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기도는 인소싱인가 아웃소싱인가? 2025.02.23 - YouTube
◈당신의 기도는 인소싱인가 아웃소싱인가? 삼상12:14-25 2025.02.23.
오늘 설교 제목은 "당신의 기도는 인소싱 인가 아웃소싱 인가" 입니다.
제목이 특이할 수 있는데, 소스 source 라는 것이 자원, 원천 이란 뜻이죠.
그래서 '기도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인가' *인소싱
'기도가 어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인가?' *아웃소싱
사무엘상 강의 19번째 시간입니다. 사울이 왕으로 정식으로 옹립되고,
그간 백성들을 사사로서 지도했던 사무엘이
공식적인 고별설교를 하는 내용을, 지난 주에 이어서 계속 살펴봅니다.
◑삼상12:14~15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제가 어제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14절도 '너희가 만일'
15절도 '너희가 만일'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질문이 한 가지 생겼어요.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인가, 조건적인 사랑인가?'
우리가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이 달라진다면,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절대적인 사랑이다' 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잖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압도적인 사랑을 베푸신다는 걸 알고,
어떤 사람이 모든 걸 자기 마음대로 자행자지 하는 거예요.
모든 걸 제 멋대로 하면서 '그래도 하나님은 여전히 날 사랑하신다잖아'
이렇게 당연하게 믿는다면,
그는 '하나님이 기계적으로 반응하시는 분이시다' 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절대적인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하지만 또한 하나님은 기계적인 분이 아니라, 인격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본문의 상황이,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너희가 만일... 너희가 만일...'
이 얘기를 하시는 타이밍이 역사의 어느 시점인가요?
사사시대가 총 몇 년이었어요? 360년.
360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 백성들이 불순종하고 우상숭배를 해왔거든요.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한 번 더 타일러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오래 기다려주셨는데도 변하는 게 거의 없다...
그러면 '이스라엘 너희와는 이제 끝이야!' 이렇게 하는 게 정상 아니겠어요?
여러분 직장에서 신입 직원을 뽑았는데 1년 내내 일을 안 해요.
'그래도 언젠간 일을 하겠지...' 그러고 하염없이 기다려주나요?
하나님은 무려 (사사시대) 360년을 기다려주신 거예요.
그리고는 또 한 번 그들에게 '얘들아, 그래도 너희가 잘하면 좋지 않겠니?'
이 얘기를 하고 계시는 겁니다.
'너희가 만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면,
너희와 너희 왕이, 계속 잘 지낼 거야...' 원어상으로 이렇게 표현되어 있어요.
'그리고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않고, 하나님께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against you 할 거야.
여호와의 손이 전에는 너희를 위해서 존재했다면,
이제는 너희를 대적하는 쪽으로, 하나님의 손(능력)이 능력이 발휘될 것이다!'
360년 동안 기다려주신 하나님의 심정이 어떨까요?
여러분 그렇게 오래도록 기다려 보셨어요?
▲그래서 제가 요즘 많이 묵상하는 것이 하나님의 고통 suffering of God 입니다.
'하나님이 고통을 느끼신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그거 좀 이상한 표현이잖아요.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Long-suffering (KJV)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영어로 뭐라고 돼 있어요? Long-suffering
하나님이 오래도록 고통을 당하신다는 거예요.
흠도, 점도, 죄도 없으신 그 하나님이,
죄많은 우리를 포기하실 수 없어서 기다려주시느라고
360년을 기다리시고, 지난 역사의 수천 년을 기다리셨잖아요.
그분의 공의의 마음이, 매 순간 아프고 고통스러우시다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할 때가 많죠.
하나님이 누구의 허락을 받고, 세상을 창조하신 게 아니잖아요.
'하나님 맘대로 인간은 만들어 놓고, 인간들이 선악과 한번 따먹었다고 타락했다고...
그 오랜 세월동안 고통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시다니...
