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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2장 사랑의 온도를 체크하라

LNCK 2025. 3. 17. 12:01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사랑

https://www.youtube.com/watch?v=1XepyBm7MVk

사랑의 온도를 체크하라              계2:1-7         2025.02.23. 

우리가 에베소 교회를 살펴보고 있는데요.
지난 주간에 우리는 에베소 교회에, 예수님이 하신 칭찬을 살펴보았습니다. 

진리를 사수하는 교회, 건전한 교리를 가지고 
거짓과 불법들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견고하게 세워진 교회, 
정말 멋있는 교회죠.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참된 진리를 알아가고 
그 안에서 견고하게 신앙이 세워지는 교회, 

또 외부적으로는 굉장히 핍박이 많았던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그 핍박 속에서도 교회를 신실하게 지켜내었던 교회였어요. 

또 무엇보다 니골라당 이라는, 그 시대에 무절제와 방종으로 
세속의 영향이 강했던 그 도시 안에서, 
교회를 거룩하게 지켜낸 것만 해도 칭찬을 받을 만하죠. 

에베소는 특별히 바울이라고 하는 걸출한 하나님의 사람이 목회했던 곳입니다. 
아마 세상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목회자, 또 설교자가 
3년 동안 두란노에서 말씀을 가르쳤고, 
그 뒤를 이어 디모데가 목회를 했고, 
또 아볼로라고는 탁월한 성경 교사가 말씀을 가르쳤던 교회가 에베소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적으로 무장되어 있는 강력한 교회, 좋은 교회, 
모범적인 교회였어요. 주님의 칭찬을 받을 만한 교회였습니다. 

자 그런데 그 교회가 안타깝게도 책망을 받습니다. 
본문 계2:4절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사랑을 버렸다는 것! 주님의 지적은 딱 하나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사랑을 버렸다는 거죠. 

여러분, 주님이 정확하게 보신 겁니다. 
어느 순간부터 에베소 교회 안에 변질이 일어난 거죠. 차가워졌어요. 교회가 냉랭해졌어요. 
여러분, 어느 교회나 출발은 다 좋아요. 
근데 역사가 흐르면서, 그 시작되어 있었던 어떤 정신과 본래의 본질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모든게 무너져 버리는데,
에베소 교회는 사랑을 간과한 것입니다. 

자 그런데 주님의 이 책망은, 그냥 끝나지 않고, 책망과 아울러 경고, 워닝이 있어요. 
굉장히 강력한 warning 을 하셨습니다. 그게 5절이죠.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져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굉장히 무겁고 엄중한 명령을 하신 거죠.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 
여러분 그냥 흘려들을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은 뭘까요? '촛대를 옮기겠다'는 말은, 교회를 없애겠다는 겁니다. 
주님의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교회는 없어질 수 있습니다. 
촛대가 옮겨진 교회가 역사 속에 굉장히 많습니다. 주님이 촛대를 옮기시면 끝입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가,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으니까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경고는 가볍게 들을 말씀이 결코 아니죠. 
어떻게 보면 '교회를 없애겠다'는 이 말씀은 조금 심하게 들립니다. 

근데 그 만드신 분의 목적에 맞게 쓰여지지 않으면, 없어져도 마땅하죠.
여러분, 여기에 컵이 있는데, 이 컵이 만들어진 목적대로 쓰여지지 않는다면, 
존재해야 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전구는 빛을 드러내야 될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빛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 전구는 존재할 필요가 없는 거죠. 

주님은 사랑이 식어진 교회를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들이 첫 사랑을 버렸다. 다른 것은 다 봐주겠는데, 사랑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여러분, 교회가 사랑이 없다는 것은 참 심각한 일입니다. 
안타깝게도 역사 속에 에베소 교회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심지어 에베소라는 도시까지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후에 7세기에 이슬람이 출현했을 때는, 중동 지역의 교회들이 거의 다 사라져버렸죠)

한때는 그렇게 왕성하던 교회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촛대를 옮기겠다 하시면, 옮기시는 것이에요. 

근데 주님은 교회를 평가하실 때, 중요한 기준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에베소교회는 어떻게 하다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을까요? 
처음부터 사랑이 없었던 교회가 아닙니다. 

