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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장 복을 원한다면

LNCK 2025. 3. 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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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16일 "복을 원한다면(창세기 12:1~4)"  - YouTube


복을 원한다면                 창12:1~4             2025.02.16. 

하나님께서 교회 창립 80주년 기념사업 중의 하나로 
경남 양산에 사송영락교회를 개척하고 창립 예배를 드리고 
또 예배당을 헌당하게 하셨습니다. 그 전체 예배 영상이 여러군데 올라와 있고 
오늘은 간추린 영상을 여러분들께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일을 하게 되었는데, 오늘이 사송영락교회에서 전혁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해서 예배하는 첫 번째 주일이 될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이렇게 80주년 기념 여러 사역이 진행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이어갈 텐데 
여러분들께서 끝까지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올해가 바로 창립 80년 아닙니까? 
또 그 일 외에도 우리 교회 시설이 너무 오래되고 많이 낙후됐어요. 
그래서 우리 후손들이 한 30년은 마음 놓고 예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50주년 기념관'부터 시작해서, 봉사관 등등 많은 곳들을 이제 리모델링 내지 
수리하는 일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 많이 기도하시고, 또 예물도 많이 참여해서 드려 주시고 
그렇게 해서 어려운 일이 없이 하나님께 영광되는 일이 잘 끝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창세기는 50장까지 있습니다. 
학자들은 1~11장까지는 소위 '원 역사'라고 따로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1~11장까지는 인류 전체에 관한 이야기고, 
12장부터는 이스라엘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죠. 

그 이스라엘 이야기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민족의 조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는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는 또 하나의 별칭이 있는데 '복의 사람, 복의 조상' 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읽은 본문 창12:2~3절에서 그에게 복을 말씀하셨는데 
우리 다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내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멘 

아브라함이 복을 받을뿐만 
그 복이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져서 복의 통로가 될 것을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아브라함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후손에게로 이어져 내려간 것을 보게 됩니다. 

복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이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저도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욕심 사나워서 더 많이 받고 싶은데, 
복을 사모하는 것은 누구도 흉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예배 드리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다양한 복, 신령한 복, 
기름진 복이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가 복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자 그러면, 이 복을 얻고 누리고 살아가며 나누는 비결이 뭔가? 
오늘 본문에서 배우게 되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떠나서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주제 

여러분, 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2:1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펜이 있으신 분은 거기 동사 두 개에다 표시하시면 되겠죠. 
'떠나', '가라
떠나서 가는 것이 복된 사람이 되는 비결입니다.

이 시간에는 성도의 떠나가는 것, 이동하는 것에 관해서 함께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이 떠나가는 그 이동은, 두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이 첫 번째 이동을 주도한 이는 그의 부친인 데라였습니다.

이 데라는 가족들과 함께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었죠. 
그의 나이 70세에 아들 셋을 낳았는데요. 
11:26절에, '데라는 70세에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이 기록이 출생 순서대로라고 한다면, 아브라함이 맏이고, 하란은 막내였죠.
그런데 어느 날 데라는 모든 가족을 인솔해서 갈대아 우르를 떠납니다. 
그래서 하란을 향해 가게 되는데요.

11:31절 '데라가 그 아들 아브라함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가 왜 갈대아 우르를 떠나기로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11:28절에서 보는 것처럼, 막내아들 하란이 거기서 (우르에서) 죽었기 때문에, 
'아들 죽은 곳에 살고 싶지 않아...' 이런 생각을 했을는지도 모르겠어요. 

또 그보다 더 타당성 있는 추측은, 갈대야 우르보다 
하란으로 옮겨 사는 것이 유리하지 않겠나? 여러 가지 실리적 면에서의 판단 때문에 
우르를 떠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여러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은, 방금 전에 읽은 말씀에 있는 것처럼,
데라의 원래 목적지는 하란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는 가나안을 목적지로 삼았어요. 
그래서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11:31

 

원래 목적지는 가나안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가나안으로 가는 중간에 하란이란 곳을 거치게 되는데, 
그는 하란에 주저앉아서 거기 살다가, 거기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1:32절을 보시면 '데라는 나이가 205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목적은 가나안에 두었는데, 현실 속에서는 그냥 중간 지점인
하란에서 머물고 말았다 하는 겁니다.  *하란은 오늘날의 터키, 우르는 오늘날의 이라크

