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서론에서 결론을 보다

LNCK 2025. 1. 21. 11:33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하나님의 나라

2025년 1월 19일 "서론에서 결론을 보다(마4:17~22)" Youtube 

◈서론에서 결론을 보다       마4:17~22           2025.01.19.
  
전에 부산에서 목회할 때, 포항의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집회가 새벽과 저녁에만 있으니까 
'포항에도 구경 거리가 많이 있으니까, 낮에는 구경 좀 다니실래요?' 
이렇게 물어보셨는데, 제가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성도님들은 '제가 경건에서 거절했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건 오해고요. 
제가, 그 목사님 가자는 데는 가기 싫고, 제가 따로 가고 싶은 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거절하고는 몰래 혼자 갔습니다. 
거기가 어디냐 하면, 포항에서 유명한 산이 내연산 인데, 
그때 제가 등산을 많이 다녔던 때라서, 그 산에 가보고 싶었는데 

등산을 좀 다녔다는 게 알량한 교만이 돼가지고, 등산로를 쭉 따라서 갔어야 되는데, 
아래서 떡 보니까, 산봉우리가 보이고 '아 저기가 정상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시간을 단축 하겠다고, 제가 산길을 제 마음대로 한참 갔거든요. 

가다 보니까 이게 웬 일입니까? 날개가 있어야 갈 수 있는 곳에 도착했어요. 
낭떠러지가 나오고, 길이 막힌 곳에 도착했어요. 이 둔한 몸으로 날 수는 없고, 
한 세 시간 가까이 거꾸로 돌아서 내려왔는데, 

아, 그날 에너지도 많이 소비하고, 시간도 많이 날라가 버리고, 
그리고는 문제는 저녁 집회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서둘러 급하게 내려왔는지, 까딱 했으면 저녁집회에 늦을 뻔 했어요.
몸은 몸대로 아주 지쳤고요. 무엇보다 마음이 조급하고 초조했죠.

그 다음부터는 굳게 결심했어요. '어디 설교하러 갔을 때, 그곳에 목사님이 
구경해 준다고 유혹 해도, 절대 아무데도 가지 말고, 그냥 집회에 집중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여러분 여러 시간 걸려 산에 올라갔다가, (정상도 못 밟고) 여러 시간을 내려오니까 
이렇게 큰 낭비가 어디 있습니까? 헛수고 하는 거죠. 

근데 인생살이에도 헛수고가 있고, 예수님을 믿는 데도 헛수고가 있어요. 
우리 교계를 위해서도, 또 교회를 위해서도 수십 년 많이 일했다고 하는 모 장로님께서 
세상 떠나실 때 했다는 말을 듣고 참 기가 막혔는데, 전해지는 대로 얘기하면, 
그 분이 마지막에 하시는 말씀이 '내가 평생 믿어 보니까 하나님은 없더라'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그 얘기가 제게 참 큰 충격이 됐어요. 일평생 헛수고 한 거잖아요. 헛수고 몇십 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여러분 인생에도 헛 수고가 없기를 바라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헛수고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복음서 말씀을 읽어보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헛수고를 했더라고요.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나 헛수고를 했냐 하면, 한 삼년 헛수고를 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기간을, 보통 삼년 이라고 말하는데, 
그 삼년이 어떻게 계산된 것인지 혹시 아시나요? 그거를 계산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요한복음을 참조하는 겁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유월절 절기가 4번 나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던 초기 때부터 네 번 나오는데, 
2장, 5장, 6장, 그리고 십자가 지시러 최후로 유월절 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죠.
이때 종려주일에 입성을 하시고, 최후의 만찬을 가지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셨죠.
 
그러니까 유월절이 요한보음에 4번 나온다는 것은, 유월절이 1년에 한 번 있는 거니까 
결국 예수님은 유월절에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셔서, 유월절에서 끝 마치신 게 됩니다.
그러면 만 3년이 되는 겁니다. 

