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교회 2025-01-19 주일 3부 예배 실시간 스트리밍
◈왕 같은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라 말2:1~9 2025.01.19.
▲도입
본문은 말2:1~9절인데, 1장에 이어서 계속 "제사장들에게 주는 책망의 말씀" 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 본문을 요약하면, 한 마디로 "예배를 잘 드려야 된다" 였습니다.
오늘은 제사장이 해야 되는 역할 중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관련해서, 지금 말라기 선지자가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샌드위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즉 위와 아래는 빵이고, 그 중간에 고기 패티가 들어있는 것처럼,
2:1~3절까지는 제사장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2:8~9절까지도 제사장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2:4~7절은, 패티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중간이 중요하다는 뜻이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장들이 모습은 어떤 것인가? ...를 선지자가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먼저 경고를 하고, 그 경고를 통해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것은
원래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제사장들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그 길에서 이탈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심판을 명하시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8~9
◑말2:1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1절을 보면, 선포의 대상을 분명히 밝힙니다. 제사장들입니다.
NIV는 '너희 제사장들아, 이 명령은 너희를 위한 것이다' 라고 번역했죠.
잘못 생각하면 '야 이거는 제사장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니까
목사님만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라고 혹시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죠.
그러니까 이 말씀은 1차적으로 영적 지도자에 해당하는 목회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느끼시면, 여러분들이 저와 교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는,
그런 기도의 제목이 되면 좋겠고,
그렇지만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님께서 놀라운 구원사역을 행하시고 나서는,
우리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
오늘 설교제목처럼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벧전2:9
그러니까 이 말씀은, 성도인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2: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2절을 보시면 책망의 내용입니다. 3가지 동사에 주목하면 좋습니다.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첫번째는 듣는 겁니다.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들었으면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그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된다,
마음에 간직하고 새겨야 됩니다.
-세 번째는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
그러니까 말과 행동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 롭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제사장들에게 지금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거죠.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어떤 3가지 불행한 일이 생기는가요?
2절 후반부에 무려 세 번이나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저주' 라는 단어죠.
너희 제사장들이 바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일들을 하지 아니하면,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라는 말씀을 3번이나 반복하십니다.
같은 말을 3번 반복하는 것은, '최상급'처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너희에게 복을 저주 하겠다'는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
1) '제사장의 입에서 나오는 복을 저주 하겠다'
제사장이 해야 되는 제일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가 '축복'이죠.
민수기 6장에 보면, '구약의 축도' 라고 불리는데,
하나님이 제사장들 보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민6:23~27 '아론과 그의 아들들(제사장)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이런 축도 의 내용 플레 축복의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제사장 들에게 축복하는 일을 맡기셨지만
그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뜻을 귀로 듣고, 마음에 새기고,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않으면,
그들이 아무리 축복을 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저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거죠.
2) 또 한 가지 해석은, 제사장에게 약속하신 복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특별한 지위, 특별한 혜택을 그들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제사장들이 약속하신 그 복(특권)을, 바로 저주로 바꾸시겠다는 거죠.
이렇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저주 하였다'
오늘날 우리들은 알 수 없지만, 말라기 당시 그들이 아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제사장을 이미 저주하신 모양입니다.
◑2:3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제사장들이 잘못해서 누가 꾸짖음을 당하느냐?
바로 제사장의 자손들입니다.
하나님이 그냥 꾸짖기만 하겠습니까? 꾸짖은 다음에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그 자손들을 망쳐 버리겠다'는 겁니다.
KJV를 보시면 'corrupt, 그들을 부패시켜 버리겠다'
즉 '너희 자손들, 후손들을 부패시켜 버리겠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이죠? '내가 너희 후손들을 망쳐 놓겠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아 저는 '거룩한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는가?'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너희 제사장들의 얼굴에 똥칠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누구 똥이죠? 희생 제물의 똥입니다.
유월절, 초막절, 맥추절은 유대인의 최고 명절입니다.
그 명절에 드려지는 희생 제물이 있는데, 그 희생 제물에서 버려지는 짐승의 똥으로
'너희 얼굴에 그냥 바르겠다'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똥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수치와 치욕입니다.
'내가 너희들의 얼굴을 수치와 치욕으로 가득하게 만들어 버리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 2:1~3절 말씀을 정리하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먼저 요청을 했습니다.
'하나님 명령을 다음에 마음에 두고, 잘 간직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이것을 행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축복을 저주로 바꿔 버리십니다. 우리의 복을 저주 하십니다.
