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책임' 조각글 모음 1 *비슷한 주제 : <열심>
'인간의 책임'이란 개념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비슷한 개념인데요,
우리는 보통 설교를 할 때나 들을 때,
그 반대로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의 뜻' 이런 방향에서 설교를 많이 듣죠.
그러는 가운데, '인간의 책임'이 약화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 두 개념이 다 나와 있는데, 한쪽으로 치우쳐서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면,
결국 자기 삶과 신앙에 손해가 오는 거죠.
그래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설교를 조각조각 모아봅니댜.
기도하고 성경에 집중하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것도, 어떤 면에서 필요하지만
기도하고 성경 묵상하면서.. 또한 액션을 취하는 것도, 필요한 때가 있다는 거죠.
case by cas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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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령에 매여' 보다는 '심령에 매여'
20: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성령의 매여'
이 말의 원문은 '영에 매여' 입니다.
성 Holy 라는 말이 안 나와요. I go bound in the spirit
그래서 이게 '성령' 일수도 있지만, '나의 영' 그냥 '나의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옛날 개역성경에는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라고 했죠.
이건 '내 마음'이라는 거죠. 제 생각에는 이 번역이 맞습니다.
'성령에 매인' 것이 아니고, '내 마음에 매인' 거예요.
여러분, 성령은 우리를 묶으시는, 결박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은 우리를 풀어 주시는 분이세요.
성령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입니다.
성령께서 바울에게 '결박과 환란이 기다린다' 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잖아요.
무슨 말입니까? 억지로 순교의 길을 가라는 게 아니고, '안 가도 된다'는 말이에요.
꼭 가고 싶으면 가도 되지만, 안 가도 된다.. 라는 말을, 성령님이 하신 겁니다.
바울은 자기 결정으로 가는 거예요. '심령에 매여' .
부모들 중에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야, 너 왜 공부 안 해? 맨날 TV에 앞에 앉아 있고...' 그런 부모가 있죠.
또 '야, 공부 좀 쉬엄 쉬엄 해. 그만 해도 돼!' 라는 그런 부모도 있죠.
목회자들도 그런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성도들이 작정하고, 가정에서 헌금을 가지고 오는데,
교회를 위해서 감사함으로 받기도 하지만,
'꼭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 가정의 형편을 알기에, 돌려 보내든지
'일부만 받겠습니다'.. 할 때가 있습니다.
일단 돌려보냈다가, 기도하고 다시 가지고 오면 그때 받을 때도 있습니다.
지금 성령님과 바울의 관계를 예로 들어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내 마음에 매임(결박)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결박'은 유대인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단어입니다.
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결박당했을 때, 바로 그 장면을 연상케 하는 단어죠.
여러분, 이삭이 결박당할 때 억지로 했을까요?
아니면 자발적으로 순순히 했을까요?
아마도 백 세가 훨씬 넘은 노인 아브라함이
젊은 이삭을 힘으로 제압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이 결박당함 이라는 것은, 유대인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키에르케고르가 그 말의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정체성의 핵심에 있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결박 당한 민족이다.'
그 안에서 엄청난 고난을 해석하고 이겨나가는 거예요.
여러분 사랑은, 본질적으로 결박당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묶는 것입니다.
결혼이 뭐예요? 이 세상에 수많은 이성들이 있지만
'지금부터는 나는 당신만 사랑 하겠습니다. 당신만 바라 보겠습니다'
하고 스스로 묶어 버리는 거예요. 스스로 묶이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결혼 풍습에 이런 게 있어요.
결혼식 중에 신랑 신부의 손을 함께 묶습니다.
이거를 가족들이 묶어주기도 하고요. 친지, 동생, 친구들이 묶어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결혼이 무엇인가? 묶이는 것이다.
힘이 없어서 묶이는 게 아니죠. 자발적으로 묶이는 겁니다.
부모의 사랑도, 그야말로 묶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자식 일이라면 달려 가잖아요. 그게 사랑에 묶여있는 거예요.
자녀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자녀가 죄 지으면 나도 죄인이 되어서 고개를 못 드는 거예요.
