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하나님의 시간 카운트

LNCK 2025. 2. 3. 18:38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시간>

하나님의 시간 카운트 | 엡 5:15-18  | 25.1.3 - YouTube

 

하나님의 시간 카운트         엡5:15~18, 요일2:16~17           2025.01.03.

◑시간을 계수 count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에 대한 이해가 좀 필요해요. 

지혜로운 사람들은 '시간'에 대한 이해가 남다릅니다. 
'시간을 어떻게 대하는가? 시간을 어떻게 바라 보는가?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여러분,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은, 시간에 대한 태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복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외가 없어요. 시간에 대한 인식이 달라요. 
시간에 대한 관점, 시간에 대한 이해, 
시간에 대한 시각, 시간에 대한 태도, 시간에 대한 감각... 이런 게 달라요. 

어떤 사람은 시간에 대한 감각이 없어요.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지금 내 삶이 어느 시점에 있는지...' 자기 나이는 세는데 시간의 개념은 약해요. 

그러니까 나이를 아는 거하고, 시간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달라요
'내 나이는 내 일생의 선상에서 지금 어디 쯤 와 있는지..' 
이런 것들이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인식을 하는 거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없는 거죠. 
그러니까 (음악을 모르는) 음치가 있듯이, '시간적 음치'도 있습니다. 

▲시편을 보면, 모세의 경우, 시간에 대한 인식이 참 분명합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의 인생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인데,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간들이 어떻게 흐르느냐는 거죠. 
매우 신속하게 흐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날아간다'고 말합니다. 
그 시간이 굉장히 빠르다는 걸, 모세가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시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우리의 날 계수 count 함을 가르치사'
모세가 굉장히 중요한 말을 하는 거죠. 날을 세는 걸 가르쳐 달라는 거예요. 
그걸 배워야 지혜로워 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시간을 주목합니다. 
'시간에 대한 관조, 시간에 대한 성찰' 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어요. 

여러분, 연말에도 그런 성찰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 지금 내가 어디쯤에 와 있구나.. 이 시간이 어느 지점을 흐르고 있구나...'

여러분, 이런 성찰을 하지 않으면 쫓기는 삶을 사는 겁니다. 다 정신 없이 살아요. 
'내가 벌써 이렇게나 나이를 먹었네?' 이럽니다. 

그래서 시간을 계속 돌아봐야 되고, 시간에 대한 성찰을 해야 되는 거예요. 
무조건 열심히 살아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시간에 대한 성찰을 하지 않으면, 시간의 반복만 있게 된다는 거예요. 
시간의 무한 리피트(반복), 

여러분, 올해 어떻게 살 것인가요? 또다시 그냥 반복만 할 것인가요? 
자칫 잘못하면 우리는, 똑같이 작년과 같이 살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작년하고 올해가 전혀 바뀌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시간의 관조란, 무조건 바쁘게 활동만 하는 걸 말하지 않습니다. 
  *관조 觀照 : 주관을 떠나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것

관조하는 사람은, 시간 속에서 계속 성찰하려고 한다는 거죠. 
그래서 본문 15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엡5: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이게 시간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어떻게 행할지 자세히 주의하여' ... 지혜자의 태도죠. 
지혜자는 '자세히 주의하여' 이게 시간에 대한 성찰입니다. 

자칫하면 우리는 시간을 잃어 버립니다. 한 순간의 시간이 확 지나가고 
그러면 일 년도 금방 지나갑니다. 한 순간도 시간은 멈춰 있지 않습니다.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계는 멈추게 할 수 있죠. 
근데 시간은 멈추게 할 수 없어요. 그게 인간의 유한성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컨트롤 할 수 있으면 우리는 신이에요. 근데 우리는 시간을 조정 못 합니다. 

시간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세요. 우리는 시간을 컨트롤 할 수가 없어요. 
그게 우리의 인간의 한계죠.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이기지 못해요. 
시간은 우리와 의논하고 흐르는 게 아닙니다. 
'오늘은 요정도만 돌다가 끝날 게' ... 이러지 않아요. 계속 도는 거죠. 

시편의 시인은 시간의 계수를 말하는 거예요. 시간의 카운트!
여기서 '시간을 계수한다'는 말은, 단순히 '오늘은 몇월 몇일'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죠.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사실 낭비되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나이가 75세였죠.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75세였더라'

나이가 매우 의미가 있다는 거죠.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나이예요.

