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18] 미혹과 확증 편향성 (히2:1, 14)┃2025.1.31 - YouTube
*19분 경부터 녹취
◈미혹과 확증 편향성 히2:1, 14 2025.01.31. 히브리서18강
"일단 미혹의 영이 역사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 이런 방법들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제가 해봤는데 안 돼요.
이건 그냥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역사 하시는 수밖에 없어요.
그건 '영'이기 때문에! 기도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미혹의 영을 대적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전까지는, 그러니까 '미혹의 영'에 사로잡히는, 거기까지 가면 안 돼요.
거기까지 가면 진짜 어려워집니다.
그 전에 우리가 확증 편향에 대한 것들을 계속 경계하면서,
거기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돼요.
또한 거기서 빠져나오도록 힘써야 돼요." - 아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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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도입
오늘 제목은, '미혹과 확증 편향성' 입니다.
좀 예민한 주제인데, 굉장히 중요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왜냐면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보면 미혹하는 가장 큰 통로가 '확증 편향성'이라는
이런 방법과 통로를 통해서, 우리가 참을 거짓으로 인식하기도 하고,
거짓을 참으로 인식하기도 하는데... 이게 미혹이거든요.
확증 편향성을 추적해 가서 보면 미혹은 결국 영이에요. 미혹의 영! spirit of deception
그렇다면 '미혹의 영'은 언제 역사할까요?
영의 아주 중요한 특징은 뭐냐면, 항상 영은 믿음을 통해서 들어와요.
그러니까 돈의 힘을 믿기 시작하면, '맘몬의 영'이 역사하는 것이고요.
그걸 정말로 믿으면 '미혹의 영'이 역사해요.
안 믿으면 '미혹의 영'에 빠지지 않을 텐데,
믿으니까 미혹의 영이 역사하기 시작하는 거죠.
처음에는 그냥 속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반복해서 어떤 사실을 듣다 보니까, 진짜로 믿기 시작해요.
이때 부터 '미혹의 영'에 빠지는 거죠.
그러니까 미혹의 영은, 항상 내 믿음을 통해서 역사해요.
그래서 마귀가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확증 편향성'이라는 거예요.
확증 편향성은 반복적으로 편향된 정보를, 반복적으로 접하게 함으로써
이제 사람이 믿기 시작하는 거죠.
그런 믿음이 반복되면 '미혹의 영'이 역사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확증 편향성'이란, 특정 사실을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반복적으로 편향되게 정보를 계속 주입하게 함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미혹과 관련되어서 가장 경계해야 될 것 중에 하나가 확증 편향성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에 마귀가 우리를 미혹하는 가장 큰 무기 중에 하나가
'확증 편향성'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유튜브나 SNS에 알고리즘이 발달하면서,
내가 관심을 가지는 종류의 소식만 골라서 보여주게 됩니다.
그렇죠. 여러분이 유튜브에 들어가서, 한두 번 제 설교를 클릭하잖아요.
그러면 그 다음에 알고리즘이, 제 설교를 계속 뜨게 합니다.
내가 '관심 있는 정보'라고 골라주는 거죠.
제 설교 뿐만 아니라, 다른 목사님들 설교를 올려 줍니다. 비슷한 정보라고요.
그럼 나이드신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냐면, '유튜브에는 설교만 올라오나 봐'
그렇게 오해할 정도로, 알고리즘이 관련 정보만 계속 내 핸드폰에 띄워준다는 거죠.
뉴스도 마찬가지죠. 이 알고리즘이, 내가 관심을 가지는 종류의 소식만
골라서 보여주게 됩니다. 이것은 유튜브뿐만이 아니라, 인터넷 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본 뉴스가 있으면, 그쪽 성향의 뉴스만 포털사이트가 계속 골라서 보여줍니다.
내가 어떤 성향의 뉴스를 봤잖아요? 그러면 거기에 맞는 것들을 알고리즘이 찾아서 골라주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보다 보면, 그 반대되는 뉴스나 정보는 접하지 못하게 되고,
한쪽 방향의 정보만을 전부인양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사실이라는 확신이 더욱 강해지게 됩니다. 이것을 '확증 편향성'이라고 하죠.
