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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3장 삼십세 쯤 되시니라

LNCK 2025. 3. 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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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6일 "삼십세 쯤 되시니라(누가복음 3:23)" Youtube  

삼십세 쯤 되시니라        눅3:23          2025.03.15. 교정예정

오늘 사순절 둘째 주일을 맞이해서, 
예배에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께 하나님의 은총을 기원합니다. 

결혼 적령기의 자녀를 둔 부모님이라면, 주변에 '좋은 청년 없나?' 하고 살피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은 어떠셨을까?' 생각을 해보곤 했어요. 

예수님께서 이제 잘 이렇게 성숙하고 성장한 하나님의 아드님으로 자라나셨는데,
주위 사람들이 예수님을 탐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모친 마리아에게 와서 '마리아, 댁에 큰 아드님은 결혼 안 시키나요?' 
이렇게 누가 물어보지 않았을까요? 참 궁금해요. 
그러면 마리아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을 것 같아요.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앉아 가지고, 무슨 얘기를 했을 것 같아요. 
'아, 그 목수 집에 그 큰아드님이 아주 좋아 보이던데, 성격은 어떻대? 좀 알아?' 
이렇게 뭐 얘기했겠죠.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었던 동네 사람들의 수준

 

그러면 예수님에 관해서 뭐 이렇고, 저렇고... 
자기들이 아는 이야기를 했을 것 같습니다. 충분히 그런 일이 있었겠죠. 

눅3: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여러분, 오늘 본문으로 위 한 구절만 읽었는데, 
이 한 절에는, 그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뭐라고 말했을지... 약간 그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어요. 

오늘 읽은 한 절 말씀에 나와 있는 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예수님의 나이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30세쯤 되셨다 about thirty years of age'
성경에는 '삼심 세 쯤' 입니다. '삼십 세'가 아닙니다.

여기서 '쯤'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가 있습니다.  *헬. 호세이
'가량 about' 이라는 뜻이죠. 그러므로 '딱 30 세'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한 28, 29세 일 수도 있고, 아니면 31세, 32세일 수도 있는 거죠. 30세쯤이니까! 
어쨌든 예수님은 그 쯤에 이제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셨어요. 

근데 어떤 자료를 보니까, 그 당시 로마 제국의 여러분, 평균 수명이 얼마였을 것 같습니까? 

그때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약 42세 가량으로 봅니다.

그렇게 볼 때, 예수님이 30세쯤 되셨다는 거는, 그게 당시에 이른 나이가 아니에요. 그죠. 
'상당히 늦은 나이에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이렇게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제 생각에 '예수님께서 한 20살 남짓할 때,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셨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또 3년만 하실게 아니라, 좀 오래오래 한 20~30년 계시면서 
더 많이 가르치시고, 더 많은 능력을 행하셨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기도 했거든요.

제가 이 얘기를 어디 가서 했더니, 어떤 목사님이 저보고 뭐라고 하더라고요. 
'아니, 목사님 3년 가르친 것도 우리가 쫓아가려면 힘든데, 
한 30년 가르치셨으면 어떡할 뻔 했느냐고?' 그래서 함께 웃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하여튼 어쨌든 예수님은 공생애를 3년 하셨는데,
3년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지난번에 말씀드렸죠. 

요한복음을 기준으로 유월절이 등장하는 횟수를 따져보면 
예수님께서 활동하신 기간은 한 3년 정도인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의 가족 상황이 나옵니다. 

본문에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다' 이렇게 나와요. 눅3:23
'요셉의 아들'로 알려진 거예요. 그죠.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족들에 관해서, 조금 더 아는게 있었는데, 
복음서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그 아버지가 목수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마13:55절에 보면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참 재미있는 것은, 막6:3절에는 예수님을 '목수'라고 그랬어요.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도 목수고, 그 아들 예수님도 목수다' 이렇게 알고 있는 거죠. 
그 당시에는 아버지의 직업을, 아들이 이어받는게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이게 하나도 이상한게 아니에요. 

그럼 목수라는 직업이, 그 당시 사회에서 평판은 어땠나요? 
요아킴 예레미야스 라는 분이 자료들을 연구한 바에 의하면,
목수는   *헬. 테크톤
목자, 또 가죽을 다루는 무두쟁이, 이런 몇몇 그룹과 함께 
아주 신분이 낮은 계층에 속했어요. 

그러니까 목수가 고급스러운 직업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리고 또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육신의 동생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동생들이 몇 명 있었잖아요. 

성경에 동생들 이름도 이렇게 나옵니다.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외) 그 누이들...' 막6:3

그러니까 고향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예수님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면, 
뭐 그런 얘기들을 쭉 했을 거예요. 
'그 동생들도 있다든지... 뭐 나이는 지금 30세쯤 됐다고...' 

