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하겠는가 결단하겠는가? (사무엘상 11:1-15) 2025.02.16 - YouTube
◈타협하겠는가 결단하겠는가? 삼상11:1~15 2025.02.16. 사무엘상17강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또 시대를 향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울이 지휘한 첫 번째 큰 전쟁에서, 대승을 거둠으로 인해서
왕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내용입니다.
◑삼상11:1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하니'
지난 주 삼상10장에서 우리가 본 것은,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아놓고 사울을 왕으로 추대,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완전히 양분됐죠. 사울의 지지파와 반대파로 나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오늘 본문에, 암몬 사람들이 침략을 해 왔어요.
지도에 보면, 이들은 요단강 동편에 자리를 잡은 롯의 후손인데,
랍바 성이, 이스라엘과 암몬의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랍바 성은 고대로부터 굉장히 강한 성이었습니다.
랍바를 그들의 수도로 삼고 자리를 잡고 있는데, *후에 다윗이 랍바를 빼앗죠. 삼하12:29
암몬은 거기서 북쪽으로 50KM 떨어져 있는
므낫세 지파의 분배받은 땅 길르앗 야베스를 공격을 하기 위해서 다가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사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사사시대 360년을 지난 상태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 동안, 끊임없이 지역적인 분쟁을 경험합니다.
요단강 서편에서는 주로 블레셋,
요단 동편에서는 남쪽부터 에돔과, 모압과, 암몬과, 아람 사람들과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어요.
그 중에 암몬은, 사사시대에 길르앗, 똑같은 지역을 공격을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여덟 번째 사사였던 입다 라는 사람이 일어나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되죠.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거의 100년 만에 전열을 다시 가다듬고
복수를 하겠다고 다시 올라온 것이었어요.
▲그런데 본문에 보면, 암몬 왕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둘러진치고
이제라도 삼킬 듯이 위협을 합니다.
그런데 길르앗 사람들의 반응이 좀 이상한 거예요.
1백년 전에는 싸울 의지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암몬이 그렇게 포위를 하자마자, 전투에 대한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백기투항을 해버렸어요.
'우리와 언약하자. 그러면 우리가 암몬을 섬기겠다' :1
그러니 전투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항복할 테니까, 조공도 바치겠고,
당신을 주군으로 섬기겠다...' 이런 얘기예요.
이 길르앗 사람들이, 어떻게 하다가 그 입다의 영적인 야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는가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므낫세 반 지파
여러분 사방으로 세상에 둘러싸여서 살다 보면,
이 세속주의의 물결이 어마어마하게 압박을 가하잖아요.
소돔성에 살았던 롯도 굉장히 큰 어려움을 당했다고 베드로 사도가 말씀합니다.
벧후2:7~8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베드로는 상당히 롯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얘기했지만,
저는 롯에게 별로 우호적이지 않아요.
왜 그러냐면 '아니 그렇게 힘들면 소돔 성에서 빠져나오면 되는데,
거기가 화려하고 부유하니까 거기 눌러서 계속 살았거든요.
천사가 나오라고 그러는데도, 나오기를 주저하잖아요.
여러분 그러니까 '이게 주저할 문제냐, 아니면 결단할 문제냐?' *제목
초대교회들도, 오늘날의 교회가 세속의 도시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초대교회들은 더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여러 서신서를 보면 얼추 다 비슷한데, 예를 들면, 에베소 교회를 보면
엡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이 구절을 보시면, 에베소는 아시아의 최대 도시였습니다.
아르테미스(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상당히 성적으로 타락해 있는 도시였고,
로마의 5대 도시 중에 하나였어요.
'에베소라는 세속의 도시 안에 여러분 (제자들)이 살고 있다.'
1:1절에, 그렇게 이야기를 분명히 포지셔닝을 해놓고 나서,
그리고 뭐라고 표현을 하냐면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다'
여러분, 운동 경기에서도 포지셔닝이 중요하듯이
여러분이 사회생활 할 때도 '자기 자신의 포지셔닝을 어떻게 하느냐?'
