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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1장 성령님의 세상, 흩어지고 모이다

LNCK 2025. 3. 1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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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19일 "성령님의 세상-흩어지고 모이다 - YouTube

◈성령님의 세상 - 흩어지고 모이다           행11:19~21        2025.02.19.   

※사도행전을 "흩어짐과 모임"이라는 렌즈를 가지고 
1장부터 28장까지를 가만히 보면, 
계속 하나님께서는 모이게 하셨다가, 흩어지게 하셨다가, 
또 모이게 하셨다가, 또 흩어지게 하셨다... 이게 반복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도입 / 인생은 '헤쳐 모여'

오늘 저는 참 마음이 기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저 2층에 제가 전에 목회하던 교회의 중등부 학생들이 
선생님이 인솔해서 서울로 견학을 왔어요. 방학이라서.

근데 제가 부산에서 목회할 때, 중동부 학생들을 어딜 좀 보내야 되겠다 
생각을 해 가지고, 일본에 보내고 그랬었는데, 
보니까, 한 해는 일본에 가고, 한 해는 일본보다 훨씬 먼 서울에 옵니다.

거기 부산에서는 일본이 엎드리면 코 닿는 데입니다. 
부산항에 나가서 배 타면, 금방 일본에 가요. 근데 서울이 훨씬 멀죠. 

아까 저녁 먹으면서 '서울에 처음 온 사람 있니?' 그랬더니 2명이 손 들었어요. 
서울을 처음 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중학생들에게는 아주 의미가 있는 여행입니다.  

오늘 도착해 가지고, 영락교회에 왔고요. 
일정을 보니까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도 갈 거고, 
또 '용인 순교자 박물관'에도 갈 거고, 
또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새문안교회에도 갈 거고, 
또 금요일 날 저녁에는 어디 유명한 금요기도회에도 참석을 할 거고, 
또 서울 시내에서 자유시간도 좀 가질 거고... 오늘 저녁에는 영락교회를 왔습니다. 

 

그래서 한경직 목사님 기념관을 보기도 하고, 우리 교회에서 함꼐 예배도 드리는데 
우리 중학생들이 온 것도 참 기쁘지만,
저기 인솔한 선생님들 중에는, 그 부모님을 제가 주례했는데, 
그분의 아들이 교사가 돼서 왔고, 
제가 주례했던 그 분은 또 장로 피택이 됐고, 
한 교회에 오래 있으니까 그런 일이 있는 거죠. 

아이들한테 '나한테 유아세례 받은 사람 손 들어 보세요!' 
그러니까 여러 명이 손을 드네요.
이렇게 잘 커서 또 중학생이 되어서 기쁩니다. 

또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거기 고등부에서 이번에 서울로 대학에 합격해서 
오는 학생이 세 명 있는데, 다 영락교회 대학부에서 모이기로 했답니다.

선배가 대학부에 먼저 다니고 있거든요. 그래서 참 고마운 거 같습니다. 
제가 거기서 싸우고 왔으면, 안 찾아올 텐데요. 하하하... 아이고 감사해요. 

그러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렇게 헤어졌지만, 또 이렇게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잖아요. 그렇죠? 
전혀 생각지 않았던 곳에서 만나고, 
우리 인생은 그래서 헤어지고 또 만나고, 또 헤어졌다가 또 만났다가를 반복합니다.

여러분 옛날에 학교 다닐 때나, 또 군대 갔다 오신 분들은 
'헤쳐 모여!' 그런 거 하잖아요. 그래서 쫙 흩어졌다가 다시 또 모이잖아요. 

우리 인생이 그런 '헤쳐 모여'의 반복인 거 같습니다. 
본인이 원해서 이렇게 서로 떨어져 갈 때도 있지만, 

어떤 삶의 필요에 의해서, 공부하러 먼데 간다던가, 
또 혹은 직장을 따라서 멀리 떠난다든가, 그래서 떨어질 때도 있지만, 
또 나중에 다시 모이지 않습니까. 헤쳐 모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멀리 갔다가도, 명절이 되면 부모님 집으로 모여 오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참 '헤쳐 모여'가 있고, 그 과정 속에 여러 가지 감정이 
다 교차하는 것 같습니다. 