꼼짝 못합니다. 묶여 있는 거예요. 풀 수가 없어요. 결박당하는 거예요.
그게 사랑이에요. 하나님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본질은 '자유'예요. 전적으로 자유로우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잖아요.
그게 스스로 묶이신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Without God, we cannot
Without us, God will not
'하나님 없이,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없이, 하나님은 하려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니어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니어도 교회를 세우실 거예요.
나 아니어도, 자신의 사익을 이끌어 가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 없어도, 멀리 가실 수 있어요. 멋지게 가실 수 있어요. 빨리 가실 수 있어요.
우리가 미적대고 못 따라가니까... 그게 문제죠.
근데 하나님은, 우리 없이 가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혼자서 천국에 계실 수 있지만, 우리 없이 있고 싶어하지 않으셔서
이 땅에 오신 줄 믿습니다.
God will not without us.
이게 스스로 묶인 사랑입니다.
이 주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바울은 자기의 심령에(마음에) 스스로 묶인 것입니다.
▲두렵지만, 옳은 길이니까 간다!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굉장히 감동적인 대목인데, 근데 생각보다
이 대목에서 바울이 감정의 언어를 쓰고 있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두렵지 않다' 든지... 뭐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라는 말은
냉철한 이성적 판단의 언어입니다.
바울이 지금 나는 두렵지 않다.. 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두렵지만, 이 길이 가치 있는 길임을 안다'는 말을 하고 있어요.
여러분! 내가 옳다고 믿는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바울에게 두려움이 없었을까요?
여러분 두려움, 불안이라는 거는, 본래 왔다 갔다 해요.
'믿습니다' 해놓고도 다시 불안해서 떠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큰 병에 걸려서 투병해 보신 분들 아시죠?
목사님들이 오전에 심방 가서 같이 예배드리면, 너무 평화로워 보여요.
'아멘!' 하고 믿습니다. 큰 병을 잘 이겨 나가는 것 같아 보여요.
그런데 오후에 전화해 보면, 완전히 다릅니다.
굉장히 힘들어 하시고 흔들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잘 왔다 갔다 합니다. 여러분도 경험해 보셨을 거예요.
바울은 예외 이었을까요?
그래서 바울은 '나는 전혀 두렵지 않다'가 아니라,
'나는 두려워도 옳은 일은 여전히 옳은 일입니다.
나는 낙심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나는 시시때때로 불안해 하지만, 나에게 그 불안을 맡길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 삶에서 그렇게 하나님을 선택할 때, 그 길을 감당할 힘도 용기도 주시는 줄 믿습니다.
◑2. 갈 길이 막힌 바울, 어떻게 대처했나요?
오늘 설교 본문에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행16:6~7
바울 일행이 무슨 사정을 만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핍박이 있었거나, 엄청난 위험이 있었거나, 어쨌거나 어떤 장애물을 만났어요.
방향은 옳은 방향입니다. 기도하고 출발한 일입니다. *2차선교여행
반드시 해야 될 일이고, 계획도 다 세워놓고
'내가 가는 길이 이 길이다' 확신하고,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다른 길을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벽에 부딪히는 경우 있잖아요.
▲여러분, 이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여기도 좋고, 저기도 멋진데.. 어디로 갈까?' 한 마디로 '양 손에 떡'이죠. 행복한 고민이죠.
'어, 좋은 직장 두 군데서 오라 그러는데 어디로 가지?'
'좋은 학교 두 곳에 합격했는데, 어느 학교가 더 좋을지,
어디가 더 장학금 많이 줄지 고민하고 있어...'
'결혼 상대로, 둘 다 아까워, 놓치기 싫어...'
그런 행복한 고민에 빠진 사람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대부분의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로 가도 힘들고, 저기로 가도 고생이고, 두렵고 불안해요.
▲바울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는가요?
16:6~7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러니까 아시아, 브루기아, 갈라디아, 무시아 ... 이런 지역 이름이 집중적으로 나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계속해서 찾고 모색했다는 거예요.
