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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시편 118:1~6)"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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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시118:1~6 2024.06.27.
여러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가 전부 몇 장인지 아시나요?
창1장부터 계시록 마지막 장까지 다 합치면 전부 1,189장입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오늘 본문이 시118편인데 118편이 딱 정중앙 장입니다.
창1장부터 시117편까지가 딱 절반인 594장이고,
또 시119~계시록 22장까지, 즉 성경 맨 끝까지가 또 594장이에요.
그러니까 시118편이 성경의 정 중앙에 있고
앞쪽에도 594장, 뒤쪽에도 594장,
그래서 118편을 포함하면 1,189장이 딱 되는 거예요.
118편이 성경 전체 중에서, '장'으로 따지면 제일 가운데 있어요.
그런 시편을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택해서, 상고하게 됐습니다.
◑1. 신앙은 '개인적'이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으로 믿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118편을 이렇게 몇 차례 반복해서 읽으면
아주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데,
118:1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그거는 진실이야.
그건 경험해보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다 아는 확실한 진실이야' 1절이 그런 거죠.
그런데 118:2절은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어다'
2절 끝에는 '할지어다'가 붙어있어요. 무슨 뜻이냐면,
1절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2절부터는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을
사방으로 다니면서 너의 입을 열어서, 그렇게 고백하고 선포하고 찬양해라...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경험했으면,
그걸 사방에 선포해야 되는 거죠.
똑같은 얘기가 3절, 4절에 계속되죠.
3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4절에도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이렇게 1절이 2, 3, 4절에서 반복되고 있어요.
그런데 아주 정교해요.
왜냐하면 '누가 그렇게 해야 되는지'를 얘기하면서, 초점이 점점 좁혀지는데
2절에 보면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선포해야 된다고 했고,
3절에 보면, 범위가 좁아집니다.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2절에서는 이스라엘 전체,
3절에서는 제사장으로 섬기는 아론의 집.. 이렇게 범위가 확 좁아졌고,
4절에서는 범위가 더 좁아집니다.
4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그렇게 선포해야 된다...
결국 어디까지 좁혀진 걸까요? 각 사람에게까지 좁혀진 겁니다.
4절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그래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선포해야 하는 범위가
이스라엘 전체에서 → 아론의 집으로 → 각 사람에게로
이렇게 범위가 좁혀지는 걸 볼 수 있어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선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4
이게 (찬양과 선포가) 나의 것이 돼야 되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시다' 이 말도 맞는 말이에요.
'나의 하나님'이 되셔야 되는 거죠.
▲118:28절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여러분, 주님은 모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찬양하는 제사장들, 즉 아론 집안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4절에 이어 그거를 반복하고 있어요.
여러분, 여러분 각자가 만나시는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소개하실 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그러셨잖아요.
아브라함에게 많이 나타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체험했죠.
그러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에요.
근데 이삭은, 하나님에 대해서 그냥 아버지한테 배우는 거예요.
아버지가 이삭을 앉혀놓고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란다' 이렇게 말씀만 했지,
이삭이 직접 체험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언제 이삭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게 됐냐 하면,
창22장에 모리아 산에 올라갔을 때, 자신이 제물이 돼서 죽어야 되는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먼저 오셔서, 여호와 이레로 숫양을 준비해 놓으신 걸 보게 되는 그 순간,
이삭이 체험했어요. '아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시구나!'
그날 그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만나 주시고,
이삭에게 체험되신 '이삭의 하나님'이 되셨어요.
그럼 언제 '야곱의 하나님'이 되셨습니까?
창28장에 야곱이 외삼촌의 집으로 도피해 갈 때, 인적 없는 빈 들판에서 잠들었는데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사다리가 내려오고,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내가 너와 함께 있고, 너를 지켜주고, 너를 돌아오게 해주고,
네가 누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했을 때,
야곱이 깨어 일어나서 베고 자던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서약을 했는데,
첫 번째 서약이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오'
그래서 그날부터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도 되셨습니다.
이제 그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 교회 성도 한 분, 한 분의 하나님이 되셔야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도 범위가 좁혀져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 아론의 집의 하나님 → 나의 하나님!
