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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3장 자기합리화의 길인가, 자기부인의 길인가?

LNCK 2025. 3. 1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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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합리화의 길인가? 자기부인의 길인가 2025.03.09 - YouTube

 

◈자기합리화의 길인가, 자기부인의 길인가?      삼상13:1~12       2025.03.09. 
  
◑삼상13:1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사울왕의 연대기를 보면, 기원전 1050년경, 
그가 나이 40세에 왕으로 즉위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기원전 1010년경 길보아 산에서 전사하기까지 40년간 통치를 했어요. 
근데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확실히 은혜파 와 진리파가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사울왕이 너무 불쌍한 거예요. 
'아니 사울왕이 실패할 것을 하나님이 결국 아셨는데, 
전도유망한 착한 청년을 데려다가, 인생을 이렇게 힘들게 만드셨나?'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하나님보다 자비로우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더라고요. 
자, 사울왕에 대해서 우리가 좀 정직하게 보면 
여러분, 사울 왕이 처음에는 출발이 좋았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이상한 방향으로 갑니다. 

오늘 드디어 그가 (처음으로) 이상한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는데, 
한참 세월이 지나고 나서였나요? 아니면 즉위한 즉시였나요?

1절에, 그의 즉위 2년차예요. 시작 부분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정말 착한 사람인데, 하나님이 억지로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신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성은 정직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토로하고, 고백하고, 인정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도우실 줄로 믿습니다. 
그게 끝까지 안 되었던 사람이 사울이에요. 그게 이제 안타까운 것이죠. 

◑13:2~4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함을 듣고 그 백성이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르니라'

사울왕이 백성들 가운데 3천명을 선발했습니다.
그 중에 1천명은 왕자 요나단과 함께 당시 수도인 베냐민 기브아에 주둔시키고, 
그리고 2천명은 사울왕과 더불어서 북쪽 믹마스와 벧엘 산의 주둔시켰습니다. 

이들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초의 상비군입니다. 
신정체제였던 사사시대에는 예비군이었잖아요. 상비군이 없었어요. 
전쟁이 터지면 그때 군인들을 비로소 모집했습니다. 

근데 왕정 시대가 되면서, 사울왕이 역사상 처음으로 상비군을 차출한 거죠. 
그런데 3절을 보면, 갑자기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어요. 

기브아에 있던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수비대를 쳤어요. 
그러자 당연히 블레셋 사람들이 이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사울이 나팔을 불어서 전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으게 됩니다. 

굉장히 갑작스럽고 지엽적인 군사 충돌이었는데, 
순식간에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되었습니다. 

자, 이 상황에서 한 가지 질문이 나옵니다. 
왕자 요나단의 공격은 단독 행동이었을까요, 
아니면 사울왕의 배후 지시에 의한 작전 수행이었을까요? 

여러분 이게 우발적이었을까요, 계획적이었을까요? 
몇 가지 정황을 가지고 판단해 보면, 후자(계획적)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1) 첫 번째는, 요단 동편의 암몬 족속을 정리하고 나서, 
요단 서편에 군사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나? 

2) 두 번째는, 3천명을 누가 선발했어요? 사울왕이 직접 선발합니다. 
그런데 사울이 3천명을 좋아했던 거 같아요. 
나중에 다윗을 수색할 때도 유대광야에 3천명의 정예부대를 투입하죠. 


3) 세 번째, 지도를 보면, 북쪽으로 믹마스와 남쪽으로 기브아 사이에 게바가 있어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진 배치를 할 때, 게바를 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진 배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2절에 믹마스 근처와 기브아에 각각 이스라엘 군대를 배치했죠.

4) 네 번째, 블레셋이 '우리가 당했다'는 소문을 들으면 
블레셋이 전군을 소집하는게 맞지 않나요? 
그런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온 이스라엘이 전군을 소집합니다. 

그러니까 사울에게 다 예상 시나리오가 있었던 거예요. 
자 여기까지는 좋았다고 생각이 돼요. 왜냐면 사울이 왕으로서 
자기 안위만 생각하고, 자기 배만 불리겠다... 이런게 아니잖아요. 