물론 5장에 나오는 그 절기는 '유월절' 이라고 되어 있지는 않고,  *5:1
'유대인의 명절'이라고 나오지만, 학자들은 앞 뒤 전후 좌우를 다 따져가지고 
그거 역시 유월절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기간을, 삼년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여러분, 제자가 되는 게,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에요. 
왜냐면 복음서를 읽어보면, 자원하는 사람이 제자가 된 경우는 한 명도 없습니다. 
다 예수님께서 부르셔서 제자가 됐고, 제자로 따라나설 때 
자기의 아주 소중한 것을 다 포기하고, 내려놓고 따른 겁니다. 

오늘 본문 마4:17~22에도 보면,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 가시는데 
거기서 제자들을 부르잖아요. 근데 이들이 소중한 걸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어요. 

우선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를 보면,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4:20
또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4:22

그러니까 이분들이 예수님을 따라 나설 때, 쉽게 따라 나선 게 아닙니다. 
어부에게 있어서 그물이나 배라고 하는 것은 필수적이고, 정말 소중한 거죠. 
그런데 이걸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거는 
'우리가 저 분께 모든 걸 걸겠다. 다시는 직업으로 되돌아 오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배도 그물도 버려두고 떠난 겁니다. 

심지어 그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도 작별하고 떠났어요. 
이제 가정의 대소사에 매달려 살지 않고, 예수님에게 모든 걸 걸고 살겠다... 
그래서 가정 마저 내려놓고 떠난 겁니다. 

이렇게 어렵게 떠난 것은, 여기 나와 있는 이분들 만은 아니겠죠. 
예를 들면, 레위(마태) 라는 제자도 있잖아요. 레위는 직업이 세리입니다. 
여러분, 누가 세리가 되고 싶겠어요? 세리는 사람 취급을 안 하고 짐승 취급을 했는데, 
그런 모욕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세리가 됐을 때는, 돈에다 자기 인생의 모든 걸 걸은 거죠. 

 

'욕할 테면 한번 욕해 봐라. 아무리 나를 비난해도 나는 돈을 모르겠다' 
이런 일념 하나를 가지고 세리가 된 건데, 레위도 그걸 다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랐으니까, 
물질에 대한 모든 걸 다 포기한 겁니다. 

여러분 이런 걸 포기하는 게 쉽겠어요? 결코 쉬운 게 아니죠. 
그래서 이분들은 나름대로 굉장한 결단을 하고 예수님을 따랐을 뿐만 아니라, 
그 삼년 동안 정말 충성했습니다. 

예수님 가시는 곳에 다 따라가고, 예수님 계시는 곳에 함께 있었고, 
그리고 예수님을 순종해서 받들었어요. 정말 수고를 많이 했어요. 애를 많이 썼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그렇게 따라다닌지 삼년이 지났을 때 
'그게 헛수고가 됐다'는 거예요. 헛수고! 손에 남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왜 그러냐 하면, 그들이 갈릴리의 어부이지 않았습니까? 
근데 3년 후에 또 다시 갈릴리의 어부로 되돌아 갔기 때문에, 
3년 전으로 돌아갔어요. 그러니 그게 헛수고죠. 요21:2~3

여러분 삼 년 전 어부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 
삼 년이 헛수고 라는 것이고, 
돌아가서 그물질을 계속 해봤자, 걸려 올라오는 거 한 마리도 없으니,  요21장
헛수고의 연속이죠.  

제자들 얘기 말고, 우리 얘기를 좀 해 봅시다.
우리가 한 번 뿐인 인생을 살면서 신앙생활 할 때, 
이런 식으로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면서, 우리 인생을 다 소진한다면, 
이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거죠. 서두에 언급한 장로님 처럼요.

◑그럼 이 제자들이, 처음에 배도 그물도, 심지어 친아버지까지도 작별을 고하면서 
이렇게 의욕적으로 출발해 가지고 삼 년이나 수고를 했는데, 
도대체 왜 헛수고가 된 겁니까? 그 이유가 뭘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결론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그 핵심 은혜의 
그 결론을 잘 몰랐어요.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는데도 
'도대체 뭘 말하는 거지?' 이거 모른다면 헛수고 한 거죠. 