이렇게 신앙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셔야 되는 것이고,
내가 만나서 내 인생에서 동행하는 하나님이 되셔야 되는 거죠.
◑2. 하나님의 인자하심 (헤세드)
그 다음에 이제 보면 '인자하심' 얘기가, 여기 1절부터 4절까지 반복되는데,
그게 맨 끝절인 29절에 한 번 더 나와요.
118:29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 2, 3, 4절에서 '인자하심'을 얘기했는데 맨 끝절에서 '인자하심'을 또 얘기해요.
이런 걸 '수미쌍관'이라고 해요. 머리하고 꼬리가 똑같이 연결되는 거예요.
그래서 맨 앞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얘기했고,
맨 끝에 가서 결론을 맺으면서 또 '인자하심'을 얘기해서,
연결을 시키는 걸 볼 수 있어요. 중요한 주제라는 뜻이죠.
그럼 '인자하심'이 뭡니까? 하나님의 사랑인데, 헤세드 라고 그러죠.
흔히 많은 분들이 구약의 헤세드에 해당하는 건, 신약의 아가페 라고 그래요.
전폭적이고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고 영원한 언약적 사랑을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헤세드, 아가페'의 사랑이라고 그러죠.
▲그러면 헤세드의 사랑을 받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아주 희망이 없고, 보잘것 없고, 죄 가운데 거하고, 아무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버려진 존재처럼 미미한 그런 존재인데,
하나님은 어쩌자고 나 같은 죄인을, 변치 않는 사랑으로 품어주시는가? 할 때
그게 헤세드인 거예요.
여러분 기독교 복음은, 복음 그 자체가 헤세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
'가서 테스트를 해가지고 아주 탁월한 인재, 아주 깨끗한 사람, 아주 잘 생긴 사람,
훌륭한 사람을 뽑아오너라' 이렇게 하신 게 아니에요.
'인자가 온 것은 죄인을 불러 구원하기 위하여 온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 자체가 세상의 기준하고는 안 맞는 거예요.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벌을 받아야 될 대상이고, 죽어야 될 대상인데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거예요.
그러니까 복음이라는 것, 자체가 세상의 이치하고는 맞지 않는 거다... 하는 걸 알 수 있어요.
여러분 그게 헤세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느냐 하면,
그걸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뭘 베풀어주는 세상에 살고 있잖아요.
대학입학시험도, 성적이 되는 사람이 들어가고
취업도, 그 회사가 원하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 들어가고
심지어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조건의 사람인가?
그 조건을 다 따져서, 그거에 만족하면 결혼하고...
우린 그런 세상에 살다 보니까, 헤세드가 없는 세상에 사는 거예요.
대학 시험 쳐서 성적이 안 되면 어떡하지?
스펙이 모자라서 입사 시험에 못 들어가면 어떡하지?
이런 거에, 우린 너무 쩔어서 살고 있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원리는 전혀 다른 거예요.
약하기 때문에 너를 사랑한다.
죄인이기 때문에 너를 불쌍히 여긴다.
그래서 로마서 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 죄인일 때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시잖아요. 롬5:8, 10
그래서 원리 자체가 전혀 다른데, 이 헤세드를 경험하는 거죠.
▲본문 시118편을 누가 지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떤 분들은 다윗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기도 해요.
여러분 다윗도 밧세바와 범죄하고 우리아 장군을 죽이고 그랬을 때,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는 죽어마땅한 거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살려 두시나?
그거는 헤세드의 사랑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 기독교 복음은 무조건적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기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자격이 있는 자가 대접을 받는 세상의 기준을, 교회로 가지고 들어오면 안 맞는 거예요.
우리의 영적 고뇌는 어디 있느냐 하면, 세상 이치에 안 맞는 하나님의 헤세드의 사랑을
받았는데도, 우리는 일상에서 세상의 원리를 따라 자꾸 사니까,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세상의 원리가 충돌하는 거죠. 그 속엔 늘 갈등이 있어요.
그래서 '교회에 나가니까, 그 교회에서 오래 믿은 사람만 인정받더라..
교회도 보니까 좀 세상에서 잘난 사람만 알아주더라...'