하나님은 무정하고 잔인한 분이시다...' 이렇게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죠.
정말 그럴까요? (아뇨, 오래 참으시고 기다려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겪으셔야만 했던 고통은
날마다 순간마다 어마어마한 고통이었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죄인인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품으실 때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장은 찢어질 듯이, 터질 듯이, 고통스러우신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가 공존하시는 분이잖아요.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숨을 쉬기 어려우셨던 것과 같은 거예요.
여러분, 양손에 못이 박히고 다리에 못이 박히고...
예수님께서 완전히 진이 빠지는 그 상황 가운데, 숨을 쉬기가 어려우신 거예요.
숨을 쉬려면 몸을 일으켜 세워야 되는데, 다리를 이렇게 세울 수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두 다리를 겹쳐서 발목에는 못이 박혀 있잖아요.
온몸의 하중이 거기에 쏠리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결국엔 몸을 (쳐져서) 일으키지 못하고, 숨을 쉬지 못하고, 산소가 들어오지 못하니까
호흡 산독증에 걸리게 돼 있어요.
그냥 계속 내 안에 나오는 이산화탄소만 계속 마시는 거예요.
그리고는 호흡을 할 수 없어서, 결국에는 산소부족으로 기진해서 죽게 됩니다.
여러분, 역사가 지속되는 내내, 하나님이 세상을 그냥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니라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너무나 마음이 고통스러운 가운데
우리를 끌어안고 계셨다.. 라는 거예요.
그리고는 '나는 이렇게 고통을 감내하고 있지만, 너희는 살았으면 좋겠다.
너희는 사는 길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그게 하나님의 마음인 거예요.
▲여러분,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은, 조금은 이해가 가실 거예요.
'내가 모든 고통을 끌어안더라도, 이 아이는 잘 되는 길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신30:19절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제발 사는 길을 선택해라. 제발 사는 길, 생명의 길, 복된 길을 선택해라!'
그러니까 하나님은, 선제적으로 절대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시지만
또한 우리가 인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사랑의 반응을 하기를 기다려주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오해의 마음들을 많이 거두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어지는 16, 17, 18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삼상12:16~18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시리라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분이 잘 (순종) 하셔야 됩니다.
잘못하면 하나님께 혼납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한 가지 징조를 보여줬죠.
갑자기 밀베는 때에 우레와 비가 땅에 내리도록 합니다.
'밀 베는 때'는, 여기는 지중해성 기후이기 때문에
우기인 한겨울이 다 지나고, 건기가 오는 때가 초여름이에요.
그 초여름은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아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무나 놀랐고, 모든 백성이 두려워서
그제야 하나님과 사무엘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6~18
▲뉴욕이나 토론토, 북미의 동부 지역엔 굉장히 폭설이 많이 내립니다.
캐나다의 캘거리, 에드문튼 이 지역도 겨울에 영하 30도,
주차장에 전기를 꽂아 놔야지 차가 얼지를 않거든요.
그럴 정도로 굉장히 춥고 폭설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에요.
이런 지역들은, 시장 뽑는 선거할 때, 제설 대책을 잘 세우는 사람을 시장으로 뽑는
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한 4~5년 사역을 했던 벤쿠버는 지중해성 기후이기 때문에
기온이 한겨울에 떨어져도 영하 4~5도 정도밖에 안 돼요. 눈이 안 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오면 난리가 나는 거예요. 온 도시가 난리가 나고,
관공서, 학교는 다 문을 닫습니다. 학생들은 너무나 좋아하죠.
근데 제설 장비가 없어요. 그래서 한 번은 제가 있는 동안
눈이 폭설로 너무 연속으로 오니까, 제설 장비를 멀리 떨어진,
차로 하면 열 시간 이상 달려야 되는 캘거리, 에드문튼에서
제설 장비를 가져오더라고요. 벤쿠버는 제설 대책이 아예 없는 동네예요.
