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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넘쳐야 한다

LNCK 2025. 2. 10. 22:19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성경적 성공

넘쳐 흘러야 한다 | 창 12:1-3  | 25.1.10 - YouTube

 

흘러넘쳐야 한다         창12:1~3       2025.01.10.      


◑도입

여러분 우리가 2025년 연초인데요. 연초에는 우리가 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렇게 인사를 건네죠. 

과거에는 복조리를 대문에 많이 달고 했습니다. 
복주머니도 차고요.
이렇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복을 구하죠. 

아이들을 보고도 '복스럽다' 그렇니다. 
'복'자가 들어간 이름도 많고요. 복자, 복순, 복동, 복실, 복남, 만복...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 복을 얘기해요. 또 복을 좋아하고... 
하다 못해 기침해도 God bless you 하고 복을 빌어줍니다. 

복은 인간의 근원적인 갈망입니다.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근데 이 '복이 뭐냐?' 하는 거죠. 
우리의 삶에 굉장히 중요한 주제에요. 쉽지 않은 주제예요. 

세상 사람들은 '무병장수, 부귀영화' 그런 걸 복이라고 얘기하죠.
주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은, 물질적인 것하고 연결이 되어 있죠. 돈 많이 버는 것.

'잘 산다' 그러면 부자를 말하죠. 
'부자'와 '잘 사는' 건 다른 건데, 우리는 부자를 보고 '잘 산다' 이렇게 표현하잖아요. 
물질적인 것을 복으로 생각하는 거죠. 

근데 이제 성경의 복은 좀 달라요. '복은 총체적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물질적인 것도 포함해서, 관계적인 것, 영적인 것 등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영역에서의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크게 분류하면,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겠죠. 
근데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만 강조하면 안 된다는 거죠. 

자칫하면 우리는 물질적으로 자꾸 흘러가요. 
교회 안에서도 물질의 축복을 많이 강조하는... 지나치게 강조하면 
번영 신학, 형통의 신학으로 빠지죠. 미국의 조엘 오스틴 목사가 대표적이죠.

그 주장에 뒷받침할만한 성경구절도 다 가지고 오죠. 
신명기 28장,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지어다.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다.' 기도할 때도 많이 말하잖아요. 

물질적인 것을 죄악시하고 무시하면 안 돼요. 
모든 것을 영적으로만 보는 시각도 왜곡되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몸과, 정신과, 영의 세계를 다 함께 지으셨죠. 
그래서 영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풀만 먹고 살지는 않습니다.
또 먹는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해도,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 막혀 있으면, 
또 그게 온전한 복이라고 말할 수 없죠. 

그래서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여기서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는 말은, 예수님이 떡을 인정한 것이죠. 

떡이 필요 없다는게 아니고, 떡을 필요로 하는데 
떡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된다'
이 말씀은, 육체와 영적인 것을 같이 포함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두 가지 측면을 같이 다루어야 되는데, 
우리가 '몸'을 말해도, 이 몸은 따로 동떨어진 게 아니라
영혼,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생각... 이런게 같이 통합되어서 '몸'이라고 하는 거죠. 

만약에 몸은 있는데, 거기에 '영혼'이 없다면, 
또는 정신이 나가 있으면... 몸이 있어도 그저 그냥 고깃덩어리와 똑같죠.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통합적으로 가야 된다는 겁니다. 영과 육을 분리할 수 없다는 거죠.
'성경의 하나님'은 언제나 물질적이고, 영적인 복을 함께 얘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생각보다, 복에 대한 언급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복의 하나님이시고, 복을 명하신 분이에요. 

복은 창세기 1장부터 나옵니다. 
창1: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여기 보니까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들에게 복을 주셨는데 
그 복이 뭐냐? '생육하고 번성하고 바닷물에 충만하고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면서 복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복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을 빼고는 이게 얘기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심으로 생육하고, 
복을 주셨기 때문에 번성하고, 
복을 주셨기 때문에 충만하고, 
복을 주셨기 때문에 새들도 땅에서 번성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복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는 말이죠.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그런 수여자이십니다. 
모든 복을 주는 행위는 '하나님이 하신다' ... 이 얘기입니다. 

◑창1장에 나오는 복이란.. 생명력을 주는 것!   *주제

그런데 어떤 복이라고 했어요? 복을 주시는데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여기서 뭘 얘기하죠?
이 복은 생명력을 준다는 거예요. 생명력! 

모든 생명체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았는데, 그 복이 뭐냐? 생명의 충만함입니다. 
그래서 바다의 물고기나 새들도, 그 복을 받았어요. 

