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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3장 사랑 수업

LNCK 2025. 2. 2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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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사랑수업" [고전 13:4-7] -  - YouTube

◈사랑 수업               고전 13:4-7             2025.02.23.       

하나님 우리가 사랑 수업을 통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해받는 단어 중에 하나가 '사랑'이라는 단어입니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공부하지 않는 주제가 있다면.. '사랑'이란 주제입니다. *주제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장 잘 모르는 것이 '사랑'입니다. 
가장 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거듭 반복해서 실패하는 것이 있다면 '사랑'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주제를 공부하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만,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랑'이란 주제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습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적에 따라 불렀던, 나훈아 씨의 노래가 있습니다. 
그때는 그냥 유행가인 줄 알았는데, 이제 세월이 지나 보니까 
이게 대단한 작품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먼 훗날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않겠지요
서로가 헤어지면 모두가 괴로워서 울테니까요

이별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대답할테요
먼 훗날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않겠지요
서로가 헤어지면 모두가 괴로워서 울테니까요」  1969년 발표

노래 가사 속에 사랑, 눈물, 버림받음, 이별, 괴로움 등 
인생 속에서 간과할 수 없는 주제들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모두 행복으로 원합니다.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그러나 행복의 뿌리가 되는 '사랑'에 대해서는, 공부를 잘 하지 않습니다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사랑 때문에 행복해지기도 하지만, 
또 사랑 때문에 비참해진 사람들도 많이 보게 됩니다. 

◑1. 오늘 설교 "사랑 수업" 첫 번째 대지는 
사랑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소중하다고 말하지만, 
사랑보다는 돈과, 학력, 명예, 인기, 평판, 권력... 이런데 집착을 많이 하죠. 

성경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씀하죠. 

본문 고전13:1~3절에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라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믿음도, 능력도, 심지어는 남을 도와주는 구제도.. 사랑 없이 하는 걸 많이 봤거든요. 
구제할 때, 사진을 찍고 광고를 하는 사람도 있고요, 
심지어는 순교도.. 사랑 없이 하는 걸 봅니다. 
'내가 순교하면 영웅이 되지!' 이런 얘기를 하는 분도 가끔 있습니다. 

사랑은 정말 중요하죠. 사도 바울은 본문 고전13:8절에서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13:13

우리 안에는 사랑에 대한 깊은 갈망이 있어요. 
왜냐면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고요. 
또한 성숙한 사랑에 대한 갈망도 있습니다. 

요일4:8절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7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2. 성숙한 사랑을 위해서는, 잘못된 환상을 제거해야 됩니다

사랑이 소중하지만, 우리는 사랑에 대한 오해가 많죠.
그래서 성숙한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제거해야 됩니다. 

우리가 사랑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고요.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지나친 확신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본인이 대단한 사랑을 하는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있고, 
환상이란 뭐냐면, 현실에 (사랑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환상은, 현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거해야 될 환상의 뭘까요? 세 가지만 말씀드리면 

1) 첫째는 '사랑의 감정이나 충동'이라는 환상입니다. 사랑은 감정이나 충동이 아닙니다!
사랑에 감정이 중요하지만, 그 감정은 변화됩니다. 수시로 변화됩니다. 
이게 인간의 욕망이죠. 

사랑에 충동이 되면, 감정이 고조됩니다. 
사랑의 충동이 되면, 눈이 어두워집니다. 이성이 마비됩니다. 

드라마에서 보는 현실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특별히 중년의 위기 가운데 들어가잖아요. 40~65세까지 중년이라는데, 
그 시기가 되면, 이상한 연애 감정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들이 외도를 하기 시작하죠. 

그러면 그 충동과 그 감정이 너무 신비로워서, 그 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부모도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자녀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귀에 아무 다른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그리고 말합니다. '와~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그러나 그 결과는 참 비참하죠. 

우리는 '충동'을 유혹이라고 말해야지, 사랑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성숙한 사랑은, 철저히 헌신적일뿐만 아니라, 
지적, 의지적 선택과 결단, 정확한 분별력을 가지고, 성경의 원리로 사랑해야 됩니다. 