이런 동네에는 폭설이 내리면 어려운 거죠.
몇 년 전에 몽골에 계신 선교사님이 소식을 전해 오기를,
몽골은 연간 강수량이 350 MM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폭우가 내려서, 그 홍수에 아이들이 떠내려가서 죽었다는 거예요.
제가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거기 몽골도 1년에 몇 차례밖에 비가 안 옵니다. 그래서 비에 대한 대책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이상기후로 비가 많이 오면... 난리가 나는 거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예요. 이스라엘도 연간 강수량이 지역마다 다르지만
연평균 500 MM 거든요. 그런데 비가 안 오는 시기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
홍수에 인명사고가 나는 지역이 이스라엘이에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갑자기 건기에 폭우가 내리니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 백성들은 하나님께 순종할 마음이 사실은 없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 복을 받고 싶은 욕심은 있었던 거죠.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되는 한 가지 영적 원리는,
'회개가 없는 참된 회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았는데, 그냥 위기만 모면하는 그것은,
진정한 회복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기상이변까지 일으키셔야 하셨는가요?
굳이 이렇게까지 엄포를 놓으셔야 했는가요?
그래서 우리가 11장으로 되돌아가서 역사를 생각해 보면,
암몬 족속이 공격을 했잖아요. 그런데 사사시대의 패턴으로 놓고 보면,
주변 이방 민족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는,
하나님이 그들을 징계의 도구로 쓰시는 거였어요.
이스라에이 우상숭배나 불순종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혼내실 타이밍에, 이방민족을 불러와 이스라엘을 치게 하셨는데,
그런데 여러분, 사사시대에 이게 열두 번이나 반복되었어요. *사사가 12인
그럴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저희가 잘못했어요. 하나님, 저희를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회개도 했고, 간구도 했다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회개도 하지 않았어요. 강청기도도 하지 않았어요.
사울 왕을 내세워서 해결했어요.
'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아도, 너무 손쉬운 해결법이 있네?'
이게 복이 아니라, 독이 된 거예요. 사무엘은 그걸 아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기상이변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사실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신호이고 시그널입니다.
우리 시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계신다고요.
마16: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기상을 분별하는 것처럼, 시대도 분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최근 전 세계의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합니다.
요즘 국내에 대형 이슈들이 많아서 그렇지만
지난 2월 말에 이런 뉴스들이 있었어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시작됐잖아요.
그런데 그 우한에서 코로나19보다 더 감염력이 강한 신종 바이러스가 발견됐다고 해요.
(그런데 인체 감염은 안 된다고 하죠)
그리고 지난 2월 26일에는, 우간다에서 에블라 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해서
우리나라 질병관리청에서, 그 주변에 있는 7개 국가를
검역 대상 지역으로 지정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더 많이 누리고 싶고, 더 풍요롭게, 더 편리하게 살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잖아요.
결국엔 인간이 욕심을 멈추지 못하기 때문에,
지구의 평균 기온은 계속 오르고...
1도, 2도, 3도 오르면 오를수록, 그만큼 병충해가 많아지고,
그만큼 전염병이 확산되기 적합한 환경을 조성해주고 있는 거죠.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깨어있을지어다!
이 시대를, 겉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어떤 메시지를 보낸다고 생각하시는가요?
지구의 환경 파괴 문제, 기후변화 문제, 지구는 더 이상 좋아지지 않아요.
계속 안 좋아지는 방향으로 간다고... 이미 성경이 예고했어요.
지난 100년 동안 지진, 쓰나미가 인류 역사에서 이렇게 많이 빈발한 적이 없고,
팬데믹, 전염병이 이렇게 많이 창궐한 적이 없어요.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 것인가요?
'내가 조금이라도 더 치열하게 경쟁해서 더 많이 벌어야지.. 더 많이 가져야지..
더 많이 누려야지...'
