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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 시36:5-9 2013.07.07.
▲적들로부터도 존경 받은 롬멜 장군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롬멜 장군은 그의 적군이었던 영국군으로부터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영국의 수상 처칠까지도
"까마귀 무리 속에 단 한 명의 백로와 같은 진짜 군인"이라고 칭찬했을 정도로
훌륭한 명장이었습니다.
그렇게 적군으로부터도 존경을 받게 된 이유는
그가 단지 훌륭한 전술을 구사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롬멜은 최고사령관이면서도 부하들과 그야말로 생사고락을 같이 했으며,
심지어는 사막에서의 작전 도중에 보급이 떨어졌을 때에는
자기 부하인 독일군과 영국군 포로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똑같이 하루에
물 반 컵씩만 지급하게 하는 등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까지 보여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롬멜 장군이었으니 그가 독일 국민들로부터 받은 인기는
더욱 두말할 필요조차 없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그가 아프리카 전선에서 저 유명한 기갑부대를 이끌고 영국군을 연파하면서
파죽지세로 진격하고 있을 즈음, 독일 베를린에서는 히틀러가 무슨 큰 행사를 맞이하여
초대형 스타디움을 꽉 채운 청중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히틀러가 연설 도중에 "우리의 친애하는 롬멜 장군은..."이라고 말을 꺼내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 '롬멜'이라는 이름이 히틀러의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그 스타디움에 있던 모든 관중들이 순식간에 열광적인 박수를 치면서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히틀러는 자신의 연설을 한참 동안이나 중단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박수가 너무 오래 계속되는 바람에 곁에 있던 보좌관을 향하여
어색한 미소를 짓는 장면까지 텔레비전에 방송되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롬멜 장군의 부인은 그 장면이 너무나 감동스러워서
자기 남편에게 편지를 써 보내었는데, "오늘 총통께서 당신의 이름을 거명하시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독일 국민들이 몇 분 동안이나 열렬한 환호를 보내었답니다.
저는 당신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워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말 세상의 그 어떤 아내라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롬멜은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 사랑스러운 남편이기도 했지만,
자기 남편이 독일의 모든 국민들로부터도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영웅일 뿐 아니라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적국인 영국군으로부터도
두려움이 섞인 칭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남편에 대한 그녀의 자랑스러움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자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딸들은 평소에 집에서 늘 자기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겠지만,
그 아버지가 회사의 사장으로서 모든 부하 직원들로부터도 지극히 존경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에, 그 아버지가 학교의 교장으로서 모든 학생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에 그 아버지가 더욱 자랑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신자들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서도 그 원칙은 마찬가지로 적용되는데,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가 바로 그런 감동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선 5절을 보시면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라고 했습니다.
'인자'와 '성실'은 물론 하나님의 속성인데,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주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용합니다.
즉 하나님은 당신의 택자들에게 인자를 베풀어 주시고 성실히 대해 주신다는 의미로
대부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하늘'이라는 창조물에도 영향을 미치며,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실' 역시 '공중'이라는 공간에도 충만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36:6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판단)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이어지는 6절에 나오는 "주의 의"나 "주의 판단" 역시 보통 때에는 주로 사람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속성이지만,
여기서는 그것을 '산들과 같고, 바다와 일반'이라고 자연계에 비유하며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직접적인 문맥의 의미는 '주의 의와 판단'이
산들과 바다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은 아니고
그것이 '태산처럼 불변하며' '바다처럼 심오하다'는 의미이지만,
어쨌든 하나님의 속성을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자연과의 관계를 통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6절 하반절은 이런 문맥을 더욱 분명히 하기를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라고,
즉 하나님은 '비단 사람뿐' 아니라 '짐승 역시' 돌보시고 주장하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즉 이 5절과 6절의 말씀은 하나님을 그저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보지 않고
'사람 아닌 다른 모든 자연계'에 대해서도 그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나타내시는
온 우주의 절대주권자로서 인식하면서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교자들 가운데 유독 '사랑의 하나님'만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반만 아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우리 사람들에 대해서만 하나님이 되시는 분이라고 생각할 때에
그처럼 '사랑의 하나님' 즉 '사람을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말과 개념을
자주 쓰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만 대하는 것은
자기 남편이나 자기 아버지를 그저 가족 관계 안에서만 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즉 자기 남편이나 아버지의 대외적인 관계나 능력이나 위치는 전혀 모르고
그저 아내인 자기만을 사랑해 주는 남편, 자녀인 자기에게만 좋은 것을
다 베풀어 주시는 고마운 아버지로만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 아버지'를 제대로 경외하는 자녀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을 그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나 개인뿐 아니라
전 인류, 사람뿐 아니라 전 생명계, 아니 이 지상뿐 아니라
온 우주에까지 충만하신 실로 위대하신 천부이심을 깨닫고 자랑스러워하면서
찬양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그 다음으로 나타나는 단계가
그처럼 모든 피조세계의 절대주권자 되신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 한 사람을
특별히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을 앞에 더더욱 뜨겁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어지는 7절 이하의 본문에서 이 시편 기자가
더욱 감격하고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롬멜 장군은 나중에 히틀러 암살 시도에 가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거사가 사전에 발각되어 롬멜 역시 게쉬타포에 의하여 체포를 당하고 마는데,
히틀러는 그에게 두 가지 선택을 주었습니다.
