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에는 기름부으심이 있는가? 삼상10:1~9 2025.01.26.
청년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예언을 받는 내용입니다.
◑삼상10:1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의 체험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청년 사울은 간밤에 사무엘과 함께 예배의 자리에 있었고,
또 지붕에 올라가서, 밤하늘의 별빛이 쏟아지는 그 아래에서
하나님 나라의 꿈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삼상9:25~26
그리고 나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 아침에 그에게 기름을 부었어요. 10:1
사람들은 기름부으심을 원합니다.
위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순서가 있는 거예요.
▲먼저 예배의 자리가 있고, 하나님의 비전을 받고, 그리고 나서 기름부으심이 있었어요.
여러분, 기름부음은, 우리가 예배자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품게 될 때, 자연히 임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는, 언제나 순서가 있는 거죠.
존재가 있고, 그리고 행함이 뒤따라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도, 여러분, 나의 행위로 인함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함인가요?
네, 전적인 은혜입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 대속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의 감격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구원이 먼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을 때,
너무나 감사해서 삶의 변화가 따라오게 되는 것이죠.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권세 - 엑소시아' 라는 것은, 존재의 힘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에요.
존재로 부터 나오는 힘입니다. *에크+우시아
그래서 자녀 됨의 권세(엑소시아)가, 기름 부으심의 능력(두나미스) 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훨씬 더 강력하고, 우선적인 거예요.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두나미스)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런데 우리가 성령의 권능(능력, 두나미스),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력,
엄청난 능력을 받고 예수의 증인 되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보다 항상 우선 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 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나서, 사명을 받는 것이죠.
그러므로 조급하게 기름부으심을 구하거나 능력을 구하기 전에,
여러분, '예배'의 자리에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공예배 포함 개인의 예배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기를 사모해서
그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비전이 임하면, 기름부으심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예요.
▲성도님들이 이런저런 문제로 상담하러 찾아오시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결론적으로 '예배의 자리로 나가십시오!' 하고 권면합니다.
어떤 명확한 해답, 명확한 솔루션(해결책)을 원하시는 경우들도 있어요.
제가 그 분의 심정을 몰라서 그렇게 얘기하는 건 아니고,
진짜 정답은 예배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먼저 '예배의 자리로 나가십시오!'
만약에 제가 그분에게 답을 제시한들,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없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할 수 있는 영적인 내공이 없다면... 이게 다 의미가 없는 것이에요.
여러분, 예배의 자리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역사,
기름부으심의 역사가 나타나는 줄로 믿습니다.
▲자, 이 부르심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는데,
부르심 calling 과 기름부으심 anointing 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은사, 여러분에게 주신 콜링
그것을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으신다', 다른 번역에는 '번복하지 않으신다' 이렇게 돼 있어요.
여기서 '은사' 라는 단어가, 기름부으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주실 때, 은사와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이에요.
성경에서 기름부으심(어노인팅) 이라는 것은 특별히 크게 3가지 의미를 갖는데,
1) 첫 번째는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이 그 사람을 선택하실 때, 어노인팅을 주시고,
2) 두 번째는 하나님의 강복, 블레싱,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복 주실 때,
기름을 부어주시고,
3) 세 번째는 empowering 임파워링 이에요.
하나님의 능력을 그에게 부어 주실때, 어노인틴을 주십니다.
우리 인생에서 우리는 각자가 '나의 부르심은 무엇인가?'
이걸 궁금해 합니다. 알고 싶어해요.
요즘 대학 입시철이잖아요. 대학을 진학할 때에도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인생을 올인 해야 되는가?'
이 부르심을 명확하게 확신하지 못하고, 진학하는 학생들이 꽤 많아요.
그런데 나중에 직장을 가서도, 십년 차, 이십년 차, 삼십 년 차가 됐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부르심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태어난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모두가 각 사람에게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난 줄로 믿습니다.
▲자, 그러면 무엇으로 우리의 인생의 부르심을 알 수가 있는가요? 또 확인할 수 있는가요?
가장 쉬운 것은, 부르심과 기름부으심이 함께 가기 때문에,
기름부으심으로 (부르심을) 알 수 있어요.
그러면 기름부으심 이라는 게 도대체 뭐냐?
