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 - YouTube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사2:1~4 2025.01.12.
오늘 설교 제목은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산을 좋아하십니까?
우리 교회 가까이에는 우면산, 청계산이 있고, 멀리는 한라산이 있습니다만,
오늘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기 바랍니다.
'말씀이 흘러나오는 산, 이사야가 예언한 산'에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사야서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의 이 말씀이 우리의 삶을 해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사2: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을 직시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거, 오늘 교회와 모든 성도들은,
대한민국에 관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바랍니다.
2:1절이, 이제 2:2절부터 쭉 이어지는 내용의 표제(제목)가 되고,
이사야서 전체의 배경은, 유다 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입니다. 1:1
웃시야는 막판에 말년에는 좀 잘못 행했지만, 대체적으로 선한 왕이 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혜가 있고, 또 부국강병에 대한 은사도 있어서,
그의 치세 때 남유다 나라가 번영을 구가했습니다.
그의 아들 요담 왕도, 아버지의 정책을 계승해서, 해군이 강화되고, 무역이 강화되어서
요담 시대에도 많은 번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참, 이게 인생의 아이러니인지, 아니면 삶이 그런 건지,
아버지 요담은 선했는데, 그 다음 아들 아하스 왕은
어릴 때부터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악한 길로 행했습니다.
뒤에 성경에 아하스에 대해서 이렇게 서술합니다.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3:12 주1)
이렇게 아하스는 무능하고, 불성실하고, 잔인하고, 불신앙적인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웃시야와 요담 치하에서는 남유다가 영광스럽고 찬란한 왕국이었는데
이제 아하스 때부터 타락한 나라, 그리고 부패의 소굴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참 기가 막히죠.
부모는 착한데 자식이 못된 게 나왔어요.
또 놀라운 것은 아하스의 아들이 히스기야 입니다.
부모(아하스)는 또 악한 왕인데, 아들 히스기야는 선왕이에요.
또 아버지 히스기야는 선한 왕인데, 그 아들 므낫세는 극도로 악한 왕이었죠.
그러니까 부모님은 착하지만, 자식이 못 될 수 있고,
자식은 못 됐지만, 그 다음에 착한 자녀가 나올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늘 벌벌 떨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우리가 기도하면서 벅벅 기어야 되는 거예요. 자녀가 잘못 나가지 않도록요!
그러면서 북왕국 이스라엘은, 모두 19왕이었는데, 모두 다 악한 왕이었어요.
남유다는 모두 20왕이었는데, 그 중에 7~8명 정도는 선한 왕이었어요.
그러니 하나님이 북왕국을 오래 가게 하시겠습니까?
남유다 왕국을 더 오래 가게 하시겠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남유다죠.
그래서 남유다가 북이스라엘보다 약 140년 정도 더 지속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현실 사회에서도, 하나님을 진실되게 섬기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불러 쓰신 바울, 욥, 베드로, 여러 순교자분들 등 사명자들을 제외하면,
그분들은 특별히 고난을 통하여, 더 큰 은혜와 더 깊은 영적인 차원으로 올라가셨고요)
평범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하나님 앞에 벅벅 기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건 예외가 없는 거예요.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번영과 쇠락이 왔다 갔다 합니다.
이조 5백 년 가운데 제대로 된 왕은, 제가 볼 때는, 세종대왕, 정조... 그 정도 밖에 없었어요.
뭐 당연한 얘기겠지만, 우리 나라는 이런 지도자의 복이 별로 없었어요.
이제 남유다 나라의 이런 시대적 배경을 살피면서,
오늘 이 본문을 우리 현실에서, 우리가 뭘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요?
여러분, 참된 신앙인은 참된 애국자 입니다.
이사야는 자기 민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가진 애국자 였습니다.
그 부강했던 웃시아와, 요담 치하에서
그 부강했던 민족이, 참상과 부패와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아하스 때문이에요. (*그 내용이 이사야서 초반부에 자세히 나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가슴에 말할 수 없는 탄식이 가득 했어요.
