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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정하여

LNCK 2025. 2. 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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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일 신년 새벽기도회 둘째날

 

뜻을 정하여          단1:3~9          2024.01.02. 

 

◑도입

다니엘서는 여호여김 3년 되던 해에 시작이 되었습니다.    단1:1
이시기에 바벨론이 남유다를 침공했습니다. 

그때 바벨론의 왕은 느부갓네살 이었습니다. 
그는 바벨론의 전성기를 이룬 왕이 었습니다. 
그가 통치 하던 시기에, 바벨론 나라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시대에 바벨론 제국은 매우 급격하게 팽창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정치인, 관료들이 필요했습니다. 
특별히 점령지 국가들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사람 만으로는, 그 필요한 인원을 다 채울 수 없었습니다. 

이때 느부갓네살 왕이 사용한 식민지 정책이 있습니다. 
바로 피지배국가 출신 엘리트 청년들을 뽑아서, 
바벨론의 미래 지도자로 키우는 정책이었죠.

그래서 피 지배의 국가 가운데,  젊은 엘리트 들을 바벨론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바벨론에서 그들에게 바벨론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본국으로 보내거나, 아니면 다른 점령지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들을 통해, 느부갓네살은, 자기를 대신하여 점령지들을 통치하게 했던 거죠. 
아니면 바벨론에 머물면서, 그들을 자기 곁에 두고, 자기를 보좌하게 했습니다. 

자, 이 '식민지 청년 교육 프로젝트'에 책임을 맡은 자가 있습니다. 
환관장 아스부나스 입니다.  1:3
그를 통해 각 나라의 엘리트들을 선발했습니다. 

이때 유다에서 발탁된 사람이, 바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었습니다. 
이때 다니엘의 나이는, 십 대 중반쯤 되었을 겁니다. 

(*요즘도 적대국의 스파이나 간첩을 양성할 때, 
아주 어린 나이에 뽑아서 교육시킨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 나라 언어와 문화를 가르쳐서, 완전히 적대국 사람으로 키우죠)

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벨론으로  끌려와서 바벨론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삼 년 동안 이 바벨론이 제공하는  교육을 받아야 했던 거죠.  1:5
  
이들은 노예로 잡혀오거나, 벌을 받기 위해  끌려온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에서 관리로 등용하기 위해,  뽑혀 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포로의 신세이긴 했지만, 선택된  사람들이었던 거죠. 

어떻게 보면 바벨론 제국이 시행한 식민지 정책의, 대표적인 수혜자 였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이라는 당대 최고의 선진국에서, 공짜로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숙식이 제공되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미국에 국비 장학생으로 유학을 간 것과 같습니다. 
거기서 최고의 교육과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바벨론에서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특전이, 한편으로는 큰 위기였습니다. 
바벨론에서 교육이 마쳐지면, 그들은 바벨론화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바벨론으로부터 많은 특혜와 혜택을 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거죠. 
'하나님의 백성' 이라는 정체성은 다 빼앗기고, 
바벨론 사람처럼 살아야 하는, 정체성의 큰 위기 앞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세상이 우리에게 똑같이 던지는 미끼 아닙니까?
세상은 우리에게 많은 혜택과 특혜를 베푸는 것 같습니다. 
높은 명예와, 또 권력과, 부와 자리를 주는 것 같아 보입니다. 

자, 그러나 여러분, 그게 좋은 것만이 아닙니다. 그 뒤에는 우리의 정체성, 
즉 '성도' 라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이라는 정체성을 내려놓고 
세상 사람들처럼 살도록 우리를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어린 자녀들을 보십시오. 
세상은 자녀들에게 공부할 수 있도록 온갖 좋은 학교와 사교육을 제공합니다. 

그런데 그 교육을 좇아가다. 보면, 주일은 지키지 못합니다. 
교회의 수련회에도 갈 수가 없습니다. 
그 교육 과정을 다 마치면, 그저 유능한 또 한 사람의 '바벨론 사람'이 되는 것 뿐입니다. 