결혼한 분들을 만나보면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한눈에 반했다고' ... 그게 문제입니다. 

한눈에 반하면 안 됩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야 되고요. 
그리고 이제 결혼했다면, 한눈을 감고 사세요. (한 눈에 반하지 마세요)

그런데 한 눈에 반하면.. 나중에 두 눈을 부릅뜨고 
서로를 노려보는 일이 생기기 쉽습니다. 사랑이 쉽지 않거든요. 

2) 둘째, 사랑의 실패 원인을, 사랑하는 대상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환상입니다. 
나는 문제가 없는데, 내 남편이 / 아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결혼하는 부부들의 환상은, 대부분 '내가 결혼만 하면 행복할 거라'는 환상입니다. 
그것도 저절로! 영화에 보면, 이런 환상이 늘 나오죠.

그런 환상은, 현실에서 쉽게 깨집니다. 
어떤 신랑 신부는, 신혼여행 갔다 오면서 이혼하더라고요. 3일을 넘기지 않아요. 
환상이 그만큼 빨리 깨진다는 뜻입니다. 

뭐 대단하죠. '우리 너무 사랑해요. 좋아해요...' 하다가, 환상이 깨지면,
우리는 모든 책임을 남에게 증거하는데 능숙한 사람들이죠.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네가 왜 선악과를 따 먹었느냐?' 
'당신이 만들어준 여자 때문에...' 
하와에게 물어보니까 '뱀 때문에...' 

'왜 선악과를 만들어서 우리를 이렇게 괴롭히는 겁니까? 하나님 탓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데 능숙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바꾸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 저 남편은 원수야!'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 원수하고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 많거든요. 
여러분이 원수처럼 여기는 그 아내하고,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 많다니까요. 

과거에 남자들이 왜 술집에 가죠? 아내가 해주고 싶은 말을 안 해주고, 
술집 여자가 대신 해주기 때문에, 거기에 가는 겁니다. 
책임은 쌍방에게 있다고 봐야 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만 바꾸면, 내 인생의 행복해질 거라고...' 그렇지 않습니다. 
혼자 행복한 사람이, 결혼해도 행복하고요. 
결혼하기 전에 불행한 사람은, 결혼해도 여전히 불행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상대까지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스스로 잘 노는 사람,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요. 
내가 불행한데, 또 비슷한 다른 사람을 만나니까, 더 어려워지고 불행한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에 거듭 실패하면서도 
본인이 왜 실패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숙고하지 않습니다. 

바둑은 복기하지만, 본인의 관계에 대한 실패는 복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탓을 남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지금 사는 남편과 행복하지 않다면, 
다른 남자와 살아서 행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아주 독선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대충 맞춰서 살면 괜찮을 것 같아요. 

3)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는, '현실을 무시한 잘못된 기대'라는 환상 때문이죠. 
우린 기대가 필요한데, 잘못된 기대가 문제입니다. 

'아 인생은 아무 어려움이 없을 거야' 
'뭐 결혼 생활 너무 행복할 거야' 이런 환상, 이런 기대가
실제 내 현실과의 간극이 클수록.. 우리는 분노가 많아집니다. 성질을 부립니다. 

'사랑은 성내지 아니한다' 그랬는데, 왜 성이 나는 겁니까? 
내가 기대하는 대로, 내가 기대하는 사람이, 내가 기대하는 때에, 
내가 기대하는 방법으로 행동해 주지 않기 때문에.. 내가 화가 나는 겁니다. 
여러분 저절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내일 결혼하는 부부를, 제가 만났습니다. 
신랑 신부를 만나서 제가 얘기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결코 쉽게 세워지는게 아니라고... 
눈물과, 땀과, 피와, 헌신으로 세워지는 거라고...' 

저절로 자라는 것은 잡초뿐입니다. 
아름다운 정원은, 성심을 다해서 가꾸어야 됩니다. 

기대하는 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기대가 문제입니다. 
인생이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게 지혜입니다. 