헤어질 때,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눈물의 작별도 있는가 하면, 
또 좀 의가 상해 가지고, 화가 나서 헤어지는 사람도 있을 거고, 
또 그러다가 다시 모일 때... 그 마음에 감정이 얼마나 애틋하기도 하고, 
또 감격스럽고 눈물 나는 겁니까? 

◑사도행전은 '흩어졌다 모이다'를 반복하는 교회

근데 사도행전 말씀을 보면, 그런 걸 많이 느껴요. 
사도행전을 쭉 통독해 보면, 이것도 헤쳐모여와 비슷하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 처음에 예루살렘 교회는 다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셨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실 때는   행1:4
'흩어지지 말아라. 함께 모여 있어라' 그런 뜻 아니겠어요.

그래서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본 다음에, 그들이 감람산에서 돌아와서 
다락방에 다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그냥 무의미하게 모여 있었던 것은 아니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님께서 임하시기를 기다리면서, 
거기 모여서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었는데,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셨어요. 

그런데 여러분 '성령님이 강림하신다'는 것은 어떤 싸인이었느냐 하면, 
'이제는 거룩하게 흩어져라!' 그런 싸인이에요. 

왜냐면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계속 거기에 모여 있으라고 하셨나요? 아닙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이 말은 사방으로 흩어져 퍼져나갈 것을 말씀하는 거죠. 
그래서 '복음을 들고 흩어져 나가서 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성령님께서 임하신다는 것은, 그동안에 모여서 같이 기도하고 
같이 떡을 떼고 행복하게 잘 지냈는데, 
'이제는 복음을 들고 흩어져 나갈 때가 됐다' 그런 뜻이죠.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행전 3장 4장 5장 이렇게 계속 지나가는 동안에 
흩어지지 않았어요. 계속 열심히 모이고 이렇게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스데반 집사님의 죽음으로 인해서, 
핍박이 광범위하게 일어난 거예요. 

행8:1 '...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행1:8절에 '성령이 너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흩어지리라' 그랬는데,
8:1절에 보면 '사도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이때는 할 수 없어서 흩어진 거죠. 박해가 일어나니까 피신해서 흩어진 것입니다.
핍박이 일어나니까 어쩔 수 없이 흩어지는 거지만, 
사실은 그 흩어져 나가서 '내 증인이 될 것'이 이미 1:8절에서 언급되어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선교신학자들이 말씀하는 것처럼, 
그들이 자발적으로 흩어져 가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께서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 라는 일로 인해서 
흩어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셨다, 강제로 흩어 버리셨다... 이렇게 설명하죠.

우리가 그 말에 수긍도 돼요.
여러분, 이 말은 여러가지로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데 
교회가 편안하게 안주하고 있으면, 타성에 사로잡혀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때려서라도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신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어요. 

 

어쨌든 그렇게 흩어지게 됐죠.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흩어지는데, 그냥 흩어진게 아니라, 
복음의 말씀을 전하면서 흩어진 거예요.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을 때는, 복음이 예루살렘이란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는데, 
이들이 박해로 인해서 이렇게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흩어진 사람들이 가는 데마다 복음을 전도하게 되었던 거죠. 
그래서 복음의 확장이 일어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 이래서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는데, 어디까지 흩어졌나요? 
본문에 지명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행11: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오늘 본문 11:19절이, 8:1절하고 연결되는 거예요. 
8:1절에서 흩어진 사람들이 어디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느냐? 
8:1절은 사마리아 였고요,
11:19절은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했어요.

1) 베니게는.. 오늘날 레바논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여러분 요즘 뉴스에 나오는 헤즈볼라는, 레바논의 무장정파 라고 하죠.
과거에는 두로와 시돈, 오늘날에는 레바논... 이 베니게 예요. 사회책엔 페니키아.

베니게는 BC  600~700년경에 굉장히 번성했습니다. 
그래서 소위 '페니키아 문명'이라는게 있었다는 것을 배워서 아실 거예요. 
그 페니키아 문명이 인류에 공헌한 것이 많이 있는데 뛰어난 항해술, 
그들은 지중해 바다를 자기 집 앞마당 같이 생각하면서, 지중해 상권을 장악했죠.

그보다 더 인류에 기여한 것은, 그들이 '알파벳'을 만들어서 쓴 사람이에요. 
서양의 언어 대부분이 다 abcd 알파벳을 사용하는데, 페니키아 문자가 그 기원이죠. 