요단 동편에서 이스라엘을 가장 괴롭혔던 암몬 족속을 무찌르고, 
이제는 요단 서편의 골칫거리인 블레셋을 제압하겠다... 
이거는 왕으로서 굉장히 성실한 태도를 보인 겁니다. 즉흥적인 군사 충돌이 아니었어요. 

치밀하게 작전 계획을 짜서 수행을 했고, 예상된 결과가 나왔고, 
그래서 거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이스라엘 전 군을 소집한 거예요. 
근데 문제는 그 다음 상황에서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13:5~7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

여러분, 이스라엘이 블레셋이 반격하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대규모로 전면전을 나서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요. 

AI 에게 그림을 좀 요청을 해봤어요. *6:50초경 
'사울 시대에 블레셋의 병거와 기마병들을 좀 보여달라' 했더니 이런 그림이 나왔어요.

그런데 당시에 맞서 싸우는 이스라엘 군대는, 철제 무기가 없었어요. 
블레셋 사람들만 철제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전투에 사용하는 그 무기 자체가 
서로 수준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났던 거죠. 

병거라는 것은, 그림을 보시는 것처럼, 두 필의 말이 이끄는 전투용 전차입니다. 
현대전에서 탱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근데 기마병의 경우도, 적진을 그냥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가는 
그런 장갑차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 병거가 3만에, 기마병이 6천이에요.
이 군사력 규모 자체가 비교가 안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부 보병이었는데 말이죠.

게다가 '블레셋의 군대는 해변에 모래알 같이 많았다' :5
그러니까 거의 인해전술 수준의 어마어마한 군대가 모인 겁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국지전 한번 일으켰을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양측이 격앙이 됐을까요? 

그래서 그 시대상을 좀 추정해 보면, 블레셋 입장에서는 
2년 전에 이스라엘이 드디어 왕정을 시작했잖아요. 
강력한 왕이 등장한 데다가, 

사울 왕이 요단 동편의 전통적 강호였던 암몬 족속을 단숨에 제압했어요. 삼상11:11
그리고 요단 서편에 그들의 전쟁 기지 게바를, 계획적, 의도적으로 공격을 한 거예요. :3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기선 제압을 하지 못하면, 
'이스라엘에 대한 우위를 우리가 상실하겠다' 이런 염려와 두려움이 생긴 거죠. 

그래서 이스라엘 군대가 결기한 것보다, 
블레셋 군대의 결기가 훨씬 더 강력했던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변 쪽인 길갈에 
이스라엘 정군이 모였다고 했는데, 그냥 순식간에 흩어져 버립니다. :4, 6

너무 허약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군대가 도망가기에 급급합니다. 
이스라엘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6

적에게 노출되지 않고 공격당하지 않으려고,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엄폐 은폐 했을뿐만 아니라, 
요단강 동편으로 아예 도주한 사람들도 많았다는 거예요. :7

여러분, 이 정도 수준이면 전투 의지가 전혀 없는 거죠. 
이건 싸우기도 전에 패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군대로서는, 현재 이 전쟁의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건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본 거예요. 

▲자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군사적인 충돌을 보면서
이 스토리가 맞는 거 같으면서도, 뭔가 이상한 거예요. 

뭐냐면 사울이 왕으로서, 군사작전을 성실하게 수립하고 시행한 것은 잘한 일이죠. 
마땅한 일입니다. 근데 문제는, 오늘 본문에 어디를 봐도, 
사울왕의 경우도, 백성의 경우도, 
하나님께 기도를 하거나, 간구를 하거나, 질문한 내용이 없어요

1~7절까지 지났는데, 하나님 앞에 한마디로 한 적이 없어요.
그의 평생에 대부분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정말 사울왕이, 이방 나라의 왕들과 똑같이 세상적인 지도자라면.. 그건 당연하겠죠.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백성인데... 그냥 세상 군대하고 다를게 없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개인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해 보고, 시도해 보고...
그런데 예상한 결과가 나와서, 그거에 대한 대응책까지 내놓고... 
여기까지는 다 논리적으로 맞잖아요. 