이 욕심에 브레이크를 거는 내적인 자각이 일어나야 되지 않는가요?
▲인간의 탐욕은, 언제나 하나님보다, 그 탐욕을 하나님 위에 두게 돼 있어요.
여러분 '내가 하나님도 믿어요' 그런데 탐욕이 있어요.
'탐심'이라는 것은 굉장히 광범위한 것이거든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위증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 말라... 이 모든 게 다 탐욕이에요.
다른 사람의 생명, 다른 사람의 성, 다른 사람의 진실, 다른 사람의 소유,
다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탐내는 게 ... 탐심이에요.
그래서 인간에게 '탐심'이라는 게 얼마나 광범위하고 강력한 것인지 모릅니다.
심지어 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믿는데 탐심이 있으면
탐심을 하나님보다 위에 둔다고요. 이게 제 얘기가 아니라 성경의 얘기입니다.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그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이. 인간의 욕심이... 절제되지 않는 폭주기관차와 같습니다.
이 탐심이 하나님보다 더 높아진 것이다... (탐심은 우상숭배니까요)
하나님을 찬양하던 천사가,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는 탐심 때문에
사탄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잖아요.
그 동일한 심리 패턴을 사람에게 심어줘서, 사탄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다는 탐심을 갖게 해서
선악과를 따 먹고 타락하게 만든 거잖아요.
탐심은 사람을 부요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아니라, 인간을 빈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영혼에 채울 수 없는 구멍을 뚫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탐심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귀하게 고양시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짐승의 본능으로 추락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의 극단적 인본주의와 유물론적 관점의 세계관이 매우 위험한 거예요.
'이제 인류 문명은 어디로 가겠는가?'
좀 더 화려하고 부유한 세상을 만드는 쪽으로 가겠는가?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되지 않는가요?
여러분,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가 된 줄로 믿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하나님께 돌아가야 돼요.
◑삼상12:19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자 백성들이 잘못했다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이거 좋은 얘기 같은데,
제가 이 구절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어요.
'왜 그들 자신이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왜 사무엘에게 기도를 시켰을까요?'
여러분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긴 하는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무슨 얘기를 해야 될지 모르겠는 거예요.
이게 안타까운 그들의 영적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다같이 모여서 예배를 드릴 때는, 굉장히 은혜가 충만한 것 같잖아요.
하나님하고 친한 것 같은데,
그런데 하나님하고 단둘이 있어 보면,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친구들이 다 같이 모여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웃고 떠들 때는.. 다 친한 것 같잖아요.
그런데 두 사람만 딱 남겨두면, 친한지 안 친한지 금방 알 수 있죠.
그 상황에서 어색한 사람이 있어요.
1분도 안 됐는데 어색한 사람...
그렇지만 1시간째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서도, 아무 얘기를 안 해도,
편안한 사람이 있죠.
나는 하나님과 정말 그렇게 친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신앙인가요?
▲왕상 18장을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불로 응답을 받고
바알 선지자들에게 승리를 거두는 놀라운 장면이 나와요.
그런데 이 사건이 왜 일어났는가요?
북이스라엘의 최악의 왕이었던 아합이 우상 숭배를 너무 많이 했어요.
하나님께 불순종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3년 반 동안, 이스라엘 땅에 비를 한 방울도 내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니까 난리가 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날 엘리야에게 놀라운 승리를 거두게 하시고,
그리고는 하나님께 비를 구해야 될 타이밍이 되었는데,
그러면 여러분 이 순간에, 아합왕이 하나님께 비를 달라고 기도를 해야 될까요?
엘리아가 기도를 해야 될까요? 둘 다 기도해야 되지만,
이 때는 아합이 기도를 더 해야 되는 거예요. 백성을 지키는 왕이니까요!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제는 좀 비를 내려주십시오.
하나님이 지존하신 분이라는 건 제가 인정하겠습니다. 하나님 비를 좀 주십시오!'