▲그저 '사람들이 아는 대로'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동네 사람들

 

그런데 이제 오늘 한 절 읽은 말씀에서, 우리의 눈길이 가는 구절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은 '사람들이 아는 대로'라는 것입니다. 

눅3: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사람들에게 알려진 대로' 하면 예수님은 이러 이러 하신 분이라는 거예요. 
근데 여기 '사람들이 아는 대로'라고 할 때, 

'아는 대로' 라고 번역된 단어의 헬라어는 '노미죠' 입니다.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럴 거라고 여기고 있다' be supposed 라는 뜻이죠.

딱 떨어지는 건 아니에요. '분명히 그래!' 이건 아니고, 
'글쎄 내가 들으니까 그렇다고 하던데..' 뭐 이런 정도의 정보를 지금 얘기하는 거예요. 주1)

자 그럼 그 당시 예수님 주변에 있었던 나사렛이든, 가버나움이든, 
그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정보들, 예수님에 대한 지식들이 
얼마나 정확한 것일까요? 
'사람들이 아는 대로' 그냥 사람들이 생각할 때 '이런 거 같은데?' 하는 정도죠. 

근데 오늘 제가 이 본문을 통해서 드리려고 하는 얘기는 이겁니다. 
'사람들이 아는 대로'의 예수님만 알아 가지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리스도인은 누구냐 하면, '사람들이 아는 대로의 예수님', 
그 이상의 예수님을 알고, 믿고, 고백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그리스도인인 거예요. 
이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여러분 옛날에 우리가 초등학교 다니고 할 때 
당시 저는 교회에 갔으니까 교회에서 예수님을 배웠지만, 

교회 다니지 않는 애들은, 예수님을 어디서 배우냐 하면
수업 시간에 선생님에게서 배우는 겁니다. 그래서 교과서에 보면 
'예수님은 4대 성인 중에 한 분이다. 사랑을 가르쳤다' 뭐 그러다가 
'마지막에 사람들에게 미움 받아서 십자가에서 처형 당했던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다' 
이렇게 배우는 거예요. 사람들이 아는 대로

그리고 도서관에 가면 위인 전집이 쭉 있는데 
그중에 예수님도 위인들 중에 한 분으로 
'그리스도 예수' 뭐 이런 식으로 책이 꽂혀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어떤 애가 그걸 읽으면, 예수님을 어느 정도 알겠어요? 
'사람들이 아는 대로'의 예수님밖에는 몰라요

근데 그 정도 안다고, 구원에 이룰 수 있나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이 아는 대로의 예수님에 머무르지 않고, 
더 정확한 예수님, 그 이상의 예수님, 놀라운 예수님을 제대로 깨닫고, 믿고, 
고백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아는 정도의 예수님만, 알아 가지고는 안 되는 거죠.

◑너희는 나를 누구로 아느냐?

 

여러분,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샤라 지방에 가셨을 때,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는데 
질문을 한 번 하신게 아니라, 두 번 하십니다. 두 번 하신게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처음에는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걸 물어보셨어요. 
마16:13절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샤라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거는 일반 보통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는지.. 그걸 물어보신 거예요. 

그랬더니 그들이 귀에 얻어들은 대로 대답하잖아요. 
16:14절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에 하나라 하나이다'

'예, 사람들이 예수 선생님에 대해서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뭐 죽은 세례 요한이 살아난 거 아닌가? 
아니면 엘리야나 예레미야나 어떤 선지자 중에 한 분이 아닐까? 
이렇게들 쑥덕거리던데요?'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게 바로 '사람들이 아는 대로'의 예수님인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대답에서 멈추지 않으시고, 질문을 새로 던지셨어요. 

16:15절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죠? 그럼 제자들은 일반 사람들과 뭐가 다릅니까? 
지나간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말씀을 배웠고, 
예수님의 능력 행하시는 걸 봤고,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했잖아요. 

'그렇게 은혜를 체험하고, 나를 잘 아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이 지금 이 질문을 왜 하셨을까요? 

'세상 사람들이 아는' 수준의 대답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너희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나에 대한 고백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죠. 
마16:16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시니이다' 

베드로의 이해는 전혀 다른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두고서, '세례 요한이 살아났나? 
예레미야, 엘리야 같은 선지자 중에 한 분이시다' 이르는데, 베드로는 다르잖아요.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또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 메시아이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대답이 완전히 달라요. 