정말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로서, 본문의 이 표현들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사실 왕족이요 선지자인 이사야는, 이런 고생을 안 해도 되었습니다.
그는 나라를 사랑하는 것 때문에, 백성을 일깨우라는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뒤에 나옵니다만 이사야는 3년 동안 벗은 몸, 벗은 발로
속옷만 입고 벌거벗은 행장을 가지고 예언하는...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20:1~3
(그렇게 포로로 끌려간다는 예표를 보여준 거죠)
그걸 보면 '야, 선지자도 고생이 너무 많구나' 생각하게 되죠.
그래서 부패한 남유다에 대해서, 이사야는 너무 마음이 답답해 가지고 이렇게 예언했죠.
사3:8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
과거 성경에는 '영광의 눈을 촉범했다'고 했죠.
그러니까 여호와는 온 땅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인데,
그 눈 앞에서 범죄를 했다... 이런 뜻이에요.
그리고 이사야가 지금 막 가슴앓이를 하는 것은,
웃시야, 요담까지는 괜찮은데
아하스가 못되게 행하니까, 남유다가 외부 나라들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 어려움 가운데서 오히려 아하스는, 앗수르 왕을 의지했어요. 왕하16장
친 앗수르 정책을 펼쳤어요.
아하스는 성전과 왕궁에 있는 재물들을 다 모으고, 신하들의 재산까지 몰수하여
앗수르왕에게 뇌물을 바쳤습니다. 주2)
이사야는 너무 답답해가지고, '그러면 안 된다고...
친앗수르가 아니라, 친하나님 정책을 좀 펼치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못 알아듣는 거예요.
이사야가 너무 답답해서 이렇게도 예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7:14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은혜가 우리나라 남유다에 임해야지,
우리가 친 앗수르 정책을 펼치면 안된다'
왜냐면 당시에 북이스라엘이 아람 왕 르신과 동맹을 맺어서
남유다를 공격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사7:1~2
이렇게 애국하는 사람들은, 나라가 잘못되어 가면, 가슴앓이를 하는 것이에요.
▲저는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 크게 두 세 가지 정도 안타까운 일이 있어요.
첫째는 대한민국은 정말 '문화 막시즘'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이거는 철저히 우리 애국하는 사람들이, 딱 주시하고 있어야 됩니다.
'문화 막시즘'이란, 공산주의자들이 사회 하층부를 동원해서 혁명을 해보니까...
결국은 실패하더라는 겁니다.
공산화가 되는데 제일 어려운 걸림돌이 되는 게 교회 임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기독교의 창조 질서를 그대로 갖고 있어서는 사회 전복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소위 '문화'라는 가면을 쓰고 기독교의 전통적 가치를 뒤흔들려 하는 전략이 바로
'문화 막시즘' 이라는 거에요. 주3)
막시즘으로 사회를 전복시키기 전에, 먼저 문화를 공략해서, 특별히 기독교를 전복시켜서,
인본주의 문화의 토대를 만들어놔야, 공산화가 가능하다는 거죠.
그 '문화막시즘'에 대항하기 위해서
우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이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고,
교회와 가정과 자유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이 문화막시즘을, 우리는 반대하는 거예요.
그리고 또 우리가 이 시대를 애국하면서, 우리가 신경을 써야할 것은
'잘못된 포퓰리즘'을 우리는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됩니다.
포퓰리즘의 가장 큰 문제가 뭡니까?
대중의 요구를 충족시킨다는 미명 아래, 진영 논리를 강화하고
진영간 대립과 분열을 심화시키는 거예요.
이건 뭐냐면, 현재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하여, 다음 미래 세대를 망치는 것이에요.