하나는 총통 암살을 모의한 역적으로 공개적인 국민 재판을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롬멜 스스로 자결하는 것인데
그렇게 한다면 국가 영웅으로서 국장을 치러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롬멜 장군은 처음에는 국민 재판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국장 따위의 영예는 조금도 필요 없고 오로지 국민 재판을 통해서
히틀러의 죄상을 낱낱이 폭로하겠다는 각오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히틀러는 만약 롬멜이 국민 재판을 받게 되면
그의 가족들 역시 처형을 받게 될 것이지만, 스스로 자결하면
가족의 생명만은 보장해 주겠다는 조건을 붙였고, 결국 롬멜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롬멜 장군의 부인은 자기 남편이 자기와 자녀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결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물을 머금고 남편의 국장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롬멜 장군은 전 독일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국가 영웅이기도 했지만,
그 롬멜이 자기 목숨까지 대신 바치면서 베풀어 준 최고의 사랑은
결국 그의 아내와 자녀들만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7절 이하의 본문은 전 우주에 충만한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 역시
궁극적으로는 바로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집중되고 있음을 찬양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36: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운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여기서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여' '그의 인자하심'을 담뿍 받아 누리고 있는 대상은
결코 '모든 인생'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어지는 8절에 보면
"저희가 주의 집의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의 집' 즉 하나님의 성전에 모이는 하나님의 백성들만
그 하늘 아버지의 풍족하신 '인자'와 '성실'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야말로 이 지상에서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최고로 풍성하게 넘치고
있는 곳이며 언제든지 찾아올 때마다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것입니다.
▲8절 하반절에 "복락의 강수"라고 번역되어 있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에덴의 강'이라는 뜻입니다.
즉 교회는 생명의 주권자이시며 모든 행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이 넘치는
강물처럼 항상 흐르고 있는 곳이며, 성도야말로 그런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온갖 "복락"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실로 특권적인 백성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하나님을 성부로 모시고 있는 그 자녀들은
이 하늘 아버지가 그 얼마나 자랑스럽고도 고맙겠습니까?
우리는 자기 아버지가 가정에서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서도 지극히 훌륭한 인물임을 알게 될 때
그 아버지를 더 존경하게 되는 자녀처럼, 우리 하나님은 사람에게뿐 아니라
하늘과 창공과 산들과 바다와 땅의 짐승들에게까지
당신의 '인자와 성실과 의와 판단'을 베풀고 계시는 창조주이심을 깨닫게 됨으로써
그 하나님을 더욱 높이며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또한 저와 여러분은 그처럼 국가적,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을
자신의 아버지로 모시고 그 아버지께로부터 가장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된 자녀가
더욱 자기 아버지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천지만물과 모든 생명체를 주장하시는 절대주권자께서 실로 벌레만도 못한 나를
당신의 자녀로 선택해 주시고 그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최고로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 앞에서
그야말로 '만 입이 내게 있어도 다 감사드릴 길이 없을 만큼'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밤의 맥추감사찬양예배를 통하여 이처럼 당신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전 피조세계에 계시하시는 가운데
특별히 저와 여러분 같은 택자들에게 그 '무한하신 사랑과 변함없으신 미쁘심'을
이 경향교회라는 '주의 집' 안에서 늘 풍족하게 누리게 해 주시는 은혜를 다시금 기억하면서,
진정 뜨거운 감사와 즐거운 찬송을 함께 올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