그러니까 75세 이전의 세월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이방 우상을 섬기고 그렇게 살았던,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세월이 75년!
아브라함은 75세부터 하나님이 카운트를 하시는 거예요. 이게 영적인 나이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작이라는 거요. 
75세가 아브라함이 영적으로 태어난 나이에요. 영이 살기 시작한 나이에요. 

그때로부터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75세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75세부터 그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유의미한 시간으로 카운트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계수가 시작된 날이죠. 

그래서 그는 75세 이전에 어떻게 살았는가? ... 성경에 언급이 없어요. 

▲출12:1~2절에 보면, 어떤 시간의 기록이 있습니다. 
출12:1~2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를 기록하고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의 출발을 딱 기록하고 있는 거예요. 
역사의 전환점, 매우 중요한 터닝 포인트의 일시를 기록하고 있는 거죠. 

여러분 모세도 마찬가지고, 그의 인생을 3등분 하잖아요.
애굽 왕실에서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는 리더로 40년, 

진짜 40년은 뭐죠? 마지막 출애굽에서 가나안 입구까지 백성들을 이끌어낸 그 시간, 
이 마지막 시간이 중요한 거죠. 
불타는 가시떨기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그 순간, 거기서 진정한 시간이 시작된 거죠. *출3장

여러분, 우리가 구원을 받는 때가 언제인가요? 그걸 잘 기억해야 되죠. 
정확하게 일시나 시점은 모를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러나 언제쯤인지는 여러분은 다 아시잖아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교회는 다녔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때 확실하게, 특별히 수련회 때,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제게 영적으로 어마어마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은혜는 받았는데, 
확실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중생의 체험을 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하고, 
뒤집어진 그 순간은... 고2 때였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나이를 먹어 가고 있는데 
어느 날 하나님이 내 시간 속에 찾아오시는 거예요. 시간 속에 찾아오신 거예요. 

나의 인생의 어떤 시간에, 하나님이 밀고 들어오신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과 연결되는 그 순간부터, 진정한 인생의 카운트가 시작되는 거예요. 
그 이전의 시간은, 사실 잃어버린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러다가 제가 고등학교 때는 우리 집안이 어려웠기 때문에... 
그때는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다른 설교에 보면, 부친 사업이 실패해서, 빚을 지고, 빚쟁이들에게 시달렸다고 합니다.)
소망이 없었어요. 도저히 삶에 소망이 없는 거예요.

당시 저는 착실했거든요. 저는 빗나가고 그런 게 없었어요.
근데 제 내면에는 고민이 많은 거예요. 소망이 없는 거예요. 
뭐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집안도 그렇고... 그때 멍하고 있었어요. 
그때는 계속 멍하게 살았어요.

근데 딱 은혜를 받고 난 다음부터, 제 인생은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아요. 
그때부터 시간의 질량이 달라지는 거죠. 시간의 퀄리티가 달라져요.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우리의 길을 간 거잖아요. 

그리고 죄의 지배를 받고, 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고, 불순종의 시간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던 세월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열하룻 길이면 가나안에 이를 수 있었어요. 
한 2주 정도면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근데 실제로는 40년 걸렸어요. 

원망과 불평하면서, 광야에서 방황하는 거예요. 
그래서 민수기는 방황의 시간을 기록한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서 세월을 그렇게 허비할 필요가 없었는데, 
거기서 세월을 다 허비해 버리고, 그리고 광야에서 죽는 거죠.

그건 카운터가 안 되는 시간이에요. 그 사십 년 세월, 잃어버린 시간입니다. 
그걸 누가 보상 하죠? 사라진 거예요. 시간은 복구가 안 되요.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거는 복구가 돼요. 회복을 시킬 수 있어요. 
돈을 잃어버려도 다시 벌 수 있고, 
우정이 깨어져도 다시 회복시킬 수 있고, 
가방이 낡으면 다시 교체하면 되는데... 시간은 복구가 안 돼요. 잃어버리는 거죠. 

◑우리 인생에 '시간의 공백, 낭비'가 없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나이에 대한, 창세기에 재미있는 스토리가 나와요. 
창16: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86세였더라'

나이를 딱 기록합니다. '그때 너 이건 실수 했지?'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했어요. 
근데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의 몸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어요.

그 일이 일어난 이후에 시간이 한참 흘러가요. 13년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세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 13년 동안은, 창세기에 기록이 왕창 빠져있어요.