그럼 여러분 결론은 언제 알 수 있나요? 
맨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어야, 책 내용을 알 수 있는 그런 경우도 있지만, 

책을 많이 읽고 학문이 있는 사람은, 통찰력이 있고 혜안이 있어서 
벌써 그 도입 부분에 서론만 읽어도, '아 이 저자는 이 책에서 뭘 말하려고 하는구나' 하고
가닥을 잡을 수 있거든요. 서론 속에 결론이 들어 있는 겁니다. 
그 서론만 읽어도 결론을 포착할 수 있는 사람은, 눈이 뜨인 사람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천국의 서론을 말씀 했는데, 제자들은 그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메시아로서의 서론이 뭡니까? 
그게 오늘 본문에 포함되어 있는 마4:17절 이죠. 

마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그동안 우리가 마태복음을 쭉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이끌려 시험 받으시고, 
메시아로서의 모든 준비가 다 끝난 다음에, 처음으로 세상에 하신 말씀, 
말하자면 '메시아 사역의 첫 줄' 이에요. 서론 중의 서론! 

근데 이거를 잘 보면, 그 속에 예수님의 결론이 이미 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 결론이 뭡니까? 그 결론이 '천국'이에요. 

예수님은 천국 메시아로 오셨고, 천국 복음을 전해주러 오신 것이에요. 
그러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만 딱 봐도, 
'아 이 분은 이런 분이시구나' 하는 걸 알아 차렸어야 돼요. 

그게 4:17절이고,  제자를 부르시는 얘기는 4:18절부터 나오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나서기 전에 그 결론을 미리 알았더라면 
'아니 난 천국에 관심 없는데...' 그러면 따라나서지 않는 게, 차라리 더 나았을 지도 모르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배도, 그물도 버리고, 심지어 아버지와도 작별을 고하면서 
따라 나섰을 때는, '그 분이 말씀하시는 천국을 나도 꼭 얻고 싶습니다...' 
거기에 동의했기 때문에, 길을 나선 것 아닐까요? 그래야 헛수고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제자들은 그거를 깨닫지 못했어요. 혹은 '천국'에 대한 개념이 잘못 됐던지요...

여러분 앞으로 마태복음부터 요한복음까지, 예수님의 그 복음서 이야기를 읽으실 때, 
주의 깊게 읽어 보시면, 모든 게 '천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천국이 어떤 나라인지, 천국의 생명, 천국의 평화가 어떤 것인지를' 
계속 말씀했어요. 

지난 주일에 살펴본 것처럼 '그 천국에 호적하기 위한 방법이 뭔지도' 말씀 하셨는데 
그 방법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회개'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회개' 하는 거, 그게 천국 백성으로 등록하는 겁니다. 

그러면 천국 백성이 된 다음에, 그 천국 백성으로 이 땅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원리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그 원리가, 성경 속에 들어 있는데, 
이 성경 말씀은 천국의 헌법과 같은 것이다... 하는 걸 말씀드렸죠. 

그리고 예수님은, 이 복음서 속에서 
천국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이 땅의 나라가 그들을 얼마나 미워할 것인지, 얼마나 공격할 것인지, 
때로는 의외로 그들을 달콤하게 유혹할 것인지... 
이런 걸 다 말씀하면서, 유혹에 빠지지 않는 방법, 
그 환란과 핍박을 이기는 방법에 관해서도 세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을 활짝 열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천국의 생명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이에요. 
주님의 모든 사역과, 말씀과, 주님의 모든 의도하신 것이 (공생애) 첫 마디에 다 들어 있어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에 다 들어 있는 거예요.   

그럼 이 제자들은, 그 첫 줄, 첫 마디를 알고 있으니까 
그 말씀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거라면, 
그거를 붙들었어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천국 가는 길로 들어섰다. 저 주님은 우리에게 천국을 주신다.' 
이걸 꽉 붙들었어야, 낭비가 없고 헛 수고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천국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그들 생각은 딴 데 가 있는 거예요. 딴 데 어디가 있었을까요? 