-두 번째, 우리 후손들을 망쳐놓겠다는 거죠.
-세 번째, 너희들의 얼굴을 똥칠하겠다. 너희들에게 수치와 치욕으로 가득 채워 주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들으면, '이거 너무 심하신 게 아닌가?
왜 하나님이 이런 엄숙하고 두려운 말씀을 하시나?' 하는 질문이 생기는데,
4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2: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
이것은 뭔가 하면, 하나님이 처음 제사장을 세우실 때,
모세 때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처음 제사장을 세우실 때,
그 레위 제사장 하고 세우신 언약이 있는데,
'그 언약이 파괴되지 않고 항상 있게 하기 위해서'
이 두려운 명령을 그들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런 엄숙한 명령을 주신 것은,
파괴를 위함이 아니고,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그럼 무엇의 회복인가요?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입니다.
구약 성경에 정확하게 '레위 언약'이 무엇이다... 라는 말은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레위 언약은 결국 뭔고 하면,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 중에서
아론의 후손들 가운데 제사장을 처음 세우실 때,
그들에게 맡기신 직책, 그것을 어떻게 감당해야 되는지...
하나님이 세부적인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잘 실천 했을 때, 하나님이 어떤 놀라운 복을 주시는가 하는 것을
그들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을 세우실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바로 '레위 언약'이라고 하는 거죠.
렘33장을 보겠습니다.
렘33:21~22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려 그에게 그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여기 두 개의 언약이 등장하죠.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 .. 이거는 '다윗 언약'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바로 다윗의 후손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게 다윗에게 주신 언약이죠.
-또 하나 중요한 언약이 있는데 '레위인 제사장에 세운 언약'입니다.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렘33:22
하나님은 다윗과도 언약을 세우셨지만,
바로 레위인 제사장과도 언약을 세우신 겁니다.
오늘 본문 2:4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엄숙하고 두려운 명령을 주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나님이 처음 제사장 제도를 세우실 때, 레위 제사장과 맺은 언약이 있는데,
그게 깨뜨려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게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주는 거다' 하셨죠.
한 마디로 레위인 제사장들의 군기를 다잡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제사장 제도가, 권위 있게 계속 대대로 내려갈 수 있으니까요!
◑2: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여기에 '레위'는 누군가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처음 세워진 레위인 제사장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에게 12지파가 있었는데, 제사장은 레위지파에 속한 사람,
그 중에 특별히 아론의 후손들만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레위 제사장'이라고 말하는 거죠.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두 가지로 먼저 설명을 하십니다.
이 언약을 주신 목적은 무엇이냐?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5
무슨 말이냐면, 이 레위 언약을 잘 지키면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생명과 평강을 주시는 언약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레위 제사장들에게 이것을 주신 것은,
제일 큰 목적이 뭐라는 거죠? '그로 경외하고 하려 함이라' :5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왕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가지신 신약 성도인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가장 기대하시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하나님은 가장 기뻐 하십니다.
이 목적을 위해서, 레위인 제사장들을 세웠다는 겁니다.
◑2:6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5절 끝부분부터 ~ 6절까지 말씀에, 하나님이 처음 세우셨을 때,
레위인 제사장들의 모습을 4가지로 설명합니다.
이거는 하나님이 기대하셨고, 가장 기뻐 하셨던 제사장의 모습을,
하나님은 4가지로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의 기도제목이 되어야 돼요.
1)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5b
하나님이 처음 세우신 레위인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분의 이름을 두려워 했다는 겁니다.
여기에 '경외'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표현으로는 '코람 데오'입니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 면전 앞에서 내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분의 이름을 가장 두려워하고 귀한 것으로 그들은 여겼습니다.
2) 처음 제사장의 모습 두 번째 입니다.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6a
근데 영어 번역은 '그의 입에는 참된 가르침이 있었다'라고 번역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불의함이 없었으며'
즉 진리에 벗어나는.. 정도에서 벗어나는 불의함이 없었다.. 라고 기록합니다.
3) 하나님과 레위 언약을 맺은 처음 제사장의 세 번째 모습은, 손과 발의 묘사인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처음 제사장, 그는 하나님과 함께 걸어 갔습니다. '동행'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 아주 드물게 나오는 표현입니다. 누가 하나님과 동행 했죠?
처음 이 표현이 등장하는 사람은 에녹입니다.
