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karamos/80055654419
◈묻지 말고 먹으라 고전10:23~33 2007.06.17.
※아래 설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개념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설교 후반부에 나옵니다.
............................................
▲제 집안 이야기를 좀 하렵니다. 제 아내가 4살 때, 한 살 위의 오빠하고 둘이서 시골에서
자라면서 손잡고 이집 저집, 이 골목 저 골목 그렇게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놀았답니다.
어느 날 어떤 집 앞을 지나가다가 닭을 잡는 걸 보았습니다.
닭을 몇 마리 잡아다가 발로 밟고, 목을 따고, 피를 내는 걸 보았습니다.
그리고 ‘악’하고 울었습니다. 아주 기절할 것처럼 울었습니다.
그 후로 칠십이 넘어서도 아직도 닭고기를 못 먹습니다.
좀 먹어보라고 해도, 먹으려고 하면 딱 그 장면이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이게 걸려서 오빠하고 둘 다 지금껏 닭고기를 못 먹습니다.
여러분, 못 볼 걸 본 거예요. 다시 말하면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았어요.
안 보았으면 좋았을 걸 보았어요. 닭고기만 먹어야지, 닭 잡는 것까지 볼 필요는 없잖아요.
이래서 일생 동안 닭고기를 못 먹어요.
▲인간은 합리적 존재이고 합리성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인간됨의 그 가치는, 확실히 이성에 있다고 봅니다.
생각하고, 알고, 비판하고, 추리하는 기능이 있어서
인간만의 독특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거든요.
알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알고 깨달을 때마다 통쾌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다 아는 것은 아니에요. 아니 다 알 필요도 없습니다.
좀 더 나가서는 몰라야 될 것은 모르는 게 좋습니다. 굳이 알려고 하지 마세요.
그거 모르게 좋습니다. 그냥, 그냥 사세요.
그것이 바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비결이기도 하구요. 행복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사람이 다 알고 행동하는 게 아니에요. 행동한 다음에 아는 경우가 더 많죠.
알아서 좋은 것이 있고, 몰라서 좋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결혼 주례할 때마다 신부에게 꼭 당부를 합니다.
어제도 주례하면서 신부에게 얘기했습니다.
"나하고 약속하자. 밤에 남편이 잘 때, 몰래 남편의 핸드폰 뒤져보지 마라.
요거 눌러보고 '요 번호 누구거냐?' 묻지 마라. 그냥, 그냥 모르고 사는 게 좋다.
그거 알아서 뭐 어쩌라는 얘기냐? 사랑은 강탈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억지로 받아내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줄 알면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가 되고 만다." 그렇게 약속하기는 했는데 지킬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가진 지적 욕망, 이걸 제한해야 됩니다.
믿음으로 때로는 사랑으로... 이걸 제한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보세요. 적어도 죽을 날은 모르는 것이 좋아요.
이걸 알겠다고 점쟁이를 찾아가는데, 거 한심한 짓이에요.
점쟁이 자기도 모르는데, 남의 죽을 날을 어떻게 알겠어요?
어쨌든 죽을 날은 모르고 사는 게 좋아요.
그러나 머지않아 죽을 텐데 뭐, 걱정할 거 없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죽을 텐데요.
아나 모르나 간에, 그런 건 모르는 게 좋아요.
예수님도 주님 재림하는 날짜에 대해서 사람들이 궁금해 하니까 말씀하시기를
'그건 너의 알바 아니요' 하셨습니다. '너의 알바 아니요', 하면
'예 그런 줄 알겠습니다.' 아, 그러고 말지,
그거 알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고 성경을 연구하다가
잘못된 신앙으로 빠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니 몰라야 행복했던 것입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분이 유대인 하고 친했어요.
그 친구가 어느 날 골탕을 먹이려고 일부러 중국집에 들어가서 돼지고기 탕수육을 시켰어요.
맛있게 다 먹었어요. 같이 맛있게 먹고 나서 마지막에
"자네, 그 지금 먹은 거 무슨 고기인지 아나?"
"모르는데……."
"그거 돼지고기야."
그때에 그 유대인 친구가 하는 말이,
"그거 왜 이제 와서 말하나? 그 말 안 했으면 좋았을 걸..."
그 다음 얘기가 더 재밌습니다.
"어쩐지 맛이 있더라." 하하하.
유대인은 돼지고기 안 먹습니다. 아, 먹어선 안 됩니다.
그러나 이미 먹었습니다. 그러면 몰랐으면 좋았을 걸...