이런 얘기가, 세상의 원리가 교회 안에도 들어오다 보니까, 이런 게 된 거죠.
그래서 여러분 여기 본문에 '인자하심'이 반복되어 나오는 것은
'헤세드, 언약적인 변치 않는 무조건 적인 사랑, 즉 복음의 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거를 앞에서 1~4절에서 얘기하고, 맨 마지막 절에서 다시 한 번 이야기했어요.
▲그럼 이 시118편을 지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아주 탁월하고 훌륭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이 객관적으로 볼 때,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사람 자신은,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뭐라고 얘기하냐면
'하나님 저는 희망 없는 존재입니다. 저 같은 게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죄인입니다. 사람들도 다 저를 버렸습니다.' 그런 사람이에요.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자기 자신을 낮추고, 보잘것 없다고 고백하는 그런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 이게 시118편인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이 시편을 읽어도
깊이 공감하면서, 눈물이 흐르면서 읽는 사람이 있는 거고,
그냥 맹숭맹숭 읽는 사람이 있겠죠.
누가 이런 시118편에 공감할 수 있냐 하면,
'자기 영혼에 묻은 때를 생각하면서 괴로워하는 사람,
나같이 못난 사람이 있을까? 하면서 우는 사람,
그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됐을까? 놀라며 감격하는 그런 사람'
이런 사람이 시118편을 읽으면, 감동의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우리 믿음의 선배 중에, 누가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졌구나' 이렇게 공감하게 되는 거죠.
그럴 때 시118편이, 나의 노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반복해서 나오는 '하나님의 구원'
그런데 118편을 읽으면서 여러분 혹시 펜을 가져오셨으면
제가 말씀드리는 것 중에 표시하면 좋겠는데, 아주 멋진 반복들이 많이 나와요.
1)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의 반복
6절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거기 '여호와는 내 편' 에다 밑줄 치시기 바래요.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이 말을 뒤집으면 뭐예요?
'사람들은 내 편이 아니어도 괜찮아' 그런 말이에요.
'사람들은 내 편이 아니어도, 하나님만 내 편이시면 되는 거야'
그런데 이 구절이 반복됩니다.
7절에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이렇게 6절과 7절에 두 번 나오죠.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면 두려운 게 없어요.
6절을 다시 보면, 그 뒤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제가 옛날에 꼬마였을 때, 골목에 나가서 놀 때, 힘 세고 공 잘 차는 형이 내 편이 되면,
나는 두려울 게 없는 거예요. 골을 넣어도 그 형이 넣을 거고,
기마전을 해도 그 형이 이길 거고, 나는 꽁무니만 따라다니면 되는 거잖아요.
'하나님이 내 편이시다' 이것도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7절도 똑같아요.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하나님이 내 편이기 때문에, 내가 얻어맞고 오면,
힘센 형이 나가서 이렇게 혼내 주는 것처럼 '하나님은 내 편이시다'
2) '여호와께 피하는 것' 의 반복
8절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9절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그래서 '여호와께 피하는 것' 이 반복되고 있죠.
나중에 성경 읽으실 때, 눈에 띄도록 표시해 놓으시면 좋겠어요.
3) 사람들이 '나를 에워싼다'의 반복
하나님이 내 편이시고,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피하는데,
사람들은 나를 애워싸고 돌을 던지는 거예요. 그래서 '애워싼다'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
10절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1절 '그들이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12절 '그들이 벌들처럼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 같이 타 없어졌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사람들은 다 나를 에워싸고, 돌 던지고 욕하고 비난하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 누구에게 피했죠? 하나님께 피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 편이시기 때문에!
4)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의 반복
여기 세 번 반복되는 게 또 뭐가 나옵니까?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가
10절, 11절, 12절에 반복되고 있어요. ↑
'여호와의 이름으로' 여러분, 거기에도 밑줄을 그어두시면 좋겠죠.
우리가 들고 나갈 깃발은, 여호와 하나님의 깃발인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5)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 .. 의 반복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 되시느냐 하면, 구원자가 되시는 거예요.
사람들은 우리를 넘어뜨리죠.
13절 '너는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우셨도다'
14절 끝에 보면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15절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으며'
이렇게 '구원'이 계속 나오고 있잖아요.