에녹은 3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을 했습니다. 창5:22, 24
두 번째는 노아입니다. 창6:9
이 세상이 다 홍수 심판으로 멸망할 수 밖에 없을 만큼 타락했지만,
노아는 의인이었는데 어떻게 살았는가요? 하나님과 동행을 했습니다.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되, 화평과 정직함으로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동행하려면 어떤 일이 있어야 되죠?
우리들도 가족과 같이 잘 걸어가다가 한 번씩 싸울 때가 오잖아요. 언제 싸웁니까?
갈림길이 나올 때죠. 한 사람은 이쪽으로 가자, 또 한 사람은 저쪽으로 가자...
그러면 동행이 깨지게 되죠.
근데 계속에서 동행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마음이 합해져서, 그 갈라지는 순간에도 마음이 합해질 때
우리는 계속에서 동행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걸어갑니다.
하나님과 사회 좋게 걸어가다가, 또 싸울 때가 오는 거죠.
또 갈림길이 나와요. 나는 이 길로 가고 싶은데, 하나님은 다른 길을 이야기 하십니다.
자, 그러면 계속 동행이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하나님이 바꾸셔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알아서 하나님 뜻을 따라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과 내가 뜻이 안 맞는 순간이 나와요. 갈림길이 나와요.
갈림 길이 나올 때, 지금 에녹이 3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무엇이냐?
3백 년 동안 갈림길이 나와서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충돌할 때는,
에녹은 '내 뜻을 하나님께 맞추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충돌해서, 하나님과 동행이 깨뜨려 지려고 할 때,
하나님이 더 잘 아시는 분이시고, 그 분은 창조주시고, 시작과 끝인 분이시다... 라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고, 그 분의 뜻에 내 뜻을 맞추는 것이 무엇이냐? 그게 바로 믿음이죠.
그제야 무엇이 계속될 수 있느냐? 하나님과 동행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던 그 시내산에서 최초의 제사장들은 어떤 모습이었느냐?
갈림길에 있을 때마다, 그들은 화평과 정직함으로 하나님과 같이 걸어갔다...는 거죠.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맞추면서, 하나님과 같이 걸어 갔다는 겁니다.
4) 네 번째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6
이게 '레위인과 언약'을 통해서, 제사장에게 기대하신 모습니다.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에서 떠나게 하는 일'이죠.
제가 오늘 이 말씀을 전하는데, 하나님이 보셨을 때,
'오늘 이 설교를 잘했나 못했나?' 하는 것은, 어디에서 판단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서 은혜를 받고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이것 가지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게 아니죠. 그럼 어디에서 인정 하겠습니까?
내일부터 한 주간 살아갈 때,여러분이 돌이켜서
바로 죄악에서 떠나는 삶을 실천하게 되면,
제가 말씀을 바르게 전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설교를 했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설교가 아니죠.
자,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 하셨을 때,
정말 그 광야 시대의 제사장들, 그 초기 레위인 제사장들이 보여줬던 네 가지 모습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불의함을 없었습니다.
-화평과 정직함으로 하나님과 계속해서 같이 걸어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돌이켜서 죄에서 떠나게 하는 이 역할들을 그들은 잘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회자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참 성도들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모습을, 우리가 사모해야 하는 거죠!
그렇지만 또한, 이 세상 사람들과 여러분이 같이 살아갈 때
여러분들이 만약 세상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고, 불의함이 없고,
화평과 정직으로 하나님과 항상 같이 걸어가면,
그래서 여러분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다가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바뀌는 일들이 일어날 때,
얼마나 이 세상이 밝아지겠습니까?
◑2:7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7절에서 제사장들이 이렇게 살았던 이유를, 한 번 더 강조하시는데요.
원전에서 7절 앞에는 '왜냐하면'이 들어가 있습니다. *히 '키'
'왜냐하면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된다'는 거죠.
이 지식은, 바로 앞에 나온 표현들을 참조하면 '진리의 법을 지켜야 된다'
제사장의 입술은, 하나님이 주신 진리를 바로 지켜야 된다는 거죠.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무엇을 얻어야 되느냐?
율법 토라 입니다. 즉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입에서 얻을 수가 있어야 됩니다. :7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제사장의 입술은 바로 하나님의 진리의 법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되고,
백성들은 그의 입에서 하나님의 법을 구할 수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근데 왜냐하면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라'
'사자'는, 라이언이 아니고, '맡길 사' 입니다. 使者
그래서 영어번역은 '메신저' 입니다.
제사장은 누구냐? 만군의 여호와의 메신저가 됩니다.