새들이 그냥 나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하나님의 새에게 생명력을 주셔서, 날개짓을 해서 올라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새가 날아오르는 것이, 그냥 날아가는게 아니고, 
하나님의 새에게 복을 주셔서, 즉 생명력을 주셔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충만함이 있기 때문에, 날아다니는 거예요. 

여러분 새를 바라보실 때, 그냥 쳐다보지 마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복(생명력)'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래서 생명력이 충만하게 공중을 날아다니는 거예요. 

제가 '새'에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었는데요, 신비롭기 그지 없어요. 
이게 하나님이 아니면, 인간이 설계해 가지고 도저히 불가능 해요.

예를 들면, 새 중에 작은 새인데 '꿀벌새'가 있어요. 
무게가 1.95 그램, 상상이 어려울 정도로 아주 작은 거예요. 
근데 1초에 70회 날개 짓을 해요. 너무 작은데, 그 새가 1초에 70번 퍼득거리는 거죠.

그러니까 꽃 위를 날으면서 그 꿀을 빨아 먹는 거예요. 
아주 작은 심장을 가지고 있는데, 한 번도 쉬지 않고 800 KM를 날라갈 수 있대요. 
지금 '새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생명력이 충만하다'는 얘기를 하는 중입니다. 

인간이, 그것도 잘 만든 차를 타고 800 KM, 서울 부산을 왕복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힘듭니까? 연료도 엄청 들 거예요.

근데 무게가 1.95 그램 밖에 안 되는 작은 새는, 그 조그만한 심장을 갖고 있는데,
거뜬히 800 KM를 난다는 거죠. 논 스톱으로.  하나님께 복(생명력)을 받아서 그런 거죠.

물고기들도 마찬가지죠. 멸치들을 보세요. 새우들을 보세요. 
산란기가 되면, 엄청나게 많이 번식을 하죠. 그건 상상을 해요. 

그래서 어부들이 아무리 건져내도, 세상 사람들이 다 잡아먹어도, 
아직 바다에 멸치, 새우, 어족들이 풍부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냥 그 생명력(복)을 누가 주셨느냐?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 거죠.

우리가 치킨을 많이 먹어요. 근데 암탉이 한 마리가 평생 1,500개 정도의 알을 낳는데요. 
그게 다 병아리로 부화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한 마리가 수 백 마리로 번식되는 거잖아요. 하나님의 주신 생명력(복)인 거죠.

우리가 가을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도토리 하나, 그게 씨앗이잖아요. 
그걸 심어서 도토리나무 (떡갈나무)가 되면, 
그 하나의 씨가, 상상을 초월하는 도토리 열매를 맺죠. 
사과나무, 감나무, 포도나무 다 마찬가지예요.

과거에 사과나무 보면, 나무 한 그루에 사과가 수 백~ 수천 개씩 열렸어요.
감나무가 그렇죠. 감나무 한 그루에 (씨앗 한 개에서 나왔는데), 감이 수 천개씩 열립니다.
맛도 좋아요. 당도도 높아요.

동물이든, 식물이든, 하늘이든, 바다 속이든, 동식물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는 거예요. 
그 복이 뭐예요? 생명력이에요. 번성한다는 거예요. 충만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생명으로 인해 활기, 운동력... 이런 게 아주 활기차죠. 보기에도 아주 좋아요.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과일을 먹을 때, 우리는 생명의 풍성함을 느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복을 음미하며 먹어야 하는 거죠.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초등학생 저학년도, 높은 산에 부모들과 함께 등산을 다닙니다.
어른들 보기에는 걱정스럽지만, 사실 어른들이 더 힘들어 해요. 아이들은 힘이 넘쳐요.
조그만 아이지만, 하나님이 복(생명력)을 주시니, 활기와 활력, 에너지가 넘치는 거죠.

근데 여러분,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그 복을 잃어버렸어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거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복이 사라져 버려요. 

그래서 죄가 가져온 후유증이 너무 큰데, 그야말로 그게 저주죠. 
근데 그 저주의 핵심이 뭐냐면 '생명의 결핍'이에요. 생명의 결핍

◑본문 창12장이 중요한 이유, 잃어버린 '복의 회복'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짐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생명의 그 복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즉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한 사람을 불러내셨는데, 그게 아브라함 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2장은 너무너무 중요한 챕터죠. 
인간이 잃어버린 복을 회복시켜 주시고자, 하나님은 놀라운 계획을 세우시고, 
한 사람을 불러내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시고, 
그 아브라함 한 인물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히브리 민족을 통하여 온 열방을 회복시키려고 하시는... 
그 어마어마한 구원의 드라마에 출발점이, 창12장입니다. 