6) '오른손의 권능을 베푸신다'의 반복
15절 끝에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16절 끝에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신다'
오른손, 오른손의 권능 .. 이런 표현이 반복되고 있죠.
▲그래서 어떻게 되느냐 하면,
17절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내가 죽어 마땅한 상황에 있었는데, 적들이 나를 에워싸고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었는데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시고
-내가 하나님께 피하고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고, 하나님이 나에게 구원을 주시고,
오른손으로 나를 도우신 결과 어떻게 됐죠?
17절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할렐루야!
살아남는 거예요. 무수한 적들이, 나를 향해 에워싸고 나를 공격하고
그래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시고,
내가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고... 이렇게 했더니
그의 오른손으로 날 도우셔서 구원해 주심으로
죽어마땅한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는 거예요.
이제 이런 사람에게 남는 일은 뭡니까? 감격의 찬양만 남는 거죠.
◑4. 그래서 구원의 감격과 찬양만 남습니다
여러분 19~20절로 가보실까요?
19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0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이 문은 성전의 문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죽지 않고 문 앞에 도착한 거예요.
'나 도착했어요. 문 좀 열어주세요.'
예배의 문이 열리는 거죠.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19~20
여기서 '의인'은, 훌륭하고 탁월하고 재능이 많은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헤세드(인자하신 사랑)를 받아서 살아남은 사람,
하나님께 피한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을 말하는 거죠.
여러분 신약성경의 '의인'이 그런 겁니다.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할 때,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 흠이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
형편없는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을
신약성경에서 '의인'이라고 그러잖아요.
여기도 하나님의 그런 사랑을 받은 사람이
'그리로 (성전 문으로) 들어가리로다' 이렇게 말하고 있죠.
◑5. 신약의 그리스도를 예언한 시인
그러면서 그 다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놀라운 예언이 나오는 걸 볼 수 있어요.
22절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공격할 때, 이 구절을 인용하셨어요.
'너희들은 나를 버린 돌처럼 취급하지만, 내가 모퉁이 돌이 되었다.'
이거는 예수님을 우리 속에 모신 우리 각자에게도 적용되는 거죠.
사람들이 우리를 아무리 형편없다고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주님이 이제 그런 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고,
그분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기쁨이 오죠.
그래서 24절 '이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예전에 이 구절을 가지고 복음성가를 많이 불렀어요.
그 다음에 26절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으며'
이 구절을 읽으면 무슨 장면이 생각납니까?
예수님이 낙위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호산나!' 하던 그 장면이 생각나죠.
그래서 결론적으로
27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그가 우리에게 빛을 비추셨으니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28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그러면서 맨 마지막에 종결은 앞에 1~4절에서 말했던 '인자하심'으로
시의 종결을 짓는 거예요.
29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렇게 시인의 일평생이, 또한 우리의 일평생이
하나님의 인자하심, 헤세드를 의지하는 삶이 될 때,
우리는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그 인자하심을 찬송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주제
◑결론 / 성경이 다윗을 '잘 살은 인생' 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붙들었기 때문, 의지했기 때문! *동영상 26:50초부터
여러분 우리가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 하루 믿고,
오늘 어떤 일을 한번 경험한 것으로 다 얘기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신앙은 어떤 하나의 이벤트를 말하는 게 아니라,
태어나서부터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의 전체 인생을 말하는 거예요. 그 과정이.
다윗은 70년을 사셨죠. 다윗의 인생을 한번 머릿속에 쭉 그려보면
그가 태어나서 어린 아기였을 때가 있었겠죠.
그 집에 아들들이 8명이나 많으니까, 첫 아들 낳았을 때처럼 감격스럽진 않았을 거예요.
첫 아들 엘리압을 낳았을 때는, 아버지 이새가 첫 아들이라면서 굉장히 기뻐했겠죠.
그런데 여덟 번째 다윗이 태어났을 때는 '또 아들이구먼' 그냥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는 늘 목동으로 지내면서, 형들한테도 별 인정도 못 받고, 그랬던 다윗이죠.
그러다가 어느 날 사무엘이 찾아와서, 자기에게 기름 붓고
'네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했을 때, 가족들의 생각이 변했을까요?