구약 성경을 조금 더 주의 깊게 보시면, 이 '여호와의 사자, 여호와의 메신저' 라는 표현은
누구한테 적용되어진 표현이냐?
사실은 제사장이 아니고, 선지자에게 적용된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지금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여호와의 사자' 라는 표현을 지금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 여호와의 메신저' 라는 말이 가지는 가장 분명한 이미지는,
'하나님 앞에 서서 섬기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그 앞에 서서 (옛날 말로 시립해서) 그 분을 섬기는 사람이 누구냐?
바로 '하나님의 사자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그 분을 섬기니까
그의 귀에 무엇이 들립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이 주어지죠.
하나님 앞에 서서 그분을 섬기다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가르침을 받아서
바로 이 말씀과 가르침을, 교회와 세상을 향해 전달해 줘야 될 사람들이 누구냐?
바로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그래서 이 호칭은, 선지자들에게 먼저 적용이 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지금 제사장들에게 적용을 시키는 것입니까?
제사장들도 똑같죠. 토라(율법)를 연구해서 가르칠 때,
눈으로 보고 머리로만 따지지 말고, 누구 앞에서 이 일을 해야 된다는 겁니까?
하나님 앞에서 이 일을 해서,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고 살피지만, 누구의 교훈과 가르침을 받는 시간이 되어야 되느냐?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과 가르침을 받는 시간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제사장은 누구냐?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 하나님 앞에 서서 그분을 섬기면서,
그분이 주시는 말씀과 가르침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달해 주는 사람,
바로 이 책임을 맡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 입술은 언제나 지식을 간직해야 되고,
백성들은 그의 입에서 바로 하나님의 법을 얻을 수 있어야 된다는 거죠.
저는 지난 한 주간 동안, 제게 제일 충격을 준 표현이 7절의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들으시면서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오늘 설교하는 내용을 준비하는데, 정말 시간적으로 많이 걸립니다.
정말 한 이틀 정도는, 공부하고, 살피고, 또 자료 찾고, 검증해서
근근히 이 설교 내용을 제가 준비를 하거든요. (*본문 해석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래서 본문 해석을 건너뛰고, 그 중에 한 구절만 뽑아서 적용만 하는 설교들이 많지요.)
근데 저는 그냥 자료 찾고, 뭐 열심히 물론 기도하면서 하지만,
그냥 제가 머리로, 그냥 공부하면서 정리한 내용을 설교할 때도 있죠.
'근데 내가 지금 만군의 여호와의 메신저인가?'
지금 말씀을 전하는 내가 만군의 여호와의 메신저로 지금 전하고 있나?
아니면 단순히 성경을 공부해서 전하는 사람으로 지금 설교를 하고 있나?'
여러분들이 들으실 때는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저한테는 이게 마치 이 망치로 얻어맞는 기분이었어요.
저는 그냥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오늘 설교 끝나고 나면
내일부터 또 열심히 설교 준비를 하겠죠.
저는 '내가 공부해서 잘 준비하고, 그리고 기도하고 도움 받는다'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 말씀 대할 때 '야, 내가 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이 무엇이냐?
하나님 앞에 서서 그 분을 섬기는 거구나!
하나님 앞에 서서 먼저 그 분을 섬기는 것이고,
그 분 앞에서 이 말씀을 준비해서,
내 머리로 깨닫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과 말씀을 내가 받아야 되는 거구나...'
그래서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을 받아서
내가 성도들에게 전달해 줘야 되는데,
내가 머리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
바로 살아계신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깨달음과 교훈을 바로 전달해 줘야 될 사람이라는 거죠.
저는 우리 모든 목회자들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인가?
민군의 여호와의 사자로 하나님은 그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서
그 분을 섬기는 가운데, 바로 이 말씀을 우리가 배워야 되고,
하나님이 주신 교훈과 가르침을 받아서 성도들에게 전달해 주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 되면, 교회가 달라질 수밖에 없죠.
근데 2:8~9절을 보시죠. 안타까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2:8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그러나 너희(제사장)는 그 길에서 떠났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거스르는 사람이 되게 했다는 겁니다.
◑2:9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너희(제사장)가 바로 이 이 길에서 이탈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죄에서 돌아서게 만드는 게 아니라,
율법 앞에 무너지는 사람으로 만들어서, 레위인의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에,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느니라'
이게 뭔가 하면, 앞에서 등장했던 '너희 얼굴에 똥칠 하겠다'는 것과 같은 내용이죠. :3
'모든 백성 앞에서 너희가 멸시와 천대를 당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9
앞부분은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않았다.