이 기도를 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근데 성경을 보면 거꾸로 돼 있습니다.
왕상18: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아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하루 종일 대결하느라 진이 빠진 엘리아가, 다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합니다.
그것도 저 바다로부터, 대해(지중해)로부터 비구름이 올라오지 않으니까
일곱 번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아합은 올라가서 빈둥거리고 있어요. 거꾸로 된 거잖아요.
여러분 사무엘에게 지금 중보 기도를 시킬 문제인가요?
아니면 그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서 기도할 상황인가요?
▲제가 오늘날 이상한 현상을 한 가지 보게 됐어요.
그게 제가 오늘 설교의 제목으로 잡은 건데
'나는 기도하지 않는데, 기도에 아웃소싱을 주는 거예요. 외주를 주는 거예요.'
어떤 분이 저에게, 자기 인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한참을 얘기하셔서,
'이분이 고민이 많이 되고, 근심 걱정을 하나 보다... 그리고 기도 부탁을 하나 보다...'
그랬는데, 갑자기 '근데 저는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자기가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고,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 있대요.
'난 기도 안 해!, 난 기도해도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몰라요.' 이럽니다.
여러분 진로 문제, 결혼 문제, 이사 문제, 재정 문제, 사업 문제...
이런 인생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고,
'누군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면 되는 거야'
우리가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찬송을 잘못 적용해서
'나는 주일날 예배도 잘 못 나가지만... 그래서 엄마가 날 위해 기도해 주잖아!'
그러면서 믿고 안심합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거죠)
'아빠, 맨날 날 위해 새벽 기도하고 있지?'
'엄마 아빠가 날 위해 기도해 주고, 친한 목사님이 기도해 주고,
선교지에서 만난 선교사님이 기도해 주고,
내가 정기적으로 후원금 보내는 시골의 목회자들이 기도해 주고...'
이러면서 정작 본인은 기도하지 않는 거예요. 기도 위탁 서비스를 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의 기도는 인소싱인가요, 아웃소싱인가요?
내 영혼의 밑바닥으로부터 진정성 있게, 하나님 앞에 내 중심을 쏟아놓고 토해내며
기도하고 있는가요?
몸부림치며 내가 하나님 앞에 막 매달리고 있는가요?
아니면 기도를 외주 업체에 물품 조달시키듯이, 이렇게 기도를 하고 있는가요?
여러분 사무엘이 기상이변으로 경고를 하니까,
그제야 사람들이 조금 반응을 합니다.
그런데 아직 이들은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올 마음이 없어요.
그래서 왕을 구했던 것이고, 왕을 구한 결과, 40년 동안 고생하게 됩니다. *사울 치세
여러분, 이게 문제의 해결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가끔은 그런 경우가 있더라고요.
정말 수백만 원짜리 개인과외, 고액 학원, 이런데 보내서
숙제도 선생님이 다 해주고, 좋은 성적도 선생님이 다 받게 해주고...
여러분 그러면, 본인이 공부하는 습관이 안 들어있고,
본인이 난관을 뚫어본 적이 없고,
본인이 실력을 쌓은 적이 없는데,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와, 그걸로 인생이 다 해결될까요?'
아뇨, 점점 더 위태로운 인생으로 들어가는 거죠.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환란과 많은 곤란함이 있는데
그 곤경을 내가 뚫고 가지 않고,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해결하는 것,
'사무엘 선지자님, 제발 기도해 주세요...' 12:19
하지 말고, 우리가 기도해야 됩니다.
내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나아가야 됩니다.
'기도할 때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 그럼 거기서부터 시작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인생이 갑자기 곤란스러우면 새벽기도 나오시는데,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면... 그냥 앉아있다가 돌아가셔도 돼요.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하고 다시 그 멀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거죠.
'내 부모님을 만나 주신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십시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십시오!'