'사랑을 버렸다'는 말은, 사랑을 가지고 있었는데, 버렸다는 거죠. 
처음에는 뜨거운 사랑을 했던 교회라는 거죠. 
근데 어느 순간부터 식어지기 시작하고, 점점 점점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자 여러분 에베소 교회는 거짓된 가르침들을 분별하고, 악한 자들과 싸웠습니다. 
진리를 지켜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죠. 

교회 안에 교묘하게 들어와 있는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판별해 낸다는 거, 어려운 거잖아요. 
교리적 순수함을 지키는 일은 까다로운 일입니다. 
거짓과 참된 것을 분별하려고 하면, 좀 냉정해야 (사랑이 식을)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악한 자와 거짓된 것들과 싸우다가 놓친게 뭐냐? 
사랑이라는 거죠. 
진리를 사수하는 것과, 사랑을 양립할 수 있는가요?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는 언제나, 사람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균형을 잡는게 너무 어렵습니다. 

여러분 성숙함이라는 건 균형이거든요. 발란스 예요.
아이들이 균형이 없으니까 잘 넘어지는 거죠. 

우리가 어느 한쪽을 바라보면, 다른 한 쪽을 놓칩니다. 
우리의 한계 예요.
우리는 객관성을 갖기가 굉장히 어려운 사람들이다.. 라는 걸 인정해야 됩니다. 

한쪽을 바라보다가 한쪽을 놓치는 거예요. 
진리를 강조하다가 한쪽을 놓친 것입니다. 사랑을 놓치는 거죠.
사랑을 강조하다 진리를 놓쳐버리고 거죠.

이단을 가려내고 거짓을 찾아내려면 냉철해야 돼요. 
근데 이 정의감, 이게 자칫하면 우리의 가슴이 식어지고, 
도그마(교리)에 갇히는 독선에 갇히는... 그런 불상사가 벌어지는 거죠.

여러분, 신학자들 간에도 교리를 가지고 치열한 논쟁을 하는 걸 봅니다. 
요즘도 그런 이슈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칭의' 교리에도, 신학자들 가운데 지금도 굉장히 치열한 싸움이 있어요.
종교개혁이 지난지 500년이 넘었는데, 지금도 역시 새로운 또 이 시대 속에 
변질이 교묘하게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신학자들끼리는 논쟁을 해요. 논쟁을 해야죠. 

근데 하다 보면 날카로워져요. 투쟁적으로 변하고요. 
나중에는 본말이 전도되어, 본질을 가지고 싸우는게 아니고, 감정 싸움을 해요. 

여러분, 교회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건 참 좋습니다. 
건강한 교회, 거룩하고 순결한 교회는, 저절로 되는게 아니죠. 

문제는 지나치게 예민해지고, 지나치게 치우치다 보면 
사람들이 날카로워지고, 그리고 투쟁적이게 된다는 거죠.

여러분 교회 안에서도 우리가 봉사를 열심히 하다 보면,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증상이 있어요. 날카로워져요.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이 나타나요. 

그러면 어때요?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데,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을 정죄, 판단하기 쉽습니다. 

근데 자기가 열심히 하니까... 
그리고 교회를 오래 다니고 그러면... 
그 분들이 교회의 주류를 이루면, 그 교회는 경직된 교회가 됩니다. 
분위기가 어두워지게 되죠.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살벌해지는 거죠. 

여러분, 성가대에서 열심히 열심히 연습했는데 
누가 반의 반 박자 빨리 나왔다... 그러면 죽는 거예요. 
'우리 교회가 지난 50년 동안 어떻게 해 온 교회인데 그런 짓을 하느냐?' 이런 태도예요. 
우리가 어떤 걸 주장하다가, 사랑을 놓쳐 버린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사역하다 보면 자기 도취에 빠져요. 
성경을 조금만 많이 알아도 자만에 빠집니다. 

열심히 하는 것 좋아요. 문제는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영적 우월주의에 빠지고, 사람들을 판단하고, 경계하고, 재단해 버리고... 

