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5일 "은혜의 장애물을 치우라(사도행전 11:1~18)" - YouTube
◈은혜의 장애물을 치우라 행11:1~18 2025.01.15.
◑도입
한 3년쯤 됐는데요. 우리 교회 장로님들 수련회를 하면서
부산 호산나 교회에서 목회하시다가 은퇴하신 최홍준 원로 목사님을 초청해서
한 시간 말씀을 들었습니다.
최홍준 목사님이 쓰신 책에 우리가 관심이 있었는데,
그 책 이름이 조금은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는 제목이에요.
<장로, 디딤돌인가 걸림돌인가?>
그래서 우리 장로님들에게 그 책을 사셔서 읽으시라고 하기가 조금 죄송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책을 우리가 읽고, 또 그 목사님을 직접 모셔서 한 시간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최목사님도 처음에 오셔서 목회했던 교회는, 교회 이름이 호산나 교회가 아니고,
다른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목사님께서 부임해 오실 때, 그 교회가 굉장히 어지러웠어요.
아주 시끄럽고 혼란스러웠어요.
그런데 최목사님께서 오셔서, 그분은 옥한흠 목사님이 제자훈련 교재를 개발하실 때,
그 옆에서 같이 파트너가 돼가지고 함께 하셨던 분이신데
제자훈련 교재, 제자훈련 방식 이런 걸 가지고 그 교회 부임하셔서
상처받은 성도들을 위로하면서 열심히 목회에 매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팠던 교회가 상처가 다 치유가 되면서, 교회가 내실 있게 성장하게 됐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예배 공간이 협소하고, 그것도 주변으로 확장하는 것도 어렵고,
이상하게 그 교회 주변이 하단 (지명) 로터리 라는 곳에 있었는데,
그 교회를 가운데 두고 전후 좌우에 술집이 그냥 꽉 차 있었어요.
아주 환란가 같은 곳 한복판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더 확장하는 게 어려우니까, 그 교회당 시설은 그대로 두고,
또 거기서도 예배를 드리면서, 저기 좀 떨어진 곳 외지에
새로 개발되는 곳에 부지를 준비하셔서, 교회당을 잘 짓고 이사를 가셨어요.
그러던 중에 최목사님께서 연세가 60이 넘어가시면서 했던 게,
'이 교회가 살려면 교회 중직자들이 살아야 된다.
특별히 교회 중직자들이 교회의 디딤돌이 되어야지,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
이런 데 대한 어떤 확고한 나름대로의 목회 철학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1박 2일짜리, 장로님들을
걸림돌 장로님이 아니라 디딤돌 장로님이 되게 하는 그런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셔서
많은 세미나를 하셨어요.
제가 부산에서 목회하던 그 (땅끝) 교회도, 우리 목회자들하고 장로님 전원이
그 최목사님 세미나에 1박 2일 참여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걸림돌 되지 않고, 주님의 교회에 디딤돌이 될 수 있을까?'
이런 훈련을 받았어요.
저는 우리 영락교회 당회원들도 그 세미나에 다 가기를 사실은 원했던 건데,
(부산까지) 거리가 너무 멀고... 그래서 조금 다른 방법으로 그 책을 우리가 읽고,
'최목사님을 서울로 오시도록 해가지고 우리가 말씀을 듣자.
한 시간 강의를 청해서 들으면서 맛보기라도 하자...'
그렇게 했던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좀 민망한 그런 책이 왜 나오게 되었으며,
그런 세미나를 왜 할 필요가 왜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이 교회, 저 교회를 들여다보면, 많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인데
'그 문제가 왜 생겼나?' 하고 들여다보면,
뜻밖에도 어떤 교회는 목사, 어떤 교회는 장로님, 권사님 이런 분들이
교회가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도록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거는 옛날에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그들에게 간절한 소망이 가나안 땅에 빨리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누가 걸림돌이 되느냐 하면, 뜻밖에도 일반 보통 백성 한 사람이 아니고,
모세의 누나인 미리암이 걸림돌이 되었던 거예요.
민12장에 보면, 모세를 두고 형 아론과 누이인 미리암이 시비를 거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모세가 왜 그랬는지는 우리가 설명하기 어렵지만, 구스 여자를 얻었어요.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인데, 이스라엘 여성을 얻었으면 참 좋았을 뻔했는데,
우리가 아는 것처럼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 가서 있는 동안에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민12장 즈음에는 구스 여자를 얻었다고 했어요. 왜 그랬는지는 설명이 성경에 없어요.