여러분 그가 왜 목적지를 가나안으로 삼고도 가질 않고, 
하란에서 머물러 거기 살다가 죽었나... 이걸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막상 살아보니, '하란이 살기 좋아' 라고 생각을 했거나, 
또 시간이 지나다 보면, 누구나 목적에 대한 생각이 흐려지기 쉬운 거니까, 
아마 이런저런 것들이 다 합쳐지면서, 하란에 눌러 앉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하란은 살기가 좋은 곳이었죠. 
여러분 지금 성지순례를 가서 하란에 가보면 아주 척박합니다만,
주전 3,500년경에 발견된 여러 고고학적 유적에 의하면, 

 

하란은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었고, 
또한 상업의 중심지여서, 종교의 중심지로서 굉장히 번성했다는 여러 증거들을 
우리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하란'이라고 하는 이름의 뜻 자체가 '교차로'라는 뜻입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물동량이 오가며 만나는... 
그러니 하란이 굉장히 번영했던 곳이었죠.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서, 데라는 하란에 주저앉았고, 거기서 죽었죠.
데라는 결국 가나안에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이게 첫 번째 이동입니다. 목적지가 가나안이었지만 도달하지 못하고, 
하란에서 눌러앉아 살다가 거기서 죽은 것... 이게 데라가 주도한 첫 번째 이동이었죠. 
목적지에 가지 못했으니 '실패한 이동이었다'고도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 이동은 거기서 얼마 동안 살던 어느 날,   
이번에는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이 주도해서, 하란을 떠나서 
원래 목적지인 가나안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12:5절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드디어 그는 가나안에 들어갔어요. 여러분 이 가나안이 
우리의 천국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면, 
중도에 주저앉는 사람 없이, 우리 모두도 그 목적지에 들어가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게 두 번째 이동이었고, 아브라함이 주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까지, 
또 하란을 떠나 가나안까지 두 단계로 이루어졌다고 할 때,
이 첫 번째 이동과 두 번째 이동의 결정적 차이점이 뭘까요? 

그 결정적 차이는 다른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는가?' 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첫 번째 이동에는 '하나님'의 언급이 없어요. 
그냥 데라가 가족들과 함께 떠난 겁니다. 
사람의 판단, 사람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어요. 

그러나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으로 가는 이 두 번째 이동은, 
명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으니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었죠. 

여러분, 아까 읽은 1절을 제가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12:1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으로써 시작된 것이었어요.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12:1 
하나님께서 보여줄 땅이 바로 가나안이었어요. 

명하신 분도 하나님, 그 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었고, 
아브라함은 4절에 있는 것처럼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12:4절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에 75세였더라' 

그래서 첫 번째 이동은, 사람의 생각에 의한 것이었어요. 
그러나 두 번째 이동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른 것이었어요. 

◑자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하란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다시 한번 떠나도록 명하신 것이었을까요? 

언뜻 생각하면 하란도 살기 좋지만, 가나안이 더 기름지고 
더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에 가라고 하신거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우리는 그런 선입견을 많이 가집니다. 

왜 그러냐 하면 '가나안' 그러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흔히 말하기 때문에 
'더 좋은 곳이기 때문에 가라고 하셨어!'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근데 여러분, 그게 성경을 오해하는 큰 올무가 되는 거죠. 

'가나안이 더 좋은 땅이기 때문에 가라'고 하신게 아니에요. 
여러분 가나안 그 자체는 복의 땅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나안에만 들어가면 복된 삶을 살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성경에 얼마나 많습니까?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 아브라함의 후손이 큰 민족 이스라엘이 돼서 
애굽에 살다가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에 결국은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그럼 가나안에서 아주 번성하고 잘 살았나... 복의 땅이 되었는가? ... 아닙니다. 

그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그들은 분열 왕국을 이루어서 
북왕국 이스라엘, 남왕국 유다로 계속 싸우면서 갈등하다가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처참하게 멸망했어요, 

가나안이라는 땅 자체가 복의 땅인 건 아니에요. 거기서도 멸망해버린 걸 보면
가나안이 더 좋아서 가라고 하시는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으로 가게 하신 것은 
'하란을 떠난다'는데 목적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하란은 왜 떠나야 되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답게 더 성숙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그의 발목을 잡는 곳이 그곳이었기 때문에, 벗어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떠나라고 하시는 것이고, 그 보여주신 곳이 가나안이었을 뿐인 것입니다.
'떠난다'고 하는 의미가 훨씬 더 강하다는 걸,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12:1절은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라고 말씀한 거죠. 
'아버지의 집을 떠나' 이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가장 중요한 이유였죠. 