좋은 대학에는, 우리의 자녀들이 들어갈 수 있겠지만, 
그 끝은 결국 또 한 사람의 '바벨론 사람'이 되는 것 뿐입니다. 
여러분 끔찍하지 않습니까? 여기에 다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겁니다

◑바벨론에 살면서, 바벨론에 동화되지 않았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

 

여러분, 성도를 무너뜨리는 것은 꼭 고난 만이 아닙니다. 
고난 보다 더 강한 사탄의 무기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축복이고, 겉으로는 특혜 같아 보이지만 
성도들의 정체성을 더 심각하게 망가뜨리는 마귀의 무기, 
바로 '이 세상에서 잘 풀리는' 유혹 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지금 그 엄청난 유혹 앞에 섰습니다. 
3년간 국비 장학생으로 특별 대우를 받으며, 
평생 고액 연봉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까지 제공받는 유혹입니다. 

자, 그러나 그 끝은, 그저 유능한 바벨론 사람이 되는 것 뿐이었습니다. 
신분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 이지만, 
알맹이는, 바벨론 정신으로 가득한 바벨론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자, 이게 '바벨론' 이라는 세상 제국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사용했던 방식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동일하게 끊임없이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겉으로는 굉장히 좋아 보이는 혜택이고, 특권 같아 보이지만, 
오늘도 세상은 사실 '성도' 라는 정체성을 빼앗아가고,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우리를 살도록 만듭니다. 
이걸 모르면 여러분, 우리도 어리석게 세상에 동화되어서 살아가게 되는 거죠. 

자,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 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상실 하지 않고, 
이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자, 오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어떻게 세상의 거센 도전 가운데, 또 유혹 가운데, 
성도의 정체성을 지켜 되었습니까? 

자, 오늘 본문은, 저와 여러분에게 
세 가지를 거절하고 
한 가지를 지켜 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다 거절한 게 아닙니다. 
'바벨론은 이방의 땅이야.. 하나님을 안 믿는 땅이야' 
그런 마음으로 바벨론의 모든 걸 다 배척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에서 3가지는 받아들였고요. 
1가지는 거절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세 가지 받아들인 것은 무엇입니까? 

1) 그들은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배우고 받아들였습니다. 
바벨론의 학문은 당대 최고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바벨론의 학문은, 다신교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시대의 학문에는, 신화와 미신 등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의 운세'와 같이, 점 치는 법을 배우거나, 
온갖 미신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배우고, 받아들였습니다. 

2) 이렇게 3년을 잘 교육을 시켜서 어떻게 합니까? 1:5
그 나라의 관리로 등용됩니다. 

이 나라가 어떠한 나라입니까?
다니엘이 살았던 자기 조국을 멸망시킨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관리가 되는 거죠. 이것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3) 세 번째, 창씨 개명을 받아 드렸습니다. 
이들에게는 바벨론 식의 새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그것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이들의 이름에는 하나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갑니다. 

다니엘, 미사엘.. 의 '엘'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엘의 복수형이 '엘로힘'이죠.
하나냐, 아사랴 .. 이들의 이름 속에 들어간 '야'는 '야웨(여호와)'의 축약형입니다. 주1)

그러니까 이 네 사람들의 이름 안에는, 평범한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야, 엘)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바벨론 식으로 다 바꾸게 했습니다. 
다니엘은 벨드사살로 바꾸었습니다. 
'벨'은 바벨론의 첫 번째 신의 이름입니다. 

하나냐는 사드락 으로, 
미사엘은 메삭 으로 개명이 되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할 때의 '악'은.. 아쿠의 준말 입니다. 아쿠는 바벨론이 믿는 달의 신입니다. 

아사랴는 아벳느고로 바꾸었는데, 
여기서 '느고'는, 바벨론의 벨 다음의 두번째 신입니다. 

좀 복잡하긴 하지만요. 한 마디로 하면, 
원래 네 사람의 이름에는, 다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을 바벨론 식으로 바꾸었는데, 
전부 다 바벨론 신들의 이름으로 바꿔놓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할 때,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일본 이름으로 바꿨던 목적이 무엇입니까? 
민족의 정신과 정체성을 빼앗는 것입니다. 바벨론 제국이 그렇게 했던 겁니다. 

그런데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거절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들이 거절한 게 있습니다. 
위 세 가지는 받아들였는데, 한 가지 거절한 게 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죠.

단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다니엘은, 왕이 주는 음식과, 왕이 주는 포도주를 거절했습니다. 
1:12절에 보면,  다니엘은 채소만 먹었습니다. 채식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했던 목적이 무엇입니까? 
8절에 보면,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라고 나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생기는 거죠.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왕의 음식과 그가 주는 포도주를 거절한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에,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알려진 해석이  두 가지가 있죠. 