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그 계획을 드러내신 거예요. 

이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의 시대 때는
실제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현저하게 짧아졌어요. 

인간의 죄가 가져온 결과들이 계속되면서, 생명이 제한을 받는 거죠. 
우리 인간에게 노화가 찾아오고, 죽음이 찾아온 거예요. 

죽음이라는게 뭘까요? 여러분 그 생명력이, 마를 대로 마르는 거죠. 
축소될 대로 축소되고, 소진될 대로 소진되어서, 쪼그라들어서 끝이 나는 거예요. 

여러분, 므두셀라가 969세까지 살았어요.     주1)

자, 창세기 12장, 이게 이제 중요합니다. <복의 회복>이라는 거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곳은 가나안이에요. 
'가나안'의 의미는 뭘까요? 

가나안은 원래 기름진 땅은 아니지만, 의미가 있는 거예요.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당한 이후에, 인간에게 찾아온게 뭔가요? 

가시와 엉겅퀴가 생기는... 땅이 척박해져 버렸어요.
그래서 수고해야,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된 거예요. 

근데 이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거기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래요. 
그 척박한 가나안 땅이 변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된다는 거죠.
창세기에 아담에게 내렸던 저주에서의 회복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새로운 약속의 땅을 주신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너를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그리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게 하겠다'
이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핵심들이에요. 

근데 이 복의 핵심은 뭘까요?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회복, 그게 복인데, 
그 복이 결국 어떤 것으로 나타나느냐? 
'잃어버렸던 생명의 충만함'의 회복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서의 복은, 언제나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왜냐면 생명의 근원, 그 복의 원천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에요. 
 
복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거라는 거죠.
근데 그 복의 핵심은 뭐냐? '생명'이에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생명으로 충만한 분이세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연결이 되면, 죄로 인하여도 끊어졌던 우리의 관계가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이제 우리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면, 
그 생명력의 회복이 일어나는 거죠.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회복되는 거죠.

그러니까 (아브라함을 포함해서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말은,
단절되었던 생명력(복)이 다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여러분 에덴 이후에, 죄로 인하여 어떤 일이나요? 
여러분 에덴에서는 경작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냥 하나님이 완벽한 창조의 세계를 주셨으므로, 그냥 식물이 자라는 거죠. 

지금도 여러분 저 동남아나 밀림에 가면, 사람이 없는 곳에 가면, 먹을게 수두룩해요. 
최근에도 뭐 호주에서 어떤 분이 길을 잃었는데, 2주 동안 헤맸는데, 
산딸기 따먹고 살았대요. 뭔가 먹을게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에덴은 어떠했겠어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났을 거예요.
동물은 새끼를 낳는데, 뭐 그냥 열 마리, 스무 마리 낳고... 이게 정상이라는 거예요. 

근데 죄를 짓고 난 다음부터는, 생명력의 결핍이 찾아온 거예요
땅이 척박해지고, 엉겅퀴와 가시떨기가 가득하고... 

남자들이 수고해야 먹고 살고, 
여자들도 자녀를 생산하는데 고통을 해야 낳고... 쉬운게 하나도 없게 되었어요.

이게 뭐죠? 생명력(복)의 약화라는 거죠. 
전에는 복이 흘러넘쳤는데, 그냥 겨우 겨우 이제 먹고 살게 된 거예요.

열매를 맺으면 막 주렁주렁 달려서, 가지가 꺾어질 정도로 맺혔는데, 
땅이 저주를 받은 이후, 나무는 있는데 열매가 몇 개 안 맺혀요. 

여러분 그래서 무슨 일이나요? 인류에 결핍이 찾아오면서 
서로 뺏고 빼앗기는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포악해진 거예요. 왜 결핍이 오니까! 

먹거리 파이를 나누어야 되잖아요. *제로섬 게임처럼 
그리고 인간은 부족하면 불안감이 있는 거거든요. 
불안하니까 자꾸 쌓는 거잖아요. 그죠. 불안하지 않으면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잖아요. 
아무리 쌓아도 불안한 거죠. 그 불안은, 생명력(복)의 결핍에서 오는 거예요. 
내일 아침에 또 그게 막 열매 맺힌다면, 내가 욕심을 가질 이유가 하나도 없잖아요. 