근데 세상이 그렇게 만만치 않고, 녹록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수준으로 압박이 오니까 
당황하게 되고, 절망하게 되고, 낙심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 상황이 어떻게 보면은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도대체 그들의 삶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 것인가요? 
인간 왕을 세우는 순간부터, 그들에게는 둘 중에 하나였어요. 
'왕을 따를 것인가, 왕을 버릴 것인가?' 

아니 절대 왕정을 세워놓으면, 왕에게 다 충성할 것 같잖아요. 
근데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왜냐면 그 왕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면 따르는 거고, 
도움이 안 되면 버리는 거예요. 지금 벌써 백성들이 다 흩어지잖아요. 

▲우리가 오늘날 민주적인 국가 체제 아래 있지만 
친정부, 반정부 둘 중에 하나의 선택으로 사람들이 다 갈려 있잖아요. 

사람을 선택해서 의지하고, 세상을 선택해서 의지하면 
양극단의 선택 밖에 남지가 않아요. 

그래서 정말 사회를 온전히 통합하려면, 하나님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이 모든 사람들과,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사람의 능력과 지혜를 넘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의 길이 열리는 거예요. 

'인간적인 노력과 투자를 하지 마시라'는게 아닙니다. 
그 너머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걸 인정하며 살아야 되는 것이죠. 

제가 이렇게 세상을 보니까, 
어떤 분들은 너무 이제 우울과 불안도가 높아서 
인생에 뭔가를 제대로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근데 정반대의 케이스에 자살하는 사람도 있어요. 
자기가 자수성가해서, 인생에 거칠 것이 없이 다 승승장구하고 
사업이 성공하고, 정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던 어떤 사람이 
인생에 난관에 봉착해서, 갑자기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럼 도대체이 사람들이 심리는 뭘까요? 
어렸을 때부터 내가 내 손으로... 
자수성가라는 것은 내 손으로 내가 노력해서 올라간 거잖아요. 

그러니까 자수성가한 사람은, 내가 노력해서 안 되는게 없었던 거예요. 
다 돌파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안 되는 상황을 딱 마주하게 되는 순간, 
인생의 그 강력한 의지력을, 자기 생을 마감하는데 사용하게 돼 있어요. 

결국에 사울 왕이, 40년을 그렇게 버티다가, 자기 생을 스스로 마감하게 되죠.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나의 무능함을) 빨리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이잖아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내 힘과 지혜로는 살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볼 거 다 해보고 난 후에,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출발점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3:8~10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오기로) 정한 기한이 며칠이었다고요? 7일이었습니다. :8 
근데 그 7일차에 사무엘이 안 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이 내용을 보면, 삼상10장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길갈에서 7일을 기다려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하고 연관된 본문이 아닙니다. 

왜냐면 11장에 암몬 족속에 대승을 거둔 이후에, 
길갈에서 그를 만나서, 그를 왕으로 선포하는 장면이 있죠. 그렇게 연결이 된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의 7일은, 사무엘과 사울이 또 다른 약속을 했던 기간입니다. 
그래서 3일이 이스라엘 어느 지역에서나 군사를 소집하는데 소요되는 일정이었죠. 

그렇다면 7일은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데 소요되는 
일정이었다... 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7일차에 안 옵니다. 백성들은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만약 당신이 사울왕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요? (사무엘은 선지자이자 제사장)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 집례를 사울이 직접 준비했어요. 

그런데 기다리다 지쳐서, 자기가 주도해서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가 끝나고 나니까 사무엘이 나타납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 이 스토리상 7일차에 사무엘이 나타난 건가요, 안 나타난 건가요? 
사무엘은 7일차에 나타난 거예요. 다만 7일차에 늦은 오후에 나타난 거죠.

오전 내내 기다렸는데 사무엘이 안 옵니다. 오후 2시 3시가 되어도 안 옵니다. 
사울왕은 더 이상 못 기다리고, 백성들이 자꾸 흩어지니까요, 
자기가 집전해서 제사를 드린 거죠. 

그런데 해가지기 전에 사무엘이 나타났어요. 7일 차에 늦게 나타난 거예요. 