아마 십보라가 세상을 떠나서 그래서 재혼을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자세한 설명은 성경에 안 나와서, 왜 그런지는 전혀 모르겠는데,
그저 아쉬운 것은, 결혼을 해야 될 필요가 있었다면,
기왕이면 이스라엘 여인과 결혼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구스 여자를 얻었나?' 그게 좀 마음에 걸려요.
어쨌든 이제 그걸 꼬투리 삼아가지고, 아론과 미리암이 시비를 많이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겉으로는 그 문제를 들고 나왔지만,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것은 뭐냐면,
'모세 너만 지도자냐?' 그런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도 사용하신다. 미리암도 사용하시고,
아론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일꾼인데, 왜 너 모세만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있느냐?'
이런 권위에 대한 시비였어요.
그런데 모세는 온유했기 때문에 일절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이렇게 성경에 나오죠. 민12:3
그때 이제 하나님께서 거기 개입하셨어요.
그러면서 그 미리암과 아론을 꾸지람 하셨습니다.
'물론 너희들도 내 종이다. 너희들에게도 내가 계시하고,
너희들도 내가 사용하는 나의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아론, 미리암 너희들하고 내 종 모세하고는 좀 차원이 다르다.
내가 너희에게는 꿈이나 환상 같은 걸로 계시하지만,
모세하고 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고, 그냥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사이다.' 민12:5~8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표현하셨어요.
'너희도 내 종이긴 하지만, 모세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이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고 내가 모든 걸 모세에게 이야기하듯 말해주는 그런 나의 종이다.
그런데 너희가 어떻게 모세에게 그렇게 대들 수 있겠느냐?'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미리암을 책망하셨는데,
아론은 다행히 괜찮았는데, 미리암에게 나병이 생겼어요. 얼마나 충격적인 일입니까! 민12:10
미리암이 누굽니까? 모세가 태어나고 얼마 안 있어,
갈대 상자 안에 담아서 나일강 가에 띄워 보냈을 때,
'동생이 어떻게 되나 보자' 하고 강가에 나가서 지켜보던 누나가 아닙니까?
가장 가까운 사이인데, 지금은 이게 틀어진 거예요.
그래서 시비하다가 그 미리암의 몸에 나병이 생겼으니,
보통 병도 아니고 가장 부끄럽고 치명적인 나병이 생겼을 때, 모두가 충격을 받았겠죠.
그래서 미리암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무는 진 안에 있지 못하고,
진 바깥으로 쫓겨나갔어요. 나병이 걸리면 그렇게 격리 하잖아요.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그녀를 고쳐주실 때까지, 모든 백성이 그냥 올스톱 된 거예요.
빨리 가나안 땅을 향해서 계속 이동해야 되는데,
미리암이 나병 환자가 돼가지고 진 바깥에 저러고 있으니,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꼼짝 못하고 거기서 발이 묶였어요.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녀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고쳐주셨죠. 그 기간이 7일이에요.
그러니까 7일 동안 미리암이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장애물이 되는 바람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여인 한 사람으로 인해서,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거예요.
참 안타깝죠.
▲가끔 보면 오늘날도 교회들 중에 그런 경우가 있어요.
교회마다 형편은 좀 다르지만, 어떤 교회는 목사님이 좀 이상해요.
그래서 목사님이 잘 못해서, 교회가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거예요.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퇴보하기도 하고, 갈등이 점점 깊어지기도 하고...
어떤 교회는 장로님이 막 자기 주장을 내세워서... 교회가 주저앉아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런 교회들이 비일비재하게 많아요.
그러면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다 뿔난 괴물인가? 그렇지 않아요.
다 예절 바르고, 다 예수님을 잘 믿으려고 노력하고, 다 괜찮은 사람들인데,
그런데 이상하게 공동체 안에서는, 막 갈등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영락교회가 은혜의 80년, '이제 거룩한 땅에서 비상하라'
이런 표어를 가지고 올해 2025 를 또 출발했지만, 사탄은 교회를 가만히 놔두지 않아요.
계속해서 뭔가 이렇게 작고 큰 갈등과 충돌이 벌어지도록 만들고,
그 안에서 우리를 하여금 고통을 받게 만들고,
그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이 공동체가 제자리 걸음을 하던지, 퇴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많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하나님께서 현명한 판단과 지혜를 주시고
우리 성도들에게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주셔서
이런 교회 안에 생기기 쉬운 모든 자잘한, 또 혹은 때로는 그것이 큰 갈등일 때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잘 넘어서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의 가나안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 지혜가 필요해요.