위 16:16절 그 다음 구절이 17:1절이에요.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그러니 아브라함은, 13년을 잃어버렸다고도 할 수 있죠.
86세에서 99세까지... 아브라함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성경에 기록이 단 한 줄도 없어요.

이 공백 기간 동안, 하나님은 그에게 한 마디도 말씀하지 않은 거죠. 왜요? 
그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끊긴 거예요. 

그러니까 이스마엘을 낳았을 그때부터, 하나님은 침묵하신 거예요. 
아브라함의 실패로 하나님의 말씀이 끊겨 버렸어요. 
이 시간이 공백이 된 거죠. 여러분, 얼마나 아까운 시간입니까! 

▲자, 하나님의 시간 계수 방식은 우리와 달라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수 방식이라는 거예요. 

우리의 삶을 보십시오, 한 달이면 끝낼 일을, 몇 년을 끌고 다니는 겁니다. 
시간을 엉뚱하게 허비하는 거죠. 
열흘 이면 갈 수 있는데.. 40년이나 걸렸어요.

여러분, 복된 삶은 무엇인가요? 
가능한 시간의 낭비를 줄이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시간의 유효성 때문이에요. 

시간이 한정돼 있다는 거예요. 무한 제공되어 있지 않다는 거죠. 
아마 여러분, 이것은 나이가 젊을수록, 이 부분이 와닿지 않을 거예요. 

근데 연세가 들어갈수록 이건 굉장히 와닿는 거예요. 
이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거죠.

▲여러분, 오늘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 것인가요?
우리게 주어진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되는가요? 
그것을 오늘 에베소서에서 얘기하는 거죠. 

엡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아끼라'이라는 말은, 이 말을 원어적으로 '시간을 속량하라'
즉 돈을 주고, 시간이나 기회를 사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시간을(또는 그 기회를)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여기 시간은 '크로노스'가 아니고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 는 연대기 적인 시간을 말하고, 
'카이로는' 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결정적인 시간을 말해요.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기회를 주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어떤 기회를 주실 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거죠. 

희랍 신화에 보면, '기회의 신은, 앞머리 밖에 없다'는 거예요.
'기회는 앞에 올때 잡아야 된다'는 거예요. 

기회 opportunity 의 신은, 앞에는 머리숯이 많은데, 뒤에는 대머리에요. 
그래서 기회는,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내가 잡을 수가 없다는 거죠.
내 앞에 올 때 기회를 잡아야 돼요. 

그러니까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결정적인 시간, 결정적인 순간을 잘 활용하라는 거죠. 
여러분 이게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어떤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시간이 오는데, 
그걸 붙잡을 수 있어야 돼요. 

근데 여러분, 보통 사람들은 그냥 열심히 사는 거예요. 열심히, 열심히...
열심히 사는데 번 아웃이 돼요. 탈진되고 소진되고 말아요.

여러분, 그 인생의 열심이 뭐냐면, 괜한 허영심인 거죠.
다른 사람보다 더 우위에 서려고 하고, 더 인정 받으려고 하고, 
더 많이 성공하려고 하고, 그리고 막 쫓기는 거예요. 누가 쫓아오지도 않는데 
막 자기 혼자 정신없이 사는 거예요. 

막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1인 3역도 하고, 막 그냥 다 하는 거예요. 근데 뭘 놓 쳐요? 
카이로스를 놓쳐 버리는 거예요. 

크로노스 속에서는 열심히 하는데, 카이로스가 오는 걸 몰라요. 
왜요? 내가 너무 바쁘니까, 내가 정신없이 사니까, 
카이로스(하나님의 결정적인 때)가 오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거예요. 

카이로스는.. 내 삶의 영역에,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내어 드리는 거예요. 
와 이거를 경험하면 달라져요.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내 시간의 질량을 높여주는 거예요. 

그 말은 뭐냐면, 내가 어떤 거는 10년, 20년 동안 못 이루었던 것을 
하나님이 찾아오시면 단번에 해결이 돼 버려요.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내어드려야 돼요. 
그 하나님이 오셔야, 우리의 시간이 온전해 져요. 
와, 이게 너무 너무 중요해요. 

근데 정신 없이 바쁘게, 열심히만 사는 사람은 
그냥 자기가 자기 길을 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그 타임(카이로스)을 인식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면 죽도록 고생만 하면서 사는 거예요. 