조금 폭넓게 광의적 개념으로 본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그 사람 안에 심어 놓으신 하나님의 선물이 있어요.
영적인 은사, 선천적인 재능, 그리고 또 그 사람에게 주어져 있는 기질, 성품,
이런 것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 심어 놓으신 겁니다.
내가 후천적으로 학습을 하는 것도 아니고, 취득을 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런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서,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에게 해당되는 얘기에요.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이런 저런 사교육을 통해서, 없는 능력을 채워주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전에 있던 교회에서는, 고작 초등학교 3~4학년인데,
얘가 일주일에 다니는 학원이 스물 다섯 곳이더라고요. 와 번아웃이 오지 않겠어요?
물론 뭐 도움이 되는 것도 있겠죠.
그럼 우리가 도대체 왜 이런 어프로치를 자꾸 하느냐?
그것은 자녀들의 능력을, 내가 계발해 주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엄밀하게 얘기하면, 우리는 발견해 주는 거예요.
이미 하나님께서 그 아이 안에 심어 놓으신 은사와 재능과 기질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부르심'에 대한 단서 라는 거예요.
'아, 이걸 보니까, 이 아이에게 이런 콜링을 주신 것이구나'
그래서 아이들 가운데, 선천적으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절대 음감이 있는 애들이 있고, 리더십이 있는 애들이 있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고, 회복시킬 줄 아는 아이가 있고... 다 달라요.
이번 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녀들을 세상 잣대로 평가하는 말을 하시면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아이들의 고유한 성품과 특징이 다 있는 거예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부르심의 지표들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물을 발견해 주고, 격려해 주고,
축복해 주는 부모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0:2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로 말미암아 걱정하여 이르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세 가지 징조를 이야기 했어요.
첫 번째 징조는 가정에 대한 것입니다. *첫 번째 징조
셀사에 있는 라헬이 묘실이 등장하는데, :2
창세기를 보면 라헬이 베델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다가 그 노정에서 죽게 되고,
그곳에 무덤을 마련하게 됩니다.
'바로 그 장소에서 사울 네가 두 사람을 만나게 될 터인데,
그들이 너에게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잃어버린 암나귀 들을 찾았지만, 아버지 기스가 아들 사울을 걱정한다'는
얘기를 해 줄 거라는 거예요.
제가 어제 이 본문을 다시 보다가, 아버지 기스의 따뜻한 부성애를 느낄 수 있었어요.
제가 20년 전에 벤쿠버 있을 때, <사무엘상>을 강해설교를 쭉 했었거든요.
근데 이번에 <사무엘상>을 다시 강해설교를 하면서
'사울의 인생에 도대체 문제는 뭐였을까?'
이거를 열심히 묵상했는데, 이 구절이 눈에 들어왔어요.
여러분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너무 과도하게 걱정하고, 모든 것을 돌봐 주려고 하면,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불가능해집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이야기를 할 때, 가정에서 사랑을 많이 받은 자녀들이
자존감이 높고, 자아상이 건강하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맞는 얘기예요.
▲그런데 그게 (부모의 사랑) 너무 없어도 문제지만, 그게 너무 과해도 문제가 되더라고요.
저는 청소년들, 청년들만 상담하는 게 아니라, 결혼한 커플들도 상담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경우들이 생기더라고요.
딸 바보 아빠들.. '와 어떻게 저렇게까지 자식에게 해 줄까?'
정말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주는, 그런 아버지 때문에,
딸이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그만큼 해 주지 못하는 거예요.
남편이 그렇게 해줄 수가 없기 때문에,
내 아빠만큼 해줄 남자가 없는 거예요.
놀랍게도 그래서 이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봤어요.
엄마의 케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가 아들을 케어해 주는데,
뭐 전방위적으로 돌봐줍니다. '헬리콥터 맘' 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아들이 결혼을 해서 아내에게서, 그런 엄마의 케어를 기대합니다.
그걸 기대하면 돼요, 안 돼요? 네, 안 됩니다.
근데 남편으로서 그거를 기대 하니까, 당연히 아내에게서 실망하는 거예요.
아니, 내가 그 사람을 케어를 해줘야지, 케어를 받기 만을 기대 하잖아요.
