대통령이 자동차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갔어요.
(나중에 들은 말로는)
카터 대통령이 박대통령한테 김포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전도를 하시더래요.
그걸 김계원 비서실장이 나한테 얘기를 해 주더라고요.
'카터 대통령이 우리 각하께 전도를 합디다'
김계원 비서실장이 장로거든요. 옆에서 귀담아 들은 거예요.
카터 대통령이 약속을 지킨 거지요.
그 후에 카터 대통령이 은퇴를 하고, 한국에 해비타트 운동으로 집 지으러 왔어요.
그 양반이 올 때마다 날 만나요. 이북에 가기 전에도 만났고...
그래서 박성철 회장님이 개성에 자기가 예배당을 지어놨는데 *신원그룹
'지미 카터가 거기 가서 간증 좀 해달라고'
그래서 언젠가 지미 카터가 한국에 왔을 때, 제가 박성철 회장님도 모시고 가서
카터 전직 대통령을 만났어요.
(한 번은 카터 대통령과 차를 타고) 여의도 광장으로 들어가는데
내가 말했어요. '여기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왔을 때, 백만 명을 모아가지고
전도대회를 했다고'
그러자 카터는, 자기도 텔레비전에서 그걸 봤대요.
그러면서 '자기 여동생이 한국에 한번 오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초청합니다' 그런 대화를 쭉 하면서, 같이 차를 타고 갔는데,
자기가 미국에 가서 주일학교에서 가르칠 때
'내가 과거에 박정희 대통령한테 전도를 했다'
그러니까 또 기자가 '왜 남의 나라 불교 대통령에게 전도를 했느냐?' 하고 질문을 했죠.
(외교적 결례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런 일이 있었다고, 카터 대통령은 그걸 또 신문에서 스크랩을 해서
그 기사를 나한테 보내주었어요.
미국은 해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조찬 기도회가 있어요.
늘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설교를 했어요.
그때 김익준 장로, 김인득 (삼익) 회장 등을 데려가서 카터 대통령과 만나고,
조찬기도회 하기 전에 호텔 방 하나를 빌려가지고, 만나서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 카터 대통령이 이제 한양대학 총장님한테,
카터의 어머님이 간호사예요. 릴리안 카터 간호사인데,
인도에도 가고 아프리카도 가서 봉사했는데
카터가 '그분한테 한양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하나 주세요'
우리가 기꺼이 드리겠다고...
그래서 내가 다음에는 한양대학교 총장을 데리고 워싱턴을 갔는데,
지미 카터 대통령이, 자기가 생활하는 백악관 꼭대기 층에 오라고 그러더라고요.
김연준 총장님 내외를 데리고 갔어요. *침례교인
대통령이 나더러 '우리 어머니 명예박사 학위 주는 거는 감사한데,
워싱턴에서 하지 말고, 자기 고향 플레인스 GA에 가면,
자기 집이 거기 그대로 있대요.
거기서 한양대학교 총장님 내외, 그다음에 우리 내외,
그다음에 내가 노래하는 여자 두 사람을 데리고 갔어요.
그래서 애국가를 부르고, 미국 국가를 부르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걸어놓고
김연준 한양대 총장이 거기서 명예 박사학위를, 카터의 어머니 간호사에게 수여를 했지요.
카터 대통령이 무척 감사했었죠.
그게 고마워서인지, 카터 대통령은 나하고, 대통령 직을 끝마친 다음에도 자주 만났지요.
2005년 침례교 세계 대회 때, 내가 침례교 세계 연맹 총회장 임기를 5년 마치고,
런던에서 조금 들어가면 있는 버밍햄 잉글랜드에서
침례교 영국에서 시작해 가지고, 100 주년이 됐어요.
그래 100주년 기념대회를 영국에서 한다고 해서,
내가 그때 침례교 대표직을 그만 둘 때인데, 그 기념대회에 강사를 여러 사람을 초청했지요.
그중에 카터 전직 대통령을 초청을 했어요.
그래서 카터가 토요일 오찬에 한번 설교를 했고,
주일날 선데이 스쿨 시간에, 2만명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카터가 또 가르쳤어요.
그래서 나하고는 아주 뭐 절친한 사이였고,
사람이 굉장히 겸손하고, 그 분이 이제 그만두고 카터 센터를 만들었을 때,
내가 그 재단에 해마다 1천 불씩 기부금을 보냈어요.
그래서 카터 내외가 결혼 75주년 기념일에, 내가 축하카드를 하나 보내면서,
그 속에 백 불짜리 두 장을 넣어서, 사모님 모시고 나가서 스테이크를 드시라고 했죠.
그러자 카터는 아주 정중한 감사편지를 싸인해서 나한테 보냈어요.
그런 인연이며,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은, 이 분이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히 어려운 사람들, 자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많은 봉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지미 카터 전직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특사로
이북에 가서 김일성도 만나고 왔습니다. *1994, 김일성 사망 한 달 전
그분은 한국에 대한 걸 많이 격려를 해주셨고, 참 솔직한 사람이에요.
진실하고... 그래서 성경을 늘 보면서 성경대로 살려고 두 내외가 무척 노력을 많이 했죠.
진행 / 카터 대통령이 방한을 했을 때, 당시 박정희 대통령하고
주한미군 철군과 관련해서 설전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사실 그 배후에 김장환 목사님께서 미군 철군을 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것으로
나중에 밝혀진 바도 있습니다.