◑ '때가 악하다'고 그랬어요.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5:16 
이 말은 뭐냐면 '우리가 소극적으로 있으면, 시간이 악한 쪽으로 흘러 버린다'는 거예요. 

세상은 타락한 세상이에요. 문화적으로 굉장히 죄가 오염되어 있는, 
죄가 관영한... 거짓이 많고, 정욕적이고, 탐심이 가득한 세상이죠. 

이 세상 안으로 들어가면, 죄를 억제하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오히려 죄를 부추기죠.
법에 저촉만 되지 않으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문화 안에 내가 연루되면,
내 시간이 급속도로 낭비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시간의 중립이 아닙니다. 시간의 중립이 아니고, 때가 약하다는 거예요. 
시간이 오염되어 있다는 거예요. 문화적으로 이 세상 전체가 너무 악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 문화에 내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깨어있지 못하면, 그냥 휩쓸려 간다는 거죠. 

돈도 비슷해요. 여러분 돈은 중립이 아니에요. 
돈이 마치 인격을 가지고 있는 어떤 그런 인격체처럼, 우리를 끌어 당겨요.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선한 일을 위해서 돈을 쓰지 않으면, 
이 돈이 어디로 흘러갈지 몰라요. 

시간이 그래요. 쓰지 않으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아닙니다. 어디론가 흘러갑니다. 
적극적으로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시간을 써야 되는데, 
안 쓰면, 내 시간은, 부정적인 곳으로 흘러 가는 거예요. 

우리가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 또 무엇을 주목하고 있는가요? 
하찮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우리에게 습관화가 되면 어떻게 돼요? 
시간의 낭비가 오는 거예요. 

여러분이 뉴스를 봅니다. 시사성을 가지는 건 매우 유익해요. 
칼 바르트 같은 신학자는 '한 손에는 신문, 한 손에는 성경을 들어라'
이런 균형이 있어야 된다고 말했죠. 성도가 시사성을 가지는 게 필요 해요. 

근데 요즘과 같이 인터넷이 생기고 난 다음에 일어난 현상 중에 하나는,
너무 과도한 정보, 너무 과도한 뉴스에 무차별 접속되고 있다는 거죠.
 
유럽의 어느 황태자비가 암에 걸렸고... 
이번 주에 병원에서 퇴원했고... 이렇게 꼭 알지 않아도 될 것까지 다 알려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 가는 것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 외 여러 숏츠, 밈, 틱톡...

세상과 단절하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너무 많은 정보, 너무 많은 뉴스들로 인해 
뭐가 문제예요? 
진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게 만들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난 이후부터는 
우리는 정보 소비자들이 되었어요. 
정보를 무한하게 방출해 내는 사람들이, 인터넷 상에 있는 거죠. 
우리는 그 정보들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이에요. 

시장에 가서도, 뭘 사겠다고 해서 딱 사가지고 오는 게 아니고, 
시장에 가면 그냥 기웃 기웃 하다가, 막 주워담아 가지고 오는 거예요. 
'이거 싸네?' 하면서요. 그처럼 쓸데 없이 쇼핑하듯이, 뉴스를 보고 있다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세상과 등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등을 지는 것보다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선택의 힘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근데 오늘날의 최고의 복병이 뭐냐? 스마트폰이에요. 
뭘 좀 하려고 하면 스마트폰이 울리고, 카톡이 계속 와요.

저는 제 전화번호가 많이 안 알려져 있어요. 
뭐 목사님들 하고도, 비서실을 통해서 연락이 오니까 너무 감사한데, 
그래도 그래도 자꾸 생겨요. 
그리고 막 '단체방'들이 생기고 그래요. 

이거 지금 보통 일이 아니요. 집중력을 자꾸 깨뜨리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스마트폰을 냉장고 안에 넣어 놓을 수도 없고... 
관계를 다 끊고 살 수는 없는 거잖아요.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막 카톡으로 인사가 오는데... 나도 답신을 해 줘야 되잖아요...

요즘은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사는 거죠. 
그 스마트폰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거예요.
항상 스마트폰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는 겁니다.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 하라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지혜롭게 살려고 하면 
기준이 있어야 되는 거거든요. 그게 17절이에요. 

엡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 하라
여기서 핵심은 뭡니까? '주의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시간보다 하나님의 시간이 더 우위에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무조건 '시간을 아낀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경영 기법 속에서도 강조하는 게 뭐예요? 
'시간을 아끼라'는 거죠. 

