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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44편 다리를 절며 또 한 걸음

LNCK 2025. 2. 8. 07:5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삼일절>

https://www.youtube.com/watch?v=nOUY7TmA_gk

다리를 절며 또 한 걸음            시44:23~24, 눅19:11              2025.03.02.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926년 <개벽>에 발표된 이상화의 시입니다.        주1) 시의 전문

이 시를 싣고, <개벽>은 일제에 의해서 폐간됩니다.         주2) 開闢 

1926년이면, 1919년 3.1절이 일어난 지 7년 후입니다. 
조국 독립의 희망을 안고, 전국에서 만세를 불렀지만, 원하던 독립은 오지 않았습니다. 
3.1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분들이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죽기까지 했습니다.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데, 봄은 다시 찾아옵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산과 들에, 봄기운이 완연하지만 
'역사의 겨울'은 계속되고 있고, 사람들의 마음도 꽁꽁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조국의 들길을 걸으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떨쳐 일어났던 많은 사람들이 주저앉아 있고, 희망을 잃고 있고, 
만세를 외치던 사람들도 숨죽이고 눈치 보고 있는... 
독립투사였다가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변절하여 친일로 돌아선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에서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라는 말이 
그런 변질자들을 향하는 말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상화 시인은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겠다」 합니다. 
'푸른 들'은 우리 삶의 터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침탈 당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눈을 들어 하늘을 봅니다. 

'푸른 하늘, 푸른들이 맞붙은 곳'이라는 말은, 그 둘을 맞추어 보고 싶다는 말이죠.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실현되는 어떤 곳, 그런 지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 

「가르마 같은 논길 따라
...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가르마 같은 논길' 이라는 말은 잘 정리된 논을 말하죠. 
사람의 머릿결도 가르마가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다면, 
그게 세심하게 정성을 기울여서 손질했다는 말일 겁니다.

그렇게 논을 잘 정리했다는 겁니다. 

또한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이 시에 헤어스타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지심 맨다'라는 말은 김을 맨다는 말이죠. 

여러분, 들에서 김을 맬 때도,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발라서 
아주 단정하게 정성스럽게 가르마를 타고 살던 
우리 백성의 반듯함, 자부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돌봄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정해 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돌보고, 농토를 돌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땀 흘려 일합니다. 곡식이 잘 익어주기를 바랍니다. 
본래 이 논의 곡식은 희망이었습니다. 
이 곡식이 자라서 가족의 따뜻한 밥상이 되고, 
배고픈 사람의 힘이 되고, 이웃과 나누는 정이 되고, 자녀들 등록금도 되는 쌀입니다. 

김 매고 모내기하고 때로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도, 
이 밥 먹고 자랄 자식들 생각하면, 공부할 자식들 생각하면... 견뎌낼 수 있습니다. 
콧노래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농사를 지어놓아도 
일제가 와서 다 수탈해 가던 시대... 농사 지을 기분이 나겠습니까? 

'봄이 오면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데 서럽습니다. 
단정하게 사는데..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반듯하게 살아왔기에... 더 서럽습니다. 

단정한 마음, 단정한 살림, 가난할지언정 흐트러짐 없이 살아온 삶... 
배고파도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짓 하지 않고 살겠다는 반듯한 마음으로 
농사짓고 그 마음으로 만세운동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해방은 오지 않았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에서 지낸 분입니다. 
그는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요? 

그는 수용소 안에서 느끼고 관찰하고 분석한 내용을 쓴 책이 
<Man's Search for Meaning, 죽음의 수용소에서>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는 책에서, 살아남는 사람의 특징으로, 아주 중요한 게 있다며, 이런 말을 합니다. 
'매일같이 면도를 하는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는다'

면도기가 없으니까 깨어진 유리 조각이라도 주워서 면도를 하면서 
자신을 단정히 하는 사람, 
그리고 할 수 있으면 허리를 펴고 꼿꼿하게 걷는 사람, 

그래서 프랭클은 수용소에 들어온 후배 수감자들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매일 면도를 하게, 설사 그것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빵을 굶더라도 매일 면도를 하게!' 
라고 권면을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야인 시절에 가택연금을 당한 적이 있었죠. 
집 밖으로 못 나오게 합니다. 그때 이분이 시간을 정해서 매일매일 서재로 
출근하듯이 가서, 앉아서 책 보고 연구했다고 합니다. 넥타이 메고, 양복을 입고. 
아마 그런 (빅터 프랭클의) 마음일 거예요.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라는 책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자의 의무'라는 말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옵니까? 

