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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내비게이션 4 경로 재탐색

LNCK 2025. 1. 30. 13:13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삶의 통찰력

크리스천 네비게이션 4 - - YouTube

크리스천 내비게이션 4 경로 재탐색       행16:6~10        2025.01.26. 

▲도입 예화 / 부모의 연극

크리스마스를 앞둔 미국의 어느 집안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화합니다.
'얘, 나야. 너희 엄마랑 이혼 하기로 했다' 
'아니, 무슨 소리에요? 그렇게 금실 좋으셨잖아요?'

'아니야, 말을 안 했지만 지난 45년 동안 참 내가 힘들었다. 너희들 몰라서 그래'
아들이 펄쩍 됩니다. 아들이 아무리 설득해도 아빠가 말을 안 듣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가만히 계세요. 제가 누나에게 전화할게요.' 
조금 지나서 금방 딸에게 전화가 옵니다. '아빠, 무슨 말이에요?' 

'아, 이제 도저히 더 이상 너희 엄마랑 못 살겠다.' 
'아빠, 가만히 계세요. 절대로 싸인 하지 말고... 내일 제가 동생과 함께 갈게요. 
지금 당장 비행기표 끊을게요!' 라고 합니다. 

이 전화를 끊고 아빠가 활짝 웃으면서 아내에게 말합니다. 
'여보, 들었지? 크리스마스 때 드디어 애들이 집으로 온데...' 

자녀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부모가 연극을 한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 명절 때, 이미 부모님을 찾아 오신 분도 계시고, 또 찾아 가실 분도 계실 텐데 
가족끼리 모이는 시간에, 주께서 기쁨과 은혜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부모님 뵙는 게 도리인데, 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뭐 바쁘다' 이런 이유도 있지만, 힘들어 하는 청년들도 있는 것 같아요. 
만나면 어른들이 물어보는 게 부담스러운 거죠. '너 시집 안 가냐?' 
시집가고 나면 '아직 애 소식 없냐?' 자꾸 물어 보고요. 

또 '취직 안 하냐?' 
심지어 젊은이들 말로 훅 들어온다 그러죠. '연봉 얼마냐?' 
또 애들 무슨 대학 보냈느냐? ... 이런 경우에 따라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죠.

(*연로한 세대가 '성공주의' 가치관에 푹 젖어있기 때문에,
항상 청년 세대에게 '연봉', '직책' 이런 것을 물어봄으로써, 
성공한 1~2%를 제외한 나머지 청년들에게, '어르신 기피 현상'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또 금년 2025 구정에는 특별히 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러워져서 
정치 이야기하다가 가족간, 세대간에 싸울까 봐 걱정이에요. 

명절 때, 오랫만에 서로 만나서 마주 앉아서... 여기까지는 좋은데, 
정치 이야기 하다가 그냥 뭐 형제 간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그냥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많은데요. 
우리 교우들 가정에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예, 물론 부모님들, 어른들 입장에서는, 
손자들, 조카들을 보고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게, 관심이기도 하고, 존중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청년이 된 손자들, 조카들이 대답하기 난감할 때도 있잖아요. 그렇죠. 
청년들이, 자기 삶이 막 잘 나가고, 자랑하고 싶은 소식은.. 가끔씩 들리고, 
헤매고, 어렵고... 그럴 때가 많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열심히 갔는데, 길이 막힌 경우가 있잖아요. 

◑갈 길이 막힌 바울, 어떻게 대처했나요?

 

오늘 설교 본문에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행16:6~7

바울 일행이 무슨 사정을 만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핍박이 있었거나, 엄청난 위험이 있었거나, 어쨌거나 어떤 장애물을 만났어요.

방향은 옳은 방향입니다. 기도하고 출발한 일입니다. *2차선교여행
반드시 해야 될 일이고, 계획도 다 세워놓고 
'내가 가는 길이 이 길이다' 확신하고,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다른 길을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벽에 부딪히는 경우 있잖아요. 

우리가 인생에 어려운 선택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하는 시가 있습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찾겠습니다. 
먼 훗날에 돌아보면 아쉬워 하고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아주 서정적인 아름다운 시입니다. 
그런데 좀 비 현실적이지요. 노란 숲 속에 난 고즈녁한 두 아름다운 길, 
차분하게 결정해서, 아쉬움 가운데 가는... 
여러분, 이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여기도 좋고, 저기도 멋진데.. 어디로 갈까?' 한 마디로 '양 손에 떡'이죠. 행복한 고민이죠. 
'어, 좋은 직장 두 군데서 오라 그러는데 어디로 가지?' 