여러분, 다음 미래 세대를 망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동조 하면 안 되는 것이에요. 아멘!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선과 악, 참과 진리, 어둠과 빛이 있을 때
우리는 진리 편에 서야 되는 것이에요. 철저하게 진리 편에 서야 되는 거예요.
'진리 편에 선다'는 말에는, 여러 해석이 있겠습니다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우리가 진리 편에 서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기도하면서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방향이 있는 것이에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방향이 뭔가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요?
◑이사야서를 통해서 볼 때, 오늘 본문 사2:2~4절에 쭈욱 나오는데,
그 핵심이 뭐냐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입니다.
이사야의 독특한 어법 중에 하나가, 사1장에서도 '오라'고 초대하면서
'보혈 복음'으로 우리 독자들을 초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18
본문 사2장에서도 '오라'고 초대하는데, '말씀의 동산'으로 우리 독자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2:2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아무리 사회가 어려워도, 우리가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을 앞에 놓고 탄식하면서
사랑하는 이 나라가 더 어려워지거나, 더 몰락하도록 놔두면 안 되는 것이
우리 그리스인의 사명인 것이에요.
오늘날 우리는 이사야와 같은 간절한 마음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에요.
또 우리가 이런 어떤 잘못된 문화 막시즘, 정치적 포퓰리즘,
그 다음에 가짜 뉴스 등 가짜 페이크에 우리가 속으면 안 되겠습니다.
히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기드온부터 시작해가지고 사무엘까지, 이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모두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생명을 던져서 나라를 구한 애국자들이었어요.
그래서 히11장은 '믿음장'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애국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나라를 위하여 자신을 던졌던, 우리 근대 역사에 보면
서재필, 이승만, 김구, 안창호, 이승훈, 조만식, 김용기, 장기려
이 모든 분들은 정말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기독교 신자인들입니다.
그들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애국자들이었어요.
한경직 목사님은 '신앙심과 애국심은 한 샘에서 솟아난다'고 말씀하셨어요.
숭실대학교에 가면 '한경직 기념관'이 있는데, 그 기념관 벽에는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이 이렇게 붙어 있어요.
'내가 물려줄 물질 유산은 없다. 믿음을 지켜라. 나라를 사랑하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 이야말로 참된 애국자인 줄 믿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을 때,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면, 이것 자체가 우리 대한민국에 참된 복이 될 것입니다.
왜냐면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곳마다, 새로운 사명이 생기고,
민족의 잘못된 환경들이 복된 환경으로 바뀌어지는 그런 은혜를 주시고,
또 그런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라의 새로운 미래 시대를 열기 위하여, 우리가 다시 한 번 다시 다짐해야 할 것은
'오라 우리가 (어디에 오르자고요?)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지난 주 사1장에서는, 우리가 '보혈 복음'에 오라는 초대를 받았는데, 1:18
오늘은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라'는 초대를 받는 것입니다. 2:2~3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여호와의 전의 산'은 '시온'을 가리키죠.
고대의 산들은 그 높이와 위엄에서 사람들의 찬탄을 받아왔으며
신들이 거주하는 거룩한 공간으로 숭배되어 왔습니다. (예컨대 희랍의 올림푸스 산 등)
그러나 실제로 시온은 전혀 높지 않은 자그마한 언덕에 불과하였습니다. 주4)
그래서 시편 기자는, 바산의 산들이 이 낮고 하찮은 하나님의 산을
내려다 본다고 말하였을 정도입니다. 시68:16
그러나 종말(2:2, 말일)에는 모든 것이 극적으로 변화됩니다.
그날에 시온은 가장 높아질 것이요, 그 영광 앞에서 다른 모든 산들은
평지나 다름 없어질 것입니다. 슥14:10 물론 이것은 영적인 의미입니다.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모여든다'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흐른다 stream'는 뜻입니다.
그 옛날 범죄의 절정을 상징하였던 바벨탑에서 각처로 분산되었던 인류는,
이제 하나님의 구원의 날에 다시 시온 산으로 물밀듯이 몰려들 것입니다.
