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6 주일예배 // 하나님의 보배, 예친 모임 - YouTube
◈하나님의 보배, 소그룹 모임 말3:13~18 2025.02.16.
저희들이 말라기서를 계속 강해하고 있는데,
오늘이 7강이고, 다음 주가 마지막 8강입니다.
◑도입
저희들이 성경을 한 구절씩, 각 권의 처음부터 끝까지 살피는 것은
약간 무리한 시도일 수도 있는데, 여러분들이 한번 쭉 복습을 한번 하셔가지고,
이 말라기서 말씀을, 제가 설교하는 것처럼,
여러분들이 자녀들이나 또 다른 사람들한테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여러분들이 이 말라기서 말씀을 익히면 좋겠다.. 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이 말라기가 쓰여진 그 당시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70년 만에 돌아왔고
또 성전을 건축하기도 했지만, 세월이 좀 지나니까
달라진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그들의 삶에는, 요즘 말로 하면 불경기가 있고,
또 안 믿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어려움들을 겪기도 하고,
가정의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이혼
결국 이런 가운데서, 과거에 하나님을 향해 가졌던
하나님을 향한 꿈과 열정이 거의 다 식어져버린 시대가
바로 말라기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였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들하고도 굉장히 비슷한 모습이죠.
우리 한국교회는 정말 세계 교회가 찬탄했던
하나님을 향한 꿈과, 열정, 뜨거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언제부턴가 그 꿈과 열정, 뜨거움들이
정말 많이 식어버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꿈을 다시 회복할 수가 있겠는가?'
이것이 말라기 선지자가 가졌던 고민이고,
또 하나님께서 바로 이런 열정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주신 말씀이,
저는 이 말라기서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말라기서에는 총 6번의 논쟁이 나옵니다.
말라기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백성들과 가지는 6번의 논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1) 첫 번째 논쟁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논쟁'입니다. 1:1~5
'하나님이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2) 두 번째 논쟁은, 불충실한 제사장들 제사장들에게 주시는 책망이죠. 1:6~2:9
제사장들이 하나님 보실 때 부정한 제사를 드렸고,
또 진리를 가르쳐야 되는 그들이 편협되게 말씀을 가르쳤던 것,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망을 하셨습니다.
3) 세 번째 논쟁은, 불충실한 백성들에 대해서죠. 2:10~16
이방 여인들과 혼인을 하고, 어릴 적 취했던 이스라엘 여인들과는 이혼하는
잘못을 범했던 불충실한 백성들에 대해서 책망을 했습니다.
4) 네 번째 논쟁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말로 괴롭게 했는데, 2:17~3:5
그 내용은 '악을 행하는 자들이 오히려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 라고 말하고,
또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이런 말을 통해 하나님을 괴롭게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주님이 교훈을 하셨습니다.
5) 다섯 번째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십일조에 대한 책망. 3:6~12
그래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행동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돌아오셔서 그들의 삶을 놀랍게 축복해 주시겠다는 내용이죠.
6) 여섯 번째는, 말라기서의 마지막 논쟁인데, 3:13~4:3
네 번째 논쟁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였다'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행위가 무엇이 유익하리요 한다'
◑본론 / 여섯 번째 논쟁
6번째 논쟁을 오늘과 다음 주에 두 번에 걸쳐 살펴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과
-또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사람,
이렇게 대조적인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오늘은 3:13~18절까지 '논쟁'의 내용을 살피고,
다음 주에 살필 4:1~ 마지막 6절까지는 그들을 향해
'여호와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표현인데 '여호와의 날'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다가오면'
이 상반된 두 그룹이 어떤 다른 미래를 맞이할 것인가?
이 내용은 다음 주에 살펴봅니다.
다가오는 하나님의 날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엘리야를 보내실 것에 대해서 교훈하는 것으로
말라기서가 마무리 됩니다.
◑말3: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완악한 말'은 강하고 거친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강하고 거친 말로 하나님을 대적을 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반응이 '우리가 무슨 말로 주님을 대적했습니까?'라고 반문하죠.