◑3. 성숙한 사랑을 위해서는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주제

정말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요. 
제가 이제까지 결혼식 주례를 꽤 많이 해 왔는데, 
결혼식을 준비하지만, 결혼을 준비하지 않는 겁니다. 

그렇게 결혼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면서, 
결혼에 관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겁니다. 너무너무 놀랍습니다. 

자녀를 그렇게 사랑한다고 얘기하면서, 
자녀 교육에 관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습니다. 

관계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면서 
관계에 관한 책을 진짜 읽지 않습니다. 

여러분, 미숙한 사랑은 이기적이잖아요. 
이기적인 사랑은, 전혀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건 본능적인 겁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랑,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아름다운 사랑을 만들어 가는... 
이런 사랑은 굉장한 노력과 기술이 필요한 거죠. 

성숙한 사랑은,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랑은, 자기 사랑과 이웃 사랑의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랑은,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사랑입니다. 

빅토르 위고가 이런 말을 했죠.
'삶의 최상의 복은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미숙한 사랑은, 받기만 하고 주지 않습니다. 
어떤 미숙한 사랑은, 주기만 하고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죠. 

'내가 이렇게 주었는데...' 
그리고 나중에 분노에 가득 차서, 너무나 억울해 하는 사람도 가끔 봅니다. 

또 가끔 이런 분을 만나죠. '예수님은 주기만 하시잖아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결코 주기만 하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사랑을 받으셨고, 
예수님의 필요를 채운 여인들이, 예수님의 가는 곳마다 필요를 채웠고, 눅8:1~3
베나니 나사로의 집에서도 위로를 받으셨고, 

그리고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말은 '나는 너의 사랑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찬양을 좋아하세요. 감사를 좋아하세요. 이게 뭐죠? 
우리들의 사랑의 표현이죠. 

찬양이 뭐죠?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셨어요. 너무 감사해요!' 이게 찬양입니다. 
하나님은 찬양 받기를 원하세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사랑을 주고 받는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 것입니다. 
윈윈이죠. 서로가 서로에게 만족을 주어야 됩니다. 

▲1. 우리는 보고 배우고 경험한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가 참 중요해요. 부모가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지... 자녀들이 보고 배웁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을 보고 배우고 경험했어요. 누구냐면 예수님께 배운 거예요. 
그래서 고전13장 '사랑 장'에 보면, 이게 다 예수님의 사랑이거든요. 

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바울은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내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는지... 
그런데 예수님이 얼마나 자기를 사랑해줬는지를' 이렇게 고백해요. 

딤전1:13~14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은혜를 받고나서 보니까, 자기가 예수님께 받은 사랑이 너무 컸어요.
알고 보니까 예수님이 자기에게 오래 참으셨거든요. 

예수님은 바울을 존중해 주셨거든요. 믿어 주시고, 직분을 맡겨 주시고, 
무한한 잠재력을 인정해 주셨거든요. 

▲2. 사랑은 배우고 익혀야할 성품입니다. 

고전13장에서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다 성품이에요. 
오래 참음, 온유, 시기하지 않고 남이 잘 되는 것을 기뻐함... 

어떤 분은 남편이 잘 되는 걸 너무 싫어하더라고요. 
어떤 분은 아내가 잘 되는 걸 너무 싫어해요. 부부사이 인데 말이죠. 

교만하지 않고 겸손함, 무례히 행하지 않음. 
우린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장 무례하게 행하죠. 
특별히 한국 남자들은 자기 아내 빼놓고는 다 친절하게 대한다고 합니다.
너무 친절히 대해요.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음'
이게 다 성품과 관계된 거죠.

여러분, 성품은 저절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이런 성품은 훈련, 그리고 기술을 연마해야 됩니다. 

아이들이 똥 싸는 건 본능적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기저귀를 떼기 위해서 훈련을 시킵니다. 

우리는 정말 훈련이 필요하다고 알지만, 
'사랑'에 관해서는 훈련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에도 '지식'이 굉장히 필요해요. 공부해야 됩니다. 공부도 훈련의 일종이죠.

사자하고 소하고 사랑을 했더랍니다. 
사자는 서로 사랑해서, 고기를 먹으라고 갖다 주는 거예요. 