여러분, 세계 교회 속에 한국 교회는 '열심'입니다. 
성도들 열심히 전도도 하고, 열심히 기도도 하고, 열심히 구제도, 헌금도 특심합니다. 
한국교회의 열심, 성도들의 열심은 세계에 알려져 있습니다. 

근데 또 하나 알려진게 있습니다. 성도들이 열심히 싸운다는 거예요. 
한국 교회사는 교회 분열의 역사입니다. 
교회가 두 동강이 나는 거죠.

무슨 이슈가 생기면, 쉽게 파가 나누어져 버려요. 무섭게 싸웁니다. 
봉사를 잘하는데, 싸움도 잘해요.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싸움도 잘 해요. 
우리 교회의 어떤 분은 방언 기도를 뜨겁게 하는데, 잘 싸워요.

여러분, 우리는 '죽으면 죽으리라'의 정신이 있습니다. 한국교회 안에! 
우리 성도들의 열심이 대단해요. 일사각오 예요. 

여러분, 일 잘하는 사람은, 한국교회 안에 꽤 많아요. 일 잘하는 사람들은 많아요. 
근데 문제는, 교회가 깨져요. 교회가 분열돼요.

여러분 고린도전서 13장을 우리가 꼭 보아야 돼요. 다 읽어야 되지만 2절만 읽으면 
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예언하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다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구제를 하든, 무슨 대단한 교회를 10개를 지었던, 
사랑이 없으면 nothing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대단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빠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주님은 왜 그토록 사랑을 강조하십니까?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고 본성이에요.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에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십자가를 우리가 바라보면,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준 건 뭐예요? 사랑입니다. 
구원의 역사는 사랑으로 성취되고, 율법의 완성이 사랑이에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도 사랑이고,
일하시는 방식이 십자가이고, 십자가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보다 더 큰, 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 우리가 교회로 모인 것을 뭡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 모인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우리는 여기에 모일 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교회가 교회 될 수 있는 것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의 모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 잣대를 갖다 대시면, 여기에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우리의 실수와 허물이 끊임없고, 또 우리가 범죄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끊임없이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인내하시고 
우리의 죄를 따라 처벌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디베랴 바닷가에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이, 베드로에게 질문하신 것은 딱 하나예요. 
'너 이제 배반 안 할래? 앞으로 열심히 할래?' 그걸 묻지 않으셨어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것 딱 하나만 물으셨어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당신을 못 박는 자들을 사랑하신 사랑을 보여 주셨어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원수들이었습니다. 사랑받을 만한 어떤 것도 우리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베푸신 그 사랑은, 표현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 무한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모여 있는 것입니다.

근데 그 교회 안에 사랑이 없다면, 도대체 그게 교회냐? 하는 거예요. 
자 그러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오늘 여기 본문에 보면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걸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2:5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만났을 때의 경험은 다 다를 거예요.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우리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에 
그때에 우리가 경험했던 것은, 잊을 수 없는 것이죠.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저도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에, 그 감격과 그 뜨거움과 그 은혜는...
그야말로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그냥 대충 빠지는게 아니라, 완전히 빠지는 것처럼, 
주님과 나와의 관계도 그랬던 거죠. 여러분들이 그랬던 것 처럼!

그냥 미친 거예요. 예배드리는게 그렇게 좋고, 교회에 가는게 그렇게 좋고... 
일주일 내내 교회에 가는 걸 기다리는 거예요.
예배드리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찬송을 부르면 눈물이 터지고... 구원에 대한 찬양을 참 많이 불렀던 거 같아요. 

앞으로 좀 그래야 될 것 같아요. 구원의 감격이에요. 
날 구원하신 하나님! 

이 죄인을, 이 지옥 갈 죄인을, 심판받아 마땅한 이 죄인을, 
죽었던 나를 살리신 그 하나님의 은혜! 

그래서 여러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어메이징 그레이스 라고! 

그때는 제가 (고등학교) 학창시절에,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 그 당시에 교회들은, 보혈의 찬양을 많이 불렀어요.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거룩한 보혈의 공로를'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이렇게 보혈 찬양을 부를 때마다 감격이 있었어요. 
예배를 드릴 때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근데 여러분, 그때는 오늘처럼 이렇게 좋은 건물이 아니에요. 
지금 우리처럼 이렇게 가죽 방석이 패치된 의자에 앉는다... 이런 게 없었어요. 
히터와 에어콘이 나오는 이런 쾌적한 환경이 아니었어요. 