 

'좋은 학교 두 곳에 합격했는데, 어느 학교가 더 좋을지, 
어디가 더 장학금 많이 줄지 고민하고 있어...' 
'결혼 상대로, 둘 다 아까워, 놓치기 싫어...' 

그런 행복한 고민에 빠진 사람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대부분의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로 가도 힘들고, 저기로 가도 고생이고, 두렵고 불안해요. 
혹은 내가 선택해서 노력해 왔습니다. 
'외길'이라 생각하고 꾸준히 달려왔는데, 길이 막혔을 때... 

제가 아는 어떤 분의 아들은 운동을 했어요. 
공부에 별 취미가 없고 그래서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대단히 인기있는 종목은 아닌데, 그래서 경쟁도 많지 않고 그랬어요. 
대학 잘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하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부상을 당했습니다. 마음이 급한 거예요. 
고2, 고3 때, 전국 대회 4강에 들어가야 대학에 갈 수 있는데, 
이거 놓치면 정말 졸업하고 나면 힘들어 지거든요. 

의사가 '몇 개월은 꼭 쉬어야 됩니다' 했는데, 
마음이 급해서 완치되기 전에 대회에 나갔다가 또 다쳤어요. 
어떡 합니까? 이제 운동 못 하게 생겼는데... 

계속 운동하던 아이가, 방향을 돌려서 공부하기도 힘들잖아요. 
너무 너무 고민을 많이 하는 걸, 제가 옆에서 봤습니다. 

다행히 나중에 좋은 전공 선택해서, '스포츠 재활 의학과'에 진학해서 
'나처럼 아픈 사람들 돌보겠습니다' 해서 지금 잘 하고 있습니다. 
(*그때 부상당한 것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어떤 여자 분은, 결혼 직전에 약혼자가 자신을 떠나 버렸습니다. 배신 당한 거죠. 
사실 그 결혼을 결정하기 전에, 좋은 기회가 있었어요. 

유학 가려고 했고, 아주 좋은 조건으로 장학금도 약속 받았는데, 
이 남자가 하도 따라 다니면서 결혼하자고 졸라서, 유학을 포기했는데, 
결혼 직전에 그만 남자가 떠나 버렸어요. 

어떤 목사님은 오랫동안 기도하다가 교회를 개척 했습니다. 
사모님이 피아노를 잘 쳐서, '피아노 학원하면서 이렇게 꾸려 가면 되겠다' 했는데, 
교회를 시작하자마자 코비드-19가 터졌어요. 
교회에도 사람이 없고, 학원에도 아이들이 안 오는 시절에... 어떻게 해요? 
그 목사님하고 함께 대화 나누다가, 눈물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바울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는가요? 
16:6~7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러니까 아시아, 브루기아, 갈라디아, 무시아 ... 이런 지역 이름이 집중적으로 나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계속해서 찾고 모색했다는 거예요. 

'잘 안 되는구나.. 큰일 났구나.. 막다른 골목이구나' 그리고 가만히 있은 게 아니라,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나름대로 조금의 가능성이 있는 곳을, 모색했다는 말입니다. 

'아시아가 안 열리나? 본래 여기로 가려고 그랬는데, 그러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지 뭐!'
그러지 않았다는 거죠. 여기 저기로 (기도하면서) 문을 두드렸다는 것입니다.   *주제

물론 여러분, 그렇게 해서 성공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습니다. 
무시아도, 비두니아도 아니에요. 
부르기아, 갈라디아 ... 다 가능성이 별로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 땅 앞에까지 가보는 거예요. 
장애물이 없어지기 까지.. 날씨가 좋아지기 까지.. 경기가 회복되기 까지... 
막연히 기다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제너 래빈 이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이 일만 없었다면, 사는 게 정말 행복했을 텐데'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즉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그때 그 남자가 배신만 안 했으면... 
그때 내가 다치지만 않았으면...' 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죠.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삶, 그 자체가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애물이 없는 경로 따위는, 삶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분, 장애물은.. 사실 우리 삶을 게으르게 사는, 
다른 계획을 하지 않는 변명 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모색하던 바울에게, 
마게도냐 라고 하는 생각지 못한, 엄청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을 때에, 
그 어려움, 장애가 뜻밖에 예상치 못한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가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잘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한비야 라는 분 아십니까? 이 분이 본래 배낭 여행가로서 
한때 한국에 처음에 배낭 여행이 유행할 때, 아주 인기 많았습니다. 