'잘 안 되는구나.. 큰일 났구나.. 막다른 골목이구나' 그리고 가만히 있은 게 아니라,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나름대로 조금의 가능성이 있는 곳을, 모색했다는 말입니다.
'아시아가 안 열리나? 본래 여기로 가려고 그랬는데, 그러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지 뭐!'
그러지 않았다는 거죠. 여기 저기로 (기도하면서) 문을 두드렸다는 것입니다. *주제
물론 여러분, 그렇게 해서 성공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습니다.
무시아도, 비두니아도 아니에요.
부르기아, 갈라디아 ... 다 가능성이 별로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 땅 앞에까지 가보는 거예요.
장애물이 없어지기 까지.. 날씨가 좋아지기 까지.. 경기가 회복되기 까지...
막연히 기다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제너 래빈 이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이 일만 없었다면, 사는 게 정말 행복했을 텐데'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즉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그때 그 남자가 배신만 안 했으면...
그때 내가 다치지만 않았으면...' 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죠.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삶, 그 자체가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애물이 없는 경로 따위는, 삶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분, 장애물은.. 사실 우리 삶을 게으르게 사는,
다른 계획을 하지 않는 변명 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모색하던 바울에게,
마게도냐 라고 하는 생각지 못한, 엄청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을 때에,
그 어려움, 장애가 뜻밖에 예상치 못한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가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잘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응답이 어떻게 보면, 구체적인 응답 이라고 하기는 힘들어요.
10년을 계획하고 길을 묻는데 '어딜 가서 무엇을 하라'는 걸, 딱 보여주시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내가 고민하고 길을 찾아야 할 책임을 면제해 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점쟁이를 찾는 이유는, 내가 고민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예요.
씨름하기 힘들어서 그러는 거예요. 불안해서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결정해야 될 일을, 누군가(점쟁이)에게 미루는 거예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일수록, 책임감, 책임 의식은 더 커집니다.
그 뜻을 실행하기 위해서, 더 많이 고민하고, 더 치열하게 모색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은 내 대신 결정해서 답을 '누구하고 결혼해라?' 이렇게 던져 주시지 않습니다.
내가 결정하게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도와주시는 거예요.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서
순종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점쟁이를 의지 하면요, 의지하면 할수록 더 의지하게 되고,
사람이 의존적이 되고 망가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은
더 (자기 삶에) 책임적인 사람이 되어 가는 줄 믿습니다.
바울의 이야기를 보면, 바울이 그래서 마게도냐로 떠난 이후에도
그냥 길이 쫙 보인 게 아니라, 더 고민하면서
(빌립보에서) '어디로 갈까? 기도처가 어디 있을까?'
이렇게 고민 고민하면서 길을 모색해 갑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이게 우리가 초신자 때 잘 몰라서 그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믿음이 자랄수록, 하나님께 순종하고 길을 가면 갈수록
더욱더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심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행16: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로 떠나기를 힘쓰니 endeavoured'
보세요.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 나기를 힘쓰니'
뭔가 노력을 했다는 거죠. 그냥 평탄하게 쭈욱 가는 게 아니라...
◑3.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면,
'무엇이든지 네 마음에 있는 대로 행하라
삼상10:7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7절에,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이게 무슨 얘기냐면, 여러 가지 성경 번역본들의 번역이 다 달라요.
히브리 원전에는 '어떤 상황이 오든지, 그 상황에 맞게 하면 된다'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공동번역 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하시오'
잘 의역한 번역입니다.
저를 한 번 따라해 보세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서는) 네 마음대로 하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마음껏 해도 된다는 거예요.
근데 조건은 딱 한 가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네가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네 마음에 뜻하는 거, 계획하는 거를 다 해도 된다.
다 형통할 것이고, 다 선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할렐루야! :7
에덴동산에서도 마찬가지 였죠. 선악과를 따 먹지 않고 하나님만 인정하면,
나머지는 다 자유였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자유의지를 주셨고, 창의성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회사에서도 마찬가지고,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 다 마찬가지예요.
리더가 제시한 가이드 라인만 지키면, 여러분, 운신의 폭이 결코 좁지 않아요.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한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나니까, 나는 운신의 폭이 너무 좁다.