이 기도를 우리가 드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삼상12:20~22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사무엘이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성경에서 이 대사가 나올 때는, 언제나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러
꼭 이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게다가 방금 전에는, 본인이 기도해서 기상이변으로 사람을 두렵게 만들어놓고, :18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래요. 왜 이렇게 얘기하지요?
그래서 사무엘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진의는 뭐냐면
'그렇게 하나님께 혼날까 봐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워만 하지 말고, 좀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되지 않겠냐?'
하면서 세 가지를 얘기했어요.
첫째, 온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라
둘째, 돌아서서 우상 숭배하지 마라
셋째,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여러분, 오늘 본문 21절에 나오는
'유익하기도 못하고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헛된 것'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우상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21절에 '그들은 헛되니라'
비인격적인 우상들, 그 배후에 있는 어둠의 세력들에게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런 거 하지 마라, 우상 숭배하지 마라, 그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신다'
여러분 집에서 자녀들 키워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애가 뭔가를 계속 잘못하면 '경고하고 경고하다가' 혼내잖아요.
혼내면, 무서워서 울기만 한다고요.
그런데 얘를 볼 때 안타까운 건, 무서워서 울기만 하지,
그 다음에 자기가 행동을 근본적으로 고쳐야지... 그 생각까지 가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는 '어떻게 하면 혼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모면할까?'
그리고 그 순간이 딱 지나가고 나면, 그 문제의 행동 패턴을, 그대로 또 다시 하는 거예요.
사무엘은 이걸 너무나 정확하게 아는 거죠. 그러니까 얘기하는 거예요.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도해서) 움직여갈 수 있을까?'
이건 샤머니즘적인 발상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보좌를 흔드는 기도'는, 자칫 잘못하면 신성모독이에요. 신성모독!
여러분, 온 우주 만물 가운데 그분이 유일한 지존자이신데,
내가 기도해서, 그분의 보좌가 흔들리면... 온 세상이 흔들리는 거잖아요.
그분은 가만히 계시고, 내가 뒤집어져야죠. 내 마음이 다시 기경돼야죠.
내 인생이 새로워져야죠.
근데 하나님을 흔들어서까지라도, 내가 원하는 상황으로 바꾸고 싶은 거예요.
내가 원하는 응답을 받고 싶은 거예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주셨어요.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최고 최선의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문제는 내가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는 게 문제예요.
그래서 인생의 헛된 우상들을 버리세요.
하나님보다 더 애지중지하는 것들, '나는 이거 없이 못 산다' 하는 것들,
내가 인생이 힘들 때, 어려울 때, 내 마음이 고갈됐을 때, 지쳤을 때,
하나님께 달려가지 않고 내가 의지하는 것들... 그거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세요.
어떤 분들은, 그렇게 심방을 요청해가지고 제가 시간 내서 가보면,
집안 거실 한가운데 이만한 벽장에 양주를 그냥 진열을 해 놓았더라고요.
그분이 어려울 때 하나님을 의지할까요? 양주를 의지할까요?
치우기가 좀 애매하시긴 했을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보다 내가 더 의지하는 거를 내려놔야 됩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 가운데는 '내가 원하는 것들, 난 이건 포기 못하지!'
이런 거 딱 붙잡고 있으면서, '근데 하나님이 나한테 혼내지 않으실까?'
'하나님 나한테 잘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이런 것만 걱정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께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게으른 나 자신, 영적 통찰력이 부족한 나 자신, 바른 선택을 잘 못하는 나 자신,
결단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 걱정해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자, 사무엘이 자신의 지도자의 마음을 나누는 게 23절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삼상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자 여러분, 저(사무엘)는 지도자의 자리에서 은퇴하지만, 기도는 멈추지 않겠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멈추지 않겠습니다.'
지난주 '보라 (성경)통독 심화반'에서, 첫 모임이어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는데
한 분이 나이가 들다 보니까, 주변에 치매에 걸리는 분들이 많아서
'하나님, 내 인생의 마지막에 두렵습니다' 이런 걱정이 된대요.