◑13:11~12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왕에게 '왕이 지금 무엇을 행하였습니까?' 이렇게 물었지만, 
원어로 보면, 굉장히 간략하게 차갑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 지금 뭘 한 거냐?' 

그런데 사울이 구구절절이 답변이 길어집니다. 
원래 사람이 할 말이 없으면 말이 길어진다고 하죠. 사울은 네 가지 이유를 들었어요. 
1) 백성들은 내게서 흩어지고 
2) 사무엘 당신은 오지 않고 
3) 블레셋 군대는 이제 곧 내려오겠고 
4) 나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서, 전쟁에 나가기 전에 마음에 위안이라도 좀 얻어야 될 텐데... 

여러분, 이게 지금 질문과 답변이 앞뒤가 안 맞는 거예요. 
왜냐면 질문은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봤는데,
그런데 지금 사울왕은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내가 그것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늘어놓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사무엘의 질문이 어려운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뭘 했는지 몰라서 물어본 것도 아니었잖아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이렇게 질문을 하실 때가 있나요, 없나요? 
많습니다. 굉장히 단순한 심플 퀘스천이에요.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그러면 '제가 선악과 따먹었습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대답하면 되는데... 

'가인아,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하고 도리어 하나님께 짜증 내죠. 

하나님은 몰라서 물으시는게 아니에요. 
스스로 자기 입술로 이실직고 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물으시는 겁니다. 

◑두려움의 문제

 

사울왕이 어쩔 수 없이 제사를 지내는 실수를 한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그 잘못에 대해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도 또 날려버리잖아요. 

잘못에 잘못을 연이어서 합니다. 4가지 이유를 들었어요. 
그러면서 내가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를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3:12

'내가 ...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여기 '부득이하여'가 히브리 원문에는 
'어떤 강력한 힘이 나를 몰아붙여서 그 결정을 한 거다' 이런 얘기에요. 

I forced myself therefore, and offered a burnt offering / KJV
I felt compelled to offer the burnt offering / NIV

그러면 도대체 누가 그에게 이런 결정을 강요했는가요? (두려움입니다)
전에 한 때 성령충만했던 사울왕은, 위기상황이 되니까, 두려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이 강력한 힘이 돼서, 
그에게 이런 결정(왕이 제사 집례)을 하도록 밀어붙인 거예요. 

제가 <두려움 너머의 삶>이라는 책의 자세히 써놨는데, 
두려움은 엄청난 설득력을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 '두려움'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강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에서 못 빠져나옵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을 보세요. 한두 가지 이유가 아니잖아요.

사울왕은 4가지 나름 합리적 이유를 들면서 
'모든 정황을 보건데, 내가 이 선택을 하는게 맞았다'는 거예요. 
그게 두려움이 사람에게 설득하는 설득력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선택을 하지 않으면 죽을 거 같은 거예요. 
근데 사실은 정 반대죠.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그 선택을 하면 죽는 거예요. 
그런데 그 선택을 하게 만드는게 두려움입니다. 

제가 최근에도 어디서 '보이스피싱 예방 홍보 영상'을 보니까  
와 피해 규모가 아직도 어마어마 하더라고요. 
'아직도 당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여러분 보이스피싱은, '돈을 잃을까 봐 두려워서 돈을 잃게 만드는' 거잖아요. 
두려움에 빠지면, 그 일이 일어나게 돼 있어요. 
두려움에 안 빠지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근데 두려움은, 합리적으로 사람을 설득하기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나게 만든다고요. 
제가 여러분에게 인생 실패하는 법을 알려드리는게 아니에요. 잘 들어보세요. 
두려움은 당신을 폭풍처럼 몰아가면서 설득합니다. 
'지금 당장이 선택을 해야 된다고... 

이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 절박한 선택이라고' 
그렇게 밀어붙이면서 순식간에 결정을 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그 선택을 하고 나면, 나는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여러분, 이렇게 사람을 몰아가는 힘이 두려움이에요

그리고 그 두려움에 배후에 누가 있을까요? 사탄이 있어요. 
거짓의 아비 사탄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라!' 이게 권면입니까, 명령입니까? 
명령입니다! 