그럼 우리는, 시간을 아껴서 뭘 할 거냐는 거죠? 
마찬가지로 돈을 아껴서 뭘 할 거냐는 거죠? 
목적의 문제잖아요. 버는 게, 아끼는 게 문제가 아니고 목적! 

우리의 시간을 끌어가는 힘은, 우리에게 있지 않아요.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는 거예요. 

그냥 열심히 살고, 시간을 세이빙 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계속 무엇인가를 물어야 돼요. 
일상 속에 계속 물어야 될 게 뭐냐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도, 항상 '이게 하나님의 뜻일까?' 를 계속 물어야 돼요. 
이게 그냥 몸에 배여 있어야 돼요. '이게 하나님의 뜻이냐?' 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아무리 시간을 아껴도) 꽝이에요.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거거든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고, 그 뜻만 영원하기 때문에 
그 뜻이, 우리의 삶의 가장 중심에 놓여 있는 목적이 되어야 됩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되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돼요? 
계속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 안에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에! 
그 분의 뜻을 말씀 속에서 알려주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에 귀를 계속 기울여야 돼요.
그게 진정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잘 살고, 카이로스의 때를 놓치지 않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큐티를 안 하면, 사실 하나님의 뜻을 매일 분별하고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요. 
그리고 설교를 들으면서도, 말씀을 목성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계속 찾는 거죠. 
그러면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묵상 한다' 그러는데 
이 묵상 가운데에 아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 거죠. 
이걸 놓치면 어떻게 돼요? 민수기처럼 뺑뺑이를 도는 겁니다. 

주기도문에 '뜻이 하늘에서도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아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향해 가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뭐든지 기도 해도 돼요. 
그리고 기도하고 난 다음에, 뭘 해야 되느냐 하면, 마지막이 무슨 기도가 되어야 하냐면,
'주의 뜻이 이루어지아다!'

내가 기도를 해야죠. 내가 소원도 아뢰고... 
그런데 최종적인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내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부합되느냐가 관건 이죠. 
근데 우리가 그게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명확하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 
결국은 기도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하고 마치는 거죠.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마지막 기도가 그거잖아요. 
'내가 원하는 게 있지만,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복병

요일2:16~17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뭘 얘기합니까? 다 지나간다는 거예요. 모든 것은 다 지나가요. 순간적이에요. 
아침 안개와 같아요. 연기와 같아요. 호흡과 같고, 입김과 같아요. 싹 지나가 버려요. 

무엇만 영원하다는 거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이 영원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뭘 붙들 어야 되죠?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살아야 되는 거예요.
다른 건 다 지나간다는 거예요. 

뭐 빠르냐/ 늦냐... 
뭐 시간을 얼마나 뭐 세이브 했느냐 ... 그게 다 순간적 이에요. 

핵심은 우리의 삶의 방향, 그 시간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우리 마음이 끌리는 대로, 눈길이 가는 대로 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삶의 복병이 뭡니까? 그 복병이 뭐냐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이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에요. 
이 세 가지의 덫에 걸리면, 시간은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시간이 낭비됩니다. 
허송세월을 보내고 맙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슨 옷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사로 잡히면 
시간의 낭비를 막을 길이 없어요. 

어떤 사람은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움직입니다. 
시간의 사용 방향이 자기 기분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붙잡지 않으면, 우리 삶은 방향을 잃어버려요. 
의미 없는 시간에 모든 걸 허비하고 많은 것이죠. 

그래서 개인적인 명성을 날리고, 업적을 아무리 쌓아도 
단순히 개인적인 영광을 추구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건 개인의 시간일 뿐이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 연대기 적인 시간, 크로노스의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뉴스의 한 토막들,  그 뉴스가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며칠만 지나가면 다른 뉴스에 파묻혀 버려요. 이슈가 안 돼요. 
일 년 내내 가는 이슈는 없어요. 지금 뭐 대단한 것 같아도 
조금만 지나면 다른 뉴스에 덮혀 버려요. 시간 속에 사라져 버려요. 

요한일서의 말씀이 그거잖아요.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요일2:17
지나갑니다. 아무 것도 남는 게 없어요.

그래서 우리 삶의 방향을 '하나님의 뜻'에 두어야 됩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 하라'  요일2:17
계속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돼요. 
그러지 않으면 남는 게 없어요.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요. 허탕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주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만 남는다'는 거예요. 