여러분, 어느 쪽으로 대답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냥 보통 세상 사람인지 
아니면 그리스도인인지가 나눠진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하나님께서 성령께서 예수님께서 수시로 우리 마음속에 
'넌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렇게 물으신다면, 분명한 신앙 고백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게 진짜 그리스도인이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거니까요. 

◑초대교회 당시 뜨거웠던 기독론 (예수님은 누구신가?) 논쟁

 

여러분 1세기, 2세기, 3세기 교회에 가장 뜨거운 이슈가 뭐냐 하면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는 거였어요. 
그게 초기 몇 백 년 동안에 가장 중요한 신학적 이슈였고, 아주 중요한 문제였어요.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리가 주일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는데, 사도신경은 성경에 안 나옵니다. 
웃기는 얘기가 하나 있어요. 
어떤 분이 교회에서 장로로 피택되어서, 노회에 가서 장로고시를 치르는데, 
고시 위원이 물어봤대요. '주기도문이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그랬더니 

장로님은 고개를 긁적긁적 하면서, '마태복음에 어딘가 나오는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그 질문한 목사님이 '그래요, 마태복음 6장에 나오죠' 

고시 위원 목사님은 계속 이렇게 질문했어요. '그러면 사도신경은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그러니까 이분이 준비가 부족해 갖고.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하하하

여러분, 사도신경은 성경이 안 나옵니다. 
이건 나중에 1세기, 2세기, 3세기 때 교회에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성경을 공부하면서 
예수님에 대한 또 여러 신앙고백을 취합해서 모은 것이 '사도신경'이죠. 

근데 그 사도신경을 여러분이 보면, 이게 균형이 안 맞아요. 
처음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데, 
성부 하나님은 단 한 줄 밖에 없어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전능하시다. 천지의 창조하신 주이시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시다.'
이거밖에 없어요. 아주 짧아요. 단 한 줄!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 아니 왜 좀 길게 안 하고, 짧게 했을까요? 

그 이유는, 당시에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슈가 아닌 거예요. 
여러분 유대 지도자들, 그리고 유대교인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그 사람들도 
구약성경을 다 알고 있었거든요. 

거기 보면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우리 아버지시고,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그들도 알고 믿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성부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짧게 그냥 만든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각자 생각이 달랐어요. 
그래서 초대교회 신앙 선조들은, 예수님에 관해서는 길게 고백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것부터 시작해서 ~ 우리를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 까지 
굉장히 길어요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제자들이라도 예수님에 대해서 분명히 모르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기에,  
그들에 대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이렇게 믿는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 길어진 것이에요. 

▲당시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 활동하실 때 30살쯤 됐고, 그리고 아버지는 요셉인데, 목수이고,
그 본인도 목수이고... 동생들도 있고... 뭐 이런 정도로 피상적으로만 아는 거죠. 

그리고 그가 말씀을 전하는데, 좀 특별하게 전하고, 
능력도 있어서 귀신도 쫓아내고 그런다고... 그런 것 정도 아는 거죠.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그분을 구원자로, 메시아로는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들이 인정하는 메시아는 어떤 분이냐 하면,
다윗 같은 영광 가운데 임해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원하고,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가져올 그런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예수님은 남루하게 입으시고, 몇 사람을 제자로 데리고 다니면서 이렇게 행하셨는데, 
'아니 무슨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나올 수 있냐?' 
'저 예수는 특별하긴 하지만, 메시야는 아니야'  이렇게 부인한 거예요. 

여러분, 나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그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아마 여러 가지 였을 것 같아요. 

예수님을 따르진 않지만, 예수님에 대해서 호감은 가진 사람도 있었겠죠. 
'말씀하는 것도 특별하고 능력도 있으시니까 훌륭한 분이시다...' 
'그런데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아이고 아쉽네... 그런 분은 좀 더 오래 살아야 되는데...' 
뭐 이 정도 생각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그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미워한 것처럼 
똑같이 예수님을 미워하다가 
예수님이 죽으셨다고 하니까, 잘 됐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겠죠. 

그러나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나 많았던 거죠. 

그러다가 이 복음이 로마로 전해졌어요. 
그래서 이제 이방인들에게도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졌는데, 

이방인 철학자들이 보면, 복음이라고 하는 건 너무도 어리석게 보이고, 
좀 유치하게 보이는 거예요. 

'고상한 덕을 쌓고, 뭐 많은 걸 행하면 구원을 받는다' 그러면 그게 매력이 있었을 텐데, 
'그냥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하니까... 
너무나 깊이가 없는 거 같고, 좀 이상해 보이거든요. 