그는 온 세계를 배낭을 매고 여행을 다녔습니다. 
근데 여러분, 여행만 하는 게 별로 의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 분이, 어느 시점에 자신의 내 인생의 목표를 재 설정합니다. 
'월드 비전'의 구호 대원이 됩니다. 대단히 힘들고 위험한 일이죠. 

전쟁, 재난 이런 지역에 가서, 구호 활동을 하는 거예요. 아주 위험합니다. 
가서 딱 교육 받는데, 처음 듣는 말이 이런 겁니다. 

'여러분이 가는 지역은 전부 다 분쟁 지역이기 때문에, 인질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잡혀서 인질이 되면, 우리 월드 비전에서 줄 수 있는 협상금은 0원입니다. 
제로 달러입니다. 왜냐하면 돈을 주고 사람을 빼오기 시작하면, 
돈 때문에 납치하는 일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고, 단원 들은 더 위험해질 것입니다.' 
하는 서늘한 경고를 받고, 구호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때 나온 책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맨 처음 나온 책이 <바람의 딸> 이었고요,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월드 비전에서 사역하던 일들을 쓴 책입니다. 

그 다음에 펴낸 <그건 사랑이었네> 라는 책에서, 
그간 자신의 외적인 활동 중심으로 쓰던 시각을, 
안으로 가져와서 자신의 내적인 삶의 여정을 진솔하게 쓰고 있습니다. 

남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갔던 일, 130만 명에 대한 구호 사역을 하러 갔는데요. 
본부에서 대원들 집을 주는데, 아주 좋은 저택이었어요. 

아주 좋아하며 가봤는데, 보니까 수도도 안 나오고, 전기도 없는 거예요. 
그 나라가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고, 옆 나라 잠비아에서 전기를 수입해서 썼는데, 
전기 값을 못 내니까, 전기를 완전히 끊어 버렸어요. 

여러분, 한국에 살던 사람이, 아프리카까지 가서, 전기도 없는 집에 어떻게 살까요?
'이제 큰일 났다' 그랬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게 축복이 되었다는 겁니다. 

본래 이 분이 부엉이 체질이라서, 밤새도록 읽고 쓰고 이런 거 많이 하는 분인데, 
전기가 안 들어오니까 일찍 잘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새벽 다섯 시가 되면 눈이 떠집니다. 
밖에 나가 보니까, 그 아프리카 대륙의 그 대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해 뜨기 전에, 자기도 모르게 기도가 되더라는 거예요. 말씀을 펼치게 되더라는 거예요.
찬송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고백 컨데 내 평생 넉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두 시간씩 기도하고 성경 읽은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성경 말씀은 꿀처럼 달고, 가시 처럼 따끔 했다. 
특히 시편과 잠언이 그랬다. 
더 자고 싶어도 성경이 읽고 싶어서 벌떡 일어난 날도 많았다. 

하루 종일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현장 일을 하지만 
이 아침 두 시간만은, 파견 근무 중이 아니라, 영성 훈련을 위해 여기에 온 것 같았다.」

그리고 주일날 예배를 갔는데요.
그 40대 흑인 목사님이 설교하는데, 얼마나 소리 지르면서 막 펄펄 뛰는지
처음엔 적응이 안 되더라는 거예요. 

기도시간이 되자, 회중들이 전부 다 일어나서 몸을 흔들고, 엉덩이를 막 흔들면서 
춤추면서 막 찬송하고 기도하고... 세 시간 동안 그랬다는 겁니다. 

'이 교회에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근데 다음 주에도 가게 되고, 또 가게 되고... 
거기서 지내던 4개월 동안, 한 주도 안 빠지고 그 교회를 갔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매일 아침에 기도했던 제목이 
'나의 50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그런데 한 번은 그 교회 목사님이, 설교 중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이런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을 수 있습니다' 하는 거예요. 

쑥스러워서 한비야는 손을 들지는 않았지만, 약간 우쭐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근데 그 다음 순간에 찾아온 생각이 '어, 나는 기도도 하고, 말씀도 읽는데 
왜 하나님이 나에게는 말씀을 안 해 주시나?' 하는 약간 불만도 생겼답니다. 