하나님께서 뭔가를 하시는데, 어리석은 우리가 떡하니 장애물 노릇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이 사악하거나, 사탄의 하수인이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귀한 목사님이기도 하고, 장로님이기도 하고 그런데,
하는 걸 보면은 꼭 사탄의 앞잡이 같이 행동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하는 거예요.
◑본문 설명 / 간신히 갈등을 봉합한 예루살렘 교회
여러분 오늘 본문도 그런 갈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온 세상에 예수님의 복음이 선포되도록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겁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셨잖아요.
'내가 십자가를 지고 부활해서 너희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는데
이 복음은 너희 유대인들만을 위한 거다.' 이런 말씀하셨나요? No
'절대로 이방인에게는 이건 말해주면 안 돼!' 그러셨나요? No
오히려 정반대로 하셨죠. 마28:19절 '너희는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제자들은 벌써 그때 알았을 거 아니에요. 이게 모든 민족, 즉 유대인들 뿐만이 아니잖아요.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전해져야 될 말씀이구나!'
또 그거 한 구절만 있는 게 아니죠.
막16:15절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유대인에게만이 아니잖아요.
또 행1:8절은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복음이 유대를 넘어서,
그들이 사람 취급하지도 않았던 사마리아를 거쳐서, 사마리아를 뛰어넘어서
'땅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될 것이다' 라고, 벌써 제자들은 그런 얘기를 계속 들었잖아요.
그럼 제자들은 유대인만을 위한 복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물론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어요.
예수님께서 그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신 게 아니라,
제자들만 있을 때 하셨으니까요.
'복음이 모든 민족을 위한 것'임을 일반인들은 모를 수도 있어요.
제자들만 알고 있었을 수도 있죠.
그런데 그게 현실로 다가올 때, 제자들도 사실은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았을 거예요.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긴 하셨지... 나도 들었고, 너도 들었고, 우리도 다 들었어!'
제자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알고는 있는데,
막상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해져야 된다는 게 눈앞에 현실로 올 때는,
이게 마음이 불편한 거죠. 오랜 전통과 관행 때문이었죠.
그 마음이 불편했던 사람이, 그동안 행10장에 등장하는 베드로 아닙니까.
벌써 베드로는 마음이 불편했어요.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와가지고
'당신을 초청하라고 해서 우리가 왔습니다' 했을 때 마음이 불편했어요.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고넬료의 집에 가긴 갔지만
고넬료와 고넬료의 친구, 가족들이 그를 정중하게 환영하는 것을 보기도 했는데,
그때 뭐라고 말합니까?
'이방인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고,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을
당신들도 알지 않느냐?' 이렇게 말을 해요.
저는 베드로가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어요.
어차피 왔는데... 어차피 왔으면 '나를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기쁨으로 왔습니다.'
이러면 좋았겠는데, '내가 굉장히 마음이 불편한데도 왔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굉장히 마음이 불편한데, 주님께서 가라고 해서 내가 왔다'고 그러니까,
주님께서 가라고 하지 않았으면, 베드로가 왔겠어요? 안 왔을 거예요.
예수님께서 '모든 민족, 온 천하, 땅 끝'을 얘기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때 성령님께서 '가라,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따라서 가라'고 안 하셨으면,
그의 집에 안 갔을 거예요.
그 정도로 이방인이 복음을 받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베드로 자신도 그거에 대해서 마음이 불편할 정도니까,
다른 제자들도 다 마찬가지였겠죠.
▲그럼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민족, 온 천하' 이런 얘기를 들은 제자들도
거부감이 그렇게 크다면,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는 일반 성도들은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훨씬 더 충격을 받고, 거부감이 더 강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 그게 예루살렘 교회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거예요.
'베드로 사도께서 며칠 동안 안 보이더니, 어디 갔다 오셨대?'
벌써 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욥바에 갔다가 거기서 고넬료라는 사람을 만났다는구만'
'고넬료가 누군데?'
'로마 사람 백부장이라던데?'
'어떻게 만나 이방인을?'
'아니 만난 정도가 아니라, 고넬료 백부장의 집에 갔다 왔다던데...
가서 그 사람들하고 머물면서, 그 사람들하고 같이 음식도 먹고 그랬다던데?'
소문이 쫙 퍼지는 거예요.
그랬더니 예루살렘의 제자(성도)들이 뒤집어졌어요.
굉장히 마음속에 분노가 치밀어오른 거예요.
'아니 어떻게 베드로 사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그래서 강하게 베드로 사도를 향해 따지는 겁니다.
본문 행11장은 그걸로 시작하고 있어요.