천국이 아니라 땅의 나라, 땅의 나라의 부귀영화, 땅의 나라의 욕망에 
그들의 생각이 다 가 있으니까, 요즘 말로 '꽂혀 있었으니까'
예수님을 따라다녀봤자 헛수고가 될 건 뻔한 일 아닙니까? 
그래서 3년 따름이 헛수고가 된 것이에요. (물론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했죠)

여러분,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긴 따르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천국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예수님을 통해서 땅의 것을 얻으려고 했었다는 증거가 여러 군데 있어요. 

그 대표적인 예가, 아래 구절입니다.
막10:35~37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왕이 되시거든, 우리 두 형제를 모른 척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형님은 이쪽에, 나는 저쪽에... 아셨죠?' 이렇게 예수님께 자리 청탁을 한 거죠.

병행구절인 마태복음을 참고해 보면, 이 두 형제는 어머니까지 동원한 걸로 돼 있어요.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와 가지고,    *마20:20~28
예수님 앞에 절하면서 '예수님, 우리 두 아들, 오른쪽 왼쪽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다른 열 제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그 앞에서 
그렇게 요청(자리 청탁)할 수 있는 담대함이 있으세요? 
이건 담대함이 아니라 얼굴이 두꺼운 거죠. 

저는 이렇게 까지는 못 합니다. 저는 남들이 다 보는 데서는, 부끄러워서 이런 건 말 못 해요.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저는 이렇게 합니다. 
'예수님, 살짝 저랑 어디 조용한 데로 가실까요?'
그래서 남들 안 보는데 가서 청탁할 거예요. 남들이 보고 있으면 민망하니까요... 

그런데 이 두 제자는, 다른 제자들이 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고 있는 데서, 
이렇게 청탁하니까 얼마나 이게 얼굴이 두껍습니까?

그러면 문제는, 나머지 열 명의 제자들이 수긍을 하고,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막10: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여러분, 열 제자가 이 두 제자에게 왜 화를 냈을까요? 
자기들도 똑같은 마음이었던 거죠. 자기들도 그 날에, 
예수님의 좌 우편을 차지하고 싶었던 마음이 다 있었던 거죠. 
근데 야고보아 요한이 약싹빠르게 선수를 치니까... 그들에게 화를 냈던 거죠.
사람은 다 똑같아요.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의 영광을 추구했다는 게 
또 어디에 나타나느냐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러,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거운데... 뒤에서 따라오는 제자들은 자기들끼리 다투는 거예요. 
'우리 중에 누가 제일 크냐?'  눅22:24
참 기가 차잖아요. 그게 제자들이었어요. 

예수님을 통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얻어 보려고... 
그러니 3년 기간 동안이나, 예수님과 동상이몽 했던 거예요. 

제자들의 몸은 가까이 있었지만, 메시아 사역이 절정에 달할 수록, 
십자가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들은 점점 멀어지는 거니까, 
결정적 순간이 왔을 때, 그 동안 그들이 헛수고 했다는 것이 드러난 거죠.

결정적 순간이 언제 였습니까? 
왕이 되실 줄 알았던 예수님이, 왕이 되시기는 커녕 
겟세마네 동산에서 검과 몽치를 든 그 사람들한테 
예수님이 무자비하게 끌려나가시는 걸 보는 순간 
'아휴 헛수고네.. 다 틀렸네.. 삼 년 동안 따라다닌 게 그냥 물거품이 됐네..' 

 

그러면서 다 도망가고 흩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3년간 헛수고 한 거예요. 

여러분! 천국을 말씀하시는 기독교 복음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땅의 영광을 추구했던 이 앞뒤가 안 맞는 그런 실수는, 
2천 년 교회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선 로마제국이 '천국'이라고 말하던 사람들도 있었죠. 
대표적인 사람으로 '궁중 신학자' 라고 사람들이 비아냥 거리면서 불렀던 
유세비우스 같은 교회 역사가가 있었죠. AD 4세기 사람인데
그때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많이 핍박 했잖아요. 