1) 첫번 째, '고기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기 때문에 거절했다'는 해석입니다. 
우상에게 먼저 바쳐지고 나서,  왕의 상에 나왔다는 거죠. 

그래서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왕의 음식을 거절했다는 해석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의견에는 허점이 있습니다. 

'고기'만 우상에게 바쳐 진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채소'도 우상에게 바쳐지고 난 후에  시장에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첫 번째 해석이 설득력이 없는 거죠. 그들이 채소는 먹었으니까요.

2) 두 번째 다른 해석도 있는데요. 
'왕의 음식들 가운데는, 구약의 율법에 저촉되는 고기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돼지고기와 말고기를 먹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이런 고기를 먹는 일을 부정한 것으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거절을 했다는 겁니다. 
부정한 음식이었기 때문에,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거절을 했다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이 두 번째 해석도, 사실 설득력이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 포도주는 설명이 안 됩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율법을 보면, 포도주는 금지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율법이 금했다'는 것도, 사실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최근의 학자들은 다른 해석을 지지합니다. 
'이 당시 왕의 음식을 먹는 것은, 언약적인 충성을 상징 했다'는 해석입니다. 
고대의 세계에서 왕의 식탁에서 내려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왕에 대한 전적인 의존과, 그에 대한 전적인 충성을 선언하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말하자면 '왕이여,  당신이 나를 먹여 살리는 분이십니다. 
내 먹고 살 것을 당신이 나에게 공급해 주심으로 
나는 당신에게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라는 그 언약적 충성의 관계, 
그 맹세가 왕의 상에 참여하는 행동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자, 그러면 뒤집어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왕의 음식을 거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의 먹고 사는 것과 생존이, 왕에게 의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나는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는, 그 분의 백성이다'라는 
신앙의 고백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어디서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먼 이방 땅 바벨론 그곳에서도요! 

그래서 '나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충성하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왕의 신하로 왕의 정부에 들어가서, 최선을 다해서 왕을 섬기겠지만, 
그러나 내가 섬겨야 할 충성의 핵심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것입니다. 
왕을 섬기되 하나님이 허락하는 선 안에서만 왕을 섬기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먼 이방 땅 바벨론에서도 나를 먹고 살게 하는 이는, 
눈에 보이는 제국의 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 고백 때문에, 다니엘은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식탁에 참여하는 것에, 선을 그었던 거죠. 

저는 이 해석에 동의합니다. 
만일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당장에는 너무 좋았을 겁니다. 
끊임없이 공급되는 양질의 고기와, 극상품의 포도주를 먹는 거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삼 년 동안, 왕이 제공하는 고기와 포도주를 끊임없이 공급받았다면, 
다니엘과 세 친구는 어떤 모습이 되었겠습니까? 

그것을 공급하는 대상인 바벨론 왕에게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돼 버렸을 겁니다. 
그러니까 바벨론 제국이 의도했던 그 미끼에 딱 걸려드는 거죠. 

그들은 바벨론 왕에게 충성하는, 바벨론의 '개 (주구)'가 되었을 겁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빼앗기고, 
완전한 바벨론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 일을 본문 8절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
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1:8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다니엘은 이 일에 뜻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굳게 결심했다는 거죠.

'내가 드려야 할 언약적인 충성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그 분이 나를 먹고 살게 하는 유일한 분이시다. 나는 하나님께만 충성을 바치겠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 이라는 내 정체성 만큼은,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다니엘은 뜻을 딱 정했습니다. 
그게 바로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부한 일입니다. 

여러분, 이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론에서, 그리고 나라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이렇게 엇박자로 삐딱하게 나가는) 이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불이익이 눈에 보이듯 뻔하게 따라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다니엘의 운명이 바벨론에게 달려 있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뜻을 정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1: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1: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1:20 '왕이 그들 (네 명) 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하나님이 믿지 않는 환관장에게 역사하셔서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부한 다니엘과 세 친구를 
은혜와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채소와 물만 먹는 열흘에 테스트 기간에,  *형편 없는 음식
하나님은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 빛을 더 윤택하게 하시는 
일상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뜻을 정하여 신앙의 길을 걸었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학문과 또 깨달음과, 지혜와 환상을 해석할 능력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결국 이들의 지혜와 총명이,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나 
왕에게 인정받게 하셨습니다.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1:20
즉 왕의 모사가 된 것입니다.