이건 아주 위험한 현상입니다. 왜냐면 이렇게 확신하게 되면
이게 미혹의 영이기 때문에 그래요.
여기서부터 '미혹의 영'이 역사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가요?
제가 누누이 얘기하지만 이것은 믿음의 싸움이 아닙니다. 분별의 싸움이지!
'유혹'과 '환란'은 믿음으로 싸우는 거고요.
'미혹'은 진리를 분별하면서 싸워야 되는 거예요. 싸움 방법이 다르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것은 '어떻게 우리가 최대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위치에 설 수 있는가?'
'어떻게 내가 접한 정보가 팩트 라는 것을 검증할 수 있는가?'
이걸 여러분이 계속 깊게 생각하셔야 되요. 아니면 참 위험합니다.
우리는 (미혹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어요.
확증 편향성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신념, 의견, 또는 가정을 강화하거나 확인해 주는 정보만을
선호하거나 받아들이고, 그에 반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인지적 편향」
내가 뭔가를 인식하는데, 이미 내가 믿고 있고, 내가 지지하고 있는 쪽을
계속 강화시켜주는 정보만 계속 받아들이고, 믿고,
그렇지 않은 건 계속 버린다는 거예요. 그게 확증 편향성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만 계속 듣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확증 편향성이 생기는 거죠. 자기가 '듣기 싫은 소리는 안 듣는' 거예요.
사실 확증 편향성은 예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10년 전만 해도 이런 현상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정말 알고리즘이 얼마나 귀신처럼,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알고, 정보를 귀신처럼 찾아내 줘요.
제가 그 전에 여행 캐리어 가방을 인터넷에서 한 번 찾은 적이 있더니,
그 다음부터는 한동안 계속 캐리어 가방 광고만 뜨더라고요.
제가 무슨 쇼핑 사이트를 들어가도 전에, 포탈 사이트에도 가방 광고만 뜹니다.
이런 게 알고리즘이 하는 일이죠.
◑확증 편향성의 주요 특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선택적인 정보 수집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지지하는 정보만 찾고요.
그에 반대되는 정보는 외면하거나 회피합니다.
이건 뉴스나 정보를 찾아주는 AI 알고리즘이 발전하면서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로
'선택적인 정보 수집'이라고 하는 확증 편향성이 작동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람들이 어떤 설교에 은혜받는 줄 아세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지지해 주는 설교에 은혜받아요.
내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우연히 목사님이 똑같은 주제의 말씀을 하셔요.
그럼 막 마음이 뜨거워지고, 심하면 눈시울이 젖을 때도 있어요.
(*자신이 오래 전에 아들을 잃었는데,
설교 예화에 '아들 잃은' 비슷한 얘기가 나오는 경우)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이 성경 읽을 때 밑줄 치면서 읽으시죠?
근데 어느 구절에 밑줄 그으셨나 한번 찾아보세요. 맨 똑같은 주제의 구절에 쳐져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의 구절들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반복되잖아요.
그러면 다 똑같은 구절에만 밑줄 쳐져 있어요. 다른 중요한 구절에는 안 쳐져 있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그게 그냥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거예요.
자기 관심분야가 그거 라는 거죠.
그러니까 내 생각을 지지해 주는 구절이나, 그런 말씀에만 은혜를 받고요.
그렇지 않은 것은, 의지적으로 그럴 수도 있고, 무의식적으로도 그럴 수도 있는데
그냥 흘러 넘겨버리는 거예요.
그 구절에 별로 집중하지 않고 넘어가든지, 아니면 불편하다고 느껴서 넘어가든지...
어쨌든 점프해 버립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지지해 주는 설교에는 은혜 받고요.
내 생각과 다른 설교를 들으면 불편해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돼요?
