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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는 기쁨을 못 이긴다

LNCK 2025. 1. 2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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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는 기쁨을 못 이긴다            빌3:1~3, 4:1, 4        

빌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도입 / '오늘의 분노 사회를 치유할 처방은 기쁨'

할렐루야, 오늘 말씀과 그 은혜를 통하여, 여러분들 가운데 
은혜의 사각 지대가 아무도 없기를 바랍니다. 

명절주일 인데, 제가 이사야서 강해를 잠깐 멈추고, 
오늘은 우리 신앙의 가장 핵심 기본, 신앙의 토대 foundation 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나라도 주님이 보호해 주시고 
또 여러분을 개인적으로 눈동자 같이 주님이 지켜주시고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불병거, 불 말, 불 성곽으로 지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증오는 기쁨을 못 이긴다" 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미움이 사랑을 못 이기고, 증오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아주 중요한 기본입니다. 
제가 오늘 설교로, 이 본문을 이렇게 택한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에 극심한 분열이 있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잠을 못 이루고 계세요. '이러다가 우리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래서 사람들이 날카로워져 있고, 사회의 흐름이 거칠고 사나워졌습니다. 

그래서 보면 '분노가 일상화'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도, 이런 사회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가지고, 
교회도 거칠어졌고, 
교회는 품격과 존귀함을 유지해야 되는데, 
그런 것들이 좀 약해져 가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극단적인 갈등으로 인해서, 국가의 미래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죠. 

국가의 도약에는 골든 타임이 있습니다. 
만약 지금 이 시기를 극복하지 못 한다면, 이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면, 
되돌릴 수 없는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인 세대는, 우리의 자라나는 다음 자녀 세대에게 
영광된 국가를 물려줘야 할 무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줄로 믿습니다. 
반드시 좋은 나라를 우리가 물려줘야 됩니다. 
그 누구도 자녀 세대의 미래를 망치거나, 어렵게 할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는 저 자신이나,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다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정치적 스탠스(자세)가 다르고, 또 평가와 판단이 다릅니다만, 
여러분과 제가 이제 하루 이틀 이 땅에서 살고 말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 한반도에서 살아야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여러분과 제가 기도하는 거 있잖아요. 
우리가 건강할 때에 통일이 돼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통일과 남북 문제까지도 해결돼야 하는 그런 차원이라면, 
우리가 좀 더 전체를 바라봐야 하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끝까지 이 민족의 장래를 이끌고 가야 할 사람들이 돼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무너진 교회는, 반드시 회복이 돼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려면 남남 갈등이 처리가 돼야 하고, 남북 문제가 해결이 돼야 하고 
방향을 잘 잡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한반도에서 어디 (도피해서) 갈 데도 없어요. 
우리는 어디 다른 나라로 갈 생각 하지 말고 
'이 나라가 잘못되면 우리는 죽는다'고 생각하고, 
이 나라에서 우리가, 뭐 서로 생각이 다른 분은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여기서 결판을 내야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고 박사 학위 받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 문제보다도 더 큰 은혜가 들어와야 되는 것이에요. 

배가 바닷가 뻘밭에 좌초 되었어요. 
그 좌초 된 뻘에 누워있는 배를, 이렇게 다시 바다 위에 띄우려면,
막 뭘 어떻게 해보려 해도, 조금 밖에 해결이 안 돼요. 그 크고 무거운 배를 못 움직여요.

그런데 은혜에 만조가 몰려오면, 거기에 밀물이 들어오면, 배가 두둥실 뜨는 것이에요. 
그런 차원에서 지금 한국 사회나 한국 교회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강력한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이 사회의 아픈 병들을 치료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야말로 이 사회의 미움과 증오의 바이러스를 
오늘 복음의 능력과 기쁨의 백신을 가지고 처리를 해야 되는 것이에요. 