그런데 AD 312년에 콘스탄틴 대제가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이제부터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를 핍박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기독교 신앙을 가져라!' 하고 자유를 선언했어요. 
(나중에 AD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는, 기독교가 국교로 선포됩니다)

그러니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기쁘고 또 감탄했겠습니까? 
막 기뻐 뛰면서 '저 콘스탄틴 대제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다' 
그러면서 이 유세비우스 같은 사람은 '이 로마 제국이야말로 천년 왕국과 같다'고 얘기했어요.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가 막 곳곳에 예배당을 세우지 않나? 
황제가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예배에 오질 않나? 
'야 이게 바로 천국이지...' 

그럼 여러분, 그런 로마 제국이 천국이 맞아요? 
아닙니다. 얼마나 부패하고 음란하고 타락했는지... 
나중에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게르만 민족에 의해서, 서쪽 로마는 완전히 망해 버렸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한 게 오늘날 터키의 이스탄불, 거기가 옛날엔 콘스탄티노플 이라고 
불렀는데, 거기다가 수도를 정하고, AD 330
비잔틴 제국, 동로마 제국으로 한 1천 년 버텼지만,
마지막에는 이슬람 사람들에 의해서 그마저도 완전히 무너졌잖아요. *1453
그때부터 지금까지 터키가 이슬람 국가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또 어떤 사람은 '교회가 천국' 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교황이 떡하니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자처하며 있고, 
그 밑에 뭐 추기경, 주교 이렇게 해가지고 쭉 내려가는 이 교회 조직, 

또 눈에 보이는 화려한 바실리카, 성당을 짓고 
화려한 의복을 입은 성직자들이 있는 그런 교회가 천국이겠거니... 
그래서 '교회 안에 있으면 천국 안에 있는 거다' 라고까지 생각했어요. 

그럼 여러분, 그 교회가 천국이 맞나요? 아닙니다. 여러분 교회는 천국이 아닙니다. 
나중에 그 교회가 얼마나 타락했느냐 하면,
막 교황이 사생아를 낳고, 그 사생아가 또 교황이 되기도 하고, 뭐 얼마나 타락했는지... 

마지막에는 이거 돈 내고 사면 천국 간다고 가르치는 면제부도 팔고... 
그래서 종교 개혁이 일어난 거 아니에요? 교회는 천국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존경하는 4~5세기를 살았던 아우구스티누스, 즉 어거스틴은, 
그의 명작 중의 명작인 <신의 도성, De Civitate Dei 데 치비타테 데이>책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땅에 존재하는 그 어떤 개인도, 그 어떤 교회 공동체도, 그 어떤 국가도 천국이 아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천국을 사모하면서 
천국을 향하여, 천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순례자요, '길 위에, 도상의 존재'이지, 
이 땅에 존재하는 것 중에 그 어떤 것도 천국은 아니다" 
그래서 천국을 사모하고, 천국을 향해 나아갈 뿐이라고 이야기한 거예요. 

예수님은 천국을 목적으로 말씀하시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서 천국을 향하여 나가야 되는 거죠. 

저는 오늘 성도님 한 분 한 분이, 평생 교회 와서 예배 드리고 교회 봉사로 섬기고... 
이렇게 하다가 '그게 평생 헛 수고'가 되는 분이, 한 분도 없길 바랍니다.  *주제

'처음부터 나는 천국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나는 주님이 천국을 주실 줄 믿었습니다. 
내가 예배당에 와서 예배하고 섬기는 건, 내 마음의 궁극적 소망을 천국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이렇게 믿는 사람은, 절대로 헛수고 하지 않아요. 
우리는 결국은 천국에 도착하게 될 거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이 땅에서 뭐 좀 누려 보려고 그랬는데 어, 잘 안 되네?' 
그게 이제 헛수고 인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헛수고 되지 않는 건강한 믿음을 가지려면, 
'내가 무엇에 마음을 두고 있나? 썩어질 것들에 마음 두고 있는지, 
아니면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내 기도가 도대체 어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돼요.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셨잖아요. 마6:33
우리 모두가 다, 우리의 신앙의 초점을 
'영원한 생명, 또 영원한 나라인 천국'에 두고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절대 실망 하지도 않고, 헛수고 하지도 않아요. 