그래서 파견 근무 기간이 끝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 주일 날 교회에 갔는데, 그날 따라 목사님이 좀 달라졌어요. 
조용하게 설교 하시는 거예요. 찬양대에게도 좀 조용한 곡을 부탁하고요. 
'오늘은 우리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하고,

'그 나라의 위정자들을 위해서, 
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생각하고 용서하십시다' 하는 기도를 
한 10분 정도 침묵가운데 처음으로 그렇게 조용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다음 십 년을 계획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그러는 거예요. 
한비야가 깜짝 놀랍니다. '어, 이거 내 기도 제목인데?' 

마치 자기 마음을 들킨 것처럼 놀랐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처음으로, '영어나 쇼나어(현지어)가 아닌, 
자기 모국어로 기도 해도 좋습니다.' 

한비야가 자기 기도 제목을 말한 적도 없거니와, 
목사님과 인사도 제대로 한 적이 없는데, 
자리도 저 이층 구석에, 보이지 않는 곳에 앉아 있는데, 
'어, 어떻게 내 속을 알았나?' 이렇게 책에 쓰고 있습니다. 

「놀란 마음으로 조용히 5분쯤 묵상 기도를 하고 있는데 
아무 이유 없이 굵은 눈물 방울이 뚝 떨어졌다. 
그때 내 귀에 어떤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 
'가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라!' 

아, 침묵 하시던 하나님이 드디어 마침내 내게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황송하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순종 하겠나이다!' 
이 두 마디를 말했을 뿐인데, 또 눈물이 쏟아졌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나도 남들처럼 울보가 되는 건가? 

짐바브웨에서 하나님께 직접 가슴 벅찬 명령을 받긴 했지만 
솔직히 어디로 가라시는지, 누구의 눈물을 닦아주라 시는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고 있다. 
하나님이 침묵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잡음 때문에 잘 듣지 못한다는 것을! 
하나님의 음성을 잡음 없이 분명히 들으려면, 기도로 주파수를 맞추고 
성경읽기로 볼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을, 그러면 반드시 들려 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 멋진 하나님!」

▲그런데 이 응답이 어떻게 보면, 구체적인 응답 이라고 하기는 힘들어요. 
10년을 계획하고 길을 묻는데 '어딜 가서 무엇을 하라'는 걸, 딱 보여주시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내가 고민하고 길을 찾아야 할 책임을 면제해 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점쟁이를 찾는 이유는, 내가 고민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예요. 
씨름하기 힘들어서 그러는 거예요. 불안해서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결정해야 될 일을, 누군가(점쟁이)에게 미루는 거예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일수록, 책임감, 책임 의식은 더 커집니다. 
그 뜻을 실행하기 위해서, 더 많이 고민하고, 더 치열하게 모색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은 내 대신 결정해서 답을 '누구하고 결혼해라?' 이렇게 던져 주시지 않습니다. 
내가 결정하게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도와주시는 거예요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서 
순종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점쟁이를 의지 하면요, 의지하면 할수록 더 의지하게 되고, 
사람이 의존적이 되고 망가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은
더 (자기 삶에) 책임적인 사람이 되어 가는 줄 믿습니다. 

바울의 이야기를 보면, 바울이 그래서 마게도냐로 떠난 이후에도 
그냥 길이 쫙 보인 게 아니라, 더 고민하면서 
(빌립보에서) '어디로 갈까? 기도처가 어디 있을까?' 
이렇게 고민 고민하면서 길을 모색해 갑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이게 우리가 초신자 때 잘 몰라서 그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믿음이 자랄수록, 하나님께 순종하고 길을 가면 갈수록 
더욱더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심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오늘이 <크리스천 내비게이션 설교시리즈> 마지막 시간인데, 
나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겁니다. 

행16: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로 떠나기를 힘쓰니 endeavoured'
보세요.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 나기를 힘쓰니' 
뭔가 노력을 했다는 거죠. 그냥 평탄하게 쭈욱 가는 게 아니라...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우리를'
바울 만 부른 게 아니라, 함께 있는 이 팀을 함께 부르셨다는 겁니다. 

여러분, 바울의 개인적인 입장에서도, 마게도냐까지 가는 것은 
당시로서는 굉장히 위험하고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응답을 받았어요. 나는 확신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가겠다' 그래도 팀이 따라 갈까요? 그거는 별개의 문제잖아요.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했다'
이게 대단한 일입니다. 그 위험한 일을, 바울 혼자서는 생각하기도 힘든 일을, 
어떻게 동역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평소에 사역할 때 함께 했다는 거예요. 

