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 계 1:1-16 | - YouTube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계1:1~16 2025.02.09.
◑도입
올 해로 교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이합니다.
이 척박한 복음의 불모지인 이 부산 땅에, 수영로교회가 세워진 지 50년을 맞았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이 너무 크고,
또 선교 공동체로서 많은 선교사들을 섬기고,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아시아권 등 세계 곳곳에
우리 선교사들과 우리의 선교가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또 해마다 단기 선교에 많은 분들이 참여하시고,
그야말로 '선교 공동체'로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여는 우리 주일학교도 지금 참 놀랍게 부흥이 되고 있습니다.
금요 철야가 되면 중고등부 학생들이 3, 4층에 앉아 있는데
설교를 마치면 (기도하러 강단 앞에) 이렇게 내려옵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이 금요 철야 때, 여기에 얼마나 많이 (기도하러) 서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50년에 역사를 지나면서, 이제 또 다른 50년을 바라보면서
이 청소년들을 바라볼 때 가슴에 뭉클함이 있습니다.
이제 이 세대들이 자라서, 장차 수영로교회를 맡아 또 앞으로 이끌어갈 때,
그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져 갈 것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는 거죠.
여러분, 교회가 한 50년 지나면 대부분의 교회는 쇠퇴합니다.
한 50년쯤 되면, 마치 사람이 연로해지는 것처럼
역사 속에 여러 가지 전통과 제도에 묶여서, 어떤 생기를 잃어버리고 교회가 쇠락하죠.
그리고 한 100년이 되면 교회가 거의 문을 닫습니다.
▲오늘 장로님 기도에서도 토마스 선교사 얘기가 나왔지만
토마스 선교사를 파송했던 그 교회는, 지금 For Sale, 부동산 매물로 나와있다고 합니다.
제가 호주에 있을 때도 보면, 역사가 오래된 교회들을 보면, For Sale 팻말이 붙어 있어요.
그 교회 건물을 사서, 술집으로 운영하기도 하고 합니다.
이렇게 옛 교회는 쇠락하여 사라지고, 또 새로운 교회가 개척되어 일어나는
역사의 싸이클이 있지요.
'앞으로 우리 교회가 어떻게, 어디로 가야 될 것인가?'
이 질문을 계속 우리가 해야 됩니다.
'더 영광스러워져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답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성경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들여다보면서, 성경이 교회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우리가 이것에 계속 관심을 가져야 되죠.
◑계시록은 '교회'에 주시는 말씀,
에베소서와 더불어 '교회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작년에 제가 사도행전을 강의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생성 과정, 교회가 어떻게 출발했는가?
또 교회가 어떻게 발전되어져 갔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론에 대해서 가장 탁월하게 기록한 책은 에베소서입니다.
바울의 옥중 서신이라고 하는 이 에베소서가, 교회론의 텍스트(본 교재)입니다.
제가 에베소서를 굉장히 사랑하고,
또 신학자들이 에베소서를 가지고 많은 설교들을 했는데요.
제가 이미 오래 전에 에베소서를 강해한 적이 있습니다.
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또 다른 메시지가 어디에 있느냐면,
요한계시록에 있습니다.
계시록은 주님이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의 주신 편지입니다.
그 안에 교회를 향한 칭찬도 있고, 또 책망도 있고, 권면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직접 교회에 대해서 하신 말씀은,
요한계시록에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교회에 대해서 한 말(바울서신, 에베소서)도 굉장히 중요하고,
또 사도행전에 누가가 기록한 것도 역사적인 의미가 있지만, *어떤 면에서 간접
어떤 면에서 '예수님이 직접 교회에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에 대해서 알려고 하면
이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봐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앞으로 몇 주에 걸쳐서
이 소아시아 7개를 살펴보는 것은
설립 50주년 맞은 우리 교회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자 교회란 무엇인가요? 아주 중요한 주제죠.
큰 주제이고, 거대 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코 작은 주제도 아니고, 쉬운 주제도 아닙니다.