개척교회를 다녔는데,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에,
겨울에는 찬 마룻바닥에 냉기가 스며들었죠. 
겨울바람이 몰아쳐도 난방도 되어 있지 않는... 그 허름만 창고 같은 곳이었습니다. 
거기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은 게 전부였죠. 

환경은 좋지 않았어요. 무슨 조명이 있어요? 희미한 전등 불빛.
무슨 악기가 있어요? 근데 거기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어요. 
하나님의 임재가 강하게 있었어요. 

저는 시드니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호주 교회의 별관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는데 
수요 기도회를 드리는데, 그 반음 떨어지는 피아노 한 대밖에 없는 
그 허름한 창고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의 임재가 강력하게 임했습니다.
찬양을 부르는데 그냥 넘어가지가 않아요. (계속 반복해서 불렀어요)

그런데 여러분,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냉랭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신앙이 의례적으로 겉만 도는 거예요. 껍데기만 있는 거예요. 속은 비어 있는... 
공허한 신앙생활을 반복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없어져 버렸어요. 잊어버렸어요. 
하나님의 은혜? 그건 너무 당연한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당연합니까? 근데 당연하게 여기는 거예요. 

바싹 메말라 있는 거예요. 시큰둥하는 거예요. 무미건조한 거예요. 
피리를 물어도 춤을 추지 않는 거예요. 

오늘 여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원점으로 돌아가라'는 거예요.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라! 초기의 경험을 놓치지 마라!  계2:5 

은혜를 받고 주님의 사랑을 체험했던 그 경험을 회상해라. 초심으로 돌아가라!
이 말은 뭐예요?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영적인 병은 어디에서 드느냐? 예배의 자리에서 병드는 거예요. 
지금 이 자리예요. 내 예배가 살아있는 예배인가요?
 
하나님의 영광 앞에 내가 압도를 당하고, 찬송 하나에도 감동과 가슴이 뛰는, 
그 은혜가 나를 날마다 회복시키는... 매 주일 예배드리는 예배의 자리가 살아있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시큰둥하고 무의건조하고, 기대감 없이 
그거 왔다 갔다 하는 예배라면... 이미 영혼이 병든 거예요. 

'초심으로 돌아가라, 첫 사랑으로 돌아가라'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뜨겁게 감격적인 예배를 드렸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라' 

가장 어려운 건, 사랑이에요. 
무슨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던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랑이죠. 사실은. 
사랑에 비해서 다른 것은 쉬워요. 봉사하는 것은 싶습니다. 

어떤 때는 봉사하다 보면, 박수도 받고 인정도 받고... 그러면 신이나요. 재밌어요. 
근데 사랑하는 거는 힘들다고요. 

율법을 지키고 진리를 수호하는 거는 할 수 있어요. 근데 사랑은... 어려워요.
우리는 언제나 물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사랑이 있는가?' 

옳은 일을 하는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사랑으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진리를 말하는게 중요한게 아니에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해야 돼요. 

맞는 말을 하는데, 상대를 죽여요. 
그건 맞는 말이 아니예요. 
진리를 도구화해서 사람을 죽이는 일에 쓴다면, 그건 진리를 아는게 아닙니다.

주님은 다른 걸 묻지 않으십니다. '너는 사랑으로 했느냐?'고 물으십니다. 
아주 엄중한 질문이죠. '너 사랑으로 했니?'

'무엇을 했느냐, 무엇을 얼마나 했느냐?'를 묻지 않으시죠.
대신에 '사랑으로 그 일을 했느냐? 사랑으로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겉으로는 봉사와 헌신인데, 안으로 들어가보면, 
욕망으로 가득차 있을 때가 많습니다. 내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한 거예요.

여러분, 아무리 일을 잘한다 해도, 사랑으로 하는 것보다 더 잘할 수 없습니다. 
힘으로 하는 건 누구나 할 수가 있습니다. 돈으로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어느 지점에 가면 한계에 부딪치게 되죠. 
교회가 세상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뭘까요?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래 모습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보여주어야 될 모습이죠. 