엄마에게 일방적 케어를 받았던 거잖아요.
부부간에 그런 케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서 오히려 어려움이 생기더라고요.
인생의 빈 자리가 있어야만, 그 여백의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녀들의 인생에, 뭔가 조금만 빈자리가 생기면,
엄마는 막 다 채워주고 싶은 거예요.
아빠는 딸아이가 물질적으로, 사회적으로 뭔가 부족한 게 있다고 그러면
'내가 그거를 다 해결해 주고 싶은' 거예요.
막 용돈도, 필요한 거 이상 두 배 세 배로 넉넉하게 주는 아빠들도 있더라고요.
여러분 그렇게 다 해주는 게 과연 좋은 걸까요?
그런데 심리학적으로 보면 '풍선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쪽에서 누르면 저쪽으로 삐져 나오고, 이쪽이 불어나면 저쪽이 줄어드는 거잖아요.
딱 부모 세대가, 너무 롤 플레잉 역할을 많이 하시면, 자녀가 작아지게 돼 있어요.
부모가 성공하면, 자녀가 작아지게 돼 있고요.
부모가 유명하면, 자녀가 작아지게 돼 있고,
부모가 너무 전방위적으로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하면, 자녀가 작아지게 돼 있어요.
여러분이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자녀들은 내적 자립을 하지 못하고,
관계적 자립을 하지 못하고, 신앙적 자립을 하지 못하는 거예요.
왜 이런 역기능이 일어나는가요?
여러분,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자녀 인생에 빈자리를 두고, 눈물로 엎드려 기도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음으로는, 저도 자녀들을 키우면서, 한편으로 아리고 아프더라고요.
근데 그걸 움켜쥐고 기도를 하는 거예요.
'내가 이거를, 세상적으로, 인간적으로 다 채워 줘야겠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 아니라는 걸 아셔야 돼요.
▲'사울의 인생에 도대체 문제가 뭐였을까?'
그리고 나서 제가 어제 이렇게 묵상글을 쓰면서,
'야, 문제가 너무 없었던 게 문제 였구나'
이 기스의 집안이 아버지의 자수성가 함으로, 노력으로 일군 집안이에요. *기스는 유력자
자녀를 사랑하는데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 할꼬?' :2
기골이 장대한 장성한 아들을 뭘 걱정 합니까?
무슨 초등학생, 유치원 생이 밖에 나간 것처럼 걱정 하잖아요.
이 아들이 그 집에서 모든 사랑을 독차지 하고, 모든 인정을 받으며 살았던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사람들에게 주목을 못 받거나, 사랑을 못 받는다...
그런 상황을 참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러던 중에 다윗이 등장하는 순간, 자기가 사람들의 시선에서 랭킹이 밀려 나잖아요.
그런 상황을 인정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인생의 고난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고난을 극복하는 지수가 너무 낮은 거예요.
그래서 너무 결핍 상황에서 자란 아이들도 문제지만,
너무 채움을 받은 아이들도.. 또 다른 정반대의 어려움이 생기더라고요.
여러분, 기도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부르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부르심 calling과 기름부으심 anointing 이 정 반대 방향으로도 일을 합니다.
즉 기름부으심이 있는 곳에, 부르심 있지만,
하나님은 부르신 사람에게, 그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에게 기름부으심 주십니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그에 합당한 능력과 지혜를 허락해 주세요.
필요한 사람들을 보내주시고, 필요한 재정과 모든 조건들을 갖춰 주세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홀로 네가 알아서 해라'
그렇게 외롭게 빈손으로 일하게 하지 않으세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늘 소망이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 사춘기 청소년 때부터 지금까지
교회에서 내게 무슨 (무리한) 요청을 하든,
내게 부도덕한 일을 시키거나, 하나님을 믿지 말라는 것만 아니면
내가 다 순종하겠다...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사역에 요청(콜링)이 있을 때마다, 항상 '네, 순종하겠습니다' 하고 응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오랜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깨달은 것은,
사역의 요청에 순종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소망이 있고, 선물이 있더라고요. 할렐루야!
근데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을 합니다.