그것이 여러 나라로 들어가서, 약간씩 변형되면서, 독일어, 영어, 이탈리아어가 됐죠.

근데 이 페니키아 사람들도, 바벨론 군대, 느부갓네살에게 망하게 되는데,
남왕국 유다가 망하는 비슷한 시기에 페니키아 문명도 파괴가 되는데,
이 사람들은 바닷가에 발전했던 문명인데, 점령당하니까 갈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배를 타고 탈출합니다. 지중해를 가로질러서 북아프리카에 정착을 해요. 
그래서 그 땅에 큰 도시들을 건설하죠. 대표적인 도시가 유명한 카르타고 입니다.
카르타고는 나중에 로마에 복속돼죠.

그러니까 복음을 가지고 흩어진 사람들이, 이스라엘 저 북쪽 베니게까지 
지금 올라갔구나 ...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2) 구브로... 라는 섬입니다. 
키프로스(그리스 어), 사이프러스(영어) 라고 하는 섬이죠.

지금 키프로스 섬은, 남북이 우리나라처럼 분단되어 있는데, 
북쪽은 터키, 남쪽은 그리스 영토가 되어 있어요.
오래전에 키프로스 전쟁이라고 일어나서, 세계 뉴스의 이목을 집중시켰죠. 1974

이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1차선교여행 때, 안디옥을 떠난 바나바와 바울은, 맨 먼저 구브로로 갔어요.
아무래도 연고지가 있는 곳이, 전도하기가 쉬웠겠죠.

3) 안디옥
그 다음에 이제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 안디옥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1:19절에 순서가 베니게 → 구브로 → 안디옥 으로 나오는 것은,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흩어져서, 지리적으로 북쪽으로 나아가면,
그런 주요 도시들을 거쳐가게 되는 거죠.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안디옥은 두 군데가 있어요. 수리아 안디옥과 비시디아 안디옥
비시디아 (지방의) 안디옥은, 바울사도가 1차전도여행할 때 방문한 곳으로
오늘날 터키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어요. 

근데 본문의 안디옥은, 여기 수리아 지방에 있는 안디옥이죠. 
오늘날로 말하면 터키의 맨 동남쪽 끝에 안디옥이 있어요.

몇 해 전에 터키에 큰 지진이 났을 때  *가지안테프 
그 근처 안디옥(현재 지명 안타키아) 까지도 많이 파괴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거기까지 사람들이 흩어져 들어간 거예요. 

예루살렘에 있던 성도들이 베니게로도 흩어지고, 
바다 건너서 구브로라는 섬으로도 가고, 
그리고 더 북쪽으로 수리아 안디옥까지 올라가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먼저는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했어요.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했다'는 걸 보면은 뭘 짐작할 수 있습니까?  11:19

앞서 행10장에 보면, 베드로가 이방 사람 고넬료의 집에 가서 말씀을 전했죠. 
로마인 고넬료의 가족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됐을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2장의 예루살렘과 똑같이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놀라운 광경을 보고, 베드로는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아니 당신이 유대인이면서, 어떻게 이방인의 집에 드나들 수 있느냐?' 
이게 문제가 됐는데, 

베드로가 그 일을 차근차근히 다 설명을 했더니,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성도들이 
'아 그렇구나.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는구나'   11:18
하는 거를 깨달았던 거죠. 

그런데 11:19절에, 왜 흩어진 제자들이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느냐?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11:19

이 사람들은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로 인해서 흩어진 제자들인데,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간 그 사건을 모르고, 예루살렘을 떠났던 사람들이었죠. 

이들이 예루살렘을 떠난 이후에,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는 사건이 
나중에 일어났으니까, 이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를 몰랐을 거예요.
흩어질 때 그 마음 그대로 '복음은 유대인들만을 위한거다' 
이렇게 하면서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안디옥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최초로 누가 전했느냐? 
베니게와 구브로의 제자들이,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한 거예요.

(이들은 도시마다 돌면서 장사하는 상인으로 추정합니다.

거기에 19절의 제자들이 가세했겠죠)

11: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리비아 지역을 말하는데 
그쪽에도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거든요. 