김장환 목사 /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주한미군 철군에 대해서 반대를 했지요.
한국의 중요 인사들... 심지어 유엔군 장성들도 철군을 반대했어요.
카터는 철군을 할 계획이 있었죠.
그때 내가 카터와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했던 얘기가
'여긴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북한이 만약 여기에 내려오면 제일 먼저 기독교를 말살할 겁니다.
그럼 당신이 철군해 가지고 그 책임을 하나님 앞에 어떻게 얘기를 하겠습니까?
철군은 보류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기독교를 위해서!'
그러니까 카터의 반응은 '내가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겠습니다'
카터는 자기가 이미 대통령 선거를 출마할 때 공약을 한 거거든요.
선거 공약으로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근데 한국에 와서 보니까, 판문점에도 가봤고,
여기 미군들하고 하루 동안 생활도 같이 해보니까,
미국에서는 탁상공론을 한 거고, 여기 한국에 실제로 와보고
또 한국의 자기 친구 목사한테 얘기 들어보니까,
그 목사 생각에 '김일성 정권이 여기 내려온다면, 제일 많이 처형할 그룹은 기독교라고'
그런데 그 양반이 독실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마음에 아마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그래서 미국에 돌아가서 재임 4년 동안 미군 철군을 안 했죠.
진행 / 목사님의 권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수도 있겠네요.
카터 대통령은 일평생 주일학교 교사로도 헌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김장환 목사 / 그 분이 조지아 상원의원 때나, 주지사 때나,
그리고 미국 대통령을 한 분인데
내가 우리나라에서 몇 사람을 데리고 플레인스 조지아 침례교회를 갔어요.
보니까 카터가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더라고요. *미국은 어른들도 주일학교에서 배우지요.
그때 정광택 장로님이 날 따라왔어요. *기업인
그가 카터한테 1만 불 수표를 만들어서 준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주일학교 끝마치고, 휴게실에 내가 들어가서 인사를 했지요.
카터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데 '여기 내 친구가 카터 사역에
1만불 수표를 갖고 왔습니다' 그러자 너무 고마워하는 거예요.
나도 몰랐지요. 수표를 그냥 드리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너무 당황해서) 거기 싸인이 없이 드린 거예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싸인해서 새로 수표를 보내드린 걸로 알고 있어요.
보니까 카터 선생님이, 거기 주일학교에서 어른들을 교회당 안에다 모아놓고
성경을 가르치더라고요. 그거 보면서 '참 대단하다'고 제가 생각했죠.
그래서 카터가 4년 동안 대통령 한 것보다,
40년 동안 어려운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엄청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이지요. 그래서 그 업적을 높이 평가하지요.
그분의 믿음과 신앙이 철두철미한 신앙이지요.
침례교 집사로서 누구보다도 더 믿음 생활을 열심히 한 사람이고요.
진행 / 한 명의 신실한 또 기독교인으로, 또 김목사님과는 평생의 동반자이자 친구로 계시다가
소천을 하셨는데, 이 방송을 보고 듣고 있는 우리 극동방송 가족 여러분들에게
'카터 대통령으로부터 우리가 이러한 점은 좀 본받고 배웠으면 좋겠다' 하시는 말씀을
한 말씀 해주시고, 대담을 마무리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김장환 목사 / 모든 일간 신문을 보니까 카터 대통령에 대해서 도배를 했는데,
그런데 신앙에 대해서는 별로 쓴 게 없어요. 그래서 극동방송에서
'참 이런 분이 침례교 집사로서 주일 학교를 열심히 섬겼고,
대통령 됐을 때도 워싱턴 제일 침례교회에 가서 주일 학교를 가르쳤어요.
대통령이 되고 나서 워싱턴에서 지내니까, 고향 조지아까지는 못 내려가니까
백악관 근처 워싱턴 제일 침례교회에 가서, 어른들 성경 공부를 가르쳤어요.
그러니까 내가 우리 청취자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높은 자리에 있든지, 낮은 자리에 있든지
겸손, 진실, 또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청취자들께서도 '아, 카터 대통령이 미국에 있었구나..'
그렇게 평범하게 생각하면 안 되고,
그분은 기독교인 대통령, 정치인으로서 믿음 생활을 끝까지 한 사람이죠.
기독교인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번에 돌아가시면서도 '내가 이제 하늘나라 간다. 아내 곁으로 간다'
그러면서 참 즐겁게, 행복하게 눈을 감았다고 그러더라고요.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가야 돼요.
진행 / 오늘 긴급 대담을 편성해 봤습니다.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현지 시각으로 2024.12.29일 오후 3시 45분에 백 세의 나이로 소천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기에 앞서서, 한 명의 신앙인으로서 우리에게 큰 영감을 주었기 때문에
일간지에서 다루지 않는 카터 대통령의 신앙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김장환 목사님과 함께 깊이 나눠봤습니다.
많은 방송가족 여러분들께 영감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긴급대담, 지미 카터 대통령 소천과 관련된 이야기]를
극동방송 이사장이신 김장환 목사님과 말씀 나눠봤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진행은 장대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실한 기독교인으로서 평생 사랑과 정의를 실천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께 감사를 드리며,
주님의 품 안에서 안식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