인류의 범죄와 구원의 역사는 '바벨탑에서 시온 산으로 from the Babel to the Zion'
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시온산이 '하나님이 세운 구원의 높이'를 상징한다면,
바벨탑은 '인간이 세운 죄악의 높이'를 상징합니다.
신학자들은 이 구절(2:2)을 가지고 '구약은 구심적인 선교 centripetal mission
신약은 원심적인 선교 centrifugal mission 이다' 라고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는,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선교전략을 가지셨고, *오라
신약시대에는,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퍼저나가는 선교전략을 가지셨다는 거죠. 행1:8
◑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산에 오른다' 는게 어떤 뜻일까요?
'여호와의 산'이란 ..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시온산을 뜻하죠.
거기서 율법이 나온다는데... 이건 성전에서 율법이 가르쳐지는 것을 뜻하죠.
나아가 예루살렘 성전이, 구약시대 때 하나님 나라의 중심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게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라는 뜻이죠. :2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래서 '여호와의 산'에 오르는 것이란, '성전에 올라가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러분, 본래 율법은 누구로부터 나왔습니까? 모세를 통하여, 시내산에서 나왔어요.
백성들이 시온산 성전에 모여들고자 한 것은,
거기에만 율법, 즉 여호와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었죠.
여기서 '율법'이란, 신약적 표현으로는 '복음'입니다. 복음은 율법의 재해석이죠.
그래서 시온산은, 2:2절에 '말일에'라고 말했듯이,
오늘 이 산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산을 갖고 시작했지만,
사실은 물리적 산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영원한 하나님의 전,
영원한 우주적 성전을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예수님의 피의 헌신을 통하여 생긴 영원한 우주적 성전을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내용이 마5장에, 주님이 산에 올라가지고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는 것과 연결되고,
또 요4장과도 연결되는 것이에요.
요4:21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4:22 '...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위 요4:22절은, 본문 사2:3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온다'는 말씀과 일맥상통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물리적으로 볼 때 '여호와의 산, 시온산' 이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의 보혈 피, 부활, 이런 것들을 통한 우주적 성전이 말일에 세워지리라는 거죠.
그래서 주님께서 요2장에 '이 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 그랬잖아요.
'그 우주적 성전을 통하여 여호와의 구원이 말미암게 되느니라' ... 궁극적으로 이런 뜻이죠!
이게 본문의 신약적인 해석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성)전'은
단순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그 정도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우주적 성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 제일 행복한가 하면,
주의 전에 올라갈 때가 가장 행복한 것이에요.
▲시편120~134편까지는, 시편의 독특한 주제인데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그러니까 주의 전에 올라가는 자들마다, 시120~134편까지 15편에 걸쳐서,
순례자의 모든 경우의 어려움, 모든 경우의 환란과 고난이
그 15편의 말씀을 통하여, 해결과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이 시편들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국가적인 난제 앞에서, 많은 걸 우리가 할 수 있어요.
우리 개인적으로 여러분들이 의사표현도 하고, 주장도 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어려운 난제 가운데서, *12.3비상계엄 후 혼란
성도는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야만 하는 것이에요.
여호와의 산에서 주시는 축복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여호와의 산에 오를 때 어떤 축복을 주시는가?
그 결과가 뭐냐면 4절에 나와 있어요.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이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여호와의 산에서 주시는 그 축복을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받아 누리면, 결과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요?
칼이 보습이 되는 거고, 창이 낫이 되는 거예요.
곧 남을 살상하고 잔인하게 폭력을 행사하던 그 전쟁 기구가, 농기구가 되어가지고
평화를 구가하게 되는 날이 온다는 거예요. 이거는 놀라운 진리예요.