자 그럼 '아버지의 집' 그러면  
우리는 굉장히 친숙하고, 오히려 찾아가야 되고, 머물러야 될 곳으로 생각하는데 
여기서 '아버지의 집'은 어떤 신앙적 의미를 가진 것일까요? 

그 '아버지의 집'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답게 서지 못하게 만드는 
여러 욕망, 여러 올무, 여러 구습 ... 그런 것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곳, 
거기가 지금 여기서는 '아버지의 집'이라고 이렇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죠. 

데라가 그렇잖아요. 여러분 데라는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지만 
하란에서 미적미적하다가 그냥 주저앉아, 거기서 끝나고 말았잖아요. 

바로 그런 삶의 태도... 그게 이제 우리들에게 치명적인 거죠. 
그런 걸 벗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첫 번째 이동을 주도한 데라는, 하나님과는 무관한 사람 아닙니까?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 그게 '아버지의 집'인 것이죠. 
그걸 벗어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거예요.
데라의 직업이 뭐냐 하면, 우상을 깎아 만들어서 파는 것이었다...하는 전승이 있어요. 
어느 날 데라가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와서 보니, 화가 많이 났어요. 
집에 돌로 만든 우상, 나무로 만든 우상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우상들마다 입에 다 팥죽이 묻어 있더라는 거예요. *'우상 장사'였다고 하죠.

그래서 '누가 이런 짓을 했냐?' 
그리자 아브라함이 와서 '제가 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냐?' 
'시장 하실 것 같아서 제가 팥죽을 입에다 넣어 드렸습니다' 

데라가 화가 나서 '아니 깎아 만든 이 돌덩어리, 나무덩어리가 
어찌 배가 고프며, 또한 뭘 먹는다고 그러느냐?' 

그러자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했대요. 
'아버지, 깎아 만들었기에 아무 생각도 없고, 배도 안 고프고, 생명도 없는 이 우상들을
아버지는 왜 팔고 계십니까?' 

여러분 데라가 우상숭배자라고 하는 말은, 여호수아의 말에 나와요. 
수24: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데라가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여기서 얘기하고 있잖아요. 
수24:3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갔던 데라는 우상숭배자였고, 
그는 그냥 거기서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의 아들 아브라함을 거기서 떠나게 해서 가나안 땅에 이르게 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신 거죠. 

이렇게 보면 그 데라의 집, 데라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 
데라의 삶의 방식이 행해지는 바로 거기가 '떠나야 될 아버지의 집'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어요. 

▲자 그럼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부가적으로 
아브라함이 아버지의 집을 떠난 때가 언젠가? 하는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사도행전 7장에는 스데반 집사님이 죽기 전에 설교하신 내용이 나와 있어요. 
행7:4절에 '데라가 죽은 다음에 아브라함이 떠난' 걸로 돼 있어요.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근데 그거는 아마 (스데반의) 착오라고 생각합니다. 나이를 계산해 보면 맞질 않아요. 
데라가 아들 셋을 나이 70에 낳았다고 그랬잖아요.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나이가 몇이라고 아까 읽었나요? 75세죠.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70에다 75를 더하면
그때 데라의 나이가 145세라는 계산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데라는 205세까지 살았다고요. 
그러니까 아들이 가나안으로 떠나고 나서도, 
데라는 하란에서 무려 60년을 더 살았다는 뜻이에요.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후에 죽었어요.  

아버지의 모든 걸 뿌리치고, 과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떠나는 
그 결단이 부각되는 거는, 오히려 나중 설명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저는 데라가 여전히 건재하면서, 아들을 만류하면서 
'그냥 여기 눌러앉아 살라' 할 때 (데라 생전에)
아브라함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야 되겠습니다' 
이런 결단을 가지고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아브라함은 하란을 떠났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출발한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게 복의 사람이 되는 비결이었다... 하는 것입니다

◑적용

여러분 아시죠? 우리들 각자 각자에게도 '아버지의 집'이 
다양하게 무수히 많다는 걸 아실 거예요. 