사역 요청에 반응하고 헌신하면 '아, 이제 나는 절망스럽다. 내가 누릴 수 있는 건 없고,
(내 시간, 에너지를) 다 하나님께 드려버렸네?'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엡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사도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서 네 가지 중요한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 제발 그들의 눈을 열어 주셔서, 이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부르심의 소망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알게 하여 주옵소서!
부르신 그분에게 반응하면, 그분이 책임지시고, 그 분이 그 부르심을 완성해 가시는 것을
체험하는 인생이 되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부르심은, 부모가 완성해 주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완성해 가는 것도 아니고,
'부르심' 이라는 하나님의 선로 위에만 서면, 기차는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의 완성'이라는
종착역에 이르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기 때문이에요.
◑10:3~4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의 손에서 받으리라'
두 번째 징조를 얘기해 줬는데, 그것은 물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징조
'다볼의 상수리 나무' 라는 것은
요즘 같으면은 어떤 큰 건물이 랜드 마크가 되지만
그 당시에는 뭐 큰 나무 같은 게 지형 주물 랜드마크 역할을 한 거예요.
그래서 사울이 그곳에 가면, '벧엘로 올라가는 세 예배자를 만날 것인데,
그들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 염소 세 마리와 떡 세 덩이,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가다가, 너를 만나서 떡 두덩이를 줄 것이다'
여러분, 예배자들이 하나님 앞에 예물로 가지고 가던 것을
사울에게 줬다는 게 좀 놀랐습니다.
그것은 그런 행위를 통해서, 앞으로 사울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 것임을, 인정해 주는 장면이었어요.
후일에 다윗도 제사장들이 성읍인 놉에 가서 제사장에게 '여기 먹을 것이 좀 없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 앞에 드렸던 진설병이 (진실되었다가) 나온 것을
그에게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무슨 얘기냐면, 물질은 물질인데, 거룩한 물질인 거예요.
우리가 부르심을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돌봐 주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그 사람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채우시는 것을 체험하는 거예요.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이거를 평면 구조로 놓고,
'하나님을 선택할까. 세상을 선택할까?' 이런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성경은 전혀 다른 입체적 차원에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헌신하면, 세상의 물질도, 사람도, 관계도, 필요한 능력도, 실력도,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다는 거예요. 왜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가는데, 이것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다 연결을 해 주신다, 공급해 주십니다.
여러분, 그렇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프로젝트에 우리를 팀원으로 불러 놓으시고
월급도 안 주시면 되겠어요? 하나님은 열정 페이만 요구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십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역으로의) 콜링에 반응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리조이스 캠프'를 하면서, 마지막 날 저녁 집회 때 청년들에게 콜링을 하니까,
네, 심사숙고 해서 몇몇 사람들이 나오더라고요.
근데 청소년 집회 때는, 콜링이 아직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막 우루루 달려 나오는 모습을 보았어요.
'얘들이 정말 생각을 하고 나오는 건가?'
근데 나이가 어릴수록 빨리 끓어 오르고, 빨리 식어서 문제이긴 한데요...
제가 후배 목회자들에게 조언해 줄 때가 있어요.
처음에 시작할 때는 다 하나님이 부르심 때문에 시작을 하죠.
그런데 사역지를 옮기거나, 임지를 결정을 할 때,
아이의 교육 문제, 재정적인 문제, 이런 걸로 결정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마세요!'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시작한 길이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그 분이 완성하실 텐데,
부르심을 따라갈 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을 체험해야 됩니다.'
근데 이걸 한 번 체험한 사람은, 더 담대하게, 더 순수하게, 순전하게 헌신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 세상적인 방법을 선택하기 시작하면,
사역과 목회를 하고 있는데, 내 마음 가운데는 항상 세상 (먹고 살) 걱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성도들에게는 '근심 걱정하지 마십시오. 진로 걱정하지 마십시오.
세상적인 거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정작 자기가 제일 걱정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은 거예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분야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 받아 살아간다면,
우리는 물질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을 돌보시고, 만물을 공급하시는 아버지께서
그분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부족함 없이 더 넉넉하게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믿음의 고백과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여러분 가운데 나오시기 바랍니다.