'구브로와 구레네 지역의 유대인 몇 사람이 
안디옥에 와서 헬라인에게도 말하였다. 그래서 주 예수를 전했다.' :20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출발해 가지고 가는 사람들은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는데 

뜻밖에도 먼데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중에서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은 
이미 그들은 멀리 흩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방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어요. 
그 사람들은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우리 한국에서, 한국을 떠나지 않고 평생을 사는 사람과 
한 15살 어린 나이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몇 십 년 살은 사람은
사고 구조가 많이 다르지 않겠어요? 그와 비슷한 거죠

예수님을 믿는데, 예루살렘에서 믿고 예루살렘에서만 신앙생활하던 사람들은 
'복음은 유대인들만을 위한거다' 이게 아주 강한 반면, 

해외에 살면서 외국인들과 평소에도 거리낌 없이 어울리며 살던 디아스포라 제자들은 
'복음을 이방인들에게도 전하는 것을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구브로, 구레네 제자들)이 안디옥에 와서 
헬라 사람들, 혹은 헬라화 된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니까 
이 안디옥이라는 큰 도시에 교회 공동체가 세워졌는데, 

그 교회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겠습니까? 
유대인들만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 이방 사람들도 많이 들어와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막 섞여 있는 그런 공동체가 된 거죠. 

그다음에 나중에 보면, 그 안디옥에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에 전해졌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는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내서 
신앙 지도를 하게 했고, 

바나바는 더 북쪽에 있는 다소까지 가서 
다메섹으로 가다가 변화된 하나님의 사람 사울을 데리고 와서 
'같이 일하자' 그래서, 두 사람이 같이 안디옥에서 사명을 감당하면서 
안디옥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나중에 이 두 사람이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서 
첫 번째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잖아요. 그 얘기는 13장부터 나오는 거죠. 

어쨌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래요. 
예루살렘 교회 큰 핍박이 일어났어요. 스데반 집사님도 순교하셨어요. 

그래서 '헤쳐 모여' 하는 식으로, 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흩어져 간게 끝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흩어졌어도 다시 모이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다시 모이게 하시는데,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모이게 하시는 거예요

그들이 어디서 모였느냐 하면, 수리야 안디옥이란 지역에서 모였어요. 
흩어졌던 사람들이 안디옥이란 지역에서 다시 모였는데, 

자기들끼리만 모인게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도 전도해서, 이방 사람도 거기 교회로 들어왔고, 
그래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에 모여 있는 거죠. 

흩어지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하나님은 그 속에서 역사하셔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가지고 '안디옥 교회'라는 
아주 놀라운 초대 교회를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에요. 

안디옥의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은 모인 걸 뜻하잖아요. 
모여서 교회가 형성되게 하셨고,
이 안디옥교회가 나중에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보내니까... 또 흩어지는 거죠. 
또 흩어져서 이분들이 가시는 데마다 또 교회들이 세워지잖아요. 

여러분 결국 복음의 역사는 계속 모여 있는 것만도 아니고요. 
계속 흩어지는 것만도 아닙니다. 

모이기도 열심히 모였다가.. 흩어지기도 열심히 흩어져서... 
또 거기서 새로운 모임, 새로운 공동체가 계속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선교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제

◑양산중앙교회와 협력해서 사송영락교회를 창립    *2025년 2월

 

우리가 지난 주간에 사송영락교회 창립도 하고    *경남 양산시
그리고 예배당 헌당 예배도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정지훈 목사님께서 양산중앙교회 담임목사이신데, 
교회부지 땅을 구입해서 우리 영락교회에 협력을 요청했고, 
영락교회가 짓고, 향후 몇 년간 교역자 사례비를 지원하는

이런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났는데 

그 양산중앙교회 목사님께서 자기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그래요. 
'사송 영락교회가 새로 세워지니까, 성도가 한 명도 없는데, 
(우리 양산중앙교회 성도들 중에) 
그곳에 가서 씨앗이 될 수 있는 분들은 자원하세요.' 

(새로 개척된 사송 영락교회를 담임하실) 전혁 목사님이 
양산중앙교회에 가서 설교를 한 번 하셨다고 그래요. 

그때 성도들에게 인사를 드렸는데
'바로 이 분입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들은 전혁 목사님을 따라서

새롭게 개척된 사송영락교회로 가세요!' 
그렇게 적극 권한 거예요. 

