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 멘티 조각글 모음 1 살전2:7 ☞ <멘토>
*'멘티 mentee ; 지도 또는 조언을 받는 사람
*여러 설교에서 언급된 ‘멘토, 멘티’ 관련글을 한 자리에 모아봅니다.
▲1 ‘사랑의 권위’로 멘토링 해 주셨던 늙은 사모님
장모님은, 퇴직하여 미국 휴스턴에 건너가서, 거기 있는 자녀들과 사셨는데,
휴스턴에서도, 교인들 중에 부부사이가 나쁜 부부들을 계속 돌보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들이었지만,
부부싸움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부간에 분쟁이 생기면, 꼭 장모께 찾아와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장모님은 항상 “사랑으로써” 모두를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저희 쩐리탕 眞理堂 교회의 젊은 부부도 문제가 생길 때가 있는데,
마침 그 부부가 미국으로 유학/출장을 갔는데,
제가 주선해서, 그 남편이 1주일간 장모님 댁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 남편은, 1주일간 제 장모로부터, 멘토링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장모님이 사람들을 섬길 수 있었던 이유는,
몸에 밴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정말 본문의 사도바울이, 사도적 사랑으로,
즉 아비가 자녀를 사랑하듯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사랑한 것처럼,
저희 장모님도,
사도적 사랑으로,
부모가 자녀를 돌보듯이, 살전2:7, 11
모두를 뜨겁게 사랑하며, 섬기며, 기도해 주었기 때문에,
모두가 그 ‘사랑의 권위’ 앞에서 굴복해서, 존경을 표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실제적인 도움을 입었습니다.
모두가 그 분 곁으로 다가가고 싶어 했습니다.
모두가 그 분의 사랑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이런 사도적 사랑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영적인 부모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자녀들을 위해 아낌 없이 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챙기는’ 삶을 사셨더라면, 결코 그런 사랑을 베풀지 못했을 것입니다.
살전2:7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2: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이 너무 커서,
결코 그것을 혼자 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랑을, 반드시 퍼서, 나누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멘토를 잘 만나야 나의 데스티니를 이룬다
또 어떤 부모님들은 정말 훌륭한 부모님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은 축복의 통로로 주신 거고요.
하여간 어떤 만남이든지간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최고의 것을 주시기 위해서 마련하신 것이지,
그래서 그 (부모와의, 자녀와의) 만남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이 닫히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는 거예요.
영적인 영역에서도 똑같이
①영적 부모와의 만남
②영적 동료들과의 만남
③영적 자녀와의 만남이 있어요.
영적인 부모, 영적인 아비들이 있다는 거예요.
영적 지도자를 잘 만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앞서 살펴봤던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어떤 영적인 멘토를 만나느냐에 따라 다 결정됐잖아요.
다윗이 사무엘을 만나고, 엘리사가 엘리야를 만나고,
디모데가 바울을 만나는 등
어떤 영적인 지도자, 어떤 영적인 멘토를 만나느냐에 따라,
나의 데스티니를 이루는 일은 크게 좌우됩니다.
믿음의 부모는, 자녀들이 아직 2살, 3살 아직 어리지만
‘자녀가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을 잘 만나도록,
자녀가 학교에서 훌륭한 친구들을 잘 만나도록’ 일찍부터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훌륭한 선지자가 되는데 있어서는
부모 뿐만 아니라, 훌륭한 교사, 훌륭한 멘토가 반드시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그 부모에 그 자녀, 그 스승에 그 제자이지,
아무런 부모의 영향도 없고, 스승의 지도도 없고, 친구의 선한 영향력도 없는데
그가 커서 걸출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이런 경우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3 1972년, 내가 목사 안수를 받았던 바로 그 날 밤이었다. *홍정길 목사
목사가 되었다는 그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뒤척이며 잠을 잘 못 이루었다.
밤 2시 즈음, 뒤척거리는 소리를 들으시고 아버님이 내 방 문에 노크하셨다.