지금 우리는 어디 갈 데도 없어요. 통일이 돼야 하는 것이고, 
우리는 반드시 우리에게 주신 이 큰 사명,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데, 
제가 볼 때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 
우리는 수많은 아픔과 성장통과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런데 그 겪은 것이 다 나쁜 것이 아니에요. 
이 독특하게 어려움을 겪고, 환난을 겪은 가운데,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이 탄생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갑자기 2024년 12월부터 어려움이 더 커졌지만, 
현재의 이 고난도, 앞으로 더 큰 은혜와 능력, 은혜의 만조가 몰려오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이, 이 현 상황에 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개인이나 저나 우리 각자에게 다 정치적 스탠스가 있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력한 복음의 백신을 통하여, 강력한 말씀의 백신을 통하여, 
이 (사회적 분열과 혼란의) 바이러스를 치료해야 되는 것이에요

강력한 복음의 백신을 통하여, (사회의 분열과 혼란의) 바이러스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지금 한국 사회에 불이 났는데, 지금 비상사태 인데, 
뭐 복음의 고담준론 이나 논한다고 뭐가 되겠나?'  *높은 차원의 과장하고 떠벌리는 말

여러분, 오늘 이 본문 말씀, 지금 바울이 빌3장에서 하는 이 말씀은
바울이 처참한 환경에서 했던 권면이에요. 

그는 당시 로마의 폭정 아래 꼼짝도 못하고 있었고, 
바울이 지금 쓰는 빌립보서는 옥중서신 이에요. 
발에 차꼬를 차고 말도 못하는 그 어려움 가운데서 바울은

'너희가 진짜 복음의 백신을 갖기를 원하느냐? 
너희가 진짜 증오의 바이러스와 이 고통의 바이러스 환경을 이기기를 원하느냐?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이렇게 바울은 말씀하고 있는 것이에요.  

◑빌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끝으로'  
'편지의 마지막으로' 라는 뜻이죠.  
이런 열악하고, 어렵고, 힘든 시대적인 어려움과 개인적인 고통 가운데서도 
내가 너희들에게 하는 말이 
'이 원한을 갚아 달라.. 이 문제를 이거 어떻게 싸워서라도 해결하자' 이게 아니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 
'아니 이게 말이 되느냐고, 그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어떻게 주 안에서 기뻐 하느냐고?' 

그런데 '내가 너희에게 이 같은 말을 쓰는 것은, 
즉 주 안에서 기뻐하는 이 말을 계속 반복해서 쓰는 것은,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그랬어요. 빌3:1

자, 지금 우리 한국의 이런 여러 가지 여건 가운데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것이 계속 반복해서 하는 말이라 할지라도, 
이거는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이건 수고가 아니다, 이거는 계속 해야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씀을 듣고 적용하는 우리 모두에게, 이것이 가장 우리의 삶에 안전하니라!'
이런 말입니다. '기뻐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죠.

▲빌3:2절에 보니까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개들을 삼가고' 
이 개는 애완견이 아닙니다. 물어뜯기를 잘 하는 아주 못된 야생 들개를 뜻합니다.
이 말은, 경멸스러운 존재를 가리킬 때 사용했던 상징적 표현이죠. 

 

예수님도 이 말을, 진리를 거역하는 자들에게 사용하셨고, 마7:6
여기서 성도들을 괴롭히는 유대주의 행악자들을 지칭합니다.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했는데, 
과거 성경에는 '손할례당을 삼가라' 고 했죠.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죠.

'손할례당'은 헬라어로 '절단한 자'를 의미합니다. 할례를 상징하죠.
바울은 “손할례당” 이란 말로, 할례의식을 강조하고 형식에만 치우치는 
율법주의자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주1)

그리고 '행악하는 자들'은 '악한 일꾼들'이란 뜻인데,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사단을 대리해서 일하는 “악한 일꾼” 일 뿐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수호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일한다고 하지만 
거짓 교훈을 전파해 마침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악한 자” 들인 거죠.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말도 안 되는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과 진리 가운데서 분별하지 못하고, 거짓을 버젓이 말하는 자들이 많아요.

이런 혼란스런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보면 현재 우리가 지금 당하는 어려움 보다, 열 배, 스무 배는 훨씬 더 어려운 
그 상황 가운데서 바울은 뭐라고 얘기하느냐? 