근데 정들어 다니던 교인들이, 자기 교회를 떠나서 가는 게 쉽지 않잖아요. 
우선 1차로 14명이 자원하셨대요. 

 

그래서 그 14명에게 여러 가지 당부도 하고, 파송 예배도 드리고, 
이제부터는 '사송영락교회 성도입니다. 사송영락교회에 가셔서 
안내도 하고, 여러 가지 섬김을 같이 하세요.' 이렇게 축복하며 파송했습니다.

또 전혁 목사님이 부산 동래중앙교회에서 18년 동안이나 충성하고 섬겼더니 

그 교회를 떠나서 양산으로 가시는 건데, 


그런 과정에서 동래중앙교회 당회가 
전혁 목사님과 함께 사역을 했던 젊은이들을 
'가서 목사님을 도와 드려라' 이렇게 기쁨으로 보내 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청년들이 또 한 20명, 동래중앙교회가 보내줌으로써 
양산에서 새로 지어서 개척된 사송영락교회로 왔어요. 

그래서 양산중앙교회에서 흩어진 14명, 
그 다음에 동래중앙교회를 떠난 20명의 청년들이, 
사송 영락교회에서 함께 모인 거예요.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겠죠. 얼굴도 모르는데 하여튼 모였어요.
그래서 지난 주일에 전혁 목사님이 예배 인도를 해서, 
그 교회 역사상 첫 예배를, 지난 주일날 드린 거죠. 

그랬더니 주중에 전혁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첫 주 예배를 잘 드렸고, 첫 주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왔다'고 그래요. 
또 첫 주인데, 새로 등록한 교인이 일곱 분이나 계셨다고 해요.

제가 보면, 참 신기한 거 같아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흩어지게 하기도 하고, 모이게도 하시는데 
하나님은 이렇게 흩어지고 모이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교회가 탄생하기도 하고, 

새로운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서 
어떤 역사들이 계속 일어나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저는, 사도행전 말씀을 '헤쳤다가 다시 모이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손길'의 관점으로 보는 거예요.
그 역사를 통해서 놀라운 소망을 보는 것입니다. 

적용

우리는 헤어짐과 다시 만나서 모이는 그 과정 속에 다 들어 있어요. 
여러분 궁극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언젠가는 부모님하고 다 헤어지잖아요. 
저도 부모님하고 헤어졌습니다. 부모님은 다 하늘나라에 가셨으니까요. 흩어졌어요.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에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소망이 뭡니까? 
하늘나라에서 다시 모일 거예요. 이게 얼마나 놀라운 소망인지 몰라요. 

이 세상은, 마귀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다 흩어지기만 합니다. 흩어지기만 해요. 
그렇죠. 사람들의 마음도 갈갈이 찢어서 흩어놓고... 
공동체도 파괴하고 떠나게 만들고... 
다 이렇게 갈등의 골이 깊어지게 만드는 건, 그거는 마귀의 역사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역사는, 
흩어졌다가도 더 아름답고, 더 창조적이고, 더 능력 있는 모습으로 
다시 모이게 하시는 거예요.  

마귀가 흩어놓는 것은 영원한 이별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예수님 잘 믿고 천국에 가셨는데, 
그 자식은 방탕해 가지고 타락하면 저 지옥에 떨어지니까, 
마귀가 하는 짓은, 그 자식의 마음을 타락시켜서 멸망에 떨어지게 하면, 
영원한 이별을 가져오는 거죠. 

그러나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그 방탕했던 자녀의 마음을 돌이켜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다시 나오게 함으로써 
천국에서의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거예요. 

성령님은 다시 모이게 하시고, 마귀는 흩어 버린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기본 원리는,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런 예배, 또 주일날 모여서 다 함께 예배를 드리잖아요. 
'모이는 교회'라고 그러죠. 그런데 모이는 교회만 있는게 아니라 
또 '흩어지는 교회'도 있어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다 흩어져 나가서 
자기 생활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인으로 사는 거죠. 

그러나 우리는 흩어져 있지만 뭘 소망합니까? 
'이번 주일에는 또 교회에 가서, 내가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리라' 
이걸 또 우리가 소망하고 기다리잖아요. 