난 하나님의 틀 안에 갇혀 있다?'
아니요!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우신 규모와 사이즈와 높이 가운데 계신 분이신가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하기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징조이죠.
가정도 중요하고, 물질도 중요하고, 영성도 중요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에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의 능력,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살리는 능력을 주셨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신 거예요.
존재의 힘으로 부터, 나머지 모든 것이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이 가시면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하나님이 멈추시면 저도 멈추겠습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미래사를 알려달라고 하거나,
능력과 은사를 기름부어 달라고 요청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임재를 알려달라고 구하세요.
'하나님이 임하시는 곳에, 제가 함께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임 하시지 않는 곳은, 세상적으로 아무리 좋아도, 저는 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미래 라면, 그 미래가 어떤 미래인지, 제가 자세하게 몰라도,
하나님이 계신 그 자리가 승리의 자리, 성공의 자리, 형통의 자리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잖아요. 나라가 됐든, 기업이 됐든, 어떤 조직이든 간에,
탑 리더가 본부 사무실에 있든, 지방에 공장에 내려가 있든, 해외 거래처에 가 있든,
탑 리더가 있는 그 자리가, 그 공동체의 센터인 거예요.
하나님이 여기 계신 그곳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결코 여러분이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 그걸 세상적 기준으로 판단하지 마시고,
절대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면,
'무엇이든지 네 마음에 있는 대로 행하라. 하나님께서 너의 앞길을 열어 주시리라!'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4. 준비하며 계획을 세우며 기도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이 대신 준비해 주지 않아요. 하나님이 대신 계획을 세워 주지 않아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 길을 열어주시지만,
그 길에 들어서는 것은, 우리가 들어서야 되는 거예요. 이걸 분별 해야 돼요.
하나님의 주실 것과, 내가 해야 되는 것을 분별하는 게, 이게 진짜 중요한 지혜인 것입니다.
시간 관리에 탁월한 작가인 알린 라케인이 말하기를
'계획을 세우는 것에 실패하면, 실패를 계획하는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준비하지 않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하나님 의지한다'는 것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거나, 계획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계획을 세워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준비해 주시지 않습니다.
저는 이걸 배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도 한다고만 다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서 준비해야 되고,
기도하면서 계획을 세워야 됩니다.
하나님은 기회를 주시지만, 준비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한 기간이 4개월입니다.
그래서 4개월 동안 그는 준비하며 기도 했고, 계획을 하며 기도했습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그래서 뭘 준비해야 되는지 알았던 것입니다.
4개월 동안 기도한 후에, 왕을 만나죠.
왕이 물어봅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이때 느헤미야는 '글쎄요, 하나님이 도와 주시겠죠. 저는 믿음으로 삽니다'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느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느헤미야는 이미 4개월동안 기도하면서 계획이 다 세워졌기 때문에,
왕이 묻는 질문에도 정확하게 대답합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다 얘기합니다.
만약에 그가 준비하거나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글쎄요, 왕이 도울 수가 없는 거죠.
항상 정확하게 무엇이 필요하고,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 걸 알아야 만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느2:6~8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느헤미야는 이미 계획한 기한이 있었습니다)
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비자를 달라는 얘기)
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느헤미야가 아주 정확하게 요구해요. 대충 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성벽재건 과업을 위해서 지적 자원과, 인적 자원과, 재정적인 자원과,
영적인 자원을 동원할 줄 알았던 지도자 입니다.
제 리더십의 모델 중에 하나가 느헤미야 입니다.
▲경건한 지성으로 큰 산과 같은 난관을 돌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성을 심어주셨어요.
'예수님이 지혜가 자랐다'는 것은 지성이 자랐다는 거예요. 눅2:52
성경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도다' 호4:6
제가 여러분께 계속 지식을 강조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목자는 지식과 명철로 양떼를 양육하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목회자에게 지식을 쌓고 연구하는 일을 소홀히 하도록 방치한다면,
여러분의 책임도 있는 거죠. (목사 시간을 빼앗는 책임)
저는 날마다 지식을 쌓고, 날마다 명철을 추구합니다.