가끔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는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말하곤 하죠. 논쟁도 합니다.
근데 우리끼리 말해 가지고는 답이 안 나옵니다.
교회는, 인간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출발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이디어죠.
그래서 교회의 존재의 의미와, 또 존재 이유와, 목적과 가치는
철저히 성경으로부터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주요 관심은 교회입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편지를 보낸, 주님의 주된 관심은 교회에 있었습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세상에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중대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존재 목적, 그 이유,
이것은 세상에 조직과 기관과 전혀 다른, 구별된 것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세상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죠.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살펴보기 전에,
우리가 서론격으로 1장을 잠시 가볍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사도 요한은 90세에 가량의 나이에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으로부터 환상을 받았는데, 그게 요한계시록입니다.
1:1~2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제일 첫 번째 나오는 문구를 잘 보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엄격히 말하면 요한계시록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록' 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시작하는 책은 없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좀 다른데요.
막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하려고 하는 핵심적인 주제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에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전체로 누구에게 집중하고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은 주님의 직접 사도 요한에게 들려주신 말씀이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주님이 보여주시고 알게 하신 것'을 기록한 것이죠.
특별히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사랑했던 제자예요. 그리고 요한도 그걸 알고 있었죠.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도, 그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가 있었고, 모든 사도들이 죽고(순교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된 상태에서, 주님으로부터 이 계시를 받습니다.
▲이 계시를 받을 때는 고난 속에 있었습니다.
유배자로, 밧모 섬에 갇혀 있는 절망적인 상태,
그때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그리고 하늘의 계시가 임한 겁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계시록은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이 아니고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신 그 메시지를 통하여
그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또 소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격려를 하는 말씀들이 이 안에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음성이 들리고
주님이 우리의 삶에 계시를 보여주시면,
우리 삶에 소망이 넘치고, 살아갈 그런 의욕이 일어납니다.
이 편지를 기록한 목적이 3절에 있는데요.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자 요한계시록은 두려움을 주는 그런 책이 아니고, 어려운 책도 아닙니다.
계시록을 주신 목적은,
'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알려주는 거죠.
여러분 계시록을 읽다 보면, 굉장한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책망의 말씀이 있습니다.
앞으로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살펴볼 때에, *계2~3장
굉장히 따끔한, 뼈아픈 그런 메시지들이 숨어 있어요.
자, 그 말씀들을 우리가 피하면 안 됩니다. 피하면 안 되고, 그냥 지나치면 안 돼요.
그 말씀을 읽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것을 기록한 대로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그랬는데,
어떻게 읽어야 되죠? 내가 읽고 싶은 것만 읽으면 안 되는 겁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죠. 내가 듣고 싶은 설교만 들으려고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어쩌면 '듣고 싶지 않은 그 말씀을 들어야' 돼요. 그래야 내가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말씀을든지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읽는 자' ... 읽는다 는게 굉장히 큰 도전이 되는 겁니다.
'내가 이 말씀을 읽기 전에는 내가 몰랐는데,
읽는 동안에, '읽는 자'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게 있거든요.
듣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게 있어요.
어떤 때는 강력하게 경고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피하지 말라는 거예요.
또한 '그 말씀을 지키면 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자, 요한계시록의 7교회를 살펴볼 때, 가끔 너무 어마어마해서
우리 몸이 떨릴 때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다음 주일에 안 나오시면 안 되고, 나오셔야 돼요.
그래서 계속 들으셔야 돼요. 그 말씀을 들어야 우리가 살길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수신자는 누구입니까?
1:4절에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1:4b
계시록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에 심하게 핍박을 받고 있던 성도들에게,
격려와 동시에 책망이 포함되어 있어요.
여러분, 이 계시록은 박해기에 주어진 말씀이에요.
로마의 박해를 받는 시기에 요한에게 주어졌다는 거예요. 주1)
벌써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지 않습니까?