이걸 괜히 알아 가지고 꺼림칙하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몰라서 좋은 것은, 모르는 게 훨씬 좋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2000년 당시로 돌아가 보면, 오늘 본문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우상의 제물이 많았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짐승을 죽일 때에
반드시 우상에게 일단 약식의 제사를 드리고 짐승을 잡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제사의식을 통해서 많은 제물을 우상에게 드리고
마지막에 저들이 먹고서, 남으면 그 남은 고기를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비슷하게 ‘할랄 식품’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먼저 의식을 치른 음식입니다)
그러니까 시장에서 사는 고기는, 대부분 우상에게 한번 제사 드렸던 것이거든요.
그런데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우상 제사에 동참하는 것이 됩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음식은 음식이요. 고기는 고기요.
그런데 단순히 음식으로 보느냐, 아니면 우상의 제물로 보느냐 하는 관념의 차이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언제나 음식은 음식일 뿐인데
이것을 먹으면, 우상 제사에 동참하는 것이 된다는 생각을 하기 쉽단 말이에요.
여기에 시각의 차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15:1절 이하에 보면, 강한 자와 약한 자를 말합니다.
이런 음식을 먹을 때 '이건 음식이다, 단순한 음식일 뿐이다.' 하고 먹는 사람,
그는 강한 사람이고요.
음식을 먹을 때마다 꺼림칙 해가지고, ‘이게 우상의 제물인가 아닌가’를
꼭 생각하는 사람이 있단 말예요. 그러면 탈나죠.
이렇게 생각하고 벌벌 떠는 사람이 있어요. 아니 못 먹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문제가 나로서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데
저 약한 사람에게는 이게 신중한 문제가 된단 말이에요.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된단 말이죠.
◑오늘 본문에는 기독교 윤리적, 또는 도덕성의 원리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1.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1절에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 영광 합니다만 그건 무슨 뜻입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갑니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하는 마음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 감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거예요.
원망과 불평을 하면 하나님께 욕 돌리는 겁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이에요. 그리고 항상 선물로 받은 마음이에요.
'내 공로로, 내 의로, 내 선으로 된 게 아니고 보상으로 받는 게 아니라 이건 선물입니다.
나는 조금 수고했는데 하나님은 큰 것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하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님들을 모아 강의를 많이 합니다.
지난 주간에도 강의를 했는데, 강의 마지막에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 질문 중에 해마다 질문 받을 때마다 나오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이 '목사님, 40년 목회하고 후회하는 거 없습니까?'
꼭 그 질문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대답합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대답하겠습니다. 저는 후회 없습니다.
왜 없느냐? 내가 기대가 적었으니까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 잘됐으니까.
내가 한 건 작은 거요, 하나님은 큰일을 이루셨어요.
내가 한 수고는 조금이고 하나님은 위대한 일을 이루셨어요.
나는 부족하고 허물이 많지만 나를 통해서 너무나 큰일을 이루었기 때문에...
후회라니? 어떻게 후회가 있겠어요?"
이렇게 말하면 목사님들이 깜짝 놀라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저는 어떤 일에도 후회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후회 없는 마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마음이에요.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뒤돌아보면서 '이것이 잘못됐고, 저것이 잘못됐고, 억울하고,
이래서는 안 되는 건데, 저래서는 안 되는 건데...'
이거 다 하나님께 욕 돌리는 거예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돼요.
범사에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의 위대함을 느끼고 행복해야 돼요.
나의 행복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걸 잊지 마세요.
여러분, 아이들을 위해서 음식을 차려 놓습니다.
아이들이 밥 먹을 때마다 '아, 꿀맛입니다. 감사합니다.'
애들이 밥 먹고 일어서면서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야 그게 부모님께 영광 돌리는 거지요,
‘이게 짜고 시고 뭐 어쩠고’ 하면서 투정부리면.. 이거는 아니거든요. 이거는 정말 아닙니다.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에 벅차 있어야 합니다. 감사,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겁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내 스스로 행복한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범사에 행복을 느끼는 것, 사랑을 느껴요.
▲윈스턴 처칠 경은 하나님에게 식사 기도할 때마다 특별한 기도를 했어요.
우린 식사 기도가 좀 긴 게 흠이에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고 하니
'이 음식 먹고 건강하여……' 그때부터 잘못되는 거예요.
거 왜 복잡하게 하는지 뭐 '이 음식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하고 먹으면 딱 좋겠는데,
뭐 이 음식 먹고 건강하여 남북통일까지 가니까 기도가 길어질 수밖에요.
이거 영영 감사기도 같지 않아요.
그런데 그 분은 딱 두 가지 감사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왕성한 식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요. 입맛 없으면 안 되잖아요. 맛있게 먹는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거예요.