내가 그냥 기존에 알고 있고, 믿고 있던 것들만 계속 강화되지,
내가 모르고 있던 건... 영원히 몰라요. 그러니까 신앙이 성장을 안 하는 거죠.
모르고 있던 건 계속 모르는 거고, 알고 있던 것만 계속 강화시켜주는 거니까...
그나마 그게 옳거나 진리이면 괜찮은데, 그게 잘못된 거면
잘못된 것만 계속 강화시켜주니까...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니까 이게 마귀가 사용하는 거란 말이에요. 여기에 놀아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최대한 중립적으로 서려고 노력하고, 진리 편에 서도록 분별을 해야지요.
그러니까 '나한테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이 있듯이,
나한테 좀 불편하거나 동의가 안 되는 것도, 겸손하게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필요해요.
그래서 확증 편향성하고 제일 깊게 연결되어 있는 게 '교만'이에요.
'나는 옳아, 나는 알아!' 이 교만이, 우리를 확증 편향성으로 끌고 가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겸손함이 있어야 돼요. '나는 틀릴 수도 있어, 난 다 아는 게 아니야.
나는 부족해. 나는 도움이 필요해'
그런 사람은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이 와도, 그걸 기우려 들어요.
성경도 그렇고, 설교도 그렇고...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절대 '다른 얘기'는 안 듣습니다.
(*과거에 한 때 기복주의, 성공주의가 널리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확증 편향적'으로 그 '주의'를 따르며, 반대측 의견을 무시했던 적이 있었죠.
그때는 모든 설교가 기-승-전-축복이었습니다. 세속적 축복!)
교만한 사람은 절대 안 들어요. 목사가 무슨 설교를 하더라도
자기 생각에 맞는 것만 골라서 듣고요.
자기 생각과 다른 목사 설교는, 물론 듣지도 않고...
그다음에 자기하고 비슷한 성향의 목사님 설교를 들을 때도,
조금 불편한 얘기하면... 그건 다 걸러버려요.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그러니까 확증 편향이 되는 거죠. 교만하고 연결돼 있어요.
▲2. 두 번째는 정보 해석의 편향성입니다.
같은 정보를 접하더라도, 자기의 신념을 뒷받침하도록 해석합니다.
그래서 정말 놀라운 게 제가 어떤 설교를 하잖아요.
그러면 다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거 있죠. 참 놀랍습니다.
다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적용합니다.
똑같은 설교를 했는데, 두 사람이 서로 싸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제 설교를 들었어요.
그리고 셀모임에서 '봐, 목사님이 그거 맞다고 그랬잖아?'
그럼 이 사람은 '무슨 소리야? 목사님은 내가 맞다고 그랬는데!'
그러니까 같은 설교를 들었는데, 부분적으로 자기가 동의하는 부분만 받아들였다는 거죠.
사람들이 어떤 정보를 해석할 때도 자기를 지지해주는 방향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건 인간의 죄성이에요.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니까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돼요.
내가 이런 존재라고 하는 거!
그런데 교만한 자는, 이걸 인지하지 않아요.
그냥 자기가 다 알고 있고,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확증 편향에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확증 편향성과 싸우는 제일 강력한 무기는 뭐냐면, 겸손이에요.
겸손해야 남의 의견을 듣기 때문에 그래요. (*특히 정치인이 확증편향에 빠지면 안 됩니다)
▲3. 세 번째는, 기억의 편향입니다.
과거의 경험이나 정보를 기억할 때, 이 기억 자체를 편향되게 바꿔 버려요.
기억 자체를 왜곡시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념에 부합되는 것만 기억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잊어버리거나 왜곡해서 기억합니다.
이것이 확증 편향성의 특징들이에요.
◑확증 편향성의 예를 몇 가지 살펴보죠.
1) 정치적인 확증 편향이 있습니다.
이게 아마 우리나라에선 지금 가장 많이 확증 편향되는 영역일 거예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겁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뉴스만 소비하고
반대 의견은 무시하거나 잘못된 정보라고 간주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확증 편향성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영역은 '정치 영역'일 것입니다.