'너가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명령이에요. 왜요? 
우리가 두려움과 손을 잡는 순간, 하나님과 결별하고, 사탄의 종노릇하게 돼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와 특권과 축복들을 
다 날려 버리게 돼요. 

그래서 하나님이 절대 두려움과 손을 잡지 말라고 하시는 거예요. 
수1:9절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우리가 인생의 평탄할 때뿐만 아니라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도, 
원수와 지금 접전을 앞두고 있을 때에도,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상황이 여러분의 심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여러분의 내면 세계를 지배하기를 축복합니다. 

환경과 사람들이 여러분의 영혼을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 내 영혼을 다스려 주시옵소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그런데 여러분, 이제 두려움의 증상을 조금이라도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게 어떤 패턴이냐면 '그냥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인 거예요. 
이 심리 패턴이 사람을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게 돼 있어요. 

제가 목사이지만, 저는 이제 상당히 예민한 사람이어서, 저도 두려움이 많거든요. 
좁은 공간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도 있어요.

1부 예배 끝나고 어떤 한 분이 '제가 비행기 공포증에 있습니다' 
저도 비행기를 타면, 좁은 공간에서 약간 답답할 때가 있거든요. 

또 사역을 20여 년 동안 해 오면서, 숨이 멈출 것처럼 
곧 죽을 것 같은 순간들도 있었어요. 

자 그런데, 이런 두려움에서 사람이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요? 
제가 오늘 굉장히 간단한데, 여러분이 별로 내키지 않는 
아주 쉬운 해법을 알려드릴게요. 

여러분, 죽을 거 같은 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냥 죽으시면 돼요.   마10:39절 참조 (이 원리와 비슷합니다)

죽을 것 같은 그 긴장 상태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거예요. 
죽을 거 같은 그 긴장 상태를 빨리 내려놓으셔야 돼요. 

여러분, 사람이 죽을 것 같은 그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시야가 좁아지고, 판단력이 흐려지게 돼 있는데, 
이거를 유지한 상태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잖아요... 
그러면 다 틀린 결정을 내리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을 망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보면 내담자에게 너무나 허무하고 열받는 얘긴데, 
'당신이 죽을 것 같으면, 죽을 것 같아 하지 말고, 그냥 죽으세요!' 하고 권면합니다. 

왜 안 죽고 자꾸 버티면서 그렇게 힘들어 하나요?
죽은 사람은.. 힘들어 하지 않아요. 편안해요.
딱 내려놓는 순간.. 편안해지게 돼있어요.

그래서 이게 좀 정반대 이야기이긴 하지만 
저는 자살 충동도 예전에 심했는데 
자살을 결심하는 순간, 불안증 환자가 편안해지게 돼 있어요. 
왜 놓임을 받을 거니까! 

그래서 인생에서 내가 불안해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는 거를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잖아요. 포기하잖아요. 그러면 편안해지게 돼 있어요. 

여러분, 생을 마감하는 쪽으로 편안함을 얻는게 아니라,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손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편안함을 얻는다고요.

십자가에 자기를 못 박고 죽는 거죠.

죽을 것 같은 그 느낌 때문에, 불안증이 오고, 공황장애가 오고, 
그것 때문에 우울증에 빠지는 거예요. 

제가 이걸 어떻게 얘기하면 쉬울까요? 
여러분, 학창시절에 체력장 다 해보셨잖아요. 

남학생들은 턱걸이를 하는데, 턱걸이 막 나중에는 안 되면 배치기를 하고, 
뭐 몸을 비틀고 별짓을 다해도... 더 이상 못 올라가는 포인트가 온다고요. 
그런데도 그거를 올라가겠다고 하면, 자기 턱을 아무리 내밀어도 
철봉 위로 올라가지도 않으면서,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려오지도 못하고, 
매달려서 덜덜덜 떨고 있는 상태! 제일 비참하고 불쌍한 상태입니다. 

여러분 그때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만 내려와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옆에서 화내죠. 애들도 이제 다 순번을 대기하고 있으니까 
'빨리 내려오라'고 그러죠. 