근데 생명력이 결핍되니까, '어, 이거 모아야 돼, 쌓아야 돼!' 
또 어떤 때는, 자기 게 없으면 다른 사람을 착취하기도 하고, 폭력을 행하기도 하고...
그렇게 되는 거죠. 폭력적인 세상이 되는 거예요. 

그게 다 어디로부터 오는 거예요? 생명력(복)의 결핍에서 오는 거죠.
이게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온, 인류에게 주어진 저주의 결과인 거죠.

이 '결핍'이라는 것은, 근원적인 결핍이라는 거죠. 
왜냐하면 그 문제는, 하나님이 풀어 주셔야 되는 건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니까 
인간이 스스로 결핍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까... 이게 힘들잖아요. 
그래서 싸움이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나고... 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완전한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계세요. 
그런데 하나님과의 분리로 인해, 이제 결핍이 찾아온 것이고, 
가장 무서운 결핍은, 생명의 결핍이라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보십시오. 우리가 건강을 위해서 노력을 하죠. 
그러나 아무리 건강을 위해서 노력을 해도, 이 생명의 결핍을 이겨낼 수가 없는 거예요. 
노인이 되면 근육이 줄어들게 되고, 노화가 찾아오게 되고, 질병이 찾아오게 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는게 뭐예요? 죽음이라는 거예요. 

결국은 인류가 그 죄로 인하여 가져온 그 핵심적 결과는, 생명(복)이 소멸되는 거죠.
아무리 몸 관리를 잘 해도 안 돼요. 한계가 있어요. 

근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의 관계를 맺는데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고, 
믿음으로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고,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창12:2~3절의 축복이 우리에게도 흘러오게 된 거죠.

'너는 복이 될지라. 너로 인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다' 
이제 이 복이, 오늘날 우리를 통해 흘러나가도록,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거예요. 

◑복(생명력)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아가는.. 일상의 삶을 사는게 중요합니다

 

근데 이 약속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요? 
여러분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관계의 회복'에서 끝나지 않고, 
그분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아가는.. 일상의 삶을 사는게 중요한 거죠. 

하나님과의 관계는 관계는 믿음으로 회복되어졌는데,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친밀해지고, 더 가까워지고, 
그분의 임재 속에 살아가는 삶이 일상이 되는 것!
이게 우리에게 '진정한 복의 회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우리가 함께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자 그것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한 사람이 나오는데, 요셉이에요. 

창39: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독특한 표현이에요. 복의 개념을 잘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핵심은 뭐냐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거예요.
이 '함께 하심'을 요셉이 느꼈을까요, 못 느꼈을까요? 

느꼈어요. 그게 없었다면, 감옥과 노예 생활 속에서, 
그가 그렇게 꿋꿋이 살아갈 수가 없어요. 

요셉은 누구와 연결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이에요. 복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연결! 
그래서 그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요셉의 삶은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가 있는 거예요. 

39: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자 이제는 주인 보디발이 그걸 봐요.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본인만 느끼는게 아니고, 주변의 사람들이 느낄만큼 
요셉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니'
이 말은, 요셉이 하는 일마다 다 잘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잘 됨이 누구에게 영향을 주느냐면, 주인의 집에 다이렉트로 영향을 준 거죠.

'이 친구가 노예로 우리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우리 집에 뭐가 이상해... 
이 친구가 양떼, 염소 떼들을 치는데, 막 새끼를 막 굉장히 많이 낳고, 아프지도 않고, 
막 그냥 번성해... 그 친구가 하는 일들은 다 잘 돼! 뭐가 일이 안 막히고 뚫려!' 

그러니까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았다'는 말은 
무슨 추상적인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분명한 '생명의 복'이 임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요셉은 복의 근원으로서 주인에게 영향을 준 거죠. 
자 보세요. 복이 어디에서 어디로 흘러가느냐? 
종인 요셉에게서, 주인인 보디발의 집으로 흘러갑니다.

원래는 보디발에서게 요셉에게로 흘러가야 정상인데 말입니다.  

신분은 종인데, 종이 주인에게 더 영향을 주고 있어요.
신분은 종인데, 종이 주인에게 줄게 더 있는 거예요. 당연하죠. 

여러분, 요셉은 지금 누구하고 연결되어 있어요?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하고 연결되어 있어요. 

여러분, 내가 누구에게 연결되어 있느냐의 싸움이에요. 
세상이 나에게 줄 복은 없어요. 이거 확실히 하셔야 돼요. 