빌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이런 우리가 곧 진짜 할례파이고, 영적인 할례당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손할례당
이것이 바울에게는 얼마나 간절한지, 
빌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 같은, 그 안타깝고 비진리, 악을 행하고, 거짓이 횡횡하고, 
엉터리 프레임을 씌우고, 온갖 악이 난무하는 가운데서, 

바울의 마음 속에 정말 간절한 말이 뭐냐면 
'내가 이런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며 얘기한다. 제발 좀 들어다오.' 
그래서 하는 말이 '기뻐하라'는 권면입니다.

빌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러니까 수많은 난제 가운데서... 바울은 감옥에 갇히고, 폭정 가운데 있고, 
말도 안 되는 어려움이 있고, 빌립보 교회에는 분란이 일어나고, 
이런 외우내환의 위기의 상황 가운데서... 최고의 백신이 뭐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4

'목사님, 그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지금 무슨 기쁨이 있습니까? 전투를 해야지요'

그런데 여러분, 지금 우리가 앞둔 사회의 모든 문제는, 
근원적으로 영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되는데,
먼저 '주님 안에서 기쁨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 마음속에, 짐을 갖고 분들 많이 계실 거예요. 
오늘 이 '기쁨의 복음'을 통하여, 이 '환희의 복음'인 빌립보서를 통하여 
여러분들이 짐 진, 모든 삶의 무거운 짐들이 벗겨지기를 원하는 겁니다. 

이제 내일부터 구정 명절이 시작됩니다. 
그러면 안 봐도 비디오 예요. 
명절에 가족들을 다함께 모였을 때 반드시 사고, 갈등이 일어납니다. 

멀리 헤어져 있는 가족들이 다함께 만나면, 반가운 면도 있지만, 
또 (덜 깨어진 사람들 사이에) 어떤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죠.

젊은이들은 '너 언제 결혼할래?' 그러면 또 불편해 하고, 
하여튼 가족들이 다함께 모이면서, 여러 얘기들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마음이 아픈 일들이 생기기 쉽죠.
그때 오늘 이 말씀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주 안에서 기뻐하라!' 

◑적용 

▲1. 기쁨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에요. 성령의 열매입니다.
기쁨을 감성의 문제라고만 한다면, 기쁨이 up and down 될 수 있고,
기쁨이 있다가 금방 사라질 수도 있고, 또 희석될 수도 있겠지만, 
이 기쁨의 문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러니까 감정으로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실체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기쁨이 감정이라면 저도 자신할 수 없어요. (늘 기뻐할 수 없어요)
우리가 우리의 감성을 어떻게 다 컨트롤 할 수가 있을까요? 
되어져 가는 상황이 다 어려우니까요.

그러므로 기쁨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기쁨은 성령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갈5:22 '희락'
속에서 저절로 맺어지는, 변화된 심령가운데서 평소에 일어나는 것이라는 거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열매가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기쁨(희락)은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에, 
우리 감정을 초월하는 실체인 줄로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이 실체를 붙잡기 위하여, 첫 번째 해야할 것은 뭐냐하면,
빌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우리가 손할례당(외적 할례를 중요시 여기는 율법주의)이 아니라, 공로주의가 아니라, 
성령으로 봉사하고... 

즉 정말 복음의 은혜에 충만해 가지고, 나같은 사람이 구원 받고, 
내가 돌아온 탕자이고, 내가 은혜에 빚진 자이고, 이런 마음에 은혜를 깨닫고 
성령의 은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자랑하고'
그러니까 우리가 기쁨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예수님으로 자랑하는' 것이에요. 3:3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들은, '기쁨'에 관해서는 우리하고 좀 달라요. 
기독교에만 이 '기쁨의 복음'이 있어 가지고, 
여기에는 기쁨의 찬양과, 기쁨의 시편과, 기쁨의 고백이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으로 자랑한다'는 것은,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자랑하였죠. 
그러나 참할례당은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 자들로서 
모든 만족과 소망과 기쁨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오는 것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갈6:14

성도는 예수님으로 묵상하고,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찬송가를 부를 때도,
'주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 되고 
(후렴)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물 밀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침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이 예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면서 고백 할 때,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기쁨이 유지될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물밀 듯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이유는, 
주 예수 내 마음에 오심' 이에요.
즉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주님을 자랑한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자랑할 때, 세상에 그 어떤 종교나, 어떤 것도 주지 못하는 
기쁨의 파도가 우리에게 넘실댄다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지금도 이걸 모르고, 지금도 유대교는 통곡의 벽 앞에서 
기쁨 대신 눈물을 흘리면서 애통하고 있는 것이에요. 