사람이 인생에서 딱 이 상황이 되면 
'나 여기서 포기하면 내 인생 끝날 것 같아!'

사울왕이 '내가 이 전쟁을 위해서 지난 2년 동안을 준비해 왔는데, 
사람들이 나를 무시할 때에도, 내가 암몬 족속을 처리하고 얼마나 승승장구 했는데...' 

자기가 절대로 여기서 포기할 수가 없는 거예요. 
여기서 무너질 수 없는 거예요. 그 전쟁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고요. 

여러분,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이 생존 의지라는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생존 의지만 있다고 해서, 그 턱걸이하는 철봉을 못 넘어섭니다. 
포기하고 물러설 때는.. 물러서야 됩니다. 거기서 내려와야 됩니다. 

내 자아의 죽음을 경험하고, 체면, 자존심 이런 거 다 기꺼이 구기고, 거기서 내려오면, 
다시 하나님께서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채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생존 의지를 넘어서, 나를 살아 숨쉬게 하시는 분, 
내게 반전의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내가 나를 구원하지 못해요. 하나님만이 나를 구원하시는 거예요. 

가령 이런 거죠. 대학 입시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내가 원하는 대학이 있었어요. 근데 그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어요. 
그리고는 마음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거예요. 

'내가 이 대학을 포기할 수가 없는데, 내가 이 대학에 꼭 들어가야 되는데...' 
여러분, 근데 이미 상황은 정리가 됐는데, 내가 지금 포기를 못 하잖아요. 
그러면 딱 덜덜덜 떨고 있는 상황이 돼요. 
그러다가 우울증이 오고, 그러다가 불안증이 오고, 불면증이 오면서 
인생의 어느 순간에이 정신줄이 끊어져 버려요. 

여러분, 사업을 하다가 부도 직전에 놓였는데도 
'내가 이 사업을 위해서 지난 20년 동안 얼마나 애를 썼는데... 얼마나 헌신했는데... 
사업을 포기를 못해서...

 

이거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모두가 아는 상황인데도, 

또 돈을 끌어다가 거기에 붓고 또 붓고... 
그래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거기서 멈출 수 있었던 것을, 어마어마하게 빚을 지고 인생이 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여러분 내려와야 될 때는, 딱 인정하고 내려오셔야 돼요. 
그리고 하나님의 반전의 승리를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인생에 또 기회(2nd chance)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가슴에서 손을 얹고 저를 따라해 보세요.
'하나님, 저는 죽었습니다. 내 안에 주님이 살아 역사하시옵소서. 
하나님, 저는 할 수 없습니다. 내 인생을 주님이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멘!' 

여러분 그 탄력있는 공을 보면, 공이 인생이라고 생각되면, 
공이 최저점에 떨어지는 것을 못 보겠는 거예요. 
자기 인생이 떨어지는데, 추락을 하는데, 그걸 자꾸 붙잡는 거예요. 

그런데 최저점으로 떨어져야 비로소 바운스 백을 하는 겁니다. 
그래야 다시 튀어 올라온다고요.

'하나님, 나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무능합니다. 
하나님, 저는 실패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견고한 반석에, 내 인생을 온전히 맡길 때, 
하나님이 다시 나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창공을 비상하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새 힘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두려움이라는 것은 굉장히 합리적으로 사람을 설득합니다.

너무나 합리적으로 설득하기 때문에, 두려움에서 스스로 못 빠져나오는 거죠

 

근데 두려움에 빠지면,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거든요. 
절대로 자기 합리화에 빠지지 마세요. 

▲사울 왕이 그러잖아요. 
백성들 때문이다. 사무엘 때문이다. 적군이 오고 있지 않냐? 적군 때문이다. 
하나님도 나에게 확신을 안 주지 않으냐?' 다 핑계입니다. 

'사방으로 모두가 나에게 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나를 압박하지 않았느냐? 
나는 잘못이 없다.' 

그래서 자기 합리화 라는 것은, 
말 그대로 굉장히 합리적으로 자기 자신을 포장해서 설명하는데, 
문제는 자신이 정직하게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합리화도 거짓말이에요. 
두려움도 거짓말이지만, 자기 합리화도 거짓말이에요. 