우리가 세상에서 얻을 복은 없어요. 복은 위로부터만 와요.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예요. 모든 우주만물, 피조물,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세요. 
새 한 마리도 하나님 복을 주시지 않으면, 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보디발이 그에게 줄 복은 없다고요.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 기웃기웃 하면 안 돼요. 
세상에는 참된 복이 없어요. 거짓된 복들이에요. 복의 모조품들이에요. 
속지 마세요. 여러분! 
그러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그게 창1:27~28절의 복을 받는 길이에요.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데 복이 어디서 와요? 

요셉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요셉하고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보디발은 요셉에게서 얻어먹은 거죠. 그가 요셉의 덕을 보는 거죠. 

아무리 애굽의 군대 장관이라도 결핍이 있는 거예요. 
왜냐면 애굽의라는 국가도 대단하지만, 월급을 많이 주겠지만 
애굽이란 나라가 영원하지 않아요. 

여러분 내가 어느 직장에 다녀도, 월급을 그 사장님이 준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주신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하나님이 그 사장을 살려 주셔서, 사업이 잘 되게 해서,
나 먹여 살리라고 잘 되게 하신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회사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장이 보던, 보스가 보던, 
'진짜 이 친구가 들어와서 우리 회사가 잘 되네...' 이 정도가 돼야 돼요. 

그러려고 하면, 철야기도회를 다니셔야 되고, 
회사를 위해서 막 기도도 하고, 좀 경기도 안 좋으면 금식도 하십시오.

그저 회사에서 월급만 받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으로서, 요셉처럼, 그 집에 복을 끼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게 세상 속에서 우리의 위치예요. 

그러니까 그 보디발의 집에 형통은, 요셉을 통해서 온다니까요. 얼마나 선명합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복은 없는 거예요. 

자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하신 말씀을 잘 들어야 돼요.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뭘 보고 '내가 복을 받았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가 하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 
즉 내가 다니는 직장, 등 내 주변 사람들이 복을 받은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셔서, 이 복이 거기로 흘러갔구나'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지어다' 했으니까요.

자, 요셉의 삶을 잘 추적해 보세요. 그는 노예라도 주인의 집에 영향을 끼칩니다. 
당연해요. 애굽의 시위대장이라도 그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습니다. 
결핍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다 결핍 가운데 사니까요.

그런데 요셉은 노예예요. 하나님이 직접 공급하시는 거예요. 
우리는 항상 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신다. 
하나님이 나를 먹이신다. 하나님이 공급하신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지시도록,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사셔야 돼요. 
이중 플레이를 하면 안 돼요. 양쪽에 발을 다 딛고 있으면 안 돼요.

확실하게 발을 떼세요. '나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이러셔야 돼요. 
그 순간까지 안 가보셨잖아요. 그러면 죽는 줄 알고... 
자꾸 머리를 써서, 중간에서 자꾸,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꾸 내 살 방도를, 인간적으로 모색하는 거죠. 그 잔머리와 그 시도를 내려놔야 됩니다.

요셉이 여러분, 보디발에게 아부했겠어요? 
가정 총무가 됐다는데, 아부해서 됐겠어요?
아녜요. 주인 눈치를 보지 않았어요.
답은 하나예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나중에 야곱이 요셉에 대해 선포했던 축복을 보면 놀라워요. 

39: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여러분 어떤 나무는 너무 커가지고, 담을 넘어서 옆 집까지도 갔어요. 
옆의 사람들, 옆집 사람들도 '이 가지의 과실을 다 따먹어라' 하는 거죠.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에 무성한 가지예요.
생명의 충만함이에요. 샘 곁에 있으니까! 넘치고 넘치는 거예요. 고갈되지 않아요. 
그래서 담을 넘는 거죠

이 '담을 넘었다'는 말이 뭐예요. 넘쳐 흘렀다는 거예요. 샘 곁에 있었기 때문에! 
샘이 어디예요? 원천이에요. 복의 원천! 

우리는 항상 원천을 찾아야 돼요. 지혜는 원천을 찾는 거예요. 
생명의 원천, 복의 원천(근원) 솟아나는 샘물 곁,

여러분 예수님은 신약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장에 사마리아 여인과 만남에서 '네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 
그 샘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거예요.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거죠;

요셉은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돼요. 담을 넘는 무성한 가지가 된 거죠.
나중에 애굽뿐만 아니라, 애굽 주변 나라까지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가 돼죠.

여러분, 요셉 한 사람만 해도 엄청난 일을 한 거죠.
사과 씨 하나가, 엄청난 일을 하듯이요. 
생명의 복, 그 복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실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어떻게 보면 '복의 회복'입니다. 또한 '생명의 회복'입니다. 
왜요? 죄로 인하여 생명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짐으로 잃어버렸던 게 생명의 능력이에요. 