여기서 제가 앞에 서서 말씀을 전하지만, 저 혼자 하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가 예배의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를 알고, 성도로 세워져 가기 위해서는 
여러분, 설교자 혼자가 아니라, 

찬양대도 필요하고, 안내하는 분들도 필요하고, 교회학교 교사들도 일하고... 
이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도 꼭 있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이 모두가 협력하여, 함께 하나님의 선을 이루어 가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함께 섬기니까, 제가 여기 강단에서 말씀으로 섬길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함께 통로로 사용하신 결과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에 개인적인 일은 거의 없어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이 부름을 따라 나섰다 그러지만, 
사실은 수많은 식솔들이 함께 떠난 거예요. 함께 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결정은, 개인적이고, 동시에 공동체적이고, 또 사회적 입니다. 
내 개인사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분명히 사회적 결과가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한국 교회가 약해지는 원인은, 다름 아니라 헌신의 약화 입니다. 
뭐, 대외적인 이유도 있고요. 숫자가 줄어드는 이유도 있지만... 그게 아니에요. 

여러분, 교회가 작을 때도, 철저하게 헌신된 사람들이 교회를 세워 왔어요. 
성도들도 그렇고, 목회자들도 그렇습니다. 

목사님들이 부임하시면, 가족들이 함께 나와서 인사 하잖아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이분이 사모님이고, 이분이 목사님의 자녀니까, 얼굴 알아봐 달라.. 그거 아니에요.

여러분, 노회에서 목사 안수 하는 거 보셨습니까? 
사모님이, 배우자가 함께 나와서 앞에 섭니다. 
함께 부르심을 받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목사님들은 그래도 '나를 부르셨으니까 이 길을 간다'라는 마음이 들 수 있지만, 
사모님들이 따라가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아주 옛날 분이세요. 
이 분이 옛날에 결혼해서 신혼에, 처음 임지를 두고 결정하는데 
울릉도에 있는 교회에서 오라 그랬습니다. 

오라 그러는데 목사가 안 갈 수도 없고 
가족이 상의해서 함께 갔습니다. 

막 혼수품 새 거, TV, 세탁기, 냉장고를 갖고 갔는데, 
옛날이니까 그때만 해도 그 시골에 그런 가전제품이 잘 없었나 봐요. 

목사님이 한 달 동안 생활하고 나니까, 사택의 전기세가,
이 교인분들이 상상도 못할 금액이 전기세로 나온 거예요. 

옛날 어른들은, 시골에 살 때 보면, 전기세를 얼마나 많이 아끼는지 모릅니다.
그랬는데...  교인들은 뭐 참 순박하고 좋은 분들이었는데, 깜짝 놀란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전기세가 많이 나올 수 있냐?' 그래서 교회에 이게 좀 문제가 되있습니다. 

여러분, 목사님은 목사님이지만, 사모님은 대도시에 태어나서 귀하게 크신 분인데, 
곱게 자란 분인데, 아니, 결혼해서 울릉도까지 왔는데 'TV 도 못 봐?' 
이거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냉장고도 꺼놓고 살아야 된다고? 아, 이게 무슨 말인가?' 

그 목사님이 이제 오래 지나서, 은퇴를 앞두고 저한테 그 말씀을 하시는데 
'어휴, 정말 그때는 어려웠어요!'

 

그래도 옛날에는 그렇게 하고서도, 적응해서 살려고 했는데... 
요즘은 사정이 다릅니다. 
'남편이 부름 받았으면, 그건 당신 일이고... 나는 서울 떠나기 싫어! 
난 아프리카에 가기 싫어! 우즈베키스탄 거기가 어디야?' 그럴 수 있죠. 

여러분, 오늘까지 한국 교회가 이렇게 성장한 것은, 목회자 선교사 뿐 아니라 
그 가족들, 사모님들, 그 자녀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가정의 일도, 원리는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일이 개인적이고, 공동체 적이고, 사회적 이라 그랬어요. 

아빠가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 한다...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죠.
뿐만 아니라 남편의 소소한 친구 관계도, 우리 가정에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어떤 친구는 맨날 만나면, 밤 늦게 술 마시고 들어오게 되죠. 
어떤 친구는 빚 보증 서달라고 그러죠. 
이런저런 사업이 유망 하다고 자꾸 꼬드기죠. 그게 왜 개인적인 일입니까? 