“나도 오늘 밤 잠이 잘 안 오는데, 애비랑 같이 얘기를 나눌 수 있겠니?”
그래서 목사안수를 받은 그 날 밤, 나는 친아버님으로부터 권면을 들었는데...
우리 아버님은 해방 후에 신학교에 가셨으나
곧 625 사변이 터져서 부산으로 피난을 가셨고
625 후, 고향에 돌아와서는 난리 틈에 생긴 많은 고아들을 돌보시던 중에
그것이 사명이라 생각하셔서, 신학교를 중도에 포기하셨다.
그런데 한 세대 지나서 친아들이, 당신이 못 이루신 꿈(목사)을 이루었으니
감개가 무량하시고... 덩달아 잠 못 이루실 만 했다.
그날 밤 아버님은, 내가 목사가 된 이후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고를 해 주셨다.
내가 장로가 된 이후 이날까지 평생, 목사님께
‘이것이 시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말은 단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 없다.
그렇지만 오늘 내 아들이 목사가 되었으니, 내가 목사에게 꼭 해 줄 말이 있다.
대개 목사님들은 감사하다는 말씀을 잘 못 하시더라.
비록 도와주는 사람이 큰 정성이 없었다 하더라도
받는 목사는 반드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전하는 것이 좋겠더라...
또한 목사님들은 죄송하다는 말씀을 잘 못 하시더라.
교회의 지도자시니까 마치 결점이 없어야 되는 것처럼 잘못 착각하시는데
잘못했을 때는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는가.
정말 목사가 되고나면, 도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마땅히 답례로 드려야 할 말을, 종종 빠뜨리는 경우가 있다.
또한 그 날 이후, 내가 잘 못 했다고 판단되는 것은
당회서나 어디서나 나는 잘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 날 밤, 아버님의 멘토링 덕분이었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지도자는, 무결점이어야 하며
비판 받으면 안 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나도 어거지를 빡빡 쓰는 목사가 될 뻔 했었는데.... (홍정길 목사 설교 중에서)
▲4 멘토링 관계에 있을 때, 죄의 유혹에 덜 빠진다
1992년 미국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성도들의 신앙 성장에 가장 장애/유혹이 된다고 답한 것은 다음 순서와 같다.
1위. Materialism. 물질주의
2. Pride. 교만
3. Self-centeredness. 자기중심주의
4. Laziness. 게으름
5. Anger/Bitterness. 분노와 쓴마음
5. Sexual lust. 성적 욕망(공동 5위)
7. Envy. 질투심
8. Gluttony. 탐식/음식의 무절제
9위. Lying. 거짓말
또한 응답자들은 하나님과 교제의 시간을 게을리 할 때(1위),
육체적으로 피로할 때(2위) 더 쉽게 죄의 유혹에 빠진다고 답했다.
또한 기도생활 할 때(1위),
죄와 타협할 수 있는 어중간한 장소를 피할 때(2위),
성경 공부에 참여할 때(3위),
주변에 누군가 멘토링의 관계에 있을 때(4위)
죄의 유혹을 잘 이길 수 있다고 대답했다.
-Discipleship Journal, November/December 1992
▲5 하워드 핸드릭스의 멘토였던 월트 선생님
하워드 핸드릭스의 「삶을 변화 시키는 가르침」의 앞부분에
자신의 멘토였던, 월트라는 스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했지만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자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주일학교 부장선생님을 찾아가서 부탁했습니다.
'아이들의 가르침에 대한 뜨거움이 있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주일학교 부장은, 월트가 너무 학력이 없어서 난처해 하다가
선생님으로는 임명할 터이니, 교회 안 나오는 아이들을 전도해서 데려다가
가르쳐도 좋다고 허락했습니다.