율법을 행할 때는, 율법과 관련해서 너희는 어떻게 했느냐? '사람들에게 치우치게 했다'
이거는 문자적으로 '얼굴을 들었다' 입니다.
율법과 관련된 것을 해석할 때마다, 너희 제사장들은 '얼굴을 들었다'
이 말은 '편애, 편파적'이 되었다는 거죠. you have been partial in the law.
너희들은 율법과 관련해서 설명할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이 사람들한테는 요렇게 이야기하고,
저 사람들한테는 저렇게 이야기하고...
율법을 있는 것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편파적으로 편애적으로 이 말씀을 전해서
사람들이 죄에서 돌이키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 앞에 무너지는 사람으로, 너희(제사장)들이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너희들은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멸시'라는 단어는,
근데 이 (제사장에 대한 예언) 가르침이 시작될 때,
1:6절에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바자, despise
2:9절은 이렇게 마치죠.
'내가 모든 사람 앞에서 (너희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할 거다' *바자, despise
'너희가 바로 내 이름을 우습게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의 인생을 우습게 만들어 주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마무리를 하시게 돼요.
정리하면, 우리들은 모두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우리가 해야 되는 첫 번째 일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마음에 간직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영화롭게 하는 일을,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합니다. 2:2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장의 모습을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고, 불의함이 없습니다.
-화평함과 정직 가운데 하나님과 같이 걸어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에서 떠나도록 그들을 도와주게 됩니다. 2:6
왜 이런 일을 해야 되죠? 제사장은 누구냐?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 입니다. 2:7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연구하고 배워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해 주어야 될,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들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백성들(만민 제사장)의 입에는,
바로 하나님 법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되고,
세상 사람들은 제사장들에게 무엇을 구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법을 구하고,
제사장들은 그 하나님의 법을 그들에게 알려줄 수 있어야 됩니다.
저와 우리 성도들은 바로 이 "왕 같은 제사장"의 사명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회복해서
정말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바 저주를 받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제사장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해서 저주를 받으면,
우리 후손들을 망치고, 2:3
우리들의 얼굴에 똥칠을 하는, 2:3
이런 어떤 참담한 삶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평강으로 가득 차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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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 속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신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히13:2
이 히브리서 말씀은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해 준다.
겉보기에 귀한 손님 같았으면 대접에 소홀하기가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행색이 초라한 손님인 경우다.
그들 중에는 천사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나님의 사자를 영접한 것은 하나님을 영접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의 사자를 박대하거나 대접에 소홀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그렇게 대한 것이다.
어제는 매우 묘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을 통해,
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내가 내 자신의 본 모습을 잘 깨닫지 못하니까,
내가 가장 싫어하고, 질색하는 사람을 내 곁으로 보내셔서
마치 거울을 쳐다보는 것처럼,
그 사람의 질색인 모습을 쳐다보면서, 하나님은 깨달으라고 하신다.
'저것이 바로 똑같은 네 모습이란다!'
그렇게 따지고 볼 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게 바로 사실이다.
내가 질색하는 그의 모습 속에
내 모습이 고스란히 그대로 비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거울'을 보고
회개하라고
하나님은 내가 질색하는 사람을
계속적으로 내 곁으로 보내시고,
마치 우연한 손님처럼 해서
나와 만나게 하시는 것이다. 히13:2
♣저는 얼마 전 샘 해리스가 쓴 Letter to a Christian Nation이라는 책을 읽고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펀 글)
샘 해리스는 현대 세계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 종교에 있으며,
모든 종교를 없애는 것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기독교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점에 대해
딱히 반박할 말이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잘못된 종교는 차라리 없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읽은 호세아서 8장의 말씀에서처럼, 타락한 제사장이 많아지면
세상은 더 악해지며, 타락한 교회가 많아지면 세상은 더욱 타락할 뿐 입니다.
결국 안티들이 말하는 ‘종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뭐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겠습니까?
목욕물을 내어버린다고, 씻긴 아이까지 버리겠습니까?
제사장이 자기 사명을 감당하면, 사회와 공동체에 어마어마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그런 양면성이, 종교지도자(제사장)에게 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제사장이 잘못되면, 사회 전체에 재앙이 되며,
거꾸로 사회 전체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은, 거슬러 올라가면 제사장이 잘못될 때
그렇게 된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