사랑을 보이지 않는다면, 교회는 존재의 목적을 잃은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교회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사랑이 빠져 버리면, 교회는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교회로서의 기능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세상은 상대를 죽이고, 내가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속을 들여다 보십시오, 상대를 죽이고 내가 사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과 반대로 살아가라는 거죠.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내가 죽는 방식을 선택하는 거예요. 
그게 십자가예요. 세상과 정반대! 
이게 우리가 하나님께 배운 사랑법 입니다. 

교회는 옳은 일을 하는 곳이지만, 사랑을 빼고 옳은 일을 강조하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 때문에 당신 자신이 죽으신 것입니다. 
이 십자가 원리보다, 더 탁월하고 우월한 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죠? 떨어진 사랑의 온도를 끌어 올려야 됩니다. *제목
여러분 부부의 관계의 핵심이 뭐예요? 돈이 없어서 힘든게 아니잖아요. 사랑이잖아요. 
사랑이 식으면 모든게 문제가 돼요.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다 피곤한 거예요. 
사랑이 식으니까, 물 떠 주는 것도 힘들어요. 근데 어떻게 밥을 해 줘요? 

의무감만 남아 있는 거예요. 근데 그 의무감도 나중에 사랑에 빠진 그 의무감은 
달달 털려 가지고 그것도 이제 끝이에요. 조금만 더 가면 원수가 돼요. 

여러분 처음부터 그렇게 된게 아니잖아요. 처음에는 너무너무 사랑해서 결혼했잖아요. 
근데 사랑이 빠지는 순간 결혼 생활이 힘들어지는 거예요. 배우자가 원수가 되는 거예요. 
사랑의 온도가 식어지는게 문제예요.

여러분 신앙의 핵심은 주님과의 친밀함입니다. 
무슨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아니예요.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느냐?' 하는 거예요.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데.. 뭘 하니까, 다 사고가 터지는 겁니다. 말이 많아지고... 
신앙의 기본 중에 기본은, 주님과 나와의 사랑의 관계예요. 이걸 유지하는게 어려운 거죠. 

주님과 나와의 사랑의 관계, 그 온도를 유지해 나가는 것, 친밀도를 높여 나가는 것, 
여기서 모든게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나와의 사랑의 관계가 식지 않고, 
그 사랑에 내가 빠져 있으면... 모든게 다 통과예요. 

근데 여러분, 그 사랑이 빠져있으니까 기계적이죠. 형식적이죠. 의무적이 돼죠. 

여러분 젊은 남자가 사랑에 빠지면, 그냥 막 다 해주잖아요. 
바람만 약간 불어도, 형제가 겉옷을 벗어 주고, 그냥 뭐 먹을래 그러고, 
그냥 '달 따서 줄까?' 그러고 막 다 하잖아요. 
시켜서, 요구해서 하는게 아니에요. 시키는데 하는 정도면, 아직 사랑이 멀은 거예요. 

저는 목회를 해보니까요. 교인들에게 '봉사 많이 열심히 하십시오. 뭐 헌금 열심히 하십시오'
여러분, 제 설교에 그런게 있던가요? 

복음을 증거해요. 그래서 성도님들이 주님을 진짜 만나고 그분과 사랑에 빠지면 
하라 말라 말할 필요가 없어요. 뭘 봉사를 하라고 그래요. 짜증나게... 

근데 사랑이 식어지면, 다 힘들어요. 
근데 교회에서 자꾸 뭘 시켜요. 그럼 도망가 버리지요. 다른 교회로 옮겨 버려요.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순종만 남아요. 그걸 주님이 받으시겠어요? 

근데 복음이 들어가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가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들어가니까... 미치는 거예요. 
'주님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지?' 

그래서 루비 캔드릭 선교사는 그런 말을 했던 거예요. 
'내 목숨이 천 개가 되어도 내가 조선 땅을 위해서 바치겠다'는 이 고백이 나오는 이유는 
주님을 사랑하니까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형식적인 신앙을 탈피하는 것은, 내가 노력해서 안 되는 거죠. 
주님과 나와의 사랑의 관계가 처음으로 돌아가야 돼요. 