월트 선생님은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13명의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13명중 9명은 결손가정의 아이들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중 1명은 자신인 하워드 핸드릭스였고,
그 13명중 11명이 나중에 커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모두가 '나는 월트 선생님의 작은 터치를 잊을 수 없습니다'
라는 고백들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월트 선생님은 30년 동안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기독교 출판사 대표, 페더랄 뱅크사장, 중국선교 이사장등
기라성 같은 인물이 그 아래서 배출되었습니다.
월트 선생님의 위대함은 압도적인 물량공세, 힘의 과시가 아니었습니다.
말씀이 그의 인격을 변화시키게 되었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작은 기도, 작은 복음 증거, 작은 사랑의 외침들이
교사로서 제자들의 심령을 뒤집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6 멘토의 말을 잘 ‘들었던’ 에스더
‘들었다’는 것은,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가르침을 잘 따랐다는 말입니다.
한나가 그랬고, 마리아가 그랬고, 룻이 그랬습니다.
①에2:20절에도 그녀는 양 아버지인 모르드개의 말을 잘 따랐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모습은 ‘양육 받을 때와 같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에스더가 어릴 때부터 듣고 순종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때는 이미 왕후가 된 다음이었는데도
그녀는 양아버지께 변함없이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왕궁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누군가가 말을 걸어야만 말 할 수 있었을 것이고,
하렘 밖으로는 나갈 수 없었으므로, 사람들도 별로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돈도 없었고, 단 하루도 비밀스런 후궁의 구금 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난관들을 극복할 수 있었겠습니까?
무엇이 그녀를 무리 중에서 담당 내시의 눈에 띄게 했을까요?
그녀는 어떻게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는데 일조할 수 있었을까요?
②에스더가 다른 후보들과 가장 큰 차이가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시 헤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일 것입니다.
에스더가 이 사람의 가르침에 순종했다는 증거는 오늘 말씀 가운데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에스더는 어린 시절부터 가르침을 잘 따랐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성인이 된 후, 왕 앞에서의 엄격한 의례를
성공적으로 잘 따를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에스더의 강점은 바로 이 멘토들의 말을 잘 따랐다는 데 있었습니다.
어려서는 모르드개가 그 일을 감당해 주었고,
왕궁에 들어가서는 헤개(내시)를 멘토 삼았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멘토들을 (에스더와 달리)
그냥 보내는지 모릅니다.
나에게도, 때로는 모르드개와 같은 자상한 멘토들이 왔고,
헤개 같이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고 영향력 있는 멘토들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실수는 그 멘토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가르침 받기도 원하지 않았고,
따라서 어느 적당한 시간에 그들을 떠나보냈다는 데 있습니다.
멘토가 되어주는 사람은, 아주 조그만 부분에서 당사자에게 호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호감 후에 계속 관계가 지속된다면
그 멘토는 인생의 승부처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페르시아의 하렘이나 후궁,
또는 왕궁의 여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얘기들을 적잖게 접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머리 속에서
에스더와 담당 내시 헤개 사이에 있음직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수산 왕궁의 왕후 후보들은, 각지에서 모여 든 최고의 미녀들이었습니다.
내시 헤개는 매일 그녀들을 보면서 살았습니다.
그녀들은 몇 년에 걸쳐서 기다렸다가, 일생일대의 데이트에 나갔습니다.
2:13절에 나온 것처럼, 처녀들이 왕을 만나러 갈 때는
제 아무리 값나가는 물건이더라도 마음껏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헤개는 후보들을 데리고 페르시아 최고급 부티크로 데려가서
최고의 디자이너들을 만나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분명 수많은 하인들이 옷상자와 보석과 신발을 들고 지고, 이고 뒤따랐을 것입니다.
각 후보는 왕의 신용카드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그녀들에게 값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여자들의 일생 중 가장 신나게 돈을 펑펑 쓸 수 있는 때는 결혼 시즌일 것입니다.
왕후 후보들이야말로,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시절이었을 게 틀림없습니다.
간택되기 보다는 떨어질 확률이 높았으므로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진귀한 것들을 마구 사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헤개는 그녀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아! 이 향수를 너무나 쓰고 싶었는데 정말 써 보네.