자, 결과적으로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벨론 왕궁에서 중요한 관리로 선발되어 
국가를 섬기는 일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단1장의 마지막 결론이 21절에 나오는데요. 
단1:21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여러분, 평범해 보이지만 아주 충격적인 본문입니다. 
역사를 모르면  밋밋하게 보이지만, 우리가 역사를 알면 굉장히 놀랍게 다가옵니다. 
고레스 왕은, 바벨론의 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황제였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십대의 어린 나이에 붙잡혀 왔습니다. 

그런데 이때(고레스 때)까지 살아 남은 겁니다. 
그때까지 바벨론의 여러 왕들이 바뀌었습니다. 

느부갓네살 다음에, 4명의 왕들이 바벨론에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다니엘은 살아남아서 계속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대통령이 바뀌면, 그 밑의 참모도 바뀌죠. 
그러나 수많은 정권이 바뀌는데도, 다니엘은 총리의 자리를 계속 지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1:1절에 이스라엘을 파괴한 제국이 바벨론 제국 이었습니다. 
자 그런데 1장 끝 절에서는   1:21  
그 바벨론이 멸망하고 다른 제국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바벨론 제국이 아니라,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고, 새로운 제국이 세워 지는데, 
다니엘은 놀랍게도 망하지 아니하고, 계속 살아남아서, 그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습니다. 

왕들은 바뀌어가고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제국마저도 무너지고, 
새로운 제국이 등장하는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그 자리에 건재해 있는 것으로 
다니엘서 1장은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눈에 보이는 현실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의 운명을 쥐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니엘의 운명을 쥐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거대 제국들이 힘을 가지고 세상을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이 여전히 주권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기 때문에, 
이방 땅 그곳에서도 계시며, 그곳에서도 신실하게 다스리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다니엘서가 1장을 닫으면서, 여러분과 저에게 말하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적용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이 찾고 기대하는 백성들의 삶은 어때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께만 충성을 바치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의 표현으로는 '뜻을 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결국 다스리는 분은, 이 세상의 제국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권력이 아니라, 돈이 아니라,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세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많은 혜택을 약속하고 제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성도' 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빼앗는 것 뿐입니다. 
거기에 속아서 넘어지는 사람들이 오늘도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바로 '뜻을 정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뜻을 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딱 뜻을 정하고, '나의 충성과 헌신의 대상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하고 뜻을 정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대가를 딱 지불해야 하는데, 
여러분 안타깝게도 뜻을 정하지 않습니다.      

아주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그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세상의 가치와 자기 욕망을 따라갑니다. 
좁은 문이 아니라 넓은 문으로 들어갑니다. 

성도다운 모습이 현저히 사라지고 있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시대가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거하는 한국 교회의 모습입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들을 너무나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물론 여러분, 뜻을 정하며 살아가는 게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에서, 뜻을 정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딱 보여야 할 때, 
자기 신앙을 표현하며 살아가는 것은... 여러분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뜻을 정해서 그 길을 딱 걸어 갔을 때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어떠한 일이 있었습니까? 
시퍼렇게 살아 계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가, 결단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뜻을 정하는 것입니다.    ☞ <결단, 선택>

'올 한 해에는, 내 충성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시고, 나를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 나의 뜻을 딱 정하는 겁니다. 결단하는 겁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되, 세상에서 선을 그으며 살아가는 겁니다. 

여러분, 어떤 게 있을까요? 자녀들은 주일 성수가 있겠죠. 
'하나님, 학업 때문에 주일은 빠지지 않겠습니다.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니, 뜻을 정하여 주일을 지키며 한 해를 살겠습니다.' 

청년들은 뭐가 있을까요? 
'하나님, 결혼을 늦게 하는 한이 있어도, 뜻을 정하여 믿음의 배우자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뜻을 정하여 성적으로 순결을 지키겠습니다.' 

여러분 어른들은 뭐가 있을까요? 
'하나님, 제가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똑같이 두려워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뜻을 정하여 하나님만 의지하며 두려워하며 살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살아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런 뜻을 정하는 삶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똑같이 살아가되, 세상에 선을 그으며 살아가는... 
여러분 그 '영적인 선'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올 한 해에는 시퍼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주권과 
또 그 분의 도우심을 생생하게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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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다니엘 : 단 Judge + 엘 '하나님은 심판자시다'
미사엘 : 미 Who + 엘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냐 : 하난 Grace + 야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아사랴 : 아자 Help + 야   '하나님이 도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