기독교에만,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자랑할 때 생기는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자랑하고, 주님을 신뢰하여, 
내 육체와 환경 대신에, 주님을 자랑하고 주님을 신뢰할 때에, 기쁨이 온다는 것입니다. 

지독한 삶의 환경, 상태의 어려움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고백하고, 주님을 묵상하고, 주님을 찬양할 때 
기쁨이 온다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 라는 작가는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천국의 문지기는, 천국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가지 질문만 한다. 
'당신은 예수님을 알게 되어 참을 수 없는 기쁨이 있는가?'」

천국에 있는 문지기, 이 문지기를 통과해야 천국에 들어가는 거잖아요.
그가 이렇게 질문한대요 '당신은 예수님 때문에 진짜 참을 수 없는 기쁨을 소유하고 살았는가?'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많은 성도들이 지금 지방으로 내려가 있어요. 
지방으로 내려가 있는 성도든지, 역귀성해서 함께 예배를 드리든지 상관 없이, 
오늘 예수님 때문에 참을 수 없는 기쁨이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기 때문에, 그 분을 묵상하기 때문에, 
그 분을 찬양하기 때문에, 참을 수 없는 기쁨에 참여하고 있느냐? 이 말이에요. 

이것이 어떤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실체로, 성령의 열매로!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즉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으로, 실존적인 경험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혹시 요즘 나라에 되어지는 혼란스런 일들 때문에,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대립과 분열 때문에, 
이 참을 수 없는 기쁨을 놓쳐 버린다?  
그럴 수가 없는 거죠. 크리스천은 그게 안 됩니다.   

만약 놓쳐 버린다면.. 그건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기쁨을 알면서도, 전혀 누리지 못한다 못한다면.. 그것도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우리는 마음 속에,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묵상이 되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이걸 실존적으로 깨닫고 
우리의 마음 속으로 확인하면, 
거기에서 이 기쁨이 유지되고, 그 기쁨의 열매를 실체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예요.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기쁨 그 자체예요. 
그래서 여러분 불을 품고 있으면 열이 나고, 빛을 품고 있으면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기쁨이신 예수님을 품고 있으면, 내게서 기쁨이 뿜어져 나오는 줄 믿습니다.
우리 속에 기쁨이신 예수님을 품고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빌4:1절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서라' 

다른 번역엔 '굳게 서라'고 번역했는데, 이 번역이 더 좋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기쁨을 간직하기 위해서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서느냐? '주님 안에서 굳게 서라'는 거예요. 

'굳게 서라'는 것은 군사적인 용어에요.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서라는 거예요. 

군인은 원수가 공격해 와도, 도망가는 게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켜야 돼요.  
굳게 서지 않으면 전쟁에서 지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은 어떤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에요. 
굳게 서되 조건이 '주님 안에서 굳게 서라' 

내가 가진 신념과 인생관 때문에 굳게 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경험과 능력 때문에 굳게 서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원천이신 주님 때문에 굳게 서라는 것이에요. 

이거(굳게 섬)는 바울사도의 독특한 습관이고 표현이에요. 바울의 신학이에요.
고전16:13 '깨어 있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그랬어요. 
바울의 기쁨의 신학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굳게 서야' 되는 것이에요. 

사회에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다 해도, 
우리 실제 삶은 루틴한 삶의 반복이에요. 
우리는 자야 되고,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야 되고, 매일 자고 일어나고 
인생은 단조로운 삶의 반복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이 지나갈 때도 많습니다. 
일상의 나날의 연속이에요. 

일상의 루틴 삶을 하루하루 기쁘게 살길 원하신다면, 
예수님과 함께 '굳게 서야' 되는 것이에요. 