아주 작은 일, 나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사실은 가족과 관련된 일입니다. 
그 일(내 건강 관리)에 나머지 모든 가족들이 영향을 받잖아요. 

오늘 말씀은, 바울이 혼자서 환상을 보고, 혼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우리가 함께 결정"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바로 공동체, 우리 신앙의 훈련이, 신앙의 내비게이션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훈련과 함께,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을 훈련하는 이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여러분 사람마다 그릇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그릇이 있으면... 공동체에도 그릇이 있는 거예요. 
교회가 아무리 커도, 아무리 재정이 많고 실력이 있어 보여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성도들의 마음을 한데 모을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그 교회에는 조그만 간장 종지도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크기와 비전의 크기가, 하나님이 쓰시는 폭이, 결코 동일(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한 개인도, 한 교회도... 하나님이 그릇을 키워 가시는 거예요. 

우리 교회가 120주년을 맞이 하여서 많은 사업을 하지만 
이게 최종적인 목표가 아니라,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그릇을 키워 가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가정도 마찬가지예요. 가정의 그릇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 혼자 주도하잖아요. 하나님이 바울에게 말씀하시잖아요. 

근데 바다를 건너는 (마게도냐로 가는) 결정은 함께 하는 거예요. 
이 과정에서, 이 팀들이 함께 참여하는 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교회는 전 세대의 의견을 잘 듣는 게 좋습니다. 
어른들의 지혜에 귀 기울이고, 다음 세대의 의견도 경청해야 합니다. 

여러분, 젊은이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공동체가 분별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함께 인도하심을 받는 훈련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교회는 당회 만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각 공동체 내에서 
활발하게 결정하고 함께 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부모님들 중에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가정에 어려움이 있어도, 부모의 자존심 때문에, 혹은 아이들 걱정 안 시키려고, 
아무 말을 안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너무 어릴 때는 힘들겠지만, 
어려도 적절하게... 
가정에 무슨 일이 있으면, 아이들이 생각보다 잘 알아요. 눈치를 챕니다. 

부모님의 눈빛이 조금만 바뀌어도 다 알아요. 
그래서 그 나이와 역량에 맞게 적절하게, 지혜롭게, 
'부담을 함께 나누고 같이 기도하자' 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번 명절에 모여도, 서로 함께 대화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게 좋습니다. 
그냥 자녀들에게 '야, 너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 이런 말만 하지 말고요. 

돌아가면서 예배 후에든지, 차 마시면서, 돌아가면서 기도 제목을 얘기하는 거예요. 
어른들이 먼저 얘기해야 됩니다. 

'얘들아, 아빠인 나는 지난 한 해 동안에 이게 참 감사 했다. 이렇게 지냈다.' 
말 안 하면, 자녀들은 모릅니다. 

'그리고 올 한 해, 아빠를 위해서, 엄마를 위해서, 할아버지를 위해서, 
너희들이 이렇게 기도해 줘!' 라고 겸손하게 부탁하는 거예요. 

그러면 젊은이들도 마음을 열고, 입을 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스스로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 만큼만 대화를 나누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녀를 배려해서 '걱정할까봐 말 안 한다' 그러잖아요. 
그런 부모님들은 좀 생각해 보세요. 
'자녀들에게 큰 일이 있는데, 엄마 아빠 걱정할까봐 말 안 하고, 입을 딱 닫고 있으면, 
여러분은 고마워요, 싫어요?' (싫죠) 

물론 뭐 말 안 하는 게 좋을 때도 간혹 있습니다만
함께 삶을 나누면서, 가족의 신뢰를 쌓아가야 됩니다. 

부부 간의 신뢰도 그래요. 누가 그런 글을 썼어요.
부부를 한 글자로 하면 '짝' 
부부를 두 글자로 하면 '하나' 
세 글자로 하면 '나란히' 
네 글자는 '평생 친구' 
다섯 글자로 하면 '사랑합니다' 래요. 

열여덟 글자로 하면 '당신이 그랬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여러분, 외우세요. 지금 연습 한번 할게요. '당신이 그랬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무슨 말이에요? 이해가 안 가는 거죠. 앞뒤를 잘 모르는 거죠. 
'왜 그랬어? 당신 미쳤어?' 그러지 말고, 
'당신이 그랬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라고 반응하는 부부지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뭔가 이유가 있겠지요. 지금은 잘 이해가 안 되지만요'
믿음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그러신다면, 내가 지금은 잘 이해가 안 되지만, 
하나님이 그러실 만한 이유가 있으시겠죠.' 할렐루야! 그게 신뢰 예요. 