왜 내가 좀 더 아름다운 인생을 살지 못하는지? 
무엇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지? 
왜 내가 여전히 죄악된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왜 내가 하나님을 더 영화롭게 하는 삶으로 도약하지 못하는지? 

무엇이 나를 그 하란에 주저앉게 만들고 있는지? 
끊어내지 못하는 그 무엇? 
그게 다 우리들에게는 '아버지의 집'과 같은 것이에요.

저는 오늘 함께 예배하는 성도님들에게 
그것들을 끊어내고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걸 벗어날 수 있어야 되는 거죠. 
떠나서 가야 복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이동을 해야 될까요.? 

1) 첫째는, 시간의 이동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 흔히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장소' 중심으로 읽어요. 
하란이란 장소를 떠나서, 가나안이란 장소로 이동했다...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죠. 

그러나 여러분, 이거는 장소 이동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시간의 이동으로 이해해야 됩니다. 

하란은.. 그의 발목을 붙들고 있던 과거의 땅이에요.
이 과거의 모든 걸 이제는 내려놓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미래로 옮겨가는 것, 
이게 시간의 이동인 것이에요. 

여러분 두 주일 전에 했던 말씀을 기억하세요? 
아브라함 조슈아 헤셀 랍비가 '하나님께서는 공간보다 시간에 관심이 있으시다' 
하는 걸 말씀드렸잖아요. 

'우리는 어디 사는지, 얼마나 넓고 좋은데 사는지.. 이 공간에 매여서 살지만 
하나님은 시간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여러분, 과거에 매여서 살지 말고, 새로운 미래,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미래를 향해, 날마다 날마다 전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게 시간의 이동인 것이에요. 

과거에 매여 살지 않고, 축복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앞을 향해 나가는 삶의 모습이, 성도가 가져야 될 모습입니다.

2) 두 번째로 우리가 해야 될 이동은 '생각'이 이동해야 됩니다. 
그동안 우리의 생각을 붙들고 있었던, 과거를 지향하는 것들이 많이 있어요. 

'아, 하란은 살기 좋은 곳인데...'  
'여기 있으면 편안하고, 돈도 잘 벌리고, 여기는 참 좋은 곳이야, 난 여기가 좋아'
하는 그 생각을, 우리를 버리고, 
어떤 타성에 사로잡히게 하는 그거를 과감하게 끊어내고 
'아니야, 고단하고 힘들고 어려워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야 돼' 
이게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대로, 우리 생각을 옮겨야 됩니다. 
그 전에는 '부귀영화, 하란에서의 안락한 삶', 이것에 내 생각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그 생각을 떼어내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방향으로 옮겨가는
이 '생각의 전환'이 있어야 되는 거죠. 

여러분, 얽매이기 쉬운 모든 걸 벗어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히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여러분, 과거를 벗어 버릴 수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모든 과거의 부끄러운 것을 다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하는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자' 히12:1~2

얽매기 쉬운 모든 것 다 벗어 버리고 
이제는 방향을 돌려 미래를 향하여 
우리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주님만 바라보며 따라가는 사람으로 전환되어야 된다... 
그걸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죠. 
여러분 이게 성도가 복된 사람이 되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근데 여러분, 이게 (떠남이) 신구약 성경을 꿰뚫는 '복음의 기본 구조'라는 걸 아세요? 
복음의 기본 구조는 '떠나서 가는' 바로 그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죄인이, 죄인된 삶을 떠나서, 하나님의 자녀의 삶으로 옮겨 가는 그게 구원입니다. 
사단의 자식으로 살던 삶을 떠나서,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아들과 딸의 삶으로 
옮겨가는 그게 변화입니다. 

그리고 자기 욕심을 위해 살았던 그런 추한 욕망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사람으로 옮겨가는게 
거룩하게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게 복음의 축복인 것입니다. 
복음이라는 틀 안에는, 그게 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 가지고, 창기들과 다 탕진해버리고,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도 못 먹던 탕자가, 
그 부끄러운 삶을 다 던져 버리고, 아버지 한 분만 바라보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 그게 복음이죠. 