여러분, 11:1절부터 보시면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예루살렘 교우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하는 소식을 들었더니'
11:2~3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베드로가 일정을 다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할례자들이 베드로를 비난하는 거예요.
'할례자'란, 할례 받은 유대인 중에서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을 말해요.
원래 '할례자' 그러면, 보통 유대인들을 다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는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을 말해요.
그럼 여러분, 처음 예루살렘 교회는 누가 믿었을까요? 다 유대인들이죠.
베드로도 유대인이고, 야고보, 요한도 다 유대인이고,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의 제자도 됐고, 예수님을 믿은 거죠. 다 할례받은 사람들이죠.
지금 여기 '할례자'는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을 말해요.
그럼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겠어요? 아니죠.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으니까,
다 좋은 사람들이죠. 성도들이예요. 당시엔 '제자'로 불렀죠.
다 좋은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지금 화를 내는 이유는 뭡니까?
'아니 베드로여, 어떻게 당신이 이방인에게 가서 얘기했느냐?' 이거예요.
'비난하여 이르되'
이 단어는, '베드로는 큰 죄를 지었다. 이미 베드로가 저질러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고
하는 것을 마음속으로 정죄하면서 따지고 들어가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그냥 한 번 해보는 말이 아니고,
아주 거세게 그리고 강력하게 베드로를 향해서 대드는 분위기예요.
그럼 베드로가 누굽니까? 베드로가 오늘 갓 예수 믿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고, 제자들 중에서도 수제자라고 하고,
핵심 중에 핵심인, 자기들이 볼 때는 이렇게 우러러봐야 될 교회의 어른, 수장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베드로를 향해서 지금 이렇게 거세게 대드는 걸 보면,
그들이 받았던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3
'벌써 소문이 다 나서,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자 그럼 여러분, 보세요. 지금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게
그냥 베드로의 생각입니까?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의 오래전부터의 뜻하신 바예요.
'모든 민족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것'
예수님 당신께서 '지상 명령'을 여러 번 얘기했잖아요.
그게 하나님의 뜻이에요. 지금 하나님의 뜻이 쭉 진행되고 있는데,
사람들이 등장해서 '그건 안 됩니다' 이러는 거예요. '무슨 이방인이 예수를 믿어요?'
여러분 이 상황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이런 일이 너무 많아요.
하나님 하시는 일이 진행 중에 있는데, 사람들이 딱 가로막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는(나는) 그렇지 않나?' 이걸 생각해 봐야 되는 거죠.
여러분, 여기 이 사람들이, 아주 사악하고, 예수님의 원수이고,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로막습니까? 아닙니다.
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교회의 성도들이에요. 다 예수님을 잘 믿는 성도들이에요.
행2장에서 보면, 이미 성령도 받았어요.
그런데 그 성도들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지금 가로막고 있잖아요.
참 이게 기가 막힌 일이죠.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가로막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잘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
주님이 하시는 일을 가로막고 있는 거예요. 아주 강력하게!
▲저는 교회 안에서 많은 갈등과 아픔들이 벌어지는 걸 보면서,
참 너무나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각각 보면 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고.. 다 기도 많이 하고..
다 교회를 사랑한다고 그러는데... 그런 사람들이 주님의 일을 딱 가로막는 거예요.
어떤 때는 목회자가.. 어떤 때는 장로님들이... 참 이건 너무나 안타까운 거예요.
자기도 모르게 주님의 일에 걸림돌이 되는 거잖아요. 장애물 노릇하고...
이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우리가 오늘 말씀에서 깨닫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베드로는 뜻하지 않은 거센 도전을 지금 받게 됐어요.
가이사랴의 고넬료 방문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예루살렘 교인들이 '그동안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겠느냐고..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믿었고, 성령님이 거기 임하셨다는 얘기를 우리가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주님의 복음이 온 세상으로 퍼지는구나...
그래서 우리가 너무 흥분해서 기도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환영해 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막 대들면서 따지니까, 베드로가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그래서 베드로는, 오늘 길게 읽은 행11장 말씀처럼, 10장에서 있었던 얘기를 쭉 설명해요.
'내가 어떻게 고넬류의 집에 가게 됐는지...' 그 환상 본 얘기부터 시작해가지고 쭉 얘기해요.
'나도 고심하면서... 그렇게 환상을 보고 무슨 일인가 하고 있었는데...