그래서 철학자들도 기독교를 많이 비판했어요. 
그 중에 2세기에 살았던 켈수스 같은 사람은 <알레데이아 로고스> 
'참 말씀' 이라고 번역되는 그런 책에서, 예수님을 정말 헐뜯었어요. 

'예수는 로마 군인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다' 
이런 식으로 예수님을 비아냥거렸어요. 

이 켈수스가 쓴 그 책은 지금 전해지지 않는데, 
오리게네스 라는 우리 믿음의 선배가 쓰신 책 속에 보면 
켈수스가 그렇게 예수님을 비방했다는게, 거기 나와 있어서, 우리가 간접적으로 아는 겁니다. 

이렇게 이 세상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그냥 자기들이 아는 상식 수준에서만 
예수님을 설명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들리는 말 대로'가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그럼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온 세상이 예수님을, 그 정도로만 얘기하고, 비아냥거리고,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을 때 
예수님의 사람들은 전혀 다르게 고백했어요. 

아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구원자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잖아요.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했잖아요.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예수님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세상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는다는 것을 믿었어요. 

그러면서 그분은 죽음 가운데 남아 있지 않으시고, 
무덤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다는 걸 믿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장차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신다는 것을 믿었어요.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그가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이든지간에 영생을 얻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을 믿었어요. 
우린 그런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이렇게 모여 있는 이유가 뭡니까? 
그냥 예수님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수준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온 건 아니죠. 

오늘 우리는, 남들이 얘기하는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들으려고 왔다기보다는,

그 예수님에 대한 특별한 것을 고백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죠.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습니다. 
나의 죄를 씻은 분으로 믿습니다. 나의 유일한 구주로 믿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영생을 얻은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걸 믿고,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천국의 백성이 된 걸 우리는 믿고, 고백하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인 것이에요. 
오늘 예배에 참여한 여러분 모두,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 복을 우리가 받은 것이에요. 

그럼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자기들이 아는 대로 말하는 거와, 우리가 고백하는 게... 왜 이렇게 내용이 다를까요?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떠도는 이야기를 종합해서 말하는 거고, 
우리는 예수님을 이야기할 때, 전혀 근거가 달라요. 

그 가장 큰 근거는, 이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이에요. 

예수님이 주님이신 걸 어떻게 알았나요? 
예수님의 말씀이 가르쳐 주신 거예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걸 어떻게 알았나요? 말씀이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 지심을 어떻게 아나요? 말씀이 알려주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 걸 어떻게 아나요? 말씀이 알려 주시죠. 
여러분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속에서 
예수님에 관한 더 풍성한 것들을 깨닫고, 믿고, 고백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그럴 리 없어' 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 계시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만이 유일한 우리의 생명의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말로 다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뭐 역사책, 어떤 교양서적, 어떤 영상에서 보니까... 뭐 예수님이 이렇다던데...' 
(요즘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게 아니고,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확고한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가지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인 거예요. 

그리고 이제 거기에 얹어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아는 수준대로' 말하는데, 
우리에게는 또 하나, 예수님에 대해서 고백할 수 있는 뭔가가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우리의 신앙과 인생의 과정 속에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위로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에게 나타나 보이시고,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그 은혜를 
우리들은 체험하면서 살기 때문에, 예수님에 관한 고백이 풍성해진다는 것이에요. 

◑적용

 

여러분, 저는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신 그 질문이 
현재 진행형의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어떤 답을 하시겠어요? 

제가 어제 이 설교 원고를 정리하면서 
'아, 예수님이 나보고, 김 목사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렇게 질문하시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그런 생각을 해 봤어요. 

물론 베드로처럼 대답할 수 있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데... 그거 말고, 
'내 가슴속에 사무쳐 있는 예수님을, 나는 어떻게 고백하지?' 

근데 여러분, 입으로 고백하기 전에, 눈물부터 나는 거예요. 
입으로 고백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 예수님께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생애 동안에 
얼마나 위로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고, 허물 많은 내 죄를 용서하시고, 
얼마나 많은 은혜를 베푸시고... 

나는 이제껏 예수님 때문에 살았고, 앞으로도 예수님 때문에 살 건데... 
여러분, 이런 고마우신 예수님을 어떻게 한 문장으로 표현하겠어요?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시면
그저 내 가슴이 울컥하고...  뭐 어떻게 길게 말할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가슴속에 예수님에 대한 사무치는 뭐가 있어요.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예수님은 다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아마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신다면 
눈물부터 나오는 분이 많을 거예요. 