진보적 정치 성향에 있는 사람은 진보 매체만 보고요.
보수적 정치 성향에 있는 사람은 보수 매체만 봅니다.
그 결과, 자신의 생각을 더 강화시킵니다.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확증 편향된 정보와 확신을 기초로
상대 진영을 공격한다는 거예요. 상대 진영을 공격한다는 거예요.
'음모론자, 또라이, 마귀 새끼...' 이런다는 거예요. 그렇게 몰아간다는 거예요.
이게 문제입니다.
2) 건강 정보에 있어서도 확증 편향성이 나타나곤 합니다.
'어떤 특정 다이어트가 효과적이다' 그렇게 믿으면,
그 다이어트 방법을 지지하는 연구나 사례만 찾아보고,
그와 반대되는 과학적 증거는 무시해요. 이런 것도 확증 편향이죠.
예를 들면 '비타민 D가 좋다' 그러면, 그게 좋다는 정보만 다 찾아봐요.
그런데 사실 부작용도 있거든요. 그럼 부작용에 대한 건 안 찾아봐요.
또 '오메가3가 좋다' 그러면, 오메가3 좋다는 것만 계속 찾아보고... 거기에 꽂히죠.
이게 유행처럼 계속 바뀌죠. 요즘은 뭐가 유행이에요?
그것도 좋다는 소식만 계속 찾아보지, 거기서 부작용이 있거나
반대되는 것들을 무시하게 되는... 이런 것도 확증 편향입니다.
3) 신앙생활에도 이게 나타납니다. 아까 얘기했지만,
자기의 신앙에 부합되는 성경 구절만 강조하고, 그런 설교만 듣고,
또 설교 중에서도 그런 것만 뽑아서 인식하고,
그 나머지는 다 그냥 스킵, 점프 ... 이렇게 지나가 버리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신앙적으로 확증 편향되게 되죠.
이런 것들이 이제 확증 편향의 예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확증 편향성에 빠지는 원인은 뭘까요?
심리학자들은 확증 편향되는 원인들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1) 첫 번째는, 인지 부조화를 피하기 위한 심리적인 방어 기재래요.
무슨 얘기냐면, 자신이 가진 신념과 반대되는, 또는 모순되는 정보를 접하면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낀다는 거예요.
이 불편함을 '인지 부조화'라고 하는데,
내가 기존에 인식하고 확신하고 있던 것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정보가 들어온 거예요.
충돌하는 정보가 일어났어요.
그러니까 '나는 분명히 이렇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과 전혀 반대되는 정보가 들어와서 '그게 아니야!'
그럼 어떻게 돼요? 이제 인지 부조화가 일어나는 거죠.
'어, 뭐지? 그럼 내가 틀렸다는 거야?'
그러면 이제 불편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 기재라는 거예요.
그래서 자신의 신념에 맞는 정보만, 계속 선택해서 듣거나 본다는 거예요.
2) 두번째는, 확실성의 추구입니다.
'사람에게는 항상 자기가 옳다 라고 믿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다'는 거예요.
'내가 옳아!' 라는 것을 믿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이게 이제 선악과를 따먹은 죄의 본질이죠.
죄의 본질은 뭐냐면 자기중심성이에요. '내가 항상 옳아!'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하는 건, 이제 선과 악을 내가 결정하겠다는 거거든요.
원래 선과 악은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건데!
사람이 결정하는 선과 악의 기준은, 생각보다 굉장히 컨시스턴트합니다.
즉 굉장히 일관돼요. 이 기준이 뭔지 아세요?
'나에게 유리한 건 선이고, 나에게 불리한 건 악이에요.'
항상 그렇게 정해요. 이게 죄의 본질이에요.
그러니까 죄의 본질은, 나를 지지해주고,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선이고,
그리고 나에게 불리한 건 악이에요. 항상 그 기준을 가지고 봅니다.
이게 자기중심성인데, 이 자기중심성으로 인해서
자신을 정당화시켜주는 정보만을 계속 선택하는 거예요.