계시록은, 그 어려운 시기에 있는, 믿음을 지켜가는 성도들에게.. 용기를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신앙생활을 할 때, 너무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 계시면
요한계시록을 읽으셔야 돼요.
그러면 이 계시록 속에서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고, 격려를 줍니다.
그래서 이 편지 안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풍부한 이미지들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그런 이미지들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아주 오래 기억되도록, 잊지 않도록
선명한 어떤 그림을 통하여 우리에게 위로를 해 주십니다.
▲여러분, 기독교 역사를 보면 고난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오늘도 역시, 핍박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찾아오는 고난들이 있어요.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떻게 보면 전투와 같습니다. 매일 마귀의 공격이 있습니다.
때로는 시험을 우리는 치러야 합니다.
우리는 넘어지고 연약하여 쓰러질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의심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요한계시록 그리스도의 승리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그 키는 우리에게 있지 않고,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오죠.
그리스도가 이미 승리를 거두셨기 때문에, 그 그리스도의 속한 자에게도
그리스도가 경험했던 그 승리를, 우리에게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랬어요.
복음은, 고난을 지나오면서 더 강해지고, 더 빠르게 확대되어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1:4~ 8절에, 그리스도에 대한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이는 짧은 구절이지만 어마어마한 내용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성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고,
그리고 신학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구원론과 종말론들이 들어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셨는지?
천국과 지옥이 무엇인지?
교회가 세상에 세워진 목적이 무엇인지?
인류의 시작과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
에 대한 메시지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요한계시록의 초점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예요.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게 없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게 왜 중요합니까?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운명이 결정됩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사람에 의해, 교회가 결정되는게 아닙니다.
교회가 어떤 곳인가를 알려고 하면,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알아야 돼요.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모르면,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자칫하면 교회가 인간들의 산물이 되거나, 혹은 시대의 산물이 되기가 쉬워요.
▲여러분, 지난 역사를 보면, 교회는 늘 다양한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교회가 본질을 놓치고 곁길로 빠질 때가 많았습니다.
교회가 시대 속에 불안한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하고, 흔들릴 때가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연합이라는 미명하에 본질이 희석되고,
혼합된 종교 다원주의의 유혹에 빠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 시대의 포로가 될 때가 많았어요.
변화무쌍한 세상에 한가운데서, 교회는 존재의 목적을 읽지 않고
본연의 모습을 지켜가야 하는데, 그러려고 하면 교회의 주인이 누구이신지를 알아야 돼요.
이것이 교회의 본질의 싸움인 것입니다.
시대가 변해도 본질을 붙들고 지켜가는 교회여야, 이 세상에 소망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일곱 교회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계셔요.
교회를 교회 되게 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모여도,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고요.
아무리 우리가 위대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그 안에 계시지 않으면,
그 일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직접 메시지를 주셨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편지를 주신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그분은 오늘 이 본문에 '온 땅과 왕들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시다.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끄시고,
제사장 삼으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자와 마지막 자입니다.
'역사의 시작과 끝'이라는 뜻이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역사를 초월하여 역사하시고
역사의 시작도 끝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거죠.
여러분 우리의 삶에, 어떤 부분에 '끝'이라고 우리가 말할 때가 있지만,
그 끝은 우리의 끝이라고 해서 끝이 오는게 아닙니다.
역사든, 교회든, 개인의 운명이든,
끝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줄로 믿습니다.
'모두가 끝이났다' 해도 끝이 아니에요.
여러분 십자가가 끝입니까? 아니죠. 부활이 왔잖아요.
그 부활이 끝입니까? 아니요. 승천을 하셨습니다.
승천이 끝입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영원히 다스리시는 왕으로 존재하시는
인류의 역사의 주권자이십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과거의 역사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의 한 가운데 일하시고,
역사의 마지막 클로징도 그분이 하실 것입니다.