근데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께 이 세상의 '땅의 떡'을 구했던 사람들은 다 실망하고 떠나갔어요. 
어느 날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나니까, 
이 사람들이 '오 예수님은 떡을 주시는 분이시다!'
이래가지고 그 다음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어요. 

 

'떡을 안 주시나?' 이렇게 기대하면서 왔는데, 그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안타까워 하셨어요. 
'떡은 먹고 몇 시간 지나면 또 배가 고파지는데, 왜 나한테 와서 그런 떡만 구하느냐?
내게 영원한 생명의 떡이 네게 있는데, 그걸 달라고는 하지 않을까?'
그걸 안타까워 하셨어요. 

요6:26~2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영원한 세계를 보여주는 그런 영생의 말씀을 너희들이 구해야 되는데 
그런 건 관심이 없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 또 나한테 찾아 왔구나' 
이런 안타까움을 얘기하시는 거예요. 

이번에는 아무리 기다려도, 예수님이 떡을 안 주시거든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저 예수님을 따라다녀 봤자 아무 소용 없네.. 우리가 원하는 걸 안 주네'
그러면서 다 돌아가 버렸어요. 

그 많던 사람들이 다 흩어져 돌아간 다음에, 조금 남은 그들에게 물어보십니다. 
'너희도 갈 거냐?'

요6:67~69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이 대답만 보면, 참 베드로의 대답이 훌륭하지요. 
'영생의 말씀...' 이렇게 얘기했으니까 참 귀한데, 제자들의 생각은 그랬는데, 
그들 마음의 욕망은, 나중에 보면, 아까 살펴본 것처럼, 땅의 것을 추구하고 있었어요. 

바로 이게 오늘날 우리 모습과 다르지 않아요. 
우리도 입만 열면 '주님의 나라, 영원한 생명...' 운운하지만 
세상 현실 속에 들어가면, 땅의 것에 눈이 멀어서 사는 오늘 우리 모습을 
제자들이 잘 보여주는 것 같잖아요. 

결국 그러다가 이들은 예수님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하고 
오히려 위험에 처할 것 같으니까, 다 예수님을 버리고 흩어진 거예요. 
'고기나 잡으러 가야 되겠다' 하면서, 그 삼년 전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어요.
그동안의 모든 수고가 헛 수고가 되고 만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완전 헛수고는 아니었죠)

여러분, 우리가 땅의 것에 너무 마음을 두지 맙시다. 
이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우리가 원하는 걸 얻을 때도 있어요. 

돈도 좀 벌기도 하고, 어떤 자리에 앉기도 하고, 자식이 잘 되기도 하고... 
그래서 '와 내가 얻고 싶은 거 다 얻었어.. 참 기분이 좋아!' 그럴 때가 있어요. 
저도 우리 성도님들이 그런 것도 누리시기를 원합니다. 이 땅에서도 잘 되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조심해야 될 것은, 그런다고 해서 그게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시면 안 된다는 거예요. 
좀 지나면 시들해져요. 그렇죠. 

그리고 또 내가 그렇게 원하는 게 안 됐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도 없어요. 
그것 또한 금방 지나가는 거니까요... 

진짜 우리 마음을 둬야 될 곳은 영원한 천국입니다. 
거기에다 우리의 마음을 두고 살아가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잠깐 얻는 그거에 마음을 빼앗겨서 교만해 지거나, 반대로 그것 때문에 절망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 답지 못한 것이다... 하는 걸 알아야 됩니다. 현실만 쳐다 본 결과이니까요.

여러분, 그 연장선상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천국이 없고, 대한민국이 우리의 전부라면, 우린 정말 밑바닥 절망에 떨어질 거예요. 

전 세계가 TV로 생중계 하는 가운데, 대통령을 구속시키고,
잘 잘못은 또 따져봐야 되겠지만, '도대체 이렇게까지 국가 위신이 추락할 수가 있나? 
조금 더 품격 있게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아마 많은 국민들이 하실 거예요. 
그런 거 보면, 진짜 우린 절망하게 되죠. 