자신을 정당화시켜주는 정보만 계속 선택하고,
또 그렇게 해석하고, 반대로 자신이 틀렸다고 말하는 정보는 자동적으로 무시합니다.
이건 죄성에 기인하기 때문에, (확증 편향성을 극복하려면) 진짜 회개가 따라와야 돼요.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겸손이 열쇠라는 거예요.
'내가 틀릴 수 있어.. 나는 죄인이야..' 하는 겸손!
이게 전제가 돼 있지 않으면, 계속 이게 강화되는 거예요.
'나는 옳아! 내가 말하는 게 맞아, 쟤가 틀렸어!'
항상 이 생각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럼 이게 죄성이기 때문에,
이것은 계속 확증 편향성을 일으킵니다.
이건 제가 분석한 게 아니고, 심리학자들이 분석해 놓은 거예요.
제가 거기에, 심리학자들이 보지 못하는 영적인 해석을 집어넣는 거죠.
심리학자들은 뭐라고 그러냐면 '인간은 항상 자기가 옳다는 지지를 받고 싶어한다'
때문에 항상 그런 정보만 찾아본다는 거예요.
3) 세 번째는 정보의 홍수로 인한 원인이 있습니다.
정보가 워낙 많다 보니까, 그중에 뭔가 효율적으로 선택해야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에게 익숙하거나, 유리한 정보만 계속 찾게 된다는 거예요.
이것도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정보나 인터넷 같은 걸 서치하다 보면,
내가 그래도 익숙하고 읽기 쉬운 정보에 먼저 눈이 가지요.
전혀 새로운 분야에는 잘 눈이 안 가요. 왜냐하면 읽는 게 힘들거든요.
여러분, 좀 오래되긴 했지만, 그레고리 페렐만 수학자가
'푸엥카레 추측 Poincaré conjecture'을 증명했거든요.
이거는 정말 세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논문 찾아보셨어요? 아무도 찾아본 사람이 없죠.
왜냐하면 그걸 찾아서 읽고 이해하려면, 머리가 엄청 아프거든요.
그러니까 당연히 안 찾아보죠.
그런데 저는 당연히 찾아봅니다. 왜냐하면 제가 대학원에서 전공했던 거거든요.
그러니까 사람은 자기한테 익숙한 정보만 찾아보게 돼 있지,
익숙하지 않은 걸 찾아보는 건 스트레스라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확증 편향이 되게 됩니다.
4) 네 번째는 심리학자들이 얘기하는 건 아니고요.
(1~3번 여기까지가 세상 심리학자들이 얘기하는 원인이고)
여기에 더해서 영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그건 뭐예요?
미혹의 영이 있다는 거예요. 미혹의 영이 그것을 더욱 강화시킵니다.
확증 편향성 confirmation bias 에는 확실히 영적인 게 있어요.
이게 처음에는 알고리즘이나 심리적인 원인에서 시작되는데,
이 편향적인 확신이 어느 선을 넘어가잖아요. 그럼 정말 영이 돼요.
영은, 믿음을 통해 역사한다고 했죠.
진짜로 그것을 믿기 시작하면, 이제 미혹의 영이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이 한 번 역사하잖아요.
그러면 그다음부터는 논리적인 대화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게 진짜 무서워요.
논리적인 대화는 의미가 없어져요.
그냥 코앞에다가 '봐 이거예요!' 하면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갖다 줘도
안 믿어요. 이건 뭐예요? 이건 영 spirit 이에요. 영적으로 경도(미혹)된 거죠.
그 전까지는 그냥 '확증 편향'이라는 증상일 수 있는데,
아니 바로 코앞에다가 증거를 갖다 줬어요.
그래도 '이건 음모론이야' 이런단 말이에요.
이제 이건 뭐예요? 그러니까 그 다음부터는 무슨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도,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그냥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이게 정말 무섭습니다. 그러니까 그 전에 빠져나오셔야 돼요.
그 전에 빠져나오셔야 돼요.