오늘날 정신분석학에서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논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사람이 그런 병리적인 증상이나 패턴을 보이는 것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심리적인 문제가 그렇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냥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 뿐이에요.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뻐하시는 것이 있고, 
옳고 그른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의 거울 앞에서 정직하기를 원하세요. 
여러분 정직하세요.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남편이 협조를 안 해줘서 그렇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아내가 늘 실수해서 그렇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내 원가정, 내 부모 때문이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자녀들이 협조를 안 해줘서 그렇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문제가 많은 교회 때문이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하나님이 나를 안 도와주지 않느냐?' 
심지어 하나님까지 끌어들입니다. 

다 다른 사람의 문제이고, 자기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안타까운 것은 사울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니까 
자기 문제는 보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 원망, 사람들 원망... 
이유를 상황 논리로 계속 대는 거예요. 

여러분, 자기 합리화의 길을 갈 것인가요, 자기 부인의 길을 갈 것인가요 *제목
'내 힘으로 버티겠다고... 절대로 난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고...'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면, 자기를 속이게 돼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 저는 무능합니다. 저는 연약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렇게 정직하게 자신의 연약함과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고백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저는 오늘 이 사건이 전개되기 전까지 
사울왕과 백성들의 관계가 너무너무 좋았던 거예요. 

여러분, 사울이 즉위한지 2년 동안 보면, 사울은 계속 승리하고, 
왕이 원하는 이 작전을, 백성들이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라주잖아요. 
그리고 왕도 백성들을 전적으로 신뢰했던 거예요.

여러분, 리더와 팔로워 간에 이렇게 상호 신뢰하는 조직을 세운다는 것은 
이상적인 겁니다. 

근데 저는 세상을 보면서, 인간이 세운 이상적 관계는, 오래가지를 못 하더라고요. 
그래서 상담하는 가정들 중에 보면,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역기능적인 상황이 된 가정들도 걱정이 되지만, 

제가 또 걱정이 되는 건, 정반대의 측면에 있는 가정들입니다. 
부부가 금슬이 너무 좋거나, 
부모 자식이 너무너무 친밀한데... 하나님보다 더 친밀한 거예요. 

여러분, 아무리 좋은 사람도, 아무리 화목하고 좋은 가정도,
사람에게 실망을 할까요, 안 할까요? 사람은 실망하는 일들이 반드시 생겨요. 

당신의 남편에게, 당신의 아내에게, 부모에게, 자식에게, 
실망하는 날이 반드시 오게 돼 있고, 배신감을 느끼는 날이 오게 돼 있어요.

근데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면, 
사람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무너지는 날, 
내 인생도 함께 무너지게 돼 있어요.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십시오. 
사람들하고 거리 두고 살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을 사랑하세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성도들을 사랑하세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직원들을 사랑하세요. 

이게 만약 거꾸로 되면, 사울의 인생이 됩니다.
본문 삼상13:1~7절까지, 하나님께는 한마디도 의논(기도)도 없고, 
그냥 백성들과의 관계, 군사작전... 그걸로 그냥 가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왕이 백성들의 필요를 다 채워줄 수 없어요. 
백성들이 왕의 원하는 것을 다 완성시켜 줄 수 없어요. 

내 인생을 완성하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이걸 빨리 깨달으셔야 돼요.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내 인생이 소중하고, 가정이 소중하고, 일터가 소중하다 보니 
이렇게 무너질 순 없고, 이렇게 허무하게 포기할 수 없고, 
여기서 내려놓으면 내가 죽을 거 같고...
그래서 숨이 막혀오고, 답답하고, 조급해지고, 
두려움 가운데 판단력이 흐려지지만,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내 모든 문제를 맡기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살든지 죽든지 아버지의 뜻에 맡기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다시금 나를 반전시키셔서 놀라운 승리의 기회를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갈지어다. 내 영혼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모든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 아무리 합리적인 설명일지라도 
원수의 거짓말을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 지어다'

주님, 파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강하고 담대할지어다. 
주여! 부르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