 

'왜 우리는 남북이 이렇게 오랫동안 나눠 있어야 되고, 
왜 이렇게 핵을 만들며 우리를 위협을 하는 북한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돼지?
왜 우리는 정치, 사회는 잘 못하지?' 그런 게 우리 마음에 지금 다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그 속에서도 우리가 소망을 가지는 것은, 여기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지상의 나라 때문에 절망하지 마시고, 그 시간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궁극적 소망을,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두시기 바랍니다. 
크게 기뻐할 일도, 크게 절망할 일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오늘의 슬픔과 오늘의 무거운 짐을 감당 하다 보면 
하나님은 또 이 땅의 역사를 바꿔주시기도 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땅의 역사가, 내가 바라는 대로 백 프로 된다고, 그래도, 
또 거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것도 영원한 게 아니니까요. 
세상은 이렇게 되기도 하고, 저렇게 되기도 하고... 그런 거예요. 
김운성 목사가 안경을 벗기도 하고, 쓰기도 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이게 영원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 영원한 소망은 주님 뿐임을, 우리가 기억해야만 될 것입니다. 
헛수고 하는 사람은, 끝에 가서 이렇게 말해요. 
'아이고 예수님 따라다니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괜히 따라왔어...' 이건 이제 헛수고 하는 사람의 말이에요. 

그러나 헛수고 하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말해요. 
'주님, 저는 처음부터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천국 백성이 될 줄 알았어요. 
주님은 정말 나를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해주셔서 할렐루야 찬양합니다.' 

이 사람은 헛수고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 성도들이 다 그렇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천국이 영원하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잖아요. 

한경직 목사님 같이 이 땅에 봉사 많이 하시고, 수고 많이 한 분도, 다 천국으로 하셨잖아요.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부모 세대 소중한 분들이 
다 천국으로 가는 걸 보면, '아 천국만이 궁극적 목적지구나!' 

'아~ 그래서 주님이 천국을 공생애 서두에서 말씀하신거구나!' 
이걸 우리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올해가 영락교회 창립 80주년이잖아요. 
그 어느 해보다 성도님들께서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도 많이 하시고, 
교회를 더 많이 사랑 하자'고 얘기하실 거예요. 

그러나 그때 조심해야 될 것은, 우리가 영락교회를 사랑하고, 더 충성하고 헌신하지만, 
그러나 영락교회는 천국이 아니에요. 영락교회가 천국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영락교회는 천국이 아니에요. 

우리가 영락교회에서 예수님을 믿으면서, 은혜가 충만하고, 어떤 때 행복하고, 
'야 정말 여기가 천국 같아' 라고 말할 때가 있어요. 감사한 순간이죠. 

그러나 동시에 또 영락교회 안에는, 우리가 다 죄인이고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가 풍기는 악취도 동시에 존재하는 거예요. 

그래서 영락교회는 천국이 아니고, 영락교회는 지금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 도중에 있어요. 
우리는 천국을 사모하는 공동체이지, 이 자체가 온전한 천국은 아니에요. 

그래도 우리가 영락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고 기도해야 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게 뭐냐 하면, 영락교회를 통해서 천국을 모르는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이 천국의 복음을 더 잘 선포하고 알려주기 위해서, 영락교회가 사명을 잘 감당해야 되니까, 
우리가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고 헌신하는 것이예요. 

여러분, 이거 우리가 혼돈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좀 보기가 안 됐지만, 그 교회가 막 크게 부흥하고 성장하면,
마치 그 교회가 천국인 것 같이 얘기해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천국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이에요. 
우리의 궁극적 목적지를 명확히 알고, 천국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게 주님이 말씀하신 복음의 서론이자, 결론인 것을 기억하기 간절히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이 땅에 살면서 
때로는 성취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기뻐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성취하지 못해 절망, 낙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땅의 나라'에 속한 일시적인 것임을 알게 하시고, 
궁극의 소망은 천국에 있음을 알고, 
주님, 인도하시는 대로 천국 백성으로 천국을 향하여 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80년을 맞은 영락교회도 그렇게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우리 성도들이 마음 아픈 대한민국의 현실을 위해 기도할 때도 
그 속에서 자유와 소망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