◑일곱 교회
자 요한은 성령의 감동 가운데, 큰 음성을 하늘로부터 듣습니다. 1:10
근데 그 음성이 바로 '일곱 교회를 향한 편지'였다는 거예요. 1:11
그 일곱 교회가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본문 1:10~11절에 보면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여러분, 이것을 다시 20절에서도 언급하죠.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여러분, 요한계시록은 숫자가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숫자 때문에 이단들이 이걸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하는데
이 '일곱'이라는 숫자가 굉장히 반복해서 나와요.
'일곱'은 신성한 완전수입니다.
그래서 '일곱 교회'는 아시아에 있는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로 봅니다.
그리고 이 교회들은 실재 했던 교회예요.
현재는 투르키예의 에베소 근방 약 200킬로 안에 산재해 있는, 실존했던 교회들입니다.
*에베소의 현재 지명은 셀주크 (이즈미르 근교 70킬로 거리)
그리고 일곱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대표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모든 시대 모든 교회를 향한 메시지일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을 하신다는 거죠.
2천 년 소아시아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것입니다.
특히 일곱 금촛대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
일곱 별은 그 교회의 지도자들이죠. 오늘날의 목회자입니다.
앞으로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을, 다음 주부터 2장부터 3장까지
우리가 구체적으로 다룰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일곱 교회에 대해서 하신 그 말씀이
오늘 우리도 신중하게 들어야 될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상의 교회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 120명이 마가의 다락방에 있다가,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셔서 그들이 성령의 불을 받고, 교회가 출발된 거잖아요.
근데 AD 90년 경부터 이미 교회 안에 타락이 시작되고, 배교가 일어나고
때로는 교회들이 쇠퇴가 시작된 걸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놀라운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교회의 변질은 생각보다 빨리 시작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교회는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곁길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신앙생활이 얼마나 빨리 변질될 수 있는가를,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어요.
여러분, 처음 신앙 (첫 사랑)을 지금도 유지하고 계세요?
여러분, 하나님이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신 환상은 놀랍습니다.
왜 놀라운가요? 주님이 지상의 교회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계신다는 거예요.
너무도 훤히 교회를 들여다 보고 계신다는 겁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주님은 지상의 교회를 결코 잊지 아니하시고,
불꽃 같은 눈동자로 바라보고 계시고, 지켜보고 계시고, 돌보고 계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의 영광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의 숫자가 많다거나,
그 교회에 유력한 사람이 나오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서울에 큰 교회 목사님들을 가끔 만날 기회가 있는데
그 분들이 은근히 '우리 교회에 누가 나온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서 제 기를 약간 죽이는 경우가 있어요. 하하하
그런 것과 전혀 상관이 없어요. 교회의 영광은 그런 것과 전혀 상관이 없어요.
교회의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그 교회를 붙들고 계실 때,
그리스도가 함께하는 교회는, 찬란하게 빛이 날 수 있어요.
교회의 존재감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나는 겁니다.
교회당 건물을 아무리 크리스탈로 장식을 해도,
그걸로는 교회의 영광을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창고와 같이 허름에도, 그곳에 그리스도가 임재해 계신다면,
교회의 영광은 찬란하게 빛이 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광스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덧붙여 영광스럽게 보이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어요.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영광을, 다른 것으로는 감출 수가 없어요.
그분이 눈부신 분이고, 그분이 가지신 능력과 영광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그런 교회와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신자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와 신자와는 뗄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입니다. 不可分離
예수를 비밀스럽게 믿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죠.
어떻게 내가 예수와 상관없는 자처럼 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됨의 영광은, 그리스도 때문이죠.
신자가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열등감을 가져야 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주님이 세우신 교회라면 (건강한) 자존심을 가져야 합니다.
숫자나 규모에 의해 열등감을 가지면 안 됩니다.
작은 교회라도, 세상 속에 그 존재감을 당당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신자는 어디에서나 당당해야 돼요. 다른 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당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완벽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체만 보면 영광스러울게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시선을 고정해야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는 말이 그 말인 것이죠. 롬13:14
◑자, 계1장을 바라보면 <그리스도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요?
계1:13~16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위 구절은, 신구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장 잘 묘사해주는 구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상징적이지만요.