주님이 나를 처음 불러 주셨던 그 땅,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죄인이 의인 되게 하시고,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천국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누리게 하신 그 은혜, 
그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그 은혜의 자리를 점검해 보셔야 돼요. 

그래서 예배 자리를, 여러분, 점검해 보셔야 돼요.
예배의 자리가 맹수 맹숭하지 않아야 돼요. 

가장 무서운 것은, 예배 자리에서 병이 나 있는 거예요.
구원의 감격이 없어요. 찬송을 불러도 감격이 없어요. 감탄사, 탄성을 지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아가서를 보면,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굉장히 성적 친밀함을 강조하는 
19금 내용들이 아가서에 많아요. 

근데 여러분, 그것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해 내려고 하는게 
그 뜨거운 사랑에 빠진 남녀의 얘기를, 아가서에 해 놓은 거예요. 

그래서 유대의 전통에는 그들의 신앙 속에서 한 번씩 이렇게 매너리즘에 빠질 때마다,
아가서를 읽어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술람미와 솔로몬의 그 뜨거운 격정적인 사랑 안으로 들어가는 
그것을 회복시키는 작업,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남녀의 사랑, 모든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하나의 모방에 불과한거든요. 모조품에 불과한 거거든요. 
그 원형은 하나님이에요. 가장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랑입니다.

그 경험을 해 보지 못한 채 교회를 다닌다면...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 채 봉사를 하는 거...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데, 무슨 전도를 어떻게 해요? 무슨 재주로? 

여러분, 오늘 이 에베소에 주신 '처음 사랑을 버렸거든 회복해라!' 
이것은 주님과의 관계의 복원을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살다 보면, 주님을 놓칠 때가 있어요. 목회자도 마찬가지예요.
진리를 위해 산다고 하는데, 정작 그리스도를 놓쳐 버려요. 

주님의 일을 하는데, 주님이 계시지 않아요. 
너무 일에 집중하느라 주님을 보지 못해요. 

주님을 좇아야 하는데, 주님과 관련된 일만 하는 거예요. 
나중에 보면요. 자기 비즈니스예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해요? 회개해야죠. 
'...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2:5b

'회개가 살 길이다.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결단을 하라. 
처음 사랑으로 돌아와라. 그러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 

교회가 세워진 목적을 놓치지 말라는 거예요. 
주님과 나와의 사랑을 복원하고, 그 다음에 뭐예요? 
이제 나만의 신앙에서 벗어나,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먼저 사랑을 풀어내셔야 돼요. 
우리가 일하기 위해서 모인게 아니에요.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모였어요. 

사랑하면서 일을 하는 거예요. 그 사랑의 힘으로 일을 하는 거예요. 
근데 사랑하지 않고 일만 하면 어때요? 그 교회는 살벌한 교회가 돼요. 
세상의 조직체와 똑같아요. 

여러분, 우리 교회가 따뜻한 교회, 다른 것은 부족해도 사랑이 넘쳐야 됩니다. 
위대한 일을 못해도 괜찮아요. 여러분 교회가 무슨 위대한 일을 하다가 싸우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뭐 세계 선교... 그러다가 막 싸워요.  
별것 아닌 걸로 교회 안에서 시기 질투를 해요. 상처를 주고 받아요. 

여러분, 교회 봉사 하다가 싸우면, 교회의 본질, 그 목적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말씀을, 우리는 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요일4:7~8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 무슨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해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 교회 속에서 여러분의 공동체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고, 
용서하되 일흔 번의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고, 품어내고, 덮어 주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부드럽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까칠까칠해지면 안 돼요.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온유해야 돼요. 눈꼬리도 약간 이렇게 내려와야 돼요. 
눈꼬리가 자꾸 올라가면 안 돼요.

나의 유익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꾀하시고, 
다투지 말고 하나됨을 이루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하려고 무섭게 몰아치지 마시고
서로 격려하고 축복하고... 