그 포지셔닝이 여러분의 아이덴티티를 좌우하는 것이거든요.
실제 지리적으로는 '에베소' 라는 도시 안에 있지만,
'아닙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이야기를 한 거예요.
▲어제 토요일 새벽에 김지연 약사께서 오셔서 '성경적 성교육'에 대해서 강의를
개론적으로 해주셨어요.
이 한 가지 이슈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정말 끝까지 치밀하게 파고들어서,
성경적이고 신앙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는 게 정말 귀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 지금 세속주의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잖아요.
그럼 우리는 주저하겠는가요 or 결단하겠는가요?
'시대가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이렇게 포기하거나 타협을 하겠는가요?
아니면 결단을 하겠는가요?
일본에서 2011.03.11. 쓰나미가 났을 때, 정말 일본에 엄청난 재난 재해였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온누리교회에 섬길 때인데,
온누리교회에서 복구팀을 보내면 좋겠다...
그래서 청년들을 한 열댓 명을 모았어요.
그런데 부모님들이 걱정을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원자력 방사능 피폭 지역에 가면 어떻하느냐?'
제가 그 당시 대청 본부장이었는데, *대학-청년부
'그러면 제가 인솔에서 가겠습니다'
'그리고 탐지 기계를 제 목에 걸고 가겠습니다'
어느 지역에 가면 지금 안전한지, 안전한지 못 한지... 기계가 알려 주잖아요.
저희가 안전한 지역으로만 다녔는데, 동일본의 해안 마을들을 가보니까
광범위하게 완전히 초토화 되어 있었어요. 엉망이에요.
두 가지를 제가 충격적인 걸 알게 됐는데,
-한 가지는 뭐냐면, 그 마을을 청소 정돈하고, 다시 거주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볼 때,
똑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또 피해가 올까요. 안 올까요? (옵니다)
해안에 굉장히 높은 방파제도 세우고, 여러 가지 방어 시설들을 설치했지만,
여러분 자연의 대규모 재난 재해를 인간이 감당할 힘이 없거든요.
그런데 그 자리에, 마을을 재건해서 또 세우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도시들, 마을들을 다니면서... 또 놀라운 얘기를 하나 들었어요.
311 쓰나미 때, 후쿠시마 해안 마을들 중에서 피해를 비껴나간 곳이 없었는데,
딱 한 마을이 비껴나갔더라고요. 이유는 뭐냐면 선조들이 쓰나미를 경험한 거예요.
그리고는 후손들에게 '너희는 아무리 불편해도 해안에 살지 마라'
그래서 이 사람들이 어업을 주업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높은 지대에 산 거예요. 당연히 그들은 피해를 보지 않았죠.
여러분, '어쩔 수 없다고 주저앉아서 타협하면서 할 것이냐, 아니면 결단을 할 것이냐?'
제가 새가족 교재를 지금 책으로 출간하려고,
이번 주에는 인근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쓰고 있어요.
연초에 새가족반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은 정말 놀랍게도, 아무도 전도를 하거나 초대를 하지 않았는데,
'내가 하나님을 믿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드셔서,
본인이 처음 교회에 나오신 분도 계세요. 너무너무 놀랍잖아요.
그래서 그런 분들은 적극 환영해 드립니다.
또 어떤 분들은 분당에 사는 분도 아니고, 저희 교회 다니는 분도 아닌데,
'분당에 좋은 교회가 있으니까 가보라고' 누가 소개를 해주셔서,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고, 교회 생활과 떨어져 있던 분이
다시 나오시게 된 경우가 있어요.
이제 그런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신앙에 대해서 말씀해 드리는 시간이 *새신자반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세속주의 사상이 쓰나미처럼 몰려들고 있는 시대입니다.