◑성령충만 할 때, 카이로스의 때를 분별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엡5:18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여러분, 시간을... 세상의 사람들은 시간을 뭐 타임 테이블 짜고, 스케줄을 짜고...
뭐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막 이런 방식으로 하잖아요. 다 소용 없어요. 

우리가 시간을 잘 사용하려면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이 말은, 시간을 잘 사용하려면, 내 존재가 먼저 바뀌어야 돼요. 

내가 성령충만 하면, 저절로, 시간의 개념이 달라져요. 시간을 다르게 써요. 
시간을 꽉 차게 씁니다. 시간의 낭비가 없어져요. 
성령충만한 순간, 엉뚱한 곳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요. 
엉뚱한 것에 내 마음이 막 흔들리지 않아요. 

성령의 충만을 받는 순간, 시간의 충만함, 그 시간의 질량이 높아진다는 거요. 
여러분, 성령충만 하면, 왜 그렇게 시간의 질량이 높아져요? 
하나님의 뜻이 명확해 지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게 알면, 시간 사용이 달라져요. 시간 배열이 가지런 해져요. 
꼬불꼬불 어지럽게 갈팡질팡 흐르지 않고, 시간이 바르게 흐른다니까요. 

일례로, 요나 선지자는, 한 동안 꼬불꼬불 갈팡질팡 하면서 사명의 길을 갔어요.
그러나 바울은 곧게 갔다는 거예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게 받은 사명...'
그 길을 향하여 곧게 일직선으로 갔어요. 시간 낭비, 동선 낭비가 없었다는 거죠.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여러분, 예수님도 보십시오. 예수님은 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계셨어요.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아버지의 뜻이 뭐죠? 
'아버지가 나에게 하라고 하신 그 일을 내가 이루겠다' 그게 십자가 잖아요. 

그러니까 주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자마자, 당신은 십자가 행이에요. 그것도 직행이에요. 
오늘 이 밤에 오신 여러분들도, 다 자기 사명의 길에 직행을 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할 때  엡5:18
그 성령의 충만은 우리에게 뭘 줘요? 분별력을 높여주는 거죠.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도록, 분별력을 주죠.

분별력이 약하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죠. 
그러면 휘둘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람에게 휘둘리고, 환경에 휘둘리고...
결국 하나님의 뜻을 놓치는 거죠. 
소소한 것들 때문에 핵심 주제를 놓쳐 버립니다. 

여러분 성령이 충만하면, 우리의 정신, 우리의 마음, 우리의 영혼... 이게 맑아져요. 
클리어 해져요. 
그래서 성령 충만하면, 결정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을 읽을 줄 아는 거죠. 

행동할 할 때와 멈추어 할 때를 알고, 때를 아는 자가 된다는 거예요. 
쓸데 없이 엉뚱한 곳에 힘을 쏟으면 안 되잖아요. 
성령충만한 사람은 이 카이로스의 시간을 알아요. 

하나님의 백성들은 카이로스 의 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됩니다. 그걸 아는 거죠.
임신을 하면 만삭의 때가 오잖아요. 서두르면 안 되죠.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는 거예요. '때가 차매...'
그때는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생명이 탄생되는 겁니다. 누구도 막을 수 없어요.

하나님의 온 타임, 카이로스의 시간, 운명의 시간이 옵니다.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어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수백 년 동안, 430년 동안 히브리 민족이 애굽 땅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이제 끝난 것 같은데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잖아요. 그게 카이로스의 때예요. 

왕실에서 사십 년 동안 지내던 모세가, 자기가 막 뭘 하겠다고 했을 때는 실패했죠. 
카이로스가 오지 않았어요... 

여러분, 성령충만 하면 이런 분별력이 생긴다는 거예요. 
'지금은 내가 나설 때가 아니야'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카이로스를 믿으면, 우리는 여유를 가질 수가 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의 압력에 시달리지 않아요. 이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감당하고, 또한 완수할 충분한 시간을 주십니다. 
그게 길든지, 짧든지요.

결국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믿음이 생기게 돼요. 
아무리 사람들이 달라붙어 가지고 해도 안 되는데, 
카이로스의 때가 오면, 하나님이 딱 개입하시면, 한 순간에 다 이루어집니다. 
쉬워요. 그거는 그러니까 결정적인 시간, 그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거예요.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