여러분, 소는 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립니다. 
사료 안에 고기가 들어 있잖아요. 그걸 먹으면 광우병에 걸려요. 소가 미쳐버려요. 
소는 고기를 먹으면 안 돼요. 

근데 소는 사자를 너무 사랑해서, 늘 풀을 가져다주는 겁니다. 
나중에 둘은 헤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하는 말이 '최선을 다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물론 최선을 다 하기는 했죠. 

여러분,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다르냐면, 소와 사자와 같이 달라요. 너무너무 달라요. 
재료부터가 달라요. 남자는 흙으로 만들어졌고, 여자는 갈비뼈를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남자를 목욕탕에 가면, 샤워를 좋아해요. 
그렇지만 여자는 목욕탕에 가면, 푹 삶아야 된대요. 왜냐면 재료가 갈비뼈라서! ㅎㅎㅎ

남자와 여자는 뻔히 다른데, 나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너무 달라요. 그렇다면 지식이 필요하잖아요. 근데 당연히 안다 라고 생각하는 거죠.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은 배우고 훈련해야 하는 기술입니다. 
우리는 사랑은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상에 왠만한 모든 일에는 기술이 필요해요. 기술은 배워야 되는 겁니다.
그림 그리는 것도,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기술,
컴퓨터도 자동차 운전도 다 기술이죠. 
근데 사랑은..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가장 유명하면서도 가장 읽지 않은 책 중에 하나가 
에리히 프롬이 쓴 <사랑의 기술>이란 책입니다. 굉장히 좋은 책인데요. 
사람들은 잘 읽지 않아요. 
왜냐면 그 책을 멜로 드라마로 생각했다가.. 읽어보면 그렇지 않아요. 
너무 깊이가 있거든요. 

그는 (에리히 프롬)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랑은 기술인가?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 된다.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적절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인 것 같다. 
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우고 싶다면, 
우리는 다른 기술... 예컨대 음악이나 그림이나 건축 
또는 의학이나 공학기술을 배우려고 할 때 거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또 이렇게 얘기합니다.
「왜 사랑의 기술을 도무지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인가? 
사랑을 뿌리깊이 갈망하면서도, 
사랑 외에 거의 모든 일, 곧 성공, 위신, 돈, 권력이
사랑보다도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열심히 배운다)

우리의 거의 모든 정력이 이러한 목적에 사용되고, 
거의 모든 사람이 사랑의 기술은 배우려고 들지 않는다」

여러분, 지식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옛날에는 수술하는 의사들은, 손에 피가 묻은 게 영광이었습니다. 

그래서 산부인과 의사들이 아이를 받고, 
그리고 피가 묻은 채로 또 아이를 받고, 근데 어느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사람이 관찰한 중에, 뭔가 계속 산부인과 병동에서 산모가 죽는 사고가 나는 겁니다. 
알고 의사들이 수술하고 나서 깨끗하게 손 씻지 않은 데서부터 
병균이 감염돼서 산모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 그런 사실을 밝혔을 때, 다른 의사들이 미친 사람이라고 그랬습니다. 
무식하다고 했죠. 

그러나 지금은 모두 다, 수술하러 들어갈 때는 깨끗하게 손을 씻습니다. 
많이 감염되기 때문입니다. 정말 있었던 얘기입니다.          주1)
지식의 중요성, 배움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예화였습니다.

▲3. 에리히 프롬은 '성숙한 사랑에는 4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 라고 말했는데요. 
보호, 책임, 존경, 그리고 지식입니다. 

 

어떤 분들은 책임지려고 하지 않아요. 또 상대방을 존중하지도 않아요. 
무례하게 행동하죠. 

또 어떤 분은 사랑을 집착으로 여겨요. 
감독하고, 통제하고, 그리고 위협합니다. 

성숙한 사랑은, 뿌리와 날개를 함께 주는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이런 말을 했죠.
'사랑은 붙잡으면서도, 동시에 놓아주는 예술입니다.' 
자녀들은 키우다가.. 어느 단계 가면 놓와줄 줄 알아야 됩니다.
 