그에 대한 답변이 3:14~15절에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14~15절은, 네 번째 논쟁과 굉장히 유사합니다.
2:17절을 한번 보십시오. *4th 논쟁
하나님이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했다' 라고 하시니
사람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괴롭게 했습니까?' 라고 반문을 하죠.
그러자 하나님의 답변은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고, 그에게 기쁨이 된다' 이런 말로
하나님을 열받게 했다는 겁니다.
2:17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또한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이거는 계시지 않는다는 거죠.
'정의의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이런 말을 통해 하나님을 괴롭게 했다는 겁니다. *4th 논쟁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피는 6th 논쟁도 3:13~14절 비슷한 내용입니다.
◑말3: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들이 했던 완악한 말을 두 구절을 통해 설명을 합니다. :14~15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라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방인도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이렇게 말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거죠.
여기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란, 예배와 제사와 관계되는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예배하는 것은 헛되다' 라고 말한 거입니다.
또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4
'무엇이 유익하리요?' .. 아무 유익이 없다는 뜻이죠.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는 것, 이것은 바로 말씀에 대한 순종이죠.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 주신 말씀, 그 명령에 순종하면서 사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 뭐 남는게 없다는 겁니다.
-또 한 가지, '슬프게 행하는 것도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슬프게 행하는 것'은 .. 금식입니다.
▲여기서 잠시 스가랴서를 관련 구절을 보겠습니다.
스가랴도 역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가 중단되었을 때
하나님이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포로후기 공동체'의 분위기가 이랬습니다.
슥7: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이렇게 하나님이 반문하십니다.
여기서 '70년 동안 다섯째 달, 일곱째 달에 금식했다'는 말은,
'다섯째 달 금식'은, 성전이 불타고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하게 된 때가 다섯 째 달이었죠.
그것을 그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매년 다섯째 달에 금식한 것입니다.
(이때 금식은 해뜰 때부터~해질 때까지)
'일곱 째 달 금식'은, 바벧론 군대로 말미암아 유대 총독 그달리야와 및
유대 땅에 남아 있었던 유대인들의 살해된 사건을 기억하느라고 금식한 것을
가리킵니다. 왕하25:25, 26, 렘41:1~
금식이라는 것은, 정말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잘못을 기억을 하고,
그 비극에서 그들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구하는 마음으로
슬프게 행하는 것이 금식인데,
'이런 금식이 도대체 무슨 유익이 있느냐?'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불평한 겁니다.
결국 예배나, 말씀에 대한 순종이나, 금식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라고 했죠. :14
이어지는 15절을 보면, 더 적극적으로 불평합니다.
◑말3: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교만한 자란 하나님보다 내 생각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자죠.
'하나님의 심판은 최소한 나한테는 미칠 수 없어'라고 하는 자입니다.
이런 교만한 사람은 무엇으로 발전합니까?
'악을 행하는 자'로 발전을 하겠죠.
교만해서 악을 행하고... 악을 행하면서 이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됩니다.
이렇게 15절에 나오는 세 부류의 사람은, 순차적입니다.
앞서 5번째 논쟁, 십일조 본문에서 '시험'이라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3:10
거기에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한번 시험해 봐라'라는 긍정적인 뜻이었습니다.
근데 여기서는 부정적인 뜻의 시험입니다. 하나님의 무엇을 시험하는 거죠?
'하나님의 인내, 하나님의 공의를 시험하는' 겁니다.
지금 적극적으로이 사람들은 행동합니다.
앞서 14절은 소극적으로 표현되죠. 헛되다. '아무 유익이 없다'
이렇게 부정적, 소극적으로 표현이 되었는데, 15절은 보다 적극적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이렇게 말했다는 거죠.
이런 말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것이 헛되고,
말씀에 순종하거나, 금식하는 거는 아무 유익이 없고,
오히려 교만해서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시험 많은 자가 더 잘 된다...'