극단적인 인본주의, 과학만능주의, 무신론, 종교다원주의...
여러분 그러면 세상 사람들만 이런 세속사상에 물들어있는가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이신론 Deism 이라는 게 있어요.
이신론이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도 알겠고, 하나님의 존재도 믿는데,
하나님이 세상의 원리만 만들어놓고 사실 개입을 안 하신다. 낮잠 주무시고 계신다.
그러니까 그냥 사람들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거다'
이렇게 믿는 것을 이신론이라고 해요.
그런데 놀랍게도 시편에서는, 이신론도 무신론이라고 부릅니다. *시14편 참조
여러분, 교회 다니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이신론자들이 적지 않아요.
하나님의 존재는 알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여러분들이 이 시대에, 정말 복음에 대해서 깊이 있게 깨우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에 대해서,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변증적으로, 합리적으로, 은혜 가운데 알려줄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가끔 '성도님들 (저희 교회에)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지?' 얘기를 듣다 보면
직설적으로 얘기는 안 하시는데
'아 새가족반을 8주나 해야 된다는 게, 내가 신앙 연차가 상당히 되는 사람인데...'
이런 게 부담스러우신 분들이 있는 거 같아요.
여러분 저를 한번 따라해 보시겠어요?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제가 한 말이 아니고, 예전에 온누리교회를 세우신 하용조 목사님이
그 당시만 해도 한국 교회에 '새가족반'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에요.
그런데 그냥 교인이 오면 '웰컴!' 이렇게 받아들이던 시대에
7주나 새가족 교육을 하셨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내가 지금 신앙의 연륜이 얼마나 많이 됐는데,
이런 초보적인 걸 다시 배워야 되냐?' 그런 반응들이 많았었던 것 같아요.
그때 하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입니다.
배우시든지 아니면 난 배우기 싫다 그러면 가르치시든지...
가르쳐보려고 들면 이게 만만치 않은 거예요.
여러분, 복음이 매우 쉬운 것 같지만, 여러분이 가르쳐보세요.
그 깊이와 너비와 그 의미를 정말 정확하게 가르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제가 '새가족 교재'를 쓰면서,
'하나님, 영적인 복음의 정수를 담을 수 있는 책이 되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중복기도가 필요하고요.
저는 이 교재를 통해서, 여러분이 변증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질문을 하든지 답변해 줄 수 있는,
그런 복음에 대한 지혜의 문이 열리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11:2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여러분, 이 암몬왕 나하스의 반응이 너무나 무례하지 않습니까?
백기투항을 한 사람들에게 (:1) 이 정도까지 엄포를 놓을 필요가 있는가요?
그런데 이것이 보면 악의 특징이더라고요.
당신이 싸우겠다고 결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 좀 쉽게 쉽게 가자' 이렇게 타협을 하면,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원수는 더 밀고 들어와서 조롱하고 모욕합니다.
요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라의 국방도 마찬가지잖아요. 사람들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긴 하지만,
'주변국들하고 우리는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 이거 좋은 생각이죠.
그러나 만약에 인접한 국가에서 끊임없이 국지전으로 도발을 한다...
'그래도 우리는 평화를 원하니까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걸로 끝나냐는 거죠. No
계속 도발하는 나라가 '한국이 저렇게 겸손히 나오니까,
이제 우리가 도발을 그만둬야겠다' 이러냐고요?
아뇨, 더 밀고 들어오게 되어 있단 말이에요.
▲세상을 보면, 착한 사람들보다 악한 사람들이 더 집요합니다. 더 끝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제가 전에 '인생에는 뉘앙스가 있다' 이런 설교를 한 적이 있어요.
여러분, 착한 사람이 되는 것과, 쉬운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예요.
인생을 살면서 여러분이 인간관계에서, 이런 문제에 봉착한다면,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평가해 볼 필요가 있어요.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는데,
그건 잘못된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저는 성도님들을 상담하면서, 그 얘기를 듣는 제가 더 억울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착한 사람들이 이렇게 맨날 당하는구나...'