아! 이런 색깔의 드레스가 있었으면 했는데,
내 고향 친구들이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어머! 이 다이아 목걸이 좀 봐! 어머나 이렇게 예쁜 구두가 있다니... 아! 행복해라”
그렇게 탄성을 지르는 후보들을 매일같이 보면서
그는 그런 흥분한 목소리로 서로 얘기 나누는 것을 듣는데, 익숙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중에 한 처녀가 해게에게 또렷이 각인되었습니다.
이 처녀는 쇼핑하는데 흥분해서 들뜨지도 않았고,
다른 처녀들처럼 자신만만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호기심이 동해 그녀를 유심히 바라봤습니다.
‘에스더가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정한 것 외에는 다른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자에게 굄(사랑)을 얻었더라’ 2:15
그녀는 에스더라는 이름을 가진 후보였습니다.
그날 그녀는 뭐든지 맘대로 가질 수 있고 맘껏 치장할 수 있었는데도,
그녀는 단지 ‘해게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다’ 그랬습니다.
에스더는, 다른 처녀들과, 정신자원이 달랐던 것입니다. 물론 신앙 때문이었겠지요.
여러분 멘토들의 말을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일이 되는 비결이 있고, 왕후가 되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멘토가 바로 여러분 지척에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선배 또는 후배가 될 수도 있고
직장상사나 후배, 또는 남편이나 아내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여러분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고,
여러분 일의 사정을 가장 환하게 꿰뚫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그 멘토들을 찾아서 그 분들의 가르침을 받고
그분들에게 도움을 청하십시오.
그래서 다시는 하나님이 보내 주신 그들을
그냥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나아가고 싶으십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화려한 치장이, 하나님의 시선을 내게로 끌지 못합니다.
오히려 소박하더라도, 더 소중한 우리의 치장은,
웃는 얼굴과 에스더는 모든 사람에게 굄(사랑)을 받았습니다... 2:15b
▲7 하나님은 징계 전에, 멘토를 통해, 반드시 경고하십니다.
시49:20절에는 이렇게 말씀한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야, 즉 찔림을 받는 자라야
자기의 멸망의 길에서.. 돌이키게 된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그래서 회개하지 않으면,
얼마 안 지나면.. 짐승들처럼 멸망을 받게 된다.
멸망을 받기 이전에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
-말씀을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갑자기 불현듯 징계하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파수꾼, 선지자, 설교자, 멘토를 보내사, 아니면 개인큐티시간을 통해,
반드시 먼저 경고를 주신다.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나를 찌르신다.
그러나 그 경고를 무시할 때..
우리는 무시무시한 징계를 당하게 된다. 마치 멸망(도살)당하는 짐승처럼...
▲8 사람들이 잘못된 멘토링을 원할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멘토가 되어 달라고 그런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No라고 그럴 때 한 번 보자...’
무슨 말인가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목회자에게, 자신의 멘토가 되어달라고 부탁하지만,
실제로 그 뜻과 의미는, 그 멘토(목회자)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지지해 주고, 모두 ‘Yes’ 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멘토가 되어 달라는 것이다.
‘No’라고 말해주는 멘토는.. 썩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뜻과 의지가 분명하게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 경험을 종종 한다.
아무리 나를 멘토로 여기고, 나에게 상담을 요청해 오지만
내가 그에게 ‘네, 잘합니다. 잘 하고 계시는 군요’할 때는
나의 말(멘토링)을 잘 듣다가
제가 ‘그게 아니네요. 그건 옳지 않습니다. 그건 성경적이 아닙니다.’
이렇게 조언해 주면,
신자들은 그런 멘토를 원하지 않고, 그 조언도 듣기 싫어한다.
물론 모든 신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신자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멘토’나 상담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확증해주고, 자기 사기를 북돋워주는.. 응원자가 되어달라는 것이다.
‘간섭자’가 아니라!