최근에 <하얼빈>이라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안중근 의사와 동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안중근이 권총을 꺼내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그 장면, 
이 장면을 영화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까레야 우라!' (한국 만세, '대한독립 만세' 라는 의미)
안중근 의사가 당시 러시아령 하얼빈에서 거사를 했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까레야 우라' 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저격 장면, 
영화를 만들면, 아주 감동적으로 흥미진진하게 연출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이토 히로부미, 사람들의 당황하는 모습, 
안중근 의사의 의연한 모습... 을 찍지 않고, 

영화의 카메라는 아주 멀리서, 하늘에서 내려다 본 장면을 찍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도 뭔가 생각되는 부분이 있어서 찾아보니까 
감독이 그렇게 인터뷰를 했더라고요. 

'조국 독립을 위해 애쓰시다가, 먼저 떠난, 희생된 그 동지들의 시각에서 
이걸 보고 싶었다. 그분들이 하늘에 있다면,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이 장면이 어떻게 보일까?' 

여러분, 이 영화에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이토 히로부미 척결! 이 엄청난 일을 이 삼엄한 경비 속에서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혹 우리가 이 거사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토 히로부미가 죽는다고 독립이 올까?'

(*이토 히로부미 암살 후에, 일제는 엄청나게 보복을 퍼부었습니다)
 
도저히 어느 모로 보나 희망을 갖기 힘든 상황이라는 게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야 할 희망... 
그것이 지금 살아남은 우리들의 의무다' 라고 이 영화는 힘있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무슨 힘으로 걸어갈까요? 
그 희망이 우리의 의무인지는 알겠는데, 그 희망의 의무를 감당할 힘이 어디서 올까요? 

성경을 보니까,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믿음의 사람들은 질문했습니다. 
희망을 말하기 힘들 때 질문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질문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나님께 묻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하고 마침표가 아니고, 
하나님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요?' 하고 묻는 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피 맺힌 항변, 질문으로 가득합니다. 

시44:23~24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여러분, 일제 때 외쳤던 우리 선조들의 외침 그대로인 것 같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이 질문은, 주어진 조건을, 희망이 없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결의의 표현입니다. 

서두에 언급한 이상화의 시도 제목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는 질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관찰하면 '봄은 오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말해야 될 상황이지만 
그래도 질문의 여지를 남겨놓는 거예요. 살아있는 한 희망을 가지는 거예요.

희망을 말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질문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경우가 많이 있죠. 

'우리 가정이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내 병이 나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가 잘 될 수 있을까?' 

여러분, '될 것이다, 살 것이다, 나을 것이다' 하며 
단정적으로 희망을 말하지 못한다 그래도,
어떠한 경우에도 '안된다' 라고 말하며, 마침표를 찍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직 살아 있잖아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은, 희망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에 희망을 말할 힘이 없으면.. 하나님께 질문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질문하는 거예요. 그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질문이 살아있으면,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내가 알지 못했던 힘이 생깁니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아니 이 농사 지어놓으면 왜놈들이 다 뺏어갈 텐데... 
그래도 땀 흘리는 오늘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오늘 해야 될 일을 하는 거예요. 
이렇게 계속해서 희망의 걸음을 이어온 결과, 

그 어느 해 봄에 지은 농사는, 8.15가 지나고 
해방 조국에서 밥을 지어서 먹을 수 있는 해가 왔습니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 날들도,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좋은 땀!'   

여러분, 다른 건 다 빼앗겨도,
'오늘 내가 해야 될 일에 땀 흘리는 이 보람, 그 기쁨은 빼앗기지 않겠다.' 
그러다 보면, 의지도 생기고, 희망도 생기는 것입니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이 말을 묵상하면서 '내 손에 쥘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다 사정과 형편은 다르지만, 
어떤 사람은 능력 있는 남편 만나서 세상 모르고 살다가. 
남편이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혼자 자식들을 키워야 돼요. 싹 바느질을 시작합니다. 
얼마나 서럽고 힘들겠습니까? 그때 하는 말, '내 손에 바늘을 쥐어다오!'
 