예를 들면, 미국 뉴욕의 최고급 호텔 가운데서 플라자 호텔이 있습니다. 
그 호텔에서 도어맨, 문 열어 주며 안내하는 사람이죠.
도어맨으로 53년간 일했던 죠셉 조랜틴 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는 53년 가운데, 딱 3일만 결근을 했어요. 
그러니까 18년에 한 번 결근했다는 것이죠. 거의 결근 안 한 거예요. 

사람들이 물었어요. '도어맨 자리가 썩 편한 자리는 아닌데, 
뉴욕은 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비가 오는 날이 있고, 또 추운 날도 있는데,
어떻게 그 53년을 한결 같이 서 있을 서 있었을까요?'

그럴 때 이 분의 대답이 참 놀라웠어요.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호텔에 새로운 사람들이 늘 들어올 때마다
예수님을 맞이하고 환영하고 모시듯이 맞이합니다.' 

그러니까 희한하게도 제가 있는 그 자리가, 기쁨의 자리가 되도록 주님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53년간, 딱 3일만 결근하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오늘 여러분께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번 구정 명절기간이고, 사회에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고, 갈등이 있어도 
금년 한 해 동안 여러분은, 기쁨으로 주 안에서 그 자리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남편들이여, 남편의 위치해서 아내를 사랑하는 자리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아내들이여, 기쁨을 가지고 아내의 자리, 순종의 자리에 서시기 바랍니다. 
부모들이여, 자녀들이여, 모든 성도들이여, 기쁨으로 자기 자리에 굳게 서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산에 오르면 산수가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가 아름다운 이유가 뭡니까? 
돌은 돌의 위치에, 나무는 나무의 위치에, 
특별히 지금처럼 북풍한설이 불고, 매서운 추위가 닥칠 때 
산에서 소나무와 다른 나무들이 자기 위치를 지킬 때, 
자기 자리나 산마루를 장승처럼 지키는 소나무가 있을 때, 그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어떤 가정이 훌륭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아마 그 가정에 아버지 어머니가 산 기슭의 청청한 소나무처럼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기쁨으로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어떤 경우에서도,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에요. 
배의 키잡이가 자기 자리를 떠난다면, 바다 한 가운데 있는 배를 누가 조종할 수가 있겠습니까? 

목자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사자들로부터 양들을 지킬 수가 있겠어요? 
파수대를 지키는 파수꾼이 자기를 자기를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도적과 강도에 대항하며, 그 파수대를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자기 자리를 지킵시다. 지키되, 기쁨으로 주 안에서 굳게 서서 지키십시다. 

하덕규 목사님은, 제가 아끼는 아우 같은 분인데 
그 분이 쓴 그 노래 가운데 "풍경"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돌아오는 풍경」 이라고 노래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뭡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자랑하면서, 예수님 안에서 굳게 서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에요. 

그래서 일단 사회에 갈등이 있고, 이런 여러 가지 상황 가운데서 
다른 얘기 하지 말고, 여러분과 제가 대한민국의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기쁨의 선봉장이 돼야 돼요.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기쁨의 대사 ambassador 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이렇게 하면, 이 갈등들이 해결될 수 있는 단초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제 자리를 지킨다는 게 뭔가요? 제 자리로 돌아온다는 게 뭔가요? 
대한민국이 그동안 어려운 역사 가운데서 받은 은혜들이 있어요. 

제가 며칠 전에, 한국의 큰 기업을 운영하는 장로님을 만나서 이런 저런 대화를 했어요. 
제가 물었어요. '지금 나라가 쉽지 않은데, 앞으로 경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장로님은 '목사님, 경제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근거가 뭡니까?' 

장로님은 '경제는 두 가지에서 운영이 됩니다. 첫째는 환율 입니다. 두 번째는 금리입니다. 
근데 환율이 그 지난 12월에 어려움이 있고 난 다음에, 처음에는 약간 출렁거렸습니다. 

근데 대한민국은 외환보유고가 세계에서 많은 편에 속합니다.  *세계 9위
그래서 1998년 IMF 때와는 다를 겁니다. 그리고 환율이 곧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겁니다. 