그런데 코로나 라고 하는게, 우리를 흩어 버렸어요. 
다 흩어지게 만들어 가지고, 아직도 어둠의 영은 우리로 하여금 
'굳이 모일 필요가 뭐가 있느냐?' 자꾸만 그렇게 만들어요. 

그러나 여러분, 성령께서는 본래 하나되게 하시는 영이시고,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그랬으니까 
우리가 모이는데 힘써야 되는 거죠. 

히브리서 말씀 중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자들처럼 하지 말라' 하셨잖아요. 히10:25
모이기를 폐하고 흩어지게 만드는 거는 마귀의 역사입니다. 

복음을 위해 흩어지는 것은 성령이 보내시는 파송이요 사명의 길이지만,
그렇지 않은 헤어짐은 마귀가 하는 짓이에요. 

그러나 여러분, 복음을 위해서 우리가 파송되는 걸 빼놓는다면 
언제나 우리는 다시 모이기를 위한 사모함이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다시 모여야 되는 거죠. 

그래서 가정에서도, 아침에 자녀는 학교에 가고, 아빠는 직장에 간다고 
다 대문을 나서서 흩어졌던 가족들이,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저녁에는 또 다 와서 모이는 거예요. 

모여서 서로 위로받고, 힘을 얻고, 또 흩어져 나가서 삶을 영위하고... 
다시 또 모이고... 그러는 동안에 열매가 맺혀져요. 

자녀들은 지식이 늘어나고, 세상 경험이 늘어나고, 
또 세상을 많이 경험하면서 자기 삶을 확대해 나가고... 이렇게 하잖아요. 
그리고 또 모여서 그 기쁨을 같이 나누고...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이 단순한 원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루시는 이 (헤쳐 모여) 역사에 동참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요. 모이는 시간에 열심히 모이면 됩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시간에 같이 모여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배하는 시간에 같이 모여서, 한 목소리로 찬송하면서, 함께 예배하는 일에 
힘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랬다가 또 흩어져 나가죠. 나가서 이제는 마귀가 흩는 흩어짐이 아니라 
성령께서 파송하는 보내심으로 흩어지는 거니까 
직장에 가든지, 어디 가든지, 
그리스도인 다움을 지키면서, 복음을 위해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랬다가 또 우리는 모이는데, 빈손으로 모이는게 아니라 
열매를 가지고 모이는 거죠. 삶의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들을 가지고 모여서 
하나님을 송축하고, 주시는 힘을 받아 가지고, 또 흩어져 나가고... 
그렇게 해서 복음이 점점 확대되는 것처럼, 
바로 그런 역사를 우리가 이루어야만 된다는 것이죠. 

그러다가 궁극적으로는 천국에서 모이는 거예요. 
천국에서 다 같이 우리가 모이게 될 것이에요. 

사도행전을 "흩어짐과 모임"이라는 렌즈를 가지고 
1장부터 28장까지를 가만히 보면, 
계속 하나님께서는 모이게 하셨다가, 흩어지게 하셨다가, 
또 모이게 하셨다가, 또 흩어지게 하셨다... 이게 반복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개인도 그래요. 바울과 바나바가 함께 있었는데, 
어느 날 또 이렇게 흩어지게 하셨어요. 

그리고는 바울 곁에는 실라 라는 새로운 사람이 또 와서 만나게 하셨어요. 
그러면서 또 같이 다니고... 중간에 디모데가 또 가담하기도 하고...
또 필요에 의해서 헤어지기도 하고... 

그런게 계속 그렇게 반복되면서 나타나는 건 뭐냐면 
복음의 확장 이라는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거죠. 

우리는 신앙 여정을 같이 걸어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헤어져서 따로 걸어가기도 하고, 
가끔씩은 또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서 반가워하면서 함께 걸어가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다시 어떤 목적에 의해서 헤어지기도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러면서 또 다시 만나기도 하고... 

그러다가 궁극적으로 만나는 곳은, 저 영원한 천국이에요. 
영원한 천국! 우리 가족들 중에도 먼저 떠나신 분들도 계시고, 
또 우리 교회에 오셔서 전도사로 혹은 부목사로 사역하셨던 교역자들도 많잖아요. 
이 교역자들도 여기서 몇 년 동안 교구를 섬기고, 재직 부서를 섬기고 하시다가 
다 떠나서 해외 선교사로 가기도 하고, 많이 흩어져 계시잖아요. 