어떻게 하나님 백성들이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그들 눈앞에 펼쳐진 현실 때문에,
그들이 직면했던 삶의 현실 때문에...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거죠.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고 노력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니까,
누가 부자가 되어 있고, 누가 자식들 잘 키우고, 누가 건강하고, 누가 잘 되느냐?
보니까 하나님도 적당하게 섬기면서,
결국은 그 마음이 교만하고,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 아니라, 타협하면서 악을 행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더 잘 되는 거 같고...
정말 하나님께 내 인생을 걸었는데
내 삶은 한없이 초라한 것 같고... (하나님은 이들을 영적으로 성숙시키기 위해서
이런 고난의 환경을 주시는데도, 그걸 깨닫지 못하고,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일어나게 되었다는 겁니다.
◑말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그런데 16절부터는 이와 대조적인 사람이 등장합니다.
(앞서 본문에 두 부류의 사람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앞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해서 뭐 책망이나 심판을 말하지 않습니다.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여러분, 악인들이 득세하고 정의의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거나 볼 수 없는 시대,
그런 시대의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경외'는 히브리어로는 '야레' 라는 표현인데
가장 중심적인 뜻은 '사랑이 중심이 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사랑이 중심이 된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그 밑에 줄을 보면,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
이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자, 즉 하나님의 이름을 가장 귀하게 존중히 여기면서 사는
사람들이 그 시대에도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표현은, 말라기서에서 굉장히 중요한 표현입니다. 주1)
하나님께서 기대하셨던 백성들, 제사장들의 모습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두려워하고, 가장 귀하게 존중히 여기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 16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피차에 말하되'
지금 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모임(소그룹이라고도 볼 수 있죠)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혼자 고립되어 있지 않고, 소그룹으로 모임을 하고,
그 모임 가운데서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화의 주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이거는 우리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게
신10:12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럴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답을 주셨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신10:12
그 뒤에 나오는 표현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모습과 관심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여서 무엇을 하나?
'그의 모든 도(말씀을 통해 제시하신 길)를 행하고,
또 그를 사랑하고, 마음과 뜻을 다하여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것'
이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관심이고, 삶이죠.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꿈을 그들이 같이 나누게 될 때,
하나님은 이것을 어떻게 반응하시느냐?
본문 16절입니다.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분명히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들으시고' 라고 번역했는데,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는 '분명히'라는 표현이 없고,
'듣는다'라는 두 개의 동사가 연속해서 나옵니다. *듣고, 들으시고
영어성경엔 listened and heard, 또는 gave attention and heard 로 번역했죠.
먼저 나오는 동사의 뜻은 '주의를 기울여 경청하다' 라는 단어입니다. *카샤브
'주의를 기울여서 경청하고(카샤브) 들으셨다(샤마)' 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과 꿈을 같이 나눌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나요?
그것을 주의를 기울여서 경청하시고, 또 들으신다...
우리 개역에 '분명히 들으시고'로 번역했죠. :16
이건 뭐겠습니까? 하나님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이죠.
지금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나님은 (우리 소그룹 모임의 대화를)
주의를 기울여서 들으시고 또 들으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6b
이 말씀은 원래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 앞에 있는 '기억의 책 book of rememberance' 에
하나님께서 계속 기록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마음에서 나누는
말과 그 행동들을 ... 하나님이 '기억의 책'에 다 기록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기억의 책'에 기록하시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꿀밤을 주시고, 벌을 주시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바로 기념(또는 기억)하기 위해서 입니다.
권사님들이 가끔 이런 얘기를 하십니다.
'목사님, 우리 애가 그때 한 10년 전에 어렸을 때인데,
그때 우리 애가 이런 말을 했어요. 또는 이런 기특한 행동을 했어요...'
근데 그 자녀한테 물어보면, 걔는 전혀 그런 생각 없이 했는데,
엄마가 약간 오해를 하고 계시는 거 같아요. 좋게 생각하시는 거죠.
'정말 우리 애들이 이런 말을 했어요. 이런 기특한 행동을 했어요.'
부모님들은 정말 돌아가실 때까지, 또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또 말하고 ...