대기업 임원하다가, 늘 결제 서류에 도장 찍고 살다가, 
퇴직하고 사업에 실패해서.. 이제 내 손으로 노동해야 됩니다. 
'내 손에 삽과 망치를 쥐어다오'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나라가 망했는데, 호미 하나로 뭘 하겠습니까? 
호미 하나로 땅을 파보아야 얼마나 파겠습니까? 
농사 지어보아야 '이건 누가 먹을까? 어떤 놈이 뺏어갈까? 얼마나 될까?' 
그래도 농사 짓는 거예요. 묵묵히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에 긴 병으로 힘들어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약도 먹고 밥을 잘 먹어야 되는데, 도무지 입맛이 없습니다. 의지가 없습니다. 

그래도 먹어볼 요량으로, 힘써 볼 요량으로 
'내 손에 숟가락을 쥐어다오'  
그것이 온 몸의 힘을 다한 (병에 대한) 투쟁일 수 있습니다. 
밥맛이 없어도 열심히 먹겠다는 사명감으로... 

'어휴, 살아서 뭐 하나?' 싶어도 
나를 위해 수고하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나를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먹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내가 일어나겠습니다!' 

 

여러분, 그게 독립운동 정신 아니겠습니까? 
그 다짐이 3.1 운동만큼 치열하고, 중요하고, 숭고할 수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안중근처럼 '내 손에 총을 쥐어다오' 하며 
항일무장투쟁에 나선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시인 이상화는 나라를 위해서 펜을 쥐었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의 맏형 이상정, (사진 오른쪽)
대구의 어느 집안입니다. 
이상정도 뛰어난 문필가요, 서예가요, 학교 교원이었고, 아주 멋진 서양화가였습니다. 
1919년 3월 8일 대구독립만세운동에 연루되어서 투옥되었고, 
후에 만주로 가서 독립군 중장으로 항일운동을 벌였습니다. 

왼쪽이 이상화


뒤에 있는 여자분은, 그의 아내요, 이상화의 형수인 권기옥입니다. 
한국 최초의 여자 파일럿 입니다. 한국, 중국을 통틀어서 최초입니다. 

중국에 가서, 여자라서 비행학교에 넣어주지도 않았는데 
간곡히 설득해서 들어갑니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의 공군에 기초를 닦은 분입니다. 

이분이 오랫동안 '조선총독부를 내가 비행기를 몰고 가서 폭격하겠다' 했던 분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호미를 쥐든, 총을 쥐든, 펜을 쥐든, 비행기 조종관을 잡든, 
삯바느질을 하든... 묵묵히 인내하며 자기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자유대한민국과 우리가 있는 줄 믿습니다. 

눅19:11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예수님이 굉장히 강하게 경고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는 것' 그 조급함입니다.

방향은 옳아요. 거기로 가야 됩니다. 
그러나 당장 내 생각에, 내 계획에, 지금쯤 성취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그 조급함을 
예수님께서 강력하게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이상화의 시에서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말라」 
요즘 말로는 '깝치지 말라' 이러면, '까불지 마라'는 뜻으로 듣는데요. 

옛날 사람들은 이 말을 '재촉한다' 라는 말로 썼대요. 
그래서 바른 해석은 '제발 재촉 좀 하지 마라. 서두르지 마라' 

여러분 '나비, 제비'는 봄의 전령이잖아요. 
봄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아주 반가운 손님들입니다. 

근데 올해는, 역사의 겨울이 아직 있기 때문에, 
나비와 제비는 날아다닐 거예요. 마음이 바빠요. 조급해져요. 
빨리 독립해야 되는데... 

여러분, 금방 뭐가 될 것 같은 마음... 
금방 세상이 바뀔 것 같은 마음... 

'우리가 나아가서 3.1운동 만세 부르면 해방이 올 거야!' 
물론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기다려야 될 수도 있습니다. 