고넬료가 보낸 이들이 도착을 했고, 날 초대한다고 그랬고,
성령님께서 안심하고 가라고 내게 말씀하셨고, 그래서 내가 따라가 봤더니
그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 혼자 간 것도 아니고 여섯 명이 나와 함께 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과 똑같이 그들에게도 임하시더라'
여러분, 다락방에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 강림,
거기엔 예수님과 가장 가까웠던 제자들, 예수님의 어머니, 믿는 형제들,
그리고 120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거기 성령님이 강력하게 임할 때, 거기는 100% 유대인들만 있었던 거죠.
'그런데 유대인인 우리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신 것과 똑같이,
그 이방인들이 모여있는 거기에도 성령님이 임하시더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걸 가로막을 수가 있느냐?' :17
11: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베드로가 쭉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말씀의 끝자락의 이야기는,
그 갈등이 마침내 봉합되는 거예요.
'아, 그랬어요?' 대들던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명을 듣고 수궁했어요.
'아 그렇군요.' 이렇게 하면서... 썩 내키진 않지만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 받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래서 교회는 간신히 그 장애물을 옆으로 치우고,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그 갈등을 수습한 거예요.
여러분, 이 갈등이 수습되지 않았더라면, 굉장히 교회는 혼란에 빠졌을 거예요.
그래도 다행히 베드로의 설명을 듣고 나서, 그걸 수습하는 데 성공했어요.
◑적용 / 교회에서 갈등 봉합의 성경적 원리
그럼 여러분, 앞으로도 우리 교회나 다른 교회나
어디나 다 이런 갈등이 생겨날 수 있는데,
그럼 어떻게 하면 이런 갈등을 봉합하고, 우리가 걸림돌 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가 물 흘러가듯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섬길 수 있겠습니까?
그 어떤 원리를 우리가 배워야 될까요?
▲1. 가장 중요한 원리는 뭐냐 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존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하나님이 하시는 거야!' 그런 생각이 들면, 우리가 존중해야 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 중에 중요한 게 뭐냐면, 17절입니다.
11: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베드로도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임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는 걸, 베드로가 어떻게 막겠어요? 그냥 놀랄 뿐이죠.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으시는구나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과 이 이방인들을 똑같이 대하시는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내가 어떻게 그걸 막겠느냐?'
여러분 17절 끝의 말씀을 꼭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데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절대로 여러분, 하나님을 가로막는 자리에 계시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가로막으면 안 됩니다.
△가끔 보면, 청년들이나 중고등부 학생들이 수련회 같은 데 갔다 오면,
막 불이 붙어서 오는 수가 있어요. 그래가지고는 저도 그런 걸 여러 번 경험했는데,
'목사님, 우리가 이번에 가서 큰 은혜를 받고 왔습니다.'
'그래 나도 얘기를 다 들었다. 참 기쁘다.'
'그래서요. 우리가 매일 저녁 모여서 기도를 하려고 그러는데, 예배실 문 좀 열어주세요.'
'그래라. 얼마나 기쁜 일이냐! 너희들 와서 기도 많이 해라!'
저는 이렇게 말을 했는데, 며칠 있다가 학생들이 와가지고 저한테
'목사님 예배실 문 안 열어주던데요?'
'누가?'
'관리 집사님이 절대 안 된다고 그랬어요.'
그럼 관리 집사님은 사탄입니까?
관리 집사님도 착하디 착한 집사님이고, 관리 집사님도 기도도 많이 하시고 좋은 분이에요.
좋은 분인데, 관리 집사님은 예배실 문을 안 열어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관리 집사님, 청년들하고 학생들이 와서 기도한다는데,
예배실 문을 왜 안 열어주셨어요?' 그랬더니
집사님 하는 말이 다 맞는 말을 하는 거예요.
첫째 인솔자가 없다는 거예요.
전도사님이나 교사가 와가지고 같이 있어야지, 쟤네들 믿을 수 없다는 거예요.
쌍쌍이 어울려 다니다가 기도한답시고 모여있다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데,
그래서 불안해서 문을 못 열어준답니다.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이나 온다고 하면 몰라도, 매일 밤 나온다고 그러는데,
그리고 또 솔직히 저는, 매일 밤 청년들이 예배실 쓰고 어질러 놓고 가면
청소하기 힘들고...
듣고 보면 그 얘기도 다 맞는 말이에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제가 막 관리 집사님을 야단을 치면서
'목사가 열어주라는데, 어떻게 집사가 안 열어주냐?' 그럼 해결이 되겠습니까?
그럼 그분이 문을 열긴 열겠죠. 열긴 열지만, 속으로 저를 얼마나 미워하겠어요?
그러면 이제 하는 방법이 뭐가 있는지 아세요?