마치 그런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들으시고,
그것을 기억의 책에다 기록하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영원히 기억하시고 기념하시기를 원하셔서
그것을 '기억의 책'에다 기록을 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토론토에서 유학할 때
제가 마음에 좀 계획이 있어서, 이 말라기서를 제가 공부를 했거든요.
제가 말라기서를 공부하다가, 여기(3:16)에서 정말 전율이 느껴졌어요.
정말 저는 하나님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같이 모여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나누고, 하나님을 향한 꿈과 비전들을 이야기하고
또 기도의 제목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고 세워줄 때,
'하나님은 이걸 다 듣고 계시고, 그것을 기록하고 계시는구나'
제가 그 이후부터는 소그룹을 할 때, 제가 하나님께 약간 잘 보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깜짝 놀라시고, 두고두고 기억하실 수 있는 쪽으로 말하기로 했습니다.
왜냐면 '기억의 책'에 다 기록하고 계신다 했으니까요.
그래서 소그룹을 할 때, 제 앞에 있는 학생이
저를 부글부글 끓게 하지만, 욕을 하고 싶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지금 기념의 책에 메모하고 계시니까
'관형아, 그때 네가 소그룹 모여서 나눌 때, 네가 이렇게 이야기 했어!'
하나님이 두고두고 기념하실 수 있도록 말하고 행동을 하려고
정말 외식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조심하고, 또 최대한 예의바르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지금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은,
하나님은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대화 나누고 격려하고
또 그것을 행동해 옮기는 것을 너무너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이들에게 향해 있으십니다.
그다음 말씀을 보시면, 17절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말3: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내 보석)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만군의 여호와가 말씀을 하십니다. 말씀의 내용은 세 가지인데,
'나는 내가 정한 날에'
'정한 날'의 영어 번역은 '내가 행동할 날에, 내가 결정적으로 행동할 날에'
이게 4:1절부터 나오는 '여호와의 날'입니다.
하나님이 결정적으로 행동하시는 날이 다가옵니다.
하나님이 결정적으로 행동하시는 그 날에,
그들을, 즉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다'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이 말씀을 들으면 다 생각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출19:5절인데요.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했고
광야를 거쳐서 1차 목적지인 시내산에 도착했어요.
그 시내산에서 그들은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받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거기서 성막을 건축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전에, 바로 이 선언을 하십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했고' 온 세상은 다. 하나님께 속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될 것이다' 출19:5
여기에 '모든 민족'과 '이스라엘'이 지금 구분되고 있죠.
온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했는데, 하나님의 말씀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내 언약의 백성이 되어서,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될 것이다.
출19:5에서 '내 소유'는 '세글라' 라는 히브리어인데, '보석같이 특별한 소유물'을 의미하죠.
같은 단어 '세글라'가 본문 말3:17에서 이것을 '특별한 소유' 라고 번역했는데,
원어적으로는 '내 보석 my jewels' 이예요.
지금 바로 우리가,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모여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하나님 잘 섬기는 법을 배워서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이 결정적으로 일하시는 그날에 (여호와의 날에)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보배들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는 내 소유(출19:5), 내 보배(말3:17)들이 될 것이다' *같은 '세글라'
이어지는 17절 후반부를 보면,
'하나님은 그들을 보배로 삼으시고' 그 후반부는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낄 것이다'
여기서 '아낀다'는 것은 불쌍히 여긴다, 보호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들을 아끼신다.. 이해해 주시고, 그들을 정말 특별하게 보호해 주시겠다...
고 말씀하십니다.
◑말3: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돌아와서 분별하리라'고 번역했는데, return, and discern
뭘 보느냐? 의인과 악인의 차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의 차이를... 너희가 보일 것이다.
'그날에는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에게 주어지는 엄연히 다른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미래를..
의인과 악인의 차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차이를,
지금은 너희가 잘 보지 못하지만, 그 날에는 분명히 보게 될거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그 날'에 대한 이야기가 4:1절부터 이어지게 됩니다.