칼이 모습이 된다는 사실! *보습 : 밭 가는 농기구, 넓적한 삽 모양의 쇳조각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교부 어거스틴은 뭐라고 얘기했냐면,
자기 시대에 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것을 보면서
'로마 제국이 다 멸망 하더라도, 여호와의 산에 오른 자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보호해주시는 그 은혜를 가지고,
그는 <하나님의 도성 City of God>이란 역작을 썼어요. '신국론'이라고도 하죠.
그러니 모든 역사의 완성으로 가면서, 지금 시대에 되어지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만,
우리 성도들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야만' 하는 것이에요.
'여호와의 산'의 궁극적 목적은 뭐냐?
예수 그리스의 우주적 성전 되심과, 그 은혜를 우리가 받아누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모세로 부터 시작되었지만,
율법의 완성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는 일을 통해서..
즉 우주적 성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복음으로,
그 축복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납니까?
전쟁과 분열과 파괴의 이런 고통의 시대가,
평화와 하나님이 주시는 그런 안정의 시대로 바뀌게 된다는 거죠.
이 말씀을 4절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뜻입니다. 이레니우스 같은 교부는,
'이거는 너무나 놀라운 것이다. 이거는 바바리안(야만인)들이
여호와의 산에 오르고, 우주적 성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그분이 주시는 모든 것들을 다 받아누리게 되면,
즉, 시120~134편까지의 축복들을 다 받아 누리게 되면,
그 거칠고도, 그 야만인적이고, 그 말도 안 되는 큰 폭령성들이,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도구로 쓰임받고, 그들 스스로도 평화와 안정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글레디에이터> 라는 영화를 보셨을 거예요.
거기 초반부에 보면, 로마군대에 대항하는 바바리언들 즉, 게르만족이 나오죠.
거친 사나운 함성들과 함께, 사람의 머리 잘라가지고 흔들며,
호전성을 드러내는 바바리언들이 나오죠. 그게 게르만족들이에요.
그 게르만 족들이 나중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들 가운데서 마르틴 루터가 나오고,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니까, 여러분 저 독일에 가 보십시오.
독일의 농촌은 너무너무 아름다워요.
하이델베르그 라든지, 그 농촌의 집들, 그 전체적인 구조들, 들판, 나무 모든 것들이
진짜 너무 아름다워요.
그 게르만족, 바바리언들이 이와 같이 하나님의 복음에 의해서
너무나 아름다운... 4절 말씀대로 '칼이 보습이 되고, 창이 낫으로 변하는'
그런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난국 시대에
'주님,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겠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애국인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사야처럼 애국자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문화 막시즘을 경계하고, 막아야 됩니다.
주님, 우리나라는 포퓰리즘은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주님, 참과 거짓의 싸움에 있어서, 우리는 거짓을 허용하지 않고,
정의가 진리가 다스리는 나라가 되게 하여 주소서! ..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원하면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갈 때,
여호와의 산에 성전에 오르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 모두에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적용 /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뭘까요?
여러분, 앞으로 예배를 드리러 올라 올 때마다
이 예배당이 '여호와의 산'이 돼야만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정 가정마다, 기도하는 가정 예배가
'여호와의 산'이 돼야만 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 '여호와의 산'이, 여러분들의 삶을 해석해 주실 것입니다.
시편 120~134편까지 제가 도표를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 가운데, 사람들로부터 은혜를 당하고 억울한 오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은
시 120노래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 길을 가로막고 있는 사면초가가 있을 때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도움을 구하는 분들은
시121편을 크게 읽으시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가족과 이웃의 평안을 구하는 분들은
시122편을 통하여 성전에 올라가기 바랍니다.
조소와 멸시속에서 은혜를 구하는 분들은
시123편을 노래하면서,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 가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날 때는
시124편을 노래하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참된 축복을 구하는 자는
시125편을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인생 길에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큰 기쁨을 원하십니까?