또 어떤 분이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깝고, 억울합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듣다가, 두 얘기를 종합해서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자기 사명도 다 완수했고,
치매도 없이 건강할 때 가셨다...' 그러면 복된 인생을 사신 거잖아요.
우리가 성경에서 성경의 인물들,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해석하는 관점이
나에 대해서 그대로 적용되거든요.
'모세가 이렇게 헌신했는데, 하나님 너무하신 거 아니야?'
아니 모세가 건강할 때 떠나신 거... 감사한 거 아닌가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걱정들을 많이 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자기들을 혼내실까 봐 걱정하고,
사무엘이 더 이상 기도 안 해줄까 봐 걱정하고...'
그런데 사무엘은 정반대로 걱정하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데, 왜 하나님을 걱정을 하냐?
나도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는 거를 멈추지 않을 텐데, 왜 걱정하냐?
여러분 자신을 걱정해야 된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잘하면, 하나님이 왜 잘해주지 않으시겠느냐?' 이 얘기예요.
여러분, 이 시대를 보세요. 하나님이 인류 역사를 어떻게 경영하실까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러우 전쟁이 지금 3년째인데, 또 협상이 결렬됐잖아요.
'하나님이 지금 한국의 정치 현실이 굉장히 불안한데,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어 가실까?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앞으로 어디로 인도해 가실까?'
이렇게 하나님이 제대로 뭔가를 하실까 봐, 걱정이 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새벽 기도회에 나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새벽에 나오는 건 쉽지 않잖아요.
근데 새벽에 나와서 계속 기도하는 내용이
하나님이 걱정스러워서, 하나님한테 잔소리하는 거예요. 이런 분들이 계세요.
'내가 진작에 몇 번이나 이 얘기를 했는데, 왜 아직도 해결을 안 하시냐고?'
새벽기도 나와서 하나님을 혼내잖아요.
'하나님 제대로 하세요. 내가 다 보고 있어요.'
하나님한테 이래라 저래라 얘기하는 게 기도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에 최선의 계획을 갖고 계세요.'
내가 거기에 부응을 못하는 것이 걱정스러운 것이지,
하나님 파트를 왜 걱정하는가요? 사무엘이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이와 같다면, 우리는 정말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인가요?
약1:6~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 더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죽게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여러분, 믿음으로 기도하세요.
믿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내가 뭘 구하든 하나님이 다 해주실 거야'
이런 밀어붙이기 식의, 자기 세뇌식의 기도를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인격적 신뢰!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이 인격적 신뢰 가운데 기도하라는 거예요.
근데 만약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이 뭔가 내 인생을 좀 삐딱하게 하면 어떡하지?'
'내가 원하지 않는 걸 나한테 시키면 어떡하지? 나한테 좋은 걸 안 해주면 어떡하지?'
이렇게 하나님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얻을 생각조차 하지 마라'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는 시간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즘 요한복음 큐티하잖아요.
요17: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
영생이 어떤 초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영생이라는 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는 거예요.
그냥 그분이 아버지이신 걸 알고, 깊이 교제하는 사람들이, 천국에 간다는 거예요.
내 인생에 어떤 행위들이 완벽해서,
아니면 내가 어떤 교리의 공식을 잘 외워서,
내가 천국행 티켓을 따서 들어가는 데가 아니라,
평소에 아버지와 친밀하게 지내다가 (알다가), 나중에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사무엘 시대의 사람들처럼
'부모님이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이 기도해 주세요. 순장님이 기도해 주세요.'
그러면서 나는 하나님하고 아무 친밀함이 없다면,
하나님은 안타까워 하시는 거예요.
그 상태에서는 건강한 인생, 온전한 인생, 곧 '영생'이 유지되기가 어렵기 때문이에요.
위태위태한 거예요...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