정리하면,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악인들이 득세하는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보배(보물)'들은 누구냐? 3:17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하는 자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누구냐?
바로 하나님의 보배들이라는 거죠.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이들을 보배같이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아끼시고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의 차이를
분명히 모든 사람이 보게 될 그날이 다가올거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적용
오늘 말씀이 결론은 뭐겠습니까?
셀모임, 소그릅 모임에 잘 참석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랐고요. 저는 교회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쭉 회장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신앙생활은 무엇이냐?'
예배에 빠지지 않고 잘 참석하고, 교회 행사 잘 치르고...
그게 신앙생활 잘하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대학시절에 서울에 올라가서,
내수동 교회에 가서 처음으로 무엇을 경험했나 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소그룹을 이루고 대화하는 것을,
그때 저는 처음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사실은 모태신앙으로 자랐지만, 그런 소그룹에 대한 경험이 없었어요.
그냥 주일학교 반사하고, 선생님을 통해서 주일학교 교육은 받았지만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함께 서로 대화를 나누는 소그룹...
저는 정말 그게 충격이었어요.
그때는 100분씩 시간을 들여서, 정말 대학생들이
하나님 말씀이 무엇인지... 우리들의 짧은 지식으로 같이 나누고,
또 깨달아진 말씀이 있으면, 그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통해 가지게 된 꿈과 비전이 있었습니다.
민족을 향해서, 세계를 향해서, 교회를 향해서, 또 내 삶을 향해서
꿈과 비전이 생기면 함께 나누고, 또 같이 기도하고, 서로 격려하고 도전하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했던 시간이
그 소그룹 시간이었어요.
저는 내수동교회에서 소그룹에 참여했을뿐만 아니라
저는 정말 사람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수가 없는 독립적인 사람인데,
그런데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고 해서, 남자 8명과 13평 아파트에서
거의 짐승 같은 생활을 제가 7년 동안 자취 했습니다.
정말 24시간 정말 같이 생활하면서, 그때 제 모든게 다 달라졌습니다.
정말 먹는 거부터 시작해서 모든게 다 달라졌어요.
정말 거기서 형제들과 부대끼면서, 제 모난 성품들이 뭔지도 다 알게 되었고,
또 그들의 사랑도 받고, 격려도 받고 했습니다.
그때 밥만 먹고 나면 그 테이블에 모여앉아서
그때 뭐 화종부 목사님이나 많은 분들이 계셨거든요.
선배 후배들이었거든요.
밥을 먹고 나면, 그 자리에 앉아 가지고 믹스 커피 마시면서
온갖 이야기를 다 했어요.
저는 그것이 제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근데 저는 그냥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갖고 있었는데
바로 말라기서를 공부하다 깨달았던게 뭔가 하면
'야~ 바로 그것을 하나님이 주의 깊게 경청하고 계셨구나
하나님이 그것을 듣고 계셨구나...'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걸 다 기억의 책에다 메모해 두셨구나...' 라는 것을
제가 한번 깨닫게 됐을 때, 정말 제 삶에 전율이 일어났어요.
'내가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을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일에 더 잘 드릴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해서 함께 나눌 때
'하나님이 이것을 이렇게 귀하게 생각하셨구나.. 하나님이 그거 다 메모하셨구나'
제가 지난 주간 동안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정말 그런 마음이 오더라고요.
'야 내가 너를 아낀 이유를 알겠느냐? 내가 너를 왜 아꼈겠느냐?'
바로 그때 그 대화, 그때 나눴던 꿈, 그때 모든 이야기를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나는 어쩌면 잊어버릴 수 있는데, 하나님은 다 기억하시고,
우리 들을 그분의 보배같이 지금 다 다듬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대구에 내려올 때, 우리 후배들한테
'이런 기쁨을 같이 나누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정말 그들이 청년의 시절에,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꿈과 비전을 그들이 같이 가지면서,
하나님의 보배로 자랄 수 있는... 그런 어떤 기회들을, 저는 주고 싶었어요.