이렇게 맛있게 먹으면 하나님도 기뻐하신단 걸 잊지 마세요.
거, 찌그럭대지 마세요. 그러면 하나님께 욕 돌리는 거예요.
하나님께 영광,
또한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되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갑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생활철학 제1호가 하나님께 영광.
▲2. 두 번째는, 이웃에 덕을 세우도록 하라.
왜요? 다른 사람의 약함을 돌아봐야 되겠거든요.
그래서 모든 것이 가하나 다 가한 것이 아니에요.
나로서는 가하나 저에게는 가한 것이 아니요.
나는 당당하지만 저 사람은 게름 직해요. 그렇다면 내가 어느 쪽을 택해야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이래서 말합니다. "내가 만약에 고기를 먹어서 다른 사람에게 시험이 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리라." 이까짓 거 안 먹으면 되잖아요. 고전8:13
한 사람 구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다른 사람의 믿음을 위해서 내가 스스로 자제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그저 웬만하면 나의 욕구보다는 다른 사람의 욕구,
내 소원보다는 다른 사람의 소원, 다른 사람의 기쁨을 생각하며 산다는 거,
그것이 나의 인생의 영역이 넓어지고 내 인격이 성숙도를 말하는 것이에요.
거기에 또 다른 행복이 있는 거예요.
내가 먹어야만 좋은 게 아니거든요. 남을 먹이고 잘 먹는 걸 보면서
내가 행복한 거 아닙니까? 이 높은 행복을 생각해야죠.
특별히 성경은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내 자유함이 남의 거리낌이 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을 방해해서는 안 되잖아요.
내가 가야할 길이 있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되죠.
아니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도록 해야죠. 이웃의 약점, 이웃의 부족한 점,
이웃의 약한 믿음, 다 생각해야 됩니다.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우스운 얘기입니다만 언젠가 한번 손자 손녀가 아주 어렸을 때 내게 왔어요.
그러더니 손녀 아이가 큰 걱정을 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뭔데?"
"아니 글쎄, 오빠가 엄마하고 결혼한대요.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아빠하고 해야 될 거 같아요." 아주 큰 걱정을 해요.
얘를 놓고 내가 무슨 말을 해야 됩니까? 그래서 내가 그랬죠.
"그렇게 잘 되도록 해라." 그러고 말았죠. 거기 무슨 긴 설명이 필요합니까?
어리석고 유치한 말을 할 때는 그냥 봐 주세요.
거 투정 대는 거, 거 좀 받아주면 안되겠습니까?
뭘 거기다 대고 이러니 저러니 말싸움을 벌일 것이 아니에요. 시비를 벌이지 마세요.
그냥 기다려 주세요.
좀 이제 컸어요. 요즘은 초등학교 다니는데 요사이에 물어봤어요.
"아빠하고 결혼할래?" 그러니까 안 한 대요.
아 그거 좀 기다리면 될 걸. 그걸 놓고서 어쩌고, 어쩌고 그러는 게 아니올시다.
그냥 관용하고 이해하고 기다리세요.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비판에 앞서서 기다리세요. 의젓하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웃으면서 기다리세요.
▲또한 바울의 윤리는 이렇습니다. 스스로 종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9:19절, 9:23절에서 말합니다. "여러 사람을 얻기 위하여 여러 모양이 되었다."
그건 마치 주체의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어요.
여러 사람을 얻기 위해서 여러 사람이, 율법 있는 사람에겐 있는 사람처럼,
율법 없는 사람에게 없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에게 어리석게, 지혜로운 사람에게 지혜롭게... 왜요?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그렇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삶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강하게 말합니다. 기독교 윤리의 핵심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를 식물로 망하게 하지 마라." 유명한 말씀입니다. 고전8:11~13
한 사람을 놓고 봅시다. 이게 누굽니까? 예수님께서 저분을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어요.
그 생명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렇게 소중한 사람을
내가 한 끼 음식 때문에 이 사람을 시험에 빠뜨려서 되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그 고귀한 형제를
하찮은 식물 문제로 망하게 하지 마라.
여러분,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생활 원칙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고전10:25
묻지 말고. 여러분, 묻지 말라는 말은 뭡니까?
알려고 하지 말라는 그 말이에요. 더 알려고 하지 말어. 그냥 먹어요.
감사함으로. 먼저는 나의 양심을 위해서.
몰라야 좋을 건 모르는 것이 좋거든요.
그 모든 과정을 알 필요가 없거든요. 그저 모르는 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이세요.
그게 내 양심을 위해서입니다.
내 양심이 강한 양심이 아니에요. 여러분, 가만히 보면 그런 일이 있잖아요.