'사랑의 예수님이시다... 
내가 이 나이 될 때까지, 세상 사람들이 날 외면하기도 하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예수님만이 유일한 나의 인도자이셨다... 
앞으로도 내가 이 땅의 마지막 호흡을 멈추는 그때까지, 나는 예수님 안에 살거다. 
예수님 없이는 내가 못 살지...' 여러분의 가슴속에도 그 답이 다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이 사순절 기간인데, 1년 중에서 사순절 기간은 특별히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묵상하자... 그런 기간입니다.

여러분, 이 사순절 기간 동안에, 여러분의 가슴 속에 
예수님이 더 무게 있게, 더 충만하게, 더 확실하게, 더 풍성한 은혜로 자리 잡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으로 꽉 채워지는 거예요.

이 찬송가에 가사들이 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예수님에 대한,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을 가지고 써내려간 것인데, 
85장 찬송가는 특별히 더 그래요. 

85장을 보면, 12세기에 사셨던 성 버나드 라고 우리가 흔히 부르죠. 또는 베드나르도,
그분이 쓰신 시가, 찬송가 가사가 되었어요.

이분은 시토 수도원의 창립자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수도 생활을 엄격하게 하면서, 
하나님을 늘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했어요. 

이분이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책을 쓰기도 한 분이죠. 
이 끌레르보의 베르나르도, 그분이 쓰신 찬송 시가 
800년이나 지난 오늘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거예요. 

「1 구주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거든 
주 얼굴 뵈울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여러분 구주를 생각하면 좋습니까? 얼마나 좋으신가요? 
이분은 '이렇게 좋다고...' 구주를 생각만 해도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은데, 

여러분 이 1절을 진심으로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은
빨리 천국 가고 싶어 할 것 같아요. 생각만 해도 좋은데... 

「2 만민의 구주 예수의 귀하신 이름은 
천지에 있는 이름 중 비할 데 없도다   

세상에 권력 있는 사람의 이름, 돈 많은 사람의 이름,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들이 많아요. 
그들이 우리를 부른다고 그러면, 그냥 버선발로 뛰어나갈 것 같은데... 

그 많은 이름들 중에, 가장 귀한 이름은 예수님입니다.
나중에 천국 문에 들어갈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3 참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시고 
구하고 찾는 자에게 기쁨이 되신다

여러분, 가난한 사람 돕는 사회도 있고, 아픈 사람 치료해주는 사회도 있고, 
자비를 베푸는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죄인에 대해서는 자비가 없어요. 
'넌 나쁜 놈이야, 벌 받아야 돼! 죽어야 돼!' 

연약한 자들은 불쌍히 여기는 사회도, 죄인에 대해서는 가차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에게까지도, 자비를 베풀어서 
'너 회개해라' 이렇게 살 길을 주시고, 
죄인은 희망이 다 끊어진 줄 알았는데, 
참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시는 유일한 분이 예수님이세요. 

「4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다 말하랴 
주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만 아는 거예요. 
주님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음식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처럼, 
사랑의 맛과 깊이를 몰라요. 느낌을 몰라요. 

저는 여러분들이, 낮으면 낮대로, 밤이면 밤대로 
잔잔하기도 하고, 어떤 땐는 강렬하기도 한 그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많이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걸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5 사랑의 구주 예수여 내 기쁨 되시고 
이제와 또한 영원히 영광이 되소서  

이 세상에 우리의 명예, 우리의 면류관, 우리의 영광이 되는게, 뭐 좋은 것들이 많지만 
그건 다 쓰러져 없어지는 것이고, 우리의 영원한 기쁨이 되시고 영광이 되시는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세요.

 

마치는 말

여러분 사순절은,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라는 질문을 
나의 고백으로 표현하는 절기예요

여러분의 가슴에 우러나오는 기쁨, 
어떤 때는 눈물 어린 감사, 그런 것들을 
지난주에 받으신 기도 노트에 써내려 가시기 바랍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이렇게 크네요. 
오늘도 이런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에 간절한 감사와 기도가 있습니다...' 

이렇게 쭉 써내려가면서, 그 노트를 주님께 대한 고백으로 가득히 채워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우리 가슴에 사무치는 그 예수님에 관한 모든 것을 
우리 주님이 다 보시고 알 것이에요. 

여러분, 그 주님과의 교제가 무르익고 깊어가는 사순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전부이십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 그런 예수님으로 다가오시기를 원하고, 
그런 고백으로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을 저희에게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예수님을 만나고, 그 은혜의 맛을 보며 기뻐 뛰며 
하나님 앞에 살아가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올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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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눅3:23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그게 정확하지 않다는 뜻이죠.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신 사실을 간접적으로 지지합니다.

또 사람들이 '요셉의 아들'이라고 불렀지만, '마리아의 아들'이라고도 불렀죠. 막6:3
그것도 '아버지가 요셉인지 확실치 않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