청년들 보고 '야, 기도하지 마라. 기도는 무슨 기도를 한다는 거냐? 그냥 집에 가!'
이렇게 하는 방법이 있겠고,
우격다짐으로 그 집사님 보고 '문 열어주라'고 말하는 방법이 있죠.
근데 둘 다 그게 현명한 방법이 아니에요.
기도하겠다는데 기도하라고 그래야지요.
근데 문을 안 열어준다고 그러니까, 또 문을 열게도 해야 되고...
그럼 묘수가 뭐가 있을까요? 딱 하나 있는 거예요.
'집사님, 내가 얘네들이랑 기도할 테니까, 나도 같이 기도할 테니까 문 열어라고'
그러면 집사님이 문을 열어주는 거예요. 목사가 같이 있는다고 하니까!
참 교회 일 하기 힘듭니다. 보면 청년들도 다 착하고 다 귀하고,
관리 집사님도 다 귀한 분인데... 근데 이게 잘 안 되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가로막으면 안 된다고 그랬는데 *주제
수련회 갔다 온 그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잖아요.
얘네들이 가서 기도하다가, 눈물이 막 쏟아지고 불이 붙어서 온 것도
그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잖아요.
그러면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긴 있지만, 걱정되는 것도 있지만,
보완을 해가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가로막지 말아야 될 거 아니겠어요.
걔네들이 얼마나 기도를 오래 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껏, 학생 시절에 주님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반드시 그들이 나중에 주님의 교회의 일꾼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가로막지 말자!' 는 겁니다.
△저는 또 이런 일도 봤어요. 어떤 여집사님이 전도를 열심히 해요.
전도를 못하는 교인들이 대부분인데, 어떤 여집사님이 새로 와 갖고,
눈에 띄게 전도를 많이 하는 거예요.
그러면 다른 성도들이 무슨 생각을 해야 될까요?
'저 집사님 정말 전도 열심히 하는구나. 나도 좀 전도해 봐야지!
집사님, 전도하러 갈 때 나도 좀 불러요. 나도 같이 가서 전도하고 싶어요!'
이런 게 정상 아닌가요?
그런데 그 집사님이 큰 상처를 받더라고요. 그래서 왜 상처받는지 물어보니,
교회 권사님 이런 분들이 '그 좀 조용히 있어라고.. 온지도 얼마 안 된 게 왜 이렇게 설쳐?
권사되려고 그래?' 그러면서 젊은 여집사를 불러다가 전도하지 말라고, 설치지 말라고,
혼을 내고, 야단을 쳤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제가 화가 너무나 가지고, 그 권사님을 당장 불러다 놓고,
경상도 말로 '닦아세우고' 싶은데,
맨날 그 권사님이 김장도 담아다 주시고, 찌개도 끓여다 주시고 그러니,
그런 분을 닦아세울 수도 없고...
당신도 전도 못하면서... 전도 열심히 하는 집사님이 있으면
'전도하러 다닐 때 필요한 거 있으면 내가 좀 사주겠다고...'
그렇게 말은 못할 망정, 아니 야단을 쳐서 전도를 하지 말라고 그랬다니까
제가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뭐 어떡하겠습니까? 참 별일이 다 있잖아요.
근데 여러분, 제가 깨달은 것은 바로 이겁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절대로 가로막으면 안 돼요.
▲2. 두 번째 이런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뭐냐 하면, 지도자를 존중해 주는 겁니다.
지금 베드로가 행10장에서 경험했던 일을 쭉 얘기했잖아요.
'내가 지붕 위에서 환상을 봤는데...' 하면서 쭉 얘기했잖아요.
예루살렘 제자들이 '고넬료 집에 간' 얘길 들은 사람들이 화가 많이 나 있었는데
베드로가 그 얘기를 하니까 '아 그랬습니까?' 하면서 이렇게 수긍한 거예요.
11: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아, 그렇습니까? 베드로 사도님 얘기를 듣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을 주시는군요. 우리가 미처 몰랐네요.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하는 말을 존중해 줬어요. 믿어줬어요.
베드로가 교회 지도자인데, 교회 지도자가 쭉 설명했더니... 그 말을 믿어줬어요.
'아 그렇군요' 하면서, 이렇게 수긍해줬어요. 그래서 교회에 갈등이 없어진 겁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쭉 얘기했는데도, 그걸 믿어주지 아니하고
'당신 말을 우리가 어떻게 믿느냐? 정말 그런 환상을 봤는지 안 봤는지 누가 아느냐?'