여러분 착해서 당하는 걸까요?
착해서 당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쉬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당하는 거예요.
그게 안타까운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어려운 사람'이 되시라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주 안에서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내적인 내공이 있고, 영적인 권위가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쉬운 사람은 되지 마십시오.. 라는 뜻)
영적 전쟁의 양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괜히 열심히 한다고 하다가, 원수의 공격을 받는 게 아닐까?
그러므로 내가 좀 물러설까? 타협할까?'
여러분 타협하면 평안이 찾아올까요?
원수 마귀가 우리의 심리를 정확하게 알거든요.
'아, 얘가 지금 두려워 떨고 있구나..'
그러면 더 밀고 들어오게 돼 있다고요.
왜냐면 우리 마음 가운데 '내가 신앙생활 좀 열심히 한다고 하다가
이러다가 내 사업 망치는 거 아니야?, 이러다가 우리 자녀들 문제 생기는 거 아니야?
이러다.가 내 건강에 문제 생기는 거 아니야?, 내가 괜한 열심을 냈나?'
그러고 주춤주춤 물러서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 강아지 한 마리를 키워봤는데,
여러분, 강아지를 한 마리를 집에 데리고 오면, 개가 딱 하는 행동이 있대요.
처음에 집안에 있는 사람들마다 다 웦웦 하고 짖어보는 거예요.
이렇게 해갖고 강아지가 짖었을 때, 갑자기 쫄고 어린애가 막 울잖아요.
그러면 '아 나보다 서열이 아래구나'
강아지가 짖었는데 '오 이 녀석, 조용히 해!' 이렇게 따끔하게 말하면,
'오, 나보다 서열이 위구나' 이거 하나로 서열 정리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여러분,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 원수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뭐냐면,
여러분이 두려움에 빠지는 거예요. 두려움으로 사람을 조종하거든요.
현대전의 전쟁에서 심리전이라는 것도, 다 두려움을 극대화하는 거예요.
원수가 제일 많이 이용하는 건 두려움입니다.
여러분 원수가 공격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승리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보장되어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강하고 담대할지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는 엎드려 겸비하지만,
원수 앞에는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영적인 용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위해서 세 가지 영적 태도를 명확하게 하시기를 권면하고 싶은데요.
1) 첫 번째는,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하세요.
마6: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의식주가 중요하죠. 사업도 중요하죠. 학교 성적도 중요하죠. 다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우선순위라는 걸, 명시적으로 분명하게 만들고 사세요.
여러분의 인생에서 '내가 이건 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런 걸로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에 올인을 하고,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야 되는지에 초점을 맞추세요.
사업도, 학업도, 교회 사업도... 모든 것은 선택과 집중입니다.
삶의 음지를 줄여 가기보다는, 삶의 양지를 넓혀가며 사세요.
여러분이 (양지의) 우선순위를 둔 것이, 여러분의 삶에서 풍성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2) 두 번째는 항상 영적으로 무장을 하고 사세요.
저는 제가 목회자이기 때문에, 어떤 분들이
'목사님, 쉬실 시간이 있으세요? 잠을 그렇게 많이 못 주무시면 어떻게 해요?'
그때 '저는 공생애를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데요.
저는 여러분이, 항상 영적인 군사가 되어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어요.
엡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이제 좀 우리 가정이 평안해졌네.. 사업이 형통하네..
이제는 좀 새벽기도도 안 나가도 되겠고.. 이제는 좀 느슨하게 신앙생활해도 되겠네..'
과연 그럴까요?
영적으로 언제 공격이 들어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우리는 군사가 되어 긴장하며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전쟁은,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준비하면 이미 늦은 거예요.
전쟁은 평화의 때에 준비하는 겁니다.
그래서 전쟁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한 거예요.