제가 내일 교회를 섬기면서,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주셨던 특별한 선물이 바로
예친 모임(소그룹)입니다. 대구지역에 제가 그 당시에 정말 충격을 받았어요.
정말 서울에서도, 뭔가 구역 모임이 아니라,
함께 모여서 말씀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공동체는
제가 서울에서 찾아보지를 못했어요.
근데 내일 교회가 그걸 하고 계시는 거예요. 제가 정말 충격 받았어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 무엇이냐?
그게 바로 예친 모임입니다.
같이 어색하지만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같이 나누고, 격려하고, 세워주고,
기다려 주고, 붙잡아 줄 때... 여기에서 누가 일어나느냐?
하나님의 보배와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저는 청년들을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면서 안타까웠던 순간도 많아요.
정말 영혼을 잃어버렸던... 그 잃어버렸던 영혼들이 만신창이가 되었던 장면들을
저는 많이 봤어요.
근데 그 친구 정말 왜 만신창이가 되는 치명적인 잘못을 범했느냐?
전부 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였느냐? 혼자 있을 때였어요.
고립되어 있을 때, 성도들과 같이 있지 않고 혼자 있을 때,
그들의 인생에 정말 치명적인 실패, 치명적인 아픔들이 일어나는 것을
제가 너무나도 많이 목격했어요.
항상 제 마음에 '저 청년이 우리하고 같이 있었다면?
저 성도가 우리와 같이 있었다면, 우리가 지켜줄 수 있었는데...'
그 친구들을 우 리가 다 놓쳐 버린 거죠.
여러분, 우리가 소그룹에 속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조금 죄송한 말씀인데, 영적인 생사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소그룹에 속하는 것이 귀찮고, 어렵고, 힘이 들지만
그러나 이 귀찮고 힘든 모임이,
내 삶에 유혹이 찾아오고, 내 삶에 어려움이 찾아올 때,
이분들이 나 붙잡아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혼자 하나님의 보배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다니엘을 보시죠. 그 주위에 세 친구가 있었고,
예수님도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여러분, 보배 같은 인생이 되려면, 보배 같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는 일들이 일어나야 됩니다.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우리들의 상황과 형편이 각자 다 다르겠지만
어떤 분들은 성격적으로 낯선 사람과 모이는 것 자체가 고통이잖아요.
제가 그냥 부탁드리는데, 석 달만 입술 꽉 깨물고,
속된 표현으로 그냥 쪽팔리는 시간을 가지시면 돼요.
석 달만 이빨 깨물고 거기에 가서, 그냥 한번 부끄럼도 당하고, 어색함도 당하고...
석달만 견디면... 그 모임이 여러분의 미래를 지켜줄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이 함께 모여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여서
이 시대에 하나님의 보배가 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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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표현은, 말라기서에서 굉장히 중요한 표현입니다.
이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책망을 하기도 하고,
선지자는 비전을 제시하기도 하고,
또 가 나아가야 될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 구절을 찾아볼까요?
1) 1:6절에서 하나님이 제사장들을 책망할 때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내 이름을 멸시하니까' 그 모든 부정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잘못을 범했죠.
2) 1: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전을 제시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날을 우리에게 주실 거냐?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이거는 온 세상입니다.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이방 민족 중에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다'
'내 이름이 이방 민족들 중에서 크게 될 것이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면서, 하나님이 이루실 놀라운 미래를 제시하실 때,
'이방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다. 존중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3) 나아가서 2:2절을 보면, 똑같이 제사장들을 책망할 때도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가 듣지 않고 마음에 두지 않고 또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_________________________이름 3
이건 제사장의 일탈을 책망하신 말씀이죠.
제사장이 곁길로 나가는 중심에는 무엇이 있느냐?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않을 때
그들을 모든 사역들이 지금 뒤틀리고 있다는 겁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레위 제사장들이 원형이 되는
가장 모범적인 제사장으로 레위를 꼽고 있는데, 5절을 보면
그 레위의 모습을 통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레위와 세운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인데
그 첫 번째 제사장들의 모습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고 했다'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