제가 이제까지 목회 43년째 들어갑니다. 
제가 1984년도에 목사 안수를 받고, 그때 제가 받은 목사 가운을 지금도 입고 있어요. 

1984년부터 계속 입었죠. 

근데 이민목회 하다보면 아시겠지만, 여러분도 그런 경험하시지만, 
이제 연말이 되면 교인들이 이동을 해요. 

10월부터 한 1월까지도 이동하는데... 저는 너무 이해해요. 
이민교회가 어려우니까 이해합니다.

떠나는 분들에 대해서, 제가 절대로 억압하거나 또는 나쁜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신자들은 제 양이 아닙니다. 주님의 양입니다. 
교회도 제 교회가 아닙니다.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얼마든지, 본인이 출석하기 원하는 교회로 출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목사도 교회를 떠나면서, 신자는 못 떠나게 한다면, 논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병원에서 환자가 의사를 바꿀 수 있다면, 
신자는 목사든 교회든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안 바꾸는 게 좋지만, 피치 못해 바꾸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신자들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우리 교회에 부교역자들도 있지만, 부교역자들이 저랑 같이 사역하다가 
또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려고 할 때, 제가 존중합니다. 

왜냐면 부교역자들은, 제가 고용한 분들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들이고, 하나님의 소유된 분들이기 때문에 
떠나려고 할 때, 제가 억지로 붙잡을 수 없습니다. 집착하거나 애착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낳았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죠. 
우리는 집착을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감독하고 통제하려고 하는데, 정말 위험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겠지만, 저는 목회하지만 저는 감독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역자들을 감독하지 않습니다. 저는 교역자들을 통치하지 않습니다. 

화요일 날 모여서 같이 기도하고, 토론 시간을 갖고 
나머지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일하도록 합니다. 다들 너무 잘 해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성숙한 사랑을 좀 배울 필요가 있고요. 
그리고 거기서부터 더 발전해 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사랑의 수업'인데요. *설교 제목
제가 간단하게 여덟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먼저는, 오래 참는 거죠. 사랑하는 것만큼 참는 것 같아요. 
아이가 성장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참는 것입니다.

2) 둘째는 존중하는 사랑의 기술입니다. 
무례히 행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함부로 대하시면 안 됩니다. 

3) 셋째, 경청을 통해 소통을 잘하는 사랑의 기술이죠. 
사랑의 첫째 의무는 '경청'이라고 하잖아요.

4) 넷째, 감정을 잘 다스리는 기술이 사랑의 기술이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자꾸 성 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왜냐면 성내다가 폭언, 폭력, 그리고 극단적인 말을 하게 되죠. 
자기 감정을 다스릴 수 있어요. 훈련하면 돼요. 

5) 다섯 번째로, 서로가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사랑의 기술이죠. 
서로가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거죠. 양육한다고 그러잖아요. 
남편이 성장하도록 내조하고, 또 아내가 성장하도록 외조하고
이 두 가지가 같이 가야 돼요. 그래야만 건강한 가정을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제 아내가 왜 이 모양이 됐죠? 
아가씨 때는 안 그랬는데, 지금 왜 이 꼴이 됐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가씨는 내가 만들었고, 아내는 네가 만들었느니라' 
같이 성장해야 됩니다. 

왜냐면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곧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요.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남편이 곧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말씀합니다. 
엡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저는 무례히 행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는데요. 
그분들의 문제는, 자신을 스스로 무례하게 대하는 거예요. 

또는 아주 나르시스트라고 그러는데요. 
지나친 자기애, 자기만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을 함부로 비판하고, 판단하고, 그리고 정죄합니다.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6) 여섯째, 경계를 지켜주는 사랑의 기술입니다. 이게 대단히 중요한대요.
에리히 프롬이 말했습니다. '사랑은 건강한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부사에도 그리고 교회에도 경계가 필요해요. 
저도 선을 넘어가는 거를 되게 싫어합니다. 저는 다 용납합니다. 
그러나 선을 넘어가면, 그건 제가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탈선하게 되면 위험하기 때문이죠. 