그래서 성경적 의미에서 진정한 복은, 하나님이 본래 지으셨을 때 그 상태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 말은 뭐냐면, 가장 내가 나 다워지는 거예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나! 

여러분! 행복이 뭐냐? 내가 가장 나 다워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본래 나를 지으셨을 때, 그때 그 모습을 그대로 회복하는 거예요. 

아까 새를 얘기했지만, 새는 딴게 아닙니다. 
그 새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날개짓을 하면서 하늘을 날아오르는 거예요. 

독수리 한 마리를 누가 잡아서, 우리에 가두어놓고, 
한 2주 동안 먹을 거를, 고기를 마음껏 먹으라고 줬는데... 죽어버렸어요. 

왜 그렇게 세상 안에서 편안하게, 먹이를 찾지 않아도 되고,

고기를 주는 대로 먹으면 되는데... 왜 죽어버려요?
독수리 새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독수리를 만든 이유는, 어마어마하게 높은 창공을 날아오르도록 만들어졌어요.

그런 독수리 새를, 그 좁은 새장에 가둬 놓으니까 
아무리 먹을 것을 매일 줘도... 죽는 거예요.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 씨 하나가, 그 생명력을 그대로 발휘하여 
열매와 결실을 풍성하게 맺는 것,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 다워지는 것, 
그게 뭐예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화평을 이루고, 
이웃과의 관계가 화평을 이루고, 나와 자신과의 관계도 화평을 이루는 것! 

근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우리가 관계가 회복된다'는 말은 총체적인 거예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도 회복되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나를 용서하고, 내가 나를 사랑하고... 
이게 어떻게 해서 가능해져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그 담을 다 헐어버리시고,
화평케 하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안에 진정한 회복이 일어나는데,
이 회복은 그냥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아가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한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 이게 대 계명이죠. The Great Commandment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우리의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게 이 두 가지예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자랑하는 건데, 이게 점점 더 깊어지는 거예요.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잡을뿐만 아니라, 점점 더 깊어지는... 
그래서 여러분, 구원은 비현실적인 것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이에요. 우리의 일상 속에 따라오는 주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두 가지를 통하여 복을 경험하게 되는데 
야곱의 예를 하나 들면 좀 요셉하고 달라요. 

야곱, 그는 복에 매달렸어요. 복 복 복했어요. 
복에 대한 욕심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축복권을 받기 위해서, 장자권을 받기 위해서,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입니다. 이 복을 얻고자 하는 방법이 좀 잘못된 거죠. 
복을 원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그건 잘 한 거예요. 

근데 에서는 복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어 버려요. 
그러니까 철저히 자연인이에요. 에서는 '복의 개념'이 없어요. 
그런 것들에 관심 자체가 아예 없었어요. 굉장히 비 영적인 사람이었죠. 

근데 야곱은 영성이 있어요. 근데 인격적인 질은 좀 안 좋았죠.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은 갈망한 사람이에요. 그가 놓친게 뭐예요? 
형과의 관계, 아버지와의 관계죠. 그 결국은 도망자가 되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도 어때요? 관계가 깨지죠. 
거기서도 재산을 모아요.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는 다 깨져요. 

나중에 그게 문제가 되고, 그 인생의 아킬레스 건(약점)이 돼요.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얍복 나루에서 형이 400인을 거느리고 오는 거예요. 
모든 게 다 날아갈 뻔 한 거죠. 형과 관계가 나빴던 그 결과를 고스란히 받게 된 거예요.

이때 야곱 인생의 반전이 일어나죠. 
야곱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형 에서와의 관계가 회복되는 사건이에요. 
얍복 강가에서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죠. 

먼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거예요. 
그런 하나님의 복을 원했지만, 하나님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러면서 그는 자기의 방식으로 복을 획득하려고 했어요. 
그러니까 세월이 오래 걸리죠. 

자 야곱에게 주신 약속이 하나 있어요. 그걸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되는데, 
아버지 집을 떠나 도망을 치는 가운데 벧엘이라는 곳에서 꿈을 꾸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은 진짜 사기꾼같이 살았는데, 야곱의 인생을 계속 붙들고 있는게 하나 있었어요. 
'하나님이 너화 함께 하신다'는 것!

야곱이 하나 분명히 안 것은,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거예요. 
중요한 거죠. 이 핵심을 붙잡은 겁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도, 이게 기본으로 안 깔려 있으면 위험해요. 
내가 긁어 모으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주셔야 돼요. 