3) 세 번째, 빛과 어둠을 분명하게 구분하시기 바랍니다.
약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여러분, 빛은 빛이고, 어둠은 어둠이잖아요. 이거 굉장히 쉬울 것 같죠? 쉽지 않아요.
여러분이 직장생활에서도, 직장에서 끊임없이 편법과 불법을 행하잖아요.
그걸 계속 보고 있으면 '이게 맞는 건가?'
틀린 건데 맞는 것처럼 사람들이 다 행동하면,
어둠을 빛으로 생각하고, 빛을 어둠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해요.
그런데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는, 점이 지대가 존재하지 않아요.
*점이 지대 : 주변 지역의 특성이 서로 겹치는 지역
빛도 아니고 어둠도 아니고... 이런 애매한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달콤해 보여도, 유혹은 유혹이고, 죄는 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을 거룩하게 지키세요.
세상 사람들이 어떤 스타일로 살든, 여러분의 가정을 지키세요.
저와 여러분은 빛의 자녀인 줄로 믿습니다.
빛의 자녀답게 거룩과 순결을 지키면서 살아가세요.
◑11:3~6 '야베스 장로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동안 말미를 주어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들을 보내게 하라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이에 전령들이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전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르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하니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을 전하니라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저는 고대 전쟁을 보면서 '야만적이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낭만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싸울 사람이 있는지를 좀 찾아봐야 되니까 7일만 말미를 달라' 그랬더니,
암몬 사람들이 7일을 기다려줍니다. '뭐 이런 이상한 장면이 있나?'
그런데 그만큼 암몬 사람들은 전쟁에 대해서 철저히 준비를 한 것 같고,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럼 왜 7일이었을까요?
이스라엘에 성지순례를 해보면, 웬만한 지역은 빨리 가면 한 3일 길이에요.
그러니까 전령들을 보내는 게 3일 길, 군대를 모집해서 올 때, 또 3일길이잖아요.
그래서 7일 차에 싸우는 거죠. 그래서 7일을 요청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령들이 전국으로 흩어졌는데,
중부 지역의 베냐민지파 기브아에도 전령이 왔습니다.
▲기브아 사람들이 그런데 왜 이 소식에 '어휴, 안 됐네' 정도가 아니라
통곡을 했는가요? :4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첫 번째는, 같은 이스라엘 백성이 원수의 공격을 받아서
멸망 직전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도 '우리 코가 석자'란 말이죠.
우리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가서 도와주겠나?'
두 번째는, 사사기의 역사를 아시는 분들은
사사기 21장을 보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베냐민 지파가 사고를 쳤을 때, 여타 지파가 다 베냐민과 전쟁을 치렀는데,
유독 내전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본문의 길르앗 사람들이었어요. 삿21:9
그럼 베냐민 사람들을 사랑해서 그랬을까요?
제가 추정하기에는, 좀 거리가 멀어서 안 온 것 같아요. *북동쪽 최북단 변방이니까
그러니까 나중에 이 전쟁에서, 베냐민 지파의 장정이 600명밖에 안 남았을 때,
'야 그래도 베냐민 지파가 결혼을 해서 후손은 낳아야 되지 않느냐?'
그래서 길르앗 야베스의 처녀들을 400명을 데려다가 베냐민 지파와 결혼을 시켜요.
그러니까 지리적으로 멀지만, 기브아와 길르앗은 가까운 친인척 관계가 된 거예요. 삿21:12
▲이 즈음에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백성들의 말을 듣더니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크게 감동되매' :6
근데 여기서 '감동되매'이라는 표현은
감화력으로 인해서 마음이 움직이는 걸 얘기하는 건데,
원어적 의미가 '마음이 움직였다'는 뜻이 아니더라고요.