여러분 주님의 모습이 상상이 되십니까? 누가 감히 그분 앞에 설 수가 있겠습니까?
장차 그분의 힘과 위엄과 승리자로 오실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계세요.
일곱 금촛대(교회) 사이를 거니시고 계시는데, 그 촛대와 별은 무엇입니까?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에요.
일곱 별은, 일곱 교회 사자들이라 했습니다. :20
여기 '사자 使者'라는 말은 라이언이 아닙니다. 메신저입니다.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옵니다. :16
말씀의 양면성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은, 우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이 메시지는 매우 강렬합니다!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은 두려운 일이 아니고, 영광입니다.
(*최후의 심판 자리에서, 의로운 자들은 상급을 받을 것이므로,
또한 그들의 대적자들에게 하나님은 의로운 심판을 베푸실 것이므로)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심판은, 재앙을 가져오는 두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고' :16
그 주님의 얼굴을 누가 감히 쳐다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말씀을 읽을 때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사도요한은 그 주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쓰러집니다.
▲17절에 '내가 볼 때 그의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7b
쓰러져 있는 요한에게 주님의 오른손이 얹어져요.
이 주님의 터치는 소망을 의미합니다. '내가 너를 다시 일으켜 세워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여러분, 여기서 일곱 촛대나 별은, 모두 빛을 드러내는 기능을 감당합니다.
촛대, 별.. 모두 다 빛이 나는 거죠.
여러분, 교회의 존재의 목적, 그리스도인의 존재의 목적은
빛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리스도가 빛이십니다. ☞ <빛>
주님은 지상의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당신의 빛을 드러내십니다.
교회가 빛이 되지 못하면 존재할 이유가 없죠.
교회가 역사 속에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세상이 어두워지는 겁니다.
진리의 빛이 가리워지자, 중세의 교회는 흑암에 갇혀 버렸습니다.
교회는, 세상이 길을 잃어버렸을 때, 빛이 되어야 합니다.
지상의 교회에게 주어진 사명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교회 안에서 말씀을 맡아 전하는 역할도 '별'로 비유하는 이유는,
밤하늘에 '빛'이 나는 별!
이 편지는 일곱 교회 사자들에게 쓴 편지요.
일곱 지역 교회, 오늘날의 목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2)
여러분, '이 별들이 그리스도의 오른 손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걷는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여러분, 주님의 교회는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여도,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그것은, 교회는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특정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게 교회에요.
여러분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
'우리 교회, 우리 교회, 우리 교회' 말하는데, 우리가 조심해서 써야 됩니다.
엄격히 말하면 '우리 교회'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교인들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교회의 권리는 교인들에게 있는게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그 누구도 교회에 관한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로 인해 영광스럽지, 그리스도가 교회를 떠나 버리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진정한 교회는,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그리스도에 의한, 그리스도의 교회! *of the, by the, for the,
교회의 시작도 그리스도요, 교회의 마침도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지상의 교회는, 천상의 신랑을 맞이하는 준비를 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과 활동들이, 그분과 연관되어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우리의 마음대로 다룰 수가 없습니다.
교회의 존폐는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여러분, 계1장을 자세히 보면, 계속해서 눈에 띄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오른손'이라는 것입니다. 그 분이 금촛대 사이에 계시면서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십니다' 1:20, 2:1
여러분, 성경에 '하나님의 오른손'은, 하나님의 능력과 심판을 의미합니다.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시는 주님'
여러분, '주님이 일곱 별과 금촛대 사이를 지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2:1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시다. 교회를 주님이 친히 관여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걸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은, 역사 속에 교회에 아무리 위태로운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교회는 끝까지 주님이 책임지시고 붙들고 계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역사 속에 교회는 위태로울 때가 많았습니다.
외부적으로 핍박이 일어나, 사라질 것 같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초대교회가 그랬습니다. 여러분 황제 숭배로 인하여
기독교에 대한 혹독한 핍박을 통하여, 거의 기독교가 사라질 뻔한,
교회가 사라질 뻔한 그런 때를 맞았었습니다.