이 경계에 관해서는 제가 한 주일에 설교로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굉장히 중요하고, 또 정말로 배워야 될 기술 중에 하나입니다. 

요즘처럼 복잡한 세상, 복잡한 인간들이 사는 세상 속에서는 
경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경계가 없으면, 완전히 무너져 버립니다. 

최근에도 어떤 어려운 경계가 있었는데요. 제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분에게 바운드리(경계)를 정해드리는 것이 
이 사람을 더 나쁘게 만들지 않겠다. 
내가 경계를 안 정해주면, 이 사람이 더 나쁘게 되겠다...' 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경계를 정해 드리고, 관계를 마무리했습니다. 
왜냐면 계속 가만두다가는, 더 독선적이고, 폭력적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7) 일곱번째는 용서하는 사랑이죠. 

8) 여덟 번째는, 두 사람이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랑의 기술입니다. 
사랑이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서로를 바라보지만 
결혼 후에는 같은 가치관과 목표가 있어야 돼요. 

근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됩니다. 

여러분, '나는 생긴 대로 살겠다'는 사람처럼 무책임한 사람이 없습니다. 
'나 좀 놔두라고요' 여러분, 그건 무책임한 겁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똥 싸고 오줌싸는데, 가만 놔두실 겁니까? 
어른이 돼 가지고도 계속 그러실 겁니까?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냥 철이 들어야 되잖아요. 

뭐 '철들면 죽는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철이 들어야죠. 
우리는 아직도 배울게 많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래도 이나마 이 정도로 화평하고 존중하고 
장로님들, 권사님들, 성도님들이 이렇게 목회자들과 함께 서로 사랑하고 
이런 관계, 이런 문화를 만들어 가는 건, 지난 15년 동안에 각고의 노력 때문입니다.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고 같아요. 그냥 된게 아닙니다. 
엄청 노력한 겁니다. 엄청 올라간 겁니다. 배우고 또 배운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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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산욕열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세균이 아이를 낳은 산모의 상처로 들어가 생기는 감염병인데요. 
지금은 드물지만, 과거에는 세균이 전신에 퍼져 고열을 일으키고 
생명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병이었습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출산을 앞둔 여성들 사이에서는 
이런 산욕열에 대한 두려움이 널리 퍼져 있었고, 
산모들은 병원보다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게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산욕열로 죽는 산모가 4명 중 1명꼴일 만큼 많았기 때문이죠.

병원에서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다니, 
당시 병원에서 사망하는 산모가 많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오스트리아 빈 종합병원의 산부인과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1818~1865)는 
분만 이전 큰 두려움에 떠는 산모들을 보며 
기필코 산욕열의 원인을 알아내리라 다짐했습니다.
 
제멜바이스는 여러 가설을 세우고 검증한 끝에 
‘시체를 만진 의사들이 보이지 않는 병균을 손에 묻혀 와 
산모들에게 옮긴다’는 새로운 가설을 세웠습니다.

묘하게도 산부인과에 근무하던 의대생들이 해부 실습을 시작한 1823년부터 
산모가 산욕열로 죽는 사례가 급격히 많아졌기 때문이죠.

제멜바이스는 곧장 병원에 염소 처리된 석회 용액을 가득 담은 대야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해부실에서 분만실로 가는 의사들에게 이 소독액을 사용할 것을 부탁했죠. 
그들에게 산모를 돌보기 전에 장비와 손을 박박 씻을 것을 주문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듬해인 1848년에 산부인과 제1병동의 
산모 사망률이 18%에서 1.2%로 급격하게 떨어진 것이죠!

이를 통해 제멜바이스는 산모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이 철저하게 손을 소독한다면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습니다. 
산욕열은 종기를 째는 침, 고름과 피가 묻은 침대 시트 등 오염된 것들로부터 
감염되는 병이었고 이는 청결을 잘 유지하기만 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것이죠.

이렇게 그는 위생과 소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의학계에 처음으로 알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상에서 수시로 손을 잘 씻는 것만으로 
크고 작은 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이러한 상식은 제멜바이스의 발견을 통해 널리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