여러분, 이런 의사 소통이 중요하지만, 
이 신뢰를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은 가치관 이에요. 

의사 소통, 커뮤니케이션, 대화가 중요하지만, 
여러분 그게 다 자기 중심이면, 대화를 할수록 싸우는 가정이 돼요. 
어리석은 두 사람이 열심히 대화를 할수록, 더 어리석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 가정에 얼마나 결정할 일이 많습니까? 생각이 각각 다 달라요. 
'자녀 양육 문제, 어떤 학교에 보낼까? 학원은 어떻게 할까? 
경제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나? 부모님은 어떻게 모셔야 되나?' 

여러분, 모든 세부적인 부분에서, 전부 다 뜻을 맞추는 것은 힘듭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신뢰가 필요한 거죠. 

어떤 일이든 엄마나 아빠 중에 한 명이 정보를 모으고 주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신뢰하기 위해서, 가치관이 서로 맞아야 되요. 

여러분, 부부가 가치관이 서로 맞으면, 여러분 구체적인 거 이야기 많이 안 해도 
그냥 같은 방행으로 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세부적인 대화를 많이 해도, 부부가 가치관이 다르면 같은 길로 갈 수가 없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곧 길이다' 무슨 말입니까? 
인생의 세세한 계획, 세세한 길을 다 의논하고 따지면서, '이게 맞구나, 저게 틀렸구나' 
하지 않아도, 
우리가 예수 중심으로 살면, 부부가 한 마음 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예수 안에만 살면, 하나님의 인도을 하심 받고, 보호받을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게 예수 믿으면 좋은 이유예요. 
예수 믿은 사람들끼리 결혼하면 좋은 이유예요. 

여러분, 젊은이들이 그런 질문들 많이 하잖아요. 
'꼭 교회 다니는 사람하고 결혼해야 되나?' 

여러분, 예수 잘 믿는 사람들끼리 결혼하면, 참 아름답고 좋습니다. 
왜냐하면 가치관이 같으니까요. 

세상 사람들은 생각이 다 달라요. 세속적인 생각도, 나름대로 다 다릅니다. 
맞추기가 힘들어요. 지금 세상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가 함께 하나님을 알고 
함께 예수 중심으로 살고, 함께 말씀에 순복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면,
예수 안에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는 가정의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가정이 영적인 일치를 이루어 가는 거예요. 

우리 교회가 그렇잖아요. 여러분 유치부, 영아부부터, 청년부, 어른들까지 
전부 다 대부분 주일날 같은 본문으로 설교합니다. 

영적인 일치를 이루자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가 되어가는 거예요. 
영적으로 주님 안에서 가치관을 통일해 가는 이 과정이 
여러분 가정의 앞날에, 자녀의 앞날의 크고 작은 일을 결정할 때에, 
영적인 일치의 터전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 자녀들 중에서, 멀리 타지에 사시는 분들, 외국에 사시는 분들도 많은데요. 
가끔씩 한국에 와서 이렇게 인사를 하면 '목사님, 제가 포항제일교회 설교를 
거의 매주 듣습니다' 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런 분들과 이야기 해보면,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달라요. 

여러분, 자녀가 부모의 신앙 생활에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거죠. 
부모들도 자녀가 다니는 교회에 (인터넷으로) 들어가보고 설교도 듣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 자녀와 전화 하면 무슨 말합니까? 
'아, 지난 주에 이런 말씀 들었어요. 지난 주 이런 주제로 특새 했어요'
이러면 부모-자녀 사이에 영적인 일치가 이루어져 가는 거예요. 

여러분 저 멀리 중국에, 남미에 있는 자녀들 하고 대화하면서 
고작 한다는 말이 '무슨 드라마 봤냐?' 뭐 정치 이야기나 하고요... 

여러분, 예수 안에 있으면 하나 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게 '영적인 일치'라는 거예요. 

바울이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봤지만, 바울 혼자 간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행16:10 
그렇게 해서 마게도냐로 갔을 때, 하나님이 그들 앞에 멋진 기회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이, 이전에 상상하지 못한 아름다운 모양으로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을 향해서도,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를 향해서도 
그러한 미래를 준비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주의 뜻을 분별하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복된 믿음의 여정을 
잘 살아 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