'우리 막내 동생이 귀한 사람이구나, 하나님의 뜻이 우리 막내에게 있구나'
그러면서 온 가족이 그를 존중해줬나요? 아닙니다.
삼상 17장에 보면,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 골리앗이 등장했는데,
그때 다윗이 형님들 안부를 알기 위해서, 전쟁터로 아버지 심부름을 갔다가
골리앗과 맞닥뜨리잖아요.
그래서 다윗이 성령에 감동됐기 때문에 골리앗과 싸우려고 하니까
그 큰형이 얼마나 그를 심하게 꾸지람을 하는지...
이 엘리압이 조금만 신앙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야 했을 거예요.
'사울왕께서도 골리앗 때문에 꼼짝 못하고,
우리가 따르는 장군들도 다 골리앗 앞에 숨어 있고,
이스라엘 병사 모두가 겁에 질려 있는데,
이 철부지 내 막내 동생이 어떻게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그러지?'
그러면 조금 생각이 있는 사람 같으면,
전에 사무엘이 와서 기름을 부으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라'고 했던 거를
기억하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요?
'아,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지.. 내 동생은 왕이 될 사람이지...
왕은 백성을 적으로부터 지켜야 될 사람 아닌가!
내 동생이 그래서 나보다도 낫고, 심지어 사울보다도 낫구나. 내 동생은 뭔가 달라!'
그러면서 동생 다윗을 존중해줬어야 했는데, 마구 다윗을 야단쳤어요.
여러분, 지금 다윗이, 얼마나 주변 사람들에게 홀대 당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잖아요.
많은 수고를 했죠. 나라와 사울왕을 위해 전쟁을 많이 했고, 공도 많이 세웠는데
돌아온 것은 사울의 칼날이에요.
계속 도망다니다가, 나중에 그 아버지 집안이 전부 다 피난해서
아둘람 동굴로 찾아왔지만, 그들이 짐이 되었지. 도움이 되지는 않았어요.
평생을 그는, 그렇게 애워 쌓이듯 살았고 고통을 많이 겪었어요.
다윗의 평생에 칼이 멈추는 날이 없었고, 고단한 인생을 살았어요.
왕이 되어가지고도, 주변 나라 위에 군림하고 좀 나라가 부강해진 것 같았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마지막에는 아들까지도 그 심장을 겨누는 반역으로,
아버지 왕이 도망을 다녀야 되는 처량한 지경에 떨어지고...
그 반역을 행한 아들 압살롬은 칼에 맞아 죽고,
비극이 온 가정 안에 있었잖아요.
늘그막에 다윗이 무슨 인생에 낙이 있었겠어요?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아들들은 죽고...
이런 지경에 이르러 가지고, 다윗의 인생이 얼마나 고단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상 마지막 장에 가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잘 살았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대상31:28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저는 언젠가 그 구절을 읽으면서, 이해가 잘 안 됐어요.
왜냐하면 '이게 뭐 잘 산 인생이냐?'
'어려서부터 나이 먹어서 늙을 때까지 칼날이 떠나지 않는 삶을 살았는데
다윗이 이게 무슨 잘 사는 인생일까?'
▲그런데 왜 성경은 '그가 귀하게 살았다'고 얘기했을까요?
'그리고 그가 지은 시들을, 시편에 이렇게 많이 수록해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읽게 하시는 걸까? 잘 산다는 게 과연 뭐지?'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됐어요.
제가 그때 받은 은혜를, 전국 장로 수련회 가서 설교를 했는데,
그때 은혜를 제가 참 많이 받았어요.
왜 그러냐면 '잘 산다'는 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의 실패도 없고, 한 번도 아픈 적도 없고, 불합격하는 적도 없고,
남들에게 싫은 소리 들은 적도 없고, 재난을 만나는 적도 없고,
언제나 평안하고, 모든 게 다 잘 되고, 그래서 잘 살았다... 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여러분, 성경이 말씀하는 '잘 사는 인생'은 딱 하나더라고요.
그게 뭐냐 하면, 어떤 상황, 어떤 여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고 있으면, 그게 잘 사는 거더라고요.