여러분 사랑은 혼자 하지 않는 거잖아요. 사랑은 서로 하는 거잖아요. 
사랑은 관계잖아요. 
우리 안에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2:7절에 보니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기에 우리 모두가 포함되는 거예요. 에베소 교회에만 주신 말씀이 아니라, 
특정한 교회에만 주신 편지가 아니라
이 편지의 수신자는, 오늘날 우리 모두 각 개인에게 발송된 편지예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나는 아니야, 나는 상관없다'고 해서는 안 돼요.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일곱 교회 모두에게 주신 동일한 말씀이에요. 

말씀을 들어야 돼요. 목이 곧은 백성은 말씀을 듣지 않아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꾸 듣지 않으려고 하면 어떡해요? 
나중에는 하나님이 내 길을 막아 버렸어요. 그러면 재앙이 와요. 
내가 듣고 싶어도 못 듣게 돼요.

여러분 오늘날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끊임없이 뱉어내는 거죠. 
그래서 세상은 소통은 없고, 소음만 가득합니다. 

현대인들은 그래서 자폐적 삶을 삽니다. 원 웨이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을 만나기 힘듭니다. 
듣기보다는 하는 말이 너무 많아요. 

영성은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돼요. 경청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 '듣는다'는 말은, 그 들은 말씀에 머물러 있는다는 얘기예요. 

'듣는다'라는 말은, 그냥 듣고 가는게 아니고
들은 말씀이 내 안에 머물러 있는 거예요. 그게 듣는 거예요. 
그걸 우리는 묵상이라고 그래요. 

오늘 주님이 나에게 하시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자, 최종적인 약속 있죠. 7절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이기는 자'의 개념이, 요한계시록에서 매우 중요한데, 
'이기는 자'에게 풍성한 약속을 주는데,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시겠다.. 고 하십니다. 

에덴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자들이 다 죽었는데,
이 생명의 나무를 계시록에서 약속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창세기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생명나무 열매를, 부활하신 주님께서 먹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후의 승리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에베소 교회에 주신 책망을 통하여 
우리에게 '사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열심이 아니라 사랑의 열심! 
오늘날 세상을 보십시오.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역사 이래에 이렇게 풍성했던 시절이 없을 정도로 
세상이 풍요롭고 우리 한국도 그렇게 풍요로운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이 없기 때문에! 
말세의 특징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마태복음 24:12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이 사랑은 어떤 것일까요? 
세상은 사랑을 얘기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없다는 겁니다. 참된 사랑이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목이 말라서 자꾸 찾는 것이 사랑인데 
그 참된 사랑이 없어요. 

그래서 그 사랑에 지친 사람들이, 이 세상에 꽉 차 있어요. 
여러분, 세상에서 사랑을 찾다가 지쳐 있는 영혼들이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아, 여기가 내가 찾던 곳이구나' 

세상에 사랑이 식어 갈 때, 사랑으로 충만한 우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의 건강성은 사랑의 온도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사랑의 온도! 
그걸 체크해야 돼요. 여러분들은 몇 도쯤 될까요? 
우리 교회는 사랑의 온도를 측정하면 몇 도쯤 될까요? 

우리 주님이 오시면 칭찬하실까요, 책망하실까요? 
주님은 사랑을 보십니다. 

여러분,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시고, 
형식적인 신앙에서 돌이켜서,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돌이켜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의 사랑을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혼자만의 신앙에 도취되어 있지 마십시오. 사랑의 눈길로 주변을 돌아보세요. 
사랑의 눈길로 돌아보세요. 그러면 사랑할 대상들이 눈에 띌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 필요 없어요. 시스템... 필요 없어요.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나 사역들이 돌아가도... 사랑이 없다면... 그 교회는 죽은 거예요. 
힘이 없어요. 껍데기만 돌아가는 거예요. 

교회의 핵심은, 기독교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회복하라' 
왜요? 그것이 교회 생명이기 때문이에요. 
교회가 교회 다워지는 길이기 때문이에요. 