금리도 그냥 안정적 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은 제조업이 아직 살아있습니다.
제조업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도 괜찮을 겁니다. 
왜냐면 미국 경제나 세계 경제가 나아질 것이기 때문에, (제조업으로 수출하면)
경제는 그렇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에 이렇게 좀 안심이 되더라고요. 

주님, 한국이 속히 제 자리를 찾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제자리를 찾는데, 
여러분의 개인적인 어떤 정치적 스탠스를, 제가 뭐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 크리스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의 능력과 기쁨의 은혜를 가지고, 
우리가 제 자리를 지키고 서 있어야 되는 것이에요. 

▲3. 기쁨은 성경의 명령입니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오늘 이 말씀은 권유를 한다든지, 요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형이에요. 
강력한 명령형이에요. 이 말은 뭐냐 하면 '아무리 어려워도 기쁨을 선택하라'는 것이에요. 
'아무리 어려워도 기쁨을 결정하라'는 것이에요. 
지금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대한민국이 어렵고 힘들고, 정말 그 분열상이 극심한 이런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힘들고 어려워도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쁨을 선택하라'는 것이에요. 

'기뻐하기로 결정하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매일 매일 우리가 삶을 선택 하잖아요. 
'오늘 아침은 뭘 먹을까? 오늘 무슨 옷을 입을까? 오늘 운동을 할까, 말까?'
여러분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마찬가지로 기쁨도 선택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증오의 바이러스'가 퍼지지 못하도록 
기쁨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기쁨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바울처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기를 결정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럴 때 우리속에 상처와 쓴뿌리들이 처리되는데, 
상처를 선택할 것인가, 분노를 선택할 것인가, 기쁨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에요. 

그럴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요? 
환경이 어렵고, 상황이 힘들어도, 기쁨을 선택하면,
그 어려움의 환경이, 그 상황이 삭제되는 것이에요. 이건 참 놀라운 진리예요. 

이 결정이 여러분의 삶을 한 단계 위로 올려줄 거예요. 
내가 기쁨을 선택할 때, 혼란스러운 환경이 삭제되는(물러가는) 거예요. 
고통의 환경이 물러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는, 제가 사역을 하면서 
여러분, 구원은 하나님의 섭리와 믿음을 통하여 우리가 구원 받는 거 아닙니까? 
이걸 우리가 회심이라고 그래요. 

우리가 믿음으로 회심하는 것처럼 
사역과 삶의 현장에서, 기쁨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럴 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아름다운 풍경이 될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요? 
합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지금 국가가 어려워지고, 뭐 수많은 문제가 있고, 난제가 있고,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고, 가정적으로 분란이 있어요. 어려움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런데 하박국은 '나는 여호와 말미암아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기쁨은 선택하는 것이에요.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 여러분과 저가 삶의 신앙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이여, 
교회의 영광과 품격과 존귀함을 놓치지 않도록, 
복음의 능력과 은혜 가운데 제 자리에 서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만조가 밀려오는 것이고, 
이것이 모든 사회의 상처와 어려움들을 다 덮어 버리게 될 것이고, 
이렇게 해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도록, 
세상은 아무리 어려워도, 교회는 제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에요. 

기쁨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내 맘에 오신 후에, 주 날 인도하시네 
주께 내 삶 드린 후에 더욱 섬길 수록 더 귀한 주님 
더욱 섬길 수록 더 귀한 주님, 더욱 섬길 수록 주 날 사랑해
매일 내 맘에 기쁨이 넘치네,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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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손할례당 
손할례당은 할례당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보통 할례를 말할 때는 헬라어 페리토메(peritome) 라는 말을 쓰지만, 
여기서 손할례당이라고 할 때 바울은 헬라어 카타토메(katatome)를 써서 
순수한 할례인 페리토메와 구별하고 있다. 

카타토메는 단순히 “절단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손할례당은, 할례의 깊은 뜻과 의미를 생각해 보지 않고, 
단순히 살을 베는 것만 중시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이 할례를 중시한다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금하신 
“살을 베는 것” (레21:5, 왕상 18:26)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것이다. 
바울은 “손할례당” 이란 말로 할례의식을 강조하고 형식에만 치우치는 
율법주의자들을 책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