내가 긁어서 먹는 것은, 힘들뿐만 아니라, 또 금방 없어져요.
그러니까 아무리 모아도, 없어지는 속도가 더 빨라요. 그러니까 안 모아지는 거죠.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넘치는 거예요. 
하나님으로부터 복이 온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되죠? 그분에게 매달리는 거죠. 
하나님을 놓치면 안 되는 거거든요. 

근데 야곱은, 하나님과 마음은 멀어져 있는 거죠. 
어쩌면 라반의 집으로 갈 때도, 그는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거예요. 
혼적으로 살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소중하다는 걸 몰랐던 거예요.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하는데, 신앙이 액세서리로만 남아 있는 거예요. 
하란에서의 야곱은 신자예요. 오늘날로 치면 선데이 크리스천, 계속 한 번도 안 빠져요. 
근데 하나님에게 매달리지 않아요. 
자기의 방식과, 자기의 수단과, 자기의 머리가 더 앞서가는 사람! 

자 결정적인 순간을 하나님이 만드시죠. 언제나 하나님은 결정적인 순간을 만드세요. 
32: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을 끝까지 붙드는 모습이에요. 
'하나님을 내가 지금 놓치면.. 나 이제 끝이에요' 하는 마음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엉치뼈(고관절)가 부러졌는데도, 안 놓는 거죠. 
날이 새려 하는데도, 천사가 가려고 하는데, 붙잡고 늘어지는 거에요. 

하나님에게 복이 있다는 걸,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그 말씀이, 
이제 야곱에게 생각이 났겠죠. 

여러분 신약에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복은 임마누엘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 이 복을 누리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민족이 일어나고(생성되고), 모세가 태어나고, 출애굽 과정 속에서 
또 그 모든 죽음이 덮치는 그때에 (10번째 재앙)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에, 그 문설주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그 백성들 가운데 넘치죠. 함께 하시는 거예요. 
그러자 재앙이 물러가고... 

자, 이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시73:27~28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창12:2~3절의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다

여러분 에베소서 2:1절을 보면,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가 그리스도 이전에는 죽은 자였어요. 생명이 없었어요. 
생명이 다 사라졌어요.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다시 살리셨도다' 
우리의 모든 생명이, 그분으로부터 오고, 우리 안에서는 생명이 나오지 않는다... 
셀프로는 안 된다는 거죠. 

그 복이 바로 창12장으로부터 출발된 하나님의 약속에서 시작이 됐고, 
그 약속의 성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임마누엘로 회복이 되고, 성취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다는 거죠.

 

골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골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였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충만'이 창1:28 '땅에 충만하라'의 성취가 그리스도 안에서 되죠.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히 이루어졌으면, 더 이상 결핍이 없음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빌립보서를 보면, 바울이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말해요.
바울이 감옥 속에서도 이런 얘기를 해요. 
빌4:18~19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에바브로드 편에 너희가 보내 준 것을, 내가 받음으로 내가 풍족하다... 
계속 풍족하대요. 
빌립보 성도들이,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아마 보내준 그런 어떤 것들이 있었는데 
뭐 그게 대단했겠습니까? 
근데 바울은, 풍족하대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풍성이죠.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음으로써, 바울은 풍부하고 풍족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거예요. 
우리의 영혼은 떡으로는 안 되는 거예요.
아무리 많은 걸, 세상의 것들을 쌓아 놓아도, 우리 영혼이 빈사상태에 빠져 있으면 
사람이 맥을 못 춰요. 

여름 가뭄에 바짝 말은 잎사귀처럼, 그냥 바람에 날아다니는 거예요. 
그곳에는 생명을 느낄 수 없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거죠. 
그 말씀으로 살면 힘이 나고, 그 말씀으로 살 때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변화가 일어나고,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고... 

여러분 말씀으로 영이 살면, 생기가 돋아요.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적으로 강해지면 어때요?  죄의 유혹으로부터도 승리해요. 

여러분 죄를 짓는게 가장 우리의 삶을 소진시키는 겁니다.
여러분, 죄를 지으면 죄를 짓는 것도 열심을 내야 돼요.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해요?

자기의 힘으로, 자기의 능력으로 해결하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가지고 있는 마지막 에너지 마저도 다 소진시키는 인생!

여러분 안식일을 명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안식을 통하여, 그 쉼을 통하여,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세요. 

왜 못 쉬죠? 욕망이 있으니까. 
자기 결핍을 자기 힘으로 채우려고 하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안식일, 주일을 지키는 건 너무너무 중요한 거에요. 