지금 ‘멘토’나 ‘상담’의 예를 들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내 입술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숨은 조건이 따로 있다. ‘내 영광과 내 뜻과 부합될 때에만..’
무슨 말인가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목회자에게, 자신의 멘토가 되어달라고 부탁하지만,
실제로 그 뜻과 의미는, 그 멘토(목회자)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지지해 주고, 모두 ‘Yes’ 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멘토가 되어 달라는 것이다.
‘No’라고 말해주는 멘토는.. 썩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뜻과 의지가 분명하게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9 저는 연예인 교회 시절에 한 설교를 잊지 못해요.
제 아내가 다니던 신학교 학장 ‘제임스 스튜트 박사’가 왔어요.
아주 훌륭한 분이세요.
그분이 한국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는데
자기 졸업생이 제 아내이기 때문에 제 아내 하나 만나려고
방학 때문에 학생들을 찾아다니는 동안에 서울에 왔어요.
그런데 조건이 있다, 호텔에서 안자겠다는 거예요. 너희가 사는 집에 자겠대요.
그때 우린 결혼 초기였기 때문에 방 한 칸 있었어요.
그런데 그 분이 아침에 일어나니까
일찍 일어나서 소파에 앉아서 편지를 쓰더라고요.
그게 큐티인 줄 몰랐어요. 난 편지 쓰는 줄 알았어요.
그 사람이 거기서 큐티를 하더라고요.
뉴질랜드 바이블 칼리지에서는, 제 아내가 졸업했는데
아내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거예요.
매일 그걸 보고 살았기 때문에, 강해 설교를 보고 살았기 때문에.
우리 한국에 있는 목사는 강해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다 교리 설교만 들었지, 강해 설교를 듣고 자란 교인은 하나도 없어요.
그 분이 저희 연예인교회로 오셨어요.
마태복음5장을 가지고 설교를 해 주셨는데,
‘빛과 소금’을 주제로 설교를 했는데..
그 때 그 설교가 얼마나 제게 감동을 줬는지.. 아직도 기억해요.
‘강해 설교는 이렇게 사람에게 충격을 주는구나!’
그분이 그 때 제 사역을 전부 관찰하더라고요.
그는 2차 대전에 쓰던 것 같은 시계를 차고 구닥다리 옷을 입고 있었어요.
그는 아주 기분 좋게 지내다가, 떠나던 날 공항에서
저와 제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그 멘토쉽을 발휘하는 거예요.
‘내가 네 남편의 사역을 다 봤다. 두 가지를 말하더라고요.
네 남편은 갖춰진 것보다 소문난 게 많다. 그게 첫 번째 코멘트에요.
너무 유명해졌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빈 깡통 되기 쉽다. 지금 숨어라. 이게 첫 번째 그분의 충고였어요.
지금 당신 계속하면 내용 없는 사람 된다. 연예인 교회를 stop하라는 거예요.
두 번째 영어를 너무 못한다. 지금 네 남편 영어를 가르쳐라.
일을 stop해라 건강 나빠진다. 오래 못 간다. 이렇게 일하다가는 오래 못 간다.’
그 말이 맞았어요. 제가 그래서 간 부위를 다쳤어요. 이게 멘토쉽이더라고요.
참 좋은 선생님이었어요.
그리고 그 분은 5년 10년 만에 또 왔어요. 자꾸 우리의 사역을 점검 해 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는 제가 교육받지 못했던, 우리 한국에서 지도받지 못했던
그런 참 좋은 선생님들이 계시는구나.
그런 것을 그때 개인적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10 제가 건강이 나빠져서 연예인 교회에 사표를 쓰고
목회를 할 수 없어서 영국으로 가려고 할 때에
(저희 멘토가 한경직 목사님이셨는데) 제 아내랑 같이 찾아 뵈었어요.
그 분이 저에게 아주 간단하지만 좋은 충고를 해주시더라고요.