'하나님의 영이 위로부터 그에게 임하였다'는 뜻이에요. *came, rush, advance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의 삶에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햇빛이 위에서 내리쬐는 것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여러분, 빗줄기가 하늘에서 내리는데, 이걸 피해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피해갈 수 없는 걸, 자꾸 피해가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뭘 피하려고 하냐면, '원수와의 공격을 피하고,
어떻게 하면 나는 전쟁을 안 치르고 좀 편안하게 지내볼까?'
그래서 자꾸 영적으로 타협을 하는 길을 선택하려는 거예요.
이거 (원수 마귀와 전쟁) 못 피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 빛의 자녀로 살면
영적 전쟁은 반드시 치르게 돼 있어요.
두 번째는, 안타까운 것인데, 하나님의 감동을 피해가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없어요?
걔중에는 있어요.
▲제가 섬겼던 온누리교회는 선교에 목숨을 건 교회였어요.
그래서 매년 연초에 전교인이 선교헌금 작정을 하고,
아웃리치도 여름에 청년들이 정말 수백 개 팀이 국내외로 4, 5천 명씩 떠나요. 청년들만!
그리고 개교회가 누적 숫자로 선교사를 2천 명 이상 보낸 교회예요.
이런 교회는 없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 교회에서 25년간 사역을 하면서, 모순적인 걸 하나 봤어요.
그게 뭔지 아세요? 양육 컨퍼런스, 예배 컨퍼런스, 교회 부흥 컨퍼런스는 몇 천명씩 와요.
그런데 선교 컨퍼런스는 안 와요. 왜 안 올까요?
거기 갔다.가 너무 감동받을까 봐... 그래서 안 와요.
'내가 저기까지 가서 감동받아서 선교사로 나가면 안 되는데...'
선교 홍보 영상을 틀면, 저는 그 홍보 영상을 보고 있는 성도들을 보는 거죠.
그럼 성도님들이 막 감동을 받아서 눈물이 날 것 같은데, 그 감동을 애써 자제하는 거예요.
'아, 내가 이거 홍보 영상 보고 그냥 후원만 잘 하면 되지,
내가 너무 감동 받을 것 까지는 아니지 않나?'
여러분 오늘날 하나님의 사람들이, 도대체 우리는 인생을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그러니까 우리가
-인생의 악재도 어떻게든 피해보고 싶고,
-과도한 하나님의 감동도 피해보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감동은 인생에서 다 사라지고, 계산만 남은 세대...
이게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영적인 감동은 사라지고, 얄팍한 지식들만 사용하려고 하는 세대...
얼마나 슬픈 세대가 되었는지요...
여러분, 사울에게 왜 '하나님의 감동이 임하였다'고 표현됐는가요?
여러분 사울이 그 얘기를 듣고, 이렇게 감동이 임한 이유가 뭘까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진짜 우리 한 가족 같은 사람들인 거예요.
요단 동편에 있지만, 그리고 같은 한 민족이잖아요.
지금 사울이 왕으로 세움을 받았지만, 소 끌고 가서 밭 경작하고 있잖아요.
아직 왕궁도 없어요. 보좌에 앉아서 통치하는 것도 아니에요.
행정조직도 없어요. 상비군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지만 왕으로 세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나의 백성이고, 그 땅은 요단 동편이지만 우리 나라 영토'인 거예요.
여러분,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이 누구에게 해코지를 당해도
우리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만약에 길을 가다가, 안 좋은 사람들에게 여러분 가족이 당하고 있다 그러면,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시겠냐고요.
제가 여기까지 어제 설교문을 써 놓았는데, 아주 어렸을 때 기억이 떠올랐어요.
제가 4살, 5살 코흘리개로 동네에서 이렇게 걸어다니면
멀리서 보이지도 않아요. 어린애라서.
그럼 동네 형들이 이렇게 불러다가, 제 장난감도 빼앗고,
제가 소중히 여기는 구슬도 빼앗고, 먹는 것도 빼앗고 그랬거든요.