왜냐면 지식과 명철이 없이는, 맡기주신 주님의 양들을 목양할 수 없기 때문이죠.
지성이란 뭘까요? 지성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겁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신 거예요.
근데 지식을 무시해요? 교육은 무시해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죠.
지성이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맹목적이거나 본능적인 방법에 의존하지 않는 거예요.
충동적인 방법에 의존하지 않는 거죠.
지식이란, 지적인 사고를 통해, 사건이나 문제나 현실을 이해하는 거예요.
어떤 분들은, 그와 반대로 충동적으로 말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이건 지성인이 아닙니다.
어떤 감정이 오더라도, 그 감정을 내가 지각하고, 분별하고, 그걸 다스릴줄 알아야 돼요.
이걸 요즘 와서는 '감성 지능' Emotional Intelligence 라고 말하는 거예요.
지성은 분별력과 관계 있는 거예요.
문제가 있는데, 문제가 없는 것처럼 그냥 묵인하는 게 아닙니다.
탁월한 지성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저는 현실을 무시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건축을 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과정에서도
거듭 거듭 거듭 현실을 직시하고, 거듭 거듭 거듭 교회 재정을 카운트하고...
그렇게 해야만 됩니다. 그게 지도자가 할 일이에요.
지도자는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정의하는 사람이죠.
맥스 쥐프리가 그렇게 얘기했죠.
'지도자는 현실을 정확하게 정의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해야 되고,
그 중간은 협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쥐프리가 <지도력이란 예술이다> 라는 책에서 한 말이죠.
우리도 그렇죠. 현실을 직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최선을 다한 다음에,
끝나고 나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선 함께 협력했던 사람들에게 공을 나누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탁월한 지성은, 문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직면 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또 탁월한 지성은, 문제를 예견하고, 예견된 문제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탁월한 지성은, 문제의 원인과 근본을 간파하는 거예요.
느헤미야는 수많은 대적을 만났고, 괴롭힘을 당했지만, 때로는 말로, 편지로,
뭐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탁월한 지성을 분별 했고,
그 분별력을 가지고 난관을 돌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할 뿐만 아니라, 지성을 통해서 그는
'사람이 해야 될 것' 과 '하나님이 해야 될 것'의 균형을 이루었던 탁월한 지도자입니다.
대적들이 공격했을 때, 그는 기도합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파수꾼을 세워서 방비하죠.
느4:9절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고 방비하는데'
경비를 세운 거죠. 파수꾼을 세운 거죠.
기도했어요. 그러나 파수꾼이 필요한 거죠.
우리 교회가 처음 이제 건축을 시작할 때, 보니까 순식간에 철근을 훔쳐 가버리는 거예요.
여러분, 철근을 훔쳐 가면, 이게 심각한 문제죠.
왜냐하면 이게 다 철근으로 세워야 되는데, 그 철근도 거기에 딱 맞는 철근을 구해 놓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철근을 훔쳐가 버린 거예요.
그래서 교회 공사장에 경비를 세우기 시작했고,
또 우리가 건축 끝난 다음에 우리 장로님들하고
재정을 굉장히 우리가 아껴 썼지만, 제가 절대로 양보하지 않은 것 중에 하나가
경비를 세우는 겁니다.
24시간 동안, 우리 교회는 경비를 세웁니다.
기도합니다. 그리고 파수꾼을 둡니다.
그래서 다행히도 그 잃어버린 철근을, 또 다시 가까이에서 구입할 수 있어서
이렇게 교회 건축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4:13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한 무리는 일 하고, 다른 무리는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함께 모일 수 있도록 소통 체제,
즉 나팔 신호 체계를 구축한 것입니다.
4:20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리더십은 균형을 잘 맞춥니다. 믿음과 지성의 균형!
하나님이 하실 일과, 사람이 해야 될 일을 구별하는 균형,
그런 가운데 느헤미야가 아주 중요한 고백을 해요.
아무리 그가 준비하고 대비 하지만,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사실을 계속 인정하죠.
4:20b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이걸 알아야 돼요. 우리가 노력을 하고, 최선을 다해야 되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돼요.