이게 일단 '미혹의 영'이 역사하기 시작하면, 이게 대화가 안 돼요.
이때부터는 뭘 해야 되냐면.. '축사'를 해야 돼요. *귀신을 쫓아냄
그러므로 '빠지기 전에' 여러분 '미혹의 영'을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확증 편향성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진리를 왜곡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객관적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왜곡된 현실을 사실로 계속 인지합니다.
정보나 현상들을, 모두 자신의 기존 신념을 강화하거나, 지지하는 쪽으로
해석하고 인식해요. 그래서 자기가 가진 기존의 생각을 강화합니다.
그 결과, 타인과의 소통이 어려워지고, 고립과 갈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사회를 극단적인 양극화로 치닫게 만듭니다.
그리고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이런 걸 우리가 지금 보고 있잖아요. 이게 점점점 '확정 편향'이 되다 보니까,
사회가 양극화가 돼버리고, 서로 대화가 안 돼요.
이게 여러분, 왜 대화가 안 되냐면, 강한 확신과 확신이 서로 충돌하는데,
이 확신과 확신이 충돌할 때, 이것을 중재할 수 있는 유일한 게 뭐냐면 팩트거든요.
이쪽 확신과 저쪽 확신이 충돌을 했어요.
그러면 이걸 어떻게 중재해야 되냐 하면, 팩트를 봐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팩트 자체가 왜곡돼 있거나, 올바른 팩트라도 그걸 믿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서로 인지하고 있는 팩트 자체가 달라요.
완전히 다른 팩트를 인지하고 있고, 팩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세상에서, 다른 팩트에 기초해서 대화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회가 정말 파멸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게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이미 지금 우리는 그런 현상들을 보고 있는 거잖아요.
도저히 어떻게 해결책이 나올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그것도 거의 반반씩 나누어져서 '도대체 이거는 어떻게 대화 자체가 안 되나?'
이게 뭐예요? '확증 편향'이라는 미혹이, 한 사회를 파멸로 치닫게 하는 거죠.
그래서 저희가 오랫동안 기도해왔던 게, 그거 아닙니까?
이 땅을 묶고 있는 '미혹의 영'을 계속 대적했던 이유가, 맥락이 이런 거죠.
◑자 그렇다면, 이런 확증 편향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일단 미혹의 영이 역사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 이런 방법들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제가 해봤는데 안 돼요.
이건 그냥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역사 하시는 수밖에 없어요.
그건 '영'이기 때문에! 기도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미혹의 영을 대적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전까지는, 그러니까 '미혹의 영'에 사로잡히는, 거기까지 가면 안 돼요.
거기까지 가면 진짜 어려워집니다.
그 전에 우리가 확증 편향에 대한 것들을 계속 경계하면서,
거기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돼요.
또한 거기서 빠져나오도록 힘써야 돼요.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1. 첫 번째 방법은, 다양한 정보를 접해봐야 돼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입니다. 확증 편향이 정보를 편식해서 생긴 거잖아요.
그래서 다양한 걸 접해보되, 특별히 자신의 신념에 반대되는 정보도,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열린 마음으로 검토해 봐야 됩니다.
이게 첫 번째예요. 다양한 정보를 찾아봐야 됩니다.
확증 편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지금 한국 사회를 가장 뜨겁게, 아주 시끄럽게 하는 이슈 중에 하나가
'부정선거'에 대한 겁니다. 참 예민한 이슈인데요.
이게 설교 시간에 '부정선거'라는 얘기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될 수 있는...
그래서 잘못하면 저는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할 수 있는, 이런 아주 무시무시한 이슈인데
그래서 이 단어를 사용하기만 해도 '음모론자, 내란지지자'
아니면 '처벌하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데,
그런데 안심하십시오, 제가 지금 '부정투표가 사실이고/ 아니고'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요. 이것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우리가 충돌하는 이슈가 있을 때,
크리스천이 그것을 어떤 태도로 봐야 되느냐?
이 얘기를 하려고 하니까,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
이게 사실 지금 거의 반반으로 나눠져서 충돌하는 거잖아요.