그게 성경이 말하는 '잘 사는 인생'이에요.
다윗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붙들잖아요.
여러분 오늘 본문 5절을 보실까요?
118:5절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이거예요.
다윗은 일평생이 고통 중에 살아온 거예요. 일평생!
계속 실패하고, 계속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계속 위험한 지경에 처하고, 계속 몸이 아프고... (우리 각자의 삶과 비슷합니다)
여러분 시편을 읽어보면, 다윗이 중한 병을 앓으면서 지은 시들이 여러 개 있어요.
언제나 그가 건강했던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죽을 고비도 넘기고, 병도 들고, 미움도 받고, 쫓겨 다니고...
그런데 왜 다윗의 인생을 '잘 살은 인생'이라고 말하냐 하면,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붙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는 언제나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도 어떤 형편 속에서든지 하나님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울면서도 하나님을 불러야 되는 거예요.
쓰러져 있어도 하나님을 붙들어야 되는 거예요.
사람들이 다 나한테 뭐라고 해도, 아까 읽은 시편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내 편이시다' 그걸 믿어야 되는 거예요.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6
그러면서 하나님께 피해야 돼요.
내가 들고 나갈 빽 bag 이, 하나님 빽 back 밖에 없는 거예요.
그랬더니 많은 어려운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두고 총평을 해주시는 거예요.
'너 그때 스물 몇 살 때, 서른 몇 살 때 너 아주 나쁜 놈이었어.
너는 그때 정말 못된 짓 많이 했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갈 판이에요.
'내가 다 알고 있다. 네가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네가 얼마나 또 교만했는지,
너 정말 형편없을 때가 많았어' 그럼 고개를 들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마지막에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래도 너 썩 괜찮은 사람이야. 너는 그만하면 괜찮아. 너 천국으로 들어와라'
그렇게 해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 제가 너무나도 부끄럽게 살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런 헤세드, 즉 그런 인자하심을 저에게 베푸십니까?
'너 못된 짓도 했고, 부족함도 많지만, 그래도 날 떠나지는 않았거든..
언제나 네가 내 앞에 있지 않았니?
얻어 맞아도 내 앞에 있었고, 울어도 내 앞에서 울었고...
내가 그거 귀하게 여긴다. 너는 괜찮게 살은 거야'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한평생을 볼 때, 이렇게 단면을 잘라가지고 '오늘의 나'만 보면 안 돼요.
'오늘의 나'를 보면 둘 중 하나겠죠.
어떤 사람은 뭐가 다 잘 돼가지고,
'오늘의 나'를 보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난 사람같이 여겨질 때,
한없이 그는 교만해질 거예요.
반대로 '오늘의 내'가 살 희망도 없을 만큼 비참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인생은 태어나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까지, 전 생애를 펼쳐놓고 봤을 때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연약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물의 기도가 있는지...
하나님을 내 편으로 믿고 사는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게 있는지... 그게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야단도 치시고, 종아리도 때리고, 어떤 때는 싸매기도 하시고,
이렇게 우리를 이끄시다가,
맨 마지막에 가면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사람이다' 이렇게 인정해 주실 때
아마 우리 눈에 눈물이 비오듯 흐를 거예요.
여러분 여기 가만히 시제를 따라서 읽어보면,
현재형도 있고, 과거도 있고, 미래형이 여기 섞여 있어요.
집에 가셔서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읽어보세요.
자세히 읽어보시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건 전부 과거형으로 되어 있고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어다' 이거는 현재형처럼 되어 있고,
'하나님을 송축하리로다' 이런 거는 미래형, 앞으로 나의 남은 생애 동안
'하나님을 높이며 살겠습니다' 그런 얘기가 쭉 나와요.
▲에드먼드 플래그 라고 하는 사람은 작가이고, 여러 가지 글도 많이 썼는데
이 사람은 자기가 왜 유대인인지를,
자기가 유대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를, 이런 식으로 얘기해요.
「우리 유대인은 하나님 앞에서 형편없다.
하나님 앞에 범죄도 많이 했고 못된 일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유대인임을 자부심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는 적어도 4천 년 동안 그 하나님의 성호를 여전히 부르고 있다.