본인이 프린스턴에 있을 때, 폐병에 걸려서 피를 토하던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내가 그 때 피를 토하면서 프린스턴에서 공부하던 그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영락 교회를 목회를 (잘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북한에서 피난 나온지 알았으면 (시작을) 안했습니다.
잠깐 한 달만 피신하자고 했던 것이.. 영영히 돌아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적 상황가운데서도.. 신비하게 인도하신다는 뜻인듯..
그러니 염려말고 떠나시라?)
그분은 저에게 이런 값진 교훈을 주었어요.
연예인 교회를 사임해야 될 무렵에, 그 교회를 보낸 분은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이 가라고 하기 전까지는, 절대 떠나면 안 됩니다.
단,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두 가지 조건.
교인이 만장일치해서 가십시오 하면 가래요.
두 번째 목회할 건강이 없으면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를 보고 연예인 교회를 떠나라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영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했더니
아무 염려하지 말고 빈 손으로 가라고 해요. 기대하지도 말고 가래요.
그게 하나님의 방법이래요.
여러분, 교회를 떠날 때 어디를 보장받고 떠나는 것은 믿음이 아니에요.
아무 보장이 없고, 누가 나를 부른데도 없어도. 그게 하나님의 인도죠.
내가 계산하고, 사람 만나서 다 작업해 놓고, 뒷거래 해놓고 가는 것이 무슨 믿음이에요?
▲11 책으로 멘토링 받기
영적으로 암울한 시대의 비극은 우리를 선도해 줄 멘토,
우리에게 본이 될 만한 선생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만약 현시대에서 그런 영적 모범과 안내자를 찾을 수 없다면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동시대의 인물뿐 아니라 유구한 교회 역사 속에 존재했던 수많은 영적 거장과 스승들과도
진리 안에서 시대를 초월한 성도의 교제를 누리는 특권을 소유하였다.
특별히 청교도들의 주옥같은 글은 우리를 지나간 시대의
위대한 영혼들과 교제하는 장으로 초대한다.
▲12 멘토가 힘이 있는 이유는, 체험한 경험을 나누기 때문!
저도 제 멘토에게 십년 동안 말씀을 들은 것이 있어요.
그런데 그 말씀을 들은 것을, 제 삶 속에서 가만히 조용히 순종을 해봤는데
그 (삶의) 훈련들을 해 나갈 때, 여러분 제 삶에 변화가 있더라고요.
그분께서 겪으셨던 체험을
제가 이 강단에서 말할 수 없지만, 저도 겪은 적이 있어요.
물론 우리 멘토 목사님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제 삶 속에서 그 하나님을 만났어요.
최근에도 그것을 경험하고 제 혼자
'야 이게 정말 되는구나, 정말 이런 것이구나!'
한번 제가 경험을 해보니까, 어떻게 되는지 알겠더라고요.
늘 십 년 동안 들었던 말씀인데, 제가 한번 몸으로 체험을 해버리니까
하나님을 절대 못 놓겠더라고요.
그리고 더 이전보다 목마르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제 자신을, 훈련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어요.
왜 겪었기 때문에, 겪었기 때문에요!
▲13 저는 이 기드온을 묵상하면서
계속 제 멘토 목사님이 지금까지 자주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이 났어요.
참 많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중에 종종 하셨던 말씀이
'쓰임받았던 사람들이 버림받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들의 시작과 끝이 너무나도 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이렇게 쓰셨는데, 나중에는 이렇게 망가졌고
저 사람을 저렇게 쓰셨는데, 나중에 저렇게 되었다는 거예요.
특히 은사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사를 받으면
2년을 쓰임받지 못하고, 은사를 잃어버리고
교만해져서 버림 받아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생각보다 많이, 쓰임받는 사람들이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변질되어 하나님의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오고, 사라져 가버리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자, 우리가 정신을 번쩍 차리지 않고, 늘 깨어있지 않으면
'대부분 사람은 끝이 좋지를 않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이 기드온을 묵상하면서
계속 제 멘토 목사님이 지금까지 자주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이 났어요.