한쪽에서는 이 얘기를 꺼내기만 해도 '음모론자, 내란지지자'로 비판하는가 하면,
제가 오늘 아침에 뉴스를 보니까, 국민의 사십 몇 %인가 부정투표를 믿는데요.
'이런 걸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되는가?'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즉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크리스천의 태도는 어때야 되는가요?
이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겁니다.
이게 확증 편향에 일단 빠지게 되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과도하게 공격하게 되기 때문에 그래요.
과도하게 공격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앞서 얘기했죠. 미혹은 항상 우리를 어디로 이끈다고요? 분노로 이끌어요.
미혹은.. 이게 마귀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항상 우리를 분노로 이끕니다.
마귀의 속성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과도하게 상대방에 대해, 미워하고 분노하고... 이렇게 됩니다.
여하튼 그래서 이 확증 편향을 극복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 하는 것을 인정하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확증 편향과 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겸손'이라는 거예요.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내가 확증 편향 되어 있을 수도 있다' 하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이게 인식이 안 되면, 그건 백이면 백 다 넘어가요.
백이면 백 다 확증 편향자가 됩니다.
'나도 확증 편향되어 있을 수 있어' 라는 걸,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여러분, 만약 오늘날 성경이 기록됐다면, 분명히 이렇게 기록됐을 거예요.
'확증 편향되지 않은 사람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러니까 우리가 확증 편향과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가 틀릴 수도 있어' 에서부터 시작해야 돼요.
이게 안 되면, 그 다음에는 바로 미혹으로 넘어갑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바로 넘어지게 돼 있어요.
그래요. 여러분, 확증 편향자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는 확증 편향이 아니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의견과 다른 저 사람들만 확증 편향되어 있어!' 이렇게 믿는 거예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양쪽 모두 그럴 수 있는 위험성이 굉장히 크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만, 우리는 확증 편향으로부터 치유될 수 있습니다.
이건 정말 (정신적) 질병이에요. 치유가 필요해요.
그렇게 여러분, 양쪽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관점과 사실들을 알아봐야 됩니다.
다양한 관점들과 사실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알아봐야 돼요.
그러니까 그 사실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간에
상대방이 뭐라고 얘기하는지를, 최소한 진지하게 찾아봐야 돼요.
그게 저는 크리스천의 당연한 책무고, 그게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걸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실 우리 사회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진짜 이유입니다.
▲2. 두번 째, 진지하게 나와 반대 의견을 찾아보고 난 다음에,
그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객관적으로 검증을 해봐야죠. 그게 두 번째 단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충분히 찾아보고 나서 그것을 받아들일지 안 받아들일지는 개인의 선택입니다.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됩니다. 왜? 개인의 사적 영역에 속한 거니까
그래서 '나는 그게 사실인 것 같아' 또는 '아니야, 나는 그게 사실이 아닌 것 같아'
그거는 그냥 개인이 선택하는 거니까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돼요.
나하고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저 사람은 확증 편향됐어, 음모론자야'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가 모르겠어요. 그런데 크리스찬이 그렇게 얘기한다?
이거는 여러분 굉장히 잘못된 태도입니다. 굉장히 잘못된 태도고요.
상대를 굉장히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거고 크리스찬은 그러면 안 되죠.
사랑은 일단 존중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되는데 왜 저렇게 생각을 하는 거지?
이거를 일단 알아보고 충분히 들어보고 그러고 내가 동의가 안 된다.
그럼 예의를 갖춰서 '나는 그 의견에 동의가 안 됩니다.'
이렇게 정중하게 말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의견과 판단을 가진 상대방을, 마음대로 비방하면 안 됩니다.
'무슨 꼴통이다. 망상증 환자들' 이래서는 안 돼요.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적어도 크리스찬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정중하게
사랑의 기초해서 그렇게 얘기해야 됩니다. 그것이 올바른 태도입니다. 아멘
저는 맞고 틀리고를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태도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겁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