과욕을 줄이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여러분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하나님으로 은혜를 받을 때! 

여러분 스트레스가 많은 건, 내 삶이 지금 어딘가 좀 너무 빠져(과몰입 해) 있다는 얘기에요. 
막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요. 그러면 요즘 모든 질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고 하잖아요. 
그 스트레스의 근원을 찾아보세요. 과욕일지도 몰라요. 

여러분 과욕을 가지면, 건강에 문제가 생겨요. 
제가 호주에 있을 때,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온 친구가 너무 건강한데, 
그냥 막 뛰는 만큼 돈이 되니까, 눈이 뒤집혀졌어요.

그냥 밤낮으로 일하더라고요. 쉬어야 되는데... 
밤낮 뛰며 일하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죽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그 안에서 에너지가 나와요. 
생기가 있고요. 생동감이 있고요. 과욕을 이길 수가 있고요. 시험도 이겨내고요. 
마음의 평안도 가지게 되고요. 

하나님과 관계가 끊겨서 살면, 죄가 힘을 얻어요. 쉽게 유혹에 빠져요. 
삶은 늘 피곤하죠. 죄를 짓는 일에는, 에너지가 무한 방출이 되는 거에요. 지치는 겁니다. 
삶이 불안하고 공허해지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아가는 삶이, 곧 하나님의 나라의 삶이에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누리고 
생명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도 보십시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도다... 복을 얘기해요. 

산상수훈에 그 외에도 '오른 뺨을 치면, 왼 뺨을 돌려 대라.' 
'오리를 가자는 자에게 십리를 같이 가라' 이게 어떻게 가능해요.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게 가능해요. 
결핍을 느끼지 않아요. 많이 가졌다고 나눠주는 게 아니에요. 
내게 결핍이 없어서 나눠주는 거예요. 하나님이 채워주시니까, 결핍이 없는 거예요.

충만하면 불안하지 않아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결국은 현재적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삶, 그게 바울이 누렸던 삶이고, 
감옥 속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그는 늘 부요한 자예요.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걸 가진 자로다...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생명의 복을 누리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이웃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경쟁 관계가 아니에요. 
나에게 주어진 이 복이, 그 이웃에게 흘러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옆에 있는 사람이 다 좋아해요. 

그런데 내가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뭔가 막 경쟁을 하고, 그냥 신경전을 벌이고 그러면 
여러분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쫓기니까, 내가 채워지지 않으니까, 
자꾸 위협적이고, 나도 모르게 폭력적이고,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그러니까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이죠. 

여러분 복이신 하나님과 함께 하실 때, 생명력이 넘쳐흘러요. 
내가 샘 곁에 가지가 되고,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는 역사가 나타나는 거죠.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아가는 것,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내 영혼이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리는 삶, 
여러분, 뿌리가 뽑히면 생명이 없잖아요. 뿌리를 내려야 되죠. 

골2:10절처럼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그게 뭐예요? 주님과 더 가까이 하는 것이죠. 
그분을 그분을 가까이하고, 그분을 소유하고, 내가 그분에게 소유를 당하는 삶, 
그때 우리가 생명의 충만함을 느끼는 거고, 흘러 넘치는 삶을 살게 되고,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살려내는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복은 생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주시는 겁니다. 
그게 흘러넘칠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 기쁨이 넘치고, 평강이 넘치고, 
감사가 넘치고, 우리 안에 희락이 넘치는 거예요. 그것이 형통의 삶입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 가면 갈수록 여러분들로 인하여 
주위 다른 사람이 복을 받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나를 통하여 주변의 사람들을 복을 받게 하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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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여러분, 므두셀라가 969세까지 살았어요. 
성경에 나오는 가장 최고 연장자는 969년, 약 1천년을 살았던 거예요. 놀랄 일이죠.

그때는 노아 홍수 이전이잖아요. 노아 홍수 이후부터 수명이 확 떨어지기 시작했거든요. 
아브라함 대에 오면 확 더 떨어져 버려요. 

그러니까 질적으로 양적으로 다 줄어드는 거예요. 
므두셀라가 969년을 살았다면, 한 400세 500세 때도 청년이었을 거예요. 그렇지 않겠어요? 

400세 500세인데 막 물통 들고 다녔을 거예요.
관절염 이런게 없었을 거라고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을 때는, 거의 퍼펙트하게 만드신 거예요. 
1천년 가까이 살았던 거예요. 원래는 영원을 살도록 만드셨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