역사를 보면 3.1운동 후에도 오랫동안 어둠은 계속됩니다. *3.1운동은 2달 지속
그러니까 실망하고 그러니까 무기력해지고 
그 중에서는 배신자도 나오고, 친일파도 나오는 거예요. 
방향이 틀려서 그렇지 않습니다. 조급해서 그렇습니다. (변절자, 친일파가 나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금방 성공할 줄 알고... 금방 건강해질 것 같고... 
씻은 듯이 다 낫고... 금방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히10:36절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아멘!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상화의 시에서 '다리를 걸며 하루 걸어'라는 구절은 
창세기 32장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고, 하나님이 해를 비춰주셨는데 
이제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다... 고 했습니다.

오랜 객지생활, 20년의 객지생활을 마치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때입니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얼마나 신경 쓰이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폼나게 가고 싶겠습니까? 금의환향 하고 싶은 거죠.

그런데 나는 (야곱은) 다리를 절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구차해 보이는 거예요. 약해 보이는 거예요. 

여러분, 구약 성경에 많은 말씀들이 
바벨론 포로들의 경험에 비추어 읽을 때에, 
새로운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 바벨론의 포로들이, 조상 야곱의 이야기를 어떻게 읽었을까요? 
'지금은 우리가 포로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해방시키셨어!
저 적국을 무너뜨리시고 돌아가게 할 때는 
영광 가운데 보무도 당당하게 세상 모든 사람들 보란 듯이 그렇게 돌아갈 것이야' 
오랫동안 기대했어요. 

그런데 막상 고향으로 돌아가기는 가는데, 그 걸음이 빈약한 거예요. 
그 걸음이 별로 보잘것 없는 거예요. 

마치 다리를 절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 
그의 이름도 이스라엘이잖아요. 

여러분,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엄청난 이름을 받았는데, 
바로 그 다음 장면.... 다리를 절뚝거리며 절며 돌아가는 거예요. 

고향 돌아와서 좋지요. 그런 웃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리를 절어요. 실패의 흔적이 있는 거예요. 설움이 있습니다.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
(시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먼 미래의 일일 것입니다. 

지금은..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일상을 살아가는 거예요. 

혹 우리가 아직 하늘과 땅이 완전히 만나는 곳까지 
하늘과 땅의 뜻이 완전히 일치되는 곳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웃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든 설움, 모든 아픔, 모든 눈물, 모든 걱정... 
전부 다 사라진 날은, 이 땅에서는 없을 것입니다. 

역사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개인의 삶에도, 크고 작은 아픔이 있습니다. 

설움의 시간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픈 가운데도, 여전히 웃음이 있다면, 여전히 소망이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인 줄 믿습니다. 

이 시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여러분 하늘의 은총은 언제나 우리에게 햇살같이 다가옵니다. 
일제가 땅을 빼앗고, 쌀을 빼앗고, 총알 만든다고 밥그릇까지 빼앗아가도 
햇살만큼은 빼앗아 갈 수 없었습니다. 

야곱이 다리를 절며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다... 그랬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파하고 있지만, 오늘 우리는 낙망하고 연약하지만, 
여전히 우리 머리 위에는 해가 떠오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계속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3.1운동... 나가서 만세를 외쳤다고 해서, 당장 해방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선조들의 한 걸음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살아있는 우리에게도 같은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세우신 자리에서, 또 한 걸음 나아가는 것입니다. 

'호미를 쥐고서' 나에게 주어진 땅 한 마지기, 한 평이라도 
정직하게 성실하게 일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오늘 우리가 전진한 이 한 걸음 때문에 
우리 자손들이 보다 밝은 미래를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정직한 땀을 흘리며 살아가는 그 모든 순간에 
삶의 시련에 모든 소망 놓아버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외치며, 질문하며, 주의 은총을 구하는 모든 삶 위에 
하나님께서 은총의 햇살을 비춰주실 줄 믿습니다. 

그 은총이 우리의 삶에 밝고 맑은 웃음이 되고 
우리가 주 안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바로 그 모습이 
우리 이웃들에게, 우리 민족들에게 희망의 싸인으로 다가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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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의 전문)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1]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주2) 개벽 開闢  *열 개, 열 벽
일제 강점기 천도교가 발행한 대표적인 대중 종합 잡지.
『개벽』은 1920년대 6월부터 1926년 8월(통권 72호)까지 6년간 매호 8,000-9,000부를 
발행하였고, 평균 7,000부 이상의 판매량을 자랑하던 1920년대 전반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잡지였다. 발행 금지 처분으로 1926년에 강제로 폐간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