참 많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중에 종종 하셨던 말씀이
'쓰임받았던 사람들이 버림받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들의 시작과 끝이 너무나도 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이렇게 쓰셨는데, 나중에는 이렇게 망가졌고
저 사람을 저렇게 쓰셨는데, 나중에 저렇게 되었다는 거예요.
특히 은사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사를 받으면
2년을 쓰임받지 못하고, 은사를 잃어버리고
교만해져서 버림 받아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생각보다 많이, 쓰임받는 사람들이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변질되어 하나님의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오고, 사라져 가버리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자, 우리가 정신을 번쩍 차리지 않고, 늘 깨어있지 않으면
'대부분 사람은 끝이 좋지를 않다'는 얘기입니다.
▲14 바울은 계속해서 디모데의 신앙 멘토 역할을 합니다.
신앙이 성장하려고 하려면, 본을 보여주는 멘토가 있어야 합니다.
운동도 그렇습니다. 혼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본문 12절에는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라고 말씀합니다.
디모데는 젊은 사역자입니다. 그래서 그가 가르치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나이를 많이 따집니다. 어디를 가든지 나이를 묻습니다.
나이가 어리면 약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이는 중요합니다. 살아온 삶의 경륜이 있고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적인 나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오면 새로운 질서가 있습니다.
나이가 몇인가 하는 것보다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영적 성숙도입니다.
육체의 나이와 영적인 나이는 비례하지 않습니다. 영과 육의 세계가 구분되어야 합니다.
육의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영에 눈을 뜨지 못하면, 육의 나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눈을 떴는지, 복음에 눈을 떴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 니고데모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유대 사회의 엘리트입니다.
젊은 나이에 산헤드린 공회원이 된 것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굉장히 지성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 뭐가 나타납니까? 전혀 영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고린도교회도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젖을 먹고 딱딱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갓난 아이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 권위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습니까?
이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나이에 걸맞게 신앙의 여정 속 영의 세계에 눈을 뜨고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어야
그것을 성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성숙을 위해서 본문 12절 하반절은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라고 말씀합니다.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본이 되라는 것입니다.
본이 된다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15 멘토는 신앙의 본을 보이는 사람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닮아가야 할 대상이십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려면 내가 본 것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본 만큼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내 믿음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분들입니다.
내 믿음만 지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믿음이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기 시작합니다.
노출될 때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고 있는가?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믿음의 실력 이상을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신앙은 가정 교육입니다.
신앙의 대를 잇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1세대가 100 정도 뜨거워도 다음세대로 넘어가면 70-80 정도가 됩니다.
이마저도 잘 전수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신앙의 계승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전11:1
복음의 실체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은 다른 것에 있지 않습니다.
말씀을 그대로 살아본 다음에 “내가 해보니 좋더라”
“내가 살아보니 이 말씀이 진리더라”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우리의 고민은 성경 해석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있습니다.
신앙은 이론만으로는 안 됩니다.
본을 보여야 하는 것 중에 첫 번째는 ‘말’입니다. 성숙은 혀가 중요합니다.
나의 혀가 스스로 통제되고 있습니까? 이게 참 어렵습니다.
그다음으로는 행실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말과 행실 그 외에도 믿음과 정절 사랑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성숙에 대한 매우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결국 내 안에 있는 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문제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죄의 영향력 아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의 종노릇 하던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시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죄에 끌려다니지 않고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3절에 보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존 오웬은 “죄를 계속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죄가 너를 계속 죽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죄는 우리를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 죄의 속박으로부터 이겨내는 끝없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죄로부터 자유를 얻고 선을 행할 능력이 강해져 가는 것이 성숙입니다.
말과 행실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일어나고 그런 변화가 먼저 믿는 자 안에서 본이 되어야
그것을 성숙이라고 합니다. 따르고 싶은 신앙이 되는 것이 성숙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