그리고 적어도 3천 년 이상 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그 땅을 지금도 지키면서,
거기서 지금도 그 언어를 사용하면서,
지금도 구약의 토라를 읽으면서,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잃어버리지 않고 버티고 있다.
그래서 나는 유대인인 게 자랑스럽다.
한 때 나라 잃은 백성이 돼 가지고,
긴 세월 동안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희망이 없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우리 문자를 잃어버리지 않았고,
우리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았고, 우리는 아직도 야웨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유대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 크리스천 각자가 역시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될 줄 믿습니다.
▲언젠가 제가 연세 많은 장로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어요.
그 장로님은 고신교단의 장로님이신데, 마당 발같이 많은 일을 초교파로 하셨던 분이세요.
그런데 그분이 90세가 넘어가지고, 사람들을 모아서 뭔가 감사하는 모임을 가졌어요.
근데 저보고 '목사님이 좀 꼭 와주면 좋겠다' 그래서 갔어요.
제가 갔더니 자손들도 수가 굉장히 많아요. 증손자, 증손녀까지 자손이 굉장히 많은데,
그분이 그 노구에 눈물을 흘리시면서
'이 나이가 되기까지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고,
두 번째로는 여기 있는 내 가족들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을 통해 행복했고,
오늘 제가 마음을 다해서 초청한,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저의 인생에 힘이 되어주셔서
제가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면서, 당신이 저 경상도 어느 산골 구석에서 태어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겪어왔던 인생의 이야기를 조금 얘기하셨어요.
그런데 우리가 몰랐던... 그분의 인생에 고단했던 그런 과거가 있었는지.. 저는 몰랐어요.
저는 그분이 아주 다복한 집안에서 부유하게 살아오신 줄 알았는데...
전혀 외모나 말씀에 그런 게 안 느껴지거든요.
언제나 여유롭고, 모든 게 다 갖춰진 분처럼 보였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어떻게 살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그분은 그 얘기를... 한 15분 동안에, 간단하지만 가슴에 파고들도록 얘기하셨어요.
그분의 마지막 얘기는 딱 하나였어요.
꼭 시편 118편의 시인이 살아온 것 같은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오늘 이게 내 생애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런 모임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겁니다!'
그런데 그 눈에 눈물이 쭉 흐르시더라고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마디는 이것뿐입니다!'
몇 해 전에 그 장로님이 돌아가셨어요. 장수하시고 하늘나라에 가셨는데,
여러분 저는 때가 되면, 언젠가 우리도 인생의 끝자락에 설 때,
뭐 꼭 인생의 끝자락이 아니더라도 올 해 연말을 맞이할 때,
우리도 시편 118편의 주인공 시인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영적 정서를 가지면 좋겠어요.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그게 서론이고, 그게 결론인 인생! *118:1, 29절
'하나님은 내 편이시고, 나는 하나님께 피할 것이고,
하나님 오른손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많은 인생들이 나를 애워싸고, 애워싸고, 또 애워싸고...
내가 거기서 다 없어졌어야 되는데,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오늘도 내가 하나님을 송축하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호와의 인자심이 영원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12월 31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 중간에 많은 잘못도 하고 ,실패도 하고, 아픔도 있고,
1년을 사는 동안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더라도,
365일 전체를 쫙 펼쳐놓고 보면, 단 하나의 이유,
내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고 계셨다는 그 하나의 이유로 인해서
2024년도 우리는 '잘 살은 한 해'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거예요.
여러분, 작은 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마시고,
인생을 전체로 보면서, 아무리 극복하기 어려운 난제를 만나도
하나님 떠나지 말아야 됩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불러야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주제
여러분, 집에 가셔서 오늘 본문 시118편을 다섯 번만 정독해 보세요.
성경 전체 중에 맨 가운데 있는 이 118편을, 펜으로 줄을 그으시며 정독해서 읽어보세요.
그러면 놀라운 고백이라는 걸 우리가 알 수 있을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118편의 시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목사님이 '왜 118편을 누가 지었는지, 성경에 표시가 안 돼 있을까?'
그것은 '읽는 모든 자가 118편의 시인이 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아주 멋진 얘기더라고요. 여러분 우리도 118편의 시인이 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