저도 목회 하면서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리고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 해도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목회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이건 진짜 뭐 기적이죠.
시20: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이 말은 경거가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말이 필요없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전쟁을 수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기도합니다.
출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이건 기도예요. 그러나 이 말씀만 보시면 안 되고, 13절과 균형을 이루어야 돼요.
17: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하나님 주신 승리이지만, 모세는 기도했고요, 여호수아는 싸웠습니다.
이걸 잘 균형을 맞춰가는 게, 신앙이 성숙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5. 이제는 배낭과 전대를 가지라 눅22:35~38 2024.09.22.설교일부녹취
본문 눅22:35~38절은, 해석이 쉽지 않고 꽤 어렵습니다.
이 말씀 후에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기도하시죠.
그러니 이 대목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십자가를 지시기 전의 '마지막 대화'라고 봐도 됩니다.
눅22:35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앞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 (마10장),
또 70인의 전도대를 보내실 때 (눅10장), 어떻게 명령하셨죠?
'너희가 전도하러 갈 때는, 전대, 배낭, 신발 등을 다 준비할 필요 없어!' 마10:9~10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제자들은 부족한 것이 실제로 하나도 없었습니다.
35절은 예수님이 이것을 회상하시듯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36절에 보면, 이와 정반대의 대조적인 교훈이 나옵니다.
22:36 '이르시되 (그러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과거에는 '전대나 배낭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러나 '이제는 배낭이나 전대를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검이 없는 자는, 그 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서 준비해라' :36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 이거는 충격적인 말씀이죠.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학자들이 지적하는 공통점은 무엇이냐?
'임박한 위험'입니다. '이제 곧 폭풍이 몰려올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곧 붙잡히십니다. 십자가를 지시게 되고,
그들은 다 흩어지게 됩니다. 이런 폭풍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임박한 위험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젠 이 폭풍이 바로 코앞에까지 왔으니까,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스스로 준비해라'
왜 예수님은 믿음으로 '전대와 배낭을 가지지 말라'고 하시지 않고,
이성적으로 '이제는 전대와 배낭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는가요?
1) 이 같은 시대의 구분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닥칠
초대 교회의 박해 시대를 준비시킨 것으로 보는 해석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실제로 박해가 일어났죠.
그 박해는 거의 3백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평화의 시기가 있고, 박해의 시기가 있다는 거죠.
그때에 따라, 준비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이방 선교를 할 때는, 배낭과 전대가 필요하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다가, 슈바이처의 해석을 참고하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성인으로 불리는 슈바이처가
도덕적, 윤리적인 면에서 성자일뿐만 아니라, 그분이 유명한 신약 학자입니다.
그분은 이 구절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했느냐면,
'이 예수님의 교훈은 제자들에게는 선교의 새로운 장을 예고하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때까지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동족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는, 믿음으로 나아갔을 때
그들이 다 채워줄 수 있지만,
이제 앞으로는 무대가 어디로 옮겨지느냐?
이방인 지역으로 옮겨지게 될 때,
그때는 분명히 믿음으로 준비해야 될 것도 있겠지만,
'이제는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준비해라!'
이런 선교의 새로운 방식에 대해서 예고하는 것이다' 라고 슈바이처가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사도 바울의 예를 듭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했죠? 그냥 믿음으로도 갔지만, 뭘 했습니까?
텐트메이커!
자기가 천막을 만들면서, 스스로 필요한 비용들을 벌면서, 선교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할 때에도, 한쪽 길만 예수님이 가르치신게 아니라는 겁니다.
분명히 믿음을 통해서, 때로는 배낭과 전대도 준비할 필요가 없이,
믿음으로 채워 주실 때도 있지만,
그러나 어떤 순간도 우리에게 있을 수 있느냐?
우리 스스로가 자비량으로 준비해야 되는 때도, 시기도 있다는 거죠. ☞ <모순, 양면성>
우리가 성경을 두루 두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앞 날을 준비해라' 라고 말씀하셨고,
특별히 '칼'에 대한 준비를 언급하셨습니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