안 들어야 될 말 들어놓으면, 그거 뒤에 두고두고 문제가 되거든요.
안 봐야 될 걸 보고 나면, 그거 지워버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어렵습니다.
차라리 안 듣는 게 좋아요.
어떤 분은 누구하고 얘기하다가 좀 좋지 않은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은
'그만합시다. 그 말 다 듣고 나면 제가 이거 소화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런고로 여기서 그만합시다. 그거 별로 좋은 얘기 아닌 것 같은데 그만합시다.'
이 얼마나 중요한 얘깁니까?
철학자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그 의심되는 얘기는 나에게 하지 마세요.
내가 가진 의심도 많으니까.' 여러분, 듣고 보는 것을 다 알려고 하는 것,
그거 별로 좋은 마음이 아니에요. 제한할 줄 알아야 돼요.
나의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의 양심을 위하여서 말입니다.
지금 식사를 하는데 이것 우상의 제물이라고 말해 버리면
나도 힘들지만 저 사람은 더 힘들어요.
깨름칙하게 생각이 되고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니까 묻지 마세요.
그 말은 묻지도 말고 알려고 하지도 말고 알리지도 마세요.
묻지 말고 먹어라. 양심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
(중략된 부분)
▲하버드 대학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의 「비범성의 발견」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우리 인간이 세상을 살아갈 때는
뭐니 뭐니 해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뭘 하든지 확고한 신념으로, 갈까 말까? 할 때는 가지 말고,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말고,
만날까 말까? 할 때는 만나지 말고,
어쨌든 확고하게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매사에 긍정적 자세를 가져라. 여러분, 의심하기로 들면 끝도 없어요.
여러분 옆에 있는 남편 믿을 수 있어요? 그 아내를 믿을 수 있어요?
잠자는 애를 믿을 수 있어요? 이거 의심하기로 들면 끝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긍정적 자세를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
세 번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념도 좋고, 긍정도 좋지만 고집을 부리면 안돼요.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이에요. 나도 다른 사람과 같은 사람이에요.
다만 시각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시차가 있을 뿐이요.
경험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든 사람이 동일하다,
나도 저와 같고, 저도 나와 같다. 그런 여유 그 마음으로 사는 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비범성의 발견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중략된 부분)
▲한 양로원에 있는 그 수용소 같은 양로원에 있는 노인들이 모여 가지고 좌담을 했는데
'후회되는 것, 당신들이 일생동안 살아오면서 후회되는 사건의 공통점'이 뭔가를
한번 연구해 봤대요. 그랬더니 아주 재밌는 얘기가 나왔어요.
첫째, 즉석을 좋아한 것이 후회스럽다.
즉석 불고기, 즉석 사진, 뭐든지 즉시즉시.
이제 생각해보니 그것이 잘못됐다는 겁니다.
또 하나는, 벌떡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
잠자리에서 일어난다면 벌떡 일어나지, 왜 뭉개고 뒤척였는지...
그 많은 세월 그것이 좋지 못했다.
나쁜 습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왜? '딱 한잔만 더' 그러고서는 망가졌어요.
'한번만 더' 하다가 일생이 망가졌어요. 과감하게 딱딱 끊었어야 하는데...
그리고 모두가 하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위한다고 하다가, 위한 것도 없고,
남을 위해서 산 것도 너무 없어요.
사랑할 수 있었는데, 베풀 수 있었는데, 얼마든지 좋은 일 할 수 있었는데..
세월이 다 갔고 물질도 내 손에서 다 떠났어요. 후회가 그것이에요.
남을 위해 살지 못한 것을 공통적으로 후회하고 있더랍니다.
▲토마스 그룸(Thomas H. Groome)라고 하는 분이 「Christian Religion Education」
이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인간의 자유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합리적 사유의 자유. 생각이 자유로워야 됩니다. 생각이 깨끗해야 합니다.
이거 걸리고 저거 걸리고 가책의식에 후회의식에 깨름칙한 것 안 됩니다.
생각이 맑아야 합니다.
둘째, 선택과 의지의 자유. 누구 때문도 아니고 누구 위해서도 아닙니다.
완전한 자기 선택이에요. 그리고 자기가 책임지는 거예요.
누구에게 책임 돌릴 것 없어요. 내 책임이에요.
세 번째가 중요합니다. 행동차원에서의 자유. 자유를 내 스스로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내 자유를 남을 위해 버립니다. 그럴 때 행복으로 되돌아옵니다.
여러분, 확실한 원칙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이웃에게 덕을 끼치기 위하여 그리고 내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어라...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