◑10:5~6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 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준 세 번째 징조는, 영성에 대한 것이었어요. *세 번째 징조
여기 '하나님의 산'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가 보통 언급하는 호렙산, 시내산이 아니고,
히브리 원전에는 '엘로힘의 기브아 hill of God'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브아가 사울의 고향이 거든요. '기브아'가 산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개역에는 '하나님의 산'이라고 번역한 거예요.
그래서 그가 고향 땅으로 돌아갔을 때,
그 고향 땅 기브아 산지에 있는 사람들이, 예언자들이 내려오면서,
하나님을 찬양 하면서, 예언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됩다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 편에는 블레셋의 초소(영문)가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당시에 이스라엘 중부 지역(베냐민 땅 기브아)까지 들어와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어요.
시대는 어둡고 상황은 촉박하지만, 그러나 거룩한 기름부으심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임하여,
새 일을 행하신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영적인 전도체 입니다. *전류를 전달하는 물체
예배자 곁에 있으면 예배가 열리고,
예언자 곁에 있으면 예언이 열리고,
방언 기도를 하는 사람과 함께 기도하다 보면, 방언이 터지고,
성령 충만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나도 충만해지는 거예요.
인간은, 영적인 감동 감화하심이, 내게서 흘러나가고, 내게로 흘러 들어온다고요.
그러므로 여러분의 인생이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너무나 중요한 거예요.
▲제가 전에 '여호수아 청년부'를 담당할 때, '가나안' 청년 한 명이 교회로 돌아왔어요.
어렸을 때 교회를 다니다가, 실망한 게 있어서, 한 20년 교회를 떠났다가 돌아온 거예요.
자기를 계속 전도한 친구를 따라서, 교회에 다시 나오게 된 거예요.
근데 이 청년이, 하나님을 다시 뜨겁게 사랑하게 되면서
새벽 예배 스테프가 되고, 매일 새벽에 나오고,
자기 일도 열심히 하지만, 신앙 생활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러면서 방언 은사를 사모했는데, 새벽부터 기도를 하고, 뭐 저녁 집회에도 나오고,
그리고 급기야 저희가 연초에 2박3일 동안 청년 리더십 1천2백 명을 모아놓고,
일곱 번 집회를 2박 3일 동안 하거든요.
그런데 거기서도 그렇게 사모 했는데, 방언 은사를 못 받았어요.
그리고 나서 그 다음 주 화요일 날, 화요성령집회를 제가 늘 인도할 때였는데,
딱 그날 본문이 '행2장 오순절 성령 강림' 본문인 거예요.
제가 그 본문을 보자마자 이 목사(제)가 믿음이 없어가지고
'야, 오늘도 그 청년이 오는데, 오늘 방언을 못 받으면 얼마나 마음이 어려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제 말씀 준비를 했어요.
그리고 단에 딱 올라와 보니까, 그 청년이 맨 앞줄에 앉아 있는 거예요.
'오늘 방언을 받고 싶은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같이 기도합시다!' 그랬는데,
그 청년이 가장 먼저 방언을 받았어요.
그리고는 자기를 다시 교회로 인도해 준 친구한테, 이제 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전화를 한 거예요. '친구야, 내가 그렇게 사모했는데, 오늘 내가 방언을 받았다'
친구는 '축하한다. 너무 잘 됐다!' 하고 축하를 해줬는데,
그 친구는 정작 방언 은사를 못 받은 친구였어요.
근데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 영적인 감동과 기쁨과 떨림이 계속 되더니,
30 분 만에 전화를 받았던 친구도, 방언이 터진 거예요.
한 자리에서 만난 것도 아니에요. 서로 전화 통화만 했는데...
여러분, 우리는 영적인 전도체 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임하는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이것이 흘러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름부으심과 영적 은사가, 도대체 (사울) 왕에게 왜 필요한 것인가요?
왕은 국사를 잘 돌보고, 전쟁에 나가서 용맹하게 싸우면 그만 아닌가요?
여러분 그게 전부 일까요?
왕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채널이 없다면,
왕이 성령의 감동하심 과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다면,
충신 과 간신을 어떻게 분별 하겠어요?
국가 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고, 준비를 하겠어요?
결국에는 간신들과 온갖 주술사들의 힘을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예요.