이러면서 계속 나오면, 베드로가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
△그런데 여러분, 많은 교회들을 보면, 교회 지도자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목사님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내가 기도하는 중에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아 그렇습니까?'
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어요. 그래도 그걸 존중해줘야 교회가 평안한 건데,
존중을 안 해요. 그래서 계속 부딪히는 거예요.
전에도 그런 말씀 드렸잖아요. 금년에 우리 영락교회 표어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교회 표어를 제가 정하는데,
누구도 '왜 김 목사 당신이 표어를 (독단적으로) 정하냐?'
이러는 분이 우리 교회에는 없어요.
그냥 제가 정해서 우리 장로님들에게 드리면, 다 그 표어를 위해 기도하시고,
예배 때마다 또 다 기도해주시고... 그래서 참 고마워요.
그런데 어떤 교회는, 목사님이 그 이듬해 표어를 정해가지고, 당회에 내놨어요.
'내년도 우리 교회 표어는 제가 기도하면서 이렇게 정했습니다.'
그랬더니 장로님 한 분이 '그걸 왜 목사님이 혼자 정합니까? 나도 집에서 하나 정했어요.'
그래가지고 장로님이 집에서 자기가 정한 거를 또 제출했어요. 그래서 두 개가 됐어요.
그 교회 신년 표어 후보가 두 개가 제출되어 가지고
난상토론 끝에 어떤 장로님이 '그냥 무기명 비밀투표로 결정합시다'
그래서 그걸 두고 투표를 했어요. 한 10명이 투표했는데,
장로님이 정하신 걸로 결정됐어요.
그러자 목사님은 '여기서 나는 목사가 아니구나. 최소한의 존중도 받지 못하는구나.
내가 이 교회에 있으면 안 되겠구나' 그래서 '이 교회를 나는 떠나겠습니다' 하고 사임했어요.
당회원들은 '목사님 가정만 나가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목사님이 교회를 떠나겠다고 하니까, 한 600명 모이던 그 교회에서
400명이 목사님을 따라가겠다고 나왔어요. 그래서 교회가 문제가 된 거예요.
처음에는 목사님 가정만 나가면 될 거라고 다 생각했는데,
훨씬 많은 성도들이 '이런 사람들하고 같이 신앙생활 못하겠다고' 그러면서
'목사님 따라 나가겠다고' 그러면서
떠나는 분들이 남아있는 사람들한테 '이 교회 재산을 반으로 나눠서 내놔라.
우리도 나가서 예배 처소를 얻어야 되고...' 그래서 노회 안에 시끄러운 문제가 됐어요.
그래서 갈등이 깊었어요.
그랬더니 노회에서 또 수습위원 5명을 정했는데,
떡하니 저를 그 중에 한 명으로 넣어가지고, 제가 가서 또 그거 수습한다고 고생했어요.
그래서 결국 조정을 해서, 그 교회가 나가는 분들에게 돈을 얼마 드려서
이분들이 나가서 예배 처소를 준비하게 하고...
참 이런 마음 아픈 일들이 왜 벌어집니까?
물론 그 목사님이 완벽하지는 않겠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나요?
그래도 그 교회의 성도들이, 그 목사님의 권위, 그 지도자의 권위를 존중을 했으면
그 교회는 쪼개지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결국 쪼개졌어요. 참 마음 아프죠.
그래서 여기 지금 성도들은, 베드로를 존중해줬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막으면 안 된다.' 하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존중했어요.
▲3. 교회 안에 이런 갈등이 여전도회에, 남선교회에 다 생길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원리가 하나 있습니다. 뭐냐 하면 '사랑의 원리'입니다.
여기 지금 두 가지 중에 하나잖아요.
-'이방인은 예수님을 믿으면 안 된다' 이렇게 말하는 주장과,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하신다' 이 두 가지 아닙니까?
그럼 둘 중에 어느 쪽이 사랑이랑 가깝습니까?
사랑의 원리랑 가까운 것은, 당연히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게 해야 되는 거,
이게 사랑이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너무 따지지 말고,
사랑에 가까운 쪽으로 결정하시면 후회할 일이 없어요.
우리가 뭘 할 때도, 꼭 거기 맞춰가지고 정확히 자로 재서,
딱 맞는 것만 할 수는 없는 거죠.
사람이 살다 보면, 조금 더 너그럽게 해야 될 때도 있어요.
'사랑의 원리' 대로 하면 후회할 일이 없어요.
그래서 본문에서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믿도록 하자' 이렇게 된 거죠.