근데 그게 영원한 마지막 헤어짐은 아닌 것이죠. 
언젠가는 또 다시 이렇게 다 만나게 될 것이에요. 

그래서 올해 우리가 80주년 여러 가지 행사를 기획하는 것 중에 하나가 
우리 교회에서 부목사님으로 사역하셨던 분들을 전부 초대하는 
홈커밍 행사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부목사를 하시고 떠난 분들 중에는 
지금 연세가 팔순 구순이 되신 그런 분들도 계시고, 사방에 많이 계실 거예요. 

우리가 초청하면 얼마나 오실지 모르지만 
그분들이 모여서 함께 예배하는 것도 참 의미가 깊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한 평생 나그네 인생을 걸어가면서 
한때 같이 만났었다고 하는게, 이게 얼마나 소중한 건가요? 

그 때는 형편에 따라서 헤어졌지만,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믿음을 배신하지 않고, 거기서 믿음을 지키며 또 살아가고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하고... 그러다가 각자의 영역에서 열매를 맺어서 
언젠가는 또 다시 만날 거고... 이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저는 오늘 저녁에 방문한 (부산) 땅끝교회 식구들을 보면서 그런 감회가 있어요. 
'아, 옛날에 그 부모를 내가 주례를 했는데, 
태어나서 그때 요만했던 갓난아기 때부터 내가 봤는데, 
이제는 잘 성장해서 교사가 돼서 또 학생들을 인솔해서 서울로 오고... 
그러면서 또 이렇게 함께 만나고...'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것이에요. 
그렇게 다시 만나다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다가 
나중에는 천국에서 만날 우리 사이인데 

절대로 서로 미워하거나, 갈등하거나, 영원히 헤어지면 다시 보지 않을 사람 같이...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주님은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하시는 분이신 걸 알아야 됩니다. 
그게 성도의 축복이에요. 성도의 축복! 

그래서 헤어질 때 아쉽고, 만날 때 반가우려면 
우리 안에 흘러야 되는게 뭐냐 하면... 사랑이죠. 사랑! 
사랑으로 헤어지고, 사랑으로 만나는 거죠. 
그러다가 궁극적 만남은 주님을 만나는 거예요. 

오늘 저녁에 우리의 마음을, 이 말씀에 맞춰서 
여러분들의 삶이 지금은 흩어지는 상황에 있는지, 
또 누구를 만나는 상황에 있는지 잘 보시면서, 
헤어져 있을 때도 주님의 사람으로, 
다시 모일 때도 성령 안에서 기쁨과 감사로... 
그렇게 신앙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일날 예배하러 오실 때, 모여오는 그 시간을 여러분,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지하철 타고 막 오셔서 전철역에서 걸어오시고 
베다니 광장을 걸어서 이 예배당을 향해 오실 때, 어떤 설렘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오늘도 우리가 모여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구나' 이게 성도의 기쁨인 거예요.
얼마나 가슴 벅차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게 축복된 신앙생활이에요. 

그러다가 또 나중에 예배가 끝나고 나면 
우리가 악수하면서 한 주간 또 주님 안에서 헤어져서 잘 살다가, 
다시 모이기를 바라면서... 이게 이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죠.

이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성령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성령님의 세상은, 그 과정 속에서 열매 맺게 하시는 놀라운 참 신비로운 세상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꿈꿀 것은, 저 천국에서의 모임이죠. 
오늘 아침에 소식을 들었는데, 은퇴 장로님 한 분이 좀 위중하셔요. 
그래서 의학적으로는 희망이 없으셔요. 

그래서 제가 그 장로님을 뵈러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그 장로님 귀에다 대고 기도를 드렸어요. 천국에서 다시 만나기 위한 기도를 했어요. 

이렇게 귀에다 대고 기도하고 뒤돌아보면서 
'이 땅에서 보는 장로님의 마지막 모습이다' 하고 생각하니
참 발걸음이 잘 안 떨어지는 건데, 
그래도 마음속에 위로가 되는 것은
'이게 마지막이 아니고, 이 땅에선 그렇지만 천국에서 만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만남을 위해서 기도했어요. 

성령님께서 장로님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천국에서 다 함께 만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 거룩한 순례를, 
성령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