지금 결단하시고, 지금 돌이키시고, 처음 사람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구하고, 
그 주님과 나와의 사랑을 회복하고, 우리 공동체 안에 사랑을 회복하고...
이 사랑이 없어져서 지쳐가는 이 세상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 내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금년 2025년에 창립 50주년을 맞은 우리 수영로교회가 
역사 속에 계속 쓰임 받는 비결은 
사랑을 생명처럼 붙들고 실천해 내고자 할 때 
우리 교회를 주님이 붙드시고, 끝까지 사용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자, 이제 우리는 실천이 시작이 되어 
먼저 여러분들의 예배의 자리를 확인하세요.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십시오. 

일주일 내내 주일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고, 예배시간에 일찍부터 나오고, 
가능하면 앞자리부터 앉으세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살 수 없다' 라고 하는 갈증을 가지고 나오십시오. 
바짝 엎드린 심령으로,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오시고, 
주님과 나와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십시다. 

그래서 내 입에서 그 주님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 터져 나오고, 
찬송가 한 절에도 내 심령을 그냥 울렁거리게 만드는... 
잃어버렸던 눈물을 되찾으시기를 바라고, 
그래서 우리가 함께 감격적인 예배와 사랑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형식적인 건 다 의미 없는 거잖아요. 껍데기를 10년 20년 붙들어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여러분, 출석 도장 받는 거 무슨 의미가 있어요? 진정한 예배를 드려보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주변을 돌아보세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봐요. 
제가 이 시간에 여기서 자세히 말을 못하지만, 우리 교회 안에 곳곳에, 

-우리 미혼모 사역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하시는 분들 
-노숙자를 위해서 정말 모든 걸 다 바쳐서 하시는 분들 
-위탁 청소년들이 보호 시설에서 나올 때, 그들을 돌봐주는 일들, 
-노인들 재가 사역을 하시는 분들, 

곳곳에 어려운 이 분들을 돌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하시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 많으세요. 
근데 여러분, 내가 사랑으로 그들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주세요. 

우울증이 많은 이 시대, 이유가 뭘까요? 
여러분, 우리의 자폐적 삶과 연관이 있어요. 
내 세계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눈을 열어,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가보세요. 
선교지에 한 번 갔다 오면, 그냥 뭐가 뻥 뚫려요.
내가 막 다 쏟고 다 주고 왔는데, 왜 그렇게 행복한지... 
주는게 사는 거예요. 사랑이 나를 살리는 거예요. 

'서로 사랑하라' 내가 사랑을 베풀어야 될 그 대상을 찾으시고 
우리 교회가 사랑으로 후끈후끈해지는 거예요. 

일 잘하는게 중요하지 않아요. 
위대한 일, 큰일... 중요하지 않아요. 사랑하는게 중요한 거예요. 
'사랑하지 않으면 네 촛대를 옮기겠다'고 그랬으니까! 

사랑하라는 거예요. 연약한 사람이 있으면 사랑하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예배시간에 왔다 갔다 하면서 분위기를 깨면, 
온 공동체가 그를 옆눈으로 막 째려보는게 아니고, 그를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를 품어내라는 거예요. 
그 사랑의 온도를 우리가 높이는 거예요. 

여러분들 가까이에 자꾸 원수가 보입니까? 하나님의 뜻과 섭리 속에 만나게 하시는 거예요.
그 원수를 통하여 나를 사랑해 온도를 높이라고... 그 원수를 사랑해 내라는 거예요. 

힘든 사람이 있습니까? 피하지 마시고 그 사람을 사랑해 내라는 거예요. 
사랑방에 내가 힘든 사람이 있습니까? 사랑방을 옮기지 말고 
사랑방에 있는 그 인간을 사랑하라는 거예요. 

사랑하지 않고, 저 인간 보기 싫어서 다른 사랑방으로 옮기면 
더 한 수 높은 웬수가 그 사랑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길이 없어요. 
사랑으로 해결해야지요... 

오늘 여러분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이 보입니까? 사랑하라는 거예요. 
'너는 저래도 그를 사랑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예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 거예요. 사랑할 수 없는 나를 사랑하신 거잖아요.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십시오. 주님과의 뜨거운 미래로 돌아가십시오. 

주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랑을, 지금도 주께 나아오는 자들에게 부어 주시고, 
그 사랑의 힘으로 넉넉히 세상을 사랑하고, 이 세상을 품고,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데 쓰임 받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