그러면 너무 긴장이 되는 거예요. 그러고 서 있으면...
그런데 어느 순간 저희 집 형들이 나타나는 거예요. 할렐루야!
저희 형들이 나타나서 '우리 동생 건드리지 마!' 딱 하는 순간,
제가 볼 때는 덩치가 이런 형들이, 조용히 사라지는 거예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제가 설교 준비하다가 그 생각이 났어요.
▲여러분 사울에게 그래서 '노가 크게 일어났다'
이 노라는 단어를 anger, 분노라는 단어를 썼어요.
그런데 개인적 원한의 감정의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의분이 일어난 것입니다.
제가 '사역자론'을 이야기할 때 종종 언급하지만
저는 모든 성도들에게 '거룩한 불만족'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를 한번 따라 말해 주세요. '거룩한 불만족!'
여러분, 거룩한 불만족이라는 건 뭐냐면,
그냥 불만족이면 '교회가 왜 이래? 교회가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네?'
이렇게 뒤에서 욕하고, 험담하고 끝날 수 있죠.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안타까운 마음이 되면,
내가 새가족 사역을 섬기고,
정말 이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기도자로, 사역자로, 헌신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한국교회가 예배가 이렇게 무너질 수 있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면
그것이 거룩한 불만족이자, 비전이 되고, 영적인 원동력이 되어서,
여러분이 예배자로 헌신하고, 중보자로 헌신하고,
도시마다 거룩한 '다윗의 장막' 같은 예배들이 일어나도록, 헌신할 수 있습니다.
골리앗 앞에 다윗처럼 거룩한 불만족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암몬 족속들의 공격 앞에, 사울처럼, 거룩한 불만족이 여러분 마음가운데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박해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 박해를 하는 바로 왕 앞에 모세처럼,
거룩한 불만족이 일어나야,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거예요.
여러분, 개인적으로 내가 돈 조금 손해보고, 시간 조금 손해보고,
내 권리 조금 손해봤다고... 그걸로 막 억울해하고, 잠을 못 이루고, 소송을 걸고...
그렇게 인생을 허비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어른이 해야 되는 '아멘'을, 아이가 예언적으로 지금 대언으로 '아멘!' 하잖아요.)
여러분 하루 한 날을 살아도,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야 되잖아요.
인생의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회의 시간이 계속 흘러가잖아요.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11:7~11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르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의 수를 세어 보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 명이더라
무리가 와 있는 전령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받으리라 하라
전령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하매 그들이 기뻐하니라
야베스 사람들이 이에 이르되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생각에 좋을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 하니라'
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삼 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사울이 소심한 사람이었는데, 성령 충만해지니까 담대해졌어요.
그래서 소 한 겨리, 자기가 밭갈던 소 두 마리죠. 그 두 마리 소를 각을 떠서
온 이스라엘 지파에 보내서 전군을 소집합니다.
8절에 보면 베섹은 길르앗 야베스에서 23키로 떨어져 있는데
이 베섹에서 사람들의 숫자를 개수해 보니까, 33만 명이었어요.
그 시점이 딱 6일이 소요된 시점입니다.
그리고 야베스 사람들에게 '내일 날이 더울 때, 한낮에, 너희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야베스 사람들이 믿음으로 사울의 말을 받아들였고, 그리고 암몬 사람들에게 전했죠.
그러니까 암몬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 낮에 전장에 기어나올까?'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사울의 군대가 이른 새벽에, 암몬 군대를 급습했습니다.
여러분 이른 새벽으로 추정하는 시간은, 새벽 3시~6시거든요. :11
사울 왕은 군대를 3대로 나눠서, 이 33만 명이 기습 작전을 한 거예요.
그리고 암몬의 군대를 완전히 괴멸시킬 정도로 큰 승리를 거뒀어요. 할렐루야!
언제나 승리는 감격적인 것이죠.