교회의 운명이 아슬아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 밧모 섬에 지금 사도 요한마저도 유배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더 이상 교회가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지난 2천년 동안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전진되고 확장되어 왔습니다.
주님이 일곱 교회를 오른 손에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1
로마의 황제가 교회를 흔들어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를 향한 어떤 대적자들이 일어나도,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1966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문화혁명으로 인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중국의 교회는 끝이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교회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었습니다.
반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핍박기를 한참 통과하고 난 다음에,
지하 교회로 퍼져나간 중국 지하교회 성도들이 잠정적 집계로는 1억이 넘습니다.
여러분! 역사를 통해 증명한 것 중에 하나는
'교회는 핍박을 통하여 문을 닫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박해기에 도리어 기독교는 살아납니다.
도리어 교회는 내부적으로 평안할 때... 위험합니다. 요즘 같은 때이죠.
교회의 외부의 힘이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를 붙들고 계시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다 하는 것 같지만,
정말 교회를 지키시고 운행하시고 열심을 다하시는 분은 우리 주님,
그 주님이 계셨기에, 2000년의 역사에 교회는 지금도 온 세계에 확장되고 있습니다.
▲ '오른손으로 일곱 별과 금 촛대(교회)를 붙잡고 계신다'는 것은 2:1
하나님의 사역자, 특히 말씀의 종들을 붙들고 계신다는 뜻이죠.
여러분, 고전1:21절을 보면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더니'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 여기서 '전도'는 오늘날의 설교를 의미합니다. *케뤼그마
설교 preaching 라는 미련한 방식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오셨다는 겁니다.
오늘날 같이 미디어가 발달하고, 흥미로운 영상물들이 쏟아지는 이런 시대 속에,
아마 Chatgpt 시대가 오고, 지금 뭐 별 것들이 막 일어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은, '설교'라는 이런 미련한 방식을 통하여 계속 이루어
가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을 맡은 종들을 통하여 교회를 일으켜 세우시고 계십니다.
2000년전과 동일한 방식이에요. 대체 불가예요.
교회의 미래 운명이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이 '별들'(지도자들)을 오른손으로 붙잡고 계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
이런 설교와 전도와 같은 방식이라는 거죠.
교회가 촛대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말씀의 종들이 필요합니다.
하늘의 비밀을 백성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이 메신저들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메신저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교회를 세워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별들'을 오른손으로 붙들고 계신다는 거예요.
▲일곱 편지를 보면, 각 교회 성도들이 매일의 삶에 부딪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일곱 촛대, 곧 7교회 사이를 거니시는 그 주님은
교회 바깥에 우두커니 서 계시는 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 매일의 삶 속에 관여하시고, 도우시고, 승리로 이끌어 주시고,
결국 그 주님의 오른손에 의해서, 우리의 삶과 교회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여러분 요한이 처한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암울하고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와 주의 종들을 오른 손에 붙잡고 계시는 주님
그래서 19절에 보니까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그 기록한 것이 뭐죠. 그게 20절의 말씀입니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주2)
앞으로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 주에 걸쳐서 우리가 다루어 보게 될 텐데요.
'일곱 별을 손으로 붙잡으시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부활의 주님이
교회를 바라보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그 말씀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이 손 안에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만이 붙잡혀 있는게 아니라,
지상의 모든 교회가 주님의 손에 붙잡혀 있습니다.
한 교파만이 아닙니다. 지금도 두루 다니시며 모든 교회를 통치하시는 하나님,
우리 교회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달려가는 교회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계시록은 역사적으로 매우 암울하고 어두운 시기에 기록되었습니다.
어둠의 힘이 지배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 천국의 보좌에 계신 주님,
요한계시록의 그 왕좌의 계신 분,
모든 임금을 다스리시는 그분은 누구십니까?
이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린 양 예수'라는 거죠.
어린 양은 매우 연약하고 힘이 없는 짐승의 상징입니다.