저는 생각해 봤습니다. 목사로서 든지, 또 교회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으로 섬기든지,
우리가 다 평소에는 착하고, 또 기도하고, 주님 닮고 싶고 하는데,
어떤 사안이 생기면, 다 착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충돌할까요? 왜 그럴까요?
그러면서 왜 절대로 양보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걸림돌로 남을까요?
'왜 나를 디딤돌로 삼아서 교회가 부흥되길 원하지 않고,
교회를 쪼그라들게 만드는 걸림돌 역할을 할까요?' 그런 생각을 해보는 거죠.
여러분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의 심령이 죽어서 그렇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영이 죽으면, 하나님을 존중하지도 못하고, 교회 지도자를 존중하지도 않고,
사랑도 다 식기 때문에... 결국은 남는 건 쭉쩡이 같은,
다 쪼그라진 영혼에서 나오는 독소 밖에 없는 거예요.
자존심, 아무 소용없는 자존심, 자기 주장,
자기를 부인해야 되는데, 그것만 붙들고 있으니까... 이게 도무지 안 되는 거예요.
저는 그래서 우리 교회는, 주님의 은혜가 충만해야 된다고 믿습니다.
성도들이 다 은혜를 받고 나면, 감사하고,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찬양하게 되고, 다른 사람도 구원 받는 걸 기뻐하게 되고,
교회 리더들을 존중하게 되고,
'장로님들이 수고 많이 하신다. 장로님들이 결정하는 게 다 100% 옳다.
내 맘에 안 들지만 그 장로님 참 수고 많이 하신다.' 이렇게 인정해드리고,
그럼 이게 다 교회가 잘 가는 거예요.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의 공동체를 흔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거기 넘어가면 안 돼요. 절대로 그러면 안 돼요.
△여러분, 어느 지방에 있는 교회에서 참 이상한 장로님 한 분이 계시는데,
온 교회를 힘들게 하는 거예요.
목사님들이 와서 한 2~3년 있다가 계속 떠나요. 그런데 떠나면서
'목사님 왜 떠나세요?' 그러면 다 똑같은 얘기를 해요.
'그 OOO 장노님 때문에 못 있겠어요.' 하고 다 떠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장노님은 좀 독특해요. 새 목사님이 오면 A4 용지 한 두 장에
빼꼭하게 뭘 써가지고 와서 '목사님 꼭 이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요구하는 거예요.
그 중에 뭐도 있냐 하면, '반드시 어딜 가든지 성경책을 손에 들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도 있어요.
목사님이 동네 '24시 편의점에 갈 때도, 성경을 들고 가야 됩니다.'
실제로 빈손으로 가다가 지적을 받았대요. '왜 성경책을 안 들고 가냐고?
목사면 성경책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지...' 그런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국가공휴일 있잖아요. 국가공휴일이 되면 목사님도 쉬어야 되고,
목사님도 가족을 만나러 출타도 가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목사님은 절대로 도시 바깥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그러는데요.
지방의 작은 도시 바깥으로 나가면 안 된대요.
물론 군부대 같은 데서는, 경계가 있어서 멀리 가면 안 되죠.
군부대 사령관 그런 사람들은, 그 지역을 쉽게 벗어나지 못 해요. 비상 상황을 대비해서.
마치 그와 비슷하게, 목사님은 맨날 그 도시 안에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 거를 한 서너 가지도 아니고, A4용지 두 장에 빼곡히 써가지고
그걸 목사님한테 주니까... 어떤 목사님이 거기서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얘기를 듣는 저도, 막 열불이 속에서 치솟아 오르더라고요.
그래가지고 내가 그 장로님 한 번 만나서 '장로님도 늘 성경책 들고 다니세요?'
이렇게 말할까? 하다가 관뒀어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요.
저는 그 장로님이 나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아마 조금 융통성이 없거나, 굉장히 열심히 믿는 분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일까요?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우리 성도님들이 집에 가셔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행11장에, 큰 위기가 예루살렘 교회 안에 왔잖아요? 복음이 가로막힐 위기,
온 세상에 유대인만 있는 게 아닌데, 유대인은 소수이고, 온 세상이 다 이방인인데,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
이들은 어떻게 이걸 해결했나요?
우리 교회가 뻗어나가는 교회가 되려면, 이런 걸림돌들을 다 치워야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는데, 방해되는 장애물들을 다 치워야 돼요.
절대로 우리가 그 장애물이 되면 안 돼요.
-그래서 하나님을 존중하시고,
-교회 지도자들을 존중해주고,
-그리고 사랑의 원리에 따라서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