▲저는 영화 '300' 을 굉장히 좋아해서, 엄청 많이 봤어요. 여러 번 봤어요. 보고 또 봤어요.
그랬더니 옆에 있는 아내가 '목사가 왜 이렇게 폭력적인 걸 좋아하냐?'
'난 폭력적인 걸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들 300인의 버팀과 희생에 감동해서 계속 본다'
저희가 성지순례를 하면서, 그리스에 가서
사실 이 테르모필레 협곡이 저희 여정에 들어있지 않았어요.
그런데 참여하신 한 분이, 굉장히 애정을 갖고 이야기를 하니까
이강근 박사님이 특별히 우리를 인도해서 거기를 갔어요.
여러분이 역사를 아실 텐데, 페르시아 제국의 아하수에로 왕이죠.
일반 사회에서는 크세르크세스라고 부릅니다. 에스더의 남편이에요.
그가 페르시아의 정예군 50만의 군대를 이끌고 와서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좁은 길목에 놓여있는, 테르모필레 협곡을 지나가야만
그리스로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그리스를 치러 왔는데, 그 길목을 막아선 사람이
스파르타의 왕이었던 레오니다스와 300명의 최정예 용사들이었어요.
이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300명이 페르시아 50만 명을 맞서 싸웁니다. 그리고 3일을 버텨요.
3일을 버티면서 시간을 버는데...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그 헌신과 희생 덕분에 감동을 받은 거죠.
결국 그리스 사람들의 승리로, 이 전쟁이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 문명이 어마어마한 꽃을 피우게 돼요. 최전성기를 이루게 됩니다.
여러분, 역사가 보여주는 것이고, 성경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골리앗 앞에 나섰던 다윗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것이고,
선조마저 도망가고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던 임진왜란 때,
왜군 앞에 이순신 장군이 나섰기 때문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거예요.
모두가 승리를 염원합니다. 모두가 승리는 축하하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승리의 마중물이 되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나만 희생양이 되는 거 아니냐?' 이런 두려움이 있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사시대 360년 동안, 그 한 사람을 찾으시는 거예요.
계속해서 그 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거예요.
▲여러분 한국교회가 부흥의 정점에서 무너진 지 30여 년이잖아요.
그러면 '그래도 이 시대에 우리 교회는 잘 되고 있으니까...' 이러고 안심하고 있겠냐고요.
만약 우리 세대가 안 일어나면,
하나님은 또 다른 세대를, 또 다른 몇 십 년을 기다리셔야 되는 거잖아요.
'하나님, 저희 교회가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승리를 위해서
거룩한 마중물이 되는 교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 교회 성인공동체, 대학 청년들, 우리 차세대 가운데,
하나님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켜 드리는 예배자들이 나오게 하여 주옵소서
에스터와 같이 담대하게 기도 제목을 갖고 기도하는 사람들,
다니엘과 같이 뜻을 정한 각 분야의 지도자들...
오, 하나님 사도바울과 같이 탁월한 목회자들이 나오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1:12~13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사울이 이르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대승을 거두고 나니까, 딱 등장한 사람들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에요.
호랑이 앞에서 주름 잡는 여우 같은 자들! 狐假虎威 : 남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림
여러분, 사울이 큰 인물이라는 게 딱 드러나니까, 목에 힘주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여러 가지 영역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때,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어려워요.
그러나 너무 여론과 사람들을 의지하지는 마세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상황이 좋아지면, 과도하게 찬양하고
상황이 안 좋아지면 조롱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에요.
비 오는 날에는 흙탕물을 조심해야 하죠. 흙탕물을 밟으면 어려워지잖아요.
그러나 화창한 날에는 아무런 조심할 게 없을까?
아니요. 작렬하는 태양빛을 조심하셔야 됩니다.
여러분, 눈이 너무 부셔서, 진실을 진실로 보지 못하고,
너무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오롯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기 인생의 길, 부르심의 길을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