그러나이 목베임을 당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하십니다. *개선의 노래
그 승리는 우리에 의해서가 아니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역) 교회에 관심이 많으시고, 교회가 세상의 유일한 대안이요, 소망이고,
그 교회가 살면 가정이 살고, 그 사회가 살고, 세상이 살아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마지막 시대를 살면서, 오늘 우리의 신앙, 우리의 현재의 신앙을
이제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우리는 주님 앞에 서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우리가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고,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가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세상을 바라보기 전에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밧모 섬에 유배된 요한에게, 하늘이 열려 하늘의 음성이 들려지고
환상이 보여진 것은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시대도 참으로 어둡고 혼란한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여러분들이 영안이 열려서
하늘의 비밀을 깨닫는 은혜가 있다면,
이 어두운 시대, 절망의 시대에도 넉넉히 승리하며 살 수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요한계시록의 7교회를 살펴보는 가운데,
오늘 여러분들의 영안이 열리고, 귀가 열려서
오늘 이 시대에 우리의 신앙을 섬세하게 민감하게 살펴보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돌이킬 것은 돌이키고, 결단하고...
또 주님의 그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이 험난한 믿음의 길에서
끝까지 완주하고 승리하는...
그래서 천상의 노래를 부르는, 그런 신앙의 완주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1) 신약성경에 교회가 받은 박해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가 받은 박해'는, 주로 유대인들에 의한 박해였죠.
유대종교 당국자들이 신생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했고,
그 박해를 피해, 제자들이 사마리아와 안디옥까지 흩어졌는데,
역시 유대인과 유대교에 의한 박해였습니다.
그 후로 사도바울이 전도여행 중에 박해를 받았는데,
역시 유대인과 유대교에 의한 박해였습니다.
아직 로마 당국에 의한 박해는, 시작되지 않은 거죠.
로마 당국에 의한 박해는, AD 64년에 '로마시 대화재' 때문에 기인(시작)합니다.
이 화재의 원인을, 당시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워버렸습니다.
그래서 약 AD 67년 경에,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교회의 대표로서 사형(순교)당하죠.
계시록의 기록시기를 AD 90년 경으로 볼 때,
AD 64년 이후의 박해가... 그때까지 계속된 거고,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AD 313년까지 계속 지속 되죠.
AD 64년 '로마시 대화재'를 분수령으로,
그 이전에 '유대교, 유대인에 의한 핍박'에서,
이제는 글로벌하게 '로마 제국에 의한 핍박'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주2) '일곱 별은 일곱 교회 사자요' :20
대부분 주석가들은, 일곱 '별'을 일곱 교회의 '지도자'로 해석하는데 일치합니다.
헬라어는 앙헬로-앙헬로이 angel, angels 이죠.
영어성경들은 다 의역해서 messengers로 번역했습니다. 직역은 angels
그럼 그냥 쉽게, 성경에 pastors (목회자들), church leaders (지도자들) 이렇게 써 놨으면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이해하기가 쉽겠습니까?
왜 'angels' 이라고 성경에 써 놔서, 우리가 '이게 뭘까?' 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당시는 박해 시기입니다. 그래서 대놓고 '목사들, 지도자들, 사도들'이라고 쓰지 못하는 거죠.
대놓고 그렇게 쓰면, 이 편지가 불온문서로 간주되고,
또 목사들, 지도자들도 곤욕을 치르겠죠.
그래서 빙 둘러서 '천사들, angels, 앙헬로이' 라고 쓴 것으로 추측합니다.
'천사들' 즉 '영적 존재들' 에게 써 보낸 편지다... 하면 문서 검열에서 빠져나갈 수 있죠.
또 이런 사상은 '수호 천사' 개념과 관련이 있습니다.
각 개인이나, 각 교회에는 '수호 천사(담당 천사)'가 있어서, 그들을 보호한다는 신앙이
그때에도 있었나 봅니다. 신약에 수호천사에 대한 개념은 마18:10절에 잠깐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