사울이, 유대 교권주의자들 아래서 영향을 받으면서 
율법주의의 사슬에 갇혀서 그게 최고인 줄 알고 살았던 한 젊은이가 
그거 다 내려놓고, 배설물처럼 여기면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이젠 바울이란 이름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달라지게 된
이 방향 전환이... 그게 복음의 능력 아닙니까. 
사울에서 바울로... 이게 복음의 기본 구조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으로 출발한 이 사건은 '구약의 복음의 역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복의 통로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그 복을 나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을 통해서, 온 세상의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게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라고 이야기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80주년을 맞이한 영락교회에도
이 '떠남'의 놀라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걸 아세요?   

80년 전에 한경직 목사님께서 신의주를 떠나서, 
여기 서울이란 낯선 곳으로 오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영락교회가 시작된 것이에요. 

신의주는 하란과도 같은 것이고, 이 낯선 서울 땅은 가나안과도 같은 곳이었어요.   

한목사님께는 신의주가 익숙한 곳이에요. 신의주 제2교회를 목회하시면서 
거기는 아는 사람도 아주 많고, 편안한 곳이었어요. 

그런데 왜 그곳을 벗어났는가요? 김일성과 소련군이 진주했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교회를 파괴했어요. 신앙을 억눌렀어요. 
예배의 자유가 없게 되었어요. '아, 이곳은 떠나야 되는 곳이구나' 
목사님은 과감하게 북한을 떠나신 것이죠. 

그러면 여기 왜 서울에 오셨나요? 
여기는 신앙의 자유, 양심의 자유, 예배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의 틀이 있는 곳이었어요. 

여기 와서 마음껏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한목사님은 '떠나서 가는' 이 축복의 원리를 따라서, 여기로 오신 것이에요. 

그래서 한목사님은, 여기서 많은 복을 받으셨고, 또한 복의 통로가 되셨습니다. 
한목사님이 이곳에 이렇게 옴으로써, 영락교회가 태동되었고, 
영락교회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았으며,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혔습니까? 

긍휼사역을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이 전해졌고, 
교육사역을 통해서 많은 학교들을 통한 믿음의 인재 교육이 시작되어서 열매를 맺고,
뿐만 아니라 군 선교를 비롯한 다양한 선교를 통해서 
민족 복음화, 세계복음화의 기치를 높게 들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이곳에서 목사님을 통해 온 세상에 흘러간 하나님의 복이 아니겠습니까? 
영락교회 자체가 그렇게 (떠나서, 가라) 해서 시작이 됐고, 
그래서 복이 되고 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80주년을 맞이했는데,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은 뭘까요?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여기가 또 하나의 하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안주하고, '그냥 여기가 좋아' 이렇게 하면서 주저앉아 있으면 
이곳이 또 우리의 발목을 잡는 하란이 된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마치 벌레가 허물을 벗으면서 날아가 새로워지듯이 
우리도 우리의 구습, 우리의 찌꺼기 같은 모든 것, 
우리를 여기 주저앉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계속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계속 떠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교회와 성도로 비상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복을 받고, 우리 교회도 복을 받고, 온 대한민국 사회에, 
온 세계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복을 흘려보낼 수 있는 
멋진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주여, 과감하게 떠나게 하시고, 새로움에 도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게 우리의 기도 제목인 것입니다. 

▲이 '떠나서 가는' 이 공식에 익숙한 사람은, 
언젠가 우리 생애 맨 마지막의 떠남도 잘 하게 될 거예요. 

우리 생애 맨 마지막 떠남은 이겁니다. 
'얘야 너 거기 이 세상이라는 하란에서 산다고 그동안 수고 많았다. 
이제 너를 위해 준비한 영원한 새 예루살렘, 새로운 가나안을 너에게 줄 거니까 
떠나라'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떠나서 가는데 익숙한 성도는, 그때 할렐루야 찬송하며
이 세상을 떠나서 저 영원한 생명의 가나안 축복의 천국에 들어가서 
우리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존재하면서 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순례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떠나서 감으로 복이 되고,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도, 우리 교회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 아버지 하나님 '떠나서 가는데' 모든 복이 들어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주신 목적을 향해 가게 하시고, 
현실에 안일함과 타성을 벗어나서 궁극적으로는 천국에 이르는 그날까지 
우리 공동체도, 우리 개개인도, 떠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현실의 주저앉아 있는 어리석은 이가 한 사람도 없이, 
과감하게 비상하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