왕은 지도자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청지기 이고,
백성들에게 왕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종이라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근데 이건 비단 왕 뿐이 아닌 것이죠.
회사의 리더들도 마찬가지고, 한 가정의 부모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녀들의 부모이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자녀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명절 기간이 다가오면, 항상 좀 마음에 걱정이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명절 기간에 오랜만에 가족들 만나서 싸우면 안 되는데...'
장성한 자녀들에게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냐? 넌 내 말 좀 들어라!'
그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를 때, 꾹 참으시고...
'주님이 뭐라고 하시나?' 여쭈어보면, 여러분의 뒤통수가 좀 당기실 거예요.
'자녀에게 그렇게 말하는 너는, 왜 내 말을 그렇게 안 듣는 거니?'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서
자녀에게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된다. 저렇게 살아야 된다' 말할 자격이 있는가요?
여러분, 그렇게 말할 자격이, 능력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도 않으면서도, 자녀의 인생을 마음대로 움직이려 들잖아요.
'아니, 너는 그 대학 가면 안 돼, 그 학과에 가면 안 돼, 너 그거 하면 안돼!'
'야, 요즘 그게 전망이 있는 줄 아니?'
온갖 인간적이며 세상적인 이야기들을 아이에게 쏟아 놓으면서,
아이의 인생의 방향을 막 꺾어 버리잖아요.
'그런데 과연 우리가 자녀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부모가 한 사람(자녀)의 인생을 좌지우지 하고 있잖아요.
사업가도, 정치인도, 선생님도, 의료인도, 문화인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일도, 위로 부터의 영적인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감당하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이 부름을 받은 각자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체험 하시기를 축복합니
그래야만 좋은 지도자가 되실 수 있어요.
◑10:7~9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7절에,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이게 무슨 얘기냐면, 여러 가지 성경 번역본들의 번역이 다 달라요.
히브리 원전에는 '어떤 상황이 오든지, 그 상황에 맞게 하면 된다'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공동번역 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하시오'
잘 의역한 번역입니다.
저를 한 번 따라해 보세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서는) 네 마음대로 하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마음껏 해도 된다는 거예요.
근데 조건은 딱 한 가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네가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네 마음에 뜻하는 거, 계획하는 거를 다 해도 된다.
다 형통할 것이고, 다 선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할렐루야! :7
에덴동산에서도 마찬가지 였죠. 선악과를 따 먹지 않고 하나님만 인정하면,
나머지는 다 자유였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자유의지를 주셨고, 창의성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회사에서도 마찬가지고,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 다 마찬가지예요.
리더가 제시한 가이드 라인만 지키면, 여러분, 운신의 폭이 결코 좁지 않아요.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한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나니까, 나는 운신의 폭이 너무 좁다.
난 하나님의 틀 안에 갇혀 있다?'
아니요!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우신 규모와 사이즈와 높이 가운데 계신 분이신가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하기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징조이죠.
가정도 중요하고, 물질도 중요하고, 영성도 중요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에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의 능력,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살리는 능력을 주셨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신 거예요.
존재의 힘으로 부터, 나머지 모든 것이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이 가시면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하나님이 멈추시면 저도 멈추겠습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미래사를 알려달라고 하거나,
능력과 은사를 기름부어 달라고 요청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임재를 알려달라고 구하세요.
'하나님이 임하시는 곳에, 제가 함께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임 하시지 않는 곳은, 세상적으로 아무리 좋아도, 저는 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미래 라면, 그 미래가 어떤 미래인지, 제가 자세하게 몰라도,
하나님이 계신 그 자리가 승리의 자리, 성공의 자리, 형통의 자리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잖아요. 나라가 됐든, 기업이 됐든, 어떤 조직이든 간에,
탑 리더가 본부 사무실에 있든, 지방에 공장에 내려가 있든, 해외 거래처에 가 있든,
탑 리더가 있는 그 자리가, 그 공동체의 센터인 거예요.
하나님이 여기 계신 그곳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결코 여러분이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 그걸 세상적 기준으로 판단하지 마시고,
절대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면,
'무엇이든지 네 마음에 있는 대로 행하라. 하나님께서 너의 앞길을 열어 주시리라!'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