시126편을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성전(여호와의 산)에 올라가는 노래"들로 우리가 기도하고 노래하면,
우리 인생에 상상도 할 수 없던, 정말 웃음이 가득하고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혹시 불면증으로 고생하며,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단잠을 구하는 분은
시127 편을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누군가에게 못 살게 굶을 당하고 있습니까?
시129편을 노래 하시기 바랍니다.
엄마 품속에서 자는 젖 뗀 아이의 평온을 구하는 분들은
시131편을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전능자가 주시는 기름부음의 참된 축복을 원하십니까?
시132편을 주의 전에 올라가면서 노래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이 그대로 와닿기를 바라고,
지난 주일에 사1장 '오라, 보혈 복음'에 초대 받았다면,
이번 주일은 사2장 '오라,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올 때, 주시는 주님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찬양하시겠습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 올라가서,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고,
베드로는 변화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눈물로 기도하시면서, 구원의 사역 핵심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올해 우리 모두는 여호와의 산에, 부흥의 산에 올라갈 때,
하나님은 이 민족의 난제들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성도들 한 명도 예외 없이
주님의 전이 있는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
영적인 산 꼭대기에서 하나님께 큰 예배와 영광을 올려 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 대한민국이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게 하여 주십시오.
참된 예배를 통한 예배의 능력을 가지고,
치유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대한민국에 주님, 새 길을 열어주셔서
수많은 난제들이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는 자들을 통하여 해결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할렐루야, 우리를 이 여호와의 산으로 초청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주1) 사3:12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의 주석
직역하면, 이 말이 당시 유다 왕들의 나이를 일컫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사야의 시대에는 현저히 어린 나이에 그의 치세를 시작한 통치자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적용은 그 타당성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요담은 25세(왕하 15:33), 아하스는 20세(왕하 16:2)
히스기야는 25세(왕하 18:2)에 각각 보좌에 올랐다.
아사랴(웃시야)는 왕이 될 때 16세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의 치세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가서야 이사야가 그의 사역을 시작하였다(사6:1).
이사야 시대의 왕들이 실제로 어린아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임명한 관리들 또한 실제 어린아이들로 보기는 어렵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당시의 통치자들이 그들의 사고방식과 능력에서
어린아이들과 같았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이어지는 '다스리는 자는 여자들이라' 와도 같은 맥락이다.
왕궁에서도, 가정에서도, 또한 그밖에 어느 곳에서도,
경험 있는 지도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뜻이다.
물론 이 말은 특히 아하스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는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은 후 몇 년이 지나서 보좌에 올랐다.
주2) 아하스와 왕의 시대에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베가가 예루살렘을 공격했습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는 위기를 아하스는 어떻게 벗어났습니까?
아하스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외교로 해결했습니다. 왕하16:7-9절
주3) '문화 막시즘'
그런데 최근 들어서 여러 가지 변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문화 막시즘"입니다.
많은 분들이 잘 모르고 계시는데, 20세기 초반에 볼세비키 혁명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중심으로 해가지고 사회를 뒤집는 것이라면,
"문화 막시즘"은 안토니오 그람시 라는 사람이 주창한 것인데, *이탈리아 정치가
이 사람이 가만히 보니까, '이태리에서 공산 혁명이 안 되는 이유가 뭐냐?
교회 때문에 안 되는 거구나.. 그러면 교회를 어떤 식으로 뒤집어야 되는가?
그것은 바로 상층부의 문화적인 접근을 통해야 되겠구나...'
그것이 바로 동성애를 가지고, 성경의 질서를 뒤집어 놓는 것이었죠.
이런 영향을 통해서, 한국교회에 이 문제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렇게 대두되어 가지고,
결국 다음 세대의 교육까지도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정도로
이런 상태가 된 것입니다.
주4) 시온산은 해발 약 7백미터의 산인데,
실제로 동편 기드론 골짜기에서 올라가면, 표고차가 약 150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렇게 높게 보이지는 않는 거죠. 해발 550미터에서 바라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